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7
변비가 심한 사람처럼 낯빛이 좋지 않은 김 양이, 쪼르르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의사는 김 양의 뒤통수를 보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이쪽 일을 하다 보면 느는 게 눈치였다.
‘뭔 신고식을 어떻게 했는지.’
까딱했으면 김 양은 팔 병신이 될 뻔했다. 뭐 신고식 때 병신이 되거나 죽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막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오려는 시기엔 더욱 그랬다. 그 시절 홍 과장이 중국에서 어렵게 빼 온 인재가 김 양이었다.
김 양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인지 맹한 구석이 있는 여자였다. 회사에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총에 관해서라면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움직이고 뛰면서 쏘는 실전 사격이라면 실업팀 권총, 공기총 선수들도 이길 정도였다.
회사엔 특전사 출신, 용병 출신도 있었고, 총으로 사람 죽이다 온 동남아 애들도 있었다. 처음 김 양을 봤던 8년 전, 그렇게 껄떡대는 애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고 알아서 서열정리 하라고 했을 때, 김 양을 노리던 5명이 불귀의 객이 됐다.
무장한 5명의 성인 남성 그것도 실전을 겪고, 살육과 강간에 익숙한 짐승 같은 남자 5명을 머리와 심장, 또는 간을 쏴 확실히 죽여대는 십 대 중반 여중생의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다. 그게 8년 전이었다.
그 후 부산, 지하 클럽 업장에서 있었던 러시아 마피아와의 총격전에서도 김 양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회사는 김 양을 스카웃한 홍 과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그 결과 최 실장과 백 실장이라는 걸출한 인재를 품을 수 있게 됐다.
최 실장, 백 실장 둘이 병신 만든 숫자만 세 자리 숫자를 넘었다. 김 양은? 바로 화장터로 직행시켜 버렸다. 약간 백치미 같은 문제가 있는 김 양이라지만 총을 든 순간, 말 그대로 사냥꾼이 되는 여자였다.
그런 여자의 등판에 칼을 꽂아 넣고, 총을 쥐는 오른팔을 반병신 직전까지 만들었다니···. 그게 가능한가? 애초에 총과 칼이다. 당연히 총이 이기는 게 상식이다. 근데 칼잡이가 총잡이를 이겨? 그것도 다치지도 않고?
뭔 방법으로 김 양을 반쯤 죽였는지 모르겠지만, 홍 과장이 또 한 건 한 게 분명했다.
의사는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했다.
[응급 외과 안지성 선생님 수술실로 와주세요.]
“이놈의 병원은 쉴 틈을 안 줘요. 안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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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회사 탑차의 문을 열었다. 냉장, 냉동 유통 차량이었다. 2.5t 트럭. 이 정도는 돼야 이것저것 다 싣고 갈 수 있었다. 토요일이라 짐칸이 텅 빈 차량이 몇 있었다. 그 가운데 기름 빵빵하게 찬 것을 고른 마루였다.
‘CCTV 경비실은 정리했고.’
경비실에서 눈치를 채지 않을까 했었는데, 다행히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최 실장과 홍 과장 휴대폰에서 추출한 음성 파일이 열 일을 했다. 일본은 CD 롬으로 파일을 저장했는데, 한국은 서버에 저장하고 심지어 클라우드 파일로 백업까지 하고 있었다.
경비원들이 돌려보는 야동을 서버와 클라우드에 올리고 지우고를 반복했지만, 그런 걸 복구하는 전문가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맘 놓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마루는 올리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설령 복구한다고 하더라도 CCTV에는 최 실장 코스프레 모습만 남아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은 했다 싶었다.
‘정말 많네.’
텅 빈 탑차에 금고 속 돈뭉치들도 거의 다 털어 넣었다.
돈을 채워 넣고 사무실 책상과 캐비닛을 뒤졌다. 김 양만 총을 가진 게 아니라 홍 과장도 글록을 가지고 있었다. 예비 탄창을 비롯해 케이스까지 김 양 것과 홍 과장 것을 합하면 탄창은 10개, 탄약은 300발 넘었다.
일본도? 카타나? 그런 것도 있었다. 콜드 웨폰이라는 미국 냉병기 브랜드 칼이었다. 그러니까 미국 브랜드인 중국제조 일본도라는 미묘한 칼이었다.
팅-
마루가 칼날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맑은 검명이 울렸다. 탄소강 칼날이었다. 중국제라서 신뢰성이 의심스럽지만 미국 브랜드니까 품질 검수는 어느 정도 했을 것이다. 베기에 특화된 일본도의 곡선도 나쁘지 않았다.
마루는 허공에 칼을 몇 번 휘둘렀다. 마루의 완력과 칼이 어우러져 내는 소리는 살벌했다.
휙-휙- 소리가 아닌, 마치 공기를 자르는 것 같은 소리. 픽- 픽- 소리가 났다.
평범한 캐비닛 속엔 방탄을 겸한 방검복, 특수장갑, 발등과 앞코를 강판으로 강화한 특수화 등, 다양한 장비들이 있었다. 21C에 사병이라도 양성하려는 건가 싶을 정도로 특수부대 관련 장비들이 많았다. 마루는 사양하지 않고 장비들을 챙겨 실었다.
