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56화 (56/280)

러스트 [RUST]-56

붉은빛이 감도는 앰플 3개가 담긴 케이스.

테이블 위에 놓인 케이스를 유 이사는 지긋하게 노려봤다. 번뜩이는 삼백안이 심은규 샬롯 이사를 훑었다.

“반쪽발이를 또 믿으라고? 통수는 두 번 친다는 건가?”

부산 샬롯 호텔에 대한 정보를 감춰, 월드 회사 애들을 통해 심은영의 전력을 확인하고 깎아 먹은 뒤, 날름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해놓고는 약을 주겠다? 그것도 중상인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약이라면서? 말이 좋은 약이지 뭔 약인 줄 알고 덥석 받을까.

“하- 이래서 조국 통일이 안 된다니까. 북에서 내려오면 반 빨갱이, 조선족은 반짱개, 일본에서 오면 반쪽발이. 그렇게 갈라치고 지랄하니까 나라가 이 꼴이지. 사람 앞에서 대놓고 반쪽발이가 뭐냐? 반쪽발이가. 아주 지적 수준을 그냥 까발려요. 그냥 대놓고 까발려. 쪽팔리지 않냐?”

유 이사의 입꼬리와 삼백안이 곱게 휘어졌다.

“그래서 내 흑역사를 아는 새끼가 하나도 없지···.”

“······.”

월드 그룹에 미친년·놈이 넘친다고 하더니, 살인 예고를 이따위로 하나? 샬롯을 뭐로 보고? 심가는 그냥 좆으로 보나? 이런 년은 한 번 수그리면 계속 올라탈 년이었다. 샬롯을 탐하면서 고작 미친년에게 수그릴까 보냐? 재벌이나 조직이나 근본은 같았다. 쫄리는 놈이 뒈지는 것.

“흑역사 아는 놈이 없어서 좋겠네, 매일매일 새로운 흑역사를 쌓아도 된다는 소리잖아? 하긴 과거가 구질구질하면 남은 인생도 뭐 어쩌겠어? 그래서. 김수현 실장 살리지 않겠다는 건가? 의식불명에 오늘·내일 한다더니···. 아, 하긴 그렇기도 하겠네,”

“······.”

“월드 그룹이 샬롯 본사도 아니고, 부산 구석에 있는 샬롯 호텔 하나를 점령하지 못해 그 지랄이 났는데, 누군가를 책임을 져야겠지, 그래. 피해가 피해인 만큼, 살아서 왔어도 뒈져야 할 놈이 하나쯤은 필요할 테고. 내 생각이 짧았어. 미안하군, 유 이사. 괜한 시간만 뺏었네.”

샬롯의 심은규가 느릿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앰플을 향해 손을 뻗었다.

칵!

손과 앰플 사이를 가로막은 콜트 파이슨.

히이이이이이이죽

입꼬리가 길게 휘어진 유 이사의 눈은 그저 삼백안이었다. 말이 없이 기괴한 미소를 한 채, 심은규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쫄리면 뒈진다고 강하게 나갔지만, 심은규는 살아온 시간 동안 이런 살기를 받아본 적 없었다.

독살? 교통사고? 암살? 그런 건 살기도 아니었다. 손과 앰플 케이스를 가로막은 총구가 언제 머리통을 날려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느낌. 그리고 앞에 있는 년은 샬롯이랑 전쟁? 그딴 거 알게 뭐냐고 할 년이었다.

태연했고, 태연을 가장했던 심은규의 관자놀이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삼백안에 비친 자기 모습은 언제 당당했냐는 것처럼 노랗게 떠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칙쇼!’

심은규는 처음처럼 대차게 대거리할 수 없었다. 지위도, 돈도, 협박도, 손해도, 미래도 전부 총알로 해결하려는 년이었다. 이런 년에게 이사 자리를 준 월드도 돌은 회사였다. 심은규는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래 쫄리면 뒈진다. 어차피 죽는다면 추하게 갈 순 없었다.

[유 이사님, 조 사장님 호출이십니다.]

“지금 바쁜데, 정리할 것도 있고. 바닥이랑 벽이랑 좀 지저분해 질 것 같은데, 처리반 불러주련?”

