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4
[···경찰 쏘라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뒤처리는 조직이 알아서 하겠지.]
‘뒤처리를 회사가 한다고?’
이게 무슨 말이야? 김 양은 혼란스러웠다.
[1시간 안쪽으로 꼭. 조직과 관련된 일이니까 준비 단단히 해서.]
“야- 야- 조직과 관련된 일이라니? 짭새가 뭔가 정보를 줬어? 뭔 소릴 들은 거야?”
뚝-
김 양이 질문을 하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끊긴 전화.
아아아아악!
김 양은 단발머리를 쥐고 흔들었다.
악마, 사탄, 괴물,
아니, 그냥 씨발- 종간나새끼. 김 양은 오피스텔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퀵서비스로 받아 놓은 총이랑 부품, 총알을 집안 여기저기 분배해 숨기던 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성 전용 고시텔에서 똑같은 짓을 하다 쉬지도 못하고 왔는데 60분 안쪽에 저격 준비를 하라니?
심지어 어디서, 누구를, 왜,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다짜고짜 조직 관련된 일이라니.
‘간나새끼 꼴통에 박아버려?’
슬슬 김 양도 빡치기 시작했다. 분노 조절을 잘하는 김 양이지만 이건 뭔가? 자기만 똥줄 타는 거 아닌가? 김 양이 정신이 활활 타오르는 것과는 반대로 김 양의 몸은 정직했다.
자연스럽게 마루의 대포폰과 자신의 대포폰에 깔아 놓은 위치추적 앱을 실시했다.
마루가 있는 서까지 택시를 타면 대충 걸리는 시간이 8분 길어야 10분 거리. 밀린다고 해도 15분이면 떡을 쳤다.
좋아.
앞으로 20분 안에 장비 챙겨서 나가면 됐다. 그러고도 남은 시간은 충분했다.
저격을 준비하라고 했으니까, 가능한 도로는 3곳. CCTV 없는 곳을 고르자면 큰길, 아니면 아주 외딴길.
마루는 어디로 갈까? 당연히 음침하고 음흉한 종간나 새끼니까 좁은 외딴 골목길로 가겠지.
다른 길이라면? 지가 제대로 하지 않아놓고 누구 탓을 해. 절대 먼저 전화할 생각 없는 김 양이었다.
‘꼴리면 뒈지든지. 자르든지.’
첼로 케이스로 위장한 총기 가방을 둘러맨 김 양이 앱으로 콜택시를 부르곤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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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를 시켜 조금은 깨끗했던 공기가 금세 담배 연기로 탁해졌다.
한 형사가 길게 늘어진 담뱃재를 재떨이에 털며 말했다.
“안 형사가?”
“네.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기고 싶으면 자기한테 다 불라고 하더군요.”
“단순한 협박은 아닐 거 같고.”
“그러고 보니 오는데 검은색 차량이 제가 탄 택시를 뒤따라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루의 그 말에 한 형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월드에서 냄새 맡을 거로 생각했는데, 설마 이 청년이 제보자? 아니면 살인마? 혼자 수십 명을 썰어댔다고 하기엔 청년의 과거가 너무 깨끗했다. 알리바이도 탄탄했다.
탐문수사 결과도 마찬가지, 청년이 다녔던 고등학교 동창, 군대 선·후임과의 통화에서도 이상징후는 전혀 없었다.
성실하고, 망한 집의 가장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그런 청년이었다. 이 청년이 익명의 제보자라면, 월드 축산에 지하 창고가 있다는 걸 안건 그렇다 치고,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건실한 청년은 위장이고 월드 그룹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을까? 그렇다고 보기엔 사는 집이 너무 궁상맞았다. 월드 그룹 정도 되는 조직이라면 반지하에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겠군.’
하나가 맞으면 다른 하나가 맞지 않았다. 꼬이고 얽힌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안 형사가 그렇게 말했다는 건. 이 청년에게 꼬리가 붙었다는 의미였다. 위험하다는 소리였고.
“이쪽에서 자네 뒤를 밟지.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오면 싸우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자기 목숨을 지키고 버티는 쪽으로 하면 우리가 가서 제압할 테니까.
맞아서 눈 병신 됐는데, 계속 맞다가 죽을 거 같아서, 때리는 사람을 밀치고 도망쳤다고 쌍방 뜨는 나라다. 죽도록 때리던 피해자가 밀쳐서 다쳤다고 가해자가 주장하면 쌍방이 되는 것이다. 100% 확실히 쌍방을 피하려면 그냥 맞고만 있어야 했다. 그 결과가 병신이든 죽음이든.
