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3화 (23/280)

러스트 [RUST]-23

취조실,

마루는 예상외의 상황에 조금 당황했다. 분명히 한 형사가 있는 마약 3과로 신고를 했는데 지금 앞에 앉은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대가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짱구 돌리지 말고 솔직히 말해봐. 최 실장하고 백 실장 어떻게 된 거야? 엉?”

마루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된 건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PC방 갔다 왔더니 사람이 죽어 있어서 신고한 건데.”

마루는 시체를 본 게 몸서리쳐지는 것처럼 어깨를 떨었다. 나루가 지랄하는 걸 생각하면서 떨었더니 새삼 완벽한 떨림이 생겼다.

안 형사는 그런 마루를 보고 기가 찬다는 것처럼 웃었다.

“하- 이 새끼가 물정 모르는 사람은 딱 속겠네. 속겠어. 야- 백정 니가 사람 죽은 걸 봤다고 떨 인간이냐? 됐고. 최 실장이랑 백 실장 너 데리러 갔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너냐? 그건 아닐 테고 너 혹시 양다리 걸쳤냐? 크리스털에서 손 내밀디?”

마루는 백정이라는 말에 바로 감이 왔다. 이놈이 끄나풀이다. 홍 과장의 입김이 경찰에까지 있다니 아니, 홍 과장이 아니라 조직의 끄나풀인가?

이 사람 하나일까? 더 윗선까지 있을까? 조직의 현금 동원 능력을 생각하면 현장 뛰는 형사 한둘이 끝이 아닐 것이다.

“아니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그 사람들이 왜 절 데리러 와요. 전 PC방에 있었다니까요. CCTV든 뭐든 확인해 보면 될 거 아닙니까.”

안 형사가 이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서류를 휙 넘기며 말했다.

“야-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있는데, 24살짜리가 취조실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주눅 드는 게 일반적이다. 죄가 있건 없건 말이지··· 근데 너처럼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 연기하는 새끼 치고 구린 새끼 아닌 경우가 드물었단다. 그러니까 구라치지 말고 자연빵으로 가자, 지금 나한테 아는 거 다 털어놓는 게, 오늘도 안전하게 살아가는 지름길이다. 너 이게 무슨 말인지 알지?”

히죽 웃는 안 형사였다.

취조실 문이 벌컥 열렸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한 형사가 들어왔다. 하얀 수건에 거뭇거뭇한 검댕이 묻어 있었다.

“아- 진짜 안 형사 자꾸 이럴 거야? 내 사건에 꿀이 발라졌나? 뭔 단 냄새가 풀풀 풍기나? 왜 자꾸 간을 봐 간을 보긴. 이러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한 형사 이게 사심으로 이러는 건 아니야, 살인사건이라고 살인사건! 그것도 한 번에 시체가 2구나 생겼어, 심지어 월드 쪽 최 실장이랑 백 실장이 죽었다고. 이 사람 집에서. 근데 하필 약 관련해서 제보한 제보자의 집이네? 이걸 단독으로 수사하겠다고?”

“당연한 거 아닌가? 나한테 신고했고 3과 관할 사건이고 약은 우리도 추적하고 있는 일이었는데 뭐가 문제지?”

“계속해서 이렇게 나오면 진짜 나 과장님이 좋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안 형사가 낮게 으르렁댔다. 한 형사는 얼굴을 닦던 수건으로 코를 흥 풀더니 그 수건을 안 형사의 손에 꼭 쥐여주며 말했다.

“언제는 좋게 생각하셨는지 모르겠는데,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전해드려.”

안 형사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안 형사는 나가기 전 마루를 노려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살고 싶으면 알아서 처신해.’

마루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안 형사가 밖으로 나가자, 한 형사가 자리에 앉았다.

“하- 고생했겠네. 저 사람이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 거다. 공적을 좀 탐해서 그렇지.”

한 형사가 담배를 하나 꺼내며 살짝 내밀었다.

“담배 안 피우나? 아 그렇지. 저번에도.”

“전 괜찮습니다. 편히 피세요.”

“후- 이게 이 일을 하다 보면 그렇더라고 남편이 죽었는데 신고한 아내가 범인인 경우도 있고, 아내가 죽었다고 신고한 남편이 범인인 경우도 있고, 가족인데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어서. 집에 돌아와 보니 죽은 사람이 있다고 신고하면 일단 신고자부터 조사하게 되는 게 이쪽 일이더라고.”

한 형사가 깊게 담배를 빨았다.

