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01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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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봤어? 꼬맹이가 제법이지?”
대표팀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레이첼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방뛰며 경기를 보다 피곤했는지 사라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기에 어른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레이첼은 에디를 언제나 꼬맹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에디가 레이첼보다 컸지만 처음 만났을 때에는 에디가 레이첼보다 작았다.
에디의 키가 레이첼의 키를 역전했을 때에도 한번 꼬맹이는 영원한 꼬맹이라며 별명을 바꾸지 않았다.
“에디가 잘하잖아. 이미 경기에서도 많이 보여줬고.”
“그래도 삼사자에서 잘한거잖아. 꼬맹이가 너보다 더 비싸지는거 아닌가 몰라.”
레이첼은 말끝을 길게 늘어 빼며 톤이 올라갔다. 레이첼이 사람들을 놀릴 때 특유의 버릇이었다.
인수와 에디가 친하긴 하지만 인수는 에디보다 항상 한발 앞서 있었다.
주변의 평가도 그렇지만 인수나 에디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기분나빠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에디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자신보다 앞서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살짝 자존심은 상했기에 서둘러 주제를 바꿨다.
“넌 어때? 재미있어?”
브리지는 항상 레이첼이 남자였으면 어땠을까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물론 레이첼이 없는 곳에서. 스트라이커에게 가장 중요한 골냄새를 잘 맡았다.
분명 발기술도 별로고 드리블도 별로이지만 항상 골을 넣는 건 레이첼이었다.
마치 이탈리아의 레전드인 인자기처럼.
물론 키도 작고 점프력도 약해서 헤딩이 별로이고 오프사이드트랩에 잘 걸리는 등 완벽한 인자기는 아니었지만.
“재미? 그냥 그래. 소튼에서는 네가 내 발밑에 딱딱 가져다 줬는데 여기서는 패스가 안와. 오랜만에 똑바로 패스가 오면 너무 세거나 약해. 맘에 안들어.”
레이첼이 입을 삐쭉 내밀고 손가락으로 의미 없이 이곳저곳을 두드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부터 맘에 들지 않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네가 잘 받아먹어야지. 발밑에 가져다주면 누구나 다 먹지.”
인수 역시 말은 이렇게 했지만 레이첼의 능력은 인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패스를 주려고 하는 순간마다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선수는 레이첼이었기에 가장 많은 패스를 주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맘에 안드는 건 안드는거야.”
“하여튼 에릭에게 연락해 봐. 에릭이 너 어떻게 지내는지 나한테 물어보더라.”
“알았어.”
‘우리가 너무 공주로 키웠나.’
인수는 레이첼과의 통화를 끊으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일본과의 경기에서 최우수선수로 뽑힌 에디는 마지막 경기인 미국팀과의 경기에서도 선발출전을 했다.
머리 하나는 차이나는 선수들에게 몸싸움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잉글랜드팀이 넣은 2골에 모두 관여하면서 영국축구협회의 관계자들 머릿속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소튼 U-18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을 때쯤 인수가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비록 예정되어 있었던 U-18이 아닌 U-15의 훈련장이었지만.
“고생했어.”
“잘 돌아왔어. 이제 괜찮은거지?”
에디와 몇몇은 보이지 않았고 새로 콜업된 아이들도 보였지만 이미 몇 년간 보아왔던 선수들이었다.
“당연히 괜찮지. 이 굵어진 허벅지 봐.”
인수는 다리를 팡팡 치며 근육을 자랑했다.
입원하기 전에도 굵은 허벅지였지만 재활을 통해 더 튼튼해져 돌아왔다.
물론 소튼이 급하지 않게 복귀시킨 탓도 있었다.
“이번 시즌의 마지막훈련인 오늘은 제임스코치가 시키고 하인스 넌 따라와.”
인수가 동료들과 잡담을 하는 도중 랄라나와 코치진들이 훈련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수석코치에게 선수들을 맡긴 후 인수를 데리고 실내훈련장으로 들어왔다.
소튼의 실내훈련장에는 선수들의 기초체력을 측정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구가 마련되어 있었다.
“병원에서는 복귀준비가 다 됐다고 했고 메디컬테스트까지 끝났으니 이제 부상전하고 지금하고 차이를 검사할 거야. 여러 번 해봤으니 순서는 다 알겠지. 앞으로 20분 동안 몸을 풀고 측정하자.”
랄라나와 코치들이 훈련기구를 세팅하는 동안 인수는 빠르게 스트레칭을 통해 몸을 풀었다.
