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38
김 양은 바로 간호사를 관리하겠다며 일어섰다.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데 미리미리 멘탈 관리해둬야 없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마루도 동의했다. 은근히 간호사를 챙기는 김 양이었다.
“잘 챙기네.”
“메딕이잖음.”
뭔가 살짝 어긋나는 느낌이 좀 있지만, 마루는 대충 이해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거니와 김 양이 챙기겠다는데 말릴 이유도 없었다.
‘기순이한테 전화나 해볼까?’
저번에 ‘O.K.’ 이후로 연락 없는 새끼였다. 한국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텐데, 연락이 없으니 뭔 일이 생겼나 싶기도 했고. 국토안보국으로 갈아탄 것도 알려줘야 하는데 어쩔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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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
‘아. 시차.’
시차를 깜박했다. 아무리 쳐 잔다고 해도 전화를 아예 꺼놓다니. 마루는 버지니아에서 국토안보국으로 갈아탄 것, 국토안보국 프리랜서 비슷하게 된 것 정도를 문자로 보냈다.
한국에 있는 버지니아 애들과 엮이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까지 덧붙인 뒤, 국장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작전에 사용할 장비는 개인이 지참하는 겁니까? 아니면 요청하면 장비를 받을 수 있는 겁니까?]
[··· 필요한 장비 목록과 사유를 보내시면 확인 뒤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보내 놓고 보니, 과장을 달달 볶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겠는가? 아는 번호가 과장 번호밖에 없는걸. 마루는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스르륵-
회색빛 칼날이 서걱거리며 뽑혔다. 여기저기 이가 나갔음에도 특유의 회색빛은 여전했다. 손가락으로 튕기니, 튕기는 소리가 길게 뽑혔다.
흔들흔들 낭창거리다 멎는 칼날. 당장은 괜찮아도 오래가긴 힘들 것 같았다.
흠-
이가 나간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니, 눈물 문신 카르텔 놈이 쓰던 마체테도 일반적인 칼은 아니었던 듯싶었다.
과장이 보내준 영상에서는 흰 양복이라든지 눈물 문신 카르텔, 날뛰던 흑형 같은 급이 없었지만, 본진으로 들어가면 그런 놈들과 마주칠 확률이 높았다.
좋은 칼이 필요했다. 되도록 많이.
김 양도 원하는 게 있으면 주문하라고 해야겠지? 총은 그렇다고 쳐도 총알은 확실히 더 좋은 게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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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의 목소리가 높았다가 낮아졌다. 뭔가 주저주저하는 느낌.
“에에엣- 그래도···.”
“닥치셈!”
김 양이 버럭 간호사를 다그쳤다. 김 양이 들고 있는 발터 P22가 기다란 소음기를 단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맞음?”
자꾸 처맞을 소리를 하는 간호사를 보며, 김 양이 조그만 주먹을 쥐어 보였다. 간호사는 꿀꺽 침을 삼켰다.
저 작은 주먹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맞아 봐서 알고 있었다. 명치를 존나 세게 맞았던 기억,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빨리 드셈!”
“······.”
간호사는 김 양이 내민 발터 P22를 조심스럽게 잡아들었다. 조그만 총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피의 무게가 느껴지는 총.
반짝반짝 잘 손질된 총이었지만 어쩐지 원혼들이 뭉쳐 아우성치는 기분이 들었다. 곁에서 보지 않았던가? 총질로 사람 여럿 보내는 것을.
그래서 그런지 검은색 슬라이드 위로 검붉은 오오라 같은 게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똑바로 잡으셈!”
딱-
간호사의 머리통에 딱밤이 박혔다. 조그만 손이 왜 이렇게 아픈지, 간호사는 총을 들고 맞은 머리를 만지려다 조인트를 까였다.
빡-
“누가 총 들고 머리에!”
정강이를 맞아 자기도 모르게 손을 정강이로 향하자, 바로 다시 조인트를 까는 김 양이었다. 깠던 데 또 까는 김 양.
빡-
“총구 어디!”
김 양은 자비가 없었다. 간호사는 아팠다. ‘깐 데 또 까?’ 소리가 자동으로 나왔다.
빡-
“지금 고개를 숙임?”
김 양이 본격적으로 간호사를 굴리기 시작했다. 엄한 눈으로 간호사를 노려보는 김 양.
“전방 주시.”
“여길 왜 봄?”, “날 왜 봄!”
“······.”
“본인이 뭐라고 했음?”
“······.”
“총구는 항상 전방에.”, “전방 주시하라고 했음!”
“······.”
“방아쇠에 손 떼라고 했음. 안 했음.”
“흐- 흐흑- 흐에- 눈에··· 눈에 모래가···.”
눈에 뭔가 들어갔다며 서럽게 우는 간호사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김 양이 손가락에 깍지를 끼더니 좌우로 비틀며 소리를 냈다.
“그냥 좀 맞자!”
