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02화 (202/280)

러스트 [RUST]-202

길게 늘어진 총성의 끝.

두 병사의 머리통이 동시에 터졌다. 털썩- 회색으로 칙칙한 얼음 바닥에 붉은색이 덧칠됐다.

“이 괴물년이!”

“죽어!”

파파파팍!

ASh-12.7mm 돌격기관단총이 목표를 향해 불을 뿜었지만, 덧없었다. 둔탁한 총성과 함께, 돌격기관단총을 쏴대던 병사의 머리통이 산산이 부서졌다.

박살 난 머리통에서 흘러내린 핏물, 사방에 흥건한 피가 서서히 모여 웅덩이를 이뤘다.

히이익-

도망치는 병사의 뒤통수를 겨냥한 RSh-12 리볼버. 방아쇠를 느긋하게 당기자, 틱- 공이가 빈 실린더를 때렸다.

?

여자는 들고 있던 리볼버를 주저하지 않고 던졌다. 빨랫줄처럼 날아간 2.2kg짜리 쇳덩이가 도망치는 사내의 뒤통수를 박살 냈다.

철푸덕-

6발이었는데, 이건 5발이었다. 익숙해지지 않았다. 2발씩 3번. 2자루의 총으로 6번. 12명. 근데, 이건 5번 2자루. 10발. 오래된 습관은 낙인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손가락 크기의 총알을 실린더에 채운 뒤 한 바퀴 돌렸다. 차르륵-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12.7mm 총탄의 파괴력은 확실했으니까. 방탄복을 입었든 어쨌든 제대로 꽂히면 한 방이었다. 특히 머리를 쏘면 확인사살이 필요 없을 정도로 결과가 좋았다.

끄으으윽

끄으으윽

계급 좀 있어 보이는 놈을 골라 배에 갈겼는데, 다행히 살아있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

“왜 날 공격했지?”

여자의 질문에 총에 맞아 헐떡이는 특수부대원은 어이없었다. 자기가 습격해 놓고는 이게 무슨 개소린가?

“내가 중국어를 몰라서 말이지. 이게 무슨 말이야?”

여자가 품에서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특수부대원들이 사용하는 통신기. 화면 속에 있는 얼굴은 지금 나른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여자와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영상 속 사람의 얼굴에 길게 간 흉터를 뺀다면, 아주 닮은 자매라고 할 정도.

대답이 늦자, 여자가 지긋이 병사의 다리를 밟았다.

“끄아아아- 화면 속에 있는 여자를 생포! 여의치 않으면 사살. 시체를 확보할 것.”

“왜? 이유는? 이유가 뭐야? 밑에 뭐라고 많이 적혀 있는데?”

“아아악- 회춘- 여자가 회춘! 당에서! 최우선으로 확보하라고!”

“···그래? 근데 내 총은 어딨어?”

씨발 그걸 왜 나한테···.

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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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호텔로 향하는 도로 저편에서는 포실포실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이와이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경찰차들, 어째 일본으로 갈 때보다 더 시끄러운 것 같았다.

“2월인데도 연말연시 기분이네.”

신년 축하로 워낙 유명한 동네라서 그런가 보다 하기는 했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다니. 흰 천으로 돌돌 감싼 콜트 파이슨을 꼭 쥔 채, 김 양이 동의하듯 끄덕였다.

“그나저나 진짜 애지중지한다. 그래서 아까워서 쓰겠냐?”

“소장용임.”

그렇다면야.

화르르르륵

약쟁이들인지 노숙자들인지 모여 집으로 캠프파이어 하는 모습마저 정겨웠다. 이런 불놀이는 난장판도 아니었다. 뭐라고 할까? 귀엽다고 해야 할까?

녹슨 냄새 짙은 회색빛 폐허에서 돌아오니, 귀국 축하 총소리마저 푸근한 느낌. 냄새와 소리부터 포근포근하다고 해야 하나?

“어서 오세요.”

간호사가 약간 수척한 그러나 뿌듯한 얼굴로 일행을 맞이하며 말했다.

“저 합격했어요.”

오- 의학전문대학원인데 이렇게 빨리 합격? 김 양이 감탄했다.

“축하합니다.”

마루는 모르는 척 축하했다. 역시 국토안보국 쪽에서 보내준 추천서와 에세이 첨삭의 위력이 좋았나 보다.

“잘됐네요. 귀환파티 겸, 합격 축하파티 하죠. 고기로.”

늦은 밤. 숯불 한우 파티가 시작됐다.

