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18화 (118/280)

러스트 [RUST]-118

TV에서는 화재로 인해 통제되는 구간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확실히 대응이 빨랐다. 코로나가 처음 창궐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대응이었다.

[···주 방위군이 인근 지역 치안을 확보한 가운데···]

[산불을 피하는 가운데 다량의 마약을 옮기려다 적발된 사례가 생겼다죠?]

[앙쿠만 구라스의 집에서 다량의 신종마약이 발견됐습니다.]

[···남미산 코카인을 기본 원료로 다양한 유기화합물을 합성해 만든 신종마약으로···]

[SNS에서 인권활동가로 알려진 앙쿠만 구라스는 최근 세무조사를 받고 있었는데요.]

[앙쿠만 구라스와 BLM 크리스털 센터에서는 경찰이 조작한 사건이라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TV를 보는 척하며 기순이 냅킨을 내밀었다.

냅킨에 적힌 단어.

[아직도?]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뭔가 관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약해졌다. 기순의 의견대로 일본 이야기를 조금 풀었더니 분위기가 급격하게 느슨해졌다. 그리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더러운 기분도 확실히 많이 가셨다.

“세상 참 살기 힘들어요.”

기순의 말에 마루가 동의하며 맥주를 마셨다.

“그래도 미국은 미국이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거 보니까.”

“그러게.”

부우웅- 부우웅-

마루의 폰이 진동했다. 김 양에게서 문자가 왔다.

[얘 좀 어떻게]

김 양이 보낸 문자에 딸린 사진. 간호사가 김 양을 붙잡고 우는 모습이었다.

이건 또 왜 이래?

간호사가 김 양을 붙잡고 우는 사진을 보니, 어쩐지 헛웃음이 나왔다.

기순이 ‘왜? 뭔 일 있데?’ 해서 문자와 사진을 보여주자 기순도 피식- 웃었다.

간호사의 울음 터진 모습과 김 양의 안절부절 어쩌지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니 조금 긴장이 풀렸다.

“표정 보소. 살아있네···.”

사진 속 김 양을 보곤 키득키득 웃는 기순이었다. 사진 속 얼굴을 보니 혈색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술 먹었냐?]

[조금?]

‘음- 술주정이라 이거지?’ 마루가 문자를 보냈다.

[술주정이니까 받아주지 말고 때려.]

[때려도 됨?]

[어디서 술주정이야. 패.]

[알겠음.]

오래간만에 느슨하게 풀어진 분위기, 마루와 기순은 낄낄거리며 맥주잔을 비웠다.

[···SUV 차량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인 학생들을 뒤에서 덮칩니다.]

[행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학생들을 친 SUV가 도로를 질주합니다.]

[범인은 경찰에 연행되면서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라고 외쳤다고 하는데요···]

“야. 저거 뭐냐? 왜 애들한테 저러는 거냐?”

“쯧- 그래도 그렇지 참···.”

뉴스를 보면 미국도 참 여러모로 힘든 나라구나 싶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막 기순의 투 머치가 발동하려는 찰나, 마루의 폰이 울렸다.

“잠깐. 전화 왔다. 여보세요.”

[나- 경찰서임.]

“뭐?”

[경찰서.]

뚝-뚜뚜뚜뚜

“뭔 무슨.”

황망한 표정의 마루를 보고 기순이 물었다.

“왜?”

“갑자기 경찰서라고 그러고 끊으면 어쩌자는 거지?”

“경찰서? 거길 왜 갔데?”

“난들 아냐?”

“아까 너 문자 뭐라고 보냈다고 했었지?”

“?”

“간호사 때리라고 했었지?

“어? 설마?”

무슨 경찰이 잡아갈 정도로 때린 거냐? 설마? 마루와 기순이 서로를 쳐다봤다. 정말?

뚜룩- 뚜룩-

기순의 전화가 떨렸다. 버지니아 직원의 전화였다.

[버나드 씨, 동료분이 경찰서에 연행돼서 연락드렸습니다.]

“예? 어쩌다가 그랬답니까?”

[동료분들끼리 싸움을···. 아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폭행하는 것을 본 가게 주인이 신고했다고 합니다.]

“폭행으로 입건된 겁니까?”

[맞은 분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서 연행한 데다, 폭행이라서 벌금을 물어야 할 상황입니다. 저희 쪽에서 처리해드릴까요?]

“아- 예. 그러시면 고맙죠. 감사합니다.”

기순이 전화를 끊었다.

“간호사 때려서 경찰서 끌려갔단다.”

“실화냐?”

“실화다. 버지니아에서 해결해 준다더라.”

“아니 어떻게 때렸길래?”

잠시 뒤, 김 양과 간호사가 들어왔다. 한쪽 눈두덩이가 파랗게 멍든 모습에 입술이 터진 간호사가 김 양의 뒤를 오리 새끼처럼 졸졸 따라왔다. 김 양이 휙 돌아보면 잠깐 멈춰 섰다가, 다시 앞을 보면 졸졸 따르는 모습.

