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80화 (80/280)

러스트 [RUST]-80

총알이 연속으로 빗나가자 저격수의 황당하다는 표정.

다시 장전한 저격수가 노리는 곳. 총구가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몸을 틀었다. 마루의 몸을 따라 흔들리는 총구. 핏- 머리를 향했던 총알이 총구가 흔들리면서 왼쪽 어깨를 스쳤다.

저격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재장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남은 거리는 20m~25m가량. 모터가 점점 더 덜컹거리기 시작하면서 내달리던 고무보트의 속도가 서서히 줄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3~4번은 더 피해야 할 판.

느려지는 고무보트. 앞에 있는 부유물들. 부유물 아래 잔잔한 바닷속에는 무엇이 있을지 몰랐다. 마루는 짙고 어둑한 바다를 한 번 노려본 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저격수의 총질이 시작됐으니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기관단총이든 뭐든 들고 죽 서서 쏘기 시작하면 끝이었다.

메가 요트 근처에 떠다니는 부유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격수가 다시 총구를 겨눈다.

씨발.

팍-

고무보트를 박차는 것과 동시에 저격수의 총구가 하늘로 흔들렸다.

6~7m를 점프에 둥둥 떠다니는 나무판자에 떨어졌다. 판자에 발이 닿는 것과 동시에, 다시 박차 올랐다. 촤악- 물거품을 일으키며 나무판자가 바닷속으로 처박혔다.

뽀그르르-

촤아아악-

4m 앞에 있는 드럼통을 향해 집중했다.

뾰족한 살기가 공중을 향했다. 무시한다. 피할 수 있다. 더 빨리.

퉁- 드럼통에 다리가 닿는 것과 동시에 총소리가 들렸다.

팟- 허벅지를 스치는 총탄. 새파랗게 질린 바다에 핏방울이 한 방울 떨어졌다.

물속으로 푹 가라앉았다가 통 튀어 오르는 드럼통 위로 다음 부유물을 찾았다.

타닥

타타탁

타다다다닥

처음 내디뎠던 방향, 나무판자 쪽에서 나는 소리.

기름 튀는 소리가. 휙 드럼통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핏방울 떨어진 곳으로 달려드는 것들.

아래를 보지 마.

바다를 보지 마.

보는 것은 오직 부유물. 한 번만 더.

메가 요트 바로 옆에 있는 구명정을 향해 허공을 부유했다.

타다다다닥

허공으로 도망친 먹잇감을 향해 점프하는 것들.

튀고 떨어지고 그러다 다치고 상처 입은 것은 자기들끼리 잡아먹고

그렇게 먹잇감이 모이자 바다 전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메가 요트가 흔들. 출렁거렸다.

저격수가 총을 겨누다 말고 하얗게 질렸다.

뒤돌아보지 않는다. 아래를 보지 않는다. 보는 것은 오직 구명정.

탁!

닿았다.

한 걸음 더.

내딛고 힘을 줘서.

발걸음 소리가 연달았다. 발걸음을 뒤쫓기라도 하듯 기름 튀는 소리가 바로 뒤까지 따라왔다.

타다다다닥

타닥타다닥

팍!

구명정이 반쯤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떠올랐다.

붕 떠올랐던 몸이 메가 요트의 2층 갑판에 드디어. 닿았다.

마루는 허리춤에서 회칼을 뽑아 들고 저격수 옆으로 착지했다.

A- 그래. 잘도 쏴댔겠다?

저격수가 총구를 돌렸다. 틱-가볍게 칼끝으로 총구를 치우고 한 걸음. 다시 총구가 돌아오기 전 슥- 칼날이 방아쇠 언저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매끈하게 잘린 손가락이 방아쇠 아래로 떨어졌다.

어?

잘린 손가락에서 통증이 뇌로 전달되기도 전, 칼날이 회를 뜨듯 팔뚝을 가르고 목을 스쳐 지나갔다.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은 저격수를 뒤로한 채, 마루가 휙- 휙- 칼을 쥔 손을 요리조리 돌려봤다. 확실히··· 느낌이 그랬다. 역시 아직은 긴 칼보다 적당한 길이의 칼이 손에 더 익었다.

