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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박사님 중 한 분이 주말 동안 로또 3등에 당첨된 기념이라며 점심 먹고 다 같이 퇴근하자는 놀라운 기적을 선보였다. 소장님과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팀장급 박사라 가능한 일이었다.
강의 끝나고 6시까지만 경험 쌓을 겸 단기로 들어온 곳에서 이런 호재라니. 심지어 오늘은 공강인 날이라 연구실에 종일 있어야 하는 날이다. 하림은 동규 볼 생각에 다른 나이 많은 박사님들을 모두 제치고 1등으로 연구소를 빠져나왔다.
갑자기 생긴 시간에 동규에게 전화를 걸까 했지만 하림은 휴대폰을 넣었다. 본격적으로 신춘문예에 낼 작품을 쓰느라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하는 동규가 아직은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하림은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핸들을 꺾었다. 여름이 오려는지 불어오는 바람이 따뜻했다.
혼자 영화나 볼까. 하도 동규랑 같이 이것저것 많이 하다 보니 혼자서 영화 보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체감으로만 따지자면 10년 만에 혼자 영화관에 온 것 같은데. 새삼 동규랑 얼마나 붙어 지내는지 느껴져 하림은 동규가 그리웠다.
예정에도 없던 영화관행에 매표소 앞에 앉아 현재 이 지점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뭔지, 무슨 영화가 재밌는지를 검색했다. 그러다 유주와 시은을 우연히 만났고 하림은 그 둘이 본다는 영화를 예매해 따라갔다.
영화는 재밌었다. 개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300만을 가뿐히 넘겼다는 영화는 적절한 교훈과 인류애와 코미디까지 두루 챙긴 오락 영화였다.
하림의 시간이 붕 뜬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둘이 놀기로 한 일정에 하림을 추가했다. 하림도 마침 심심했던 터라 유주와 시은을 잘 따라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동규가 일어날 시간이 된 후에도 하림은 계속 두 친구와 돌아다녔고, 이제 슬슬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됐음에도 어떻게 우연히 거기서 딱 만날 수 있냐며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그래서 그냥 저녁까지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동규에게 연락하자 하품을 하면서도 자긴 짜장면 두 개에 군만두 대자, 짬뽕, 잡채밥 시켜 먹을 거라고 하림에게 자랑을 늘어놨다. 늦지 않게 오라고 하며 동규가 전화를 끊었고 하루 종일 놀아 준 게 고마워 유주와 시은에게 저녁을 산 것까지도 좋았는데, 두 사람이 하림의 눈치를 보다 동규 얘기를 꺼내면서 하림은 마음이 심란해졌다.
대놓고 ‘너희 사귀지’ 하고 물어본 건 아니었지만 유주와 시은은 하림이 동규와 사귀고 있다는 걸 전부터 알고 있다고 둘러 둘러 말했다. 규연의 말이 딱 맞았다. 주안은 아직까지 모솔에 위로 누나 둘, 아래로는 늦둥이 남동생이 있어 스킨십이나 애교가 많은 편이다 보니 눈치를 아직까진 못 채고 있지만, 유주와 시은은 알아챈 지 꽤 됐다며 굉장히 조심스러워했다.
“나나 유주는 너랑 걔를 하도 자주 보니까. 우리 말고는 모를 거야. 넌 우리 학교에서 우리만큼 친한 사람 더 없잖아.”
규연과 율하의 얘기를 할 수 없어 하림은 어색하게 웃는 게 다였다. 벌써 몇 명째야. 진짜 앞으로는 D대 근처엔 얼씬도 하면 안 되겠다. 율하는 동규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었기에 아무래도 동규를 관찰하는 게 남들보다는 더 세심했을 테니 논외로 치더라도 규연과 친구들까지 알아챘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다. 누가 또 갑자기 하림에게 달려들어 다짜고짜 ‘김동규랑 사귀지!’라고 외쳐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얘기다.
“우린 편견 없어.”
“입도 무거워.”
“알지.”
“걱정하지 마.”
“응, 그래. 고마워. 김동규가 친구 하난 잘 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입이 무척 썼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5년 정도만 지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 되면 충분히 어른인 나이이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을 것만 같다.
“…….”
현관문 앞에는 동규가 먹고 내놓은 빈 그릇들이 무릎까지 쌓여 있었다. 착해 가지고 중국 음식 시켜 먹으면 꼭 설거지까지 다 해서 착착착 쌓아 놓는다. 하림은 쭈그리고 앉아 동규가 탑을 만들어 놓은 접시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손으로 툭툭 건들기도 했다.
동규에게는 세상 걱정 혼자 다 끌어안고 산다고 장난처럼 얘기하긴 했지만 사실 하림은 동규가 그렇게 온갖 걱정을 하는 게 좋았다. 동규가 하는 걱정들이 큰 게 아니라 사소한 것들이라 그랬다. 걱정과 세트로 딸려 오는 속상함이나 서러움도 빼놓을 수 없지만 동규가 하는 걱정이라 봐야 하림이 눈 감고도 뚝딱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들뿐이었다.
동규 성격상 걱정을 안 하고 살 순 없을 테니 어차피 걱정을 할 거라면 그런 작고 귀여운 것들만 걱정했으면 했다. 다른 크고 어려운 걱정들은 다 제 몫으로 두고 싶었다.
힘이 들거나 버거운 건 아닌데,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라 하림은 무릎에 잠시 얼굴을 파묻었다. 동규에게 전화가 오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걱정했잖아.”
“…….”
“보고 싶었어.”
“안아 줘. 김동규 뽀뽀.”
