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02
이거 느낌이 존나 그런데?
보고 있으면 불길함을 넘어서 혐오감까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약인데 이걸 쓰라고?
마루는 붉은색 약을 가만히 쳐다보다 경호원을 봤다. 묶인 채 버둥거리며 뭐라 말하고 있었다. 뭉개진 발음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지만 알아듣기 힘들었다.
“야. 거기 묶인 거 풀어줘.”
“예? 예.”
의료진이 묶여있던 경호원을 풀어줬다. 풀리자마자 사장을 덮치듯 달려든 경호원이 사장을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빨리. 빨리 치료제를···.”
마루는 경호원의 말을 듣고 가만히 붉은색 앰풀과 핑크빛 치료제 앰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뭐 하는 거죠?”
“저번에도 말했지만, 난 이거 붉은색 약은 찝찝해서 못 쓰겠어. 그러니까 쓰든 말든 알아서 해.”
세상에 일이 더럽게 엮이려면 좆같이 엮일 수 있다는 걸 체험하지 않았던가? 지진이 터지면서 갈비뼈 속에 숨긴 마약이 쏟아진다거나, 일본에서 간신히 한국으로 튀었는데, 한국에서 다시 일본으로 오게 됐다든가. 한 번 잘못 엮였더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었다.
이런 마당에 약이든 뭐든 손댔다가 혹시라도 잘못되면? 그건 누가 책임지나? 마루는 뒤로 물러났다.
“붉은 약하고 핑크 약 여기 뒀다. 난 모르겠으니까. 알아서 해. 그리고 여기 중화제랑 전투용 약 있다면서? 어딨어?”
야마츠키 신약에 온 이유가 그거였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할 중화제를 챙기는 것. 레시피도 챙길 수 있으면 좋고. 버서커 폴이라고 했던가? 중화제가 있으니 그것도 가져가면 쓸데가 있을 거다.
바닥에 놓인 붉은색 앰풀을 낚아챈 경호원이 입을 열었다.
“왼쪽 복도 끝에 있는 실험실···.”
“···실험실 안쪽으로 가면 창고가 있고 거기 냉장 보관함에 있습니다.”
“창고 비밀번호는 **99825#입니다.”
마루는 대답 대신 살짝 고개를 까딱이고 서버실 밖으로 나왔다. 위치는 알았는데, 거기까지 가기가 또 더러웠다. 복도에 바글바글한 쥐새끼들을 뚫고 갔다가 와야 한다는 소리 아닌가?
킁-킁-
설상가상으로 옷에 묻은 최루가스 냄새가 많이 빠져있었다. 이대로 나가긴 영 불안했다. 최루탄은 한 발 남았고, 수류탄은 2발, 크레모아 1발. 애매했다.
수류탄을 터뜨려서 간다고 하더라도 올 때 또 수류탄을 터뜨려야 했다. 쥐들이 다시 몰려오면 최루탄을 써야 할 판이고.
‘쥐가 소리에 민감했던가?’
후각은 좋은 것 같았다. 피 냄새에 순식간에 모여들었던 거 하며, 최루탄 한 방에 지랄 났던 걸 생각하면 그랬다. 청각도 수류탄 터지니까 싹 도망간 것을 보면 민감한 게 맞았다.
‘잘하면 가능성이 있겠는데···.’
마루는 통제실에 부상으로 끙끙거리는 사람들에게서 휴대폰을 수거했다. 9명의 휴대폰에 저장된 동영상을 확인하던 마루.
“찾았다.”
혹시나 했는데 다행히 있었다.
쥐의 천적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을 듣자마자 10명 가운데 9명은 고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마루가 찾으려고 하는 것도 고양이 동영상이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많다고 들었던 기억이 나서 찾아봤더니, 역시 있었다.
“그러니까. 고양이 울음소리를 복도 스피커로 틀어준단 말임?”
김 양이 진짜냐는 표정으로 마루를 봤다.
“그래. 쥐들은 청각이 예민하니까 천적인 고양이 소리가 들리면 도망칠 거다. 쥐들이 도망치고 우왕좌왕할 때, 최대한 빨리 실험실로 달려가 챙길 거 챙겨서 뜨면 끝. 어때?”
‘어떻긴, 너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김 양은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백업해줘.”
“알겠음.”
마루가 중앙통제실 문으로 다가가 신호를 보냈다. 김 양이 마이크에 휴대폰을 대고 동영상을 틀자, 천장에 붙은 스피커에서 높은 소리가 났다.
-미야아아아아아옹
-키야아아아아아앙
옳지. 마루가 문을 열기 전 CCTV 화면을 슬쩍 확인했다. 막 쥐들이 도망치고 있겠···?
