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84
순간 당혹스러웠다. 이게 아닌데···
그러니까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떡하라고. 감염자겠지? 일반인이었다면 문짝 날아갔으면 숨고 비명 지르고 그랬을 테니. 애초에 노크했을 때 반응하지 않았을까? 아 씨- 감염자라면 노크했을 때 발악했을 것 아냐? 발악하지 않았는데···
뽀얀 먼지가 가라앉자 평안히 누워있는 시체가 보였다.
‘모르겠다.’
얼굴만 봐서는 일반인이랑 감염자랑 구별하기 힘들었다. 아니, 왜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는··· 정상인이면 소리라도 내고 그러지, ‘나갑니다.’, ‘잠깐만요.’, ‘살려주세요.’ 할 말도 많은데.
통제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가 엉망이었다. 박살 난 모니터가 바닥에 깔려있었고 벽에 붙은 실시간 상황통제 모니터도 깨지고 금 간 것들이 많았다. 이래서야 엘리베이터 조정을 몸으로 하게 생겼다.
일단 사람들 데려와서 치워야겠네.
문짝이 날아가는 소리가 났는데도 감염자들이 달려오는 조짐은 없었다.
근데 이건 무슨 냄새지?
쿰쿰한 냄새.
완전히 부패한 썩은 냄새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비릿한 냄새가 났다. 그렇게 책상과 기자재 저편에 널브러진 것이 보였다.
“아- 씨발-”
어쩌려고 풍년이냐. 새들이 지랄이더니, 이젠 사람들도 돌았나? 변종 바이러스에 대해서 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 전에 찜찜한 것부터 확인해보고. 마루는 조용히 통제실 건너편 재난 물품 보관소로 갔다.
똑-똑-
좀 작았나?
콱-콱-
크어워아아
안쪽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 분노에 찬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마구 때려 부수는 듯한 소리였다.
그래. 이게 일반적인 감염자의 행태였다. 그럼 기계실 그건 진짜 사람이었나?
속단하긴 일렀다. 사람이면 그럴 리 없지만, 2차 대전 불시착한 미 공군 조종사들의 결말을 생각하면 그렇기도 했다.
조용히 있자, 금방 조용해지는 안쪽이었다.
‘일단 사람들을 데려와야겠어.’
우웩-
치우다 말고 게워내는 한 사람.
통제실을 치우던 사람들은 대부분 한 번씩 게워냈다. 냄새도 냄새지만 상태가 너무 이상했던 것. 임상병리 쪽에 있던 몇 명은 의욕적으로 샘플을 챙기고, 의사 가운데 몇 명도 의기투합해서 뭔가를 하는 것을 보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이걸 부패라고 봐야 할지 확인해봐야겠습니다.”
“부패라고 하기에는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요. 환경을 고려하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부패가 아니라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발효랍니까?”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쑥덕였다. 역시 전문인력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 이야기가 전문적으로 흘러갔다. 간혹 신경질적인 반응도 나왔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체들은 전부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멀쩡한 사람에게 휴식을 준 건 아닐까 싶어 조금 그랬는데 감염자라고 하니, 홀가분해졌다.
“15층에 모여 있던 이유가 헬기 때문이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병원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헬기가 1대, 응급구조대가 운영하는 헬기가 2대 있다고 했다. 그럼 모두 3대나 있는데 전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연락은 된 겁니까?”
“참의원을 구조하러 간다는 교신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15층에 대피한 사람들은 의료진을 중심으로 병원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지진에 감염 사태까지 터졌으니 의료진을 구조하러 올 거로 판단했을 것이다.
‘뭐. 아무렴. 헬기가 오면 좋지.’
헬기를 생각하니, 병원을 어느 정도 정리한 보람이 있었다. 안전 구역을 확보하지 못하고 15층에서 전전긍긍해야 할 상황이었다면, 헬기가 와서 달랑 의료진들 싣고 갈 게 아닌가?
지금 확보한 안전 구역을 발판으로 조금씩 정리한 구역을 늘리면 병원 전체를 확보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안전한 병원에서 도망칠 이유가 없어졌으니, 헬기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렇다면 필요한 사람이 써주는 것이 인지상정. 헬기를 조용히, 평화롭게 넘겨받아 도쿄로 가면 개꿀이었다.
“언제가 마지막 교신이었습니까?”
“오늘 아침이었습니다.”
좋아. 하루나 이틀이 지난 건 아니었다. 기순이랑 경호원1 수술도 있고 기다려 봄 직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여러 차례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걸 받아보니, 기분이 묘했다. 이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또 그러니까 조금 뭐라고 할까.
음.
아무래도 여길 거점으로 삼으려면 훈련이 필요하지 싶었다. 헬기 착륙장도 그렇고 여기저기 확보해둔 공간도 그렇고 그냥 버리기엔 아까웠다.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최소한 눈감고 푹- 하지 않을 정도로는 훈련시켜 놔야 하지 유지할 수 있을 텐데. 감염자 하나 들어왔다고 터지지 않으려면 확실히 훈련이 필요해 보이기는 했다.
