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96화 (196/280)

러스트 [RUST]-196

위잉- 위잉- 위잉-

어둑한 조명이 붉게 점멸하며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칸포를 알루미늄 캔 따듯 썰어버린 마루가 나오진 회장을 봤다.

언제 죽으라고 외쳤냐는 것처럼 멀쩡한 모습. 회유하려고 하나 싶더니, 갑자기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광기 어린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미친 건가?

집안이 싫다 어쩌다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강박적으로 죽으라고 외치는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뭐- 됐다. 몸에다 직접 물어보면 미쳤든 아니든 다 불더라.

마루가 나오진 회장을 향해 다가서자, 한쪽 벽이 살짝 열리기 시작했다.

인기척?

마루의 감각이 벽 안에 있는 사람들을 잡아챘다. 길게 2열 종대로 늘어선 사람들의 기척.

팍- 한걸음에 다가선 마루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벽 틈으로 칼을 밀어 넣었다.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꿰인 자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끄아아아악

투다다다닥

총탄이 벽을 맞고 사방으로 도탄 됐다. 방탄복과 헬멧에 맞고 튕기는 총알들.

“사격 중지!”

“그만 쏴!”

“칼! 칼!”

“뒤로 빼!”

“빨리 열어!”

“밖으로 나가!.”

“밀어붙이라고!”

뒤에서 밀어붙이자,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는 순간 쓸려나가는 요원들. 순식간에 쌓이는 시체 더미. 조각난 덩어리에서 흐른 내용물로 입구가 질퍽해졌다.

“···씨발.”

“이런 개···.”

안에서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미는 순간, 헬멧과 함께 썰리는 머리통.

으아아아아!

손목만 내밀어서 사방으로 총을 쏴보지만, 손목이 잘렸다. 총구를 빼꼼 내밀어 봤지만 그대로 절단됐다. 뭐가 됐든 나가는 순간, 그대로 썰려버리니 답이 없었다.

상황실에서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던 보안과장은 말을 잃었다. 액션 카메라가 정면을 비추나 싶으면 바닥을 굴렀다. 상하반전되는 화면, 데굴데굴 굴러가다 멈추는 영상이 태반이었다.

“이- 무슨-”

요원들의 바이탈을 체크하는 그래프가 순식간에 심정지 표시로 변했다. 이건 그냥 학살이었다.

뭐? 일반 성인 남성의 2배 정도라고? 물량으로 압박하면 금방 번아웃 된다고? 이래서 가운 입은 새끼들 말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됐다.

저걸 잡으려면 신경가스를 쓰거나 통째로 날려버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보호벽이 뚫렸으니 신경가스와 통째로 구워버리는 옵션은 선택 불가능.

“퇴각해.”

“예?”

“물러서라고 해!”

“회장님은요?”

“지금 애들 보낸다고 달라질 게 없어. 다 죽일 셈이야. 잠깐.”

귀에 꽂힌 통신기에 들리는 작은 목소리.

[···▣‧▣▣▣···▣▣▣]

보안과장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똑바로 세웠다.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바짝 긴장했던 보안과장이 작게 숨을 내쉬곤 명령했다.

“됐어. 애들이나 빼.”

“······.”

오퍼레이터가 퇴각을 지시하자, 일렬로 도축 당하던 요원들이 뒤로 물러섰다.

끼드드드득-

우그드드득-

벽이 닫히며, 틈에 있던 시체가 짓뭉개지는 소리를 냈다.

휙- 칼을 흔들어 피와 지방을 털어내는 마루. 이건 또 이상한 놈들이었다.

‘일반인 느낌이 아닌데.’

반응속도나 힘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순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반응.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처음 몇 명이 썰렸을 때, 공포에 질려 도망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개미핥기를 향해 덤비는 개미들처럼 달려들었다. 좁은 공간에서 2열 종대로 밀고 나와, 디밀어진 순서대로 죽으면서도 꾸역꾸역 덤볐다.

‘힘도 그렇고 반응도 약이긴 한데···.’

버서커 폴이나 크리스털과는 다른 느낌. 눈이 붉게 물들고 폭력 성향이 강해지는 두 약물과는 달리, 지금 절단한 놈들은 이성이 살아있었다.

신체능력 강화는 두 약물보다 약했지만, 이성이 살아있다는 건 어쩌면 더 위험한 약물이었다. 이렇게 일렬로 나오지 않고 넓게 포진한 상황이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테니까.