역수로 쥐었을 때, 새끼손가락에 힘들 주면 칼끝에 힘이 실렸다. 칼날 전체에 힘을 주려면 나머지 네 손가락에 힘을 주면 됐다. 정형하면서 배운 칼에 힘주는 법.

그러니까 이렇게. 옆에서 쑥 튀어나온 총구를 슬쩍 밀어냈다. 적이 화들짝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미 빗겨버린 총구라 의미 없었다. 슬쩍 역수로 쥔 칼을 적의 몸통에 박아 넣었다. 새끼손가락에 힘을 주고 요래.

푹- 칼끝에 힘이 들어가 쉽게 박혔다. 방아쇠를 당기던 적의 몸이 얼음처럼 딱 굳는 게 칼끝을 타고 느껴졌다. 그 뒤에 왼손으로 칼이 나가는 방향을 가늠하면서 칼등을 따라서 요래하면.

두두둑

갈비뼈 사이를 뚫고 들어갔던 칼날이 적의 내부를 깨끗하게 절단한 뒤 밖으로 나왔다. 소리는 없었고 고통은··· 없지는 않았겠지만, 깔끔한 끝이었다.

아- 이거다.

이거였다. 긴 칼은 그냥 힘으로 썰었을 뿐이었다. 마루는 회칼을 살폈다. 이가 따로 나간 부분도 없고 말끔했다. 힘도 제대로 들어갔고, 각도도 좋았고, 무엇보다 근골의 사이를 잘 갈랐다는 의미.

뭔가 작업할 때 사람들이 우와-하면서 칭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쩐지 뿌듯하고 흐뭇해지는 느낌. 자, 다음에는 어떻게? 소분 처리 한 번 해볼까?

잠깐.

소분 처리?

마루는 살짝 마른 입술을 적셨다. 후- 작게 호흡을 내쉬곤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 차려야 했다.

‘방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살인마도 아니고 살인귀도 아니고 미친 사이코패스도 그런 생각은 안 하겠다. 소분이라니. 까딱하면 정말 인간 백정이라도 된 것처럼 돌아버릴 뻔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주먹을 쥐었다 피면서, 회칼도 다시 고쳐 쥐었다. 왼손을 살짝 앞으로 내밀어 방향을 잡고. 칼이 나가는 방향을 유도했다. 이어지는 미약한 흥분과 긴장감. 두근거리는 심장.

좋아. 여기까지다.

딱 여기까지. 여기서 더 나가면···.

다시 호흡을 고르고 골라 날뛰려는 감각을 진정시켰다.

경호원이 알려준 방향은 요트의 앞에서 살짝 중앙 부분. 아직 버티고 있다면 그쪽에 적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총소리가 났으니까 계단 쪽에는 경계가 붙었을 거고, 그렇다면.

그대로 난간을 밟고 위로 뛰어올랐다. 2층에서 3층 난간으로 올라가자 저쪽 계단 있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3명이 보였다. 바다가 들끓고 요트가 흔들려 계단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힐끔힐끔 바다를 쳐다보는 사람들.

타닥

한 번에 달려들면 조절이 어려웠다. 짧게 끊듯이 간다. 10m를 달릴 힘이라면 끊어서 두 번으로 5m씩. 한걸음에 속도를, 다음 발에 거리와 방향을!

푹!

칼끝이 갈비뼈와 명치뼈를 피해 사선으로 깊게 들어갔다. 맨 바깥에 있던 사람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 칼날이 비틀어 빠졌다. 칼에 찔린 사람의 마지막 숨도 같이 빠져나왔다.

쉬--

타다다다닥

두두두두둑

바다에서 나는 소리에 정신이 팔렸는지, 나머지 두 사람은 뒤에서 벌어진 상황을 몰랐다.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고 있는 사람. 목을 돌리고 있어서 목뼈와 빗장뼈 사이로 찔러 넣기 좋은 각도가 나왔다.

