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22화 (122/280)

러스트 [RUST]-122

붉게 물든 바닥.

꺾이고 찢기고 잘린 시체 더미 위에 서 있는 마루의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거긴?”

“2명 남았음.”

마루가 ‘직원이 있었는데도?’ 하는 표정으로 김 양을 보자, 김 양이 냉큼 대답했다.

“초보임.”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마루. 그래 초보 직원이셨구나?

직원은 숨을 쉴 수 없었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들이쉰 숨을 내쉴 수 없었다. 이건 뭔가? 이게 뭔가? 10초? 8초? 그 정도 지났나? 씨발. 내가 꿈을 꾸는 건가?

버터 칼로 사람을 죽이고 포크로 목뼈를 분지르고 머리뼈를 관통해? FUCK. 농담이지 이거. 포크도 씨발인데 빵칼은 뭔가? 고기파이 자르던 빵칼로 사람을 썰어? 그 고기도 고기긴 하지만 빵칼로 썰 수 있는 건가? 사람을?

심지어 움직임도 이상했다. 막 미친 듯이 빠른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흐느적거리는 듯 보이는 움직임. 태연하게 걷고 상체를 조금 흔들었을 뿐인데 대참사가 벌어졌다.

그러니까 총알을 피했다기보다, 총구를 엉뚱한 곳에 겨눴다고 할 정도. 약을 풀로 처먹고 쏴도 그 거리면 맞춰야 정상이었다.

“뭡니까? 당신. 아니, 당신들?”

자기도 모르게 약간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대답 대신 마루가 빵칼을 던지자, 힉- 간호사가 머리를 푹 숙였다. 직원도 화들짝 놀라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탄흔이 여기저기 박힌 인조대리석 테이블에 튕긴 칼날이 직원 앞으로 떨어졌다. 마루가 던진 칼날은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FUCK!’

뭐 하는 사람인지 묻지 말라는 거냐? 직원이 호흡을 골랐다.

‘씨발. 초보 아니라고.’

베테랑도 아니지만 그래도 회삿밥 3년 넘게 먹은 정직원이란 말이다.

날이 뭉개진 빵칼을 던져 직원의 입을 닥치게 한 마루가 바닥을 뒹굴고 있는 테킬라 병을 들었다. 사격형 모양의 튼튼한 병. ‘올메카 테킬라 Olmeca Tequila.’라고 적힌 라벨을 훑어본 마루가 병목을 잡았다.

튼튼하고, 안정적이었다. 훙- 공중으로 던졌다가 탁- 받아 봐도 괜찮았다. 그러니까 잭 다니엘 사각형 병처럼 두툼하고 안정적인 그립.

‘아- 짐 빔 마렵네.’

잭 다니엘도 나쁘지 않지만, 취향은 짐 빔인 마루였다.

훙위- 탁-

뷰웅- 탁-

테킬라 술병을 던졌다 받으면서 카르텔 놈들이 몸을 숨긴 곳으로 걸어갔다.

“약 들고 튐.”

“오케이.”

마루는 김 양의 경고에 픽 웃었다. 방금 피를 봤기 때문인지 감각이 날카롭게 돋았다. 360도 사방으로 펼쳐진 감각. 3D 시뮬레이터를 돌리는 것처럼 주변이 느껴졌다.

‘응?’

조리실에서 느껴지는 강한 살기. 갑자기 살기가 폭증했다. 어디선가 느껴봤던 살기.

부산? 부산에서 썰었던 약쟁이들이 풍겼던 살기와는 달랐다. 더 원초적이고 거친 살기. 일본 도쿠시마 항구에서 맛이 간 채로 덤벼들었던 놈들의 살기와 닮았다.

수륙양용차량을 타고 강으로 피하자, 그걸 따라잡겠다고 무지성으로 제방에서 뛰어내렸던 약쟁이들과 비슷한 느낌.

쾅!