어쩔까?
훈련하겠다고 모이라고 하면 또 잡소리가 나오겠지? 이럴 때는 그냥 불러서 시키는 게 맞았다. 마루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숙달된 김 양을 호출했다.
“오른팔은? 깁스는 다시 했고?”
[치직- 괜찮음. 했음.]
“그럼, 여기 1층 통제실 쪽인데 내려와. 좀 더 돌아야겠다.”
[···치직- 진통제··· 먹어야 함.]
“그래. 천천히 먹고 빨리 내려와.”
[···치직··· 치지직···]
“내가 데리러 갈까?”
[···치직··· 15분 뒤에 감.]
“총알 넉넉하게 챙겨오고.”
[······. 삐이이이-지지지-]
알아서 챙겨오겠지, 김 양이라면 그런 건 잘 챙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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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마다 작은 C4를 쓸 게 아니라면 마스터키가 필요했다. 기계실을 정리하는 사람에게 마스터키를 말하자, 잠시 뒤 직원이 가져왔다.
철크럭
두툼한 열쇠뭉치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이게 뭐지?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게 마스터키라고요?”
이 열쇠 뭉텅이들이 전부 마스터키라고? 보통 마스터키 하면 하나로 다 열고 그럴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예. 비상용 열쇠입니다. VIP 병실은 디지털 카드와 열쇠 이중 보안이지만, 다른 구역들은 전부 개별 열쇠로 보안을 하고 있습니다.”
뭔가 뿌듯한 목소리의 직원을 보니, 이게 맞나 싶었다. 일단 1층 일부 열쇠 꾸러미를 챙긴 뒤, 김 양과 의료진, 병원 직원들을 이끌고 재난 물품 보관실로 향했다.
“혹시나 해서 그러는 거니까. 여기 문 앞에서 창을 앞으로 쭉 겨누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바짝 긴장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하지 말고요. 옆에 숙달된 조, 전문가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습니다. 뭐가 됐든 밖으로 나오면 창으로 저지하고 찌른다. 알았죠?”
어설프게 창을 든 사람들이 마루와 눈을 마주치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가 김 양을 바라봤다. 김 양과 눈을 마주··· 김 양이 눈을 피했다. 아니 왜?
“음. 김 양은 위험한 상황이 오면 백업해주고.”
“···네.”
뭐지? 점심까지 착한 김 양이었는데, 갑자기 왜? 기순이 여자 스타일 알려주지 않아서 그런 건가? 일본산 진통제가 몸에 맞지 않아서 그런가?
마루는 고개를 좌우로 스트레칭을 한 뒤, 열쇠로 잠긴 문을 열었다. 경첩 소리가 작게 늘어지며 문이 열렸다. 불이 꺼진 깜깜한 방. 재난 대비 물품 보관소라는 명칭답게 큰 창고처럼 된 방이었다.
스위치를 켜자 확 밝아지는 것과 동시에 안쪽에서 괴성이 터졌다.
크아아아아!
둘? 아니 셋!
콰직- 선반이 쓰러지며 하나가 튀어나왔다. 점프하듯 마루를 향해 달려드는 것. 그것의 손이 마루의 얼굴을 잡으려는 순간, 한 걸음 옆으로 피하곤 다리를 톡 걸었다. 와당탕 소리를 내며 문밖으로 튕겨 나간 감염자. 밖에 있던 사람들이 히익! 으억! 끼약! 다채로운 소리를 냈다.
자- 교보재는 하나 먼저 보냈고.
김 양은 황당했다. 뭔가 설명을 해주든가. 갑자기 와당탕 문밖으로 튀어나온 감염자. 얼마나 세게 튕겨 나왔는지 안면이 바닥에 반쯤 갈렸다.
크아아악!
뭔가 아파서 지르는 괴성 같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주저앉은 사람. 오또케만 외치는 여자, 창은 진작 내팽개치고 스탠딩 스타트 자세로 런-각을 보는 남자. 가지각색이었다. 어째 싸우려는 인간이 하나도 없냐?
얼굴이 반쯤 갈린 감염자가 주변을 둘러봤다. 희번뜩하는 눈동자. 붉게 충혈된 눈빛에 오줌까지 지리는 사람이 나왔다.
‘글렀네.’
김 양은 한숨을 폭- 쉬곤 발터 P22로 감염자의 무릎 관절을 쐈다.
퉁- 퉁-
벌떡 일어나 앞으로 달려들려던 감염자가 다시 머리를 바닥에 때려 박듯 꼬꾸라졌다.
“여이. 병신들. 창 드세요.”
김 양이 귀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도망치면 뒤집니다.’ 총구가 스탠딩 스타트를 끊으려는 남자를 향했다.
힐끗- 밖을 보니, 김 양이 알아서 잘하고 있었다.
