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47화 (147/280)

러스트 [RUST]-147

국토안보국 과장 덴 브라운은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얀 연기가 폐를 채우는 감각.

깊이 쌓인 스트레스가 살살 긁히는 느낌.

후- 시원하게 담배 연기를 뿜어도 생각이 복잡하기만 했다.

‘어디까지 가야 하나?’

버지니아가 국외를 담당하고 국토안보국이 국내를 담당하기로 했었다. 애초에 국토안보국이 설립된 이유도 국내 안보를 전담할 조직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명분을 바탕으로 여러 관련 기관을 모아서 설립된 국토안보국이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하나씩 바닥부터 만든 조직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부서와 기관을 통폐합하면서 만든 조직이라, 기관과 부서들 사이에 알력 다툼이 컸다.

내부 갈등도 문제인데, 부서를 뺏긴 다른 정부 기관들이 국토안보국을 싫어하는 건 당연했다. 결과적으로 국토안보국이 뭔가를 하려고 하면, 그놈의 정해진 절차, 그놈의 공식문서를 대동해야 간신히 ‘자. 가져가라. 더러워서.’ 이렇게 던져주는 꼴이 대부분.

버지니아와 연방수사국이 특히 그랬다. 지금 같은 상황도 마찬가지, 일본을 탈출한 자들이 처음 접한 건 버지니아였다. 그러니 그들은 버지니아에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다. 일본의 상황. 현재 일본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한 정보였다.

일본은 국외니까 버지니아가 담당하는 게 맞았다. 단지 변종 따개비 확산 사태와 같은 건 국내의 문제가 됐으니 국토안보국에 넘겼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데 버지니아는 그러지 않았다. 일본 사태는 국외니까 자기들이 해결하겠다고 했고, 변종 따개비 사태도 자기들이 주도해서 해결하겠다고 그랬다.

그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국토안보국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그것도 좋다. 어쨌든 합중국의 안보를 우선하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버지니아의 행동은 도를 넘고 있었다. 합중국의 안보와 직결될 수 있는 일본 사태 정보를 왜 공유하지 않았을까? 그건 문제였다.

후-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길게 늘어진 담뱃재가 흔들렸다. 툭- 재떨이에 재를 턴 과장이 인터폰을 눌렀다.

“부서장 회의 발의해.”

[부서장 회의 말씀이십니까? 어느 레벨로 할까요?]

“3레벨 아니, 2레벨로.”

[알겠습니다. 부서장 회의 소집. 2레벨. 진행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위험도, 중요도를 5단계로 나눈 등급에서 2단계.

덴 브라운은 다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다 말고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겨울 특유의 청명함이 가득한 밖은 평화로웠다. 시리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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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난 병원.

창문에 골판지를 붙여, 빛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꽉 막은 병실엔 부상병들이 누워있었다.

병실은 어쩐지 침침했다. 중간중간 전등을 뽑아 광량을 줄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부상병들이 풍기는 암울함이 병실 분위기를 더 침침하게 만들었다.

미 해병 구조대 총지휘관 길버트 브라운 소령. 아니 이제는 진급으로 중령을 단 길버트 브라운이 군의관에게 물었다.

“어떤가?”

“좋지 않습니다.”

“공기 감염이 확실한가?”

“거의 확실합니다.”

“빌어먹을···.”

“······.”

처음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본을 탈출해 귀화한 놈이 준 정보에 따르자면 바퀴벌레나 쥐새끼, 끽해야 미친 동물들이 위험하다고 했다.

변이된 감염자를 언급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강조한 건 바퀴와 쥐새끼, 새들 따위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구조대 본대가 자리 잡은 도난 병원에서는 흔적도 볼 수 없었다.

도난 병원 위협하는 주요한 적은 감염자들이었다. 사이사이 폭발적인 신체능력을 가진 변이된 감염자가 있었지만, 화염방사기와 총화기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구조대는 구체적인 적이 감염자라고 판단했다. 그 적들은 군사훈련 받은 자들도 아니었고, 무장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몸집 왜소한 일본인들이 병에 걸려 발광하는 것일 뿐이었다.

베타 중대에서 위력정찰 분대 하나가 샬롯 그룹 PMC와 만났다는 교신을 마지막으로 실종된 것을 제외하면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문제는 공기 감염으로 의심되는 상황이 터지면서였다. 병사들 가운데 갑작스럽게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자들이 생겼다. 약하게는 주먹 다툼이었지만, 심하게는 총기 난사까지.

상황이 순식간에 개판으로 변했다. 멀쩡하게 있다가 갑자기 말싸움을 하나 싶더니, 총기 난사에 수류탄을 까버리는데 어떻게 되겠는가?