신발도 벗지 않고 키스는 긴 시간 이어졌다. 여름이라 그런지 동규의 품은 더 뜨거웠고 입술도, 손도 평소보다 조금 더 따뜻했다. 그래. 이거면 된 거지.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이 찾아와도 여전히 차갑기만 한 내 손과 발을 따스한 체온으로 녹여 주는 너만 있으면.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돌을 던진다면 하림은 온몸으로 동규를 막을 거였다. 그리고 동규는 그런 하림이 혼자 맞지 않게 같이 맞아 줄 사람이었다. 하림은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여름 방학과 2학기는 쏜살같이 흘러갔다. 하림이 소속된 프로젝트 팀이 ‘대한민국 과학 엑스포’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 소식에 하림은 일반인임에도 패션 잡지 화보를 찍게 됐다. 두 페이지 꽉 찬 인터뷰도 함께. 동규는 하림이 실린 잡지를 소장용으로 열 부를 샀다.
시청에서는 하림에게 단발성이지만 하림의 이름을 건 강연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강의 대상은 중고등학생을 타깃으로 진행됐으나 성인들도 하림의 강의를 보러 왔다.
동규도 바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졸업 전 등단을 하기 위해 매일매일 글을 쓰고 또 쓰고, 읽고 또 읽고. 잘 풀리지 않을 때면 하림을 위한 근사한 요리도 하면서 규연과 열심히 준비했다. 잘 썼다고 자신할 수는 없어도 후회 없이 쓴 시들을 보냈을 때, 기분만은 뿌듯했다. 하림은 그거면 된 거라고 동규를 응원했다.
12월 24일 한국에서부터 걸려 온 전화는 캐나다 밴쿠버의 새벽을 두드렸지만 포근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 두 사람을 깨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늦은 아침, 먼저 잠에서 깬 하림이 동규의 휴대폰에 뜬 메일알람을 보고 졸린 눈을 비볐다. 무슨 일보…… 신문사인가. 김동규가 신문사에서 메일 받을 일이 없는데 하며 다시 동규를 껴안고 누우려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휴대폰 잠금을 해제하고 메일함으로 들어갔다.
당사자인 동규보다 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메일 제목부터 확인했다. D일보 신춘문예 당선 안내. 하림은 동규의 휴대폰에서 캐나다 유심칩을 빼 한국 유심칩을 꼈다. 전원을 켜자마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고 하림은 그게 D일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가 아차 싶어 바로 전화를 끊었다. 지금 한국은 새벽이고 빨간 날인 크리스마스였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문자라도 남겨 놨을 것 같아 문자함을 확인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신문사에서 당선 관련으로 짧게 문자를 남겨 놓았다.
하림은 정신이 번쩍 들어 빠르게 씻고 와 동규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어젯밤은 일찍 잤는데도 아직도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 있는 동규를 간질였더니 동규가 금세 잠에서 깨어났다.
“축하해.”
다짜고짜 건네는 말이 무엇을 축하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동규는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림을 꼭 안고 눈을 감았다. 좀 더 잘 생각이었다.
“김동규 시인님.”
제일 원하던 신문사 빅 3에 동규는 이름을 올렸다. 시 부문이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문호가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직 잠에 취해 있어 하림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린 동규가 곧 눈을 크게 뜨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하림도 동규를 따라 일어나 앉아 동규에게 온 메일을 읽어 주었다.
“……로 당선 확인 전화를 드렸으나 해외에 계신 것으로 확인 되어 부득이하게 문자를 남겨 놓습니다. 투고 시 기재한 이메일로 김동규 님께서 확인해 주실 사항들을 보내 놓았으니 빠른 회신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D일보 신춘문예 담당자 사회문화부2팀장 함정연.”
“맞다. 어제 거기는 이브 날이었구나.”
“대박이야. 빨리 메일 답장 보내, 얼른!”
올해는 최종심까지 올라가 보는 게 목표였고 등단을 하게 되더라도 내년이나 내후년쯤 하지 않을까 했던 동규였다. 얼떨떨해 메일을 읽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옆에 찰싹 붙어 함께 동규의 메일을 읽던 하림은 동규가 별 반응 없이 물끄러미 글자만 읽고 있자 엉덩이를 팡팡 두들기며 욕실로 밀어 넣었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샤워를 하는 동안 전화를 걸 사람들을 떠올렸다. 엄마, 아빠, 규연이 누나, 서하늘, 친구들, 교장 선생님……. 감사한 사람이 많았다.
아침은 가볍게 집 근처 빵집에 들러 서로 먹고 싶은 빵을 잔뜩 사 와서, 어제 저녁 미리 동규가 만들어 놓은 수프와 함께 먹었다. 그러고도 동규는 조금 부족해 라면을 끓였다. 하림은 대신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며 하늘에게 전화를 걸었다.
-축하해! 한턱 쏴!
“응. 한국 가면.”
“근데 진짜 자랑스러워. 감동이야. 천재인 건 알았지만 어린 나이에 벌써 등단하고 정말 대단해. 어떻게 이러지? 교과서에 실어도 되냐고 교육부에서 전화 올지도 몰라.”
-어, 나 갑자기 와이파이 안 터져.
“스페인에서 제일 인터넷 잘 터지는 곳이라며.”
-아니야. 제일 좆같이 안 터지는 곳임.
“자랑 좀 하자, 서하느을!”
-김동규가 아니고 왜 네가 그걸 하는데. 똥규! 진짜 진짜 축하해! 와! 나도 이제 시인 친구 있다!
“너도 김동규 팬 해. 4호.”
-왜 4호야. 1, 2, 3호는 누군데.
“1호는 김동규 엄마, 2호는 나, 3호는 김동규 글 쓰는 친구.”
-팬까지는 좀…….
“저녁 맛있게 먹어. 끊는다.”
-너 이씹, 서하림 존나 김동규 자랑 안 들어준다고 지 할 말만 하고 끊.
하림은 조금의 미련 없이 깔끔하게 종료 버튼을 눌렀다. 자기는 다시 태어나도 하지 못 할 짓을 너무도 간단하게 해 버린 하림 때문에 동규는 젓가락으로 집어 올린 라면을 먹지도 못하고 잠시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조용해졌다.”