이쁘장한 각도가 죽기 전, 칼끝을 밀어 넣었다. 부드럽게 들어간 칼날이 경직되며 달라붙는 근육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빠져나갔다. 살며시 늘어진 육신을 옆에 기대고 마지막 사람에게 다가갔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는 사람.

!!!

고함치려던 입에서 소리 없는 비명만 새어 나왔다.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는 입.

쉬--- 그렇지---

부르르 떨리던 몸이 서서히 늘어지기 시작했다. 앞을 바라보던 눈동자가 서서히 흐릿해졌다.

조용히— 그래---

순리대로. 조용히.

슥- 뽑아낸 칼날에는 핏방울도 엉겨있지 않았다.

그래. 이거였다.

순리대로 결을 따라가면 조용했다.

그렇게 고요하게 밝은 햇살이 타닥타닥 튀는 푸른 바다를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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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가 대기를 흔들었다.

최 전무는 칼을 버리고 도망쳤던 기억을 곱씹고 있었다.

마지막에 들어갔던 깨끗했던 일격, 인생에 몇 번 없을 그 일격을 근본 없는 태클로 피한 놈이 떠올랐다. 본능이 전부였던 놈. 놈을 이기면, 놈을 넘어서면, 놈을 죽이면 무언가 껍질을 한 꺼풀 깰 것만 같은 간질간질함이 최 전무를 일본까지 가도록 만들었다.

유 이사의 지랄도 지랄이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최 전무는 결판을 내고 싶었다. 그렇게 놈의 위치를 확인하던 중 샬롯의 심은규 이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놈이 향하는 곳이 도쿄라고.

조만덕 사장도

‘샬롯이 인상적인 약을 가지고 있더군. 급속 치료제 계열인데 오리지널 레시피가 있다면 획기적인 신약이 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야. 무엇보다 일본 샬롯의 약이라면 내각정보조사실과도 관계있는 약일 가능성이 커. 그 약의 레시피를 우리가 은밀히 확보해야겠어.’

유 이사도

‘최 전무. 하는 짓을 보면 우리 회사 전무가 아니라 샬롯 전무라고 해도 되겠어? 호텔 샬롯 사장이 일본에 갔다는데 말이야. 최 전무도 알지? 호텔 샬롯 사장이 일본의 제약회사에 직접 간다는 말의 의미를? 꼭꼭 숨겨둔 약 때문이지 않겠어? 그 약과 샬롯 사장의 머리 최 전무가 가져오지?’

두 연놈들 때문에 전화기에 불이 났다. 최 전무, 최 전무. 그놈의 최 전무가 없으면 회사가 망하겠다? 아주.

최 전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내 정치질을 했다며 자기를 몰아세우던 유 이사가 하는 짓은 뭐란 말인가? 자기가 이기영이를 쫀 것이나, 유 이사가 자기를 쪼는 것이나 뭐가 다르지? 아, 내가 쪼았으니까 너도 쪼임을 당해보라는 건가? 그래서? 그렇게 날 쪼아서 조 사장을 누를 생각인가?

조 사장도 그랬다. 정말 그 약이 필요했다면 유 이사를 보내거나 최소한 유 이사와 함께 보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지원이라도 빵빵하게 해주던가? 직속 애들 갈려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자기보고 그 약을 가져오란다. 은밀하게. 은밀은 얼어 죽을 은밀.

‘씨발 새끼들이.'

자기를 핫바지로 보고 있었다.

‘좋아. 좋다고.’

그놈의 약인지 뭔지 찾아주마. 그리곤 홀랑 먹어주마. 겸사겸사. 그놈과 결착도 짓고.

[히로시마시에 급유를 위해 착륙하겠습니다. 급유와 기체 점검에 30~40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괴물 같은 놈을 잡으려면 인해전술이 필요했다. 샬롯의 심은규 이사가 일본에 있는 인원들을 모아준다고 했으니, 일단 인력을 갈아 넣으면서 간을 봐야겠지. 그렇게 지친 놈의 숨통은 이 손으로 직접 끊으면 그걸로 좋았다.