대략 1시간 남짓한 시간에 필요한 걸 모두 챙긴 마루였다. 이제, 4 작업실로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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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열린 4 작업실 미닫이문을 열자, 죽음의 냄새가 훅 풍겼다.
비릿하고 지릿하고 끈적이는 냄새. 작업실 전체가 피바다였다.
“워-욱- 우웩- 이게 무슨-”
“이 순경 여기다 토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토해.”
한 형사가 반사적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 냄새로도 중화시킬 수 없는 피 냄새. 마치 피로 된 붉은 안개가 가득 채워진 공간 같았다.
공중전화로 걸려 온 익명의 제보를 받고 달려온 월드 축산. 월드 그룹 자금 세탁 업체로 의심하던 곳이었다.
“씨발. 골치 아프네.”
“욱- 한 형사님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한 형사의 눈이 현장을 살폈다. 주로 사용된 무기는 총기였다. 이 짓을 한 놈들은 총으로 9명을 죽였다. 전부 헤드샷. 무슨 억하심정인지, 원수가 졌는지 머리에만 2방씩 꽂아 넣었다.
“원수였나 보지. 원한 관계 같은 거.”
“아니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머리통만 쏴요. 눈이 마주칠 텐데.”
“그러게, 말이다. 몇 명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이건 좀 심하네.”
“그렇죠? 프로도 사람 눈 보면서 죽이면 제정신 아니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이 순경의 말에 형사가 다 피운 꽁초를 비벼 끄고 다시 담배를 이어붙였다.
“그것도 그렇지만, 여기 앞에 보이는 시체만 9구다. 심지어 총으로, 조직 간의 항쟁이라도 이렇게 대놓고 일을 치진 않을 텐데. 대빵 애인이라도 납치했나?”
“애인이요?”
“그래. 저기 봐 저기.”
한 형사가 턱짓한 방향에는 촬영 장비와 조명, 비닐을 씌운 매트리스가 있었다. 애인을 가지고 후지산 폭발급 영상을 찍었으면 상대가 미쳐 날뛰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애인이거나 가족 또는 일가친적이거나.
“아 조폭 새끼들. 진짜.”
이 순경이 인상을 찌푸렸다.
“빡친 상대가 애들 끌고 와서 싹 쓸어 버리고 복수의 의미로 현장을 그냥 뒀다. 뭐 이게 제일 처음 든 생각인데···.”
한 형사는 다시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오면서 봤던 CCTV들. 현관부터 사방에 깔린 CCTV 사각이 거의 없었다. 대문도 전자키 형식의 대문이었다. 대문 밖에도 CCTV가 붙어있었다.
“안쪽부터 확인하지 않으시고요? 감식반이 30분 뒤에 도착한답니다.”
“일단 경비실부터. CCTV 자료 확보하고, 이거 우리 과에서 단독으로 할 사이즈는 넘은 거 같다.”
한 형사의 말에 이 순경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기자들 통제하는 쪽을 가야겠죠?”
“그래. 총기로 지랄인데 일단 위에서 방침 뜰 때까지는 막아야지. 미친 새끼들 한국에서 총을 쏘고 지랄이야 지랄은 그냥 하던 대로 사시미에 쇠파이프나 쓸 것이지.”
“아 진짜- 비상 떨어지겠네요. 대량 살상에 총기라니. 이거 언론에 들어가면 아주 폭탄이겠는데요.”
사건이 커도 너무 컸다. 사건 터진 지방 경찰청에서도 그냥 있을 리는 없을 거고,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언론에서 냄새 맡을 게 뻔했다.
“에이 좆 같은 새끼들. 매번 뒤에서 지랄하던 새끼들이 왜 대낮에 이 지랄인지.”
“지원 요청해야겠죠?”
“어쩌냐? 해야지. 감식반 온 뒤 하면 또 그것도 지랄이다. 아주 지랄이 풍년이네.”
한 형사가 줄담배를 피워댔다. 이 순경은 눈이 매운지 살짝 옆으로 떨어졌다.
“야- 이걸로 끝이니까 그렇게 보지 마라, 제보대로 지하실이 있는지 그것부터 살펴보고.”
에이- 썅- 피바다가 된 곳을 다시 들어가려니까 한 형사 입에서 절로 욕이 나왔다.
현장은 다시 봐도 참혹했다.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한 형사는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핏자국 하나 없는 주 출입구, 진입로, 깨끗한 주차장을 향한 CCTV.
‘씨발 이거.’
적대 조직이 단체 미쳐 날뛴 거라면, 주 출입구가 멀쩡할 리 없었다. 트럭이든 뭐든 들이받았겠지, CCTV가 있으니 바로 대응할 테고 그러면 진입로부터 흔적이 남았어야 했다. 아니더라도 최소한 작업실 문짝에라도 뭔가 흔적이 남는 게 정상이었다.
