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39화 (239/280)

러스트 [RUST]-239

마루를 향해 주둥이를 벌린 뱀.

옆으로 길게 누워진 독니에서. 찍- 독액이 뿜어졌다. 팍-칼집으로 물총처럼 쏴진 독액을 쳐낸 마루가 칼을 휘둘러 턱을 찢어 머리통 윗부분과 아래를 절단했다.

치이이익-

칼집에서 뿌옇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액이 묻은 칼집을 갈라진 뱀 살덩이에 문질러 닦았다. 머리통 윗부분이 잘렸음에도 맹렬하게 꿈틀거리던 몸뚱이가 서서히 풀렸다. 맹독?

그 틈을 타 발목을 노리는 뱀의 머리통을 진각 밟듯 짓밟자, 두개골이 함몰되며 눈알이 빠졌다. 머리통이 박살 난 뱀이 혀를 문 채 전신을 비틀었다.

전후좌우 사방을 포위한 뱀들이 동시에 달려드는 순간··· 다시 한 번. 뱀 대가리를 짓밟은 다리가 반 바퀴 회전하며 회전력을 만들었다. 그 회전력의 끝에서 춤추는 칼날.

집을 갉아먹는 흰개미가 내는 소리처럼 작게 갉는 소리가 허공을 수놓았다.

사각사각사각

서걱서걱서걱

두 토막. 세 토막. 네 토막. 다섯 토막.

전후좌우 사방에서 달려들던 뱀들이 믹서기에 갈리듯 갈려버렸다. 후두둑 사방으로 흩어지는 파충류 특유의 비린내를 뚫고 마루의 살기가 터졌다.

'아주 씨를 말려주마!'

달궈진 몸에 중화제를 박아 넣자, 용암에 물을 끼얹은 것처럼 허연 김이 전신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후-으으읍-

피바다 가운데 걸쭉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진득한 살기가 바닥에 깔리자 바람이 부는 것처럼 수풀이 흔들리는 모습. 차갑게 식어버린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추락한 헬기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를 산채로 느긋하게 삼키던 뱀들이 쿠엑- 사람들을 뱉어내곤 슬슬 수풀로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어딜!”

팍- 10m 남짓한 거리를 한걸음에 내달린 마루가 제초기로 잡초를 베듯 썰어버렸다. 가로로 길게 쪼개진 뱀이 죽지 못해 몸을 뒤틀었다.

반쯤 먹혔다가 뱉어진 사람들이 죽지 못해 앓는 소리. 추락한 헬기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와 불꽃에 익어가는 시체 소리가 전장의 냄새를 빚었다.

두고 갈 테니 추격하지 말라는 건지. 먹던 사람들까지 뱉어낸 뱀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흐릿해진 기척들이 수풀과 진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이런 개···.”

울컥하며 살기가 뿌려지자, 근처에 있던 하반신이 으스러진 병사의 눈이 까뒤집어졌다. 숨이 넘어가려는 모습.

“빌어먹을!”

마루는 억지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디아나. 전술 카메라 해킹해서 다 지웠어?”

[인터넷에 연결된 카메라는 지웠습니다.]

[개별적으로 녹화된 영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알았어.”

마루는 부상자들과 희생자들의 몸에서 전술 카메라를 찾아 부쉈다.

“저··· 저쪽으로 간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CS탄 없다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던 놈이 살아있었다. 도망치지 말고 싸우라고 한 말대로 버텼나 보다. 도망친 새끼들? 알게 뭔가? 마루가 병사의 헬멧에 달린 전술 카메라를 칼로 잘라내며 말했다.

“알아서 했겠지.”

“그··· 그렇지만··· 구하러 가야.”

“누가? 당신이? 아니면 내가?”

차가운 반응에 놀랐는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병사.

“내가 가면? 여기 부상자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내가 안 보이는 순간, 뱀새끼들이 여기 덮칠 텐데?”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뱀들이 도망쳤으니까 흩어진 사람들 찾자? 그럼 당신이 가서 찾으면 되겠네. 힘내라 전우들 꼭 구하고.”

더 할 말 없었다. 충격으로 맛이 갔나?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매복은 기본인 놈들이 완전히 도망쳤을까? 모를 일이었다.

기분이 더러웠다. 마치 고도로 훈련된 게릴라를 상대하는 기분. 게릴라와는 싸워보지 않았지만, 이런 느낌이겠지.

“디아나. 현재 상황 전하고. 추가 지원 요청해.”

[요청했습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전술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 카메라에 찍힌 장면들 있지, 헬기 공격당하고, 지원 온 애들 습격당한 장면, 매복하고 있던 장면 같은 부분만 보내줘.”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기 헬기 2대. 내려와서 부상병 싣고 가라고 해. 시신 수습은 나중에 하고.”

위생병과 구급대를 내려놓고 화들짝 고도를 높인 헬기에서 무전이 왔다. 돌아가겠다는 무전.

“지랄하지 말고 뱀들 치웠으니까 내려와서 부상병들 싣고 가라고 해.”

우왕좌왕하던 헬기들이 착륙해 부상병들을 호다닥 싣고 도망치듯 떠났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서야 지원병력이 헬기로 도착했다.

