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72화 (272/280)

러스트 [RUST]-272

인공위성이 찍은 사진에는 흐릿한 검은 구름처럼 보이는 게 있었다.

한 블록도 아니고 여러 블록을 뒤덮을 엄청난 영역을 뒤덮은 것들. 이게 전부 새라고? 그 동네에 새가 이렇게 많았어?

덴 브라운 과장은 쿡 찌르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기억났다.

블라디마루가 새떼를 마주했던 일. 변종 새를 쫓아내고 다양한 샘플을 보내왔던 일이었다.

“후- 헬기로 가는 건 힘들겠군.”

“헬기를 하나 보냈지만, 소식이 끊겼습니다.”

핵이 터진 뒤, EMP에 나가지 않은 헬기는 정말 귀한 몸이 됐다. 그런 소중한 헬기가 생으로 날아갔다.

“저게 전부 새라면 몇 마리나 되겠나?”

“인공지능이 슈퍼컴퓨터로 계측한 결과, 최소 100만 마리 이상이라고 합니다.”

“변이를 일으킨 새가 100만이 넘는다고?”

“디트로이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쪽도 그렇습니다.”

텍사스에서는 거대한 멧돼지들이 수천 단위로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인공위성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폐허가 됐다.

“제일 큰놈은 크기가 주력전차와 비슷할 정도입니다.”

“멧돼지가 전장 8m짜리 전차에 육박해? 허- 영화도 아니고 정말···.”

인공위성이 촬영한 영상에 찍힌 초대형 멧돼지, 크기만 문제가 아니었다.

“텍사스 주 방위대에서 놈들을 사냥하기 위해 12.7mm로 쐈지만 소용없었다고 합니다.”

“40mm 이상으로 쏴야 한다는 말이군. 사실상 장갑차라고 보는 게 맞고.”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생체장갑차가 수천씩 몰려다닌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치명적인 문제는 단절됐다는 것. 미국은 큰 나라였다. 큰 나라를 연결해주는 핏줄, 신경망이 도로, 철도, 통신, 인터넷 같은 인프라였다.

그런데 변이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이런 것들이 위태롭게 변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유통망, 연결망이 핵이 터지면서 완전히 끊기게 됐다. 연방정부의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연방정부의 가장 큰 힘인 연방군이 중국 공력에 총력을 기울이는 지금, 분리주의자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텍사스였다.

텍사스 기갑 연대와 텍사스 주 방위군이 서부지역에서 전멸한 뒤, 텍사스 주 정부와 의회가 하나로 합심해, 연방정부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연방정부가 고의적으로 텍사스의 힘을 빼려고 했다.’

‘변이 괴수들이 몰려다니는데 중국을 응징하겠다고 병력과 물자를 모조리 징발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솔직히, 힘을 빼려는 의도가 없는 건 아니었다. 변이 바이러스 사태 이후, 텍사스에서 분리움직임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일부러 병사들이 죽도록 한 건 아니었다. 중국의 핵이 도시가 아닌, 공터에 떨어질 것이라고 누가 예측했겠는가?

하지만 텍사스 의회와 주 정부는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연방정부와의 대화를 거절했다. 텍사스를 중심으로 몇 개의 주들이 뭉쳐 탈퇴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고, 연방정부는 국토안보국과 버지니아에게 분열주의자들을 조용히 은퇴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 국난의 위기 속에서 분열을 획책하다니, 놈들의 배후에 중국과 일본 자금이 들어갔다는 정황이 있어. 법정으로 갈 상황이 아닌 만큼, 조용히. 빠르게. 쉬게 하게. 일가친척 전부.’

중국과 전쟁 중에 분열을 획책하다니, 미합중국 연방정부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버지니아에서 3팀을 보냈다고 합니다.’

‘우리와 버지니아에서 작업 보낸 팀들 전부 연락이 끊겼습니다.’

텍사스 의회와 주 정부를 정리하기 위해 작업에 들어간 버지니아 요원들과 국토안보국 요원들이 실종됐다. 말 그대로 실종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버지니아는 없는 인적자원을 긁어서 다시 작업을 보냈지만 역시 또 실종. 이쪽으로는 악명 높은 버지니아가 2연속으로 실패의 고배를 마시자,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과장은 그저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런 임무에는 블라디마루 칼린이 적격입니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블라디마루 칼린이 임무에 투입됐을 때 성공확률은 99% 이상이었으니까.

지금 당장 필요한데 연락이 끊겼다. 통신 불가능했고, 직접 소식을 전달할 수도 없는 상황.

“핵폭발 여파가 심각합니다.”

“사상자가 예상보다 적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문제입니다.”

“후- 정확하게 어떤 부분에서?”

“변이 바이러스 사태로 물류 적체가 심했습니다.”