다시 말없이 밥까지 라면 국물에 말아 먹은 동규는 침대에 엎드리고 누워 메일 답장을 보냈다. 하림이 옆에서 똑같이 엎드리고 누워 동규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는데, 동규는 하림이 단어 하나만 쳐도 우와 우와 하는 게 귀엽고 부담스러웠다. 당선 소감은 부끄러우니까 이따 저녁에 혼자 있을 때 써야지.
오늘의 일정은 아침 먹고 나가서 쇼핑을 즐기고 점심 먹고 꽤 먼 시골 마을까지 다녀왔다가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보는 거였다. 낮부터 외곽 마을까지 나가는 이유는 하림이 예약해 둔 와인을 픽업하기 위해서였는데 주문할 때부터 이브날은 일찍 닫는다며 신신당부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저녁 시간 맞춰서 집에 돌아왔을 땐 한국 시간으로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동규는 아침에 생각해 둔 순서대로 전화를 걸었다. 가장 격한 반응은 세문고 교장 선생님에게 나왔다. 전화 중에 우는 듯한 소리도 들었다. 3월에 한 번 찾아뵙겠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심지어 통화한 시간도 부모님이나 친구들보다 더 길었다.
제일 짧고 굵었던 건 규연이었다. 당선 소감은 간결한 게 제일 멋지다는 조언과 함께 선배 문인으로서 이제 막 등단한 후배에게 몇 가지 날카로운 말들을 해 줬다. 마냥 좋은 얘기는 아니었지만 그게 규연다워 좋았다.
친구들은 상금 받은 거 1원이라도 저축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며 시끌벅적했다. 오랜만에 지호와 전화했더니 지호가 축하한다며 엉엉 운 탓에 동규도 눈물을 꽤나 쏟아야 했다.
삼겹살 먹고 싶다는 동규의 의견을 수렴해 저녁은 한식당에서 먹었다. 크리스마스 저녁엔 가족들과 보내야 하는 곳이라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았지만 한식당은 예외였다. 거짓말 조금 섞어 동규가 돼지 한 마리를 먹어 버려 하림은 간만에 카드 긁을 맛이 났다.
하림의 카드로 큰돈을 자주 긁는 동규지만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그때마다 속으로는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하림이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금액을 결제하자 말은 안 했지만 깜짝 놀랐다.
동규의 부른 배를 같이 두드리며 집에 돌아온 두 사람은 씻고 돌아와 거실에 모였다. 동규는 노트북을 켜고 당선 소감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하림도 노트북을 켜 엄마에게 동규 소식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동규는 잠시 고민하더니 슬슬 키보드를 두드린 데 반해 하림은 팔짱을 낀 채로 모니터만 노려보았다.
“어렵다.”
“넌 뭐 하는데.”
“엄마한테 한국 문학계를 뒤흔들 대형 신인이 태어났다고 전해 주려는데 어렵다.”
비행기를 태워도 너무 태워 주는 하림의 말에 동규가 쑥스러워 괜히 고개를 대각선으로 떨어뜨렸다.
“……그, 그렇게까지는 너네 엄마한테 말하지 마.”
“알았어. 으으. 그래도 이거로 10점은 올라가지 않을까.”
엄마에게 할 말을 간단히 정리한 하림은 제가 쓴 걸 쭉 읽어 보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규 바꿔 달라고 그래서 전화를 건네받은 동규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하림의 엄마가 뭘 물어보든 최대한 멋있어 보이는 말들을 죄다 끌어모아 열심히 대답했다. 전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지만 동규는 진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 하림의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고 나니 당선 소감 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동규가 다 쓸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벽난로 앞에 이불을 펼치고 누운 하림은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고 있으니 잠이 오는 듯했다. 저도 모르게 까무룩 잠들어 버린 하림이 꿈을 꾸는 동안 동규는 고심해서 당선 소감을 적었다. 짧고 굵게라는 규연의 조언을 따르면서도 꼭 하고 싶은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많이 졸려? 자러 갈까.”
“……나 얼마나 잤어?”
“조금 많이. 어차피 이제 잘 시간이야.”
“정말 재우고 싶은 거 맞아?”
“응.”
“다리 사이에서 손이나 빼고 말해.”
허벅지 안을 쓸던 동규의 손이 아예 하림의 것을 쥐었다. 동규는 하림에게 입을 맞추며 옷을 벗었다. 섹스하면서 하림이 당선 소감을 어떻게 썼는지 몇 번이나 물었지만 동규는 그 때마다 웃으며 하림에게 키스를 하거나 허리를 깊게 쳐올렸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엔 케이크도, 머핀도, 고기파이와 에그타르트 같은 것들도 동규와 하림이 직접 만들어 두 사람만의 홈 파티를 열었다. 서로에게 주고 싶은 선물 개봉식도 진행됐다. 하림은 은근슬쩍 당선 소감을 어떻게 썼는지 또 한 번 물었지만 동규는 괜히 말을 돌리며 자꾸 뺐다.
“얼마나 잘 썼길래 보여 주길 부끄러워해. 엄청 기대하고 있어야지.”
“기대……까지는 하지 말고. 실망 할 수도 있어.”
“옛날에 불교신문에 나왔던 거랑 비교하면 어때.”
“그거랑은 비교가 안 되지. 그건 기자가 편집한 거지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쓴 그대로 나오는 건데.”
그 말에 더 기대하겠다고 눈을 반짝이던 하림이 ‘나를 지켜 주는 힘, 길을 잃은 내게 등대가 되어주는 나의 전부인 너에게, 놀랍고도 경이로운 커다란 숲과 같은 너에게 존경과 감사를 그리고 사랑을 전하며.’로 끝이 나는 당선 소감을 읽게 되는 건 며칠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동규가 엄마에게 아들 키워 봤자 소용없다고 한 소리 듣는 건 그보다 조금 더 뒤의 일이고.
