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18
속보를 보라고?
덴 브라운 과장이 직접 문자를 보낼 정도라면 무슨 일?
TV를 켜자, 긴장한 표정의 앵커가 전문가들과 말하고 있었다.
화면 아래 굵직하게 적힌 글자들이 횡으로 지나갔다.
[러시아. 핵시설 가동 징후. 핵미사일에 연료 주입하나?]
[중국. 인민해방군 북부 전대. 북한 압록강 유역으로 병력 집중.]
[텍사스 주, 연방 탈퇴 가능성 시사.]
하나도 아니고 3개였다.
속보로 전했다는 건. 심각한 상황이라는 소리.
러시아 핵시설 가동이면 핵 쓸 일이 생겼다는 건가? 설마?
중국이 북한 접경에 군대를 배치한다고?
텍사스는 왜?
[···북한은 이번 변이 바이러스 사태로 막대한 피해가 났습니다. 거기에 이번 겨울에 평년보다 눈이 내리지 않아 겨울 가뭄이 심했을 뿐 아니라, 봄 가뭄도 이어질 전망입니다.]
[작년 작황이 좋지 않은 북한이었는데요. 여기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분쟁으로 곡물 수급이 불안해진 가운데, 중국에서도 작년 폭우로 곡물 시장이 불안정했었지요?]
[···현재 중국산 곡물은 작년 홍수 때문에 생산량이 많이 감소했고, 러시아산 곡물은 작황은 좋으나 무역 규제를 받게 되면서··· 북한으로서는 굉장히 힘든 상황이 됐다고 보입니다.]
[중국이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인민해방군을 집결시키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입니까?]
채널을 돌리자 이쪽도 속보였다.
[텍사스 주가 연방 정부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현재 벌어지는 이상 사태에 대해 연방 정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연방 탈퇴를 거론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가요?]
[연방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이번 변이 바이러스 확산 대응도 기대 이하였다는 평가와 함께, 텍사스 주민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변이 바이러스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잘 대응했다는 쪽도 있는데요, 어째서 텍사스에서는 아니라고 하는 건가요?]
[최근 벌어지고 있는 변이 코로나 감염자들에 대한 무차별적 강제 수용에 대해, 연방 정부가 숨기고 있는 정보가 있다는 제보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연방 정부가 중요한 정보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백악관 대변인은 공식적인 논평을 통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정보 은폐는 불가능하다면서 텍사스 주 정부의 탈퇴 발언은 매우 위험한 주장이며, 유감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연방 정부에서는 숨기는 것이 없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텍사스 주 정부에서는 백악관 대변인의 말을 강하게 반박했는데요. 거짓으로 속일 수 있는 시대는 갔다면서 연방 정부가 텍사스 주민들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텍사스 주 정부는 주민의 자유와 안전을 위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투명한 정보 공개를 재차 요구한 상황입니다.]
이런.
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넘치는 상황에서 이렇게 터지면 좋지 않았다. 그리고 텍사스에서 주장하는 숨긴 정보. 변이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 이야기 같았다.
분노조절 장애 이후 서서히 퇴화하는 기억력과 지능. 마치 치매 환자처럼 변하는 증상. 이후 변이가 시작되면 뇌와 심장을 탐하기 시작한다.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지고 이성을 되찾는다. 그렇다고 인간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었지만.
만약 변이 바이러스들을 강제 수용한 수용소에서 사건이 터졌다면? 변종이 생겨 일을 벌인 것이 익명의 제보를 통해 텍사스 주 정부에 들어갔다면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쨌든 국토안보국의 도움을 받아 조용히 내보낼 사람 내보내고 새로 입주 받을 사람 요청하고 그러려고 했는데 일이 터버렸다.
“뭐임?”
무슨 123? 김 양이 물을 뚝뚝 흘리며 옆에 있는 선배드에 걸터앉았다.
“여기저기 문제가 많다는 뉴스지.”
그러니까 세상이 참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는 소리랄까?
“밥 안 먹음?”
그러면 그렇지 마루가 헛웃음을 지었다.
“한국에서 사 온 한우 투쁠 있지? 여기 식당 사람들이 끝냈다더라.”
“?”
자 절망해라.
절망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마루를 향해 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반 잘라서 내 방 냉장고에 넣어놨는데?”
응. 절반은 내 거. 일주일 전에 이미 잘라 놨음.
