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30화 (30/280)

러스트 [RUST]-30

발작하는 기순에게 마루가 약을 투척했다.

“그 새끼들이 나루를 납치했는데 내가 어떻게 참아!”

“나루를? 조폭들이 나루를 납치했다고? 나루는 어떻게 됐는데?”

약효가 빨리 돌았다.

“불 질러서 개판 됐을 때, 그 틈에 빼냈지.”

“나루는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이왕에 약을 뿌린 거, 확 뿌리자.

“그래 불 싸지르지 않았으면 좀 그렇게 될 뻔했다. 미친 새끼들이 무슨 촬영장을 만들어 놨더라고.”

“아이 개새끼들이··· 불 잘 질렀네! 잘 질렀어! 좆 같은 새끼들이 고등학생을 납치해?”

앞뒤가 많이 생략된 촬영장을 만들었다는 말에 기순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아주 개새끼들 불 질러서 싸그리 다 죽여 버리지 그랬어. 개 같은 새끼들.”

기순의 말에 마루는 어- 음-하는 표정을 숨기기 바빴다.

한참을 씩씩대며 분노를 터트렸던 기순이 진정이 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조폭 애들이 널 추격하고 있다고?”

“무슨 도청 장치에 GPS위치 추적기까지 써서 추격하더라.”

기순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던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흥신소에서도 불륜 찾을 때 도청기, 추적기 쓰고 다 그래, 그거에 쫄아서 버지니아 그 회사랑 비빈다고 하면 그건 아니지.”

마루는 이걸 진짜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기순이 멍청한 놈은 아닌지라.

안 형사까지는 말해야 하나? 경찰에 끈이 있어서 경찰이랑 조폭이랑 쌍으로 쫓긴다고 하기는 아니고, 일단 경찰은 정리됐으니···.

조직이 포장 납치 택시 운영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말해도 될 듯했다. 마루가 막 포장 납치 택시를 타고 삼도천 드라이브한 썰을 풀려고 할 때, 기순의 표정이 휙 변했다.

“그래서 나루는? 나루도 같이 일본 갔다가 미국으로 가게? 이 상황에서 일본 가는 이유는 신분 같은 거 만들려고? 지금 일본 개판 났으니까 실종자 신분으로 파려고 하나?”

“어. 뭐··· 그렇지.”

귀신 같은 새끼. 마루는 입술이 바짝 말랐다.

“나루가 순순히 일본 간대? 곧 수능이고, 입시라서 학교 빠지고 일본 간다고 그럴 애가 아닌데. 뭣보다 신분 새로 파면, 이번에 콩쿠르 우승한 것도 다 포기하고 친구들이랑 전부 인연 끊어야 할 텐데, 나루가 그러겠데?”

아- 마루는 속으로 욕했다. 기순이가 나루를 생각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 잠시. 아주 잠깐의 틈과 마루의 표정을 읽은 기순이 버럭 소리 질렀다.

“야- 씨발 너 뭐야? 표정이 왜 그래? 너 나루랑 싸웠냐? 그래서 나루는 그냥 한국에 있고, 너만 일본 가기로 한 거야? 왜 싸웠는데? 나루가 입시 포기 못 하겠대? 한국에 그냥 있겠데? 납치도 당했으면서?”

순간 움찔한 마루였다. 기순이 버럭 외쳤다.

“미쳤구나? 남동생도 아니고 여동생인데, 조폭 애들이 도청기랑 위치추적까지 하는 새끼들이라고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어떻게 하려고 한국에 두고 갈 생각을 해. 엉? 머리끄덩이를 잡고서라도 끌고 가야지!”

“아니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오빠면 강제로 뚜드려 패서라도 끌고 가야지. 한국에 있으면 위험할 거 뻔히 알면서 그냥 둬?”

“아- 진짜 그게 아니라.”

기순이 마루를 째려보며 말했다.

“결론만 말해서, 너 나루는 그냥 두고 일본 가려고 했냐?”

기순의 말에 마루의 인내가 무너졌다.

아- 야발 몰라. 마루는 그냥 내질렀다. 될 대로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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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대로 되라, 그렇지 않아도 속이 썩어 문드러질 지경이었다.