하림은 이번 겨울 방학에 해외로 단기 인턴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미리 학기 중에 이것저것 많이 했다. 걱정이 많은 동규조차 그 정도면 방학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아도 괜찮아 보이는 정도였다. 덕분에 동규와 하림은 12월에는 캐나다, 2월 초까지는 미국에, 일주일은 몰디브에서 서핑하며 지내다 규연의 졸업에 맞춰 한국에 들어왔다.
꼭 규연의 졸업식만 생각하고 들어온 건 아니고 2월 말에 라디오와 유명 개인 방송 스케줄이 있어 그 때 들어와야 했다.
하림이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동규는 하림이 출연하는 30분 동안 온갖 주접을 다 떠는 문자를 1초에 세 개씩 보냈다. 보이는 라디오 온에어도 켜 놓고 댓글도 열심히 달았다. DJ가 읽은 문자와 댓글 중에 동규의 것이 있을 정도였다. 하림도 지지 않고 동규와 미리 약속했던 신호를 쏘거나 둘만 아는 단어를 말하면서 공영 방송 라디오에 두 사람의 은밀한 연애 행각을 박제시켰다.
“연예인 안 하길 잘 했다. 했으면 팬들한테 욕 좀 먹었을 거야.”
“설마.”
누가 너에게 욕을 하면 키보드 워리어가 되겠다는 동규의 비장한 말에 하림이 기특하다며 동규의 탄탄한 엉덩이를 두드렸다.
“……진짠데.”
익명의 누군가가 남겨 놓은 거 읽고 울지나 않음 다행이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하림은 굳이 말로 꺼내지 않았다.
졸업식 3일 뒤였던 동규의 등단과 규연의 졸업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규연은 축하라고 쓰고 지옥 같은 대학원 생활의 시작이라며 쓰게 웃었다. 부모님은 이왕 하는 거 교수까지 하라고 응원해 주셨지만, 당사자인 규연은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들어 하림과 동규가 한 아름 사 온 선물들이 아니었다면 술 맛도 쓸 뻔했다고 약한 소리를 했다.
규연은 하림과 짠 하고 첫 잔부터 원 샷으로 술잔을 비웠다. 삶이 힘들면 술이 달다는 노인네 같은 소리와 함께 크으 하는 얼큰한 소리까지 냈다.
“하림이 너도 진짜 대단하다.”
“뭐가요.”
“어떻게 학교 다니면서 동규가 술 한 방울을 못 먹게 했어? 나 그 때 칵테일 마시는 김동규 보고 놀라서 기절하는 줄 알았잖아.”
하림은 작게 웃다가 난감함에 눈동자만 굴리고 있는 동규를 바라보고 입을 뗐다.
“술도 못 마시는 게 마시기만 하면 엉엉 우는데 어떻게 저 없는 곳에서 마시라고 해요.”
“너도 진짜 과보호야. 으, 커퀴들. 죽어라.”
“그렇게 또 다른 커퀴인 김규연 누나는 숨을 거두고 마는데.”
“우린 노잼 연애야. 너네처럼 간지럽고 풋풋한 건 둘 다 성격상 못 해. 짠이나 하자.”
하림도 규연도 동규에게 무리하게 마시지 말 것을 권했지만 다른 날도 아니고 규연의 졸업을 축하하는 자리라 동규는 빼지 않았다.
“오늘 나는 먹고 죽을 거야.”
비장하게 말한 동규가 하림과 규연의 술잔에 제 술잔을 부딪쳤다. 셋 다 소주잔을 들고 있었는데 하림과 규연은 소주였고 동규는 맥주가 담겨 있었다.
“나야 좋지. 동규랑 술 마시면! 사실 하림이 눈치 보느라 마시지 말라고 한 거야.”
“누나니까 먹는 거예요.”
“올. 기대한다. 오늘?”
“코가 삐뚤어질 정도로 마시려구요.”
“예뻐 예뻐! 내가 어떻게 이런 예쁜 후배를 만났지? 비록 날 기억도 하지 못했다는 치명적인 감점 요소가 있지만.”
“언제적 얘기를…….”
“마시고 죽자!”
“네.”
얼마 마시지도 않은 규연의 코는 삐뚤어지긴커녕 움직일 기미도 보이지 않았지만 동규의 코는 약간의 음주로 아주 많이 삐뚤어지고 말았다.
“……누나.”
코가 삐뚤어진 동규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로 규연을 아홉 번째 불렀다.
“불렀으면 계속 말을 해. 누나 누나만 하지 말고.”
“네……. 제가 누나를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자주…… 놀러 오세요.”
“그래.”
“누나 덕분에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욕도 안 먹고…….”
“고럼 고럼. 힘 많이 들었지.”
“제가…… 누나 없는 곳에서 누나 이름…… 진짜, 엄청 많이……핑계로…… 선배들한테…….”
말도 다 하지 못하고 동규가 하림의 품에 안겼다. 규연에게 고마운 일이 많지만 그걸 하나씩 얘기하려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 탓이었다. 하림이 동규를 달래며 집에 갈까 하고 물었지만 동규가 고개를 젓고 스스로 진정을 한 다음 하림의 품에서 떨어졌다.
“누나 졸업한다니까 너무…… 이상하고…… 있을 때 잘 하라는 어른들 말이…….”
하지만 또 금세 울음이 북받쳐 올라 하림의 품으로 피신했다.
“야, 누가 보면 나 무슨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는 줄 알겠어. 우리 엄마도 이렇게는 안 울었다, 야.”
“착해서 그래요. 세심하고 여리고.”
“진짜 여려 하여간. 이 험한 세상 어떻게 헤쳐 나가려고 그러냐.”
“저 있잖아요.”
“그래 우리 동규 잘 부탁한다, 서하림. 나중에 과학부 장관도 되고 노벨상도 받을 거니까 동규 상대로는 아주 믿음직스러워.”
“……또 있어요.”
하림에게 안긴 채로 고개만 돌린 동규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사실, 술 못 먹는다고 거짓말 한 거…… 진짜 너무 죄송했…… 죄책감이 있었는데…….”
