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047.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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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 3라운드가 모두 끝난 다음 날 런던 히드로국제공항은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사상 처음으로 잉글랜드 축구협회만으로 이루어진 올림픽팀이 2036 니스올림픽을 위해 프랑스 마르세유로 출국하는 날이었다.
각 팀에 소속된 선수들의 일정이 모두 달랐기에 어제 밤 런던에 있는 샹그릴라 호텔에서 모인 후 아침에 출국하는 급박한 일정으로 이루어졌다.
당장 본선 조별예선이 9월 3일 일본과 잡혀있었기에 일정이 급박했다.
“일본은 이미 일주일 전에 마르세유에 도착해서 적응훈련을 시작했는데 4일 남기고 출국하는 대표팀의 체력은 문제없습니까?”
“이번 올림픽에서의 목표가 어떻게 됩니까?”
“아직 잉글랜드 단독팀에 대한 반대가 있습니다. 결과로 보여준다고 말씀하셨는데 가능할까요?”
“루튼선수 어제 경기를 뛰고 아직 회복도 되지 않았을 텐데 괜찮습니까?”
“개인적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기자들은 출국장으로 들어서는 순간까지 램파드와 대표팀의 선수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자자 여러분들 말씀처럼 아직 선수들의 피곤이 다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쉴 시간을 주시죠.”
“자자 지나가는데 방해되지 않습니까. 공항을 이용하시는 분들게 피해는 주지는 말아야죠.”
이런 사태를 예상했던 잉글랜드 축구협회에서는 미리 공항에 가드라인까지 쳤지만 기자들이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무너진 지 오래였다.
그 후 몸으로 선수들을 보호하며 출국장 안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원래 이래? 옥스퍼드서커스역보다 더 정신없는 거 같아.”
“나도 모르지. U-17월드컵 때에는 기자도 손에 꼽을 정도였어.”
“기자들뿐만 아니라 팬들까지 다 몰려온 거 같던데.”
축구협회관계자들의 보호 속에 재빨리 출국장으로 들어선 인수와 에디는 아직도 귓가를 울리는 웅성거림을 들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런던 지하철 3개가 모이는 환승역인 옥스퍼드서커스역 인수와 에디가 아는 가장 번잡한 곳이었다.
“촌놈 티내지 말고 따라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짓던 루튼은 이리저리 둘러보는 인수와 에디의 머리를 잡고 앞서가는 선수들에게 데려갔다.
한국에 갈때마다 왔던 공항이지만 공항의 면세점들은 언제 봐도 화려했다.
“촌놈이라뇨. 너무 심한 말 아니에요?”
“와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네.”
“공항 처음 오는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촌놈같지. 니들이라면 일 년에도 몇 번씩이나 올 테니 오늘은 빨리 가자고.”
루튼은 두 사람을 데려가면서 힐끔 바라봤다.
인수는 저번 시즌에 직접 부딪혀본 적이 있었다.
이제 막 데뷔해서 두 번째 경기였지만 떨지도 않고 날카로운 면이 있어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을 보면 아직 어린 애들이었다.
“자자. 감독님이 모이란다. 가자.”
램파드가 자신에게 특별히 챙겨달라고 했던 만큼 루튼과 카울은 특별하게 두 사람을 챙겼다.
“오늘 히드로국제공항을 통해 축구올림픽대표팀이 출국했습니다. 2036 니스올림픽의 개막일은 9월 5일이지만 일정상 개막식 전인 9월 3일 일본과의 첫 조별예선경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램파드감독은 어제 있던 기자회견에서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영국 국영방송인 BBC는 올림픽 남자축구대표팀의 출국소식을 속보로 내보냈다.
“오늘 출국하는 선수들의 명단입니다. 제일 먼저 리버풀의 주전 골키퍼인 제임스 케인선수입니다. 와일드카드로 대표팀에 합류했습니다.······.”
BBC는 오늘 출국하는 선수들의 명단을 표로 보여주었다.
