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87
기절시켜놨던 여자가 뭔가 헛소리를 중얼거리면서 깨어나려고 했다.
“···아라키돈산이 뭐랑 반응했었지···”
빡-
“······.”
아- 셌다. 좀 세게 치긴 했지만, 병신 되지는 않았을 거다. 아마도.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안 죽었어. 안 죽었으면 됐지, 뭘. 치매가 초기증상이면 중기나 말기 증상도 있겠네? 마지막엔 괴물이라도 되는 거냐?”
“괴물? 차라리 그런 거였다면 좋았을 거다. 그걸 증상이라고 해야 할지, 애초에 이젠 환자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불확실해졌다.”
“일반적인 사람이 가진 호르몬이 아닌, 전혀 다른 호르몬 기작을 가진 존재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호르몬의 변화도 변화지만, 뇌도 일종의 장기인데, 장기가 변한다는 건 기존에 알고 있는 인간에서 뭔가 다른 존재로 변형된다는 소리다. 그렇게 변형된 존재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건 됐고, 궁금한 건 그거였다.
“인간이든 뭐든 그건 됐고, 다 좋아. 그런데 말이야 왜 감염자들을 잡아다가 풀어줬지? 감염자를 잡았으면 연구하든 해부를 하든 그랬으면 됐을 거 아닌가?”
“···변화를 촉진하는 실험을 위해서였다.”
미친. 씨발이네. 이 새끼들. 마루는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을 뭐라고 해석했는지, 사내를 설명을 계속했다.
“일부 감염자들이 시체를 끌고 가 간과 뇌를 먹는다는 것이 발견하고 우리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다른 부분도 아니고 왜 하필 간과 뇌일까? 그리고 연구 끝에 이유를 찾았다. 감염자들에게 보이는 증상, 지능 저하와 감정적 충동 고양과 분노조절 장애와 같은 행동 완화에 도움이 되는 물질들이 간과 뇌에 다량으로 있었다. 감염자들은 그 성분을 섭취하기 위해 움직였던 것이었다.”
“뇌에는 포스파티딜세린이, 뇌와 간에는 아라키돈산이 풍부하게 있지, 감염자들이 노리는 성분이 그 둘이라는 걸 밝혀냈으니, 이제 그 두 성분이 감염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면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될 거다.”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이래서 일본이 풍년이었구나.
“그러니까 결론은 싱싱한 간과 뇌를 먹이기 위해 그랬다는 거네, 싱싱한 뇌랑 간을 먹으면 변이가 촉진되니까 그렇게 변이가 촉진된 감염자를 잡아서 다시 실험하려고 한 거고?”
“그래.”
“야. 그나마 멍하니 배회하던 감염자들이 뇌랑 간 먹고 미쳐 날뛰면? 그 뒷감당은 누가하고? 뇌가 변해서 이제 인간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고 지 입으로 말해놓고? 인류 역사의 한 획? 대체 뭐로 획을 그을 건데?”
통제실에서 튀어나온 감염자가 떠올랐다.
처음 노크했을 때 발광하지 않았던 그 특이한 감염자. 일반인을 찌른 줄 알고 잠깐 아차 했었다.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다른 감염자들과 달리 능동적으로 움직였었다. 그딴 게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뇌랑 간을 파먹고 다니게 둔다고? 미쳤네. 이 새끼들.
“미쳤구나?”
응- 그래. 그냥 돌은 새끼들이었어. 손목이 잘린 남자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핏발이 선 얼굴로 마루를 노려봤다.
“미쳐? 뭐가 미쳤다는 거지? 지금 변이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이 며칠 동안 물을 먹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를 안다면? 그 반응 기작을 찾아 안전하게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면, 하루에 2리터 가까운 물 소비를 십 분의 일 그 이하로 줄일 수 있다면, 물로 인한 분쟁이 사라진다는 걸 모르나?”
“까는 소리 하지 마시고. 물 소비가 아니었잖아. 솔직하게 까봐 무슨 생체병기라도 만들 생각이었냐?”
“······.”