이 새끼를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골몰하는 유 이사였다. 죽이는 건 확정이고, 정체가 의심스러운 앰플에 대한 것을 전부 토해내게 한 뒤, 돼지처럼 꿱꿱이면서···.

컥!

[유 이사님, 조 사장님께서 그만하시고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나 좀 바쁘다니까.”

어느새 유 이사의 콜트 파이슨의 총구가 심은규의 입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우!

얼음처럼 굳어 버린 심은규의 입안을 차가운 총구가 더듬었다. 치아와 치아 사이, 치아와 혓바닥 사이, 그리고 목구멍 깊은 곳을 유린하는 총구.

일단 탱글탱글한 볼때기에 구멍을 하나 뚫어주고. 이빨 몇 개 뽑아서, 앞니가 좋겠지. 그래야 총구를 넣다 뺐다 하기 편하니까.

[지금 뭘 하고 있든지 당장 멈추고, 바로 올라오지 않으시면, 권고사직이라고 하셨습니다.]

“하- 진짜-”

유 이사의 고개가 기괴하게 꺾이더니 룸 천장에 붙어 있는 CCTV를 향했다. 조 사장에게 먼저 약을 쳤나? 조 사장이 CCTV 구경하고 있을 사람은 아니었는데, 새끼. 살 구멍은 파두고, 재롱이었네.

“좋아. 오늘은 아쉽지만 여기서 끝내야겠네.”

“······.”

“그래 심은규 이사, 최 전무 새끼한테 먹이 던져주고 있는 것 같던데, 언제 같이 자리를 잡지. 그 전에, 이거에 대한 거, 자료 있겠지? 달랑 이렇게 던져줄 건 아닌 거로 보이는데? 가져왔으면 올려놔 봐.”

입에 총구를 문 채, 심은규가 더듬더듬 서류 가방에서 서류철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놨다. 유 이사가 그 서류철을 힐끗 본 뒤, 삼백안으로 심은규를 더듬듯 살폈다.

“심은규 이사, 샬롯에서 또 뒤통수 치길 바라지. 제발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통수 쳐줘.”

콰직-

윗니가 부러지는 소리. 심은규의 입에 넣은 총구를 우악스럽게 빼는 유 이사였다. 심은규는 그 자리에서 유 이사를 노려봤다. 서로의 눈빛이 마주쳤다.

[유 이사님, 조 사장님께서 지금 당장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지금 올라간다고 해.”

“······.”

“돈이 좋기는 좋아. 죽을 목숨도 살리고. 향 피울 날 받아 놓은 것도 미루고, 심은규 이사. 내가 생각하기엔 우리 곧 또 볼 거 같아. 아쉬워 말고 오늘은 이만하자고.”

“······.”

개나 주인이나 표정이 똑같군, 하긴 개는 주인을 닮는다고 했었나? 아니면 주인이 자길 닮은 개를 키운다고 했었나? 유 이사는 옆에 있는 티슈를 뽑아 콜트 파이슨의 총구를 닦으며 말했다.

“이게 제대로 된 거길 바라지.”

세 번은 없을 테니까. 유 이사는 테이블에 놓인 앰플 케이스와 서류철을 챙겨 일어났다.

인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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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덕 사장실

투실투실 살이 오른 남자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 질렀다.

“유 이사.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제발 좀 살살하자고 그렇게 말했잖나? 무슨 항구도시에 원한이라도 있나?”

인천 물류창고 화재로 덮었던 일을 해결할 때는, 아차 하면 인천이 모가디슈가 될 뻔했다. 그런데 이번 부산 샬롯 호텔 정리 건에서는 부산이 베이루트가 될 뻔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고 그 지랄한 건가?

“내가 왜 자네한테 보고받기 전, 샬롯 애들한테 이야기를 들어야 하냐고? 제발 좀 살살하라고 그렇게 애원해도 안 되겠나? 샬롯 본사도 아니고 부산에 있는 거, 그것도 용호동 산속에 있는 걸 정리하는 데 그걸 조용히 해결 못 해?”