뺨 맞은 김에 운다고, 마루는 꾹꾹 눌러 왔던 걸 기순에게 풀었다. 업장에서 수십을 썰어 버린 거, 김 양이랑 오순도순 서울 한복판에서 피바다 만든 것만 빼고, 집안 사정부터 해서 쫓기다 뒈지는 게 아닌, 암 걸려서 뒈질 상황을 까발렸다.

“어- 미안. 내가 말을 너무 막 했네.”

기순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기순이라고 알았겠는가?

마루의 부친은 암으로 하반신 마비, 요양병원에 들어갔는데 그게 또 애매한 병원.

모친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약을 했고 약팔이 조직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마약 치료 재활센터로.

나루는 오진 그룹 외동딸이 자기 친동생처럼 아끼고, 나루 또한 언니처럼 따라서 오진 그룹 차원에서 경호를 받으면서 한국에 있겠다고 한 것까지.

기순이 마루에게 뭐라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루가 그렇게 완강하게 마루와 같이 가는 걸 거부할지 몰랐고 마루 또한 할 만큼 했다. 자신도 여동생이 그렇게 나왔다면 때려서 끌고 갈 수 있었을까? 장담하기 힘들었다.

마루가 엮인 조폭도 그랬다. 그냥 대충 조폭은 아니었다.

마루의 생각을 들어보면 자신도 반쯤은 엮인 거 같고.

“됐어. 너도 나 때문에 엮일 거 같은데 내가 더 미안하지.”

“그래. 상황이 이 꼬라지가 될 걸 누가 알았겠냐.”

기순과 마루가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화 받고 바로 선배들이랑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봤는데.”

요트를 알아본 기순이었다.

“100ft급(대략 30m) 카타마란(쌍동선) 가지고 있는 선배랑 연락이 닿아서, 그 선배가 2달에 5천 정도면 빌려주겠다고 하더라. 장거리 항행이라 추가 보험 드는 거, 기간 끝나고 반납할 때 보험처리 안 되는 부분 있으면 그거 수리비까지는 별도로 우리가 부담해야 하고.”

기순이 100ft급 럭셔리 요트를 하루에 80~85만 원에 빌리면 싼값에 빌리는 거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100ft 이상 럭셔리 대형 요트 수요가 증발해 렌트비가 많이 떨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 선배 요트야 나도 타봤으니까 익숙하기도 하고 자동 운항으로 해놓으면 어지간한 건 자동으로 되는 기종이라 편하긴 해.”

“그럼 너 혼자 운항도 가능하고?”

“단거리면 혼자도 괜찮겠지만, 장거리는 좀 부담되는 게 사실이지. 아무리 기계가 자동으로 운항한다고 하지만 사람이 지켜봐야 해,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재빨리 대처해야 하니까. 교대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괜찮은데, 상황이 이러니까 아는 사람들 부르기도 그렇고.”

“어쩌겠냐? 누굴 부르든 부른 사람도 반쯤 엮이게 될지 모르는데 안 부르는 게 맞지.”

기순이 일단 출항하고 나면 기본적인 것 알려줄 테니까, 가보자고 했다.

“선배 요트는 부산에 있는 로얄 마리나에 있으니까, 내일 오전 중으로 가서 계약하면 될 거다.”

“인천에서 바로 타고 가면 좋은데.”

기순이 피식 웃었다.

“어이구. 나중에 제발 내려 달라고, 쉬었다 가자고 하지나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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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아올 무렵. 승합차 여러 대와 검은색 벤츠가 동네를 뱅글뱅글 돌았다.

“야- 씨발 뱅글뱅글 돌지만 말고 애들 풀어서 발로 찾아. 이게 몇 번을 도는 거야.”

“그게 신호가 이 근처에서 끊겼다, 이어졌다. 그런 기록이 있어서 말입니다.”

짧은 머리카락. 한쪽 눈썹에 흉터가 있어, 인상 사나워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꺾자 우두둑 소리가 났다.

“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신호에 이상이 생겼으면, 진작 애들 풀어서 돌려야지, 뺑이만 치고 있으면 뭐 하자는 거냐?”