여기에 덮친 격으로 한 번씩 감염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항상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규칙도 전조도 없이 갑자기 그랬다. 좀비 웨이브도 아니고 수천에서, 많게는 만 단위로 몰려다니는 자들. 뭣도 모르고 위력정찰을 나갔다가 실종되는 병력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병력의 보충과 보급을 요청해 작전을 지속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었다. 두 차례 추가 병력 지원과 보급을 끝으로 바닷길도 막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화산을 비롯해 해저 화산까지 연속적으로 분화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어려웠던 항행이 불가능해졌다.

뱃길도 끊기고 비행기도 끊겼다. 수색과 구조는 난항에 빠졌고 병력 손실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지옥으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나요?”

유 이사가 들어오며 말했다.

“합중국은. 해병대는 결코 전우를 버리지 않는다. 모르나?”

브라운 중령이 혐오스럽다는 얼굴로 유 이사를 노려봤다.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지. 그럼···”

유 이사가 뭔가 한마디를 더 붙이려는데, 군복 여기저기 피칠을 한 병사가 뛰어왔다.

“알파 중대. 일본 국회와 수상관저 쪽으로 갔던 위력정찰 분대가 돌아왔습니다. 중요한 정보를 확보했다고 합니다.”

병사가 피 묻은 서류 가방을 중령에게 넘겼다. 끈적한 피가 마저 굳지 않은 가방을 연 중령이 안에서 서류를 꺼냈다. 일본어로 빼곡하게 적힌 서류.

“이걸 확인한 병사는?”

“···전사했습니다.”

통역이 없었다. 위력정찰 분대마다 조금이라도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병사를 하나씩 넣어, 순식간에 통역 자원이 고갈됐기 때문이었다.

유 이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쪽 통역 데려올까요? 중요한 정보라고 했으니, 어쩌면 지금 상황과 관계된 정보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그러지.”

유 이사는 퀭한 눈을 한 자들을 무시하고 부하들이 쉬는 곳으로 들어갔다. 미군 전투식량을 퍼먹던 부하들이 유 이사를 보곤 벌떡 일어섰다.

“됐어. 다들 먹고. 미군 애들이랑 통역했던 애가 누구였지? 대수였나?”

“맞습니다.”

대수라고 불린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그래 대수. 일본어도 할 줄 알고?”

“일본어는 못합니다.”

“일본어 할 줄 아는 사람? 서류 봐야 하니까. 그거 고려해서.”

“······.”

“······.”

유 이사가 좌우를 둘러보며 물었다.

“없어? 회화는 약해도 되는데? 서류 번역이니까.”

“야- 막내. 너 좀 할 줄 안다고 하지 않았어?”

한 명에게 모이는 시선.

확실히 어려 보이는 얼굴. 어디서 봤더라? 유 이사가 기억해 냈다.

“아? 너. 그래. 김 팀장 구했던 걔구나. 기영이 그 개새끼 찔렀다는 애. 맞지?”

“···예.”

“이름이··· 도민욱이라고 했나? 그렇지?”

“예.”

유 이사가 활짝 웃으며 민욱의 등판을 찰싹 때렸다.

“사내새끼가 왜 이렇게 매가리가 없어. 이기영 씹새끼는 잘 찔렀다더니. 왜? 여기서 뒈질까 봐 무서워?”

“아닙니다.”

“아니긴. 바싹 오그라들었구먼.”

“······.”

간만에 유 이사가 시원하게 웃었다. 허리춤에 찬 콜트 파이선이 들썩였다. 크게 한 번 웃은 유 이사가 히죽 웃음기를 거두지 않고 말했다.

“그래서 막내. 일본어 번역. 못해?”

번들거리는 눈빛에 막내가 침을 삼키곤 대답했다.

“조금 할 줄 압니다.”

“좋아. 그럼 가자고.”

유 이사가 막내를 끌고 갔다.

중령은 유 이사가 데려온 사람을 보고 의아해했다.

“통역은 다른 사람 아니었던가?”

“그 친구는 일본어를 못해서 말이죠. 여기 이 친구가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제가 영어로 알려드리죠.”

이 년이. 중령은 유 이사의 속 보이는 짓에 어이가 없었다. 본래 통역하던 사람을 데려온다고 해도 정보가 유 이사에게 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통역 끝나고 입을 막을 게 아니라면.

“좋아. 대신 보안 서약에 서명하지.”

“그럼요.”

보안 서약에 호쾌하게 서명한 유 이사가, 민욱을 앞으로 밀었다. 얼떨결에 같이 서명한 민욱에게 중령이 서류철을 넘겼다. 제법 두툼한 서류 맨 위에 있는 마크. 뭔가 꽃무늬 같은 마크가 찍힌 서류였다.