“이게- 뭔-”
쥐들이 천장에 붙어 있는 스피커를 향해 점프하고 달려들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저걸 해석해 보자면, 쥐들이 고양이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돌격하고 있다는 의미?
“쥐들이 미쳤나?”
마루가 김 양을 보니 김 양도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서로 얽히고설킨 쥐들이 동산처럼 솟아올라 기어코 스피커에 닿았다. 얇은 스피커 철망을 이빨로 갉아낸 쥐들이 기어코 스피커를 작살냈다. 그렇게 하나둘씩 천장의 스피커가 뜯겨 나가기 시작했다.
“그거 꺼. 그만 꺼.”
김 양이 재생하던 동영상을 껐다. 고양이 소리가 나지 않음에도 스피커가 붙은 부분을 집요하게 물어뜯는 쥐떼들의 모습이 CCTV 화면에 잡혔다.
쥐가 천적인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잡아먹겠다고 달려든다? 바퀴도 지랄 같았는데 쥐들도 만만치 않았다. 대체 뭘 어떻게 했는데 바퀴고 쥐고 이 지경이야? 아 몰라.
쥐 떼를 물리칠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 있기는 있었다.
통제실에서 자동으로 작동되는 환풍기와 공기정화기를 끈 뒤, 최루탄을 까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하면 최루탄 한 발로도 복도에 연기가 꽉 찰 테니 쥐들이 도망칠 게 분명했다.
문제는 도망친 쥐들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건데. 연구실 이곳저곳에 흩어지는 정도라면 좋겠지만, 아예 밖으로 도망쳐버린다면 답이 없었다.
대체로 쥐들은 한 번에 최대 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평균 8마리 정도를 낳지만, 먹이가 충분하다면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번식할 수 있는 게 쥐였다.
그리고 지금 밖은 수습되지 못한 시신들이 널려있는 상황. 그러니까 충분한 먹이가 넘치게 있는 환경이었다.
저렇게 덩치 크고 포악한 쥐들이 밖으로 나가 번식까지 한다면?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건 아니겠지?”
“괜찮지 않음?”
김 양이 나쁘지 않은데? 표정으로 그렇게 하자고 했다. 진심이니?
“쥐는 잘 손질하면 맛있음.”
“······.”
잠깐. 왜 이야기가 갑자기 쥐고기 맛으로 가는 건데? 저런 쥐들이 밖으로 탈출해서 개판 만들면 위험하지 않겠냐는 쪽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진짜임. 정말 맛있음.”
“······.”
그러니까 밖으로 나가서 번식해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냐? 설마?
“저거 크기도 크고 그러니까···.”
“알았어. 알겠다. 그만하고 일단 밥부터 먹자. 저쪽 안쪽에 보니까 비상식량 있더라.”
밥이라는 말에 바로 조용해진 김 양이었다.
그래 일단 먹자. 먹고 하자. 일본 애들 재난 대비 비상식량 여기저기 많이 쌓아 놨더라.
서버실 입구가 있는 안쪽으로 비상식량을 챙기러 갔다. 김 양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장섰다.
흐으어어억!
서버실 안에서 새어 나온 비명. 김 양은 재빨리 광학 은신 로브 안으로 몸을 숨겼고 동시에 마루가 서버실 문을 활짝 열자, 눈 앞에 펼쳐진 광경.
“씨발! 내가 뭐라고 했어!”
“···어. 이···.”
경호원이 붉은색 약이 담겨있던 빈 병을 들고 넋이 나가 있었다.
“그거 좆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잖아!”
뽀그르르 거품이 일더니 눈알이 재생되는 모습.
재생력이 과도했는지 이미 안구가 만들어졌는데도 속에서 또 눈알이 만들어졌다. 잠시 뒤 먼저 만들어진 눈알이 밖으로 밀려나면서 안에서 새로 안구가 돋아났다. 강제로 안구가 밀려 빠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
잘린 발목이 재생되고 재생된 발목 틈새로 다른 발목이 돋아나고 다시 연결된 부위에 발목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뭉텅이로 뜯겨 나간 살이 차오르다 못해 넘쳐흘렀다. 살이 흘러내리는 기괴한 증상.
찝찝한 느낌이 점차 끈적한 불길함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스릉- 마루가 칼을 뽑자, 멍하게 넋이 나가 있던 경호원의 눈빛이 돌아왔다.
“칼을 왜 뽑죠?”
“왜 뽑았는지 몰라서 물어?”
