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56화 (156/280)

러스트 [RUST]-156

마루와 어둠, 은신 로브 조합은 재앙이었다.

각 잡고 움직이면 단번에 10m를 이동하는 데다가 칼날도 칠흑 같은 무광 검정이었다. 어둠 속에서 휘둘러지는 칼날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무엇으로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잘렸다. 이쪽에서는 총을 허공에 겨누고 있던 한 명이 썰리고 조금 뒤, 반대편에서는 도망치던 한 명이 절단됐다.

죽음의 사신이 무심하게 휘두른 낫질에 흙으로 돌아가는 자들. 멀쩡하게 서 있다가 갑자기 조각조각 토막 나는 동료들을 본 갱들은 미칠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악 악마다!”

“JESUS···”

“하늘에 계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시끄러워 입 닥쳐! 닥치라고!”

팔다리 머리가 조립식 블록처럼 분리되는 광경에, 정신이 나간 놈 하나가 자기 머리통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자살한 놈의 뇌수와 핏방울이 눈에 튄 놈은 눈을 감고 총을 쏴대다, 같은 편에게까지 총을 갈겼다.

“씨발. 쏘지 마!”

“죽어! 죽어어어어!”

“이 미친 새끼가! 멈춰!”

“죽어!!!”

결국, 다른 놈에게 총 맞아 죽었다.

“죽을 거야! 우린 다 죽을 거라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끄아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다 기절했던 PD는 길게 찢어지는 비명에 정신을 차렸다. 팔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아니, 감각은 있었지만 이상했다. 손발이 자기 팔다리가 아닌 것만 같았다. 무근한 살덩이가 뭉쳐있는 느낌. 손가락이 달라붙었는지,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흐릿한 시야. 한쪽 얼굴도 화상을 입어, 한쪽 눈이 열기에 상했다. 오그라든 손발을 버둥거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보니, 주변은 피바다였다.

바닥에 깔린 20여 구의 시체 가운데 사지 정상인 게 없었다. 대부분 통째로 잘린 시체들. 목이 잘렸든, 몸통이 잘렸든 어딘가 잘린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몇 사람은 동그랗게 서로서로 등을 대고 뭉쳐있었고. 다른 몇 명은 양쪽으로 나뉘어 뛰고 있었다. 오른쪽 왼쪽으로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나뉘어 도망치는 자들.

추하게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갱들의 모습에 PD는 저주를 내렸다.

죽어라!

개새끼들··· 갱들··· 전부 죽어라! 죽어 버려라! 신이시어 저들을 죽여 주시옵소서!

PD는 꺽꺽 소리를 내며 기도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끝나기 무섭게 오른쪽으로 도망치던 2명 가운데 하나가 반 토막 났다. 달리던 관성대로 하체가 몇 걸음 움직였고, 상체는 그보다 먼저 뒤로 넘어갔다.

옆에도 도망치던 놈이 비명을 지르려던 찰나, 머리가 사라졌다. 말 그대로 머리가 사라졌다. 어떻게? 갱들을 죽여달라고 기도했던 PD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된다고? 설마··· 갱들이 나에게 미친 걸 먹였을까? 내 머리가 이상해진 건가? 이게 모두 꿈인가? 그래 이건 지독한 악몽이야. 그럴 리 없겠지,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산채로 사람을 태우겠어.

흐흐흐흐흐

PD가 나지막하게 웃었다. 웃음을 타고 흐르는 걸쭉한 침이 길게 늘어졌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저길 보라고 사방에 잘린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게 진짜겠어? 뛰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여러 토막 나는 것도 모자라 감쪽같이 머리통이 사라진다는 게 말이 돼?

크흐흐흐흐

히죽히죽 웃는 PD의 눈에 들어온 광경. 왼쪽으로 도망치던 놈들이 가로세로 이쁘게 조각나는 모습이 보였다.

흐흐흐흐흐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던 PD가 눈을 감았다. 자고 있어 나면,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는, 침대 위일 것이리라. PD의 시야가 점차 흐릿해졌다.

“쏴! 왼쪽이다!”

“그쪽 방향 전체를 쏴!”

