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27화 (127/280)

러스트 [RUST]-127

해저 화산폭발과 화산재 때문인지, 미쳐 날뛰었던 바다는 잠잠했다. 회색으로 넘실거리는 바다. 둥둥 떠다니는 부유석들로 인해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들이 파도에 흔들렸다.

“상황을 보니, 미친 동물들에게 공격당할 걱정은 없겠습니다.”

“그렇긴 하겠네요.”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호흡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산재와 연기가, 안개처럼 뿌옇게 덮고 있었다. 도쿄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이 정도니, 도쿄 쪽으로 가면 얼마나 심각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산재와 연기가 만든 안개는 가라앉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확률은 낮아졌다. 지금도 많이 늦은 상황. 최대한 빨리 수색을 시작해야 했다.

“드론 추락합니다.”

위이이이이-익-

풍덩!

보급품 상자를 싣고 날아오른 화물용 드론이, 몇 번 왕복하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졌다.

“프로펠러 회전축과 모터에 화산재가 낀 것 같습니다.”

미세한 화산재가 모터와 프로펠러 회전축에 문제를 일으켰다. 60kg이나 운반할 수 있는 대형드론 하나가 허무하게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드론들 전부 멈추고 정비부터 하도록 해.”

“젠장. 남은 보급품들은 보트로 옮긴다.”

항구가 쓰나미로 파괴됐고 접안시설에 여러 가지 잔해가 쌓이고 엉켜 접근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부유석과 쓰나미 잔해로 인해 모터보트도 쓸 수 없는 상황. 노를 저어가며 보급품을 내려야 하기에 거의 반나절이 꼬박 걸렸다.

직원이 기순을 데려갈 기회를 틈틈이 노렸지만, 기순은 기어이 철벽 방어를 해내고야 말았다.

“하- 이런. 뭐. 어쩔 수 없네요.”

“처음 계약대로 한 것뿐이니, 기분 나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아쉽죠. 현장에서 돌발상황이 생겼을 때, 그래도 유경험자가 있으면 손실이 적어질 테니까요.”

“아는 건 전부 보고서에 적었다니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버나드 씨가 직접 관리해서, 여기까지 오는데 수월했던 건 사실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두죠.”

기순이 직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직원이 고개를 저으며 기순이 내민 손을 잡았다.

“약쟁이 조심하시고 좋은 결과 있기를 빌죠.”

“그쪽도. 행운이 함께하길.”

기순은 바로 배를 남쪽으로 몰았다. 화산재와 부유석으로 덮인 회색 바다 위로 흰색 카타마란이 미끄러졌다.

“약쟁이를 조심하라···.”

직원은 점점 멀어지는 카타마란을 보며, 악수한 손을 쥐었다 폈다.

마약 카르텔과 싸우면서 약쟁이들과 싸운 데이터는 차고 넘쳤다. 모잠비크 드릴이 왜 생겼겠나? 약쟁이들 조지는 방법으로 나온 것 아닌가? 변이된 감염자보다 약쟁이를 더 위험하게 판단했다는 건가?

협력사 정보원이 있는 도난 병원에 가보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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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 인근 황야지역, 비밀 연구소.

변종 따개비를 연구하느라 며칠 동안이나 실험실에서 먹고 자고 했던 연구원들의 몰골은 초췌했다.

피골이 상접한 사람부터 머리에 떡을 이고 다니는 사람까지, 정상적인 몰골을 찾기 힘들었다. 전부 싸잡아서 병원에 입원시켜야 할 상태임에도 그들의 눈빛은 열기와 흥분으로 반짝였다.

“드디어 세계 최초로 따개비의 접착력을 이용한 초고성능 생체접착제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환자 몰골인 연구원들이 손뼉을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회의실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변해 떠들썩해졌다.

일반 따개비를 가지고 연구하고 있었기에 변종 따개비로 연구를 이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이제 생동성 적합성 테스트만 성공한다면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이 분명했다. 단순히 경제적 가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생체접착제는 외과 수술의 근본을 바꿀 위대한 발견이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의사들에게는 실과 바늘이 필요치 않게 될 것이다. 수술하고 바로 상처 부위를 붙일 수 있다는 건, 수술 회복기를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혈관이 찢어진 경우도 붙이면 된다. 신경이 끊기고 뼈가 부서진 것도 순식간에 붙여 버리는 게 가능해진다는 소리였다.

