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04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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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의 엘로우카드 이후 경기장의 분위기는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 없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주심도 나름대로 아직 소년티도 벗지 못하는 녀석이 주장을 달았다고 항의를 했고 오늘 경기에서 판정에 대해 불만을 했기에 엘로우카드를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경기가 펼쳐지는 곳은 소튼의 홈이었다.
어찌됐던 인수는 소튼의 주장완장을 차고 있었기에 관중들의 반발은 주심의 상상이상이었다.
“이거 안 좋은데.”
캐러거는 슬쩍 뉴캐슬의 벤치를 보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는 분위기에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짓고 있는 뉴캐슬의 감독이 눈에 선했다.
“지금이라도 파바르를 준비시킬까요?”
수석코치도 지금 분위기가 소튼에게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말은 안했지만 저 정도 항의로 엘로우카드는 말이 안됐다.
그저 인수의 나이가 어리기에 주심이 경기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이도 있고 오랜 기간 프리미어리그에서 뛴 파바르를 투입해 주심의 생각을 돌릴 필요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아냐. 좀 더 지켜봐.”
캐러거는 엘로우카드를 받고 난 이후 인수의 모습을 보았다.
처음 멍해 있다가 주심에게 달려드는 선수들을 말리고 눈은 주심이 아닌 뉴캐슬의 골문을 향해있었다.
이미 받은 엘로우카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했는데 인수가 바라보는 눈이 그 답이었다.
“지금 뛰는 선수들한테 맡겨. 우리가 믿고 내보낸 선수들인데 우리가 믿지 않으면 누가 믿어.”
캐러거는 코치박스까지 나갔다 몸을 돌려 벤치로 돌아왔다.
“골로 이야기하자. 할 수 있지? 있죠?”
인수는 두 눈으로 골대를 바라보며 모여든 선수들에게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당연하지. 나한테 줘.”
“내가 할게.”
주심이 잠시 경기를 중단하자 인수 곁으로 모여든 선수들이 서로 할 수 있다며 사기를 북돋았다.
“아뇨. 내가 해요. 그리고 반칙당했다고 넘어지지 마요. 끝까지 뛰어요.”
인수는 ‘네가 어쩔 건데.’라는 듯한 주심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좋아.”
주심이 다가와 경기를 속행할 것을 지시하자 소튼의 선수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주심의 휘슬에 맞추어 페렌츠의 프리킥을 받은 인수는 자신을 막아 선 뉴캐슬의 선수를 뚫어질 듯 바라보며 공을 굴렸다.
인수는 공을 굴리며 상대의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공을 굴리며 앞으로 돌진했다.
에디와의 연습이 헛되지 않았는지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굴러갔고 뉴캐슬의 수비는 인수를 놓치자 발을 뻗어 인수의 발을 걸었지만 비틀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공을 잡았다.
공이 빠져나간 후 발을 걸었기에 반칙이었지만 주심은 그대로 경기를 속행시켰다.
“에디.”
수비를 벗겨내고 자유로워진 인수는 사이드를 뛰는 에디의 발밑에 정확히 패스했다.
에디 역시 막아선 선수가 유니폼을 잡으며 방해했지만 거칠게 뿌리치고 중앙으로 크로스를 연결했다.
에디의 눈에 보이는 건 코룸의 머리뿐이었기에 정확히 올라갔지만 수비가 한발 먼저 헤더로 짤랐다.
“걷어내. 걷어내라고.”
소튼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음을 느낀 골키퍼가 공을 걷어내라고 했지만 수비의 머리를 맞고 튄 공은 멀리 가지 않고 다행히 뉴캐슬의 수비의 발에 걸렸다.
“사이드로 보내.”
골키퍼의 다급한 외침에 수비수가 길게 공을 차려했지만 어느새 달려든 페렌츠의 등을 맞고 높이 튀었다.
페널티아크근처에서 이루어진 경합이라 골키퍼는 나올 수 없던 상황.
근처에서 있던 7명의 선수들이 높이 뜬 공만 바라보며 서로를 어깨로 밀치며 경합했다.
그 경합을 이겨낸 뉴캐슬의 선수가 높이 뜨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머리에 공을 맞추지 못하고 어깨로 걷어낸 공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곳으로 튀었다.
높이 뜬 공을 잡기 위해 경합하던 선수들 중에 인수도 있었다.
