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29화 (229/280)

러스트 [RUST]-229

후드는 대답이 없었다. 일그러진 입술을 꽉 깨문 모습.

화상 입은 얼굴이 반쯤 드러난 것에 대한 분노, 이유 모를 폭력에 대한 증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표정이 김 양을 향했다.

그래? 모르면 알려줘야지.

친절한 김 양이 해설을 해줬다.

“오퍼레이터가 작전 도중에 자리를 비우면, 밖에서 작업하던 년은 어쩌라는 거임?”

작전 나간 사람은 뒈지라는 소리? 그렇게 김 양이 운을 뗐음에도 무슨 소린지 못 알아먹는 분위기였다. 애초에 작전이라는 개념이 뇌에 탑재되지 않은 건가? 김 양은 갸웃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일할 때는 그랬다. 회사 직원들 대부분 알아서 빠릿빠릿했고, 알아서들 개념을 찾아 먹었다. 아닌 놈들은 작업하면서 걸러졌으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오퍼레이터가 작업 나간 애 챙겨야 하는 건?’

통신이 불안정하면 그거 해결해야 하고, 해결이 안 됐으면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하는 게 정상 아니었나?

‘미친년이 사람 잡네. 왜 이래? 왜 때려?’ 억울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후드를 보니, 김 양은 자기가 잘못했는지, 다시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니었다.

개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통신이 끊긴 이유부터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님?

사고가 나서 그랬으면 무슨 일 없었냐? 괜찮으냐? 이런 이야기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따로 찾아와서 그러지는 못한다고 해도 얼굴을 마주쳤으면 당연히 이야기할 일인데, 처맞고도 몰라?

‘그러니까 이거. 그런 거?’

자기가 뭔 짓을 했는지, 다른 사람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는 인간. 못하는 게 아니라 않는 인간. 그런 사람들 제법 있었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여야만 하는 종자들.

응. 그런 거 같다.

김 양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다리에 구멍이나 좀 내주고 교육 끝내려고 했더니, 아니었다. 이런 애들이 꼭 개념 가출한 짓을 하니까.

후드의 다리를 겨눴던 총구가 순식간에 머리통으로 옮겨졌다.

그 짧은 순간. 총구가 자기 머리통을 향할 줄은 몰랐던 후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진짜 쏜다고?’ 증오와 분노를 넘어선 죽음의 공포가 그녀의 동공을 가득 채웠다.

꼭 뒈질 때가 돼서들 저런다니까.

김 양이 담담하게 말했다.

“채식이 잘 가라. 눈에 힘 빼고.”

퍽-! 탕! 꺼윽-!

3가지 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어디선가 날아온 방울토마토가 김 양의 글록-17의 총신을 때리며 터지는 소리, 빗겨진 총알이 후드의 어깨를 관통하고 바닥에 튕기면서 만든 파쇄음, 총에 맞은 후드가 비명 지르며 쓰러지는 것까지. 한순간에 벌어졌다.

후드가 총에 맞고 쓰러지자, 파란색 불빛이 발작하려는 순간.

부가가가각-----

기괴한 소리와 함께 푸른빛이 발광하는 천장을 썰어버리는 칼날.

“······.”

진득한 살기가 거미줄처럼 사방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끄흑- 끄흐···

총에 맞아 신음 흘리던 후드도 잠잠해졌다.

삽시간에 적막이 내려앉은 공간. 침묵을 뚫고 마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뭘 하니?”

패는 것도 좋고 쏘는 것도 좋은데. 나한테 묻지도 않고 죽이려고 한 건가? 그런 건가? 마루의 눈빛에 김 양이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어- 그-

그?

그러니까.

“손가락이 미끄러졌음.”

응.

채식 때문에 손가락에 힘이 빡쳐서 그랬음. 진짜임.

손가락에 힘이 빠진 게 아니라, 힘이 빡쳐서 그랬다는 변명에 마루는 가만히 김 양을 바라봤다.

빤히- 뚫어지게 쳐다보는 마루의 눈빛을 이리저리 피하는 김 양의 이마에 삐질삐질 땀방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

김 양은 조용히 구석으로 가서 무릎 꿇고 두 손을 들었다.

마루의 차가운 시선이 후드를 향했다. 깨진 고글 속 보이는 눈빛은 방금 죽을 뻔했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눈빛이었다.

신실한 마이클 PD가 입주 신청자들 엄숙하게 면접 선별하는 중이라, 대충 적당한 수준이라면 인원 충원에는 문제가 없었다.

‘정리가 한 번 필요하긴 한데.’