“여기. 이쪽에 금속 반응이 있습니다!”

“빨리빨리 끌어올려!”

날이 어두워 질 무렵에야 시신 수습이 끝났고, 전장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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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었다.

정보를 주지 않은 것도 아니고, 동물에게 최루탄이 효과적이라는 말을 했었다. 쥐도 그렇고 괴수 고양이도 그렇고 코 달린 새끼들에게는 최루탄이 직방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근데 나중에 시신 수습하러 온 병사들과 위생병, 구급대원들이 최루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말을 귓등으로 알아먹나?

[그게 아니라. 처음 올라간 수색대에 전부 지급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헬기를 타고 간 병사들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올라간 사람들이라 무장도 기본 무장만 했고요. 대부분 위생병과 구급대원들 아니었습니까?]

그러니까 시신 수습하러 보낸 애들이라는 소리. 그래도 그렇지 주 방위군 애들 멘탈이 이렇게 막장인가? 군대 아닌가?

[주 방위군(National Guard) 인력이 모자라, 주 방위대(State Defense Force)에서 차출한 병력이었습니다.]

뭔 군대가 이렇게 복잡해. 그러니까 연방군, 주 방위군, 주 방위대. 이렇게 3개가 있다는 소리?

처음 수색대는 연방군+주 방위군 애들 그리고 다음에 시신 수습하러 온 애들은 주 방위대+의무병+구급대원들 이런 조합이었다는 건가?

아니. 그럼 더 CS탄 챙겨서 보내줘야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CS탄은 공급이 부족합니다. 일본에 파견된 군대 생명줄이 CS탄이라 생산하는 족족 일본 주둔군으로 보내고 있어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빌어먹을 일본에서 버티려면 CS탄은 필수이긴 했다.

[생산시설은 계속 증설하고 있지만, 워낙 기존 시설 자체가 노후화됐고 생산량도 적어서 충분한 양이 공급되려면 최소한 몇 개월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래 걸려?

[게다가 기존에 만들어둔 물량은 블라디마루 칼린 씨가 상당수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

[그렇지 않아도 미네소타 주와 미시건 주 방위군에서 CS탄 부족으로 긴급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쌓아 놓은 물자 좀 풀라는 간접적인 압박이었다.

[코요테가 민가를 습격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는데, 민간인들이 가진 엽총이나 사냥용 라이플로는 막기 힘드니까요. CS탄이 있으면 민간인 사상자를 확실히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압박은 태연하게 무시할 수 있는 마루였다. 없어서 못 줬다고? 그건 비겁한 변명이지.

“대체품도 없습니까? 최루탄 종류는 많지 않습니까?”

요즘엔 과격 시위 진압용으로 사용하는 최루탄에도 후추나 캡사이신 같은 식용 가능한 성분을 사용하거나, 물대포를 사용하지 CS탄 같은 화학탄은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그건 많겠네. 그거라도 쓰면 되는 일 아닌가? 위력이야 CS탄에 비해 약하겠지만, 감각기관이 예민한 동물에게는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진작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방에서 물자가 부족해서 난리입니다.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심지어 원료도 품귀 현상을 보일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아크 타워에 쌓아 놓은 물자 좀 풀자는 간접적인 압박이 다시 시작되려는 걸 말을 돌려 차단하는 마루.

“그럼 수색대는 어떻게 된 겁니까? CS탄이 있었으면 당하지 않았을 텐데요.”

물자수호에 대한 철벽 의지를 보이는 마루의 모습에 덴 브라운 과장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후- 말로 설명하기 어렵군요. 전술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마루는 바로 대형 화면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수색대는 마루가 처음 멈췄던 포인트까지 접근했다. 거기까지가 일반 통신이 가능한 지역이었다. 그 뒤에는 중계기를 설치하거나, 위성통신을 쓰거나 통신병이 중계해야 했다.

통신병이 현황보고를 하고 계속 수색을 이어가려는 찰나, 무언가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보병이 가서 사라졌고, 다음에는 엑소슈트로 무장한 병력이 실종됐다.

[전원 집합. 비상사태다! 무기를 점검하고 바로 출발한다!]

[긴장해. 사주경계 철저히!]

수색대가 하나로 뭉쳐, 사라진 사람들이 간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전술 카메라에는 긴장한 병사들의 모습. 선행하는 기갑병의 모습이 가감 없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그곳. 강변에 있는 수풀 지역이었다.

선행하던 기갑병이 갑자기 기우뚱 쓰러져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허우적거리는 기갑병. 1톤에 육박하는 무게가 독이 됐다.

[늪이다!]

[무슨 개소리야 여기 늪지가 어딨어?]

[지랄하지 말고 로프 던져. 로프 던지라고!]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졌고, 쑥 빨려 들어가는 기갑병을 건지기 위해 병사들이 로프를 만들어 던졌다.

엑소슈트와 병사들이 로프를 잡아당기려는 순간, 무언가가 진흙탕 아래서 꿈틀거리더니 기갑병을 엮어 아래로 끌고 들어갔다.