김 양이 불퉁한 얼굴로 마루를 째려봤다. 마루가 어쩌다 애를 저렇게 팼냐는 표정을 짓자, ‘니가 때리라며!’ 김 양이 온몸으로 항변했다.

“아주 사람을 잡았네, 잡았어.”

기순이 분위기를 깼다. 김 양은 그런 기순이 얄미웠는지 자리에 털썩 앉고는 손을 들어 테킬라를 시켰다. 간호사도 눈치를 살피더니 칵테일을 시키려다 김 양의 눈빛 공격에 탄산수로 바꿨다.

테킬라를 호쾌하게 마신 김 양이 마루를 노려봤다. 마루가 마주 쳐다보자, 어쩐지 분노 조절 잘해가 된 김 양이 급 착해졌다.

“뭔 술주정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떡이 되도록 팬 거야?”

김 양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간호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옆구리를 찔린 간호사가 ‘헤엣.’하는 소리를 내고 몸을 비틀더니 힐끗 마루의 눈치를 봤다.

다시 김 양이 손가락으로 간호사의 옆구리를 찌르려고 하자, 간호사가 몸을 비틀며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왜 절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죠···.”

“?”

“저. 절 스카웃 했잖아요. 월급 많이 준다고.”

“···? ···!”

아? 그랬었다.

기순이 다쳤을 때 간호사 잡아 왔던 거.

의사 잡아 오려다 실패하고 뭔가 아방한 간호사 하나 잡아 왔었던··· 그 간호사가 쟤였지.

간호사는 뭔가 서럽다는 것처럼 울먹울먹했다.

“이름도 모르고. 이름도 묻지 않고. 뭘 하라고 하는 것도 없고.”

마루가 기순을 봤다. 기순이 ‘술주정할 만하네. 이름도 묻지 않은 건 좀 심했지. 암.’ 하는 표정으로 끄덕이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지는 간호사 이름 물어봤나? 그래도 배에 있을 때 자길 간호해 준 사람인데?

“아- 미안합니다. 아시다시피 상황이 좀 그랬잖아요.”

“······.”

“이제 어쩌실래요? 미국 시민권이 생겼으니까 미국에서 자리를 잡으시렵니까?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

마루의 말에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월급 많이 주기로 해서 데려오곤, 달랑 한 달 월급 주고 알아서 해라 그건! 좀 아니지.”

“그럼 어쩌라고?”

“어쩌긴, 그래도 최소한 3~4개월은 보장해야지 않겠냐?”

그렇기도 했다. 최소한 3~4개월은 호구지책을 해줘야 뭔가 결정하겠지?

“일단 3~4개월 정도는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간호사 자격이 있으시니, 미국에서 자리를 잡기 쉬울 겁니다. 아 맞다. 버지니아든 국토든 그쪽에 말하면 취업 알선해준다고 했잖아. 말하면 되겠네.”

“영 자리 잡기 힘들면 그래도 되고. 아가씨 영어 좀 되나요?”

간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뭔가 상처받은 모습이었다. 한쪽 눈두덩에 파랗게 멍이 든 얼굴로 고개를 힘없이 떨구는 모습을 보니, 마루도 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 친구가 도쿄 인근에 간다는데, 갈 때 같이 가실래요?”

“······.”

“야- 재난 터져서 도쿄 망한 거 다 아는 마당에 돌아가서 어쩌라고? 돌아가서 죽으라는 거냐.”

기순의 말에 간호사는 정말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럼 어쩌라고?”

“어쩌긴 뭘 어째? 그걸 물어봐야지. 아가씨 어떻게 하고 싶으신데요? 일단 우리랑 3~4개월 정도 같이 다니면서 어떻게 할지 생각 좀 해보세요.”

기순의 말에 간호사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러곤 우물우물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습니까?”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 간호사. 김 양이 그걸 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이름. 소개.”

“정식으로 소개해 달라고?”

거참. 까다롭네. 이런 시국에 자기소개라니.

“너부터 해라.”

마루가 기순을 내세웠다. 기순이 실처럼 가는 눈을 곱게 휘며 말했다.

“미.국.시.민. 버나드 그린이라고 합니다.”

“오노 나나에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간호사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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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시.민. 버나드 그린이라고 합니다.]

풉-

도청하던 직원이 햄버거를 먹다 뿜었다. 콜라를 마시며 컥컥 웃음을 참는 모습을 보곤 옆에서 물었다.

“왜? 뭔데?”

“무슨 자기소개를. 와- 큭큭- 이거 봐라.”

녹화된 모습을 돌려보며 낄낄거리는 두 사람.

“집중관리 대상에서 제외라고 하니까, 쟤들 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네.”