왼쪽에 도망치던 3명이 순식간에 분할되자, 동그랗게 서로 등을 뭉친 놈들이 그 방향으로 총을 쏴댔다. 점이나 선이 아닌 면을 공격하는 방식.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철컥- 철컥

-틱- 틱- 크릭-

순식간에 비워낸 탄창. 그 많은 총알을 쏟아부었는데, 허공에 뿌린 것처럼 왼쪽 저편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지금 벌어진 모든 것이 환상이라도 된 것처럼

흐윽- 흐윽-

누군가 흐느꼈다.

“재수 없게. 닥쳐.”

어떤 이는 탄창을 다시 갈아 끼려고 했다. 덜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탄창을 제대로 끼우지 못하면서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

한 놈이 목에 앰풀을 꽂았다. 찍-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눈이 붉게 충혈된 눈. 단번에 한계용량 끝까지 밀어 넣었기 때문인지 전신을 벌벌 떨던 놈이 고함을 질러댔다.

“나와!!! 나와라!!! 이 비겁한 새끼야!!!”

흥분한 사람처럼 외치던 음색이 점차 언어가 아닌,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로 변했다.

끄르르르 크아아아아아아아! (나와라! 어디냐?)

오감이 증폭된 갱은 느낄 수 있었다. 이성을 잃기 직전에야 알 수 있었다. 일렁이는 공간이 있고 그 속에서 몸을 감추고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크아아아아아!(거기냐!)

쿠직-

일렁이는 공간을 향해 맹진하는 놈.

빨갛게 충혈된 눈이 허공을 훑었다.

노려보는 것은 공간의 흔들림,

그 일렁임의 끝에 무엇인가가 삐죽 튀어나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점점 흐려지는 이성이 마지막처럼 경고했다.

‘피해야 한다.’

슬쩍 몸을 비틀어 삐져나온 무엇을 피했다. 이대로 몸통 박치기를 해버리면 일렁임 뒤에 숨은 뭔가는 납작한 베이컨이 되리라.

우어어어억!(죽어어엇!)

부웅- 멧돼지처럼 돌진한 몸통이 허공을 갈랐다. 순간 뜨끔한 느낌이 목덜미를 타고 위로 올라왔다.

크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고작 모기에 물린 정도의 통증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째서 아무것도 없지? 분명히 일렁이는 게 여기 있었는데?

시뻘겋게 충혈된 눈동자가 사방을 살폈다. 근데 저건 뭐지?

우두커니 서 있는 시체, 목이 없는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하늘이 보이고 땅이 보이고, 시체가 보였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느낌.

(비겁한 놈! 더러운 놈!)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어쩐지 시야가 어두워졌다.

“······.”

“······.”

그렇게 시끄러웠던 녀석이 조용해지자, 타닥- 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만 어두운 공간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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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다다닥

경쾌한 소리.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방을 채웠다.

“사만다. 할 수 있지? 할 수 있어. 우린 정말 근사한 집으로 갈 거야. 발할라로 간다고! 그분이 말씀하신 거. 들었지? 들었어? 견적을 내라고! 세상에 우리가 원하는 걸 적으라고 하셨다고! 우린 할 수 있어.”

단순한 통신 방해도 쉽지 않았지만, 통신망을 해킹해 중간에 정보를 빼돌리는 건 난이도가 몇 배는 더 높았다.

관건은 통신 데이터를 중간에 빼돌리고도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 혹시라도 걸리면 문제가 심각해졌다.

‘걸리면 다시 끌려갈 거야. 국토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후드는 잠깐 멈칫했던 손가락을 다시 놀렸다.

그분은 뭔가를 대비하고 있었다. 곁에서 보니 확실했다. 종말일까? 변혁일까? 지축의 이동? 어째서 디트로이트를 선택했는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도시는 녹슬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건물이 단순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상수도관 교체가 늦어, 물을 쓰려면 먼저 틀어놔 녹슨 물을 흘려보내야 했다. 오래된 가스관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도 월별 행사처럼 빠지면 아쉬울 지경.

갈라지고 꺼진 부분이 선명한 도로는 그대로 방치됐고, 전기선과 전신주는 자기 멋대로 뒤엉켜 있었다.

그 녹슬어가는 도시 위에 신기술, 새로운 통신망을 덮어씌웠다. 당연히 여기저기 어설픈 곳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것을 싹 걷어 내지도 못하고 전체를 전부 신형으로 깔지도 못하고, 혼용하는 도시. 최신 기계와 진작 폐기됐어야 할 기계들이 같이 굴러가는 도시. 그렇기에 파고들 틈이 많은 도시였다.