“내가 지금 현장에서 왔거든, 뭐 오면서 PC방에도 들려서 CCTV도 봤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네? 모자랑 안경도 그렇고. 근데 저번에는 안경 끼지 않았던데.”

“아- 이 안경이요? 게임 할 때 보안경으로 끼는 안경입니다. 야간 운전할 때도 가끔 끼고요.”

한 형사가 피식 웃었다.

“그래 뭐 휴대폰 위치기록은 내일쯤 나온다고 하고. 최 실장이랑 백 실장 전혀 모르는 사람인가?”

이건 유도신문이었다. 월드 축산에서 거의 2년을 근무했다. 백 실장은 아니지만, 최 실장과는 안면이 있었다. 월드 축산이 몽땅 불에 타 날아갔다고 하더라도, 토요일 비번인 직원들은 전부 살아있었다. 어쩌면 이미 사정 청취를 했을 수도 있었다.

“최 실장은 회사에서 몇 번 본 적 있습니다.”

“그래? 근데 그 최 실장이 왜 자네 집에서 죽었을까?

형사들은 다 이런가? 마루는 진짜 쉬운 게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멍청한 경찰, 무능한 형사들이 얼마나 많이 나왔던가? 나만 이런 사람들이랑 엮이는 걸까?

방금 나간 안 형사도 그러더니, 지금 앞에 앉은 한 형사도 이렇다. 진짜 쉬운 사람 하나 없었다.

“저도 그걸 모르겠네요. 밤에 불을 켜고 얼마나 놀랐는지.”

“놀랐겠네. 저번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 자네가 다녔던 회사. 월드 축산. 거기가 마약과 관련된 조직의 사업장이라는 심증이 있어, 증거가 다 날아갔지만, 그래서 월드 그룹하고 마약하고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심증 더 커졌어.”

눈으로 보관된 마약을 봤지만, 증거가 다 날아갔으니 속이 다시 부글부글 끓어오른 한 형사가 금세 줄담배를 물었다.

“푸- 그런데 말이야. 이상한 게 있더라고. 최 실장하고 백 실장이 문을 딴 흔적이 없어. 이상하지? 그럼 상황은 둘 가운데 하난데, 최 실장이든 백 실장이든 자네 집 열쇠를 가지고 있다거나, 아니면 열쇠를 밖에 두고 다닐 경우, 밖에 열쇠를 둔 위치를 알고 문을 열었다는 거 하나.”

“······.”

“아니면 누군가 집에 있어서, 현관문을 열어줘 들어갔다는 거 하나. 어쨌든 크게 보면 열고 들어갔다. 아니면 누가 문을 열어줘 들어갔다. 둘 가운데 하나인데.”

“최 실장 죽은 상황을 보면 그렇거든. 기습으로 한 방에 죽었어. 자네는 모르겠지만, 최 실장 이쪽에서는 알아주는 사람이거든, 전국구로 말이지. 근데 그런 사람이 기습에 당했어. 그 말은 기습한 사람이 아는 사람이었다는 거야. 아니면 기습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위험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이거나.”

담배 연기를 위로 길게 뿜은 한 형사가 마루를 봤다. 가늘게 뜬 눈. 피곤함이 가시지 않은 눈이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예리했다.

심리를 이용한 블러핑이다. 마루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한 형사 그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이미 PC방을 다녀왔다고.

그러니까 마루가 PC방에 없었고 그 자리에 대역을 세웠다는 것까지 예상하는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 질문에 평정심이 흐트러질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루는 말을 아꼈다. 그리고 오히려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형사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그렇다면 최 실장을 아는 사람이 자네 집에 들어가 최 실장이 오기를 기다려 최 실장을 죽이고 이어서 짧은 시간에 백 실장까지 죽였다는 건데. 방금 말했지만, 그 두 사람, 전국구로 알아주는 사람들이었거든. 근데 막싸움한 흔적이 거의 없어. 최 실장은 한 방, 백 실장도 몇 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고밖에 볼 수 없단 말이지.”

한 형사는 혼잣말하는 것처럼 말했다. 마루는 그런 한 형사의 말을 잘 듣는 청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뭐 어쨌든 내일 휴대폰 위치추적 결과랑, PC방에서 접속한 기록 다 나오고, 주변 CCTV 기록도 분석 끝나면 혐의를 벗을 수 있을 거니 걱정하지 말고. 현장이 아직 정리가 안 돼서, 밖에서 자야 할 텐데 오늘은 어디서 잘까? 친구 집에서 자려나?”