유 이사의 눈이 슬슬 삼백안으로 변하고 있었다.

“썅- 눈깔 똑바로 안 떠? 지금 여기가 이라크야? 아프간이야? 임원이 됐으면 임원답게 해야지, 아직도 총질이 먼저야? 내 앞에서 눈깔 그렇게 뜰 래?”

조 사장이 길길이 소리 질렀다.

“씨발, 그래 일단 상황부터 파악하자고, 어쩌다 부산에서 크레모아 터지고 수류탄 까고 왜 그 지랄이 났는지 보고는 받았어?”

“부산 샬롯에서 작전지역에 전파방해를 해서, 저도 약식으로만 보고받았습니다. 부산 샬롯 호텔 심은영이 함정을 파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특수한 약물, 아마도 일종의 전투자극제를 이용해 인해전술을 썼고, 연막탄과 화염병으로 피해를 강요했다고 합니다. 그걸 벗어날 방법이 크레모어와 수류탄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약식? 이게 약식? 씨발 그럼 정규 보고서엔 뭐가 나오는 거야? 조 사장이 약식이라는 말에 지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일단, 부산 진구 씹개의원이, 방금까지 지랄했다. 부산에서 뭔 짓을 하는 거냐고. 우리도 그렇고 샬롯에서도 인근 지역 차단하고 대테러 훈련으로 입을 맞췄는데, 남구 의원도 아니고 진구 씹개가 지랄했다고. 여의도 애들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갑자기 지랄이냐? 작전지역이 정확하게 어딘데 그 지랄인 거야?”

“그러니까 용호동 공원을 끼고 있는 샬롯 호텔과 그 일대 지역이었습니다.”

조 사장이 동글동글한 안경을 벗고 관자놀이를 눌렀다.

“진구 씹개가 지랄하는 이유가 뭔지 알겠냐?”

“글쎄요.”

홍 과장이 운영하던 업장이 털렸지만,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다시 모아서 처넣으면 될 일인데 왜 갑자기 지랄일까?

“샬롯 심은규 이사가, 약을 줬지?”

“예. 받았습니다.”

후- 한숨을 길게 쉰, 조 사장이 안경을 쓰곤 유 이사를 쳐다봤다.

“그 약, 부산 진구 씹개가 하나 달란다.”

“네?”

‘그걸 어떻게 알고, 말입니까?’라고 말하려던 유 이사의 눈이 슬슬 삼백안으로 변하다 말았다.

그러니까 약을 줘 놓고, 월드에게 약을 줬다고 정보를 풀었다? 이 약이 그렇게 중요한 약인가? 씹개들이 내놓으라고 지랄할 정도면 효과가 있다는 소리겠지?

아니지, 부작용이 심할 수도 있었다. 좆 같은 약을 줘 놓고, 씹개들에게 건넨 약이 부작용 터지면? ‘우리 샬롯에서는 정상 약을 줬지만, 월드에서 약을 바꿔치기해서 이렇게 됐다.’ 이렇게 엮을 수도 있고.

그럼 그렇지, 통수를 칠 땐, 두 번 연속으로 치는 새끼들이었다.

“나에게 1개를 주면서, 자네에게 3개를 준다고 이야기하더군, 보통은 반대가 아닌가? 사장한테 3개를 주고 이사한테 1개를 줘야지. 좆같은 기분이더라.”

“······.”

“뭐, 그렇게 4개를 주는 대가로, 샬롯과 4년 동안 일체의 무력 충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협정을 하자고 하더군. 본래 샬롯이야 우리 측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었고 나 또한 달랑 1개라 기분이 별로긴 하지만, 여벌 목숨이 될 약이니 그렇게 하기로 했지.”

크흐흐흐

유 이사가 웃었다. 심은규 이 새끼 이미 다 해놓고 간을 봤구나. 우리가 피똥 싸는 걸 봤으니 대응책이 섰다? 그렇게 부산 샬롯을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샬롯이 될 테니, 4년간 아닥하고 있어라? 4년이면 충분히 월드를 막을 각이 나온다? 이거 참···.