로프를 붙잡고 끌어당기고 있던 엑소슈트와 몇 사람이 로프에 엉켜 같이 아래로 딸려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수풀 사방에서, 바닥에서 뱀들이 튀어나왔다. 5~6m 남짓한 뱀부터 마루가 썰어댔던 10m가 넘는 거대한 뱀들까지.

수십 마리의 뱀들이 수색대를 덮쳐 깊은 진창으로 끌고 들어갔다. 액션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던 엑소슈트가 진창으로 빨려 들어갔다.

헬멧에는 방독 기능이 있었지만, 완전 방수는 아니었다. 진창으로 빨려 들어간 엑소슈트 병사는 5분을 넘기지 못하고 질식해 죽었다. 그렇게 액션 카메라의 영상이 끝났다.

미리 쓰겠다고 작심하고 대비하고 있지 않은 이상 수류탄이고 CS탄이고 쓸 기회가 없었다. 짐승이고 뭐고 벌집을 만들어 버린다고 자부했던 20mm 벌칸이나 7.62mm 기관총은 한 발도 쏴보지 못하고 끝장나는 모습.

다른 영상도 마찬가지. 진창에 빠져 허우적대는 기갑병과 엑소슈트를 구하려고 신경이 쏠린 사이에 펼쳐진 뱀들의 완벽한 기습에, 고작 몇 명이 소총을 쏴대며 저항한 것이 끝이었다.

[뱀이다!]

으아아악!

투다다다닥

[어? 어! 야!]

[엄마.]

연약한 몸부림은 통하지 않았다. 뱀 비늘이 드래곤 스케일이라도 된 것처럼 5.56mm 총탄을 무시하는 영상은 마치 CG처럼 보일 지경.

“저거 7.62mm도 제대로 뚫지 못하겠는데?”

[영상 분석결과 철갑탄은 관통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에서 설치는 괴물 고양이도 지랄이더니, 뱀들은 한술 더 떠서 풍년이었다.

“칼로는 썰렸는데 말이지.”

[비늘과 가죽의 특징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강한 충격에는 오히려 반발하는 특성. 늑대 가죽도 결을 따라서 찢지 않았다면 생각보다 까다로운 가죽이었으니까. 거기에 뱀은 비늘까지 있어서 방어력이 더 좋아 보였다.

“뱀이 저 정도면 악어나 아르마딜로는 총으로는 잡기 힘들겠는데?”

[하마나 코뿔소, 코끼리 같은 동물들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루는 여러 시점에서 찍힌 영상을 보면서 그저 감탄했다.

뱀들은 마치 통일된 명령체계라도 있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마치 한 몸처럼. 고도로 훈련받은 병사나 게릴라처럼 완벽하게 습격했다.

자신들이 유리한 전장으로 유인, 적의 주력 무기를 무력화하고, 기동성을 뺏은 뒤, 동시 공격. 해도 너무한 뱀들이었다.

근처에 동물들 씨가 마른 이유를 알 법했다. 저런 뱀무리가 영역을 장악하고 있으니 남아날 리가. 그런데 거기에 좋다고 사람들이 들어갔으니 결과가 이럴밖에.

문제는 근처에 사냥감이 없으니 영역을 옮길 텐데, 사람 맛을 본 뱀들이 어떻게 움직일까? 습기를 좋아한다고 하니 강변을 따라 이동할 가능성이 컸다. 매우 안타깝게도 대체로 오래된 타운들은 강변에 있었다.

[변이 개체에 대한 목격담과 주변 정황을 분석한 결과 특이한 점이 발견됐습니다.]

“어떤 건데?”

[곰과 늑대가 우선 변이했고, 변이 늑대 가운데 죽은 늑대를 먹은 소형 설치류와 조류, 그리고 곤충류가 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변이한 소형 설치류를 잡아먹은 뱀이 변했다는 거네.”

[현재까지 확인한 정보로 유력한 가설입니다.]

덴 브라운 과장이 말한 대로 누군가 일본산 변이 바이러스를 가져와 뿌렸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 뜬금없이 공원 깊은 곳에 있는 회색 늑대와 곰이 변이 바이러스에 걸릴 이유가 없을 테니까.

미국 내에 과학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결론을 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연적이지 않다고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특정 국가 관광객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증거를 찾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정보 통제를 한다고 해도 얼마나 갈까? 지금도 이렇게 엉망인데. 물자부족이 시작됐고, 일정 규모 이하의 작은 마을은 견디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고 있었다.

경제력, 인구, 자원, 생산시설 차이에서 시작되는 불균형이 커질 것이다. 이에 불만을 품은 주 정부들이 각자도생하려고 한다면, 흩어지려는 것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그만큼 큰 위협이 필요하기 마련.

‘정말 전쟁인가?’

“덴 브라운 과장에게 뱀들이 강변을 타고 하류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고, 변이된 동물들이 일본에 있는 괴수들 이상으로 위험하다고 경고해. 그리고 수색대 찾았으니 난 돌아간다고 해줘.”

먹이 사슬을 타고 퍼졌으니,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 뭔 괴수가 생겼을지 모를 일이었다. 여기서 어영부영하다 엮이게 되면 언제까지 잡혀있을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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