“서부지역 EMP 테러까지 겹치면서 사실상 서부에서 중부, 동부로 갈 물동량이 전부 멈췄습니다.”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서부 3대 항만이 날아간 격. 들여오는 물량과 수출하기 위해 쌓아 놓은 물량이 가득했다.

“이런 상황에서 핵이 터지는 바람에, 수출과 수입하기 위해 쌓아둔 식자재들이 방사능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입이라도 줄었으면 모를까 민간인 피해가 생각보다 적은 상황이다 보니, 입은 그대로인데 식자재가 방사능에 오염된 상황.

그나마 통조림이나 병조림으로 가공한 식품은 조금 괜찮겠지만, 곡물, 제분한 것들은 위험했다.

“지금 당장도 그렇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농기계 부품 수급과 수리에 몇 년이 걸릴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기계화 농업. 사실상 미국의 농사는 농기계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게 핵폭발로 발생한 EMP로 날아갔다.

“그러니까 수출, 수입하려고 쌓아둔 농산물은 폐기해야 하고. 농기계가 대량으로 고장 나, 식량 수급에 문제가 생길 거다?”

“그렇습니다. 이제 5월입니다.”

4월 말에서 5월이면 한창 밀과 쌀, 콩, 옥수수를 파종할 시기였다. 근데 끝장나버렸다. 그렇다면 내년은? 내년에는 회복할 수 있을까?

“······.”

“빌어먹을. 내년도 장담할 수 없겠군.”

미국에서 생기는 음식물 찌꺼기만으로도 굶는 나라 한둘은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풍족했던 미국이 굶주리게 생겼다. 싸구려 농담도 아니고.

“우선 전국의 식량 재고부터 파악한다. 방사능에 안전한 재고.”

“농기계 부품 수급, 수리 쪽에 애들 보내. 그쪽 관련자들 섭외하고.”

“분리주의자들은···. 일단 위치만 파악하고 건드리지 말라고 해. 우리는 당분간 감시만 한다. 나머지는 버지니아에서 알아서 하겠지.”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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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은 성벽에 올라 사주경계를 시작했다.

핵이 떨어지고 3주가 지났다. 길고도 짧은 3주가 지나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블라디 아크 타워에 모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게 됐다는 것.

사람들에게 변이 바이러스가 퍼졌다. 소리를 질러대며 시위하던 자들 대부분이 감염됐으니, 이젠 민간인 취급하지 않아도 됐다.

‘그냥 감염자들이니까.’

2주차쯤이 제일 짜증 났었다. 현수막과 푯말 들고 시위하던 자들이 열흘 넘게 무대응 했더니, 갑자기 공격하기 시작했다.

자기들 딴에는 기습 공격이라고 했겠지만, 제각각인 사람들이 만 단위로 움직이는 데 전조가 없을 리가. 결과는 삽시간에 만 단위 사상자를 내고, 다시 현수막과 푯말을 흔들기 시작했을 뿐.

현수막과 푯말에 적힌 내용만 보면, 무슨 세상 악독한 놈 취급이었다.

‘살인자!’

‘굶겨 죽일 생각이냐!’

‘백인들만 살아남는 더러운 세상!’

‘차라리 핵이 터져 같이 죽자!’

협박도, 비난도, 싸움도 먹히지 않자, 그 뒤에는 애들 팔아먹는 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애가 이틀을 굶었어요.’

‘제발 우리 아이에게 먹을 것을 좀.’

아이들을 앞세워 사다리를 걸고 올라오려는 시도였지만, 인공지능들은 즉시 자동 포탑으로 대응했다. 아이건 뭐건 받은 명령은 올라오는 것들 정리하라는 명령이었으니까.

‘다른 곳으로 가면 되지 않음? 왜 여기로 와서 이러는 것임?’

‘EMP 때문에 차고 뭐고 죄다 고장 나서 그럴 거다.’

‘자동차 고장 났으면 두 다리는 뒀다가 뭐함?’

‘우리는 먼저 약탈하고 그러지 않았잖아.’

김 양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블라디 아크 타워를 공격하는 이유가, 백정이랑 자신이 사람들을 약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니.

그러니까 갱단이나 카르텔에서 집집 마다 돌아다니면서 약탈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래저래 소문을 냈을 것이라고. 블라디 아크 타워에 물자가 미친 듯 많다는 소문.

그 말에 탈탈 털린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들어 물자를 풀면, 그 풀린 물자를 다시 약탈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물자를 풀지 않으면? 분노한 사람들이 블라디 아크 타워를 공격할 테니, 힘을 뺄 수 있을 것이고. 겸사겸사 좋지 않은가? 그런 속셈일 것이라는 예측.

‘일진한테는 찍소리 못하면서 조용히 있는 애들에게 화풀이하는 놈들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김 양은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닌 적 없어 마루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대충 자기 괴롭히는 놈에게는 찍소리 못하고 조용히 있는 사람에게 지랄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갱단이나 카르텔과는 목숨 걸고 싸우지 못하는 것들이 여기에 와서 아이들 핑계 대고, 생존권 찾고, 총 들고 약탈하려고 하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했다.