정보가 샜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아닐 수 있었다. 자신의 정보를 제대로 알았다면 이렇게 어설프게 병신 짓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치직- 치지직-

입고 있던 은신 로브가 벌컨포에 스치고 총에 맞아 너덜거렸다. 마치 여기저기 구멍 뚫린 공간 속에 있는 것 같은 모습.

칙- 중화제를 박아 넣은 마루가 깊게 숨을 골랐다.

일렬로 나오는 족족 잡아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덕지덕지 챙겨 입은 방호복에 헬멧까지 단번에 썰어대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약효가 돌자, 가늘게 떨리던 칼끝이 서서히 굳건히 뻗었다. 길게 칼을 뻗어 회장을 향한 마루.

“나오진 회장. 기순이는 어디 있습니까?”

“···크흐흐흐흐. 왜 그걸 나한테 묻나?”

실시간으로 피바다가 되는 장면을 남의 일인 것처럼 구경하고 있던 나 회장이 갑자기 웃어댔다.

역시 일단 손목부터.

마루가 다가서거나 말거나, 나 회장은 테이블에 놓인 위스키를 따라 마셨다. 향을 머금어 삼키려 했지만, 짙은 피 냄새와 화약 연기에 위스키 향이 섞여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잡쳤군.”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나오진 회장이 흉흉한 기세를 뿌리며 다가오는 마루에게 말했다.

“눈이라도 하나 빼려고 그러나? 왜 그렇게 노려보는가?”

“······.”

“눈에는 눈이라기 뭐하지만, 눈 하나당 이쪽은 3개 가져간다는 건 알고 하게.”

덤덤한 나 회장의 말에 마루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러니까 자기 눈 하나를 건드리면, 눈 3개를 건드리겠다? 오진 그룹에서 가족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이 새끼가···.’

마루의 칼끝이 분노로 살짝 떨렸다.

‘진정하자. 진정하고. 일단.’

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삼킨 마루가 고개를 좌우로 스트레칭했다.

“왜 그러셨습니까?”

대체 왜 우리 가족이지? 아버지 사업 망한 것도 이 새끼들이랑 연관 있었나?

“아? 너희 집? 너희 집안 인간들이 사람을 참 무시하더라고.”

“무슨 개소립니까?”

나 회장이 피식- 위스키를 입에 털어 넣었다.

“이래서 때린 놈은 편히 자고, 처맞은 놈은 웅크리고 잔다니까.”

“······.”

앞집과 뒷집. 단독주택. 부자 동네에서 이웃사촌으로 살았는데 맞고 때리고 할 일이 있었나? 아파트나 빌라도 아니고, 층간 소음이니, 쓰레기 문제니, 주차문제 같은 게 있었을 리 없었다.

근데 뭔 개소리?

방독 마스크로 가려진 마루의 얼굴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나 회장이 운을 뗐다.

“워낙 자랑질에, 비교질에, 평가질을 해야지 말이야.”

피식- 다시 위스키를 따르는 나 회장. 자랑질? 대체 뭔 자랑질을 얼마나 했다고 한 가정을 무너뜨려?

“네놈은 웃으면서 대못을 박았더라지?”

“······.”

무슨 소리를···. 웃으면서 대못? 기순이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중학교 시절에 있었던 일, 마루의 집이 잘 나갔을 때, 파티에 같이 가자며 에스코트를 부탁하던···. 그때 웃으면서 거절했었다.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을 때도 웃으면서 거절했었다. 거절하고 거절했었다.

나루와 친하게 지내면서 집에 놀러 왔을 때, 마루의 모친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모친은 그런 말을 했었다. ‘사위 사랑은 장모님 사랑.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사랑.’ 이라면서 그랬었던 일들.

좀 이상한 애라고 같이 놀지 말라고 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이상하니까 이상하다고 했을 뿐이었다. 한 번 거절당하면 부끄러워서라도 그러지 않지 않나? 그런데 계속해서 권하는 건 뭔가? 거절당한 적 없다는 듯이 그러면 이상한 거 아닌가?

“고작···. 그런 이유?”

“어떤 사람에게는 고작 그런 일이··· 누군가에게는 한이 되는 법이지.”

위스키 잔을 비운 나 회장이 낄낄 웃었다.

“네놈과···. 네놈 집안이 괴물을 만들었으니, 그 대가를 받는 것뿐이다.”

“무슨 개소리야!”

마루가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태연하게 앉아있던 나 회장의 얼굴이 점차 하얗게 질려갔다. 마치 무언가가 숨통을 막고 있는 것 같이 숨을 쉬지 못했다. 가슴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던 나 회장이 몸을 뒤틀어댔다.

