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00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처음 만났을 때는 몰랐지만 같은 나이였던 인수와 에디는 눈을 뜨면 서로의 집을 오가며 공을 가지고 놀았다.
서로의 부모가 같은 세인트의 팬-남들의 눈에는 세인트 훌리건-으로 가장 큰 공통점이 있었기에 쉽게 친해졌다.
매일 같이 서로 집 마당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을 위해 두 집은 울타리를 제거하고 잔디를 깔았다.
더 넓어진 잔디밭 끝에서 끝까지 공을 차며 두 아이는 하루 종일 뒹굴며 놀았다.
인수와 에디가 한참 마당에서 놀고 있을 무렵 에디의 집에서는 어른들의 대화가 시작됐다.
“학교에서 잘 할 수 있을까?”
성격이 무난한 인수는 외모는 제니퍼를 닮았지만 검은머리를 가졌고 에디는 소심한 편이었기에 어린 나이에 상처를 받을까 리셉션과정은 보내지 않았었다.
차별이 많이 사라졌다지만 아직도 인종차별은 영국 내 큰 이슈 중에 하나였다.
“하인스와 에디가 같이 있으니까. 학교도 가까이 있잖아.”
제니퍼는 자신이 나온 킹에드워드Ⅵ스쿨이 연계된 초등학교가 가까이 있어 에디의 엄마인 에린과 상의해 진학을 결정했다.
에린 역시 항상 붙어 있는 두 아이를 같은 학교에 보내는 것에 찬성했다.
더욱이 애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발로 뛰며 학교를 알아봐준 제니퍼에게 감사한 마음도 있었다.
“이제 아이들이 좋아하는 세인트의 유니폼은 입지 못하겠네.”
각 사립학교는 자신들만의 교복을 착용해야 했기에 날마다 입혔던 세인트의 유니폼은 학교에 있을 때에는 입히지 못한 점이 유일한 불만이었다.
***************************************
패드릭스쿨의 존은 자신이 맡고 있는 반의 애들이 노는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이 입학한지 한 달이 됐으니 16명의 아이들이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아니 크게 3개의 그룹으로 형성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4개의 그룹으로 그것도 10명의 아이들이 하나의 그룹, 3명의 아이들이 하나의 그룹, 2명, 1명으로 이루어지는 그룹은 교사 역사상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물론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남들보다는 큰 체격에 나이에 비해 활동성이 좋은 아이가 리더가 되리라는 예측은 했다.
자신이 던져준 공 하나에 9명의 아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 그룹의 중심이 되는 아이는 인수 하.
다들 부르는 이름으로는 하인스였다.
보통 반이 이루어지면 여자들만의 그룹이 만들어지기 마련이었다.
레이첼 베일리.
통칭 레이의 그룹.
레이 역시 하인스 못지않은 활동성을 지녔지만 이미 뺏겨버린 아이들을 찾아오는 것은 어려워보였다.
그리고 입학 첫날부터 하인스에게 챙이라 부르며 자연스럽게 떨어져나간 릭 스미스.
옆집에 산다는 아이와 함께 무리에서 떨어져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린 치기에 사과도 안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나머지는 에릭 베이스.
이 녀석은 도무지 자신도 알 수 없는 아이였다.
무엇을 하든 기본 이상은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
부모와 이야기를 해봐도 집에서도 마찬가지라는 대답뿐이기에 더 지켜봐야 했다.
존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시간을 가지고 어울리는 놀이를 제안하는 것뿐이었다.
***
시간이 흐르고 존은 이제 아이들이 하나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기를 통해 알았다.
- 오늘은 하인스의 집에서 공을 가지고 뛰었다. 에디의 엄마가 칩앤피쉬를 줬다. 맛있었다.
- 오늘 공놀이는 재미있었다. 그리고 간식은 더 맛있었다.
- 비가 와서 뛰어놀지 못했다. 비는 나쁘다.
- 에디의 집에는 세인트 기념품이 짱 많다. 또 놀러가야지.
- 언제나 제니는 스트레칭이란 걸 시킨다. 재미없다.
- 오늘 하인스와 에디의 집에 가니 골대가 생겼다. 이제 골대에 골을 집어넣을 수 있다.
- 레이는 오늘도 골을 넣었다. 혼자 넣었다. 나도 넣고 싶다.
존은 아이들이 말하는 제니가 기계체조 선수였던 제니퍼 화이트인 것을 알고 아이들의 부모님께 미리 알렸다.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이 안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알리는 것도 존의 역할이었다.
아이들은 한학기가 지나기도 전에 모두 친해졌다.
또래에 비해 큰 인수가 자신과 친한 아이와 친하지 않는 아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집으로 끌고 다녔다.
어느새 같이 놀게 됐는지 모를 릭과 레이, 에릭까지 말이다.
날마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덕에 인수와 에디의 집은 동네의 명물로 꼽혔다.
재일이나 폴과 같이 성공한 젊은 사업가도 살았지만 은퇴한 자산가들이 많이 살던 동네였기에 간식을 들고 아이들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중에는 아이들을 모두 사립기숙사로 보내고 아내도 연예계생활로 바빠 혼자 은퇴생활을 즐기던 브리지도 있었다.
존 테리와의 악연 덕에 급격히 폼이 떨어졌지만 사우스햄튼 출신의 레전드였다.
번거로운 외지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편히 지내고는 있었지만 바쁜 아내와는 달리 자신은 빈둥대는 백수일 뿐이었다.
이 지역 출신인데다 자신의 스토리를 모두 알고 있던 지역 주민들이 배려해준 덕에 편하게 산책을 즐기던 브리지였다.
