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55
가다마 신타의 앞에 나타난 것. 그것은 인간의 턱 아랫부분.
잘려나간 아래턱에 지네 다리처럼 다리가 돋아나 움직이고 있었다.
스르르르륵
‘요괴?’
노인은 이를 악물었다. 내가 미친 건가? 아니 미치지 않았다. 저것은 끝없이 자신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복수를 억울함을 분노를 토로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가다마 신타의 마음과 같았다. 오니가 설치고 악마가 능욕했음에도 차마 칼을 뽑지 못했던 비참함. 귀축영미와 더러운 벌레가 일본을 짓밟았을 때, 삼켰던 울분과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던 순간들.
도쿄의 땅만 팔아도 미국 영토 전부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거대한 일본이, 경제 대국 일본이 귀축영미의 농간에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때의 무력함, 분통함을 저것도 가지고 있었다.
“네놈은 무얼 원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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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넘치는 세상에 저런 게 있다고 무에 문제란 말인가? 그렇게 인정해서인지, 그것도 가다마 신타에게 마음을 열었다.
뇌에 직접 전해지는 듯한 영상. 실험당하고 괴롭힘당하고 모든 것을 뺏긴 끝에 소각당하는 영상. 절단되고 썰리는 장면.
‘설마. 이건.’
그 오니 놈에게 당한 건가? 입구에 있던 흔적은 그놈과 싸운 흔적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복수를 원하고 있었다. 그놈에게. 자신을 불태운 자에게. 인간에게.
너도 복수를 원하는 거냐?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가다마 신타가 보온병을 꺼내 내용물을 쏟아 버린 뒤. 그것의 앞에 내려놨다. 마치 그 의미를 알아챈 것처럼 그것이 보온병으로 들어갔다.
기회는 올 거다. 복수의 기회는. 반드시.
웅- 보온병이 진동했다. 그때를 기다리겠다는 듯.
경호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버 저장장치가 사라졌습니다.”
“백업자료도 없습니다.”
보온병을 태연하게 가방에 넣은 노인이 발걸음을 옮겼다.
“연구실로 가지.”
중국 해커가 일본 기업을 해킹했음에도 중요 정보를 찾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설계도와 같은 중요 도면은 출력해 보관했기 때문이었다.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중요한 자료라면 문서화시키거나 USB에 따로 저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부 불탔는데 남은 게 있겠습니까?”
“찾아보게. 반드시 있을 것이야.”
그렇게 불타버린 연구실을 뒤적이던 경호원들이 무언가 발견했다. 아니, 모든 것이 타버렸기에 검게 그을린 커다란 금고가 드러났다고 봐야 했다. 가벽 속에 숨겨진 금고가 발견된 것은 모조리 탔기 때문이었으니까.
“정말 금고가 있었군요.”
“소각장치가 작동됐는데도 원형이 유지됐다니.”
“내화금고인가?”
쉽게 열리지 않던 금고가 끝내 속을 내보이자, 안에 들어있는 서류 더미와 USB.
“서류가 멀쩡합니다.”
“USB도 괜찮아 보입니다.”
경호원들의 말에 노인의 얼굴에 미소가 담겼다.
일본은 반드시 부흥할 것이고,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이게 그 시작이었다.
“다카이치 신약으로 가지.”
가다마 신타는 서류와 USB 그리고 보온병이 담긴 가방의 손잡이를 꼭 쥐며 말했다.
다음에 찾아야 할 것은 제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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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와 김 양의 군대 문제는 앞으로 1년 뒤, 장교로 복무하기로 협상이 끝났다.
“내년 4월 중순에 입대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이건 뭐죠?”
파일을 읽어본 마루가 덴 브라운 과장에게 따졌다.
[능력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장교로 복무하려면 최소한 기본적인 지식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시간을 내서 교육을 받으라는 소립니까?”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지 그건 블라디마루 칼린 씨가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반 부사관 계급이 아닌, 장교를 원하신다면 기본 교육은 필수입니다.]