“그랬어? 그랬구나. 우리 동규가 그게 죄송했구나.”
“네…….”
“용서해 줄게.”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울어서…… 용서해 주시는 거 아니죠.”
“그럼, 당연하지. 난 눈물에 약하고 그런 사람 아니다.”
“알아요…….”
하림의 품에 안겨 있는 채로 말해서 그런가, 동규는 조금 진정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넓은 하림의 품과 토닥이는 손길을 느끼며 규연에게 고마웠던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끝까지 말할 수 있었다. 동규의 고해성사를 다 들은 규연은 화장실 가고 싶은 거 참고 듣고 있었다며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잘했어. 기특하다. 상으로 키스해 주고 싶은데 밖이라 그럴 수가 없어.”
아직도 제 품에 안겨 있는 동규에게 하림은 작게 속삭이며 귀에 쪽 소리 나도록 입을 맞췄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규연은 동규의 상태를 보고 이제 그만 일어나자며 물을 마셨다.
“써하림아, 어차피 저녁도 맛있는 거 배부르게 먹었으니까 정리하자. 이렇게 심각한 알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달래 가면서 저랑 누나만 마시면 돼요.”
“차라리 자는 게 낫지. 우는 건 보는 나도 별로야.”
“안 울게요.”
“너 눈 부었다.”
“……안 부었는데요.”
“부었는데요. 괜찮아. 다음에 또 이렇게 근사한 식사 하면 되지. 그 때는 너는 술 한 입도 먹지 말고.”
잠시 뒤 규연의 남자친구가 규연을 데리러 왔고 하림은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술에 취한 동규는 하림의 뒤에 딱 붙어 안은 채로 규연이 누나 가지 말라고 붙잡았지만 그건 중얼거리는 수준이었고 하림이 축 처진 동규의 손을 잡고 흔들어 동규도 자기도 모르는 배웅을 마쳤다.
규연을 보내고 난 뒤엔 기사를 불렀다. 압구정에서 저녁을 먹은 거라 집까지는 금방이었다. 그 짧은 거리에도 동규는 규연이 가 버려 서럽다고 어리광을 부렸다. 하림은 광대를 꾹꾹 눌러 가며 동규의 말에 열심히 반응을 해 주었다. 귀엽다고 웃었다가는 동규가 왜 웃냐고 서럽게 울 것 같아서였다.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욕실로 들어갔다. 하림이 씻겨 주겠다고 했지만 동규가 혼자 씻을 수 있다며 고집을 부렸다. 하림이 씻고 나와 침대에 누워 동규를 기다리는데 한참이 지나도 동규가 나오지 않아 동규가 들어간 욕실 문을 두드렸다. 세 번 두드리고도 답이 없어 또 세 번을 두드렸지만 답이 없다.
“들어간다.”
문을 열자 더운 수증기가 훅 끼쳐 왔다. 동규는 샤워 부스에서 물을 맞으며 서 있었고 얼굴은 가린 채였다. 어깨가 작게 들썩거리고 있었다.
“또 울어?”
“응…….”
“왜.”
“몰라.”
샤워기 물을 끄고 하림은 동규의 손을 잡아 샤워 부스에서 끌어냈다. 타월과 샤워 가운을 건네자 동규가 훌쩍이면서도 제 몸을 닦고 샤워 가운도 잘 입고 리본까지 예쁘게 묶었다.
“누나 졸업하는 게 많이 속상해?”
“그런가 봐.”
“그래도 계속 볼 수는 있어서 다행이다.”
“다른 학교로 갔으면…….”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와 동규는 하림에게 안겼다. 하림이 연신 등을 두드려 준 덕에 곧 울음이 잦아든 동규는 하림과 손을 잡고 욕실을 나왔다. 방으로 돌아온 하림은 침대로 뛰어 들어 대자로 누웠고 동규는 잠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샤워 가운을 풀었다. 술기운에 몸이 휘청거렸다.
잠옷 상의를 든 동규는 잠시 뭔가 생각하기 위해 그대로 정지했다. 하림은 갑자기 얼음이 된 동규 때문에 일어나 앉았다.
“왜 그래. 또 슬퍼졌어?”
“…….”
잠옷을 다시 내려놓은 동규가 나체로 걸어와 멀뚱멀뚱 저를 바라보고 있는 하림에게 키스했다. 하림은 자길 뒤로 눕히는 동규가 무슨 생각인지 바로 알아채고 잠옷 단추를 풀었다.
“위로해 줘. 너무 슬퍼.”
“몸으로?”
동규의 유두를 꾹 누르며 하림은 물었다. 동규가 그런 하림의 손을 끌어와 손끝에 입을 맞췄다. 무릎으로 하림의 중심을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림이 나지막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동규는 아래로 내려가 하림의 바지와 속옷을 벗겼다. 무릎으로 막 자극을 받아서 그런지 하림의 것이 조금 발기한 상태였다.
고환을 먼저 입 안에 넣고 굴린 동규는 뿌리부터 혀로 핥아 올라왔다. 귀두를 간지럽게 핥아 댔을 땐 동규의 것도 하림의 것도 온전히 발기해 단단했다. 동규는 하림의 것을 빠는 동안 제 다리 사이에서 터질 것처럼 구는 성기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손 아래로 성기의 힘줄이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바로 넣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참아야 했다. 하림이 기분 좋은 듯한 목소리를 작게 뱉었다. 그 소리는 안 그래도 술에 취한 동규를 자꾸만 충동질하고 유혹했으나 좋아, 하며 아래를 빨리는 하림이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두었다.
잠시 뒤 축축하고 뜨거운 입 속에서 움찔거리는 성기가 차오른 정액을 남김없이 터트렸다. 좀 더 참고 동규의 입 안을 헤집을까도 싶었지만 오늘 밤은 길었고 시간도 충분했다. 술에 취해 고분고분해진 동규는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두 번 하고 끝낼 것도 아니고 괜히 참으며 힘 뺄 필요도 없었다.