고통으로 펄떡이던 몸이 우드득 뒤틀리기 시작했다. 근육과 힘줄이 별도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모습. 수축하고 팽창하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뼈가 꺾이고 부러져 나갔다.
쿠직-
우드득
흐으어억
의료진은 그 모습을 보곤 뒷걸음질 쳤다. 그런 의료진의 뒤통수에 경호원이 겨눈 총구가 닿았다.
“빨리 치료해.”
“저건. 저런 건 본적 없습니다.”
고통에 발버둥 치던 사장의 몸뚱이가 어느 순간 축 늘어졌다. 그걸 본 경호원이 소리를 빽 질렀다.
“죽고 싶어? 빨리 어떻게든 하란 말이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모르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제발.”
질척하게 흘러내린 살덩이들이 꾸물꾸물 느릿하게 기어 오다 갑자기 팍 이불처럼 펼쳐져 가까이 있던 의료진을 덮쳤다.
“어어으으윽. 사람 살려!”
남자가 보자기처럼 감싼 살덩이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살덩이는 남자를 감싸곤 본체가 있는 쪽으로 끌고 갔다.
촤악!
번쩍이는 칼날이 살덩이를 잘라냈다. 안에 있던 의료진이 허우적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머리카락, 얼굴, 손등과 같이 겉으로 드러난 부분이 군데군데 녹아있었다.
으아악
으으억
듬성듬성 뼈가 드러난 얼굴을 반쯤 녹은 손으로 감싸곤 몸부림치는 사내. 잘린 보자기가 꾸물거리더니 고통으로 바닥을 데굴거리는 의료진을 다시 덮쳤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살덩이가 남자를 감싸더니 꽉 수축했다. 쪼이고 비틀어 마치 착즙기처럼 쥐어짜는 모습.
우두둑-
전신의 뼈가 한 번에 부서지며, 보자기처럼 얇은 살덩이 안쪽으로 피가 흥건하게 차오르는 것이 비쳐 보였다. 실시간으로 희생자의 피와 살을 흡수하며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후- 씨발.”
손목이 잘린 부분에서 재생된 손목이 촉수처럼 길게 뽑히며 그 틈으로 다시 새로운 손목이 생겼다. 너울너울 흔들리는 해초처럼 촉수에 달린 손들이 흔들렸다.
‘좋아. 어디 해보자고.’
마루의 칼끝이 같이 흔들렸다.
휘릭- 휘릭-
공기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촉수에 달린 손이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깔린 살덩이를 피해 한 걸음씩 나가는 마루. 머리와 몸통을 통째로 다지면 어떻게든 되겠지.
경호원이 살벌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마루를 향해 소리 질렀다.
“그만해!”
서걱-서걱-
칼날이 닫는 범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잘리고 토막 났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핏방울, 살덩이, 촉수들이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점점 본체에 가까워지는 칼질.
“그만하라고!”
경호원의 총구가 마루를 향하는 순간, 한쪽에서 소음기로 억눌린 총성이 터졌다.
투칵! 투칵!
경호원의 팔과 다리에 박힌 총탄. 들고 있던 권총을 놓친 경호원이 일렁이는 공간을 노려봤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은 경호원을 노리고 슬슬 움직이는 살덩이를 힐끗 본 마루가 낮게 말했다.
“그거 환풍기랑 공기청정기 작동 멈추고 최루탄 복도에 던져.”
“자폭장치 15분으로 셋팅하고 헬기 아저씨 깨워서 나가. 난 챙길 거 챙겨서 나갈게.”
“알겠음.”
바닥에 무릎 꿇은 경호원을 촉수에 달린 손들이 잡아끌었다. ‘이러지 마세요.’, ‘정신 차리세요.’ 경호원이 버둥거리며 외쳤지만, 본체 아래 있던 살덩이까지 경호원의 다리를 감쌌다.
경호원을 잡아먹으려고 촉수와 살덩이들이 한쪽으로 쏠린 순간 마루가 바닥을 박찼다. 붕 공중으로 떠오른 몸을 180도 회전시켜 천장을 박차 본체로 내리꽂혔다.
스치듯 지나가며 휘두른 칼.
빠르게.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잘린 머리통이 허공에서 또 잘렸다.
더 빠르게.
허공에서 잘린 조각이 다시 조각났다.
후두둑- 떨어지는 파편들
“안 돼!!!”
하반신이 살덩이에 파묻힌 경호원의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흩어져 떨어진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진 살덩이들 위에서 아이스크림 녹듯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녹아내려 살덩이에 흡수되는 조각들.
꾸르륵- 머리가 잘린 목 부분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며, 불쑥. 머리가 돋았다.
하나. 둘.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