어깨를 맞고 튄 공이 인수의 눈 위로 보이자 몸이 먼저 반응하며 세상이 거꾸로 변했다.
서있던 선수들이 거꾸로 변했지만 인수는 공에서 눈을 끝까지 떼지 않고 발에 맞추는 데 성공했다.
그런 자신을 막기 위해 뉴캐슬의 선수들이 발을 높이 들고 막아섰지만 공은 그대로 골대로 뻗었다.
쾅.
인수는 공이 어디로 향하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어깨부터 떨어졌다.
잔디구장에 먼저 떨어진 어깨가 얼얼했지만 공이 있는 위치를 확인한 인수는 코너깃대를 향해 무릎으로 미끄러지며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삐익.
공이 골대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주심은 센터서클을 가리키며 골을 선언했다.
뉴캐슬의 선수들이 경합과정에서 파울이 있었다고 항의했지만 주심은 단호하게 물리쳤다.
“와와와.”
“넌 최고야. 마술사.”
“우리에겐 넌 행운이야.”
인수가 코너킷대에서 세리머니를 진행하자 가까이 있던 홈관중들은 더욱 열광했다.
골 세리머니가 끝나고 소튼의 진영에 돌아온 선수들은 자신감의 미소가 넘쳤다.
“집중해. 더 거칠게 나올 거야.”
골을 넣었다는 기쁨은 이미 잊은 듯 인수는 선수들을 다그쳤다.
골을 넣은 후 긴장 된 마음이 풀리면서 상대에게 골을 내준 경험은 유스 시절에도 몇 번이나 있었기에 가장 조심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집중.”
“집중.”
캐러거는 코치박스에까지 나왔다가 인수의 외침을 듣고 벤치로 돌아갔다.
“저런 녀석만 있으면 감독하기 편할텐데.”
불과 3분전에 어이없는 이유로 엘로카드를 받은 선수였다.
그리고 자신과 주변 선수들을 다독이더니 우격다짐으로 골까지 넣었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독기가 올랐던 선수들이 여유를 가지려고 하자 다시 독기를 가지라고 독려하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고작 16살이었다.
“그러게요.”
캐러거가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는지 수석코치가 대꾸했다.
“내가 빅클럽 감독으로 가서 녀석을 부른다고 올까?”
캐러거는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던 말을 잊었다.
랄라나면 모를까? 아니 브리지가 코치연수를 받고 감독이 된다면 모를까 어림도 없었다.
‘그냥 있을 때 잘 써야지.’
캐러거는 ‘포기하면 편하다.’라는 말을 새삼 느끼고 벤치에 기대어 필드를 보았다.
“막아. 거리를 두고 붙으란 말이야.”
볼 역시 나이가 많은 파바르와 비크 대신 마운트와 린네스가 편했는지 안정된 목소리로 수비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반칙은 하지 마.”
1차전 센터서클부근에서 밑으로 거의 내려온 적 없었던 인수도 소튼 진영의 중앙까지 내려와 수비에 가담했다.
그 순간 와슨이 슬라이딩 태클로 걷어낸 공을 빌리가 잡았다.
“나줘.”
인수는 두리번거리며 패스할 곳을 찾던 빌리에게 소리치자 빠르게 반응한 빌리였다.
빌리의 패스를 받은 인수는 공을 세우는 대신 왼쪽 사이드를 향해 길게 공을 찼다.
골키퍼가 나와서 처리하기에는 애매한 공이었지만 뉴캐슬의 골키퍼는 자신의 주력을 믿고 앞으로 뛰어나왔다.
하지만 소튼에는 에디가 있었다.
와슨이 공을 끊어내자마자 선수들을 믿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한 에디는 인수가 패스할 무렵에는 최고속도로 센터서클을 지나고 있었다.
뉴캐슬의 최후방수비수들이 에디를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센터서클을 지난 에디의 뒷모습을 보며 뛰어나오는 골키퍼를 믿고 빈 골대를 향해 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뛰어나온 골키퍼보다 먼저 도착한 에디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골키퍼 뒤로 공을 차고 속도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내달렸다.
골키퍼가 몸을 날려 자신을 지나치려는 에디를 막아보려 했지만 에디는 훌쩍 뛰어넘어 골키퍼까지 제치고 빈 골대를 향해 공을 찼다.