“물도 마시지 않고, 근력, 지구력, 순발력 좋고, 고통에도 내성 있고. 심지어 변이 바이러스를 전파 시키기까지 하네. 그러니까 거기에 뭔가 조금만 더 하면 딱 생체병기 아니야? 겉모습 인간이지. 감염 티 내지 않게 어떻게 해서, 대충 사람들 사이에 몇 마리 껴 넣어 적대국 수도에 풀면 엔딩각 뜨겠지 싶으니까 들고 판 거 같은데? 아니야?”
대답이 없어?
“크흐흐흐하하하하. 생체병기? 크하하하핫. 생체병기라니. 이 무슨 아이러니한.”
그래 웃는다 이거지?
“야. 쳐 웃지 말고 제대로 말해. 뭐냐?”
“크흐흐흐. 하긴, 이상하다 했어. 생체병기? 생체병기라고?”
이게 자기 혼자 놀고 있네. 푹- 정강이에 칼끝을 살짝 박아 넣었다. 이 새끼 정신 못 차리는 걸 보니까 단칼에 자르는 거로는 안 되겠다.
천천히- 느리게- 충분히 느껴지도록- 아주 뼈와 영혼까지 좆됨을 새겨줘야 다신 이러지 않겠지.
“칙쇼- 멈춰. 너. 너 지금 네가 정상이라고 생각해? 사람 팔다리 아무렇지도 않게 자르고 썰고 그러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냐고!”
“아주 지랄을 하세요. 멀쩡한 사람들 감염자 먹이로 던져주는 건 정상이고? 산채로 뇌 파먹히고 내장 털린 사람들이 그 말 들으면 참으로 감동하겠네.”
부-부-그-스- 살을 발라내는 소리가 났다. 살이 찢기는 기괴한 소리. 아? 맞다. 이거 3단 봉이랑 부딪쳐서 날이 많이 상했었지.
“끄으악- 바보 같은. 멈춰! 멈추라고. 칙쇼! 멈춰!”
“존나 연기는 리얼해요. 약 꽂아서 통증도 별로 없겠구먼.”
“생사람 살 바르는 게 정상이냐? 정상이냐고! 미친 새끼야. 네놈이 정상이 아니라고 이 바보가! 생각해 봐. 이게 정상이냐! 너 미친놈이냐고?”
“아- 됐고. 일단 혼자 놀고, 개소리했으니까. 약속대로 이쪽 다리는 한다? 지금부터 끝까지 가니까 울지 말고. 악으로 깡으로 버텨. 알았지?”
“그만··· 그만해. 알았다고. 다 말할 테니까-아-”
읍-
일단 시끄러우니까 입 좀 막고.
“우- 머리가···, 아파.”
아- 이 여자는 왜 이렇게 빨리 깨는 거야?
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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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을 수색하던 김 양은 미묘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백정은 아닌데 꼭 백정 비슷한 뭔가가, 그러니까 새끼 백정? 그건 좀 그렇고, 졸라 약한 백정? 잘 쏘면 뒈질 것 같은···. 백정의 하위니까 십정? 딱 그 정도 뭔가가 깔짝이는 것 같았다.
‘백정이 슬쩍 올라와서 감시하고 있는 건가?’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일 잘하나 감시하다가 뒤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그런 거. 근데 당최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데다, 낌새가 뒤에서 깔짝이는 게 아닌, 옆쪽으로 계속 빙빙 돌고 있었다.
‘백정이라면 이럴 리가 없는데.’
백정이 아니다? 그럼 뭔데 십정 같은 느낌이지? 매우 미약한 감각. 존나 휙-하고 칼질할 것만 같은 찝찝한 살기. 철컥- 김 양은 오른팔이 치료돼 다시 애용하게 된 글록 17을 뽑아 들었다.
‘귀염둥이. 17.’ 그간 얼마나 잡고 싶었던가?
탄창에 할로우탄과 철갑탄을 교대로 꽂아둬서 든든했다. 철갑탄이면 어설픈 건 쌉 뚫었다. 머리에 할로우, 몸통에 철갑탄. 그냥 위아래 양쪽 코스로 박아주면 발정 난 고양이처럼 길게 울다 뒈질 거다.