인해전술로 힘을 뺀다고 해도 괴물은 괴물이었다. 오히려 지친 놈과의 결전이 기대됐다. 힘이 빠진 놈이라면 기술의 의미를 알아먹을 테니까. 놈의 괴물 같은 신체 능력을 일반인 수준으로 끌어내린 뒤, 압도적인 기술로 유린하면 그 괴물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표정으로 뒈질까?

최 전무는 새로 구한 칼을 빼 들었다. 아직 완전히 손에 익지는 않았지만, 전에 쓰던 검보다 훨씬 강한 칼. 신소재 강철로 만든 칼날은 잿빛으로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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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럴 때는 요렇게.

가볍게 찌른 칼날이 척추 사이를 뚫고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오도독-하면서 척추와 갈비뼈가 분해되는 감각이 손끝에 느껴졌다. 고개를 뒤로 돌리기도 전에 무너지는 몸뚱이. 풀썩 쓰러지지 않게 살짝 잡아주자, 흐느적거리던 몸이 조용하게 영면에 들었다.

한 16~17명 정도 보낸 것 같은데. 더 있으려나? 7명이 한곳에 모여 있었기에 그때 잠깐 힘 좀 썼다. 확실히 쪽수가 많으면 힘을 안 쓰고는 힘들었다. 거기서 칼 2자루 버렸고 그 뒤로는 조용조용히 순리대로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 누워있는 사람이 살기를 대놓고 내뿜는 마지막 사람이었다.

살기를 흉흉하게 뿜고 있으면 위치 파악이 금방 되는데, 살기를 숨기고 있는 경우에는 찾기가 좀 애매했다. 그러니까 광학 장비를 장착한 경호원처럼 살기를 숨기고 있으면 위치를 파악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건 제법 고수라는 의미였다. 지금처럼.

휘익-

등 뒤 대각선 사각에서 들어오는 단검. 살기도 없이 조용히 찔러오는 일격이었다.

틱-

반보 움직여 자연스럽게 일격을 비켜내자, 상대방의 왼손에 든 총이 이쪽의 머리를 향했다.

틱-

총구도 밀어내자, 오른손의 단검이 베어온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총알을 아낀다는 소리. 이렇게 근거리 교전이라면 일단 방아쇠를 당길 텐데. 오른손 단검으로 베면서 왼손의 총구가 단검의 뒤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 이건 조용히 가기 까다롭네.

스팍- 단검을 피하면서, 마루의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왼손의 총구가 순간 방향을 잃었다.

둔탁한 충격을 명치에서 느낀 사내가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새 손잡이까지 틀어박힌 회칼.

끄으으

허무하다는 듯, 믿을 수 없다는 듯, 새어 나오는 소리. 그리고 자장가를 불러주듯 마루가 사내를 다독였다.

쉬--- 조용히---

쓰러지는 몸을 살짝 안아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조용해지는 육신이었다.

“거기서 계속 구경만 할 건가?”

마루가 구석을 보며 사내의 명치에서 회칼을 뽑았다. 쯧- 역시 날이 상했다. 조금 많이 힘을 주면 확실히 그랬다. 날이 상하지 않게 해야 했는데.

아무것도 없던 구석이 살짝 일렁이며, 아는 얼굴이 나왔다. 자그마한 몸까지 똑같았다. 그러니까 쌍둥이? 옷과 몸 여기저기에 피가 묻은 걸 보니, 나름대로 위험했었나 보다.

경호원2는 불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가 못마땅한 얼굴. 편히 쉬고 싶은 표정인 건가?

아- 진정.

어- 잠깐.

천천히 깊게 심호흡했다.

길게 숨을 내뱉자. 진정이 좀 됐다.

“요트에 있던 배신자들은 다 정리된 것 같은데, 대역이신지 사장이신지 하는 분은 어디 계시고요?”

가만히 마루를 보던 경호원2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 이거 참.

여러모로 힘드네.

마루는 경호원2의 뒤를 조금 멀찍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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