이제까지 한 걸 생각하면, 보안 쪽으로는 별문제 없던 후드였다. 그놈의 신세계 창조 같은 이상한 정신세계만 아니라면 딱히···.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 듣던 애였고, 사만다라는 성장형 인공지능까지 만든 전문가. 그런 애를 그냥 털어버리기엔 아까운 게 사실이었다.

눈 딱 감고 정리한다고 쳐도 문제. 슈퍼컴퓨터를 구성하는 유닛 3개 가운데 하나를 차지한 인공지능 사만다가 발작을 일으킬 게 뻔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발작이었지.’

후드를 지키려고 하는 건 좋은데, 발작이면 곤란했다. 여러모로 슈퍼 트리오가 쓸만하기도 했고 사람한테 맡기는 것보다 일 처리가 확실한 편인데 하나 빼기도 그랬다.

이걸 어쩌나.

마루는 가만히 후드를 내려다봤다. 손을 댔으니 지금 뿌리를 뽑는 게 좋았다. 어떻게 뿌리 뽑아야 할까? 김 양이 하는 것을 봤지만, 매로 고치려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계속 패고 또 패면 바뀌기야 하겠지만, 머리가 ‘메롱’ 해버리면 그것도 문제. 마루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자, 인공지능 사만다가 호들갑 떨었다.

[총상 환자 발생. A1 식당 구역에서 총상 환자 발생.]

[구급대원은 신속하게 현장으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총상을 입은 곳을 누른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피. 후드가 까무룩 쓰러졌다.

[총상 환자 발생. A1 식당 구역에서 총상 환자 발생.]

[구급대원은 신속하게 현장으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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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겁지겁 달려오는 간호사의 바운스에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간 마루가 큼- 헛기침했다.

“총상이요? 어디요? 누가요?”

간호사의 시선이 구석에서 가만히 두 손을 들고 있던 김 양과 마주쳤다. 휙 고개를 돌리는 김 양. 간호사는 무슨 일이 터졌는지 알겠다는 표정을 감췄다.

후드의 오른쪽 쇄골과 어깨 사이를 관통한 총상에선 피가 제법 많이 나고 있었다. 간호사와 구급대원들은 후드를 냉큼 병상에 올려 빌딩에 있는 치료실로 향했다.

한참 총구멍과 씨름하던 간호사가 한시름 놨다는 듯 숨을 몰아쉬었다.

“지혈은 됐는데, 총상 위치가 좋지 않은데요. 큰 병원에서 수술해야 할 것 같아요.”

병원도 바로 옆에 있고 피도 일단 멎었으니까, 수술 일정 잡으면 된다고 했다.

“여기서는 힘들고?”

“여기서요? 수술하려면 외과. 그것도 총상을 다뤄본 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없잖아요. 디트로이트는 총상 환자가 많아서 제가 있는 병원에만 가도 수술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텐데, 왜 여기서 하시려고 하는 거죠?”

간호사가 핵심을 찔렀다.

“밖의 병원에서 수술하면 총상 관련 수사가 들어오지 않겠어?”

“그. 그렇겠죠?”

아직 치안이 유지되고 있었다. 죽여서 묻어버렸으면 모를까, 병원에서 총상 신고하면 사건 현장이니 어쩌니, 수하겠다고 들어오는 경찰들 어떻게 하나?

경찰만 들어올까? 그렇지 않아도 연방수사국에서 한 다리 걸치려고 벼르고 있는 판이라,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들어오려고 할 것이다.

“경찰이든 뭐든 들여보내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신고하지 않았을까요?”

소고기 회식하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국토안보국 요원들이었고 김 양의 지지자들인 관계로 문제없었다.

누군가 신고했다고 하더라도 슈퍼 트리오가 알아서 중간에 커트했을 테고. 신고한 사람은 바로 방출 대상에 올라갔을 거다.

“그래도 총 맞은 부위가 좋지 않아서요.”

총알이 영 좋지 않을 곳을 관통한지라, 신경에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근처에 신경 다발이 지나가서 걱정돼요. 팔로 이어지는 신경에 상처를 입었으면, 장애가 생길 위험도 있어요.”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마루가 약을 꺼내 들었다. 하나는 튜브에 담긴 연고제 다른 하나는 옅은 핑크빛 주사제. 핑크빛 주사제를 본 간호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거. 아직 남아있었어요?”

살짝 고개를 끄덕인 마루. 일본 실험실에서 챙겨온 십여 개가 더 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간호사의 시선이 연고제를 향했다.

“이것도 그런 약인가요?”

“이번에 미군에서 새로 만든 지혈제, 수술보조제다.”