치이이익- 발긋발긋한 숯불 위로 화려한 꽃등심이 활짝 피었다.

언제 늘어졌었느냐는 듯 의욕적인 김 양의 젓가락질을 가로막는 집게.

누군가? 누구인가? 누가 감히 가로막는 것이야.

숯불 꽃등심은 가볍게 앞뒤로 살짝 불만 쬔다. 숯불 향만 입힌다는 느낌으로 그렇게 육질과 육즙이 손상되지 않게 짧은 시간 구워서 먹은 것이 제맛이거늘. 이 집게는 무얼 의미하는 건가?

김 양의 분노에 찬 눈빛에도 마루의 집게는 꼼짝하지 않았다.

“기다려. 생으로 먹을 거면 그냥 육회를 먹어라.”

“······.”

단호한 마루의 차단에 김 양은 고개를 돌렸다. 노기에 찬 김 양의 눈에 들어온 모습. 주섬주섬 자리를 벗어나려는 후드가 보였다.

“2호기. 어디? 화장실?”

“아뇨. 전 그냥 좀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려고요.”

후드를 뒤집어쓴 것도 모자라, 고글에 마스크에 음성변조기, 심지어 장갑까지 껴서, 전신을 꽁꽁 싸매고 다니는 후드 놈이 갑자기 거슬린 김 양이었다.

회식을 빠져?

그것도 투플 한우 회식을? 미쳤나?

“2호기. 거기 스톱.”

“예?”

“지금 뭐임?”

“?”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지는 것을 본 마루가 고기를 집어 들었다.

“한우 회식이 우습···.”

뭐라고 말하려는 김 양의 입에 맛있게 익은 꽃등심을 밀어 넣는 마루.

우물우물

“할 말 있으면 먹고 나서 해라. 그리고 후드는 그냥 가지 말고 맛만 보고 가라.”

“괜찮습니다. 제가 채식주의자라서.”

꽃등심을 씹던 김 양의 눈이 부릅 커졌다.

채식?

모름지기 모든 식생활에는 균형이 잡혀야 했다. 다양한 반찬의 중심을 묵직한 고기가 잡아주고 있어야 제대로 된 식단 아니던가? 하다못해 물고기라도 있어야 식단이라고 생각하는 김 양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민족 고유한 식문화 이밥에 고깃국을 말살하려는 채식주의자는 반동분자였고 배부른 미제의 앞잡이였으며, 인류의 건강을 해치려는 악.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채식주의자를 증오하는 김 양이었다.

근데 2호기가 채식주의자라고? 그 흉악한 채식주의자가 2호기였다고? 역시 처리했어야 하는 것이었어. 어쩐지 교육의 효과가 늦다 싶었어. 후드를 보는 김 양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그랬던 것이야. 채식주의의 흉험함을 감추기 위해 꽁꽁 싸맨 것이었어. 좋다고 같이 회식해도 통수를 치는 마당에. 뜨뜻한 밥 한 끼 고기 한 점, 함께 나눠 먹지도 않는 걸 어떻게 믿고 가겠나?

그렇지 않음? 김 양이 마루를 향해 눈빛을 보냈다.

‘어. 음. 그건 너무 간 것 같은데?’

‘지금 그 반응은··· 설마? 배부른 반동분자를 옹호한다는?’

그냥 미제도 아니고 배부른 미제였다. 뒈지도록 굶어봐라. 채식이 아니라 쥐식도 할 거다.

마루의 시큰둥한 반응에 충격받은 김 양이 후드를 노려보며 말했다.

“채식이 마스크 좀 까보셈.”

그 잘난 상판대기 한번 보자우. 어떻게 생겨 먹었나.

“······.”

“······.”

갑자기 분위기가 흉흉하게 변했다. 조용히 스텔스 모드로 숯불 한우를 집어먹기에 여념이 없던 간호사가 슬그머니 젓가락질을 멈추곤 김 양과 후드를 힐끔 쳐다봤다.

후드는 자기를 보는 3쌍의 눈동자에 식은땀이 났다. 몇 개월 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었어도 얼굴을 보여달라 말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분위기가 되자 숨이 콱 막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 양이 채근했다.

“2호기. 빨리 얼굴 안 깜?”

“······.”

후드가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마스크를 내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마루가 후드의 손을 잡아 다시 마스크를 올렸다.

“됐다.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라.”

마루가 후드를 보내고서 김 양에게 눈짓했다.

‘채식이면 오히려 좋지 않음? 수저 하나 줄어드는 거니까.’