역시 김 양. 숙달된 조교의 모습.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콰자작. 바닥에 깔린 구호품을 짓밟는 소리. 약간 묵직한 소리였다. 문 뒤 그림자 진 곳으로 살며시 들어간 마루. 마루를 보지 못했는지, 덩치가 제법 큰 감염자가 문밖 소란스러운 곳을 향해 움직였다.
얼굴이 갈리고 무릎이 박살 난 감염자가 울부짖고, 총 때문에 도망치지도 못하는 직원들이 살려달라 부르짖고, 김 양은 귀찮은 표정으로 윽박지르는 아수라장 속으로 덩치 큰 감염자가 내달리려는 순간. 양쪽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철퍽- 좋지 못한 소리를 내며 엎어진 덩치.
크으어어어어
분노의 고함 소리. 팔로 땅을 짚고 일어서려 하자, 가벼운 칼질 소리와 함께 팔의 힘줄이 끊겨 다시 앞으로 엎어졌다. 큰 덩치가 팔다리가 늘어진 채 무기력하게 버둥거리는 모습은 오히려 괴기스러웠다.
크워우어어어
“자. 다들 뭐 하고 있어요? 창 들고 와서 각자 열 번씩 찌르고 갑시다. 알았죠?”
마루의 나긋한 말에 의료진 가운데 한 명이 뭐라고 고함지르려는 찰나.
“당신이 뭐···!”
마루의 뒤에서 감염자가 튀어나왔다. 고양잇과 맹수처럼 소리 없이 튀어나와 마루의 목을 노리는 감염자.
꺅- 그 모습을 정면에서 보던 여직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마루의 몸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뒤에서 덮친 감염자의 목에 칼이 박혀 있었다. 크게 벌린 입 밖으로 삐져나온 칼날. 마루가 조용히 쓰러지는 감염자의 몸을 받아 내려놨다.
“뭣들 하고 있어요. 다들 창 들고 열 번씩 찌르고 가세요. 못 찌르는 사람은 계속 저랑 같이 갑니다?”
마루와 눈이 마주치자, 소리친 의료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뒤 푹-푹-하는 소리가 복도를 채웠다. 훌쩍이는 여자들의 울음소리, 다독이는 목소리들이 뒤를 이었다. 간혹 돌아보는 의료진 눈빛이 지랄 같았다.
“굳이 이럴 필요 있습니까?”
김 양은 궁금했다. 저런 눈빛을 받으면서 이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병원이 아깝잖아. 하는 짓을 보니까. 영 그래서.”
다 좋은 게 좋은 거라 하는 거라고. 나중에 고마워하든지 말든지. 헬기로 받으면 되는 거니까. 헬기가 없으면 약으로 받으면 되고 사람도 몇 챙겨가고 겸사겸사 좋지
‘갑자기 무슨 헬기?’
김 양은 마루의 혼잣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역시 백정의 사고방식은 뭔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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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쉬지 않고 사람들을 번갈아 가며 굴렸다.
반강제적으로 끌려다니는 사람들의 원망 따윈 가뿐하게 무시하는 마루였다. 뭔가 지랄하던 사람들도 마루의 칼질을 현장에서 보고 나면 잠잠해졌다.
“아까 막 뭐라고 했던 거기 아저씨. 이리 나와서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아니에요? 할 말 없으신 거 맞죠?”
“그쪽 아가씨는? 간호사셨던가? 피곤하다고 하셨었나? 힘들다고 하셨었나? 괜찮다고요?”
마루는 기순이와 경호원1을 수술하게 될 의료진들을 따로 모아 칼질 시연을 했다. 푹-찔러 한 방에 조용하게 만드는 모습. 칼을 휘릭 돌려 부위별로 해체하는 모습까지. 밝은 미소와 함께 해맑게 칼질하는 모습을 직관으로 보여줬다.
“이거 겁주는 거 아닙니까?”
김 양이 좀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겁은 무슨. 수술 잘못되면 직접 경험할 일인데. 미리 알고 있어야지.”
마루는 태연했다. 다 자기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생각하면 빠릿빠릿해지는 법이었다.
김 양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에이 뭘 또 긴장하고 그래. 우리 사이에.”
어. 어떤 사이인데요? 라고 묻지 못하는 김 양이었다.
그저 기순이 수술이 잘 되기만을 기도할 따름이었다. 백정이 눈 돌아갈 일만은 없어야 했다. 김 양이 수술을 담당할 의료진을 노려봤다.
‘제대로 해야 할 것이야.’
김 양의 살기를 받은 의료진들이 수술 준비하러 도망치듯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안전으로 확보한 구역은 1~3층에 있는 다양한 검사실을 비롯한 통제실, 제약실, 실험실, 채혈실, 임상병리실, 인공신장 투석실, 진단평가 회의실, 수술실과 같은 의료 핵심 구역이었다. 여기에 푸드 코트와 편의점, 세탁실, 영양실(식당과 식자재 창고)까지 확보했기에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전체적으로 좋은 분위기 속에서, 기순과 경호원1의 수술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