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00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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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에 인수와 아이들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기다리자.”
“수업은 다 같이 끝났는데 크리스만 항상 늦는 거야.”
U-12클래스에 들어온지도 어느 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U-8에서 같이 놀았던 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역 유소년 클럽에서 선발 된 아이들도 3명이나 있고 다른 지역에서 온 아이들도 2명이나 됐지만 리더는 언제나 인수였다.
그 중에서도 크리스 블럼이란 아이는 에딘버러의 유소년 클럽에서 선발된 아이였다.
“소튼의 생활이 아직 낮선 탓이겠지. 크리스가 없으면 버스도 출발하지 않는데 같이 가는 것이 좋잖아.”
“췌.”
“넌 그 성격 좀 고쳐. 팀 메이트잖아.”
브리지는 기본기훈련을 시키며 에디가 부족했던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했다.
스쿨과 연계해 발표력을 키우고 인수 대신 아이들을 이끄는 경험도 시켜주는 등 많은 노력을 통해 성격을 바꿔나갔다.
그런 노력의 성과였는지 인수의 그룹에서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실력이 부족했으면 모르지만 스피드면에서는 U-12에서도 최고였다.
“윌리엄. 크리스도 왔는데 가자.”
U-12의 리더가 인수라면 기강은 에드워드가 잡았고, 다른 아이들을 다독이는 건 홍일점인 레이첼의 몫이었다.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는 듯 자기 고집만 피우던 모습은 사라졌다.
실력도 많이 늘어 12살에 나이에 이미 소튼 위민에서 눈독을 들이는 중이었다.
킹 에드워드Ⅵ스쿨과 연계해 소튼 유스팀에 등록되어 있는 학생의 수는 백여 명이나 됐다.
초기에는 소튼 각 사립학교중에 원하는 곳에 진학을 시켰지만 십여년 전부터는 원활한 학사관리와 훈련을 위해 킹 에드워드Ⅵ스쿨로 진학시켰다.
소튼의 많은 사립학교중에서도 명문인 학교였기에 학부모들도 불만은 없었고 다른 곳을 원하는 아이들은 소튼 유스에 선발되지 못했다.
물론 초기에는 강압적인 진학이라며 고소가 들어온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 문제였다.
***
U-8의 훈련장보다 배는 넓어진 U-12의 훈련장.
소튼에서는 U-12, 13, 14가 함께 훈련을 하고 U-15, 16, 17이 함께 훈련을 했다.
영국의 법률상 16세가 되어야 프로계약이 가능했기에 U-16부터는 정식으로 계약을 하고 상위 리그나 임대를 보내 프로 경험을 쌓아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소튼의 유스 훈련은 리더를 정하고 그 리더의 주도로 스트레칭으로 시작된다.
그 리더는 선수들과 코치들의 합의로 결정되며 반발하는 선수가 나오면 다시 합의를 해 뽑는 시스템으로 선발된다.
그 과정을 통해 선수들 주도적으로 훈련에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앞으로 필드에서 경험해야 할 것들을 미리 알려주었다.
“모이자.”
U-8에서부터 압도적인 지지로 리더가 된 인수는 옷을 갈아입고 나온 아이들을 중앙으로 불렀다.
“스트레칭부터 시작하자.”
인수는 아이들을 둥글게 모으고 짐볼과 하프짐볼을 나눠주었다.
제니퍼와 브리지가 만든 스트레칭으로 짐볼을 이용해 균형감과 유연성을 함께 잡아주는 운동법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유연성이 떨어지던 인수와 균형감이 떨어지는 레이첼이 놀라운 성장을 보였기에 U-8의 책임자였던 트레비가 도입시킨 훈련법이었다.
아직 확실한 성과가 나타난 것이 아니기에 전 연령으로 도입되지는 않았지만.
“자 공 받아.”
인수는 자연스럽게 테니스공을 두 개씩 나눠줬다.
그리고 이어지는 라이프 키네틱 훈련.
인수는 하프짐볼에 발을 번갈이 얹으며 손을 교차해가며 테니스공을 잡았다.
독일에서 시작된 훈련이지만 이제는 유스부터 국가대표까지 기본 훈련이었다.
“자 다음은 꼬리잡기.”
“크리스, 윌리엄.”
“빌리, 에드워드.”
“레이첼. 로아.”
인수는 빠르게 짝을 지어주었다.
