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11
텍사스에서 보내온 영상의 시작은 평범했다.
농장에서 일상적으로 한 번씩 하는 멧돼지 사냥. 그냥 두면 농작물을 싹쓸이하고 마을에 침입, 사람과 가축을 위협하는 것들을 잡는 일이라 사냥꾼들이 의욕에 차 있었다.
멧돼지가 출몰하는 길목에 매복한 채 경계서는 모습을 시작으로 멧돼지 사냥이 시작됐다. 자동 소총이라도 들고 온 건지, 총소리가 요란했다.
하얗게 타오르는 예광탄 불빛을 따라 쏟아진 총알들이 멧돼지들을 덮쳤다. 깜짝 놀란 멧돼지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내달리는 멧돼지를 향해 꼬리를 물고 따라가는 불빛들, 그렇게 숲으로 사라진 멧돼지들이 적외선 카메라에 담겼다.
영상 속 사냥꾼들이 욕하는 소리가 생생했다. 그렇게 쏴댔는데, 죽은 멧돼지가 한 마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상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는 헬기를 타고 사냥에 나선 이들이 찍은 영상이었다. 기관총을 매단 헬기를 타고 웃는 사냥꾼들의 모습이 이윽고 경악에 찬 얼굴로 변했다.
적외선 카메라로 봤을 때는 밤이어서 크기 가늠이 쉽지 않았는데, 헬기에서 내려다보니 확실히 멧돼지들 덩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멧돼지라기보다는 코뿔소 크기라고 해야 할까?
멧돼지를 추격하며 날아가는 헬기. 쏟아지는 기관총탄. 7.62mm 총알이 멧돼지 떼를 훑고 지나갔지만, 놈들은 계속해서 도망쳤다.
기관총을 쏘던 사냥꾼이 내뱉는 욕설이 영상을 가득 채웠다.
“하- 미치겠군.”
마지막 영상. 코뿔소 크기의 멧돼지 앞에서 웃는 사냥꾼들의 모습과 보위 나이프로 멧돼지를 해체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그리고 가죽을 자르다가 멧돼지 털에 찔려 피를 흘리는 영상이었다.
‘멧돼지 털이 바늘도 아니고.’
사냥꾼들도 신기했는지, 멧돼지 털을 뽑아서 나무에 박아 보기도 하면서 낄낄대고 있었다. 저게 웃을 일인가?
덴 브라운 과장의 속 쓰림, 위산과다는 이미 한계였다. 제산제를 먹은 과장은 곧바로 텍사스 지부에 전화를 걸었다.
“조금 전에 보낸 영상 말이야.”
[예.]
“멧돼지 그거 확보했나?”
[못했습니다. 사냥꾼들이 경매에 올린다고 해서 말입니다.]
미친
흐흐흐흐
실성한 사람처럼 실실 웃던 덴 브라운 과장이 소리 질렀다.
“국가안보가 달렸는데 그걸 그냥 둬? 자네 제정신인가? 확보했어야지! 경매에 올린다고 그냥 뒀다는 게 말이 되나!”
[···과장님 여긴 뉴욕이 아니고 텍사스입니다.]
중무장한 사냥꾼들 앞에서 국가안보니까 그냥 가져가겠다고 하라고요? 당장 경매에 올리겠다는데 보상은 얼마나 해줘야 합니까? 조용히 순직하라는 말입니까? 아니면 소송 먹으라고 하는 이야기입니까?
“아- 그래. 그럼 직접 잡아야지. 자네가 책임지고 멧돼지 잡아서 연구소로 보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화기를 부술 것처럼 끊은 과장이 숨을 깊게 쉬었다.
정보기관 요원이 고작 사냥꾼들 눈치를 살핀다는 게 정상인가? 대체 어디까지 영락한 건지, 어디서부터 문제가 된 건지 답답했다.
일단 텍사스에 괴물 멧돼지가 출현하기 시작했다는 소리는 다른 지역에서도 저런 게 나올 수 있다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종종 간과하는데 개와 고양이, 멧돼지는 사실 맹수였다. 그나마 개는 들개도 있고 코요테도 있어서 경각심을 갖지만, 고양이나 멧돼지는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길고양이 한 마리가 뒷동산에 있는 중소형 포유류와 조류를 몰살하는 것을 알고도 그럴 수 있을까? 먹지도 않으면서 놀이 삼아 조그만 동물들을 사냥하는 것을 보고도 마냥 귀엽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고양이가 일본에서는 표범 크기로 커졌다. 그렇게 커진 고양이가 뭘 사냥했을까? 도쿄 인근에 출몰한 거대 고양이들의 주식은 무엇이었을까?