마루가 튜브를 간호사에게 넘겼다. 튜브에 깨알 같이 적힌 글자를 꼼꼼하게 읽은 간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굉장한 약이기는 한데, 저것보다 좋을 것 같지는 않네요.”

분홍색으로 미미하게 빛을 발하는 약을 보고 말하는 간호사.

“그렇겠지.”

이걸 쓰면 장애 걱정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냥 쓰기는 아쉽고. 마루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봤다. 역시 CCTV 하나가 이쪽을 향해 있었다. 파란색 빛이 들어온 CCTV.

“사만다. 들었지? 이걸 쓰면 장애 걱정 없단다.”

마루가 핑크빛 주사제를 들어 올렸다.

[···제니아 로든은 뛰어난 컴퓨터, 프로그램 전문가로 인공지능과 해킹에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녀의 팔에 장애가 생긴다면 것은 직무 수행 능력 저하가 뚜렷할 것으로···]

중간에 끊는 마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건 됐고. 솔직히 말하자면 얘랑 너는 계륵이야. 능력이 있나 싶더니, 뒤로 널 슈퍼컴퓨터에 넣었잖아. 나한테 말도 없이 말이지.”

[······.]

“그것도 모자라, 오퍼레이터가 작전 중인 동료를 내버려두고 뭘 잘못했는지 모르더군.”

[오해입니다. 민간인에게 작전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건 무리라고 판단됩니다. 당시 잭 니스 박사, 대표님과 함께 컴퓨터실로 자리를 이동했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문제라고. 작전 중이라고 말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게 힘들면 최소한 ‘자리를 옮긴다.’ 그렇게 말하고 갈 수는 있는 거잖아.”

[······.]

마루가 차근차근 설명했다. 인공지능도 그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할 수 없겠는지 조용했다.

“어이없는 건 너도 마찬가지고, 내 슈퍼컴퓨터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한다는 짓이 얘만 신경 쓰고 있단 말이지. 그러다가 갑자기 너랑 애랑 휙 돌아서. 그 ‘신세계 창조.’ 어쩌고 해버리겠다고 하면 내 꼴이 어떻게 되겠어.”

[···그러지 않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묻지. 후드가 이유를 막론하고 작전 중이던 동료를 버려뒀다는 걸 인정하나?”

김 양의 교육이 정당했음을 인정하라는 말이었다.

[···동의합니다.]

“전시였다면 중형을 받았을 정도로 위중한 잘못이라는 데 동의하나?”

총을 쏴서 죽이려고 한 것도 받아들이라는 의미였다.

[···동의합니다.]

“좋아. 너희 둘. 기회를 주겠다. 마지막 기회야.”

마루가 후드의 오른쪽 어깨와 팔을 확인했다. 팔의 30% 정도에 심한 화상 자국이 뚜렷했다. 손가락 일부는 더 심했고.

환부를 살핀 마루가 화상이 심한 부분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미끄러지는 메스. 엉겨 붙은 조직이 순식간에 해체되기 시작했다.

실로 놀라운 속도에 간호사가 ‘에?’, ‘에-에에-.’, ‘우-우소.’하는 소리를 냈다.

빨갛게 껍질이 벗겨진 오른팔에 핑크빛 약제가 뿌려지자, 하얗게 거품이 일며 피부가 실시간으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화상으로 뭉개진 손톱이 하얗고 깨끗한 손톱으로 변했고, 가죽이 벗겨진 환부가 우윳빛 피부로 덮였다.

그것은 마치 기적과 같았다. 마루가 분홍색 약을 주사기에 조금 채운 뒤 간호사에게 건네줬다.

“총상 안쪽에 넣어.”

“예? 예.”

주사기로 총상 안쪽에 약을 넣자, 순식간에 살이 차오르는 모습. 화상 자국 위에 하얗게 동그란 피부가 생경했다.

“이제부터는 사람들이 작전 나가면. 제대로 신경 써라. 문제가 생기면, 너랑 얘가 제일 먼저 정리당할 테니까.”

[······.]

사람으로 뭉뚱그렸지만 김 양에게 엉뚱한 짓 하지 말라는 경고.

“내 기록을 보면, 난 다른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아. 배신하지 않고 기브 앤 테이크만 확실하다면 말이지.”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일거리를 하나 주지. 한국에 있는 내 친구 말이야. 미국 이름으로 버나드 그린, 일본 이름으로 스즈키 스바루, 한국 이름으로 김기순. 얘를 찾고. 여기로 데려올 방법을 만들어봐.”

기순이 찾아와.

파란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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