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00화 (100/280)

러스트 [RUST]-100

최루가스 배인 옷 때문에 가까이 오지 못하면서도 배는 고픈지 쥐들이 마루의 앞을 알짱거렸다. 차마 달려들지는 못하고 눈물이 글썽글썽. 앞다리로 맑게 흐르는 콧물을 닦아가며 간 보는 쥐들.

투콰카카카칵-

단칼에 7~8마리를 절단한 마루가 핏방울을 바닥에 털고 칼날을 살폈다. 뭐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시멘트 바닥을 긁었는데도 칼날이 나가지 않고 있었다.

“온 천지가 쥐새끼네.”

“······.”

마루와 김 양이 멀어지면 어디선가 모여든 쥐들이 순식간에 시체를 분해했다.

“무슨 문도 없고 복도만 뱅글뱅글 돌아? 실험실이든 통제실이든 어느 쪽인지 알겠어?”

“이상하게 안내도가 없음.”

대충 복도 구석이든 어디든 비상 안내 이딴 거라도 붙어 있는 게 일반적인데,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나온 문, 마루가 문고리를 돌렸다.

철컥- 철컥-

잠겨 있었다.

“열쇠로 확인해봐. 그거 엘리베이터 돌린 마스터키로.”

열쇠 구멍으로 열쇠가 쑥 들어가 마스터키로 열리나 싶었는데, 돌아가지 않았다. 그럴 거면 마스터키라고 하지 말든지.

“안 됨.”

칼끝으로 문짝을 쿡쿡 찔러 보면서 ‘될까? 통짜 쇠로 보이는데?’ 견적 잡는 마루에게, 김 양이 가방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위에 이것도 있었어?”

마루의 감탄사에 김 양은 ‘뭘 그렇게 호들갑이니?’ 어깨를 으쓱- 한 번 하고는 다시 광학 은신 로브로 쏙 들어갔다.

“이야- 김 양. 대단해. 이걸 챙기다니.”

마루는 열쇠 꾸러미에서 맞는 열쇠를 찾아, 문을 열었다.

끼이이-

살짝 문을 열고 안쪽에서 나는 소리가 있는지 집중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감염자든 생존자든 있다면 뭔가 감각에 걸리는 게 있을 텐데···.

마루가 수신호에 반쯤 연 문틈으로 일렁이는 그림자가 쏙 들어갔다. 광학 은신 로브를 의지한 김 양이 자세를 낮춰 안을 살폈다.

딸깍-

스위치를 켜자, 환해지는 방. 보안요원들이 대기하는 숙직실이었다. 대략 20명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법한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옆에 있는 무기 보관함이 텅 빈 것을 보니, 완전무장하고 전부 출동한 듯했다.

“아무도 없음.”

“이쪽도.”

“무기고가 텅 비었음.”

“이쪽도 그래. 여기도 뭔가 일이 터졌나 보네. 흩어져서 정보 될 만한 것부터 찾자.”

“알겠음.”

쥐새끼들 때문에 전부 나간 걸까? 화염방사기든 최루탄이든 그런 무기가 아니라면 쥐 떼를 막기 힘들었을 텐데, 일단 정보가 될 만한 것을 찾아야 했다.

보안요원들 사물함에선 딱히 특징적인 게 나오지 않았다. 피규어가 일렬로 쭉 전시된 사물함이 하나 있어 혹시 여기에 숨겼나 싶어 뒤졌지만, 그뿐이었다.

“여기!”

김 양이 뭔가 찾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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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요원들이 있는 곳이니, 당연히 통제실과 다이렉트로 연결된 곳이 있었다.

“CCTV랑 통신장비. CCTV는 갔고, 통신장비는 살아있음.”

“중앙통제실이랑 연락은 되고?”

“···아직 해보지 않았음. 여기 이거 누르고 하면 됨.”

언제 은신 로브를 둘러썼는지 일렁이는 모습만 보였다. 마루가 쩝- 입맛을 다시고 통신을 시도했다.

“아- 아- 거기 누구 있습니까?”

[치직- 치지직--]

잡음만 났다.

“아무도 없습니까? 통제실. 누구 없습니까?”

[치지직-삐이이익--]

잡음이 커지더니 여자 목소리가 나왔다.

[끼이이- 신원을···삐. 밝혀···치이익]

경호원 목소리였다.

“경호원? 너 경호원이지? 사장님은 괜찮냐?”

마루가 경호원과 통신하는 동안 김 양은 지하연구실 구조도를 찾았다.

‘여기가 보안 당직실이면, 밖으로 나가서 직진 양쪽으로 갈라지는 곳에서 좌측으로 연구실이 쭉 있고, 우측에 기자재실이랑 식당, 숙직실, 휴게실, 중앙통제실. 비상구는 4곳.’

구조도를 숙지한 김 양이 주변을 살폈다. 지진으로 갈라진 틈이 없었다. 다카이치 제약 비밀 실험실보다 더 단단하게 지었다는 걸까? 그럼 그 큰 쥐들은 어디서 나온 거지?

