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44화 (244/280)

러스트 [RUST]-244

원형으로 조여들던 새들이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추락하는 새들. 떨어지는 빗방울. 멀리서 들리는 천둥소리.

쿠르르르릉

차가운 봄비가 허공에 흩어지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산산이 부서지는 물방울.

바닥에 깔린 마른 풀과 낙엽이 절규하듯 흔들흔들 흔들리는 비현실적인 광경.

!!!!!!!!!

달려들던 앞선 새들이 졸지에 뻣뻣하게 굳어 땅에 처박히면서, 뒤따라 돌격하던 새들이 방향을 전환했다.

조여들었던 원형이 휙 크게 벌어지며 마루를 위협했다.

헬기 로터 소리라도 되는 것처럼 요란한 날갯짓. 먹이 사냥을 위해 보이는 공격성이 아닌, 명백하게 적을 죽이겠다는 살의가 동그랗게 회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루는 태연하게 칼을 까딱였다. 칼끝을 따라 바닥에 처박혀 꿈틀대는 새들이 조각났다.

바닥에 흥건하게 흐르기 시작한 피, 여상한 발걸음, 한없이 가벼운 칼질, 썰리는 죽음 그리고 빙글빙글 죽인다며 지저귀는 새들.

투둑. 툭. 툭.

떨어진 빗방울이 바닥에 튀며 빨갛게 번졌다.

!!!!!!!!!!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새들은 달려들지 못하고 배회했다. 그런 배회가 어느 순간 규칙성을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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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가 아닌 군체의 움직임.

거대한 뱀이 둥그렇게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회전하던 새들이 갑자기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승천을 탐한 이무기처럼 치솟아 오른 새들이 정점에 올라, 수직으로 떨어졌다. 급강하 폭격기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때려 박히는 새들.

검을 아래로 늘어뜨린 마루가 땅에서 하늘로 역천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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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두 쪽 내듯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진 참격.

검격을 따라 올라간 살기가 하늘에 닿자. 새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이무기의 머리가 좌/우로 잘렸다.

후두두둑-

반으로 쪼개진 군체가 죽음에 맞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절단되고 끔찍한 살기에 굳어 버린 새들이 날아오던 관성대로 마루를 향해 쏘아졌고, 칼질에 썰렸다.

공중에서 토막 난 새들의 발톱과 부리가 마루를 때리고 스쳤다. 묵직한 충격이 덮쳤지만, 그딴 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이어지는 칼질.

죽어서 썰렸고

잘려서 죽었다.

믹서기에 토마토를 넣고 갈아버리듯, 길게 이어진 죽음의 행렬이 붉은색 조각으로 변해 바닥에 뿌려졌다.

두두두둑-

핏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점차 굵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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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륜구동 오토바이가 낮은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내달렸다.

‘바보 백정!’

그래 백정 개념 없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김 양은 화가 나 스로틀을 잡아당겼다. 낮은 엔진음이 높아지며 오토바이의 속도가 빨라졌다.

제일 중요한 게 뭔가?

안전 아닌가? 사지육신 멀쩡한 거. 목숨. 그게 제일 중요한 거다.

작업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도 그거였다.

빠져야 할 때, 도망쳐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

칼 밥을 먹든 총 밥을 먹든 자세가 중요했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지 못하면 대가는 자기 목숨으로 치르기 마련이었으니까.

‘새떼가 지랄이면 어떡하든 도망칠 생각을 해야지.’

쥐나 고양이였다면 아무리 많이 몰려들었어도 잡을 수 있었을 거다. 근데 새잖아. 하늘을 날아다니잖아. 칼질이 닿나?

날개 달린 건 총으로 잡는 게 최고인데 그것도 수십 마리지. 저렇게 모인 걸 어떻게 잡나? 근데 칼 한 자루 달랑 들고 뭐하자는 거지?

심지어 여러 종류의 새들이 뭉쳐 있었다.

까마귀 종류부터 이름 모를 산새에, 매나 올빼미 같은 맹금류까지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한꺼번에 몰려다니고 있었다.

저게 정상인가? 비정상이지.

저 많은 새가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왔는지 무서울 지경.

그런데 먼저 가라고?

낄 때가 아니니까 먼저 가라는 건가? 그럼 백정은?

쫄쫄이 방어복에 방탄슈트 달랑 걸치고 한다는 소리가 먼저 가?

가라니까 가기는 했는데, 기분이 계속 더러워지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 안전해지는 거니까 기분이 좋아야 했는데, 좋지 않았다.

달랑 쫄쫄이 입고 싸우는 백정도 있는데, 4드론의 원수도 갚지 않고 그냥 도망.

새대가리들한테 쫄려서 도망.

백정이 같이 도망쳤다면 그럴 수 있었다. 빠질 때 빠지는 거니까.

근데 혼자 도망치는 거잖아. 저러다 백정이 콱 뒈지기라고 한다면?