크허허어어어

퓨슉- 주르르-

똥오줌을 지리는 소리, 나오진 회장의 눈이 돌아가는 것을 본 뒤에야 살기를 거둔 마루였다.

꺼 억 꺽 숨을 몰아쉬던 나 회장이 실핏줄 터진 눈으로 마루를 노려봤다.

숨을 꼴딱거려 놓고 노려봐?

꾸역꾸역 기어 나와서 순서대로 썰리던 놈들도 그렇더니, 나 회장도 정상이 아니었다.

겁을 상실했나···. 겁을 상실? 마루가 고개를 흔들었다. 겁을 상실한 놈들이 한둘도 아니었고. 성질 같아서는 그냥 썰어버리고 싶은데.

“원하는 게 뭐야?”

마루의 말에 나 회장이 쓰게 웃었다.

“그래. 나도 정말 궁금해. 원하는 게 뭘까?”

부르르- 칼끝이 떨렸다.

집안이 개판 난 것. 망하지 않았더라면, 엄마가 그렇게 이상하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동생이 그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암으로 고통받지 않았을 것이다. 월드가 운영하는 축산업체에서 구르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칼을 들고 있지도 않았겠지.

근데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고? 괴물을 만들어? 이 새끼가 진짜.

나 회장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위스키를 따랐다. 반쯤 채운 술잔을 단숨에 털어 넣은 뒤에야 조금 살 것 같았다.

모르겠지. 아마 모를 것이다.

“뿌리면 거두기 마련이고, 괴물을 만들었으면 괴물이 되기 마련인데 말이야.”

‘아니면 괴물이었기에 괴물을 만들었던 거든지.’, 중얼거린 나 회장이 똥오줌으로 흥건한 자신의 바지를 보곤 낄낄 웃었다.

“괴물이 원하는 게 뭘까? 엎드려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비는 것?”

“······.”

“그런다고 살려 줄 리 없지.”

“······.”

“그나저나 이젠 대답할 수 있겠나? 구질구질 싸우고 왜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다고 했었지? 그럼 이제 묻지, 왜 그렇게 사나? 구질구질 피 묻히며 살아봐야 끝이 좋을 게 없어 보이는데.”

낄낄.

이 미친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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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바다 속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이 모니터 속에 있었다.

[···괴물을 만들었으면 괴물이 되기 마련이지.]

[괴물이 원하는 게 뭘까?···.]

나 회장의 목소리는 회한과 탄식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어쩌면 안식을 갈구하는 모습.

“위험합니다. 아가씨 이제 멈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괴물이라잖아요.”

후훗- 웃는 얼굴은 그저 순수했다. 그렇기에 더욱 이질적인 미소.

넷 가운데 하나는 암, 다른 하나는 약물 의존성. 나머지 둘이 쓸만하게 됐는데, 제대로 된 건 손에 넣기 힘들어 보였다. 아마도.

어쩌나? 그냥 놔주기는 아까운데. 죽이는 건. 아니고. 좀 떨어지는 거라도 계속 잘 키워봐야 하나?

“회장님을 버리실 생각이십니까?”

“어마? 그럴 리가요.”

“아가씨. 그러지 마십시오. 아무리 회장님께서 잘못하셨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일은 약 때문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알지요. 이해해요.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하셨으니까요.”

그런데 말이에요. 괴물을 만들었으면 괴물이 되는 법이라는 말. 과연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요? 익숙해지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게 인간이라는 동물이더라고요.

“자- 우리 아버님. 과연 오늘은 성공하실 수 있을까요? 잘하면 편하게 은퇴하실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아빠 힘내세요.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는 모습에 집사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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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거리던 비상등이 꺼졌고 요란하게 울리던 사이렌도 침묵했다.

오진제약의 실험 때문이라는 이렇게 변했다는 것은 알겠다. 집안이 망한 이유도 그 이면에는 오진제약과 월드 그룹의 작업이 있었다는 것도 이해했다. 자존심 상하고 모욕감을 받았다는 이유로 한 가정을 박살 낸 것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슨 괴물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괴물을 만든 대가로 괴물이 됐다는 소리도 그렇다고 치자, 정상인에서 벗어난 건 사실이니까. 다 좋은 데 말이다. 질문에 답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겠는데 말입니다.”

“······.”

“기순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걸 왜 나한테···.”

슈컥-

위스키 잔을 든 팔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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