지금처럼.

탁!

후드가 발사 버튼을 누르듯 엔터키를 치자, 모니터 화면이 변했다. 갱들이 열어놓은 뉴투브 채널을 가로채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뉴투브로 가야 할 영상을 중간에서 빼돌리기 시작한 후드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

드럼통에서 피어오르는 불꽃. 드럼통 모닥불과 그냥 땅바닥에 피운 모닥불이 여기저기 흩날리는 평화로운 밤 풍경이었다.

타오르는 불꽃 사이로 보이는 것은 토막 난 시체들만 없었다면.

그런 이질적인 배경 속, 손가락이 화상으로 뭉개진 PD가 침을 흘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전부 죽어라! 죽어 버려라!’, ‘···신이시어 저들을 죽여 ···소서.’ 중간중간 흐릿하고 끊기기는 했지만, 그의 말은 갱들을 죽여달라는 광기 넘치는 기도였다.

기도에 화답이라도 하듯, 카메라에 잡힌 장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 어둠이 깔린 곳을 향해 달려가던 갱 하나가 상/하로 분리됐다.

“!”

후드는 감전된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어쩐지 눈물이 나려고 했다.

가빠지는 호흡. 미지근한 열기가 꼬리뼈에서 척추를 타고 점점 올라와 목뼈에 닿았을 때는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송글송글 송송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이어지는 해체 장면을 자세히 보기 위해, 근처의 휴대폰을 전부 해킹한 후드였다. 30명이 넘는 갱들이 있었지만, 상황을 찍은 놈은 단 사람뿐이었다.

모니터에서 재생되는 영상. 단죄일까? 학살일까? 지옥일까? 예술일까? 후드는 자기도 모르게 전신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후- 뜨거운 한숨이 깊은 곳에서 내뿜어졌다.

후- 바로 옆에서 동시에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

“?”

후드가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린 김 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친 게 우연이라는 것처럼 휙- 다시 고개를 모니터로 향했다.

‘언제 왔지?’

‘언제부터 본 거지?’

‘소리도 없이 다가오다니.’

‘소리도 없이 혼자 보다니.’

후드와 김 양이 서로에 대해 점수를 깎았다. 일단 깎는 건 깎는 거고 지금 중요한 건 마루였다.

‘제발··· 우리 사만다에게 슈퍼컴퓨터를···’

혹시라도 그분께서 총 맞아 다치거나 죽으면 슈퍼컴퓨터가 사라졌다. 그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후드는 두 손을 모았다.

김 양은 믿었다. 백정이 죽을 리 없었다. 총 쏘는 걸 귀신같이 알아채는 백정인데 병신들이 쏘는 총에 맞을 리가···

하지만 은신 로브! 우리 착한 광학 은신 로브는 약했다. 총에 스치고 맞고 그러다가 망가지면? 그거 하나뿐인데.

‘제발. 살살. 그거 하나밖에 안 남은 템임.’

두 사람의 염원이 우주를 움직였는지, 상황이 순식간에 정리됐다.

타오르는 드럼통 모닥불의 불빛에 의지하고, 서로 등을 맞대 사각을 없앤 갱들이 조금씩 자동차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장작 타는 소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신 폐가 하얀 입김을 만들었다.

“천천히. 조금씩.”

“쏘지 마. 확실하지 않으면 쏘지 마.”

“탄창 갈았어? 총알 확인해.”

서로서로 독려하는 갱들.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명제 앞에 뭉친 갱들은 필사적이었다.

“씨발. 씨발. 미끄러지지 않게 발 조심해.”

“저기 움직였어. 저 새끼 아직 살아있는 거 같은데?”

상/하로 분리된 갱 하나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골반 아래쪽이 잘린 모양인지 상체는 멀쩡해 보였지만, 당장 지혈하지 못한다면 죽은 목숨이었다.

“사- 살려-- 줘···”

“닥쳐. 닥치라고.”

“도- 와 줘··· 제발···”

“조용히 해. 씨발.”

“제발 닥쳐. 놈이 온다고.”

공포로 인해 거칠어진 숨을 몰아쉴 때마다 뜨거운 입김이 뿜어져 흩어졌다.