부우우우웅-

속도를 높여 내달리던 오토바이가 휙 방향을 돌렸다. 급격하게 U턴을 해버린 오토바이. 일렁이는 공간 속에서 김 양이 마루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백정을 향해 돌격했던 새들이 보이지 않는 벽에 머리라도 꼴아박은 것처럼 바닥에 처박혔다. 몇 마리는 속도에 따른 관성으로 백정에게 몸통 박치기를 하려고 했지만, 근처에 가기도 전에 조각나 버렸다.

거대한 분쇄기로 갈아버리는 것처럼 새들이 가루가 되는 모습. 새들도 그것을 느꼈는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한 마리가 수직으로 상승하자, 그 상승기류에 동참하는 것처럼 새들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마치 거대한 뱀이 하늘을 탐하는 것처럼 보였다.

새들이 모여 만든 커다란 뱀이 몸을 뒤틀어 땅을 바라보는 모습.

한 방울씩 굵직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늘한 밤바람은 피비린내 나는 물기에 젖어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저릿저릿한 느낌.

김 양은 오한이 들었다. 심장을 뭔가 움켜쥔 것 같았다.

하늘로 솟아오른 거대한 뱀이 먹잇감을 낚아채듯 아래로 향했다.

콰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땅에서 하늘로 치솟아 오른 번뜩임이 내리꽂히는 뱀의 대가리를 세로로 쪼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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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처럼 뭉쳤던 새들이 조각조각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후두두둑-

빗방울 소리와 토막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현기증에 전신에 힘이 빠진 김 양이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학- 학-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환각인가? 착시?

새떼가 뭉쳐서 뱀처럼 보인 거지?

아니, 그럼 뭘 쪼갠 거야?

거대한 뱀을 세로로 쪼개는 걸 봤다고?

미친 건가?

왜 이렇게 숨이 찬 거야?

심장에 무리가 온 것 같았다. 전력 질주한 것처럼 마구 뛰는 심장.

김 양의 어깨가 소리 없이 들썩였다.

HUD 화면에 보이는 모습.

아직도 많이 남은 새들이 마루의 머리 위를 몇 바퀴 돌더니, 빗방울 떨어지는 어두운 하늘 저편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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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굵직한 빗방울이 순식간에 기온을 떨어뜨렸다.

한겨울처럼 하얀 입김을 뿜던 마루가 칙- 중화제를 한 번 더 꽂았다. 미친 새들이 뒈질 걸 알면서도 처박는 판에 그걸 써느라 무리했다.

‘돌아버리겠네.’

[바이탈 수치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인공지능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처럼 들렸다.

오래간만에 무리했더니, 영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위이이이잉- 엔진음과 함께 오토바이 헤드라이트 빛이 마루를 비췄다. 김 양이었다.

“가라니까.”

[···괜찮음?]

고막에 이상이 생겼나? 왜들 목소리가 다 떨리게 들려.

“괜찮아 보이냐?”

피식- 웃으며 대답하는 마루. 좋게 봐도 괜찮아 보지 않는 몰골이긴 했다.

여기저기 겉에 껴입은 방탄복은 다 뜯겨서 비늘처럼 생긴 방탄판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다. 그나마 안에 입은 살롯제 쫄쫄이가 살이 찢어지는 걸 막아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은신 로브가 걸레가 됐다.

빌어먹을 새들이 뒈지면서도 발톱과 부리를 찍어대서 버티지 못했다.

‘샬롯제 은신 로브는 이게 마지막이었는데.’

[···운전할 수 있겠음?]

“그냥 중심만 잡으면 디아나가 자율주행으로 조종해서 가면 되니까 괜찮아.”

가는 건 상관없는데, 이건 다 어떻게 하냐? 거의 무릎까지 쌓인 사체들. 먹이 사슬 어쩌고 가설을 생각하면 이것들 이대로 두면 위험했다.

뭔 병신 같은 것들이 이거 주워 먹고 메롱하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나?

빌딩이랑 거리가 가까우니까. 싹 모아다가 연구실에 샘플로 보내고. 털 뽑아다, 안감 충전재로 쓰고 그러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

“국토안보국 보안요원 가운데 오늘 비번 있나? 와서 이거 챙겨가라고 해.”

[전달했습니다.]

“덴 브라운 과장 연결해 줘.”

[연결했습니다.]

언제나 초췌해 보였지만, 오늘은 유독 심해 보이는 덴 브라운 과장의 몰골. 과장도 마루의 몰골을 봤는지 서로의 꼴을 보고 헛웃음 지었다.

“새들 말입니다. 방금 거하게 얘들이랑 붙었는데 일본에서 본 거랑 달라서요.”

[요트에서 마주쳤다고 했었지요.]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예. 당시엔 갈매기 무리였습니다. 그러니까 갈매기들만 뭉쳐서 다녔었는데. 미국은 다인종 국가라서 그런지 새들도 유나이티드 해버리네요.”