테러에 사건 이후, 미국은 엉클 샘으로 변했다. 제일 크게 변한 것은 단호한 결정.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전시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시작으로 육군 신병 훈련 기간도 기존 14주에서 22주로 확대됐다. 훈련 기간 확대를 통해 전투력 향상과 중도퇴소자의 감소 등, 성과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모병 인력도 늘어났다. 2차 대전과 베트남전 이후, 해체했던 여단을 재결성하고 예하 대대도 늘려, 전력을 확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전역한 장교급 인력의 재교육이 시작됐다. 전역 장교들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다른 직업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금요일 저녁에 입소해 금, 토를 숙박하고, 일요일 오후에 돌아가는 과정이 있었다. 또는 월~금요일까지 합숙하고 주말에 귀가하는 과정도 있었고. 이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됐다.
주말마다 하는 게 그나마 좋아 보였는데, 둘 다 주말에 들어가는 것은 무리였다. 빌딩이 텅 비게 되는 시간은 없도록 하는 게 좋았으니까.
‘그나마 겹치지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김 양과 마루 둘 가운데 한 사람은 주중 합숙 주말 귀가, 다른 한 사람은 주말 합숙 평일 집에 있는 코스로 가야 할 상황.
힐끗.
김 양을 보니. 눈동자가 죽어있었다.
눈이 죽었는데, ‘네가 주중 들어가라.’ 그러면 사고가 날 게 뻔했다. 아마도 총기사고가 나겠지. 그리고 사이좋게 복무 기간이 늘어날 거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루가 바로 군대에 가겠다고 했어도 바로 처넣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바로 끌고 갈 것처럼 해서, 1년 유예를 해주고는 마치 크게 선심 쓴 것 마냥 그랬다.
‘하는 걸 보면, 제법이긴 한데. 1년 뒤에도 잘 버틸까?’
지켜보면 알겠지.
여기저기 일 터지고 나서도 갑질할 수 있을지 어디 보자고.
그런 마루를 달래는 것처럼 덴 브라운 과장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도 군에서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소위로 시작하는데, 2계급 특진을 적용해 대위부터 시작하게 했으니까요.]
국토안보국 소속 용병으로 활동해서 묻어버렸던 활약을 전과로 인정해줬다는 소리였다. 지옥 같은 일본에서 퇴각부대를 이끌고 탈출에 성공했던 것과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서 실종된 병력을 수색하고 더 큰 피해를 막은 일.
이외에도 마루의 활약은 많았지만, 두 사건을 해결한 것에 대해 각각 1계급 특진을 붙여, 소위에서 대위로 진급시켰다.
소령을 줘도 충분한 공이기는 했지만, 일단은 대위를 달아줘 보고, 되겠다 싶으면 올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는 설명.
최소한 시작부터 대위 달고 시작하니까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는 위로였다.
‘대위부터 시작이라··· 은근히 노린 거 같은 데?’
마루는 덴 브라운 과장의 다독거림에 조금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1년 뒤에 가겠다고 시간 끈 이유를 대충이라도 짐작한 걸까? 그럼 피곤한데.
[미스 킴은 중위에서 시작하지만, 훈련이 끝나면 곧 대위 진급이 예정됐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 양은 죽은 눈으로 총을 만지작거렸다.
“들었지? 어떻게 할래, 주중 5일 합숙으로 짧고 굵게 갈래? 아니면 주말마다 이틀, 가늘고 길게 갈까. 네가 선택해라.”
“···가늘고 길게.”
그럼 그렇지.
“주중 과정은 언제부터 시작입니까?”
[매주 새로 시작하는 기수가 있어 언제든 가능하겠지만, 최대한 빨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일단 대위 계급장 달은 애한테 시비 털면. 군이 응징할 테니 말이다.
“이거 계약 분명하게 하셔야 합니다. 교육 끝났다고 복무 앞당기고 그러면 진짜 재미없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지간히 큰일이 터지지 않는 이상. 문제없을 겁니다.]
전면전이 터진다든지 그러지 않는 이상, 딱히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다만 예상외의 문제가 생겨서 비상 소집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미합중국 군인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일까? 아니면 이익에 따지는 용병 마인드를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까?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 소령 진급이 결정되겠지.
그런 덴 브라운 과장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루와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
‘······.’
동태 눈빛을 교환하는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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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동지역.
그곳은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력충돌을 불사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화산과 지진, 쓰나미의 여파로 모든 것이 무너진 곳.
악독한 환경에서 변이된 괴수들이 돌아다니고, 갑작스럽게 생긴 초인들이 모여 있는 곳. 초인들이 많이 생기는 곳이라, 미국과 중국 모두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미군이 철수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미국에 있는 끈들이 전해온 소식. 테러에 눈이 돌아간 미국이 일본 관동지역부터 모조리 날려 버리겠다고 결정했다는 말.