뭘 잘했다고 어디서 즙을 짜고 지랄이니? 김 양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오늘 푸닥거리 한 번 제대로 들어간다. 김 양이 작심하고 먼지를 털려고 할 때, 마루가 내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왜 간호사를 잡고 그래?”
마루의 목소리가 들리자 푸닥거리를 멈춘 김 양이었다.
흐윽-흐윽-
흐에에에에에---
간호사가 어쩐지 대성통곡했다.
간호사도 총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김 양의 말도 일리 있었다.
하지만 간호사는 총이 무섭다고 했다. 다친 사람을 치료하기를 바라서 간호사가 됐는데,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드는 게 거부감 든다고 소심하게 말했다.
“무서워? 총이? 거부감?”
뭐가 어쩌고 어째? 김 양은 간호사를 째릿- 노려봤다. 배부른 소리나 하는 년 같으니. 역시 존나 패서 정신 개조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김 양이었다.
“진정하고. 좀 그만 째려봐라.”
간호사 또 울겠다. 마루는 김 양을 말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내려와 보는 건데, 애를 아주 잡고 있었다. 내려온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그 짧은 시간에 간호사를 파김치로 만들어 버린 김 양이었다.
“정신이 썩어 빠졌음.”
“갑자기 무슨 정신까지 나오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마루의 말에 간호사가 다시 울먹울먹했다.
“저거 보셈. 저거.”
어디서 또 즙을 짜려고. 뭘 잘했다고.
뽀드득- 김 양이 작은 주먹을 꽉 쥐며 관절 소리를 냈다.
좋아. 결정했음. 가기 전에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음.
기세등등한 김 양을 보며 마루는 한숨을 내쉬었다. 따지고 보면 김 양의 말이 틀린 게 없었다.
총은 인간의 죽음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여자고 남자고 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기만 하다면, 누구든 죽음의 배달부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 어두워질 세상을 살아가려면 총기 정도는 다룰 수 있는 게 좋았다. 딜도 잘하고 힐도 잘하면 좋겠지만,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간호사에게 요구할 건 치료 능력이었다.
“그만해라. 그만. 그게 닦달한다고 될 일이냐?”
“맞으면 됨.”
처맞으면 다 됨. 김 양이 작은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아주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얘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거냐? 마루가 어쩐지 짠한 눈빛으로 김 양을 바라보자, 김 양이 고개를 팩 돌렸다.
“차라리 데려가는 건 어떰?”
“영상에서 봤잖아. 역으로 포위당했던 거. 뒤에 있다가 포위되면 어쩌려고?”
그것도 그렇지만, 어벙한 간호사를 쥐고 흔들려고 할지 몰랐다. 냉정하게 버릴 생각이라면야 상관없지만, 이런 간호사를 또 어디서 구하겠는가?
같이 다녀본 결과 간호사의 성품은 검증됐다. 선하고 순하고 무엇보다 나름대로 직업윤리가 있었다. 기순의 예측대로 사방에서 문제가 터진다면 이런 성품을 가진 의료진을 찾기 쉽지 않았다.
“저기 오노 씨?”
“하-하잇-”
“힘드시겠지만, 총 쏘는 연습은 해야 합니다. 여긴 미국이잖아요. 거기에 디트로이트는 미국에서도 좀 위험하다고 소문난 도시고요.”
“······.”
마루의 말에 간호사는 약간 먹먹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근처 병원에 취직하는 거 이야기했었죠? 그게 힘드시다면 의과대학이나 의과대학원 진학하는 것도 좋고요.”
미래를 생각해 보니 전문 인력을 가지고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떻게? 의사를 구하기 힘들다면 키워서 쓰면 되지 않나?
인성은 괜찮으니까 잘 다독거려서 의사로 만들면 꿀이었다. 일단 의사가 되면 간호사로 재직하는 것보다 인맥도 더 많아질 거고.
“에? 의사요?”
간호사는 당황했다. 병원 알아본다고 했었는데 의사?
“네. 디트로이트라서 그런지 알아보니까 다른 지역보다는 조금 느슨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민자 출신 동양인이 시민권을 가지고 디트로이트에 자리를 잡았으니, 컷 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에 일본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경험과 총상 환자를 돌본 경험 등을 잘 풀면 에세이 통과도 가능하지 싶었다.
“에- 의과 대학원이면···. 영어가···.”
간호사가 주저주저했다. 갑자기 의대? 의전? 이야기에 ‘뭔가?’ 하던 김 양이 마루의 뜻을 알아챘다.
“직장 끝나고 훈련함? 아님, 공부함?”
불길한 미소를 함빡 머금은 김 양이 간호사에게 선택지를 던졌다. 직장 다녀와서 자기랑 오순도순 총질 훈련하겠니? 아니면 악착같이 공부해서 의대든 의전이든 가겠니?
“······.”
흐윽-
답은 정해져 있었다.
간호사를 수험생으로 전직시킨 김 양은 사실 조금 그랬다.
‘그냥 일을 시키는 게 편한데.’