골대로 달리던 최종수비수가 몸을 날리면서까지 공을 막아보려 했지만 뉴캐슬입장에서는 아쉽게도 간발의 차이로 공이 먼저 지나가 골대로 들어갔다.
에디는 뉴캐슬진영의 중앙에 서서 골이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손가락을 뻗어 인수를 가리켰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손을 들어 손가락 하나를 펴며 기쁜 미소를 지었다.
“와.”
“미친놈들. 니들이 최고야. 영원히 같이 가자.”
“네가 총알이다. 적의 심장을 향해 발사된 총알.”
인수의 골이 들어간 지 5분도 되지 않아 역습을 통해 에디가 한골을 더 기록하자 소튼의 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에디를 위해 환호했다.
언제 주심의 판정에 불만을 품었는지를 잊고 자신의 팀이 이기고 있다는 사실만을 기뻐했다.
“들어와. 들어와.”
에디의 골까지 들어가자 뉴캐슬의 선수들은 더 이상 무작정 달려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기가 꺾이지는 않았지만 지옥같은 챔피언십에서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보여주는 플레이를 펼치는 뉴캐슬이었다.
프리미어리그보다 4팀이나 많은 24개 팀이 한 시즌동안 46게임을 펼치며 1위와 2위가 자동으로 승격되며 3위부터 6위까지의 플레이오프를 거쳐 1개팀, 총 3개 팀이 승격했다.
중간 중간 FA컵을 비롯해 EFL컵까지 뛰어야 했으니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한 선수들이었다.
“끝까지 집중해.”
2골을 먹히고도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속도를 조절했던 뉴캐슬이었기에 전반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
“휴.”
전반이 끝나고 하이라이트까지 해설한 조지가 헤드셋을 벗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엘로카드가 나왔을 때만해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필립도 같은 심정이었는지 헤드셋을 벗으며 손에 난 땀을 물수건으로 닦았다.
“처음 하인스가 주장완장을 차고 나왔을 때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어. 16살짜리 주장이라니 말이야. 프리시즌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만큼 선수들이 믿고 있다는 이야기지. 코룸이야 저번 시즌에 이적해서 주장을 달기 힘들었을 테고 맥킬리는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이잖아. 더군다나 하인스가 경기 중 보여주는 태도도 있고.”
“그 덕에 먹지 않아도 될 엘로카드를 받았지. 하인스 첫 엘로카드 아닌가?”
“아마도? 저번 시즌엔 한 번도 없었잖아. 성질은 있어도 플레이는 깔끔하잖아. 위험한 반칙을 당해도 항상 플레이로 갚아줬잖아. 잠시만 내가 어디 적어놓은 것이 있긴 한데.”
조지는 자신이 항상 가지고 다니던 수첩을 꺼내어 뒤적거렸다.
항상 컴퓨터에 다시 작성해서 저장해야지 하면서도 밀린 축구경기를 보다보면 잊어버렸다.
“찾아보고 있어. 긴장이 풀려서인지 화장실이 급하네.”
필립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조지를 두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2:0. 안심할 수 있는 점수가 아니라는 것은 다 알지.”
하프타임에 라커룸에 모인 선수들에게 캐러거는 다시 한 번 정신교육을 시켰다.
“전반 끝날 때와 라커로 들어가는 뉴캐슬 선수들의 눈빛이 죽지 않았어. 아직은 더 할 수 있다고 다짐하고 있을 거란 말이야. 이기고 있다고 방심하는 놈들은 다음 경기에서 제외시킬 거야. 다들 명심해.”
캐러거는 하프타임이 끝나고 다시 필드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방심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다들 감독님 말씀 들었지. 후반에도 한 발 더 뛰자고. 우리 아직 젊잖아.”
인수는 필드에 올라서서 선수들을 원형으로 모으고 독기를 불어넣었다.
“네가 젊은 거야? 어린거지.”
코룸이 인수의 말에 농담조로 중얼거렸지만 인수는 조용히 무시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하프타임이 끝나고 이기고 있으니 방심할 것이라 기대했던 뉴캐슬이 기습을 시도했지만 허무하게 막히고 소튼의 역습도 뉴캐슬의 수비에 막히는 공방전을 이어갔다.
뉴캐슬의 감독이 수비를 빼고 공격수를 더 투입하는 강수까지 두었지만 캐러거도 수비를 더 보강하며 맞섰고 후반은 득점 없이 끝났다.
소튼의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개막 후 2연승을 가져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