마루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너무 빨리 걷지 말고. 조금 이따가 위치추적기, 카메라, 도청기 붙여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예.”
역시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위치추적기에 카메라, 도청기까지 주렁주렁 달리면 마음대로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한 형사를 이용해서 알리바이를 완벽하게 만들고, 안 형사를 정리하고, 자유를 향해 한 걸음 나가려나 했더니 이 모양이다.
“긴장돼서,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그래. 그래. 한 10분이면 되겠나?”
“예.”
마루는 인상을 찌푸린 채, 현관 방향으로 향했다. 살짝 대각선으로 떨어진 곳에서 이 순경이 커피를 마시고 있고 앞에는 안 형사가 이쪽으로 오지 하는 표정으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감시?’
이 순경과 안 형사가 묘한 위치에 있었다.
마루는 옆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한쪽에 자리를 잡고 문을 닫았다. 가지고 있는 휴대폰은 2개, 하나는 마루 명의폰, 다른 하난 대포폰. 대포폰으로 김 양에게 대략적인 내용을 문자로 보냈다. 김 양은 마루의 문자를 읽자마자 답 문자를 쏟아냈다.
[형사는 안 쏜다며, 안 형사 회사 사람 같다며? 근데 타겟이 안 형사라고?]
[괜찮다니까. 크리스털이라고 알지? 그쪽으로 위장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니까.]
[서울에서 대놓고 총질하는 건, 군대도 출동할 수 있는 일이라고. 총질해도 건물 안에서 하지, 대놓고 밖에서 누가 해? 그런 미친 짓을 누가 하냐고? 홍 과장이 얼마나 지랄했었는지 알아? 근데 서울 시내에서 대놓고 저격하자고? 못 해. 안 해.]
[아니, 안 하면 너고 나고 꼬리 달고 살자고? 이번 한 번에 끝내야지. 내가 이야기한 대로만 해. 너도 겪어봐서 알잖아.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거 자체가 내 생각이 먹혔기 때문 아니겠어? 어설프게 하다가 꼬리 잡히면 진짜 좆된다. 김 양아 부담되는 건 알겠는데 진짜 이번엔 내 말대로 해라. 그리고 너는 바로 배 수배하러 가면 되잖아.]
마루는 몇 차례 문자를 보낸 뒤, 화장실을 나섰다. 안 형사가 화장실 문을 막고 서 있었다.
“이야 5분이 넘도록 똥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네? 이게 그 스텔스 똥이라는 건가?”
“뭡니까?”
안 형사가 껌을 쫙쫙 씹으며 피식 웃었다.
“새끼가 말이 짧네. 좀 씹어줘야 고분고분 부들부들 해지려나?”
“······.”
“야- 까봐. 흉금을 탁 까보라고. 최 실장이랑 백 실장은 그렇다고 치고, 홍 과장은 왜 전화를 안 받고, 지랄인지. 넌 아냐?”
“······.”
마루는 침묵했다. 마루의 침묵에 안 형사의 눈매가 좁아졌다.
“와- 이 씨발 새끼보소.”
너스레를 떨던 안 형사가 휙, 마루의 재킷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마루는 크게- 악!- 소리를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넘어지는 마루의 몸을 덮치며 마운트 자세를 잡은 안 형사가, 우악스럽게 마루의 재킷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마루의 휴대폰이 음성녹음을 하고 있었다.
“아- 진짜 이 시발 새끼가, 귀엽게 놀고 있네. 진짜.”
안 형사는 황당하다는 듯, 어이가 없다는 듯 휴대폰의 녹음을 껐다.
“너 이 새끼 내가 실실 웃으면서 말하니까, 빙다리 핫바지로 보였냐? 좋은 말로 하면 안 될 놈일세 이거? 하하- 꼭 이런 놈이 어설프게 지랄하다 피를 봐요. 꼭.”
“······.”
“말로 하면 쳐 듣지 않다가 손꾸락이든 발꾸락이든 꾸락지들 떨어지면 눈물 콧물 똥물 좆물 다 흘려가면서 고해성사할 새끼들이 꼭 지랄을 해요 지랄을.”
“······.”
안 형사의 끈적한 협박에도 꾹 다문 마루의 입술에, 안 형사가 피식 웃었다.
“하긴 이 정도에 쫄면 홍 과장 그 새끼 사람 보는 눈이 예전만 못하다는 거지, 어떤 의미로 대단하네, 홍 과장, 일반인이 이 정도 깡이 있다는 걸 알아봤다는 거니까. 근데 그거 아냐? 조개처럼 다문 네 입에서 말이 아니라 비명이 나오게 할 방법은 쌔고 쌨다는 거?”