“축하합니다.”

“뭘요. 이게 다 정부와 회사의 지원 덕분이죠.”

“전에 요청했던 자료는 어떻게 됐습니까?”

“정리는 어느 정도 끝났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연구팀장이 서류철 하나를 뽑아 버지니아 직원에게 건넸다. 직원은 자료를 읽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요. 무한히 증식하는 건 아니라서.”

무한히 증식했다면 태평양은 변종 따개비로 넘쳤을 것이다.

“예. 번식하는 방법도 일반 따개비와는 다릅니다.”

일반 따개비는 주변에 있는 개체에 생식기를 뻗어 교미하는 번식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면, 변종 따개비는 자체적으로 체내에서 유생을 만든 뒤, 그것을 촉수처럼 변형된 생식기를 사용해, 대상에게 찔러 넣거나 바르는 방식으로 번식했다.

“자료에 적혀 있지만, 일반 따개비가 몸길이의 8~9배의 생식기를 가진 것처럼 변종 따개비도 몸길이 10배 정도 되는 촉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식기에서 변이된 촉수라 굉장히 예민합니다. 감각신경이 뭉쳐있어, 근처에 있는 물체의 온도 변화와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눈이 없더라도 근처에 움직이는 것이 있다면 알아챌 수 있고, 거기에 찔러 넣든 비벼대든 한다는 소리군요.”

“그렇습니다. 시작부터 유생이기 때문에 알에서부터 시작하는 일반 따개비보다 성장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연구팀장은 콩나물에 비유했다.

“콩이 싹이 나면 물만 가지고도 본래 콩의 수십 배 부피로 성장하는 것처럼, 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식간에 성장하죠. 거기에 변이 따개비는 식물처럼 뿌리를 내려 기생한 숙주에게서 직접 영양분을 빨아들이기까지 합니다.”

“···초기 진압이 중요하겠군요.”

“예.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빠른 번식과 성장만큼이나 생물학적 단점도 명확합니다. 유생의 빠른 성장은 오히려 이동 범위를 제한하게 됩니다. 제때 움직이는 숙주나 물체에 붙지 못하는 순간, 너무 빨리 자라버려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되거든요.”

생각보다 사방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우-우웅-

우-우웅-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직원이 진동하는 휴대폰 화면을 확인한 후, 계속 이어지려는 설명을 끊었다.

“방금 일본에 있는 대형 화산인 후지산이 폭발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해저 화산도 연속해서 폭발했다고 합니다. 화산폭발로 다량의 화산재와 연기가 일본 인근 해역에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데 변종 따개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긴 연구팀장이 말했다.

“따개비도 그렇지만 변종 따개비도 수상 생물이자 고착생물입니다. 화산재와 연기가 바다에 떨어지면 수상 생물들이 죽게 되니···. 잠시만. 방금 해저 화산도 폭발했다고 하셨죠?”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해저 화산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다고 합니다.”

“이런··· 그렇다면 부유석이 엄청나게 많이 생겼을 겁니다.”

해저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기는 돌. 부석(浮石) 또는 부유석(浮游石)이라고 불리는 물에 뜨는 돌이 엄청나게 많이 생겼다.

“부유석이 왜?··· 아, 변종 따개비들이 부유석에···.”

“아마도 그렇겠죠. 변종 따개비는 근처에 접근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니, 그럴 확률이 높을 겁니다.”

부유석들이 일본 남부와 동부 해안가로 밀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해류를 타고 다른 곳으로도 퍼질 게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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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본사, 동아시아 전략 회의실.

“도쿄 대지진과 2번에 걸친 쓰나미 때문에 다행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선이고 뭐고 배들이 돌아다녔으면 변종 따개비들이 순식간에 퍼졌을 겁니다.”

도쿄 대지진 이후, 일본 후쿠시마 지역 앞바다를 항해한 배는 2척밖에 없었음이 밝혀졌다. 그 가운데 한 척은 마루 일행이 탄 카타마란이었다. 그 배의 하부를 확인한 결과 오염된 부분이 없었고, 다른 한 척은 일본 도쿄만을 향해 가다 침몰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과 대만에는 비공식 라인을 통해 경고했으니, 초기 진압을 빨리하고 경계한다면 심각한 상황은 되지 않으리라 봅니다.”

한 명이 긴급 보고가 들어왔다며 잠시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에는 서류가 들려있었다.

