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97
디트로이트
오진 그룹은 확실히 이상했다.
대체 무슨 회사가 인테리어에 복합장갑을 써?
회장실, 회의실에서 폭탄 터트리고 그럴 일이 있나?
“사만다. 오진 빌딩 통제권 확보했어?”
[90% 확보. 정지됨. ]
이건 또 왜?
80%까지는 금방 됐는데. 80% 넘어가면서부터는 한세월 걸리더니, 90%부터는 아주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사만다. 오진 그룹과 관련된 자료. 기사, 지금 연결된 서버에 들어있는 자료까지 전부 정리해서 올려줘.”
계속 조금씩 엇나가는 느낌에 후드는 오진 그룹을 파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냥 평범한 제약회사, 제약회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작은 공장. 다른 회사들의 하청을 받는다거나 특허가 만료된 제네릭(복제)약을 생산하는 작은 회사였다.
그랬던 작은 회사에서 갑자기 신약을 발표했다. BH라는 약칭을 가진 약물. 우울증에 굉장한 효과를 보인 약물은 순식간에 우울증 약제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넘기는 초대박 약품이 됐다.
순식간에 중견 제약사로 도약한 오진제약의 성장세는 거침없었다.
그러나···
[오진제약 우울증제 마약성 논란]
[중독성 약물 어떻게 심의를 통과했나?]
[오진제약 주가 급락]
[···국세청 오진제약 압수수색]
[오진제약 거래정지에··· 소액투자자들 망연자실.]
[마약성 논란에 개발자 조사]
[개발자가 13살 딸? 미성년자를 방패로 삼는 뻔뻔한 대표]
[13세 소녀의 특허권 논란. 일본의 다카이치 신약. 특허침해 제소.]
[마약성 논란에 특허침해 논란까지 오진제약 이렇게 무너지나?]
[월드 그룹. 오진제약 인수제의.]
[월드 그룹, 오진제약의 구원투수가 될까?]
[월드 그룹 담당자. ‘오진제약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수준. 논란이 된 우울증약을 제외하고서라도 미래가치 충분.’ 거래정지 풀리나?]
[오진제약 월드 그룹의 인수 제의 거절. 월드 그룹 스와프 딜도 가능. 미래를 위해 모든 가능성 열어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 나눌 것.]
[특허권 논란 일본의 타카이치 신약, 오진제약 인수전에 뛰어들어. 중국의 쉐이진(水晶) 그룹 오진제약에 거액의 투자 제의.]
[각국에서 쏟아지는 구애. 오진제약의 행방은?]
후드는 주요 기사만 훑고 지나갔다. 제약회사라서 그런지 알아듣기 힘든 논문들과 특허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 가운데 간혹 보이는 내용. 13살이니 14살이니. 만으로 13-14이면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아닌가?
‘약물을 디자인할 정도로 천재라고?’
아무리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한국이라고 하지만, 13~14살짜리 애가 천재라면 세계적으로 소문이 났을 텐데. 회장이 실재 개발자를 보호하려고 꼼수를 쓴 건가?
인수전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소식 이후 갑자기 모든 언론에서 오진제약 기사가 사라졌다. 세무조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고, 거래정지 이후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한참 뒤에 거래가 풀렸고. 주가 역시 폭등 없이 안정적으로 우상향.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일본 제약회사와 대규모 투자를 제의했던 중국 제약회사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월드 그룹에서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다. 인수 합병이 아닌, 투자.
막대한 투자금을 바탕으로 오진제약은 순식간에 자회사를 늘리기 시작했다. 오진의료기, 오진통상, 오진바이오텍, 오진에프엔씨, 오진화학 등, 10개의 자회사를 만들고 그룹을 발족했다. 오진 그룹의 시작이었다.
제네릭 약품 생산, 하청 생산하던 공장급 회사에서 그룹으로 올라서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7년.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회사라면, 국제적으로도 유명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상하네 이거.’
좋지 않은 냄새. 권력과 연결됐거나 암흑가와 연결됐을 때 이런 느낌을 받았다. 이런 걸 뒤지다가 목줄을 찼었기에 알 수 있었다. 분명 오진 그룹은 일반적인 회사가 아니었다.
이것도 우연일까?
월드 그룹이 가지고 있던 제약 관련 기업을 오진 그룹이 인수했고, 오진 그룹에서 새로 인수했던 유통 회사를 월드에게 넘겼다. 마치 서로 분업을 하는 것처럼.
월드 그룹이 몇 배는 더 컸지만, 바이오 의약, 건강보조제, 건강식품 분야는 오진을 밀어주는 모습. 냉혹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이런 게 가능한가?