“죄송합니다.”

꼭 머리 쓴다는 새끼들 때문에 일이 복잡해졌다. 김 양이 좀 이상하니까 풀어놓고 지켜보자고? 도청기랑 위치추적기 박았으니까 김 양이 배신했으면, 김 양을 미끼로 뒤에 있는 새끼들을 싹 잡자고? 아주 계획들은 좋아요. 계획들은···.

“죄송이고 잘못이고 일단 애들 다 풀어. 근처 편의점 CCTV 기록도 싹 끌어모으고.”

“옛.”

“대답만 넙죽 하지 말고 씨발아. 이기영이 그 새끼보다 먼저 찾아야 한다고 내 몇 번이나 말해? 엉? 빠릿빠릿하게 못 해?”

승합차들이 일제히 멈추자, 그 안에서 어두운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우루루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긴, 여기저기 줄줄 흘리면서 흔적을 남길 때 어쩐지 쉽다 했어. 그렇게 쉽게 잡힐 년이 아닌데 말이야.”

아방해 보이지만, 그 더러운 중국 뒷골목에서도 혼자 살아남은 년이었다. 김수현 실장이 씩-웃었다. 개년 총 좀 쏜다고 지랄이었지.

“야- 신호가 왔다 갔다 했다는 건, 그년이 뺐을 수도 있다는 거지?”

“어쩌면 그래서 신호가 불안정한 걸 수 있습니다.”

“졸라 독한 년이네, 생살 꿰맨 걸 뜯고 뺐다는 거잖아?”

“그게, 확실하지 않은 게, 애매해서 말입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잡힌 신호가 반경 10m 정도까지 표시되는데, 반경 10m 중심이면 여기 이쪽에서부터 이렇게 저쪽까지라서.”

김 실장이 화면 속 표시된 지도를 삐뚜름하게 쳐다봤다. 반경 10m라 애매했다. 교차로도 가깝고,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만 알아도 CCTV 따가면서 추적이 가능할 텐데.

‘그년이 진짜 자기 생살을 뜯었을까? 뜯어서 추적기 뺐다고 쳐, 그럼 찢어져 피가 철철 나는 걸 그냥 일반 바늘을 써서 지가 꿰맸다고?’

김 실장은 아방한 얼굴로 눈물 콧물 쏟으면서 일반 바늘로 자기 팔에 박음질하는 김 양의 모습을 떠올렸다. 매치가 되지 않았다.

뭣보다 10m 반경이면 대부분 번화가 아닌가? 여기서 팔뚝 뜯고 미싱질 했다고?

“근처에 병원 좀 확인하자.”

“어떤 병원 말씀이십니까?”

“그냥 병원 전부다.”

병원 명단을 받은 김 실장이 잠시 침묵했다.

[강남 성형외과]

[뉴욕 내과]

[센스 미 뷰티 클리닉]

[보스턴 치과]

[압구정 뷰티 성형외과]

[대치 필 대장·항문 전문 병원]

[워싱턴 비뇨기과]

[강남 하모니 산부인과]

······

“야- 여기 서울 강북 아니냐?”

“예. 한강 이북이죠.”

“······.”

“······.”

“씨발 나라가 어쩌려고 이러는지. 일단 치과는 빼고, 아니다. 황당한 년이라서 치과 가서 깽판 쳤을 수도 있으니까 치과까지 싹 돌면서 그년이 들어간 병원 있나 찾아봐. 박힌 거 눈치채서 빼려고 했으면, 병원 가서 뺐겠지···. 일단 어느 병원에 들어갔다, 그거 잡으면 거기부터 CCTV로 추적한다.”

“옛.”

김 실장은 회사 병원 안 박사가 자랑하듯 도청기랑 위치추적기 박았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하- 진짜 똑똑하다고 하면 뭐해, 센스가 있어야지 센스가. 도청기를 깁스에 박아 넣으면 깁스가 도청기 마이크를 가로막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하나? 마이크 부분이 밖으로 나오게 깁스를 하든지. 씨발 뭔 웅웅 소리만 나게 박아 놓고 좋다고.”

“김 실장님 신호 다시 잡혔다가 끊겼습니다.”