“그래. 3개를 자네에게 준 이유는 자네 악명이 워낙 높으니까 그랬겠지. 겸사겸사. 우리 쪽을 흔들려고 한 것도 있고, 부산 진구 씹개를 생각하면 노리는 게 더 있겠지. 어쨌든 그 약, 어쩌면 3개 모두 우리 손을 떠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게.”

하하하하

조 사장. 아- 정말- 유 이사는 한참을 웃었다. ‘내 손에 들어온 걸, 그냥 토하라고?’ 지는 그냥 갖고 있을 거면서? 역시 사람이 편해지면 돼지가 되는 법이었다. 방화광으로 소문났던 조만덕이가 어쩌다 돼지가 됐을까?

“샬롯에서 말하더군, 이번 재난으로 일본에 있던 제약회사가 무너져 이제는 생산할 수 없는 약이라고, 더 내놓으라고 하더라도, 심가 직계가 쓸 비상용만 있다고. 그러니 효과적으로 약을 써야 할 거야. 그래서, 김 실장 어떻게 할 생각인가?”

유 이사가 대답 대신 서류철을 내밀었다.

“효과는 달랑 2줄인데, 부작용이 10페이지입니다. 예전 일본에서 바이러스성 폐렴 치료제라고 뿌리고 다녔던 약보다도 더 부작용이 심합니다. 이걸 과연 쓸 수 있는 약인지 하나 정도는 써봐야 할 듯합니다. 그리고 써봐야 한다면 김 실장에게 쓰는 게 제일 현실적이라고 보입니다.”

조 사장은 아깝다는 듯 아쉽다는 듯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 사장이 말하기 전 유 이사가 먼저 말했다.

“남은 것은 잘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니까. 조 사장의 동그란 안경 뒤, 눈매가 살짝 구겨졌다 펴졌다.

“보관. 확실하게 하게.”

“확실히 하겠습니다.”

확실히···. 유 이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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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게 하지 마라. 하려면 확실히 해라. 어버리 타지 말고. 뒈지지 말고.

팍!

마루가 던진 장미칼이 달려오는 약쟁이의 목에 박혔다.

목에 칼이 박힌 약쟁이가 비명을 지르는 대신 점프했다.

허미.

이래서 약쟁이구나.

써컥-

이젠 약/쟁이가 됐지.

그렇게 토막이 난 걸 보고도 약쟁이들은 계속 덤벼들었다. 공포도 모르고 죽음도 모른다. 그저 죽이겠다는 본능만 남았을까? 무기를 휘두르고 총까지 쏘는 약쟁이들이 있는 걸 보면 완전히 지능이 날아간 건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이딴 약을 어떻게 만들었지? 입고 있는 행색을 보니 이건 샬롯 쪽 애들인 거 같은데.

마루는 또 하나의 약쟁이를 고이 잠재우고 주변을 살폈다. 검은색 옷을 입은 월드 쪽 인원은 벌써 퇴각한 모양이었다. 약을 먹지 않은 샬롯 쪽 인원도 후퇴한 모습.

뽀얗게 낀 연기 속을 헤집고 다니는 건 약쟁이, 그리고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수의 사람만 있었다.

‘흠- 이거 좀 난감한데.’

이기영 과장이랑 말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일단 그쪽으로 마음이 많이 갔었다. 호텔 샬롯과 적대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조건이었는데, 그쪽으로 보이는 약쟁이를 벌써 10명 넘게 썰어버렸으니···.

“이거 참. 애매하게 됐네.”

보위 나이프를 휙- 휘두르니, 두둑- 핏방울과 찌꺼기가 털렸다.

오- 날이 아직 괜찮아.

전체적으로 상태 양호해.

이거 좋은걸.

내 칼을 바라봐 넌 / 음?

순간 미묘한 감각.

아주 낮게 깔린 살기, 갈무리된 살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마루가 고개를 돌리자, 비릿하게 웃는 사람이 거대한 클레이모어를 들고 있었다.

무슨 딱딱해 보이는 보호구 같은 걸 전신에 착용한 모습은 마치 갑각류 같았다.

저건 또 뭐야?

근데 왜 날 보고 쪼개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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