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028.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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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네가 아직도 여기에 있어?”
존의 투입은 소튼으로서도 대박이라고 할 결과를 내버렸다.
마크가 출전하기 못하는 3주간 어쩔 수 없이 올렸다고 생각했지만 레딩과의 경기에서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5:2의 대승을 가져왔다.
하인스가 올린 공을 헤딩으로만 코룸에게 연결하여 어시스트 3개를 가져갔다.
레딩과의 경기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골대 앞 공중 볼 경합에서 레딩의 수비에 밀려 쓰러져 페널티킥을 가져오는 장면이었다.
예전에면 어시스트로 기록되지 않았겠지만 어시스트 규정이 너무 보수적이라는 의견이 많아 개정된 룰에 의해 어시스트로 기록된 경기였다.
허더스필드 전에서는 좋은 활약을 했지만 골이 터지지 않은 경기였다.
홈경기였기에 모든 선수가 의욕이 넘쳐 허더스필드의 골문을 공략했지만 한 번도 열지 못했다.
경기 막바지에 역습카운터를 맞아 1:0으로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인수가 소튼1군에 올라온 후 홈에서 첫 패배를 당한 경기이기도 했다.
존이 세 번째로 뛴 본머스와의 원정은 더욱 극적이었다.
양 팀이 치열하게 주고받는 공방 끝에 3:2로 소튼이 이길 수 있었다.
그 경기의 결승골을 넣은 선수가 존이었기에 캐러거감독은 존을 시즌 마지막까지 데리고 다니기로 결정했다.
승점 30점 내외에서 결정되는 강등권.
소튼은 본머스전의 승리로 승점 32점이 되어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의 경기도 꽤 남았으니 전패를 하지 않는다면 강등권 탈출이 확정이라 보도되고 있었다.
“나 행운의 사나이잖아. 감독님이 제일 좋아하는 선수. 존 에딩님 이시다.”
존은 가슴을 내밀며 호탕하게 웃었다.
“간신 같은 웃음가지고 호탕하게 웃는 척 좀 하지마. 나중에 레이 불러온다.”
“레이가 왜 와. 레딩갔잖아. 레딩에서 잘 먹고 잘 살라고 해.”
존은 뒷걸음을 치며 기겁했다.
인수가 소튼유스에 있을 무렵 최강자였던 레이는 특히 존에게 가장 강했다.
“집이 소튼이잖아. 매주 집에 오는데. 어제도 왔었어. 이번 시즌에 데뷔시켜 주지 않는다고 잔뜩 화가 나 있던데.”
레딩은 레이에게 당장이라도 FA슈퍼리그에 내놔도 경기당 한골은 넣을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부족한 체력이 문제였다.
여자축구리그도 체력 소모량이 엄청났다.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해왔다고는 하지만 정식으로 경기를 뛸 체력과 피지컬은 부족했다.
“아니 데뷔를 시켜주지 않으면 은퇴하라고 해. 은퇴 좋잖아. 은퇴하고 너하고 결혼하면 되겠네.”
존은 패닉상태가 되어버렸는지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었다.
“왜 한창 선수로 훈련하고 있는 애를 은퇴시켜. 그리고 왜 또 나하고 엮어.”
“그래서 둘이 결혼 안 해? 레이가 너한테 접근하는 여자애들 있으면 다 보고하라고 했는데. 그래서 콜이 몇 명 말하기도 했고.”
인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사물함에 편지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숫기 없고 어리바리한 크리스도 몇 번은 받아본 편지였지만 유독 인수만은 단 한통의 편지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오 하인스 결혼할 여자친구가 있는 거였어?”
“그래서 우리가 같이 펍에 가자고 해도 안 갔던 거구나.”
“야 하인스는 아직 꼬마야. 펍에가도 술도 못 마시는 나이라고.”
존의 목소리가 컸기에 주변에서 자율적으로 훈련하고 있던 동료들이 다가왔다.
“16살이 뭐가 애야. 난 15살 때부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맥주는 술이 아니라 음료수라고.”
“그나저나 벌써 결혼할 사람이 있다니. 벌써부터 왜 그런 막장으로 들어가려고 해.”
“결혼하지 마. 특히 어렸을 때는 결혼하는 거 아니랬어. 누가 그랬냐고? 내가.”
이미 결혼한 선수들은 모두 인수에게 귓속말을 하며 한마디씩 보탰다.