“유기견과 길고양이를 비롯해 하수도 시궁창에 있는 쥐새끼까지 전부 죽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보고서 작성해봐. 근거는 일본 도쿄 상황과 오늘 텍사스에서 보낸 영상으로 하고.”
[괜찮겠습니까? 동물애호가들과 동물보호 단체에서 반대가 극심할 텐데요.]
“일본 고양이 영상, 텍사스 멧돼지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겠나? 그래도 해. 멧돼지가 코뿔소 크기가 됐는데, 다른 동물들은? 고양이고 개고 지금 크기로 있을 것 같아? 위험등급 최상으로 해서 보고서 만들어봐. 나머지는 내가 하지. 최대한 빨리.”
[알겠습니다.]
덴 브라운 과장의 걱정은 곧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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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은 때아닌 등산객들로 북적였다.
작은 일에도 분노하는 사람들 때문에 폭력 사건이 치솟았고, 이를 막기 위해 주 방위군과 경찰들이 도시를 순찰했다.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분노조절을 못 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렇게 감염된 사람들은 어디론가 격리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누군가는 음모론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실제 상황이라고 했지만, 대체로 도시의 치안은 예전보다 더 좋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활동적인 사람들은 바이러스로 통제된 도시의 삶에 지쳐가고 있었다. 여행이 필요했고 자연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된 곳이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이었다.
“거기 너무 가까이 갔습니다. 뒤로 빠지세요.”
주변 사람의 만류에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여자 등산객.
“이봐요. 위험하다니까!”
“그냥 가자. 알아서 하겠지.”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서는 야생동물 가까이 접근해서 촬영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SNS가 사람 버린다니까.”
“신고해야지. 저런 사람은 벌금 맞아야 정신 차려.”
최소한 300피트(91m) 거리를 유지하도록 한 규정도 있었고 야생동물 보호법에서도 고의적인 접근은 불법이었다.
“거기 여자분 지금 불법 촬영하는 겁니다.”
들리지 않는 척 계속 사진을 찍고 올리는 것을 본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여자의 일행들도 지나가던 등산객들도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가던 등산객 가운데 한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새끼 곰이었지?”
“어. 귀엽긴 하더라.”
말을 꺼냈던 등산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왜? 무슨 일인데?”
“지금 2월 중순이잖아.”
일행은 뭐가 문제냐는 듯 말했다.
“그런데?”
“2월 중순이면 겨울잠을 자고 있어야 할 때라고. 만약 겨울잠에서 깼다면 제일 굶주렸을 시기 아니야?”
새끼가 있으니 근처에 반드시 어미가 있을 게 분명했다.
“야. 뛰어-”
“어? 왜?”
한 남자가 친구를 데리고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숨이 턱까지 차오를 즈음 저 멀리서 찢어지는 비명이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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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 스톤에서 일어난 사건은 곧 대서특필됐다.
부상자 없이 사망자만 무려 23명이 생긴 참사였다. 사냥용 라이플에 10방 넘게 맞았음에도 끄떡없이 덤벼든 그리즐리 베어에게 죽은 레인저들만 7명이었다. 여기에 희생된 등산객만 16명.
그리즐리 베어만 문제가 아니었다. 회색 늑대도 심각한 위협이었다. 이쪽도 인간을 사냥감으로 찍었는지, 곰을 잡으러 올라갔다가 늑대 무리에게 역으로 사냥당한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래서 입산 금지를 했더니, 이제는 국립공원 인근 마을까지 내려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야생동물들이었다.
“덩치가 커진 게 원인입니다.”
커진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질의 먹이가 필요했다. 때마침 보인 인간들, 한 번 먹어보니, 다른 걸 사냥하기보다 쉬웠고 맛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사람들을 노리기 시작한 동물들이었다.
“사냥꾼들은 이대로 둘 생각입니까?”
20명이 넘게 희생됐다는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식인 곰과 늑대를 잡겠다는 사냥꾼들이 전국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명성을 높일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소셜미디어 관련된 사람들도 무장하고 옐로우 스톤 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헬기도 벌써 3대나 추락했습니다.”