일본에 들어간 병력 대부분이 북부전구 장병이었기에 북부전구 수장 룽 옌은 병력을 안전하게 탈출시킬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본에 밀어 넣은 병력이 15만에 육박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초인으로 변하는 장병들이 생겼기 때문. 미군과의 교전에서 우세를 차지하기 위해서도 그랬고 초인 장병들이 더 많이 나올 것을 기대해, 최대한 많이 보냈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악수가 됐다.
“남부전구의 수송선은 따개비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고 합니다.”
“동부전구는 당에서 내려온 명령이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빌어먹을 자라 새끼들이···.”
룽 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전부 핑계였다. 당에서 숙청하려고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손 떼고 있는 것이리라.
“병신 같은 놈들. 그렇게 바짝 엎드리면 살 수 있을 것 같나?”
지금 주석은 절대권력을 추구하고 있었다. 숙이면 숙청되고 밟힐 것이다. 북부전구가 갈리고 나면 다음엔? 말 잘 들었다고 그냥 둘까?
놈들을 손 봐주는 건 나중 일이고 지금이 중요했다. 일본에 보낸 병력을 모두 잃는다면 북부 전구의 전력 40%가 날아가 버리는 꼴이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장병들 가운데 몇몇이 초인이 됐다지만 소수였다.
“능력자들은 어떻게 됐지? 아직도 인과관계를 찾지 못했나?”
룽 옌의 질문에 능력자들을 담당하는 자들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뚜렷한 인과관계를 찾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성장하는 능력도 있어, 확인하려면 조금 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육체 능력 강화뿐 아니라, 다양한 능력이 계속 발견돼 시간이 필요합니다.”
늦어. 늦는다고.
지금 제일 중요한 자원은 시간이었다.
주력이 일본 관동에 묶인 동안, 당이 동부전구와 남부전구를 동원해 밀어버린다면 위험한 순간이었다. 미제를 끌어들여 당의 숙청 움직임을 막았다.
미제를 앞에 두고 주석과 당이 북부전구와 내전을 불사하지 못할 것이다. 또 미제에게 무릎 꿇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은 맞았는데, 미제의 반응이 예상을 벗어났다.
단호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넘어, 회춘의 비밀을 간직하고 초인의 요람인 관동지역을 날려 버린다고 결정했다니···.
막을 방법도 없었다. 인터넷이라도 살아있고, 전기라도 들어간다면 휴대폰 동영상을 이용해서 여론전이라도 하겠는데. 불가능했다.
피난민 휴대폰에서 찾은 미국의 만행이라고 공개해도 자작극으로 몰릴 상황.
지진이랑 화산폭발, 쓰나미로 전기가 끊겼다는 동네 아니야?
완전히 망한 일본 관동지역에서 휴대폰 충전은 어떻게?
자동차도 기름 발전기도 고장 나는 환경이라던데 휴대폰이 살아있나?
태양광 발전도 화산재와 먼지, 연기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냐? 신기하네.
이런 이야기만 넘칠 것이다.
“미제가 깔아 놓은 감시 부표를 모두 제거한다.”
수송선이든 어선이든 쓸 수 있는 건 모조리 동원해야 할 판. 그러려면 미제가 깔아 놓은 감시 장비부터 해결해야 했다.
동시에 미국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피할 방법이 필요했다.
“미제가 변이 괴수를 잡기 위해, 일본에 대규모 폭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소문내도록.”
“모조리 쓸어버릴 폭격을 한다고.”
이런 이야기를 들은 피난민을 어떻게 할까?
“일본인들이 항구로 몰릴 텐데요.”
“상관없다.”
그러라는 소문이었으니까.
다들 살아보겠다고 항구로 몰리겠지. 그러면 그것들을 방패 삼아, 병력을 뺀다. 그러면 됐다.
미제 놈들도 일본에 끈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난민들이 항구에 모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갈 터, 무작정 항구를 날려 버리지는 못할 테니.
“초인 부대를 우선 복귀시킨다.”
병력을 안전하게 뒤로 뺀 뒤, 담판을 지어야겠지.
내전이냐.
아니면···
룽 옌이 보고 있는 지도엔 다른 색으로 칠해진 북부가 표시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