요리사가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입에 침을 질질 흘리며 조리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양손에 식칼을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요리사가 마루를 보자마자 괴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꾸으어어어!!!

뻥---

맑고 투명한 소리를 내며, 요리사의 안면과 키스한 테킬라 병. 격렬한 키스에 요리사의 코가 움푹 들어가고 앞니가 깨지면서, 두 눈에 피가 터졌다.

뀌에에에엑

눈이 보이지 않자, 사방으로 식칼을 휘두르는 요리사. 허공으로 휘적거리는 칼날을 가뿐하게 무시한 마루가 요리사의 배를 툭 쳤다.

우웨에에엑

단 한방에 허리를 ㄱ자로 꺾고 구토하던 요리사가 숨을 쉴 수 없는지, 끄억 끄억 거리다 기절했다. 마루는 구토물에 코를 박고 기절한 요리사를 발로 슥- 밀어 뒤집어 주곤 조리실로 들어섰다.

웨이트리스는 약에 부작용이 있는 체질인지 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버둥거리는 여자의 팔뚝에 선명하게 보이는 바늘 자국.

쯧-

주변을 둘러보니, 조리실에서 외부로 바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문 옆에 있는 옷걸이엔 요리사의 옷과 조리용 앞치마가 걸려있었다. 출입문 쪽으로 가자 문밖에서 느껴지는 조잡한 살기.

스테인리스 프라이팬과 식칼을 집어 든 마루가 출입문을 확 열자, 총알이 쏟아졌다. 총을 난사하던 놈들이 문만 열린 것을 깨닫고서 총격을 멈췄다. 총알 세례를 맞아 흔들리던 문이 닫혔다.

마루는 문을 열고 옆에 걸려있던 조리용 앞치마를 던졌다. 앞치마를 향해 쏟아지는 총격. 다시 문을 열고 요리사의 옷을 던졌다. 처음보다 확연히 줄어든 총격.

‘하나둘.’

콱-소리가 나도록 문을 활짝 열고 옷을 던지자, 몇 발 쏘고는 멈춘 놈들. 총격이 멈추고 문이 닫히기 직전 마루가 몸을 날렸다. 문이 닫힌 뒤 물건을 던졌던지라 문이 닫히기 전, 마루가 튀어나오는 것에 반응이 느린 놈들이었다.

쭉 뻗은 식칼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그대로 머리통에 틀어박힌 식칼. 옆에 있는 놈이 식칼에 박히는 동안 ‘뭔 일이지?’, ‘어?’하는 남자의 눈에 동그랗고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때에에엥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에 면상을 맞고서야 방아쇠를 당긴 남자가, 팬에 맞은 충격으로 팔을 허공으로 번쩍 들어 공중에 총알을 쏟아내며 뻗어버렸다.

흠- 마루는 만세 자세를 하고 뻗은 남자의 어깨와 무릎을 밟았다. 쿠직- 콰직- 잘근잘근 부서지는 관절이 애처롭게 박살 났다.

‘죽었나?’

힘 조절은 했는데···. 사지를 부숴버렸는데도 신체 반응이 없는 사내의 코에 손을 대보자, 얕게 숨이 느껴졌다.

“음-.”

마루는 흡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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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이걸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 머리털이 빠질 것 같았다.

17명이나 되는 갱&카르텔 조직원들을 박살 냈다고 보고하면 되나?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지역에서 흉악하기로 소문난 M 블랙 브라더스와 피스패닉을 쌍으로 조졌다고 하면 되나?

인력난으로 갱과 카르텔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범죄 조직이었다. 그냥저냥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적당히 넘어가면서 현상 유지나 하는 쪽이었다. 근데 졸지에 17명 가운데 생존자 1명을 제외한 16명을 묻어 버린 것이다. 뒷감당은 누가 어떻게 하라고.

‘씨발. 뭔 미친 잽 같으니.’