민욱이 더듬더듬 번역을 시작했다.

[···일본은 중국과 협력해 신형항모 기술을 확립··· 중국이 입수한 미국의 제너럴 포드 항모 설계도를 이용해··· 실증적으로 선행 항모를 건조한 뒤 이를··· 양국이]

“잠깐.”

유 이사가 더듬더듬 번역하는 막내를 멈췄다.

“너 이거 확실한 거냐?”

“예? 예.”

“똑바로 말해. 번역 제대로 한 거 맞냐고? 일본이랑 중국이랑 이거 확실해?”

“예. 네.”

날카로운 눈빛에 민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 씨발- 이거-”

한국 조선업이 일본과 중국을 제치고 1위를 달성한 뒤, 일본과 중국의 협력 관계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 선박 건조 기술이 부족했던 중국은 일본 선사로부터 기술 지도를 받아 배를 만들어왔다. 개별 조선소가 자체적으로 선박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해운 선사들이 원천 기술을 보유한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중국에 선박 건조 기술을 넘겨주고 있었다. 무려 10년 전부터. 조선업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일이었다. 일본과 중국이 조선업에 있어서 만큼은 한국 타도를 외치며 한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10년 전이면 중국이 신형항모를 설계하기 시작했다는 시기와 일치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리고 하필 그것과 관련된 서류가 등장해 버렸다. 일본이 중국과 뭔가 거래했을지 모른다는 서류가.

‘씨발 그래서 그런 거냐?’

일본이 툭하면 중국과 싸우겠다느니, 전쟁 드립을 해도 중국이 일본을 족치지 않은 게 이상하긴 했었다. 한국만 하더라도 뭐만 걸렸다 싶으면 조지던 중국이, 일본이 지랄을 떨어도 성명이나 발표하고 경고나 날리지, 한국 밟듯 밟지 않은 이유가 뭘까?

유 이사의 표정이 변한 것을 본 중령이 다그쳤다.

“내용이 무엇이길래 번역을 멈췄나?”

“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걸 정리를 좀 해야 해서.”

일본 정부는 망했다. 그러니까 일본은 문제가 아닌데, 이게 어떻게 불똥이 튈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처음부터 폭탄인데, 더 뒤에 나올 이야기는 뭐가 있을지 갑갑해진 유 이사였다.

‘씨발 될 대로 되라지.’

미국이랑 중국이 설마 전쟁이라도 하겠냐? 일본은 재난으로 뒈졌는데.

유 이사가 영어로 통역하기 시작하자, 중령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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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밴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람이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주변의 CCTV를 전부 해킹했기에 사각은 없었다.

“진짜 뭐냐 저것들.”

공사하고 있는 빌딩은 디트로이트가 잘 나갔을 60~70년대 건축한 건물이었다. 1층~5층을 전시관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층고가 요즘 건물들과 달리 매우 높았다. 그래서 25층임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높이가 120m는 훌쩍 넘는 빌딩이었다.

그런 빌딩에 스마트 팜을 때려 넣더니, 축사까지 공사하고 있었다.

“진짜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건데.”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사태를 가정하지 않고서는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 영속적인 고립 생존 상황을 대비한 것 같았다. 마치 노아의 방주와 같이.

‘그런데 어떻게 안면을 트나.’

오기는 왔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어려웠다. 저 정도 시설을 운영하려면 사람이 필요할 텐데. 모집 공고도 없었다.

‘그래서 자동화 설비를 때려 박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스템 관련된 인력은 필요했다, 전산 프로그램 관리도 필요했고, 기계설비 인력도 필수였다.

일단 칼잡이는 위험해 보이니까 아니고, 총잡이도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니까 아웃이고. 그럼 간호사랑 어떻게 접점을 만들어 봐야겠는데 이 간호사가 호텔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그래서 휴대폰과 내부 화상 카메라를 해킹해서 살펴보자, 무슨 목숨이 걸린 사람처럼 공부만 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서 산책이라도 하고 그래야 우연을 가장해서 안면을 틀 텐데. 진짜 접점이 없었다. 접점이.

“아 진짜. 미치겠네.”

그런 후드의 눈동자에 칼잡이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공사장을 확인하고 내려오더니 주차장을 걷는 모습.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걷는 방향이 이상했다. 화면을 따라가다 보니, 멀리 검은색 밴이 보였다.

응?

칼잡이가 이쪽으로? 왜?

후드가 모니터를 뚫어지게 봤다. 확실히 이쪽이었다. 점점 다가오는 칼잡이.

어? 왜?

화면 속 장면. 칠흑처럼 까만 칼날이 뽑히는 모습.

스르르릉-

그리고.

콰직-

검은 칼날이 밴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히이이이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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