은퇴를 하면 축구에 관한 활동은 전혀 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어린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은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공 하나만 보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아이들이었지만 특출할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검은 머리칼을 가진 아이와 작은 키였지만 순간스피드와 지속력까지 좋은 아이, 그리고 여자 아이였지만 공을 때릴 줄 아는 아이까지 가끔 친구를 만나러 가서 보는 세인트 유스의 애들보다 좋아보였다.
물론 8살짜리 애들하고 경쟁시키면 나가떨어지겠지만.
****
인수와 에디, 레이첼이 모두 6살이 되자 다른 아이들과는 같이 놀지 못할 만큼 차이가 벌어지게 됐다.
멀리 떨어져있는 공에 제일 먼저 뛰는 에디, 그리고 공을 간직할 수 있는 능력과 패스가 가능했던 인수, 그 공을 마무리 할 수 있는 레이가 있었기에 다른 아이들은 공놀이에 흥미를 잃었다.
많은 아이들이 뛰어놀던 마당에는 세 아이만이 뛰어다니는 공간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때 마당을 밟은 이가 브리지였다.
“안녕하세요.”
브리지는 산책을 하다 자주 보던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있는 곳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마당을 헤집던 많은 아이들이 사라지고 세 아이만 꾸준히 남았기에 부담감을 이겨내고 접근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호기심도 있었다.
“어서오세요. 브리지씨.”
제니퍼와 에린은 세인트의 팬답게 브리지를 반갑게 맞이했다.
평소에도 자신의 마당을 내다보던 브리지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가 겪은 일을 알고 있었기에 모른 척 하던 둘이었기에 브리지의 방문을 환영했다.
“세인트의 유스 출신이라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소튼의 유스는 소튼을 배신하지 않죠.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리지는 반갑게 맞이해주는 두 사람을 보며 마지막 남은 부담감까지 떨쳐내고 악수를 건넸다.
“항상 이곳을 지켜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일로?”
브리지가 산책을 하다 아이들이 뛰는 것을 한참 보고 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지만.
“혹시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브리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신은 올리버 베터리라는 작은 팀에서 기본을 배웠는데 처음부터 소튼의 유스로 배웠으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올리버에서의 가르침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소튼의 유스는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그 훈련 시스템은 프리미어리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아이들의 미래는 아이들이 정하는 것이죠.”
단호한 제니퍼의 말에 브리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8살이 되면 세인트의 스쿨에 보내긴 할 거에요.”
이어지는 에린의 말에 브리지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다면 8살이 되기 전까지 제가 아이들을 지켜봐도 될까요?.”
브리지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생각하는 교육 과정을 설명했다.
공과 친해지는 법, 다치지 않게 노는 법, 자연스럽게 체력을 기르는 법, 유연성 훈련, 밸런 스훈련 등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기본기를 강조하는 교육을 강조했다.
“축구선수로 만들기 위해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물론 재능이 있어요. 그렇지만 아이들이 원하지 않으면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브리지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전했다.
이미 소튼 유스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조언까지 받았다.
“아이들 아빠와도 의논해 보고 알려드릴게요.”
제니퍼와 에린은 당장이라도 허락하고 싶었지만 애들의 의견도 중요했고 재일과 폴의 의견도 들어봐야 했다.
물론 그 둘도 브리지가 같이 놀아준다고 하면 찬성할 것이 분명했지만.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브리지는 정중히 자신의 연락처를 남기고 떠났다.
****
“정말이야?”
그날 밤 폴의 집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재일, 제니퍼, 폴, 에린, 레이첼의 어머니인 제시와 제임스, 로라는 물론이고 폴의 부모와 에린의 부모, 레이의 어머니까지 모두 모였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세인트의 팬이라는 점이었다.
“정말이지. 오늘 브리지가 마당을 가로지르는데 예전 포스 그대로더라고. 새로운 생활이 즐겁다고 했는데 정말인가 봐.”
“브리지가 직접 찾아왔는데 우리 아이들이 축구에 재능이 있다는 걸까?”
“아니 재능이 있으니까 브리지가 왔겠지. 세인트에서 유스 훈련을 받은 브리지라고. 거기에 첼시와 시티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국가대표로 삼사자마크까지 달았었다고.”
“브리지도 15살 때부터 세인트에 들어왔잖아. 그 전에는 다른 곳이지 않았어?”
“그래도 세인트에 많은 돈을 남겨준 선수잖아.”
소튼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대표적인 셀링클럽 중 하나였다.
유스에서 선수를 키워 이적료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리그에서 싼값에 선수를 사와 프리미어리그에 적응을 시킨 후 다른 팀에 비싸게 팔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선수를 키우는 능력만은 알아주는 팀이었다.
“물론 그가 아이들을 보는 눈이 없다고 하는 건 아냐. 그래도 축구선수라니. 생각해본 적이 없는걸.”
많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고 시간은 이미 저녁식사시간을 훌쩍 넘겼다.
“어차피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음식이 준비됐으니 테라스로 나가시죠.”
아이들과 아이들의 부모들이 방문하는 일이 많았던 집인지라 인수와 에디의 집 사이에는 넓은 테라스가 있었기에 폴은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했다.
사람들을 부를 때 미리 저녁을 준비한다고 했으니 다들 배고플 터였다.
“맛있어요. 이게 햄프턴베이에서도 가장 잘 나간다는 폴&에린의 시푸드군요.”
레이가 어릴 적 이혼하여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라였다.
잘나가는 변호사였지만 항상 바쁜 탓에 아직 가보지 못했던 가게의 대표 음식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많이 드세요. 음식은 많이 있으니까요.”
폴의 큰 손 덕에 주방에서는 꾸준하게 음식이 배달되어 왔고 충분히 배부른 후에 다시 아이들의 이야기가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