대체 무엇 때문에?
타다다다닥- 키보드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세상에.
자판을 두들기던 손이 얼어붙었다. 후드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월드 그룹과 오진 그룹의 밀월은 단순한 분업 따위가 아니었다.
너희들이 약을 뿌리면 우리도 우리 약을 너희들에게 뿌리겠다.
너희들이 외국인 노동자로 위장해서 분탕질 치면 우리도 위장해서 들어서 뒤집어주마.
조직에는 조직으로. 범죄에는 범죄로. 지랄에는 지랄로. 피는 피로.
‘그러니까 월드에서 약을 팔고, 오진에서 만들고?’
일본이고 중국이고 한국에 약을 뿌렸고, 그 복수를 월드에서 하고 있다? 미친 애들 아니야? 이렇게 가면 서로 죽겠다는 거 아닌가?
‘아?’
후드는 이해하고 말았다. 유감을 표시하거나 강력하게 항의해도 소용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도 중국에서 넘어오는 약과 남미에서 들어오는 약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특히 중국에서 저가에 넘어오는 약들은 굉장히 위험했다.
1g에 70~100달러 수준인 코카인과 필로폰과는 달리 1g에 10달러 미만으로 구할 수 있는 중국산 약들. 가격이 깡패라고 순식간에 퍼졌고, 싼 만큼 매우 위험한 약물이었다.
미국이 중국에 항의하자, 중국에서는 ‘우리는 마약 사범 잡히면 바로 사형하는 나라임.’이라며 ‘범죄자들이 그러는 걸 어쩌라고?’ 해버렸다. 미국한테도 그러는데 한국이 항의한다고 다를까?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야쿠자를 중심으로 한국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사채?대부업, 유흥업 그리고 약물 유통. 야쿠자들은 강력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폭력 조직을 흡수하거나 하청업체로 부리기 시작했다.
하나를 자르면 둘이 돋아나는 것처럼 우후죽순 늘어나는 약쟁이들. 강력하게 처벌해야 하는데 입법도, 사법도, 행정도 뒤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피해자들만 속출하는 상황.
누군가 그랬을 것이다. ‘이대로 처맞고 있느니, 그냥 저 새끼들이 하는 데로 돌려주자.’
그걸 월드 그룹과 오진 그룹에서 한 것이다.
‘하- 이거-’
후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친구분은 어쩌다가 저런 애들이랑 엮였데?
‘응?’
이런저런 기사와 사진들 사이로 언뜻 스치고 지나간 얼굴.
“사만다 아까 마도중학교? 그 사진이랑 기사. 다시. 자세히.”
[천재 소녀 마도중학교 입학.]
[10살 소녀 중학교 입학으로 화제. 법적으로는 문제없어.]
[조기 입학과 졸업. 영재교육에 적합한 방식인가?]
[마도중학교 졸업식.]
“스톱. 거기. 졸업 사진.”
화면에 졸업사진이 떠올랐다. 가운데 확연하게 어린 여학생이 있었다. 뭔가 공허한 느낌을 주는 얼굴. 덧없다고 해야 할까? 흐릿하다고 해야 할까. 사진으로 보는데도 이상한 아이였다.
“나-주-현-”
이거 오진 외동딸? 그리고 구석에 보인 낯익을 얼굴. 어린 모습이지만 확실했다.
“고용주님?”
아니 왜 고용주님이 거기서. 그 옆에는 요즘 추적하느라 외울 지경인 얼굴도 있었다.
“그린 순?”
어라? 이거 뭐지? 왜 여기 모여있어? 후드는 순간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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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컥-
테이블 위로 툭 떨어진 손목.
위스키 잔을 꼭 쥐고 있는 채, 가지런히 잘린 팔에서 피가 솟구쳤다.
고통에 찬 신음이나 비명이 없었기에 더 기괴한 침묵. 나오진 회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쪽 팔로 위스키 잔을 들어 올려 입에 털어 넣었다.
크-
두려워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는 나 회장의 모습에 마루는 적잖이 놀랐다.
‘약 때문인가? 마약성 진통제?’
마약성 진통제를 맞더라도 자기 팔이 생으로 잘렸는데 저럴 수 있을까? 정상인이라면 저럴 수 없었다.
‘미쳤군.’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마루는 피가 줄줄 흐르는 나 회장의 팔뚝을 바라봤다. 쓸데없는 칼질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나 회장이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거나 죽어버리면 의미 없었다.
마루는 주머니에서 넓적한 통을 뺐다. 일본에서 구출한 미군에게서 구한 최신 지혈제, 거의 순간접착제 수준으로 상처를 붙여 버린다고 한 지혈제를 꺼냈다.