“아니라고요. 무슨 결혼이에요. 여자친구도 아니고요.”
인수는 황급히 손과 고개를 모두 저으며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와 강한 부정은 긍정 이랬는데 정말인가보네. 사진있으면 보여줘. 존 너도 아는 사이지?”
“아 몰라요. 존 너 나중에 봐. 레이랑 같이.”
인수는 선수들의 압박이 더 거세지자 자리를 피했다.
“저 녀석이 도망가네. 존 사진 봐.”
“아까 레딩 어쩌고 그랬는데 레딩에 있나보네.”
선수들은 인수가 자리를 피한 후에도 어쩔 줄 몰라 하는 존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
시즌 34라운드 토트넘전을 앞두고 소튼에 레전드가 방문했다.
토트넘에서 월드클래스를 입증하고 기량이 떨어질 때까지 토트넘에 남았던 한국의 레전드 소니가 소튼에 왔다.
이미 대한축구협회와 협의가 되었던 소튼은 스태플우드의 문을 열었고 소니는 한국의 대표팀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 소니는 따로 인수를 찾아왔다.
“안녕. 나 알려나?”
소니는 능숙한 영어로 인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TV에서만 보다가 처음 봐요.”
어린 시절 보던 TV속 레전드였다.
토트넘의 최선봉에서 누구보다 많이 뛰며 누구보다 많은 골을 넣은 선수였다.
“축구협회. 아 대한축구협회라고 해야겠구나. 너를 만나보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대단하던데.”
소니는 이미 은퇴하긴 했지만 토트넘의 앰버서더로 활동하는 만큼 토트넘의 경기는 모두 챙겨보고 있었고 프리미어리그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인수의 경기도 본 적이 있었다.
때때로 토트넘의 홈경기에는 직접 참석하여 자신을 기억해주고 있는 팬들과도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소니에게 대한축구협회에서 인수에게 한국국가대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인수가 뛰던 영상을 보며 자신이 16살 때 무엇을 했나 생각을 해봤었다.
함부르크 유스에서 1년간 유학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시기였다.
함부르크에서 인정을 받긴 했기도 했고 유럽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규정에 의해 눈물을 흘리며 한국으로 돌아갔었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재능을 뽐내며 유럽무대를 휩쓰는 선수들이 부러웠다.
“어렸을 때 토트넘 경기를 보면 항상 소니가 있었는데요. 항상 세인트를 짓밟긴 했지만요.”
소튼은 인수가 축구를 보기 시작한 후로 단 한 번도 토트넘을 이긴 적이 없었다.
물론 무승부도 많았지만 처참한 스코어도 많았었다.
“하하. 그래. 소튼이 아니라 세인트야?”
소니도 각 팀의 팬들이 자신의 팀을 부르는 명칭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당연히 세인트죠.”
인수는 소니 앞에서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상대가 아무리 토트넘의 레전드라고 하지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은 언제나 최고였다.
“그래.”
소니는 인수에게 대한축구협회의 이야기는 포기하고 자신의 이야기와 인수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기로 생각했다.
“내가 토트넘에서만 14년을 뛰었는데. 알아?”
인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소튼의 선수라면 알았지만 토트넘의 선수였던 소니가 뛰었던 기간을 몰랐다.
“한국에서 나를 무관의 제왕이라고 불렀어. 뭐 영국에서는 그냥 무관의 소닉이라고 했지만.소닉이라고 알아? 게임인데 매우 빠르게 달리는 케릭터인데.”
“아뇨. 게임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인수는 연이어 고개를 저었다.
“아. 그렇군. 내가 선수생활하면서 지금까지도 토트넘에서 은퇴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어. 그러나 아쉬운 점은 있는데 뭔지 알아?”
“아뇨.”
소니는 인수의 얼굴에서 눈을 떼어 공중을 쳐다보았다.
피파에서 주는 푸스카스상도 받아봤고 아시아최고선수상은 물론이고 프리미어의 최우수선수상도 받아보고 발롱도르 최종후보 3인에도 들어봤다.
그러나 무관이었다.
컵대회나 아시안게임을 제외한 리그컵, 챔피언스리그의 우승컵, 유로파의 우승컵, 아시아컵 등 굵직한 대회에서는 단 한 차례도 우승컵을 들어보지 못했다.
“우승컵에 단 한 번도 키스를 해 본적이 없어. 그게 제일 아쉬워.”
“아.”