‘그것도 이제 끝이지. 다들 감염된 것 같으니까.’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경고해도 소용없었으니 어쩌겠는가?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생기는 증상.

분노 조절장애가 생기고 지능이 점차 퇴화. 병이 더 진행되면 치매 같이 기억을 잃고 마시고 먹는 게 극도로 줄어듦.

이때가 되면 행동도 느려지고, 소리에 민감해져서 자극을 받으면 갑자기 빨라짐. 처음에는 동식물을 뜯어먹지만, 나중에는 육식.

주로 뇌와 심장을 파먹는 경향이 생김. 뇌와 심장을 먹은 것들은 점차 똑똑해지고, 덩치도 좋아짐.

좀비처럼 어기적거리는 자들 가운데 변이를 일으켰는지 유독 건장한 덩치를 가진 자들이 간간이 있었지만, 김 양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일본에서 질리게 싸워본 애들이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던 김 양이 신경을 긁는 소리에 눈을 찌푸렸다.

까아아아악

까악- 까악- 까에에엑!

까마귀를 중심으로 새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새가 지저귄다? 그거 어느 시절 이야기?

끼에에에엑

끼이-끼이-끼에에엑

말 그대로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새들.

‘이것들 오늘따라 유독 시끄럽네.’

김 양은 바로 마루에게 무전을 때렸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연락하라고 했으니까. 응.

[새들이 이상함.]

[어떻게?]

[시끄럽게 울고 있음.]

[그냥 둬. 심심한가 보네.]

마루는 태연했다. 땅에는 감염자, 하늘은 변종 새 떼가 둘러싸고 있어, 자연적인 방어벽이 됐다고 생각하면 편하다는 소리.

[걔들이 있어서 헬기 타고 오는 놈들도 없고 좋잖아. 건물 방음도 좋아서, 안에 있으면 조용하고.]

[외곽에 굴러다니던 시체가 없어졌음. 전부.]

감염 초기, 아직 이성이 남아있던 사람들은 패싸움하다 생긴 시체들을 외곽으로 치웠다. 그렇게 치워버린 쌓인 시체들이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체가 없어졌다는 말에 마루가 밖으로 나왔다.

“어디?”

[저기. 외곽에 시체 쌓여있던 거.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잖음?]

확실히 그랬다. 주변을 살피던 마루가 고개를 들어 건너편 건물을 바라봤다. 길 건너 빌딩 옥상 끄트머리에 빼곡하게 앉은 새들. 전깃줄을 비롯해 사방이 새였다.

“새가 먹었나 보네.”

[그럼 쟤들은 왜 안 먹음?]

느릿하게 움직이는 감염자들을 향해 고갯짓하는 김 양이었다.

“앉은 자세 봐라.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시체가 되길 기다리고 있다는 소리?]

“일본에서도 그랬잖냐. 감염자들이 갑자기 날뛰면서 웨이브처럼 몰려들었던 거.”

[아- 그럼 쟤들이 여기 달려들어서 뒈질 걸 기대하고 저러고 있다는 거임? ]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비 웨이브도 아니고 가끔 그랬었다. 그럼 여기도 일본에서처럼 웨이브 뜬다는 소리인가?

“새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 보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디아나? 들었지? 사람들 무장시켜.”

생각과는 달리, 별일 없이 날이 저물었다.

“오늘은 아닌가 보다. 밥이나 먹자.”

[메뉴가 뭐임?]

훅 들어온 질문에 마루가 헛 웃었다.

“하- 돈가스.”

국토안보국과 전략사령부 그리고 국방성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했다. 무대응, 침묵으로 3주를 버티자, 이제는 라디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니까 신기함.”

김 양의 말에 마루는 두툼하게 썰린 돈가스를 우물거리며 동의했다.

[···현재 미합중국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시련에 직면해 있습니다. 테러, 질병, 변이 괴수, 약탈과 폭동, 마약.]

[핵전쟁의 여파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합중국의 시민입니다. 그냥 시민이 아닌, 미합중국의 시민···.]

국토안보국에서는 요원들과 함께 극비임무를 해야 한다며, 미합중국의 미래가 달린 일이라고 했다.

국토안보국이 라디오를 이용하는 것을 들었는지, 전략사령부에서는 라디오를 이용해 명령했다. 중국 전선으로 소집한다는 이야기.

“갈 거임?”

“미쳤냐? 몇백이나 몇천이면 시간 들여서 숫자 줄이고 가겠는데, 10만, 20만 이런 숫자를 어떻게 뚫냐?”

진짜 못 뚫는 것처럼 말하는 마루였다. 그 순간 기관포가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감염자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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