시키마루인지 세키마루인지, 신분 바꾼 이름도 꼭 좆같은 이름이었다. 블라디마루 칼린. 무슨 신종 마약 같은 이름이었다. 그놈의 마루가 무슨 의미인지, 그렇게 지을 거면 그냥 본래 이름으로 하지.

블라디마루라니 핏빛이냐? 피바다의 블러디는 아니겠지? 이름부터 스포? 직원은 의식의 흐름 너머로 현실 부정을 시도 중이었다.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다시 말해보게.]

“포크, 버터나이프, 빵칼로 무장한 갱단과 카르텔 조직원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빵 써는 칼 맞지? 버터나이프? 그거 버터 바를 때 쓰는 거 맞고?]

“예. 크리스털에 취한 요리사를 테킬라 술병으로 제압했습니다.”

[크리스털? 확실해? 약 먹은 사람을 술병으로 때려잡았다고? 미친-]

“예. 확실히 크리스털입니다. 그 새끼만 그런 게 아닙니다. 멍하게 있던 여자도 미친년입니다. 수류탄에 섬광탄을 매달고 다니는 여자가 어딨답니까? 심지어 권총에 소음기까지 달았습니다.”

[······.]

“게다가 총기 훈련 교관보다 더블 탭과 모잠비크 드릴을 더 잘 쓰는 여자가 정상입니까?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이놈들 뭔가 이상하다고! 정상이 아닌 거 같다고!”

직원이 한맺힌 소리를 질렀다.

[후- 일단··· 알았네. 그래서. 저들이 먼저 공격한 건 아니라며?]

“목숨을 위협받았으니 정당방위 상황은 맞지만, 이번엔 대량 살상 사건입니다. 누가 총 들고 위협이라도 하면 밥 먹다가 수저로도 사람을 죽일 연놈들이란 말입니다.”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흔적이 보이나?]

회사에서도 네이비실, 델타포스 출신 교관들의 지도 아래에서,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 대응훈련을 했다. 하지만 마루와 김 양 같은 움직임은 보도듣도 못했다.

그래도 김 양은 숙련된 화기 전문가라고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마루는 아니었다. 당장 총기로 무장한 갱단 앞으로 포크랑 빵칼 달랑 들고 산책하듯 가는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니었다.

이질적인 움직임. 그건 마치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훈련으로 그런 행동이 가능할까? 절대 불가능했다.

“···그건 아닙니다.”

[훈련받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근거리 교전으로 총화기로 무장한 갱단과 카르텔 조직원을 쓸어 버렸다? 참 믿기 힘든 말이군.]

“CCTV 영상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눈으로 직접 보고 이야기하지.]

“보시면 아시겠지만, 격리하든 회사에 취업시키든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아니면 그놈의 정당방위로 가는 곳마다 피바다가 터질 게 분명했다.

‘아까 정당방위라고 했었죠? 동의했던 일입니다.’

언제 촬영했는지, 총을 간호사의 머리에 겨누고 협박하는 갱이 담긴 생생한 동영상을 들이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일단··· 현장 정리부터 하지, 뒤처리팀을 헬기로 보내겠네. 20~30분 안에 도착할 테니, 그리 알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서는 CCTV 영상을 확인한 뒤, 의견을 나눠 봐야 하니까 당분간 지금 상황을 유지하도록 하게. 너무 티 나게 감시하지 말고, 절대 자극하지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둬. 적당히.]

“그렇게 하겠습니다.”

직원은 낮게 욕을 내뱉고는 마루와 김 양이 앉은 테이블을 봤다. 테이블에는 다양한 핸드폰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갱과 카르텔 애들이 갖고 있던 폰이었다.

“이거 나 줌.”

금색으로 번쩍이는 사과폰을 작은 손으로 움켜쥐며 말하는 김 양.

마루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또 금색으로 번쩍이는 은하폰을 집은 김 양의 말에 마루가 그러라며 물었다.