일 갔다 왔는데 고기 없으면 어떡함? 미리미리 챙겨 놔야지.
“고기 먹을 것임.”
난 한우 투쁠 먹은 건데 백정은?
김 양의 눈빛에 마루는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같이 먹자.
치이이이익-
숯불 위에서 춤추는 맛있는 소리.
소리마저 맛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양은 가만히 고기를 바라봤다. 그것은 한우이고 진정으로 투쁠이기 때문이리라. 김 양은 작게 주억거렸다.
맛있는 고기는 많았다. 블랙 앵거스도 나쁘지 않았고, 프라임 등급도 좋았다. 역시 미국 총과 고기가 근본인 나라답게 고기가 한 고기 했다.
그렇더라도 김 양의 입맛에는 한우가 최고였다. 신토불이라고 할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우를 먹으면 전신에 힘이 솟는 것 같았다.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되는 것 같았고.
그런데 말이야.
흔쾌히 같이 먹기로 하긴 했는데 말이야.
고깃값도 백정이 냈고 들고 오기도 백정이 했지만 말이야.
한 번에 두 점씩 먹는 건 반칙이지.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지긋이 바라보는 김 양의 시선. 두 점이 잡힌 젓가락과 마루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반칙? 두 점? 진짜?
큼- 음-
모르는 척 꿀떡 삼킨 마루가 백김치로 입을 가셨다.
“입주자들 분류도 하고 내보낼 사람들 내보내고 그래야 해서. 빨리 먹고 일어나야지.”
변명?
쿡- 김 양이 세 점을 한 번에 집었다. 앙- 움늄늄
‘이것은···.’
번쩍.
동그랗게 커지는 눈. 육즙이 3배, 만족도는 6배.
과연.
이래서 한 번에 여러 점을 겹쳐서 먹은 것이었군.
왜 이런 신세계를 모르고 살았지?
인생을 손해 본 느낌이 든 김 양의 눈빛이 칙칙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니까 지금껏 이렇게 2점 3점씩 혼자만 먹었다는 것?
이렇게 먹어보라는 말도 없이 그랬다는 것?
그런 것?
김 양이 그러거나 말거나 부지런히 배를 채운 마루는 기어코 먼저 일어섰다.
“덕분에 잘 먹었네. 앞으로 많이 바빠질 테니까. 푹 쉬어.”
“!”
아니 또 밖에서 굴리겠다는 말?
김 양의 항거가 시작되기 전, 자리를 뜨는 마루였다.
치이이익---
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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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은 마루가 통제실로 향했다. 통제실로 들어가는 입구 복도에는 무인 포탑이 방어하고 있었다.
본래 벽과 천장 안쪽에 들어가 있는 형식이었지만, 스파이를 한 차례 정리한 이후로. 일부 드러내 놓고 있었다. 사람이 없어도 가능한지, 미리미리 시범 운영할 필요가 있었다.
기이이잉-
동작 감지장치와 연동된 포탑은 자동으로 총구를 겨누는 모습. 마루는 CCTV를 향해 스마트 워치를 찬 팔을 한 번 흔든 뒤 발걸음을 옮겼다.
나중에는 안면인식과 홍채인식을 통해 작동하도록 바꾼다고 했는데, 그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통제실을 들락날락할 사람은 후드, 마루, 김 양 정도였으니까.
스마트 워치에서 암호키를 확인했는지 무인 포탑이 조준을 풀고 대기상태로 돌아갔다. 딱히 전조랄 것이 없는 움직임.
확실히 기계는 이런 부분이 조심스러웠다. 사람이나 동물이라면 분위기나 살기로 미리 대비할 수 있었는데 기계는 그런 게 없었으니까.
통제실 안에는 뭔가 혼합액에 빨대를 꽂은 후드가 작업 중이었다. 모니터를 보니, 뉴스 속보에 나온 일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경쾌하게 키보드를 두들기던 후드가 혼합액을 빨아먹다가 마루를 발견했다. 음료를 마시기 위해 살짝 내렸던 마스크를 화들짝 올리는 모습.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입주민들 자료를 잘 보기는 했는데,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어서.”
“역시. 그렇습니까?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대부분 내보내려고. 기술자 위주로 구해야 하는데.”