“······.”
“뭐- 좋아. 말로 해서 안 될 새끼라는 건 알았으니까. 됐다. 그리고 이런 거 녹음하고 그러다가 그냥 뒈지는 수가 있다. 응? 새겨들어 새끼야.”
안 형사가 들고 있던 폰으로 마루의 싸대기를 장난스럽게 때렸다.
“안 형사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이 순경이 화장실 문을 열고 외쳤다.
“보면 몰라? 피의자 신문 좀 한 거지.”
“화장실에서, 피의자 몸에 올라타서 하는 심문도 있습니까?”
“야- 이 순경. 이 순경이 그렇게 훅 들어오면 내가 뭐라고 해야겠어? 한 형사도 그러더니 이제는 이 순경도 그러는 건가? 하긴 요즘 순직하는 애들이 많이 적어지긴 했어, 다들 주둥이도 가벼워지고, 주머니도 가벼워지고, 헐렁헐렁해져서 예전처럼 빠릿하고 긴장된 분위기가 없어졌단 말이지, 순경이 형사한테 또박또박 말대꾸하고 말이야. 진짜 오늘 그냥 못 넘어가겠네.”
안 형사의 입이 길게 호선을 그렸다. 이 순경을 노려보던 안 형사가, 찰싹찰싹 마루의 싸대기를 몇 번 날리더니, 멱살을 잡아끌며 속닥였다.
“이따 보자. 응. 이따."
"그 전에라도 살아야겠다. 병신이 되더라도 인생은 아름답다 생각이 들면 연락하고”
안 형사가 마루의 가슴에 자기 명함을 내려놓았다.
그가 화장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마루의 입술이 열렸다.
“제 휴대폰은 주고 가시죠.”
안 형사가 하-하고는 휴대폰을 휙 던졌다. 녹음 파일은 어느새 삭제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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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듯 어둑하지 않은 미묘한 LED 가로등 아래, 알던 얼굴이 언뜻 보였다.
음침한 새끼라 이쪽 길로 올 줄 알았지, 김 양이 매복하고 있는 쪽으로 오는 마루였다. 걷다가 언뜻언뜻 두리번두리번하는 모습이 꼭 뭔가 불안한 사람처럼 보였다.
‘가증스러운 애미나이.’
누가 보면 진짜 불안하고 뭔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김 양은 쌍안경을 내리고 엎드렸다.
야간 저격이라니. 주간도 아니고 야간.
주간에 1km 저격이라면 야간이면 그 절반인 500m만 쏴도 대단했다. 근데 지금 거리는 대략 800m. 주간이었다면 껌이었지만 야간임을 생각하면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김 양은 특별 주문한 소음기를 장착한 СВЧ(SVCh) 드라구노프 최신형 저격총을 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이 간나 새끼도 같이 쏴버려?’
성질 같아서는 이왕 쏘는 거 싹 쓸어 버릴까 싶었지만, 역시 그렇게 일을 키우고 나면 잠수탈 돈이 부족했다. 돈 때문이야. 돈 때문이야. 지랄은 돈 때문이야~ 이런 시엠송이 들리는 것 같았다.
쳇-
저격용 스코프로 주변을 확인했다. 마루의 뒤를 5명 정도가 따라잡고 있었다.
흥-
병신 같은 새끼들 미끼를 물었네. 5명이라··· 베스트 컨디션이었다면 3초 언저리에서 컷했겠지만, 지금은 힘들었다.
스코프 속 마루의 뒤를 따르는 사람 가운데 맨 마지막, 중간에서 천천히 걷는 사람. 동그란 얼굴 많이 빠진 머리숱. 저 사람이 안 형사인가?
김 양은 안 형사를 중심으로 총구를 좌우로 움직였다. 맨 선두에는 마루, 그 뒤를 따르는 5명. 아마도 회사 사람들과 회사 끄나풀이라는 안 형사.
골목골목 매복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회사 직원들 같았다.
그리고 더 멀찍한 곳에서 몸을 숨기고 간 보는 사람들이 마약반 형사랑 경찰들이겠지
‘경찰 쏘라는 거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아주 종간나 새끼야, 간나 새끼.’
마루를 생각하니 다시 머리에 열이 확 뻗치는 김 양이었다.
진정- 진정-
좋아- 계획대로만 하자 계획대로만.
세이프티 록을 해제한 김 양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
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