“지금 들어온 긴급 보고서입니다.”

책상에 앉은 사람들에게 문서를 나눠주자, 잠시 뒤 여기저기서 나지막한 욕설이 들렸다.

“부유석을 타고 퍼질 가능성이 있다?”

“변이도 계속될 수 있다? 지금도 변이 중이란 건가?”

“그 빌어먹을 따개비는 그냥 중성자 탄으로 쓸어버립시다.”

“미쳤습니까? 주요 서식지로 예측되는 곳이 후쿠시마 원전 인근인데, 거기에 핵을 쏘자는 소립니까?”

“안 될 건 뭐 있소? 변종 따개비들이 부유석을 타고 사방으로 퍼지기 전에 쏩시다.”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서 아직 처리하지 못한 핵물질만 2만 톤이 넘어요. 그곳에 중성자탄이고 핵이고 쏘면 어쩌자는 겁니까? 미쳤습니까?”

중성자 탄이든 핵이든 쓰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네이팜으로 바다를 태워 버립시다.”

부유석은 물에 뜬다. 부유석에 변종 따개비가 붙어 있다면, 거기에 네이팜을 확 끼얹어 불 질러 버리자는 주장이었다.

“장난합니까? 화산폭발로 그쪽 동네 비행 불가능인데, 뭔 수로 폭격하자는 소립니까?”

점점 거칠어지는 분위기, 부국장이 환기를 시켰다.

“진정들 합시다.”

최근 난리가 아니었던지라, 다들 며칠을 꼬박 새웠기에 신경이 날카로운 상황이었다.

남미 카르텔에서 중국과 거래한 정황이 발견되지를 않나. 중국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신종 마약이 서부지역에 퍼지고 있지 않나.

판다는 대만을 먹겠다고 계속 죽창으로 찌르고 있고, 불곰에게 두들겨 맞은 우크라이나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어젠 북한이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그런데 일본이 망해 버렸다. 그냥 곱게 망했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말겠는데, 방사성 물질 누출에, 변이된 감염자에, 변이된 따개비까지 아주 난리가 아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누군가 말했다.

“일본에 있는 변종 따개비, 당장 없애야만 하는 겁니까?”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러니까 버지니아답게, 그냥 버지니아 해버리면 될 일 아닌가?

그러게?

그러네?

다들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변종 따개비가 퍼진다면 한국, 대만, 중국에 퍼질 것이다. 한국과 대만에 콜래트럴 데미지가 조금 있겠지만, 중국은 확실히 좆될 게 분명했다.

바로 일치단결하는 버지니아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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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대형 SUV 조수석 의자를 한껏 뒤로 하고 눕다시피 앉았다.

김 양은 운전도 잘했다. 그러고 보니 김 양은 요리 빼고 다 잘하는 것 같았다. 기계나 전기에 대한 소양도 있었고, 조금이나마 프로그램도 볼 줄 알았다.

“뭘 봄?”

“아니. 그냥 너 대단하다 싶어서.”

순간 김 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뭔가 매우, 아주, 뿌듯해하는 표정이 살짝 지나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암.

웅- 웅- 웅-

위성전화기가 울렸다. 기순이었다.

마루가 전화를 받자, 딱 한마디만 하고 끊는 기순.

[OK]

뚜뚜뚜

“······.”

“······.”

도청당할지 몰라서 간단하게 결과만 이야기하자고 하긴 했었는데, 막상 달랑 한마디하고 끊는 걸 받아 보니 기분이 좀.

“별일 아니야. 괜찮다고.”

“······.”

도쿄로 끌려가지 않고, 한국으로 잘 가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럼 됐지 뭐. 마루의 말에 김 양은 신경 쓰지 않고 운전에 집중했다.

얼마나 갔을까? 운전 잘하던 김 양이 갑자기 속도를 높여, 선행하고 있던 트레일러트럭을 추월해 내달렸다.

편하게 늘어져 있던 마루가 갑자기 속도를 높이는 김 양을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트레일러트럭 앞으로 쭉 나간 김 양이 백미러를 힐끗힐끗 살피더니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무슨 일입니까?]

트레일러트럭을 운전하는 직원이 무전기로 말했다. 마루가 백미러를 확인하자 트레일러트럭을 추월해 나오는 승합차가 보였다.

대답 대신 속도를 줄이는 김 양. 그러자 뒤따르는 승합차도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미행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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