어제는 존댓말을 하더니 오늘은 또 이랬다. 간호사나 킴을 대할 때는 그러지 않으면서 유독 자신한테만 이러는 것 같았다. 후드는 블라디마루 여러 기관에서 코드네임 블레이드나 소드마스터 혹은 부처(butcher)로 불리는 사람을 힐끗 쳐다봤다.
살벌한 코드네임과는 달리 곱상한 외모.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CCTV로 봤던 장면, 피바다를 만드는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전신이 가늘게 떨렸다.
후드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음성변조기가 필터링해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광고를 낸다고 해도 지원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사실상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점이 제일 큰 마이너스였다.
무엇보다 미국은 노동가치가 생각보다 잘 유지되고 있는 나라였다. 그러니까 배관, 용접, 도배, 타일, 목수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생활하고 있다는 말.
잘살고 있는데, 굳이 생활의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빌딩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현재까지는.
“난감하네.”
필수 영역별 기술자들이 2~3명은 있어야 나중에 일이 터졌을 때 잘 굴러갈 수 있었다. 국토안보국 라인을 써서 사람들 모집하려고 했는데 그쪽은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도움받기는 틀려먹었다.
막상 진짜 위험한 상황이 된다면 사람들이 넘치기는 할 거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난 뒤, 필요한 기술 있는 사람들만 선별해서 받겠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차피 기술이 없는 사람은 내보내야 했다. 다른 기관 핑계를 대지 말고 대놓고 기술이 없어서 내보낸다고 말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이곳에 관심이 있는 기관에서는 기술자들을 구해서라도 밀어 넣을 게 분명했다.
“확실히 인력확보는 되겠지만. 중요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면 더 피곤해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 그렇겠죠?”
후드의 생각이 나쁜 건 아니었다. 마루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합시다. 일단 사람들부터 내보내고 방송국에 광고를 내는 거로 하죠.”
기관에서도 밀어 넣겠지만, 요즘 여러모로 불안해지는 상황이니, 누가 알겠는가? 갈 곳 없는 기술자들이 몰려들지.
저녁.
예고 대로 입주민들과의 대화를 시작한 마루였다. 빌딩공사가 마무리됐으니, 이제 나갈 사람은 나가야 한다고 대놓고 말했다.
“여기 이름이 적힌 분들은 3일 안으로 거처를 비워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나가라니요. 이건 아니죠.”
“공사도 끝났고 보안 시스템도 정상으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 없는 인력을 제 빌딩에 그냥 둘 이유가 없어서 말입니다. 당연한 일 아닙니까? 공사 끝났으면 숙소 비워주는 건.”
빌딩 주인인 마루가 나가라고 하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보증금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고, 임대차 계약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전략사령부와 질병통제센터 사람들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자동 포탑으로 무인 보안 들어가서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 들어가면 무조건 공격한다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모듈 원전 보안과 감찰을 한다는 전략사령부 사람들과 생화학 실험, 신약 제조를 감시 통제하겠다며 들어온 질병통제센터 사람들을 내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입주민 물갈이가 시작됐다.
문제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벌어졌다. 다른 기관 사람들이 비교적 순순히 나간 것에 비해, 국토안보국 은퇴 요원이라든지, 협력업체 직원들 같은 경우엔 잡음이 생겼다.
이들은 빌딩을 요새로 마개조하는 것을 보고, 앞으로 살아남기 힘든 시기가 닥칠 것을 확신했다. 국토안보국과 연결됐다는 연줄 이외에 딱히 전문 기술이 없었기에 나갈 수 없다고 버티기 시작했다.
“여기 들어오려고 집도 다 정리하고 들어왔는데 그냥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애들도 이제 적응하고 있는데 나갈 수 없어요.”
“기술이 없다니요. 보안도 기술입니다.”
“창고 관리도 중요합니다. 재고 파악이 쉬운 일인지 아십니까?”
“단순 배달이라니요. 엄연히 물류, 유통 전문가입니다.”
마루는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보곤 한마디 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곳은 모듈 원전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비상 서버에, 전략 자원인 슈퍼컴퓨터까지 있는 비상 빌딩인데, 허가받지 않은 자들이 기술도 없으면서 엉덩이를 비비고 눌러앉겠다고?
죽고 싶나?
뭉클 서늘하게 침습하는 살기에 아우성치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빽빽 울던 아이가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듯했다.
마루는 아이를 방패 삼은 여자를 한 번 노려보고는 살기를 풀었다.
“3일. 3일 안에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