골키퍼 – 제임스 케인(30) 리버풀FC *
골키퍼 – 스탠리 포텐(23) 왓퍼드FC
중앙수비수 – 심 루튼(33) 챌시FC *
중앙수비수 – 켈레치 카울(32) 챌시FC *
중앙수비수 – 라이언 베리(2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C
윙백 – 조던 바즐리(23) 리즈 유나이티드FC
윙백 – 필 반트(22) 맨체스터 시티FC
윙백 – 개리 잉스(23) 아스톤빌라FC
미드필드 – 네이션 케이힐(22) 뉴캐슬유나이티드FC
미드필드 – 데이비드 레시퍼드(23) 레스터시티FC
미드필드 – 대니얼 매슈(22) 웨스트햄 유나이티드FC
미드필드 – 하인스(16) 사우스햄튼FC
미드필드 – 에드워드 브라운(16) 사우스햄튼FC
미드필드 – 대런 바디(23) 토트넘 훗스퍼FC
미드필드 – 밥 레비(21) 아스널FC
포워드 – 스티븐 로즈(23) – 스완지시티AFC
포워드 – 로이 힐(23) -크리스탈 팰리스FC
포워드 – 케빈 라이트 – 노리치시티 FC
* - 와일드카드
“램파드감독은 선수선발에 대해 각 팀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가장 최고의 선수들을 선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2021년에 열린 도쿄올림픽이후 엔트리확대의 논의가 있었지만 IOC에서 미뤄두고 있기에 멀티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로 구성했다고 합니다. 1912년 이후 남자축구가 영국에 금메달을 가져다줄지 기대가 되는 가운데······.”
“와 날씨 좋네.”
“소튼하고 별 차이도 없구먼 무슨 날씨 타령이야.”
“그래도 프랑스잖아. 마르세유라고. 낭만을 몰라.”
“낭만 같은 소리 한다. 자유시간도 별로 없어. 빨리 가서 기념품사고 돌아가자고.”
영국축구대표팀은 조별예선 1차전이 열리는 마르세유에 도착해 회복훈련을 마친 상태였다.
그 후 레이에게 주문받은 기념품을 사기 위해 마르세유 시내에 나온 참이었다.
“근데 레이는 뭘 그리 많이 보냈어? 마르세유에도 있고 니스에도 있고 리옹에서도 있고 몽펠리에에서도 있네. 우리가 경기를 하는 곳마다 전부 살 것이 있는 거야?”
에디는 인수가 보여준 쇼핑목록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마르세유 비누? 무슨 비누를 마르세유에서 사오래. 그것도 10박스나.”
“몰라. 아빠가 남자는 여자가 하란대로만 하면 편하다고 해서 사가야 돼.”
“하긴 우리 아빠도 엄마 말은 잘 들어야 한다고 했어. 근데 우리 16살인데.”
“친구여 난 이미 늦었어. 너라도 도망쳐.”
인수는 에디의 말에 영화 같은 포즈를 취하며 가볍게 밀었다.
인수가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면서부터 핸드폰케이스부터 액세서리들도 모두 레이와 커플아이템으로 바뀌었다.
그런 생활이 몇 년째 되다보니 이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하고 아줌마는 또 어디 가신다던데.”
“저번에 그리스를 다녀왔는데 또 지중해를 오기 싫다고 하더라. 올림픽기간 동안 미국 여행하신데.”
“언제까지?”
레이가 가르쳐준 쇼핑몰에 도착한 인수는 비누를 두 손 가득 안고도 부족하자 에디에게 넘겨주었다.
“몰라. 우선은 2주라는데 좋으면 더 있으시겠데. 그 뒤로도 예정이 없고.”
“넌 어떻게 하고?”
“몰라. 이제 성인이잖아. 알아서 하래.”
영국은 16세 이상을 성인으로 보고 있었고 다른 국가와 달리 16세에 프로계약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 규정에 의해 유럽의 유망주들이 프리미어리그로 몰려들었고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프리미어리그가 유럽 4대리그로 남아있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사라가 다 크면 너희 부모님하고 같이 다니시겠다고 하던데.”
“식당은?”
“후계자 열심히 키우고 계신데.”
에디는 식당에 갈 때마다 아빠에게 혼나고 있던 부주방장을 생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튼 유스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에디에게 식당을 물려받으라고 했던 폴이었지만 에디가 소튼에서 인정을 받자 부주방장을 쥐 잡듯 잡으며 가르쳤었다.
“다 계획이 있었던 거구나. 하인스 넌 나 버리지 않을 거지?”
“뭐래. 빨리 돌아가자.”
2036년 9월 3일 일본과의 조별예선 1차전이 열리는 날이 밝았다.
기상센터의 예보대로 맑고 습도도 높지 않아 경기하기 좋은 환경의 날씨였다.