스트레칭과 라이프 키네틱으로 몸이 충분히 풀리면 매일 다른 파트너와 1:1 꼬리잡기를 진행했다.
일반적인 꼬리잡기와는 달리 도망치는 사람은 테니스공을 드리블하며 도망가야했고 잡는 사람은 어깨를 터치해도 몸싸움을 통해 공을 뺏어야 했다.
공을 뺏기면 다시 두 사람의 역할이 바꿨다.
몸싸움이 많은 프리미어리그인 만큼 어렸을 때부터 몸싸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훈련이었다.
“한 발 더 나가자. 로아 멈추지마. 걷기라도 해. 헉,”
인수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팀원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러면서도 발을 움직여 파트너를 쫒는걸 멈추지 않았다.
꼬리잡기는 U-12의 경기시간인 20분이 지나면 코치의 호루라기와 함께 멈췄다.
그 전에 체력이 다 해 뛰어다니지 못하더라도 멈추는 일 없이 걸어서라도 20분을 채워야 하는 훈련이었기에 선수들은 가쁜 숨을 내쉬며 다시 중앙으로 모였다.
“헉, 발목돌리기. 헉. 숨은 크게 쉬고.”
인수의 구령에 아이들은 모두 발목을 돌리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꼬리잡기 특성상 급격한 방향전환과 몸싸움으로 인한 충격이 큰 훈련이었다.
그렇기에 훈련 후 스트레칭은 필수였고 코치들은 크게 개입하지 않은 채 훈련을 도왔다.
“이제 패스 훈련.”
테니스공을 이용한 패스 훈련. 패스를 받아 오른쪽 왼쪽 드리블 후 오른발 패스, 다시 패스를 받으면 왼쪽 오른쪽 드리블 후 왼발 패스를 하며 거리를 점점 벌렸다.
그리고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다시 거리를 좁히다가 다시 벌어지는 훈련이었다.
U-15까지의 훈련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 이후 훈련시간은 자유지만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지라 기숙사로 돌아가는 시간도 정해져있었고 과제도 모두 끝마쳐야 했었다.
“다치거나 몸이 아픈 사람 있어?”
아무 대답이 없자 인수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아서 개인 훈련 할 사람?”
“나.”
“저요. 저요.”
“당연히 해야지.”
다시 한 번 인수가 묻자 13명의 선수들이 손을 들었다.
성격에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축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아이들.
더군다나 5명은 U-8이 아닌 중간에 선발 되었기에 더 적극적이었다.
“알았어. 그럼 코치님께 보고할게. 오늘은 윌리엄이 임시 주장을 하자,”
인수는 팔에 차고 있던 완장을 윌리엄에게 넘겼다.
소튼 유스에서는 훈련시에도 주장의 역할을 정해 선수들간의 자율적인 활동을 권장했다.
“크리스는 골키퍼 연습?”
“응.”
크리스는 처음 선발될 때부터 골키퍼로 선발 된 경우였다.
현대 축구의 흐름상 골키퍼는 11번째 수비수이자 11번째 공격수였기에 기본기 훈련을 받고 따로 골키퍼 훈련을 받았다.
아무리 11번째 공격수라고 해도 중앙선까지 공을 몰고 가는 선수는 없었지만.
모든 훈련이 끝나면 추가 훈련을 도와주는 코치를 제외하고 나머지 코치들과 주장이 모여 회의를 진행한다.
이 회의에서 주장이 하는 일은 학교생활과 아이들의 건강과 심리상태, 훈련 중 개선점, 건의사항을 보고하고 코치들은 훈련 중에 리더로서 부족했던 점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지금까지 누누이 말했지만 리더는 명령하는 자리가 아니야. 시합 중에는 간결하게 말해도 연습 중에는 같이 움직이자고 하는 선도력이 필요해. 그런 면에서 넌 훌륭한 리더가 되고 있다고 생각해.”
“오늘 꼬리잡기 훈련에서 빠르게 조를 선택하는 것은 좋았어. 빠른 결정과 그 결정이 최선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리더야.”
“항상 네가 그랬듯 남들보다 한발 더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 리더야. 추가 훈련 때 임시 주장을 정하고 주장이 역할을 정확히 전달해야 해.”
“아, 그리고 다음 주에 소튼 TV에서 인터뷰를 한다고 해. 대상은 너이고.”
“소튼 TV의 인터뷰요?”