“뭐야? 어디서?”

“지금 인천공항 방면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빠르게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끊겼다 이어졌다 하다 끊겼습니다.”

인천공항? 빠르게 이동? 코로나 사태니까 해외로 나가는 건 아닐 거다. 그럼?

“제주도네. 이년이 제주도에서 잠수 타려고 하네. 애들 다 불러. 제주도 가는 거 빨리 알아보고.”

“예- ”

치직

[전부 차량으로 집합.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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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로 택시 화재 현장.

물로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 가드레일 이쪽저쪽에 즐비했다.

이기영 실장이 현장을 보면서, 당시 찍은 사진과 대조했다.

“여기 좀 봐. 여기 이 사진, 이거 해드레스트가 앞으로 꺾인 거지?”

“그래 보이는데요?”

검시 결과서를 처음 봤을 때는 전복으로 인한 충격으로 목뼈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었는데. 해드레스트가 앞쪽으로 튀어나갈 듯 휘어진 걸 보면 아닐 수도 있었다.

“도청한 파일은 분석됐고?”

“잡음이 심해서 알 수 없는 부분을 제외하고 최대한 정리하고 있습니다.”

안 형사가 제대로 일해서 다행이었다.

그런 사람 찾기 힘든데, 이 실장이 아쉬운 느낌에 입맛을 쩝 다셨다.

‘진짜. 홍 과장이 사람을 잘 보긴 했는데······.'

“홍 과장은 아직도 연락 없고?”

“예 완전히 연락이 끊겠습니다.”

“홍 과장이 회사 통수 치진 않았겠지?”

“그렇죠. 홍 과장이면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사람인데다, 이번에 부장 승진 앞두고 있지 않았습니까? 해외 진출 프로젝트도 홍 과장이 추진하고 있었고요. 그거 성공하면 바로 이사까지 올라가는데 이유가 없습니다.

“크리스털 쪽 애들이 바로 임원 자리 준다고 했으면?”

“마찬가지입니다. 크리스털 애들이랑 엮이느니, 자살했을 겁니다. 결말을 뻔히 아는데 회사랑 척질 생각은 안 했을 겁니다.”

“그럼 지금 잠수타고 있다?

“글쎄요. 김 양이 옆에 붙어있는 걸 생각하면, 다른 세력 때문에 홍 과장 신변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보기는 좀 어렵고요. 근데도 연락이 끊겼다는 건···.”

김 양이 홍 과장 옆에 있었다. 김 양이라면 테이저건이나 사시미 들고 설치는 애들은 버스에 가득 싣고 가도 시체만 쌓일 것이다.

“김 양이 홍 과장을 제꼈을 수도 있다는 거네. 그래서 홍 과장이랑 연락이 끊긴 거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위에서는 뭐래?”

“김 양의 배신 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김 양 추적은 누가 맡았고?”

“김 실장이 맡았습니다.”

이 실장이 혀를 찼다.

“아- 씨발 이놈의 회사는 이게 문제야. 경쟁도 좋은데 대충 서로 페어플레이해야지, 라인 따라서 밀어주고 끌어주고 지랄이면 그게 경쟁이냐? 지랄이지. 결과가 좋으면 말을 안 해요. 크게 보면 제 살 깎아 먹기인데. 안 그러냐?”

“······.”

“누구는 배신한 년 찾아서 실적 챙기고, 누구는 씨발 좆도 모르는 새끼 찾겠다고 뺑이치고, 견제도 정도껏 해야지. 이래서 일할 맘 나겠어? 김 실장은 좋아 죽겠네, 좋아 죽겠어.”

“······.”

이 실장이 서류철을 휙 뒤집었다.

하마루. 뭔 이름도 병신 같은 새끼. 후딱 잡고, 김 양까지 잡아야 했다.

‘김 실장 그 새끼가 먼저 과장 자리 앉는 건 눈 뜨고 못 보지.’

“야! 아직도 이 새끼 위치 정보 안 넘어왔어? 빨리 내놓으라고 다그쳐야지. 그냥 콱- 쌔린다고 지랄을 해서라도 빨리 가져와!”

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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