안 그래도 사정해서 온몸이 예민한데 동규가 허벅지 안쪽 여린 살을 빨아올리며 키스마크를 남겼다. 허벅지는 물론이고 아랫배, 옆구리, 가슴을 타고 올라온 동규가 목까지 쪽쪽거리느라 하림은 사정의 여운을 찌릿찌릿한 기분으로 느꼈다. 동규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몸이 달아 어쩔 줄을 모르겠다.
동규는 사정을 참기 위해 약간의 인상을 쓰고 있었다. 쿠퍼액으로 귀두가 반질거리고 있는데도 동규가 무슨 이유인지 삽입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사정을 하는 것도 아니라 하림이 손을 아래로 내려 동규의 것을 잡았다.
“위로해 달라며. 왜 이렇게 소극적이야.”
“그냥…….”
“그냥?”
하림의 가슴팍으로 동규의 눈물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이건 무슨 눈물이야?”
“저번에…… 네가 억지로 내 거…….”
하림은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필름이 끊겨 본 적이 없었다. 덕분에 술 많이 마시고 동규의 것을 펠라티오 해 주고 난 다음 날 입맛이 없어 아침을 걸렀다. 동규가 끓여 준 해장국만 조금 먹고 말았는데 그걸 동규가 계속 생각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갑자기 그게 생각났어?”
“으응. 미안해. 하기 싫어하는 건데…….”
“내가 좋아서 한 거야. 좀, 술 많이 먹고 기분이 지나치게 좋아서 저지른 거지.”
“다음 날 후회했잖아.”
이런. 그날 억지로라도 아침을 다 먹었어야 했나 보다.
“후회 안 했어. 좋았어, 난.”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밥만 안 먹었지 밥 먹고 양치하고서 뽀뽀도 하고 씻다가 욕실에서 또 했던 거 기억 안 나?”
“나.”
“그 때 내가 네 여기에 뽀뽀해 줬던 거는.”
“그것도 나.”
“진짜 좋았고 싫었던 거 아니라니까.”
“……진짜?”
“진짜.”
“아래에 뽀뽀 또 해 줄까?”
“응.”
하림의 위에 누워 있던 동규가 벌떡 일어나 섰다. 씻을 때부터 머리가 울렸는데 몸을 급작스럽게 일으킨 탓에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해 줘. 뽀뽀.”
어지러운 건 어지러운 거고 뽀뽀는 뽀뽀인 거라 동규는 하림 쪽으로 발기한 제 성기를 들이밀었다. 하림이 옆으로 돌아누워서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동규가 어린애처럼 고추만 내민 게 귀여웠다. 크기는 전혀 어린이의 것이 아니었지만.
“…….”
“알았어, 알았어! 그만 웃을게! 울지 마!”
동규의 성기도 울고 있는 주인을 따라 힘을 잃고 조금 아래로 기울었다. 하림이 동규의 것을 잡고 티슈로 귀두를 닦은 뒤 입술로 꾹 눌렀다. 일부러 쪽 소리가 나게 뽀뽀도 해 줬다. 동규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도 제 성기 이곳저곳에 닿는 하림의 입술에 바짝 서는 제 것을 느꼈다.
“싫은 건…… 억지로 하면 안 돼.”
“응.”
“진짜로…… 약속해.”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한 하림은 동규보고 올라오라며 다시 자리를 잡고 누웠다. 동규는 떨어진 하림의 입술이 아쉬워 하림의 입술을 엄지로 쓸어 보았다. 그러자 하림의 입술이 호를 그리며 웃었다.
동규가 하림의 위에 누워 아쉬움을 달래려 하림의 입술을 매만지면서 빤히 바라보고만 있는데, 하림은 그런 동규에게 입을 맞추고 이제 넣어 달라고 속삭였다. 제 입술을 만지던 동규의 손가락을 입 속으로 넣어 빨았다. 동규는 귀까지 순식간에 빨개지더니 하림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하림이 이빨로 동규의 손가락을 살짝 깨물고 혀로 감쌌지만 동규는 부끄러워만 할 뿐 움직이질 않았다.
그래서 하림은 기다란 손가락을 하나 더 입에 물고 끝까지 밀어 넣었다. 두툼한 손가락 탓에 침이 조금씩 새어 흘렀다. 흡입력을 좀 더 높이자 동규가 고개를 들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따로 노는 두 개의 손가락이 점점 난폭해졌다. 하림의 침으로 축축해진 손가락을 뺐다. 동규는 하림의 뒤에 젖은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걸 까먹은 자신을 탓하며 젤을 가득 짰다.
“천천히 해. 읏, 시간 많아.”
“어지러워.”
“많이 마시긴 했지. 코가 삐뚤어지게.”
미끄덩한 손가락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하림은 동규를 끌어와 코를 작게 깨물었다. 동규가 깨물지 말고 뽀뽀해 달라고 작게 얘기하기에 하림은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손가락의 감촉을 애써 모른 체하고 동규의 얼굴에 연신 입을 맞췄다.
하림의 천천히 해 달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따른 동규는 하림의 뒤를 풀어 주다가 사정했다. 시트 위로 정액을 길게 사정하면서도 하림의 안을 휘젓는 손가락을 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오래,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하림과 키스를 하거나 그의 목이나 가슴, 아랫배를 쪽쪽거리며 하림의 주문을 착실히 지켰다.
그러다 보니 안달이 난 건 하림이었다. 섹스할 때 하림이 여유로운 척을 하면 동규가 그만큼 미친 듯이 밀어붙이지만 술 마시면 그러지 않는 걸 까먹고 있었다. 술에 취한 동규는 하림이 짖으라면 짖고 아무리 격하게 허릴 움직이는 중에도 빼라고 하면 입술을 깨물고 허리를 뒤로 물렸다.
“김, 동규. 언제까지 손가락만 깔짝거리고 있으려고.”
“하지만…… 천천히 해 달라고…….”
“이제 괜찮아. 어차피 뒤에 풀어 놔도 무용지물이라.”