김 양은 수신호로 샬롯 아재들을 한쪽으로 몰았다. 벽을 등지게. 백정의 주특기 뒤에서 갑툭튀, 중앙으로 뛰어들어서 개판 그런 걸 막으려면, 한쪽 벽에 등을 지고 전방과 좌우를 집중 견제가 최고였다.
아재들은 그렇게 한쪽을 틀어막게 하고, 전진.
빠르게 전후좌우 구르기 좋게 중심을 낮춰서.
허리를 낮춘 김 양이 도도도-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문 앞에 섰다. 철컥철컥. 잠긴 실험실.
‘역시.’
누군가 안에서 잠갔다. 마스터키를 꽂아 돌리자 열리는 문.
딸깍-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발로 문을 걷어차고 데굴- 문 안쪽으로 굴렀다. 문을 열고 서 있었다면 머리와 가슴에 박혔을 성싶은 날붙이가 허공을 갈랐다. 날붙이 날아온 방향으로 대응 사격!
뻐■!
빠■!
뻑■!
발터 P22와는 다른 둔중한 울림. 소음기로 숨길 수 없는 9mm의 고음이 실험실을 채웠다.
‘한 발은 맞았고, 다른 두 발은 스쳤나?’
세 발 쏘고 반응해 오기 전 데굴데굴 두 번 굴러 회피기동, 바로 무릎쏴 자세 잡고 발사.
뻐■. ■낑. 뻐큥!
다시 한번 구르고 중심 낮게 잡고 옆으로 이동. 발사.
■낑. 뻐■. 뻐낑.
끄흑- 낮게 흘린 신음을 김 양은 놓치지 않았다.
거기냐!
떠킹-뻐킹-뻐낑-
역시 글록 17이었다. 12발 쐈는데 아직도 5발이나 남았다. 그래 이거였다. 김 양은 글록 17에 붙인 전술 라이트를 켰다. 어두운 실험실을 꿰뚫은 빛이 일직선으로 쭉 뻗었다.
빛에 닿은 붉은 피가 페인트처럼 반사됐다. 얼룩진 혈흔의 끝, 총에 맞은 남자가 엎어져 있었다.
뻑■! 빡■!
남자의 머리에 확인 사살 겸 두 발 박아 넣고, 바로 이동. 등을 벽 쪽으로 붙이고, 스위치를 켜 실험실을 밝혔다. 탄이 3발 남았지만, 탄창을 새로 갈고. 장전-
좋아. 약실에 한 발, 탄창에 17발. 다시 18발.
다다다닥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엄청난 속도로 열린 문을 향해 내달렸다. 백정은 아니고 확실히 십정은 될 법한 속도. 그 빠른 달리기에도 김 양은 침착하게 리듬을 쟀다.
왼발. 왼발. 왼발- 당겨지는 방아쇠.
빠낑!
꺄윽!
쿠당탕.
김 양은 엎어진 여자의 무릎. 어깨, 손목. 발목에 착실히 할로우탄과 철갑탄을 박아 넣었다. 여자의 비명이 흐느낌으로, 흐느낌은 애원으로 변했다.
“자- 말해 봐. 당신. 왜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어?”
궁금했다. 하는 짓이고 몸이고 그냥 일반인 몸뚱인데 그 반응속도. 그 내달리던 움직임은 뭐지? 십정급 움직임 어떻게 했어? 백정은 이걸 어떻게 알고 일단 쏘고 보라고 한 걸까?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로 즙을 짜내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는 김 양이었다.
“빨리 안 말하면 저쪽 발목도 쏜다.”
히끅히끅 울던 여자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앰풀 주사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약 꽂았다고?”
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다. 약 빨고 덤비는 애들이 골치 아팠다고. 근데 이 여자 약 꽂았는데도 정신이 멀쩡하네. 그리고 뭣보다. 여기저기 총알 박았는데 생각보다 출혈도 적고. 철갑탄 맞은 자리야 관통됐다고 쳐도, 할로우탄은 맞으면 지랄 났어야 하는데, 상태가 생각보다 좋았다.