“인근 지역 전체를 비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해야 할 판이에요.”
미친 새들이 공원 근처를 비행하는 헬기와 드론을 공격하고 있었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을 불바다로 만들자는 말이 결단입니까?”
“옐로우 스톤 다음에는 로키 산맥을 태워야 할 테고, 캐나다 접경 지역도 모조리 태우자고 할 겁니까?”
“그런 말이 아니라. 당장 변이를 일으킨 짐승들은 무슨 방법을 쓰든 빨리 없애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옳습니다. 그런 것들이 더 퍼지지 않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변이 바이러스 때문인데, 태운다고 될 일입니까? 확산을 막아야지요. 확산을.”
“그래서 어떻게 막겠다는 겁니까? 전국적으로 다 퍼졌는데.”
회의실이 시끄러워졌다.
덴 브라운 과장은 두통약을 씹었다. 상황은 시시각각 나빠지고 있었다. 도시를 중심으로 치안이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시골을 중심으로 연락이 끊기는 마을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었다.
주 방위군을 보내 연락이 끊긴 마을들을 확인하고 정리함에도, 희생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변이를 일으킨 동물들까지 겹쳤다.
가득 찬 물컵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 어느 순간까지는 버티다가 한 번에 넘치는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
시골 외딴 마을이 아니라, 농축산 지역에서 일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 급속도로 비축된 농축산물이 줄어들고, 도시로 가는 공급망이 끊기게 된다면? 마트에 생필품이 떨어져도 치안이 유지될까? 회의적이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국토안보국은 뭘 하고 있던 겁니까?”
“미리 개체 수를 줄여 놔야 한다는 보고서를 보냈는데, 그걸 무시한 분들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일을 가지고 말하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대책을 말해 보세요, 대책을.”
미친 새들 때문에 근접 저고도 항공지원은 불가능했다. 작전지역은 산악지형으로 기갑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엑소슈트를 대량생산해야 합니다. 이미 생산한 생산분을 최대한 빨리 현장에 보급해 화력을 보강해야 합니다.”
엑소슈트와 기갑병의 빠른 보급이 필요했다. 3.5~4m 기갑병이라면 그리즐리 베어에도 밀리지 않을 것이다. 인간형 기체 특유의 적응성을 생각해 본다면 산악지형에서도 충분히 쓸 수 있었다.
“동시에 도시에 묶여 있는 병력을 최대한 빼서, 주요 생산 거점과 시설을 확보하는 데 투입해야 합니다.”
주요 생산지를 지켜야 했다. 그리고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지역을 적은 병력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계엄령을 선포해야 합니다.”
덴 브라운의 주장에, 회의실이 침묵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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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칼을 손질하며 말했다.
“몇 명이나 나갔어?”
“4명이 나갔습니다.”
4명이라. 생각보다 너무 적은데?
현재 마루 빌딩에 입주한 사람들은 무려 5백 명이 넘었다. 국토안보국 직원과 그 가족들이 많았지만, 연구소 연구원들과 생산기술직 사람들과 그 가족들도 제법 많았다.
거기에 전략방위사령부 산하 애들이 모듈 원전 감찰하겠다고 있었고, 질병통제센터 애들도 자리 잡고 버티는 상황. 여기에 중간중간 서비스직, 기술직으로 충원된 인력을 생각하면 4명은 확실히 적은 숫자였다.
“스파이 놈들 있겠지?”
“그쪽으로 비밀리에 정보를 주고받은 흔적이 남은 사람들이 9명 남아있습니다.”
스르르릉- 칼을 칼집에 넣는 마루의 모습에 후드는 살짝 등이 시렸다.
“증거는 확실하고?”
“통화, 문자, 이메일 증거가 있습니다.”
“제 발로 곱게 나갈 기회를 줬는데도 버티는 걸 보면. 물로 보나?”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
“어떤 놈들인데? 자료 좀 줘봐.”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정리해 버려야지.
삐-익-
[···왜 안 옴? 교대 없음?]
“처리할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조금 더 고생해라.”
[언제까지 돌아야 함?]
“주변 지역은 일단 한 번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마루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인 김 양이 말했다.
[이쪽 마을에는 생존자 없는데도 정리?]
생존자가 없다고? 총기 자유화인 나라에서?
“지금 거기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