“응. 알겠어.”
젤 뚜껑을 열어 성기에 쭉 짜려는데 흔들리는 시선에 조준이 잘못되어 성기가 아닌 침대로 다 흘려 버렸다. 다시 도전한다고 통을 흔들어 짜 보았지만 마찬가지로 성기엔 제대로 닿지도 못했다. 동규가 시무룩해진 얼굴로 하림에게 통을 내밀었다.
“서하림, 이거 안 돼.”
“해 줄게.”
“……웃지 마.”
하림은 동규가 애꿎은 침대에 짜 버려 얼마 남지 않은 걸 모두 손바닥에 부어 동규의 것을 잡았다. 동규의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며 뚜렷한 복근이 갈라졌다.
“으읏…… 손가락 차가워.”
“좋아하잖아.”
“맞아…… 제일 좋아. 으응, 음, 이제, 이제 넣을래.”
하림의 뒤를 열고 들어온 동규는 조이는 아픔에 인상을 쓰면서도 그대로 밀고 끝까지 넣었다. 하림이 숨을 삼키며 끙끙거리는 동안 동규는 눈물을 또르르 흘리며 아프다고 울먹거렸다. 하림은 뒤가 찢어질 것처럼 벌어져 아픈 와중에도 동규가 코를 훌쩍거리는 게 웃겨 얼굴을 찌푸린 채로 웃었다.
“천천, 아…… 천천히 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하림아, 너무 조이는데, 윽, 아파…… 힘 좀 빼.”
위로는 울며 아프다고 하면서도 동규는 착실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하림이 천천히가 아니라 동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제 아래 깔려 있는 하림도 아픈 소리를 내니 움직이는 속도가 빠르진 않았지만 아프다고 계속 말하는 것치고는 아예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넣어 어깨를 움켜잡은 뒤 하림이 도망가지도 못하게 만들고 쿵쿵 허리를 찧어 대기 바빴다.
“아프, 아픈, 으읏, 하아…… 하림아, 서하림, 앗, 흐으…….”
분명 허리 짓을 하다가 안에 사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동규는 멈출 생각이 없는지 계속 계속 움직였다. 아래에서 죽어나는 건 하림이었다. 동규가 하림이 벗어날 수 없도록 어깨를 안고 있는 탓에 어떻게 자세를 바꿔 보고자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동규를 떨어트리는 것도 어려웠다.
“자, 잠깐만, 김동, 잠깐만 멈춰 봐!”
“으응.”
하림의 말 한마디에 동규는 미친 듯이 쑤셔 대던 제 성기를 한 번에 뽑아 버렸다. 안을 빠듯하게 채우던 것이 훅 나가 버려 하림은 뒤가 다 얼얼했다. 동규의 것은 정액이 엉겨붙어 있었다. 동규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입으로 숨을 쉬느라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하림은 근육으로 촘촘하게 짜인 듯한 동규의 몸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몸이 좋은 건 수없이 봤기 때문에 잘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흥분으로 잔뜩 서 있는 걸 볼 때면 두툼한 동규의 몸은 위압감을 넘어서 아름답기까지 했다. 꾸미는 것에 관심 없는 동규였지만 체지방률 한 자릿수를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 운동에 꽤 많은 공을 들였다. 심지어 키도 컸다. 그러니 아무리 옷으로 꽁꽁 숨겨 놔도 태가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동규네 학교 미술학부 학생들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동규에게 연락을 하는 마음이 이해 갔다. 물론, 동규의 벗은 몸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하림의 말을 따라 동규는 매번 그 연락들을 다 거절하고 있지만. 하림이라고 그들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만일 자신이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다면 동규가 참 탐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더 동규가 그런 걸 하지 못 하도록 하고 있는 거지만. 동규의 저 아름다운 몸을 그리고 싶어 화방에 열심히 다닌 거였다. 아직 실력은 한참 부족해도 언젠가는 동규를 꼭 그리고 말겠노라고, 하림은 침을 삼키며 또 다짐했다.
사정을 했음에도 동규의 성기가 반쯤 발기해 있었다. 동규는 숨을 고르면서 가슴을 적신 하림의 정액을 오일 삼아 제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하림은 혀로 입술을 축이며 발을 뻗었다. 그리고 동규의 성기와 배를 문질렀다. 발가락과 발바닥으로 동규의 뜨거운 성기와 또렷하게 갈라진 복근이 느껴졌다. 정액 덕분에 미끈거리기도 했다.
“너무, 야한 것 같아.”
“누구. 너?”
“아니, 너. 하림아 발…… 하지 마. 그대로 쌀지도 몰라.”
“싸라고 하는 거야.”
“으응, 아, 하지만…… 안에…… 또 하고 싶은데.”
“해.”
규연이 잘한다 잘한다 하며 칭찬해 준 덕분에 동규는 평소 먹는 양보다 훨씬 많은 맥주를 마셨다. 아마 지금 자기가 뭔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를 거였다. 그래도 하림은 동규가 하고 싶은 대로 두었다. 곧바로 들어온 동규가 몇 번 움직이다 사정을 했지만 그래도 계속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려니 웃음도 나왔다.
“뒤로…… 돌아 봐.”
“조금만. 숨 좀.”
동규는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림의 가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젖꼭지를 물었다. 여전히 하림의 안에 동규의 성기가 삽입되어 있어 하림은 동규가 이를 세워 빨아 주는 동안 뒤를 자꾸만 조였다. 동규가 한 번씩 하림의 것을 입에서 빼고 신음만 연신 뱉어 냈다. 이젠 처음보다 조여 대진 않았지만 여전히 아픈 게 싫은 동규가 하림의 젖꼭지를 빨면서 눈물을 흘려 댔다. 가슴팍에 동규의 눈물이 떨어지면서 간지러웠다.
“좋아서, 우는 거야 아니면, 앗, 으…….”