구조도를 보면 완벽히 밀폐된 공간이었다. 어쩌다 몇 마리가 들어왔다 치더라도 수천 마리가 넘는 쥐들이 들어올 구멍이 없었다.

김 양이 돌아오자마자 마루가 김 양이 있는 곳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은신 로브를 쓰고 있는데도 바로 알아채는 모습. 이젠 뭐 그러려니 하는 김 양이었다.

“야- 사장이랑 경호원, 헬기 조종사도 살아있다. 여기 연구원들이랑 보안 직원도 몇 명 있고.”

헬기 조종사에 어쩐지 방점을 두는 느낌이었다.

“통제실 찾았음. 여기.”

김 양이 은신 로브 밖으로 팔을 쑥 빼 구조도를 건넸다. 마루가 쓱 훑어보더니 벌떡 일어섰다.

“가자. 뭔 병신 같은 새끼들이 지랄하는 거 같네.”

“······.”

일본에 있는 호텔 사장 휘하 세력들이 거의 전부 배신했다고 한다. 야마츠키 제약에 박아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장이 자기들이 모르는 비밀통로로 들어오자, 다시 호텔 사장에게 붙는 사람들이 생겼다.

한쪽은 본사의 말대로 호텔 사장을 죽이거나 사로잡으려고 했고, 다른 한쪽은 호텔 사장이 직접 왔으니, 다시 사장 편에 서서 일본 탈출을 노렸다고 한다.

그 둘이 치고받고 하다 사상자가 생겼고, 피 냄새를 맡은 쥐 떼들이 현장을 덮쳤다. 사장과 몇 명이 간신히 중앙통제실로 대피했지만, 쥐 떼에게 포위된 상황이라는 이야기.

“그럼 쥐만 잡으면 됨?”

“잡을 필요까지 있나. 최루탄 하나 까면 되지 뭐.”

“최루탄 하나밖에 없는데 괜찮겠음?”

“아 맞다 그랬지. 수류탄은 3발 남았다고 했던가? 일단 최루탄은 아끼고 수류탄 하나 까보자. 수류탄도 소리가 크니까 쥐들이 도망치겠지.”

중앙통제실로 향하는 복도. 텅 빈 복도였는데 몇 마리씩 쥐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왼쪽 모퉁이를 돌자 복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버글버글하게 저쪽 끝까지 가득한 쥐 떼.

자연스럽게 욕 나오는 모습. ‘그래도 바퀴보다는 낫다. 바퀴보다는.’ 마루가 중얼거리며 수신호를 보내자, 잠시 뒤 일렁이는 공간에서 수류탄이 삐죽 날아갔다.

쾅-!

밀폐된 복도라서 그런지 폭발 소리가 크게 울렸다. 쥐들이 찍찍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 와르르 소리를 내며 마루와 김 양이 있는 곳을 지나가는 쥐 떼. 최루탄 냄새가 빠지지 않아서인지 두 사람에게서 살짝 떨어져 도망치는 쥐 떼였다.

그렇게 도망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수류탄 폭발에 터진 사체를 뜯어먹은 것을 보니 정상적인 쥐는 아니었다.

중앙통제실 문 앞에 선 마루가 김 양이 있는 곳을 향해 속닥였다.

“은신 풀지 말고. 문이 열리면 먼저 들어가서 자리 잡고 쏠 준비 해. 사장이랑 경호원, 헬기 조종사 말고 전부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렇게 하라면야. 김 양이 은신 로브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C4랑 케이블 타이 있지? 그거 좀 주고.”

똑- 똑-

마루가 천장에 붙어 있는 CCTV를 보며 노크했다.

“왔습니다. 문 열어요.”

폭발음에 놀라 도망쳤던 쥐들이 하나둘씩 복도 저쪽 끝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쾅- 쾅-

“안 엽니까? 문 터트려 버립니다?”

마루가 CCTV를 향해 C4를 흔들었다. 그제야 열리는 문. 살짝 열리는 문을 발로 확 걷어차 열 자, 문고리를 잡고 있던 연구원이 흐억! 소리를 내며 뒤로 튕겼다.

“문 닫아!”

“뒤에 쥐! 쥐!”

“쥐 들어온다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소리 질렀다.

은신 로브의 일렁거림이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마루가 느릿하게 문을 닫았다. 그 짧은 틈을 비집고 십여 마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겁도 없이 사람들을 향해 달려드는 쥐들.

탕! 탕! 탕!

타다당!

“죽어! 죽어어어어!”

“아악 물렸어! 떼어줘!”

“빨리 죽여!”

“쏴! 저기 있다. 저쪽.”

총으로 무장한 사람은 넷. 권총 3, 기관단총 1, 총을 들지 않고 열심히 응원하고 있는 사람은 다섯. 간이로 만든 창을 들고 있는 사람이 3, 소방 도끼를 들고 있는 사람 2. 그렇게 문 앞에 모인 아홉 명 가운데 사장 일행은 없었다.

