〈 55화 〉 05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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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팍.
9월 20일. 올림픽 축구 결승전 바로 다음날 런던 히드로공항 입국장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출국장 문이 열릴 때마다 카메라셔터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대로 19일에 있었던 결승전에서 한국을 맞아 3:1이라는 스코어로 승리를 거두고 금메달을 가져 온 영국축구대표팀이었다.
1912년 스톡홀롬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우여곡절 끝에 100년이 훌쩍 넘는 기간만에 딴 금메달이었다.
결승전이 끝난 후 영국에 있는 4개의 축구협회는 물론이고 영국왕까지 축전을 보낸 만큼 전 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램파드의 영국축구대표팀이었다.
물론 잉글랜드축구협회 단독으로 선수단을 꾸린 만큼 참여하지 않은 3개의 축구협회는 축하성명은 발표했지만 속내는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에서 약체라고 평가되던 슬로베니아와의 원정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둔 실망감이 올림픽대표팀의 금메달의 기쁨으로 변했기에 더욱 더 관심이 쏠려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환호를 받는 이는 최다골의 주인공이자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16살의 인수였다.
올림픽 수영 3관왕에 빛나는 제임스 스톨과 비교해서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 인기를 만들어내며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런 축구대표팀이 결승전이 열리고 난 바로 다음날 니스에서 귀국을 했고 그 소식을 들은 영국은 물론이고 외신들까지 히드로공항에 밀려들었다.
“저기 나온다.”
파파파팍.
누군가의 외침에 카메라를 든 기자들은 반사적으로 셔터를 눌러 대고 있었다.
“124년 만에 올림픽금메달을 영국으로 가져왔습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큰 난관이 있었다면 어떤 겁니까?”
“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에서 약체 슬로베니아와 2:2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항간에는 올림픽대표팀이 주전 골키퍼와 센터백을 차출하는 바람에 졌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램파드감독님 새로운 영국국가대표의 감독직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앙 파벨리아 바르셀로나 회장이 하인스선수에 대해 극찬을 했습니다. 하인스선수를 영입하고 싶다고 했는데 하인스선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스티븐 로즈선수. 리버풀의 제라드감독이 리버풀에 로즈선수 같은 투지 넘치는 스트라이커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적할 생각이 있습니까?”
“심 루튼······.”
카메라를 들지 않은 기자들은 한 마디라도 듣기 위해 손에 들고 있는 마이크와 핸드폰을 바리게이트 넘어 쭉 내밀며 램파드감독과 선수들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자자. 기자여러분 어제 막 경기를 끝마치고 돌아온 선수들입니다. 따로 기자회견을 준비할테니 오늘은 단체사진만 찍고 해산합시다.”
“단체사진만 찍겠습니다.”
“따로 잉글랜드 축구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겠습니다.”
선수들의 귀국을 돕던 협회의 관계자들이 기자들을 막아서며 출국장 한쪽에 마련된 장소로 선수들을 안내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은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5분여 동안 단체사진을 찍은 후에야 에이전트들의 안내로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직접 나올줄은 몰랐는데요.”
“그러게요. 공항에 에이전트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누굴까 했는데.”
인수와 에디는 에이전트의 안내로 최고급 리무진승용차에 올라탄 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계약할 때 보긴 했지만 그 후로는 펠로시와 콜이라는 에이전트가 만나러 왔었다.
그런데 오늘 공항에 에이전시의 대표인 토머스 랭커리지가 직접 나와 있었다.
“하하. 두 분의 에이전트는 접니다. 당연히 제가 나와야죠.”
인수와 에디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랭커리지였지만 절대 말을 놓지 않고 품격 높은 존댓말을 사용했다.
미국에서 여행 중이던 재일과 재니퍼가 니스로 찾아와 급하게 결승전 티켓을 구하려고 했을 때에도 몇 시간 만에 결승전 티켓을 보내왔던 랭커리지였다.
최정상 에이전트의 일처리란 이런 것이다 보여주며.
“처음에는 소튼까지 비행기를 준비하려 했지만 오히려 번거로울 것 같아 이 차로 소튼까지 이동하죠. 그 동안 밀린 이야기도 하고.”
랭커리지는 접혀있던 테이블을 펴 가방에서 노트북과 서류들을 꺼냈다.
“올림픽기간 동안 하인스선수와 에디선수에게 여러 구단에서 접촉을 해왔습니다. 이적기간이 아니기에 사전접촉이 될 수 있기에 그냥 안부만 전하긴 했습니다만 이쪽 서류가 접촉을 해 온 구단들의 명단입니다.”
랭커리지는 인수와 에디에게 서류를 한 장 넘겨주었다.
“다른 리그에서 정식으로 뛸 수 있는 18세가 되기 전까지 이적은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프리미어리그 부자구단들도 연락을 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시티에서는 아주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차피 18살이 되기 전에는 이적하지 않기로 했으니 그 이후에 생각하죠.”
인수는 랭커리지에게 간단히 대답했다.
루튼에게 충고를 듣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소튼을 직접 상대하는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았기에 프리미어리그 내 팀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럼 이 문제는 제 선에서 자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인터뷰 하고 싶으신가요?”
“인터뷰요?”
인수와 에디는 소튼TV를 제외한 언론과의 접촉을 하지 않고 있었다.
구단이나 에이전트가 아닌 부모님을 통해서도 인터뷰요청이 왔지만 리처드와 협의한 대로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 하고 싶긴 한데.”
에디는 인수와 생각이 다른 듯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니. 금메달 따고 난 후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아빠 식당에 지분을 가지고 있는 분에 아들이 신문사를 다니는데 꼭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아빠는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아저씨가 아빠가 식당을 차리는데 큰 도움을 줬고 가끔 어릴 때 용돈도 주고 그랬거든요.”