안에서 걸쇠를 잠그고 농성하면? 급습당한 놈들이 경찰이든 조직이든 신고하고 연락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면? 조폭들이 경찰에 신고하고 119 부른 지는 한참 됐다. 칼빵 맞고 뒈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근데 경찰에 신고하지도 못하고 전부 뒈졌다? 조직에서 지원 오기 전 전부 당했다?
한 형사는 수첩을 꺼냈다.
1, 주 출입구 흔적 없음. CCTV 있음.
2. 진입로 깨끗. CCTV 있음.
3, 사건 현장 문도 깨끗. CCTV 있음.
‘안에서 문을 열어줬다면?’
한 형사는 밖에서 다시 안으로 들어섰다. 쭈뼛거리는 감각.
‘여럿이 아니다. 단독 범행?’
그건 오랜 세월 형사 일을 하면서 얻은 직감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총을 들고 있었지만, 이 많은 사람들을 혼자 죽였다고? 상대방도 조폭인데?’
이성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직감은 달랐다. 단독 혹은 밖에서 망보는 역할로 한 명 추가.
그러니까 한 형사의 촉은 이 개판을 혼자 만들었다는 느낌이었다.
일단 한 형사는 느낌대로 살피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범인은 안쪽에서 자연스럽게 문을 열게 했다. 문을 연 사람의 머리를 총으로 쏘고, 그 옆에 있는 사람도 바로 쐈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니까 이렇게, 한 형사가 한 손에 총을 든 것처럼 휙-휙- 움직였다.
잔상처럼 보이는 범인의 총구가 이동했다. 잔상 속 총구가 불을 뿜고 탄피가 튀었다.
한 형사는 고개를 숙였다. 9mm 탄피가 4개 떨어져 있었다.
피바다 속에서 총을 쏘는 범인의 뒷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아마 범행 당시 작업실은 시끄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범인이 쓴 소음기가 달린 권총 소리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특수한 소음기를 썼을 것이다.
그래서 작업장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돼지 머리를 분리하는 전기톱 소리를 리듬 삼아. 범인은 사람들을 죽였다.
한 형사는 범인의 동선이 보이는 것처럼 걸었다. 그의 발걸음 끝엔 또 하나의 시신이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동남아인의 머리가 터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탄피는 2개. 머리에 두 방. 범인은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움직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지금까지 피해자들은 죽기 직전까지 자기들이 죽는다는 것을 몰랐다.
‘은폐를 아무리 잘했어도. 아- 환경 때문인가?’
머리가 잘리고 내장이 제거된 돼지들이 갈고리에 걸려 있었다. 시야가 봉쇄됐겠지, 그 돼지들을 이용해 사과를 돌려 깎듯 바깥쪽에서부터 조금씩 피해자들을 정리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시끄럽고 돼지 피비린내와 내장 냄새가 나는 환경. 범인은 이걸 이용했을 것이다.
범인이 이동하는 방향은, 카메라와 조명 장비가 있는 촬영장?
돼지 머리를 자르는 일을 하고 있던 직원을 죽이자, 범인의 총소리는 더 이상 감춰지지 않았을 것이다.
널브러진 전기톱, 전기톱 근처에 죽은 시신.
‘정말 집요하게 머리만 쐈군.’
이제 총소리도 숨길 수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어떻게 했을까?
한 형사가 범인이 서 있었던 자리에서 주변을 살폈다. 배가 갈린 돼지들이 걸려 있는 풍경. 문을 활짝 열어서 그렇지 어두웠다. 작업장이 이렇게 어둡다고?
한 형사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대형 조명이 깨져있었다. 야구장에서나 볼 법한 대형 조명이 달린 작업장이었기에 조명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그 말은 몇 방 쏘지 않아도 깜깜해졌다는 의미다.
냉장 작업실 특유의 밀폐된 공간. 깨진 조명, 남은 조명은 촬영 조명뿐, 결국 범인은 조명 방향에 있는 피해자들을 볼 수 있고, 희생자들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범인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촬영하는 곳에 있던 시체들은 제법 전투력이 있는 조직원들이었는지, 격렬하게 반항한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다. 범인도 한 명을 제압하는데 3발 이상의 총알을 사용했다.
희생자의 가슴에 기묘한 총탄 자국이 보였다. 방탄복에는 탄흔이 남아 있었다.
‘할로우 탄?’
단순한 할로우 탄이 아니었다. 7조각으로 쪼개지는 탄의 중심부가 방탄복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탄의 중심이 철갑탄 형식으로 된 특수탄이었다.
'가지가지 한다.'
한 형사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범인은 방탄복을 입은 피해자들을 사냥했다. 주로 매트리스 근처에 있는 자들부터 죽였다. 그러니까 매트리스에는 범인이 구하고자 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소리였다.
그 누군가에게 접근하려는 사람부터 쐈다. 그 순간 이쪽에 있던 조직원들이 시체를 방패 삼아 범인에게 달려들었다. 피 칠한 발자국 수로 짐작해 보면 3명. 한 형사는 시체로 총알을 막으면서 달려드는 조직원들의 잔상을 보는 듯했다.
그 잔상을 따라 한 형사의 시선이 이동했다.
“오 미- 씨발-”
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