‘역시.’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원이 시시콜콜 정황 이야기할 때부터 느낌이 그랬다. 애초에 경호원이 연락받은 것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사장이든 연구실 소장이든 지위 있는 사람이 받지 않고 생뚱맞게 경호원이 받아? 밖에서 들어온 사람의 통신인데?

경호원이든 사장이든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챈 사람이 나오자 경호원보고 받으라고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일단 총 든 놈들부터 정리하고. 마루가 손을 까딱였다.

수신호에 즉각 반응이 왔다.

먼저 기관단총을 쏘던 남자의 팔과 다리에 총알이 박혔다. 기관단총을 들고 있던 팔에 총탄이 박히자 파파박! 방아쇠를 당긴 채 팔이 바닥으로 늘어졌다. 거의 동시에 무릎에 박힌 총탄으로 균형이 옆으로 무너지면서 바닥을 향했던 총구가 옆으로 휙 돌았다.

으헉!

아악!

소방 도끼를 들고 있던 사람의 배와 가슴에 총알이 박혔다. 사방이 개판이라 그런지 권총을 들고 있던 놈들은 쥐를 잡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뻐컹! 뻐컹!

낮게 억제된 총성과 함께 탄창을 갈던 남자의 양쪽 팔에 구멍이 뚫렸다. 탄창과 권총을 떨구고 ‘어? 어!’하던 남자의 발목이 총알에 꺾였다.

총을 가진 사람은 이제 둘. 뒤에 있던 사람이 김 양이 쏜 총에 맞아 버르적거리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열심히 쥐를 향해 총을 쏘는 두 사람.

칼을 조용히 뽑은 마루가 터벅터벅 나란히 권총을 쏘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걸었다.

연달아 이어진 총성과 함께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탄피가 떨어진 바닥에서 총에 맞은 두 팔을 보며 울부짖는 사람. 피가 줄줄 새는 복부를 지혈하며 헐떡이는 사람. 어설픈 창질로 쥐를 찌르곤 펄떡이는 쥐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비명 지르는 여자. 쥐가 등판에 달라붙어 떼어달라고 고함지르는 남자.

그 사이를 마루는 고요하게 걷고 있었다. 마치 소리가 없는 공간을 혼자 거니는 것처럼. 아무도 마루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있는 이상한 풍경.

소리 없이 휘둘러진 칼날. 그렇게 나란히 총질하는 두 사람의 팔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총을 든 팔뚝이 잘려 바닥에 떨어진 뒤에야 터져 나오는 두 사람의 비명.

아아아아

아아악

멈춰있던 시간이 두 사람의 비명과 몸부림에 깨진 것처럼 움직였다.

김 양은 은신 로브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팔뚝에 까끌까끌하게 돋은 소름이 느껴졌다. 역시 백정. 하아- 심장이 마구 조여왔다.

투칵. 투칵.

바닥을 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든 쥐들 머리통을 가뿐하게 날린 김 양이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마루는 칼날을 휘둘러 피를 털어낸 뒤, 케이블 타이를 들고 옆으로 비켜섰다. 사방에서 나는 앓는 소리가 바닥에 깔렸다.

‘얼씨구.’

권총을 든 채 잘린 오른팔을 왼손으로 들고, 잘려서 손이 없는 오른팔로 주머니를 뒤지려고 하다, 오른팔을 내려놓고 왼팔로 오른쪽 주머니를 뒤지는 모습. 왼손에 들린 핑크빛 앰풀이 보였다.

퍽-

마루는 앰풀을 까려고 하는 놈을 그대로 발로 걷어차곤 급속치료제를 낚아챘다. 기관단총을 쏘던 놈도 급속치료제를 가지고 있었는지 낑낑대며 앰풀을 주머니에서 꺼내고 있었다.

‘사장이 털렸네.’

그럼 이 두 놈만 가지고 있을까? 아니겠지.

마루가 주변을 돌아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풍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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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통제실 안쪽에는 서버실로 가는 문이 있었다. 다카이치 제약 비밀 실험실과 비슷한 구조. 김 양이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끼익- 돌아가는 손잡이.

잠기지 않았다?

김 양은 몸을 낮게 바짝 웅크린 채, 문을 벌컥 열었다.

탕! 탕! 탕!

허공을 지나는 총탄. 팔다리가 묶인 사장 일행 뒤로, 총을 들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활짝 열린 문을 향해 총을 쐈는데 아무도 없자, 사장 일행에게 총구를 겨눈 채 열린 문을 노려보는 두 남녀.

“누구냐!”

“이리 나와!”

“안 나오면 이 년들 죽인다!”

“······.”

사장 일행을 겨눴던 총구가 문을 향하는 순간, 김 양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투칵. 투칵.

각기 미간에 한 방씩 총알을 박아 넣고 확인 사살까지 마친 한 김 양이, 묶여있는 사장 일행에게 다가갔다. 그나마 경호원과 헬기 조종사는 괜찮은데, 사장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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