“아 그 멋쟁이아저씨?”
인수는 에디가 말한 사람이 누군지 바로 알았다.
항상 멋들어진 정장을 차려입고 다녔지만 딱딱하지 않고 인수와 에디에게 항상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주던 분이었다.
“응. 그 아들이 런던에 있는 신문사에 다니는데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알겠습니다. 그 인터뷰 건은 제가 알아보도록 하죠. 혹시 그 분이 다니는 신문사와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에디는 랭커리지에게 신문사와 기자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동안 기자들이 하는 질문들 때문에 인터뷰를 만류했지만 인터뷰를 한번 하면 다른 언론들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밀려들 겁니다. 아마 경기 MOM 인터뷰와 경기 후 인터뷰도 하게 될 텐데 난감한 질문이 들어오면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다는 대답으로 빠져나오세요. 특히 하인스에게는 대표팀이나 국적문제를 물어볼 수도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랭커리지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인수와 에디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인터뷰가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에요. 인터뷰를 하고 나면 하인스선수와 브라운선수에게 후원이 들어올 겁니다. 아직 어리고 노출이 안 된다는 핑계로 값싸게 제안한 회사들을 모두 쳐내고 있었는데 이제 제대로 된 몸값을 받을 수 있겠죠.”
두 사람에게 들어오는 협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딱히 경제적으로 어렵지도 않았고 조건도 맘에 들지 않았기에 에이전트 선에서 모두 거절하고 있었다.
인수와 에디가 계속 활약하고 올림픽을 계기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으니 말이다.
“이제 두 분에게도 파파라치가 따라 붙을 확률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야 소튼과 햄프셔주에서만 유명했지만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은 만큼 말이죠. 우리 에이전시에서도 신경을 쓰겠지만 두 분도 외출시에나 사생활에서 조심을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랭커리지는 인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인수와 에디가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수에게 여자친구가 있고 그 여자친구가 이번에 레딩에서 데뷔해 3경기 만에 첫 골을 넣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특별히 주의를 주었다.
“저도 그렇고 레이도 그렇고 괜찮아요. 쉬는 동안 밖에 잘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나가서 하는 일이라고는 식당을 가거나 운동을 하는 것 뿐이니까요.”
“좀 나가라고. 쉬는 날에는 집에서 날마다 컴퓨터게임만 하지 말고.”
“게임 아니라니까. 바둑이야 바둑.”
“바둑이 게임이지. 아무튼 너 그걸로 대회에 나오라는 말까지 들었다며.”
바둑사이트는 접속한 국가에 따라 국기가 표시됐었다.
거의 대부분이 중국과 한국, 일본, 대만과 같은 나라의 국기였지만 가끔 유럽 국가의 국기를 달고 있는 아이디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인수였고 나중에 가서 유럽에서 만든 사이트도 있는 걸 알았지만 실력이 너무 낮아서 다시 처음부터 하던 사이트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인수였다.
영국국기를 달고 있어서인지 가끔 쪽지로 아마추어 월드바둑대회 예선에 참가하라는 쪽지를 받곤 했는데 그걸 말하는 거였다.
“내가 거기 어떻게 나가. 실제로 바둑판 위에서 둬보고 싶긴 한데. 대회에 나갈 시간까지는 없지.”
랭커리지는 차안에서 티격태격한 두 명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골이 타분하고 빡빡한 규정을 지키라고 강조하던 귀족작위를 동생에게 던져주고 나와 좋아했던 축구선수들을 가까이 보고 싶다는 마음에 변호사시험을 통과하고 차린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
그 동안 많은 선수들을 봐왔기에 선수를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했던 그였지만 인수와 에디처럼 어린시절부터 같이 축구를 했던 선수들은 처음이었다.
또래 아이들 같지 않는 진중한 면도 있었지만 둘만 있었을 때에는 나이에 맞게 까불거리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자 집에 도착했으니 푹 쉬고 24일에 팀에 복귀하면 됩니다.”
“24일이면 늦지 않아요? 26일에 번리와 원정이잖아요?”
“훈련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휴식도 중요하다는 말은 누누이 들었을 텐데요. 3일 간격으로 6경기나 뛰어 놓고 글피 또 시합을 하겠다고요?”
“6경기까지는 아닌데.”
“그러니까. 중간에 빠진 경기도 있었고 교체되서 나간 경기도 많았는데.”
인수와 에디는 미련이 남는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며 대꾸했다.
19일에 경기를 치렀고 20일이었다. 거리가 먼 곳도 아니고 고작 프랑스 남부지방이었기에 비행시간도 짧았다.
“그래도 안되는 건 안됩니다. 특히 하인스선수는 부모님이 안계신다고 몰래 훈련하면 안됩니다. 충분히 쉬세요.”
“알겠어요.”
인수와 에디의 집에 랭커리지의 차가 도착하고 짐을 내렸다.
랭커리지도 인수와 에디의 집은 처음이었기에 말은 들었지만 담도 없는 두 집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왜 그리 친한지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집 마당에 깔린 잔디는 눈으로 봐도 좋은 잔디였고 곳곳에 놓인 축구용품들이 집에서도 꾸준히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순간 이들을 호텔로 데려다 감금을 시켜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얼른 생각을 지웠다.
“절대 훈련은 하지 말고 24일 복귀할 때까지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랭커리지는 다시 한 번 주의를 주고 두 선수가 집으로 들어가자 차를 타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에디의 집에서는 인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비롯해 에디의 식구들과 레이의 식구들까지 모여 파티가 있었다.
레딩에 있었기에 참여하지 못했던 레이의 투덜거림이 있었지만 금메달은 네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서야 뜨거워진 핸드폰을 충전기에 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