역시 잠시도 긴장을 놓을 사람이 아니었다. 한 형사는 지금 친한 친구가 누군지 알고 싶은 것이었다. 나중에 휴대폰 통화기록까지 다 까지면 기순이 나오겠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될 경우나 그랬다. 그럴 리는 없으니, 마루는 덤덤하게 대응했다.

“아니요. 근처 모텔에서 자려고요. 뭐 크게 문제없으면 제가 일본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한 3~4일 길어도 일주일 정도 일본 다녀와도 될까요?”

“일본? 지진으로 난리인데? 일본 도쿄에 있었다면서?”

“예. 거기서 인연이 생긴 사람을 좀 돕기도 해야 하고, 제가 급하게 나오면서 정리가 안 된 부분도 있고 해서요.”

한 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내일 조사 결과가 혐의 없는 것으로 나오면 괜찮겠지. 그래도 추가 협조를 요청할 수 있으니까 휴대폰은 가지고 다니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안 형사님 말인데요.”

“왜? 안 형사가 기분 나쁘게 했어? 살인사건이라 조사가 좀 그렇기는 해, 특히 초반에 용의자를 선정하지 못하면 길게 가는 경우가 많아서 더 그렇고.”

“아니요. 월드 쪽을 잘 아는 것 같아서요.”

한 형사가 피식 웃었다.

“그거야 안 형사도 월드 쪽에서 한 건 올리려고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럼 한 20분 쉬었다가 마무리하지. 나도 이것저것 좀 봐야 할 게 있거든.”

“알겠습니다. 20분 뒤 여기로 오면 되는 건가요?”

“그래. 혹시라도 출출해서 뭘 먹고 싶으면 말하고 배달시켜 줄 테니까. 그 정도 편의는 봐줄 수 있다고.”

안 형사라···. 그러니까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다는 건가? 그냥 내부에서 탈탈 털리고 있다는 소리네.

마루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긴 조직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현장에서 같이 땀 흘리고 피 흘리는 사람이 끄나풀이라는 생각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마루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분명히 안 형사와 조직 애들이 마루를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바로 서에서 나가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떼어내려면 한 형사를 써야 하는데, 지금까지 한 형사와 대화한 결과로 보자면, 이 사람이랑 오래 엮이면 걸릴 확률이 높아졌다.

안 형사가 끄나풀이라는 증거가 없으니 까발리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안 형사를 그냥 두자니 대놓고 조직이랑 연결된 사람이라 마루를 피곤하게 할 게 뻔하고.

한 형사로 쉴드를 치자니, 한 형사의 감이나 능력이 만만하지 않았다.

‘제일 좋은 건 둘이 붙이는 건데.’

이건 어떨까? 조직의 끄나풀인 안 형사가, 조직의 손에 죽는 모습을 한 형사가 목격하는 것. 순간 마루는 안 형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크리스털?’

안 형사가 말했던 크리스털은 분명 적대 조직이거나 경쟁조직일 것이다. 그 조직이 안 형사를 노려서 죽인 것처럼 한다면?

아니지, 그건 너무 속 보이는 짓이다.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하는 건? 그러니까 한 번 더 꼬아서, 월드 그룹이 크리스털의 습격처럼 보이게 꾸며, 안 형사를 팽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면?

한 형사는 안 형사가 월드의 끄나풀이었을지 모른다는 걸 깨달을 테고, 조직에 대해 경계심이 극도로 높아질 것이다. 월드 쪽은 크리스털이라는 곳이 자기 경찰 끈을 죽였다고 생각해 그쪽으로 신경을 쓸 것이고.

그림은 그려지는데, 그 그림을 그리려면 총을 아주 잘 쏴야 했다. 그리고 마침 마루는 총 하나는 기깔라게 쏘는 여자를 하나 알고 있었다.

마루가 밖으로 나가는 입구에 서서 대포폰을 들었다. 김 양이 약간 헐떡이는 소리를 내며 전화를 받았다.

[지금 나 바뻐. 왜?]

“한 1시간 내로 저격 준비 가능하겠냐?”

[아니 또 왜?]

“여기 살짝 손 좀 봐야 할 거 같아서.”

[짭새 조사받는다고 하더니 갑자기 저격? 저격이 살짝 손 보는 거야? 뒤처리는 누가 하는데? 미쳤어!]

“안 미쳤다. 경찰 쏘라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뒤처리는 조직이 알아서 하겠지, 1시간 안쪽으로 꼭. 조직과 관련된 일이니까 준비 단단히 해서.”

할 말 다 했으니, 바로 휴대폰을 끄는 마루였다.

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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