이거 신박한 약이네. 김 양이 여자가 들고 있던 앰풀 주사기를 요리조리 살펴봤다.
“이거 부작용은 뭐니? 찬찬히 설명해 보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여자가 말하는 것을 배경음 삼아, 김 양은 확인 사살한 남자의 시신을 뒤졌다. 오호. 남자에게도 앰풀 주사가 있었다. 그것도 두 개나.
“그래서. 당신은 어디 소속이야?”
어딘데 이런 약을 가지고 있는 거니? 일본 정부 요원이라기에는 너무 일반인이고, 그냥 단순한 일반인이라기에는 말하는 본새랑 쓰는 단어들이 먹물 냄새 진하고. 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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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직- 야마츠키 신약 연구원이랑 보안요원들··· 삐이···]
“오 그래? 이쪽이랑 교차해서 확인하면 되겠네. 정말 수고했어.”
[이 여자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확인이 필요··· 치이익]
“그래. 일단 그건 이쪽도 확인해 볼 게. 3층은 정리가 됐고?”
[치- 사살 1명, 생포 1명. 총 2명. 완료함.]
“알겠어. 나도 이쪽 난리 난 거 정리하고 있으니까, 여기 정리 끝나면 3층에서 보자고.”
[알겠음. 삐이-]
“들었지? 어이? 정신 차리고.”
마루의 말에 남자가 갑자기 발작했다.
“으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
“그러니까 제대로 이야기해야지, 자꾸 엄살 부리고 연기하고 그러면 계속한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칼을 들자. 발작하던 남자가 잠잠해졌다.
“좋아. 처음부터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어. 야마츠키 신약 보안요원 맞아?”
“그래. 그렇다고.”
“그거 반응속도, 근력, 체력 상승하는 약, 야마츠키 신약에서 만든 건가?”
“맞아. 신약에서 만든 거다.”
“3층 여자 연구원 말처럼, 그 약이 감염자에게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들었다는 게 사실인가?”
“그건 몰라. 나는 모르는 일이다.”
마루가 칼을 잡자, 남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정말 나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그렇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호오- 변이된 감염자에게서 추출한 성분을 이용해 약제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원활한 원료 수급을 위해서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걸 그냥 뒀다는 소린가? 미쳤는데?
“그럼 예방 접종도 그런 식이었나?”
“그렇다고 들었다.”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해도 그냥 두고, 예방 접종한다는 명목으로 변이 유전자를 주입하고 그거 사람을 사실상 배양체로 쓰는 거잖아? 안 그래?”
“하지만 그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진화를 촉진해야 일본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변이를 촉진 시키고 확산하는 방법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정계와 재계, 지도부 모두 그렇게 판단했단 말이다.”
누굴 위해서 그렇다는 건가? 이건 뭐. 그냥 일반인들을 배양체로 생각한다는 건데 그래서 추출한 약물은 누가 쓰고? 이거 진짜. 어이없는 새끼들이네.
“아- 일단 그건 됐고. 야마츠키 신약. 도쿄 본사 지하에 있는 연구실. 아직 멀쩡한가?”
그러거나 말거나 지지든지 볶든지 알아서들 하라고 하고 야마츠키 신약 본사 정보를 최대한 뽑을 필요가 있었다.
“도쿄 본사와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그래서, 여기 병원에서 연구를 이어서 하려고 했던 거고. 지하 연구소는 자연재해와 핵전쟁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니, 자체적으로 버틸 수 있을 거다. 도쿄로 간 직원들과 연락이 끊겨서 현재 상황을 알 수 없지만.”
갔다는 건, 일단 갈 수 있다는 거네. 게다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헛걸음은 아닐 거고 통신이 끊긴다는 게 좀 걸리기는 하지만, 굳이 어디로 교신할 필요도 없으니, 후딱 가자. 후딱 가서 약이랑 레시피 받고 뜨자.
‘근데 가기 전에 여기 좀 치우고 가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