상/하체로 나뉜 채 살려달라며 손 흔드는 사람에게 시선이 잠깐 쏠린 순간. 아주 잠시 고개가 돌아갔을 때. 닥치라는 외침이 차가운 겨울 하늘을 향해···

부카-----

시작은 처음 생존자를 발견한 갱이었다.

갱은 총을 들고 있던 오른쪽 팔뚝이 시큰했다.

그 이상한 감각에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지만,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째서?

??

고개를 숙이자 바닥에 떨어진 자기 오른팔이 보였다. 오른손은 부질없이 총을 꼭 쥐고 있었다. 옆구리가 후끈하더니 척추를 통과한 무엇.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식하기도 전에 왼팔도 바닥에 떨어졌다.

!!!

고통을 느낄 새가 없었다. 뭐라 말할 겨를도 없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위와 아래로 분리되는 자기 자신을 본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카카카카----

속도가 조금도 줄지 않은 칼날이 이제 두 명을 동시에 썰고 있었다. 하나를 썰어낸 칼날이 두 명을 절단했고, 두 명을 절단한 칼날이 네 사람을 통과했다.

----카카카카----

그렇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쭉 이어지는 검은 선.

먹줄을 한 번에 튕긴 것처럼 등에 등을 맞댄 갱들의 허리춤에 검은 실선이 죽 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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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씩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지 조각들.

앞으로 옆으로 무너져 내리는 잘린 몸통들.

-----카카카카각

절단되는 소리가 뒤따랐다.

화르륵!

드럼통 모닥불 속 장작이 꺾이며 불꽃이 확 피어올랐다.

인적이 사라진 고요한 밤하늘, 별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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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어둠.

타오르는 불꽃 옆으로 일렁이는 죽음이 움직였다.

절단되는 갱들. 바닥에 흥건한 피.

갓 뿌려진 뜨거운 피에 달궈진 대지가 아우성쳤다.

단단했던 땅이 어느새 피 웅덩이로 변해 있었다.

조각난 팔다리와 머리통이 둥둥 떠 있는 피 웅덩이.

점차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흐으으으어어어억! 살려- 살려-”

PD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그런 PD의 가슴을 토닥토닥 두들기며 안심하라는 목소리로 간호사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

“이제 괜찮아요.”

“······”

“저를 보세요. 여긴 안전해요.”

“······”

“진정하세요. 숨을 크게 쉬고.”

PD는 부르르 떨리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하악- 하으악-

진통제 때문인지 둔탁한 통증이 팔다리를 맴돌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그건 꿈인가? 꿈? 꿈이라고?

PD가 팔을 들었다. 덜컹. 팔이 침상에 묶여 있었다.

덜컹. 양쪽 다.

“이 이게 무슨 일이죠?”

“환자분께서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고정해 놓은 겁니다.”

“수. 수술이요?”

“네. 수술이 잘 됐지만, 잘못 손대셔서, 덧날까 싶어 고정해 놓은 것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수술? 왜? 병원? 내가?

PD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그 혼란의 틈새를 남자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경찰입니다. 힘드시겠지만, 말씀 좀 묻겠습니다.”

“지금 막 깬 환자입니다. 아직 안정이 필요하다고요.”

간호사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형사가 PD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틱- PD의 눈앞에 던져진 현장 사진.

그것을 보는 것과 동시에 기억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계약서.’, ‘버거퀸의 히어로.’, ‘호텔.’ 그리고 갱에게 잡혀 팔과 다리가 불살라진 기억.

“으아아악! 아냐!!!”

“신. 신께서.”

“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깊은 어둠 속 무언가가 갱들을 토막 냈다.

“무슨 말입니까? 그곳에 뭐가 있던 거죠? 누가 있던 겁니까?”

형사의 말이 작은 메아리처럼 들렸다.

심연이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버러지처럼 죽어가고 있던 내 기도에 응답해줬다고!

신께서!

내 복수를 해주셨다.

그 빌어먹을 갱들을 전부 썰어버리셨다.

그래.

신께서 말이다.

아- 아-

PD는 어딘가 조금 옳지 못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형사를 밖으로 내쫓고 안정제와 수면제를 꽂아 넣었다.

“신이시어---”

웅얼거리는 말을 마지막으로 PD는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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