지혈제를 들고 가까이 가자, 마루의 어깨를 잡고 확 끌어당긴 나오진 회장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날 죽여.”
“······.”
“내가 살면, 네놈 가족들을 그냥 둘 것 같냐?”
“······.”
묵묵하게 지혈제를 바르는 마루의 귓가에 나 회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친구의 복수를 해야지.”
!!!
“복수?”
“그래. 복수해야지. 그러니까 죽여.”
어깨를 붙잡고 속삭이듯 작게 말하는 나오진 회장. 지혈제가 순식간에 출혈을 잡았다. 놀라울 정도. 그러나 아무도 지혈제나 상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왜 나한테 죽으려고 하지?”
마루가 나 회장에게 물었다. 갑자기 네 가족을 죽이겠니, 기순의 복수를 운운하면서 자기를 죽이라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죽고 싶으면 자살하면 될 일 아닌가? 근데 하필 마루의 손에 죽으려고 하고 있었다. 왜? 그게 걸렸다.
나 회장이 쓰게 웃었다.
“네놈의 집구석이···. 네놈이···.”
딸이 마도중학교에 진학한 뒤, 어느 날 갑자기 딸아이가 이사 가자고 졸랐다. 부유층이 모여 산다는 단독주택 단지로 가자고.
다행하게도 매물이 있었다. 일가족 참변을 당한 집.
‘싫어요. 사람이 그냥 사고로 죽은 것도 아니고 살인 사건이 난 집이잖아요. 여기 아파트도 좋은데 왜 갑자기 이사에요?’
‘주현이가 그 집이 마음에 든다잖아. 시세보다 30%나 싸게 나왔다고. 그 동네는 매물이 잘 나오지 않는 거 알잖아?’
부인의 반대에 이사가 무산됐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에 찬성하는 부인. 멍한 얼굴로 이사 가자고 하는 모습이 낯설었지만, 기뻐하는 딸아이를 보면 그래서 그런가 하고 넘어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사한 뒤, 부인은 급격히 우울해졌다.
‘무슨 일 있어?’
‘아니요.’
‘말해봐. 무슨 일인데?’
‘앞집 하 사장네 말이에요.’
‘그래. 하 사장네.’
‘사업이 그렇게 잘되는 집인가요?’
‘뭐 중견기업으로 유명하니까. 기술력도 좋다고 하고. 갑자기 사업이 잘되는 건 왜 그러는데?’
‘그냥 좀 그래서요.’
작은 제약회사 사장 주제에 걸맞지 않은 동네로 와서 기가 죽은 것처럼 보이자, 나오진은 오기가 생겼다.
이사를 해서 여유가 많지는 않았지만, 제법 이름있는 명품 가방을 아내에게 선물했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았던 것도 잠시.
가방이 생겼는데 맞는 옷이 없다. 그렇게 옷을 샀다.
옷과 가방은 있지만, 구두가 마땅하지 않아서 구두도 샀다.
그리고 매번 같은 걸 입고 들고 신고 그러기는 부끄럽다.
‘당신 요즘 너무 쓰는 거 같아.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
‘그 동네랑 여기가 같은가요? 앞집 말이에요. 이태리 대리석으로 주방을 다시 했다는데 정말 주방이···.’
그렇게 앞집 주방 공사했다는 업체를 찾아갔다.
‘···식탁이 5천만 원이라고요?’
‘합리적인 가격으로 잘 나왔지요? 요즘 사모님들 들고 다니시는 가방값도 안 되는 가격인데, 정말 잘 나온 제품입니다.’
나오진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작은 제약회사 사장이었지만,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월 1~2천 정도면 적게 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근데 이 동네는 달랐다.
친절한 앞집 사모님과 어울려 다닐수록, 아내의 우울증은 조금씩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이메일을 보냈다.
엄마를 위해서 자기가 약을 생각했다는 뜬금없는 내용이었다. 천재로 소문난 딸이었고, 그래서 3년 일찍 중학교에 입학한 딸이지만 제약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하지만 메일 속에 들어있는 내용은 사실이었다. 딸이 지은 약명은 Be Happy였다. 엄마가 행복하기를 원해서 만든 약.
이 우울증 치료제는 오진제약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됐다. 제품명 Felix(펠릭스) 라틴어로 행복한 이라는 의미인 약은 순식간에 시장을 석권했다.
그렇게 부인의 씀씀이를 감당할 수 있게 됐다. 자신감을 되찾은 부인이 여러 모임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나오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귀었던 첫사랑이 부인이었으니까.
그 믿음이 깨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