‘어? 음?’

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네? 채식이면 투플 한우의 경쟁자가 영구히 사라지는 거니까 좋은 거?

“자. 다 익었으니까 후딱 먹자. 고기 더 얹는다?”

끄덕끄덕.

언제 입에 고기를 넣었는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김 양과 간호사였다.

치이이익-

꽃등심을 석쇠 위에 올리는 마루의 눈동자가 후드의 방을 잠시 향했다. 살짝 내려진 마스크 안쪽에 보인 것은 불탄 자국. 화상 자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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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닫고 들어간 후드는 화장실로 달려가며 마스크를 벗었다. 숯불에 구워지는 고기 냄새가 위장을 뒤집었다.

치밀어 넘치는 구역감. 우엑- 위액과 찌꺼기를 토한 후드가 거울을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화상 흉터가 선명한 일그러진 얼굴. 얼굴이 한쪽이 완전히 불에 녹아 눌어붙은 한쪽 귀. 불길이 두피를 태워, 쥐가 파먹은 듯 군데군데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이 보였다.

“조금만 참아. 우리는 반드시 할 수 있어. 사만다.”

입안을 물로 헹군 후드가 다시 마스크를 썼다. 디트로이트의 수돗물은 생각보다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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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뒹굴뒹굴 여독을 푼 마루가 빌딩 리모델링 공사현장을 찾았다. 미국은 공사 기간을 넉넉하게 잡는 게 좋다고 하던데,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꼭 그런 건 아닌 듯싶었다.

“인력과 기계를 충분하게 투입하면 공사 진행이야 빨라지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걸릴까요?”

“지하에 모듈형 원전만 들어가면 중요한 공사는 전부 끝났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저것 다 한다고 해도, 앞으로 25일에서 30일 정도면 마무리되지 않을까 합니다. ”

“아. 스마트팜 말입니다.”

“스마트팜도 설비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규모를 좀 더 키우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현장 감독이 잠시 생각하더니 설계도면을 확인했다.

“도면상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근데 여기서 더 키울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설치한 스마트팜은 최신형이었다. 벼는 1년에 4번 수확할 수 있었고 딸기도 마찬가지, 어지간한 작물은 3~4회 수확 가능했으니, 단순 생산량만 보면 천 단위 인구를 가뿐하게 먹여 살릴 규모였다.

“전력이 남아돌 텐데 뭐 합니까? 최대한 뽑아야죠. 그리고 제약 관련 시설을 추가하려고 합니다.”

“제약 관련 시설이요?”

“예. 여기 연구실 들어간 층 말입니다. 빈 곳을 전부 제약 관련된 소규모 연구, 생산시설로 만들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추가 공사 비용은 어떻게 할까요?”

“국토안보국으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지요.”

와이와이와이- 경찰차들이 도로를 질주했다.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경찰들이 도로를 활보하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자 소파에 늘어진 김 양이 눈빛으로 인사했다.

‘왔음?’

‘그래.’

‘밥은?’

‘아직.’

‘고기 굽?’

‘아니. 내려가서 먹자.’

옆으로 고개를 파묻는 김 양이 힐끗 마루를 쳐다봤다.

‘귀찮은데.’

‘굶을래?’

비척비척 몸을 일으킨 김 양이 겉옷을 대충 걸치고 마루를 따라나섰다.

“다른 애들은?”

“간호사는 나갔음. 채식이는 방에서 안 나옴.”

간호사는 알아서 먹는다는 소리고, 후드는 올라오면서 빵이라도 사주면 되려나?

호텔 아래 식당가는 한산했다. 코로나 여파로 텅 빈 거리엔 경찰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녔다.

“무슨 일 있었냐?”

“?”

“TV 봤을 거 아냐. 뉴스에서 다른 소리 없었어?”

“변종 바이러스 확산 어쩌고 함.”

마루가 휴대폰을 꺼내 뉴스 앱을 실행했다.

[···변이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도 이 바이러스 때문에 많이 곤란했다지요.]

[그렇습니다.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후각과 미각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고, 감정조절이 힘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기존의 호흡곤란 발열, 오한, 기침에 더해, 감각기능 이상과 감정조절까지 문제가 생긴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특히 중요한 점은 감각과 감정 부분입니다. 감정의 기복이 갑작스럽게 커지신 분들은 반드시 인근 진료소에 가셔서 검사하기 바랍니다.]

마루가 경찰들이 돌아다니는 거리로 눈을 돌렸다. 공사를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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