마루가 카메라를 통해 바닥을 보여줬다.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조각조각 널브러진 모습. 조류 백화점도 아니고 수십 종의 새들이 사이좋게 절단 오브제를 이루고 있었다.

[이건···.]

“자세한 현장은 동영상으로 찍어 둘 테니, 영상으로 보도록 하시고요. 여기 사체들은 전부 실어서 빌딩 연구원들에게 일부 돌리고, 남은 건 그쪽으로 보내드릴 테니까 가져갈 사람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뭘요. 다 돕고 사는 거죠. 새들 움직이는 거 보니까. 그 옛날 새 나오는 공포영화 있잖아요. 그것보다 더 심각해질 것 같습니다.”

[후- 그렇지 않아도 버드 스트라이크 때문에 문제가 심각합니다. 자폭 드론도 아니고, 작심하고 달려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대의 추락사고만으로도 항공지원이나 운송이 극도로 위축됐다. 사실상 마비된 상황. 그런데 이제는 하늘에 떴다 하면 거의 절반 확률로 사고가 터지고 있었으니, 하늘길은 막혔다고 봐야 했다.

“CS탄을 뿌리면 이착륙은 가능할 텐데요?”

[그렇지 않아도 그 방식으로 조금씩이라도 운항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어렵습니다.]

버드 스트라이크를 막기 위해 CS탄을 풍선에 매달아 올려, 공항 활주로 주변을 가스로 채웠다. 반나절에 소모되는 CS탄의 숫자만 수천 발.

한 달이면 감당할 수 없는 소모량이었다. 그렇게 각 주에서 비축하고 있던 물량도 순식간에 소진됐다.

“그렇군요.”

[부족한 생산시설로 생산하는 족족 일본에 보내고, 괴수들이 목격된 지역 미리 소거하는 부대에 공급해야 해서. 보급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마루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새떼 이야기를 했더니, 버드 스트라이크가 나와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묘하게 CS탄 쪽으로 주제가 새는 것 같은 느낌.

[군부에서 작전에 필요한 보급이 부족해, 블라디마루 칼린 씨가 비축하고 있는 물자를 회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

아니나다를까 덴 브라운 과장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

“여기 미국 아닙니까? 근데. 제 걸 자기들 멋대로 이리저리하겠다는 겁니까?”

[···그게 아닙니다. 군부에서는 현재 펼치는 작전의 성패에 합중국의 안전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괴수로 변한 동물들이 인간 사냥에 나서기 전에 미리 처분한다는 작전은 좋은 생각이었다.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서 그 지랄 난 걸 생각하면, 다른 국립공원이나 자연보호 구역도 시간문제지 일이 터질 테니까.

문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CS탄이 작전을 지속하는데 필수적인 장비가 됐다는 것이었다. 대량생산체재를 갖추기 전까지는 시간이 걸렸고, 물량은 당장 필요한 상황.

[비축했던 CS탄 재고를 사용해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했더니, 비축 물량 상당수가 블라디마루 칼린 씨에게 넘겨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군부에서는 적극적으로 재매입을 추진할 겁니다.]

‘원가로 재매입하려고 하거나, 사실상 자발적 기부를 강요하겠지만요.’ 덴 브라운 과장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루는 과장이 자신에게 정보를 주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돈? 지금 있는 돈도 다 못 쓸 상황이다.

앞으로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사태가 잘 진정되면 모를까.

돌아가는 꼴을 보니, 진정은 고사하고 예상보다 더 개판이 될 가능성이 컸다.

어쩌나. 개소리하는 놈들 모가지를 썰어 버려? 김 양도 있겠다. 저격 들어가면?

‘디아나 들었지? 어떤 새끼가 내 걸 건드리겠다고 그러는지 찾아봐.’

(알겠습니다.)

마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덴 브라운 과장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CS탄의 가치는 지금이 최고입니다.]

지금은 거의 전략물자나 마찬가지. 작전에 나간 병사들의 생명줄이 됐으니까.

[군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고 또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것들 가운데 블라디마루 칼린 씨에게 정말 도움되는 것도 있고요.]

군부와 척을 지기보다 비쌀 때, 비싸게 넘기고 이득을 취하라는 조언이었다. 돈으로는 주지 않을 테니, 물물교환하라는 이야기.

그건 그거였고 기분이 더러운 건 더러운지라, 마루의 말이 좋게 나가지 않았다.

“예를 들면?”

[··· 강철도 자를 수 있는 외계금속이 있겠군요.]

“외계금속이요?”

[우주에서 발견된 희귀한 외계금속으로 지구에 있는 어떤 금속과도 다른 성질을 가진 것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아직도 그게 뭔지 모르는 물질이죠.]

[성질이 독특하긴 합니다만, 칼 한 자루 만들 분량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칼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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