“약쟁이 놈들 감시하다 저런 애들 보니까 힐링 되는 기분이었는데, 좀 아쉽네.”

“그건 그렇고 BLM 크리스털 쪽 보는 애들한테는 연락이 없고?”

“때 되면 오겠지. 중국 애들 움직임도 심상치 않고.”

“돈 먹은 새끼들 잡아야 한다니까 대체 위에서는 무슨 생각인지.”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렇지 않아도 뒤숭숭한데.”

“이번에 일본 출장 갈 사람 지원받더라. 생각 있냐?”

“미쳤냐? 일본 자연재해로 서바이벌 찍는다고 소문이 쫙 돌았는데 거길 왜 가?”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주일미군 사령부와 연락이 끊겼고, 도쿄에 상주하는 직원들과도 연락이 끊겼다는 것을. 지진이 터졌든 쓰나미가 밀려왔든 도쿄에 상주하는 직원, 현지 직원들 한두 사람도 아니고 모조리 통신 불능이라는 건 이상했다.

“일본 가지 않는 사람은 BLM 크리스털 쪽으로 투입된다고 하더라.”

“홀리- 서바이벌 일본이냐 아니면 흑-중국과 춤을. 둘 가운데 하날 고르라고? 진짜냐?”

“그렇다네. 그러니까 너도 둘 가운데 하나 골라. 이따 오후 4시까지 올려야 하니까, 그 전에.”

“빌어먹을. 넌 어디로 갈 건데?”

“일본.”

“위험하지 않을까?”

“BLM 크리스털은 안전하고?”

“크크크크크. 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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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상황실.

“변종 따개비 전염 상황은 어떻게 됐어?”

“무감염 24시간 경과 됐습니다. 비상사태 해제됐습니다.”

휘파람을 불고 여기저기 손뼉 치는 직원들.

“다들 수고했다. 실험실과 연구자들에게 직원 붙이고, 연구 자료 유출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

“넷.”

“그리고 일본에 갈 직원들은 다 뽑았나?”

“옛.”

“좋아. 나머지 직원들은 BLM 크리스털 쪽에 붙이도록 해. 중국 자본이 들어갔다는 정황뿐 아니라, 신종 마약과 연계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니까. 남미 라인이랑 공조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국토안보부에서 연락입니다.]

“회선 돌려.”

잠시 뒤, 건조한 목소리가 인터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일본으로 갈 직원들은 다 뽑았나?]

“이쪽은 준비됐다. 그쪽은?”

[우리도 준비됐지. 다른 정보는 없나?]

“한국 협력 업체에서 들어온 정보가 있다.”

[한국 크리스털에 대한 정보라면 우리도 있어.]

“샬롯 그룹 회장이 갈린 것도 알고 있나?”

[샬롯이면 일본 대기업?]

“그래. 사실상 한국으로 본사를 옮겼다고 하더군. 사내 투쟁 끝에 여자 회장이 자리에 앉았어.”

[지금 상황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여자가 회장에 앉았다는 게 중요한 정보가 아니라. 그 여자의 대리인, 그러니까 그림자 대리인이 도쿄에 있는 제약회사로 중요한 자료를 가지러 갔다는 게 중요한 정보다.”

[재난 사태로 위험한 도쿄에 가게무샤를 보낼 정도로 중요한 정보라고?]

“중국에서도 움직인 정황이 포착됐고, 마피아와 갱단, 남미 반군에, 러시아 마피아와 동남아 갱단까지 일본으로 가고 있다.”

[설마 변종 따개비와 관련된 정보인가?]

“그건 확실하지 않지만, 일본이 뭔가를 만든 건 확실한 것 같다.”

[잽들이 또 사고를 쳤단 말이군. 그나저나 그게 뭐가 됐든 중국이나, 러시아, 테러리스트의 손에 넘어가면 위험하겠군.]

“그래.”

도쿄에 뿌려뒀던 직원들과 일시에 연락이 끊겨 정보가 많이 늦었다. 그 결과 일본이 만든 무엇을 차지하기 위해 각국 정보기관들과 갱, 마피아, 반군들과의 경쟁은 불가피해졌다.

미군으로 들쑤시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직원들과 요원들을 동원해야 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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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요트 3척이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기순이 카타마란 앞에서 인상 쓰고 있는 마루의 어깨를 툭 쳤다.

“인상 펴. 인상. 누가 죽으러 가냐?”

“꼭 가야겠냐?”

“말했잖아. 나루 포기 못 한다고.”

“하- 진짜. 내 동생이지만 정말 모르겠다.”

마루의 해탈한 표정에 기순이 픽 웃으며 배에 올랐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이 형님은 알아서 잘하고 있을 테니까.”

“형님은 지랄.”

“어야- 칼 뽑기 전에 성질 좀 죽이고.”

“너도 새꺄. 오지랖 떨지 말고.”

그렇게 기순이 탄 배가 서서히 바다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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