소튼의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채널이 소튼 TV였다.
시청 대상은 모두 소튼의 팬이었고 출연진도 모두 소튼의 선수들이었다.
1군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이적하는 선수나 유스들의 작별인사, 유스들의 인터뷰와 훈련 모습을 공개하는 채널이었다.
인수도 훈련 모습을 공개하며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싫으면 거절해. 윌리엄에게 시켜도 되고, 에드워드에게 시켜도 되니까.”
코치는 관종기가 있는 하인스에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싫기는요. 해요. 내가 해요.”
30분 동안 코치들의 이야기를 수첩에 적은 코치들이 다른 소리를 할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코치들과 나눈 대화를 적은 수첩은 이미 빽빽이 적혀 있었다.
“웨인, 코치들이 주장의 역할이라며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너무 많아요.”
처음 U-12의 주장이 되고 훈련 후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브리지에게 투덜댔다.
그 전까지는 완장을 차고 있어도 특별한 주문이 없었기에 처음 느끼는 어려움이었다.
“나도 주장을 달아본 적이 없지만 제라드는 항상 완장이 무겁다는 이야기를 했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고. 네가 어렵다면 수첩에 적어.”
“수첩에요?”
“응. 나도 주장을 달아본 적은 없지만 수첩에 기록을 하면 듣기만 했을 때와는 다르게 생각을 정리 할 수 있데. 다시 한 번 읽어볼 수도 있고.”
인수는 수첩을 들고 회의에 참석해 코치들의 말을 모두 적었다.
코치들도 인수의 행동을 보고 천천히 말을 해 주었다.
코치들의 말은 축구 용어도 많았지만 아직 모르는 단어도 있었기에 학교에 가면 작문선생에게 수첩을 보여주며 틀린 단어를 바로 잡았다.
작문선생은 인수가 적은 수첩을 보며 구어로 된 문장을 정확히 바로 잡아주기까지 했다.
***
“하인스. 오늘 인터뷰가 있으니까 좀 꾸며야지.”
레이첼은 자신이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부산을 떨며 하인스의 옷과 머리를 매만졌다.
다른 또래와는 달리 운동을 해 온 레이첼이었지만 외모에도 관심이 많았다.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헤어젤로 인수의 머리를 만지고 구겨진 유니폼을 바로 폈다.
“그만해. 젤이 얼굴에 묻잖아.”
인수는 소심한 반항을 해봤지만 레이첼은 굴하지 않고 다른 아이들까지 불러 인수를 눌러 앉혔다.
하인스의 천적, 킹슬레이어, 은발마녀 등 외모와 어울리지 않지만 인수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또래였다.
“가만히 있어. 누나 말 잘 들어야지.”
“내가 생일이 더 빠르거든.”
인수는 5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눌리면서도 빽 소리쳤다.
“제니가 나보고 너 잘 돌봐주라고 했어. 그러니까 내가 누나지."
레이첼은 다시 헤어젤을 손에 잔뜩 묻히고 다가왔다.
“그러니까 언제 엄마가 너에게 그랬는데.”
“너 없을 때. 가만히 있어. 네가 움직이니까 젤이 얼굴에 묻잖아.”
레이첼은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인수의 머리를 만졌다.
헤어젤을 얼마나 발랐는지 어두운 곳에서도 끈적이며 반짝이는 머리카락이 보일정도로.
“손대면 너 죽어.”
“알았어. 이 마녀야.”
레이첼은 인수의 다짐을 받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
인터뷰장에서 다들 인수의 머리를 보며 깔깔대며 웃었지만 레이첼의 뒤끝이 무서워 그대로 진행했다.
한 번 삐지면 자신의 부모님과 에디의 부모님 그리고 레이첼의 엄마에게 있는 말 없는 말을 해댔다.
거기에 자신이 뭐라고 하면 눈을 흘기며 무시하고 자신의 화가 다 풀릴 때까지 말도 걸지 않았다.
“좋아. 하인스. 이거 편집해서 일주일 뒤에 홈페이지에 공개할꺼야. 하고 싶은 말 있어?”
소튼 TV의 인터뷰어는 질문지들을 접으며 물었다.
“제발 이 머리 제 의지가 아니라는 것만 밝혀주세요. 그 뿐이에요.”
1시간이 넘게 진행된 인터뷰를 마친 후 다시 깔깔대는 스테프를 뒤로한 채 샤워실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