“주변에 차선생님이나 박형이 우승컵을 자랑하는 거 보면 배알이 꼴릴 때가 있어. 물론 친해. 많이 친하지만 그래도 그런 감정이 들더라고.”
인수는 브리지가 자신의 경력 중 잊어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첼시에서의 리그 우승컵을 들었을 때라고 했었다.
그만큼 선수들에게 우승컵은 개인 성적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우승은 한 번 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축구는 개인경기가 아니라 팀경기잖아.”
인수가 고민에 빠지자 소니는 주제를 바꿨다.
“넌 게임도 안하고 뭐해? 난 내가 메인모델로 나온 축구게임은 다 하는데.”
세계적인 축구선수들만 할 수 있다는 축구게임의 메인 모델을 10년 가까이 했었다.
물론 다른 선수들과 함께였지만 자신이 제일 앞에 나온 타이틀도 있었다.
“전 바둑을 둬요. 그 외에는 축구?”
소니는 멍한 얼굴로 인수를 봤다.
“바둑 모르세요? 바둑은 한국이 제일 잘 두던데. 지금 세계랭킹도 한국선수가 1등하고 3등이고.”
“아 알지. 알아.”
소니가 기업의 행사에 가면 바둑기사들도 가끔 참석했다.
한국 대기업회장들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바둑기사를 후원하는 일이라고 했던가.
바둑을 직접 두는 회장들도 있었지만 고급지고 두뇌스포츠라 불리는 바둑을 후원하는 걸로 자신을 과시하는 회장들도 있었다.
“바둑은 잘 두나보네.”
“잘은 못해요. 어제도 9단에서 미끄러져서 8단으로 떨어졌거든요. 바둑사이트에서 저를 X밥이래요. 무슨 말인지 몰라서 한참 찾아봤지만.”
인수는 아직도 씩씩거리며 말했다.
어제 자신을 미끄러뜨린 상대는 마지막에 X밥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시 9단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판을 이겨야 했다.
“9단? 바둑에서 9단이면 가장 높은 단 아냐?”
소니는 행사장에서 만난 프로기사들이 모두 9단이라고 했던 걸 기억했다.
“아 프로들하고는 달라요. 인터넷사이트에서 9단이라고 해봐야 진짜 바둑프로기사들은 물론이고 연습생도 못 이겨요. 예전에 자신이 연구생이라고 하던 사람하고 둬봤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져 있더라고요. 연구생은 축구로 말하면 유스? 2군정도 되요.”
“아 그래? 바둑 프로기사들은 몇 번 만나봤는데.”
“정말요? 누구요? 누구 만나봤어요?”
인수는 소니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가까이 다가섰다.
소니는 행사에 가서 잠깐 인사를 하고 자신의 사인을 받아갔던 기사들의 이름을 생각해내고 말해주었다.
“아 나도 보고 싶다. 그런 기사들과 두면 어떤 기분일까?”
인수는 당연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겠지만 한 번쯤은 그런 기사들과 두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만나면 물어볼게. 축구를 좋아하는 기사들이 많아서 너를 아는 기사가 있을 수도 있겠네.”
“한국에 저를 아는 사람들이 있어요?”
“당연하지. 한국에도 프리미어리그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 빅6의 팬들이 많긴 하지만 다른 팀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던데. 분명 그 중에는 어. 어. 아 세인트의 팬도 있을 걸.”
소니가 찾아본 인수의 영상은 프리미어리그경기 외에도 인수가 12살 때 한 인터뷰를 한글자막까지 넣어서 만들어놓은 영상도 있었다.
자신이 소튼의 팬이라고 하면서 한국인 유망주가 소튼에서 뛰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아. 그렇구나. 저도 봐야겠어요.”
“그런데 한국어 알아? 그거 찾으려면 한국어로 찾아야 할 텐데.”
인수는 소니의 말에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이내 목소리를 낮추고 한국어로 속삭였다.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이야기 하려면 한국어로 해야 되잖아요. 물론 어려운 말이나 신조어? 줄임말? 이런 것들은 모르지만 읽고 쓰는 것은 가능해요. 에이전트가 협상하는데 불필요하다고 하지 말라고 했어요.”
“아 그래. 나도 아무 말 안할게. 내일 토트넘하고 경기지. 토트넘이 이기겠지만 너도 응원해줄게.”
“세인트가 이기도록 해야겠네요.”
“그래 열심히 해 봐. 그리고 가끔 연락하자.”
소니는 인수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