의대든 의전이든 그거 다 돈 들어가는 일 아닌가? 병원으로 일 보내서 굴려도 충분하지 않나 싶었지만, 최근 마루가 하는 것을 보면 판단이 나쁘지 않았다. 간호사도 괜찮지만, 의사로 업글해서 데리고 있으면 좋기는 했다.
무엇보다 금을 확보할 생각에 여유로운 김 양이었다.
응.
그러니까 이번엔 힘을 실어줬다. 간호사 버르장머리를 한 번에 고치지 못한 건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버르장머리야 지내다 보면 또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럼 오노 씨는 호텔 예약해 놨으니까요. 거기서 수험 준비하시면 됩니다.”
“···하이.”
마루가 재빨리 호텔 예약을 마쳤다. 밖으로 나다니지 말고 빡공하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간호사 일을 해결한 마루가 본론을 꺼냈다.
“과장한테 우리 무장 좀 챙겨 달라고 했더니 필요한 거 말하라고 하더라.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리스트 뽑아서 보내면, 그쪽에서 확인하고 연락해 준다고 했으니까.”
“진짜임? 다 됨?”
김 양의 목소리가 좋아졌다.
“일단 보내봐야 알지.”
“알겠음.”
김 양은 바로 갖고 싶었던 무기 목록을 쭉 뽑았다. 신형 총기에, 특수 총알에, 수류탄과 폭발물을 넘어서 심지어 휴대용 미사일까지 순식간에 페이지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이번 작전에 쓸··· 됐다. 그냥 다 적어라.”
보내면 알아서 거르겠지. 그렇게 길고도 살벌한 요청서가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과장에게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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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미친년인가?
그래, 확실히 미친 게 맞았다. 정상이면 이딴 걸 요구하지 않겠지.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을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건가? 불필요한 문제 일으키지 않게 조심조심 타격대로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는 판국에 대전차 미사일?
무탄피 소총은 또 어디서 들어서 이딴 걸 요구하는가? 무탄피 소총이 없지는 않았다. 독일에서 만든 무탄피 소총과 탄약을 연구 목적으로 보관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그걸 달라고?
‘스마트 유탄이라.’
유탄 발사기에서 쓸 수 있는 스마트 탄과 샷건에서 쓸 수 있는 스마트 탄에 9mm 특수탄까지 대체 어디서 뭘 봤길래 이런 걸 요구하는지 골치가 아픈 과장이었다.
“후- 그래도 이놈은 좀 낫네.”
칼잡이가 요구한 건 심플했다. 최근 연구하고 있는 신형 방탄복과 신형 전투화 그리고 좋은 칼 여러 자루였다. 원하는 칼의 스펙이 좀 까다롭기는 했지만, 대전차 미사일에 비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과장님 버지니아에서 온 전화입니다.]
“연결해.”
[브라운 과장님, 이쪽에 보낸 서류가 확실한 겁니까?]
“맞습니다.”
[아니, 25층짜리 빌딩을 수리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에, 거길 채울 물건까지 대라고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허- 참- 갱단과 카르텔 아지트에서 나온 금까지 챙기겠다고 한 것도 말이죠.]
“예. 그들이 필요하지 않다면, 거절하시면 됩니다.”
[신상 공개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겁니까?]
“그만큼 자신 있다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신상이 까져서 갱단이나 카르텔과 싸우게 되면 변호사를 쓰지 않겠습니까?”
소송의 나라 미국이었다. 국가기관이 시민의 신상을 갱단이나 카르텔에 넘겼다고 변호사들이 출동하면 어떻게 될까? LA 폭동 막겠다고 했다지만 후폭풍을 생각하면 갑갑했다.
[정말 참···.]
겁이 없는 건지, 겁을 상실한 건지···. 하긴, 갱단이랑 카르텔 쓸어 버린 걸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그런 놈들이니까 지금 필요한 거고.
[후- 일단 알겠습니다. 요구 조건 수용하지요. 작전 시간은 내일 새벽입니다. 계획서 보내드리지요.]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그 콧대 높은 버지니아에서 갑갑해 하는 것을 보니 고소했지만, 천방지축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들 뒤처리할 걸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과장이었다.
“여기 요청한 거 챙겨봐.”
“대전차 미사일도 말입니까?”
“···그건 빼고. 일단 전차 들어가는 건 전부 빼.”
“알겠습니다.”
대전차 지뢰는 왜 필요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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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두투두두두-
빌딩 옥상에서 헬기를 기다리는 김 양은 두근두근했다.
온다. 온다. 오고 있다.
저번에 아끼던 바렛이 박살 나서 얼마나 슬펐는가?
기대하고 있는 건 샷건. 좁은 공간에서 싸울 때는 샷건 만한 게 없었다. 중간중간 스마트 탄까지 넣어서 쓰면 화력 하나는 끝내줬다. 대전차 미사일도 왔을까? 지뢰도 끝내주게 큰 거 깐 뒤 몰이해서 터트리면 끝장일 텐데.
“보급품 바로 확인하고. 챙긴 뒤에 헬기 타고 바로 가니까.”
“알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