“그래. 근데 폰은 어디에 쓰게? 그냥 하나 사지?”

“이거 괜찮음. 대포폰으로 씀.”

“미국에도 대포폰이 있나?”

“아는 애한테 뚫어 달라고 하면 됨.”

오래간만에 천연 미소를 보이는 김 양이었다.

확실했다. 이 감촉. 이 빛깔. 진짜 금이었다. 완전히 순금은 아니지만 22~23k 정도? 케이스니까 단단하게 하려고 합금했겠지만, 이 느낌은 분명 금이었다. 금 케이스라니, 그것도 커스텀.

후후훗

직원은 증거니까 내려놓으라고 말할 수 없었다. 분위기가 그랬다. 화기애애한 것이 아닌 화기애매한 분위기.

정상은 그나마 간호사인가? 머리에 총구가 겨눠지고, 사람들이 단체로 저승행 특급에 탑승하는 것을 직관한 간호사는 살짝 멍한 상태였다.

그래. 저게 정상이지. PTSD도 좀 오고. 무섭고. 그래야 사람답지. 직원은 어쩐지 간호사를 챙겨주고 싶었다.

“괜찮습니까?”

히익- 소리를 낸 간호사가 김 양의 등판에 달라붙었다. 기분 좋게 골드폰을 감상하고 있던 순둥순둥 동글동글했던 김 양의 눈매가 삐죽 날카롭게 변했다.

“뭐니?”

“······.”

“······.”

간호사는 울먹이는 눈동자로 김 양을 한번 보고, 직원을 한번 봤다. 직원은 억울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울먹이는가? 그냥 위로를 좀 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가만히 두 사람을 보던 김 양이 직원에게 말했다.

“치우셈.”

“?”

갑자기 다짜고짜 뭘 치우라는 거지?

김 양의 시선이 널브러진 시체들을 향했다가 직원에게 옮겨졌다.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초짜는 한 것도 없이 찌그러져 있다가, 일 다 끝나고 나니까 슬슬 기어 나와서, 얼빵한 간호사나 후리려고 그러나? 그런 눈빛이었다.

‘Fuck! 내가 왜 저 눈빛을 해석할 수 있는 거지?’

직원은 당황스러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 양이 직원과 눈을 맞추며 낮게 말했다.

“치.우.셈.”

골드폰을 보며 초롱초롱 빛났던 눈동자가 어느새 흐릿하게 변해 있었다. 직원은 대답 대신 벌떡 일어나 널브러진 시체를 차곡차곡 치우기 시작했다. 절대 자극하지 말라는 임무를 따를 뿐이었다. 그래. 이건 임무였다.

열심히 밥값 하는 직원을 가만히 보던 김 양이 작게 입맛을 다셨다.

잘 먹다 말고 이게 무슨 일인가?

역시 백정이랑 있으면 칼로리 소모할 일이 많았다.

조리실은 멀쩡한 거 같고.

수류탄 안 까길 잘했네.

응.

“햄버거 만들 줄 앎?”

“에? 하-잇-”

“햄버거 맛있게 8개···”

“······.”

“아니, 12개 만들어 오셈. 패티랑 치즈는 더블로. 두껍게. 베이컨도 넣고. 토마토, 양상추, 양파 넉넉하게. 소스는 다양하게.”

간호사는 이제까지 김 양이 했던 이야기 가운데 가장 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커다랗고 두툼하고 푸짐하면서도 맛있는 햄버거 10개를 대령하라는 주문이었다.

“하잇.”

벌떡 일어나 조리실로 달려가던 간호사의 발걸음이 조심스럽게 변했다. 살짝살짝 피가 묻은 곳을 피해 조리실로 향하는 간호사.

안면이 함몰되어 피를 줄줄 흘린 채 쓰러진 백인 요리사를 힘겹게 넘어간 간호사가, 조리실 문을 열자마자 높은 소리를 냈다.

히에에에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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