불만이라면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요란한 북소리였다.
관중들의 환호나 야유는 프리미어리그를 뛰며 익숙했지만 가슴을 고동치는 듯한 커다란 북소리는 소음이었다.
“아 국제경기 처음이지?”
역시나 경험이 많았던 루튼이 인수와 에디가 귀를 틀어막자 가까이 다가왔다.
“네.”
“이정도가지고 스트레스 받으면 안 돼. 막상 경기장에 들어서면 관중석에서 관심을 끄는 게 좋아.”
인수와 에디도 많이 들었던 소리인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많이 줄었지만 레이저포인터로 눈을 쏘는 놈들도 있고, 얼굴에 색색가득하게 페인팅을 하고 악귀처럼 소리 지르는 놈들도 있어. 경기장에 뛰어는 놈들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야. 심한 애들은 알몸에 자기나라 국기만 두르고 난입하는 놈들도 있어. 지금은 피파에서 규제했지만 부부젤라같은 걸로 경기를 방해하는 일도 있었지. 심판의 휘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어떻게 해요?”
“넌 월드컵도 뛰어봤으면서 몰라?”
인수는 자신보다 먼저 국제경기를 경험했던 에디의 어깨를 밀치며 루튼의 말에 귀 기울였다.
올림픽대표팀에 합류하고 정신과의사까지 합류하면서 멘탈관리를 받아왔지만 직접 경험해본 사람의 노하우를 듣는 것도 도움이 될 터였다.
“녹색잔디에 그려진 하얀 선. 그 선 안에만 신경 써. 그 선 밖에 있는 사람들은 골을 넣을 수도 없고 너를 건드릴 수도 없으니까.”
“부심도 있고 감독님도 있는데요.”
“야 진지한 이야기 중이잖아.”
“말이 그렇잖아. 농담도 못해.”
“이 시국이 농담할 시국이야?”
루튼은 또 다시 투닥거리는 두 녀석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A팀은 아니지만 올림픽대표팀도 A팀 못지않은 멤버가 있었다.
그런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기죽지도 않고 긴장하지도 않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야 너희 싸우면 오늘 벤치에서도 빼버릴 거야.”
경기 시작 전 마지막 작전을 알려주기 위해 라커룸에 들어서던 램파드는 라커룸 한가운데서 투닥거리던 에디와 인수에게 한마디 했다.
“아닙니다. 애만 빼면 되요.”
“아니에요. 하인스가 오늘 뛰기 싫다고 해서.”
“내가 언제.”
“그만 하고 자리에 앉아.”
램파드는 다시 장난을 치는 녀석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자리에 앉혔다.
16살. 이제 막 중등학교를 졸업한 애들이었다.
후기 중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 자신의 막내보다 어린 녀석들의 장난에 혼낼 마음도 없어졌다.
“자. 일본전이다. 무조건 이기고 가야 하는 경기다.”
영국은 4개조로 이루어진 조별예선에 일본과 카메룬, 멕시코와 함께 C조에 배치됐다.
올림픽의 강호인 멕시코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프리카팀인 카메룬을 감안하면 첫 경기인 일본은 이겨야 할 상대였다.
일본 역시 그 동안 올림픽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둔 영국을 꼭 잡아야 할 상대라고 생각할 터였다.
“4일 만에 경기를 치루는 것이 힘들 줄은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들 심장 위에 새겨진 유니언잭 문장이 힘을 줄 것이다.”
램파드는 선수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유니폼위의 유니언잭을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문양은 삼사자지만 영국을 대표하여 나가는 올림픽이니 만큼 삼사자대신 유니언잭이 휘날리는 깃발이 가슴에 새겨졌다.
“축구의 종주국이라는 우리 영국이 100년이 넘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있다.”
영국이 금메달을 따지 못한 이유는 4개로 나뉜 축구협회 때문이란 의견도 많았지만 단일팀이 된다고 해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난 이번에 꼭 금메달을 목에 걸고 런던에 도착했으면 한다. 너희는 어때?”
“당연히 걸고 싶습니다.”
“금메달은 우리 거죠.”
“금메달 따고 싶습니다.”
램파드는 선수들의 화답에 미소를 지었다.
“금메달로 가는 과정 중에 첫 걸음이다. 다들 승리할 것을 외치며 가자.”
“와.”
선수들은 램파드의 말을 듣고 고함을 외치며 라커룸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