“준비됐지? 우선 30m와 50m 달리기부터 시작하자.”
랄라나가 지시하자 코치들이 100m트랙중 50m와 70m지점에 섰다.
삑.
짧은 휘슬과 함께 인수가 이를 악물고 순식간에 70m지점을 통과했다.
“30m기록 4.9, 50m기록 6.3초.”
달리기를 마치자 통제실에 대기하던 코치가 센서로 측정되는 기록을 발표했다.
“좋아. 다음은 좌전굴. 준비.”
인수는 랄라나의 휘슬에 몸을 가볍게 앞으로 굽혔다.
어렸을 적부터 제니퍼와 함께 훈련했던 동작이라 익숙했다.
“좌전굴 33cm.”
“다음 서전트 점프.”
“82cm”
“마지막으로 셔틀 런.”
이제까지 가볍게 임했던 인수가 크게 숨을 쉬면서 천천히 콘이 있는 자리에 섰다.
삑. 삑. 삑. 삑.
랄라나의 휘슬에 맞추어 달리기를 100여회가 넘어가자 인수의 호흡이 약간 거칠어졌다.
다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측정한 셔틀 런 기록은 135회였기에 아직 체력은 충분했다.
더욱이 재활을 통해 이전보다 좋아진 것을 느꼈기에 이를 악물었다.
“162회”
162회가 지나고 휘슬 안에 콘을 터치하지 못하자 인수는 바닥에 쓰러졌다.
“일어서서 숨 골라. 누워봐야 도움 안돼.”
인수는 코치들의 지적에 떨리는 다리를 붙잡고 서서히 일어나 크게 숨을 쉬었다.
근육들 사이로 산소가 들어가는 느낌이 들자 떨렸던 다리가 멈췄다.
“고생했어. 좌전굴을 제외한 모든 기록이 좋아졌네. 좌전굴이야 키가 더 컸으니 그만큼 줄어든 것이고 오늘은 이만 쉬어.”
기록측정이 끝나고 랄라나는 인수를 기숙사로 돌려보냈다.
“어때?”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바로 콜업해도 될 정도에요.”
“그렇지? 그래도 한 달은 여기서 훈련하고 다음 프리시즌에 콜업하자고.”
“그럼 헤드코치하고 같이 올라가는 건가요?”
랄라나는 이번 시즌이 끝난 후 보드진으로부터 U-18의 헤드코치직을 제의받았다.
소튼은 결국 미국의 사모펀드인 JK에 넘어갔고 보드진은 유소년 시스템에 손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처음 취임할 때부터 최소한의 투자 최대한의 이익실현이라 발표한 만큼 소튼의 관계자들은 바싹 긴장했다.
구단주의 이익실현은 한발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험이 높았다.
소튼이 리그1까지 떨어질 때가 바로 구단주의 실책이었던 만큼 선수들의 유출을 최대한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이런저런 이유로 선수의 유출이 시작됐다.
“그렇지. 이번에도 선수유출이 많았던 만큼 U-18에서도 많이 콜업되어 올라갈거야. 2군에서 올라갈 선수들이 없으면 우리까지 영향이 미치겠지. 작년처럼 말이야.”
랄라나는 작년 겨울 이적시장의 결과로 미친 소튼의 경기력을 말했다.
박싱데이가 끝나고 9위의 순위로 후반기 시즌을 돌입했다.
그러나 갑자기 주전선수 3명이 이적하는 바람에 유로파를 노리던 소튼은 13위로 시즌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보드진에서는 하이재킹만 아니었다면 10위권내도 가능하다고 평가했었지만 유로파를 나가거나 강등이 아닌 이상에야 순위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이미 페페가 우승을 하고 싶다며 이적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했죠. 프랑크와 보니의 에이전트도 움직이고 있다고 하구요.”
“그쪽 사정도 복잡하네. 감독도 새로 왔는데.”
“감독도 문제죠. JK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감독을 데려왔으니까요. MLS의 팀인 올랜도에서 감독을 했는데 그 팀도 JK소유잖아요. 있는 자원을 활용해서 잘 버틴다는 소문이에요.”
랄라나도 은퇴 직전 MLS에서 스카웃제의가 들어왔던지라 그 시스템을 잘 알았다.
메이저리그처럼 각 구단이 리그의 주주가 되어 있고 강등이 없는 대신 하부리그는 마이너리그처럼 취급되고 있었다.
선수가 다치면 마이너리그에서 메꾸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더군다나 강등 시스템이 없었기에 시즌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작년을 기준으로 프리미어리그 20개의 팀 중 12개의 팀이 대규모의 흑자운영을 했다.
이 중 유로파리그이상의 성적을 거둔 팀은 단 하나뿐이었다.
특히 사모펀드가 주주가 아닌 구단주가 되어 흑자를 기록한 팀은 모두 강등됐다.
선수를 유출한 만큼 영입을 해야 했지만 영입을 하지 않고 강등당하자 구단을 매각대상에 올려놓았다.
리그 사무국에서 제제할 방법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는 평이 많았다.
“2004/05년 시즌이 생각난다는 팬들이 많아요.”
“제길.”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빅6의 우승경쟁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그로인해 분명 프리미어리그의 전체적인 파이가 커졌다.
유럽 4대리그가 유명하다고 하지만 리그 수익을 비교하면 제일 많은 수익을 올리는 리그가 됐다.
그런 리그이기에 사모펀드들이 욕심을 내는 시기도 이 시기였다.
“이번 시즌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 같아. 제임스한테 미안해지네.”
랄라나가 U-18 헤드코치로 이동하면서 수석코치였던 제임스가 승진했다.
“제임스가 이제 이곳의 주인이 될테니 우리는 자리를 비켜주자고. 한 달 후에 소집할테니 그때까지 푹 쉬어둬.”
2035-36시즌의 시작은 8월 15일에 시작했고 그에 맞춰 유스들의 일정도 시작했다.
U15의 대회는 지역별로 치러지지만 U-18부터는 전국대회로 치러졌다.
그만큼 이동거리가 길고 챙겨야할 일이 많았다. 더군다나
첫 경기로 잡힌 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랄라나가 뛰었던 리버풀의 라이벌팀.
이미 은퇴한 이후이기에 별다른 감정이 없을 줄 알았지만 맨체스터에 가는 순간 자연스럽게 심장이 뜨거워졌다.
“첫 경기인만큼 이기고 싶네. 너희들은 어때?”
랄라나는 락커룸에 선수들을 모으고 조용하지만 강하게 물었다.
“당연히 이기고 싶죠.”
“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수들을 둘러보던 랄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최선을 다하면 이기겠지. 승리하고 돌아오는 너희를 기다리지.”
이미 모든 작전지시를 마쳤기에 랄라나는 벤치로 먼저 나섰다.
“자 우리도 나가자.”
인수는 오랜만에 주장완장을 차고 밖으로 나섰다.
“나 오랜만에 경기인거 알지. 지기 싫어. 다들 죽어라고 뛰어 내가 다 패스해줄테니.”
“한 번 더 들으면 귀에서 피나겠어. 공이나 잘 줘. 내가 다 넣어줄게.”
“네가 공만 잘 줘봐. 그럼 우리가 이길테니.”
선수들은 한소리를 더 붙인 인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이는 어렸지만 자신들을 든든히 지켜줄 캡틴이었다.
“오늘 느낌이 좋은데.”
동전던지기에서 이긴 인수는 선공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나선 경기에서 동전던지기에서 이긴 날 진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비도 오지 않았고 온도도 17도 정도로 경기하기 좋은 날씨였다.
“왜 오늘 나한테 정확히 패스해 줄 수 있겠어?”
이번에 같이 콜업된 존이 센터서클에 서서 주심의 휘슬을 기다리다 인수의 말에 반응했다.
“그건 당연하고. 왠지 느낌이 좋아.”
인수는 존에게 씩 웃어주고 맨유의 수비진영을 살폈다.
시즌 첫 경기에다 아직 시작을 하지 않아서 인지 어수선한 모습이 보였다.
그냥 치고 달려도 왠지 뚫을 수 있을 듯 한 느낌.
삐익.
주심이 휘슬을 불자 존은 인수에게 패스해 경기가 시작됐다.
존의 패스를 받은 인수는 그대로 공을 달고 맨유의 진영으로 뛰어 들어갔다.
“막아. 다들 뭐해.”
인수가 뛰어 들어오자 맨유의 수비진들은 그때서 집중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인수는 맨유진영의 절반까지 돌파한 후였다.
‘될 거 같아.’
인수는 아직 정돈되지 않는 수비들 틈으로 골대가 보이는 것을 보고 오른발을 강력하게 휘둘렀다.
텅.
강하게 쏘아진 공은 골포스트 윗부분을 맞고 높이 떠 관중석으로 사라졌다.
전설이 될 33/34시즌의 첫 경기 첫 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