젖꼭지를 입에 문 채 동규가 왜 이렇게 좁은 거냐고 한탄을 했지만 죄다 웅얼거리는 소리라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림은 동규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밀어 넣어 가볍게 당겼다. 동규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더 흡입력 있게 하림의 젖꼭지를 빨았다. 이대로 가다간 동규가 물고 있는 게 떨어질 것 같은 예감에 하림이 다리를 올려 동규의 허벅지를 밀었다.
그러자 동규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하림의 골반을 잡고 하림을 돌려 버렸다. 안이 다 뒤틀리는 느낌에 하림이 눈을 크게 뜨고 기침을 했다. 그 탓에 내벽도 잔뜩 동규의 것을 조여 동규는 욕을 내뱉었다.
동규가 움직이지 않고 하림이 힘을 풀 때까지 기다렸다.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하림의 등은 파르르 떨리고 있어 안쓰러웠지만 동규는 등을 더듬다가 제 것을 빼내고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젖어 있는 하림의 구멍은 동규가 하도 괴롭혀 색이 붉었고, 억지로 벌린 탓에 원래대로 돌아가고자 움찔거렸다. 동규는 입술부터 들이대 주름 위로 가져갔다.
동규의 것에 박힌 채로 자세가 뒤바뀌면서 눈앞에 별이 튀는 듯한 충격이 있었는데 그걸 수습하지도 못한 채 동규가 뒤를 빨아 와 하림은 앞으로 기어 갔다.
“동규야, 진, 아아…….”
진정 좀 하라는 짧은 한마디는 제대로 꺼내 보지도 못했다. 동규가 하림의 허벅지를 안아 잡고 끌어내려 아예 뒷구멍을 강하게 흡입했다. 팔로 지탱하던 상체가 무너지며 하림은 신음만 흘려댈 뿐이었다.
뒤에서 추접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하림은 그 소리에 성기가 힘을 받는 게 느껴져 귀만 붉혔다. 시트를 쥐어 봐도 동규가 뒤를 핥는 것 때문에 발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동규가 뒤를 핥고 빠는 게 처음도 아니고 이러다가 발기를 한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이건 매번 이렇게 부끄럽다. 상상도 하지 못할 곳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빨아 대서 그런 건지 아니면 동규의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곳이라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펠라티오와는 다르게 하림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이루어져서인지 이유를 정확하게 규정하긴 어려웠지만, 하림은 수치감과 부끄러움이 맥스로 솟았다. 더 수치스러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자극을 느끼는 자기 자신이었고.
세게 흡입하던 힘을 빼 입술로 하림의 뒷구멍을 비비던 동규는 곧 이와 혀를 세워 통통한 회음부를 가볍게 물었다. 코에 닿은 하림의 아래가 잔뜩 조이며 움찔거렸다. 많이 부어 주름이 옅어진 곳이 동규가 회음부를 물고 빨 때마다 조금씩 열고 닫혔다.
다시 그 귀여운 곳에 혀를 댄 동규가 혀로 입구를 지분거리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안쪽은 뜨거웠다. 그리고 비릿한 정액의 맛이 느껴졌다. 조금 전에 빨 때 안에 있던 것까지 먹은 줄 알았지만 조금 남아 있었던 건지 혀를 넣고 뺄 때마다 정액은 여전했다.
혀만으로는 부족하다. 혀 아래로 손가락 하나를 넣어 봤지만 역시 좆으로 쑤시는 것에 비하면 별로였다.
동규는 뿌리까지 넣었던 혀를 빼고 척추를 따라 쭉 올라왔다. 흰 살결에 붉은 흔적을 남기면서. 어깨와 목덜미는 조금 욕심을 부려 깨물었다가 이빨 자국을 보니 갑자기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림을 품에 안고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괜찮다는 하림의 말에도 이빨 자국은 사라지지 않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자국을 지워 달라고 부탁해도 하림은 마법사가 아니라 그럴 수 없단 걸 알지만 동규는 그 말이 입술 바로 앞까지 올라와 맴돌았다.
이럴 땐 강렬한 쾌감으로 도망치는 게 제일 쉬운 방법이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하림도 저를 물고 빨아 똑같이 붉은 흔적과 이빨 자국을 남길 것이라 동규는 쾌락의 늪으로 정신을 내던졌다. 미안함이 쾌락에 잊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림의 엉덩이를 잡고 잔뜩 벌려 삽입했다. 멈추지 않고 끝까지 밀고 들어가니 시트를 쥔 하림의 주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손 잡아 줘.”
동규가 그 하얀 손에 제 손을 올렸다가 깍지를 끼고 싶은 마음에 하림의 귓가에 속삭였다. 뜨거운 숨이 섞인 그 한마디가 하림에게 얼마나 자극적인지도 모르고, 동규는 하림이 손을 풀지 않고 더 세게 주먹을 쥐는 게 서러워 허리를 더 깊게 놀렸다. 거의 귀두가 빠질 것처럼 끝까지 빼냈다가 한 번에 밀고 들어왔다. 하림의 가장 깊은 안쪽 확 좁아지는 곳까지 벌릴 기세로 매번 힘을 줬다.
“손, 읏, 하아…… 손, 깍지, 하림아, 흐으…….”
“귀에 뽀, 뽀뽀는 왜 자꾸 해…… 아!”
하림이 어서 손을 풀고 제 손을 잡아 줬으면 하는 마음에 칭얼거리면서 애교를 부린 거였는데 하림에게는 지나치게 좋은 의미로 역효과였다. 손 말고도 발까지 힘을 주어 구부린 하림은 할 수만 있다면 온몸을 동그랗게 말고만 싶었다. 얘는 왜 목소리도 섹시한 거야.
하림이 말도 하지 못할 이유로 끙끙거리고 있자 동규는 토라진 마음에 하림의 위에 엎어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면서 잠시 허리 짓을 멈추자, 하림은 모자란 산소를 채우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움직임이 멈춰서 그런지 시트를 세게 쥐고 있느라 하얗게 질려 있던 하림의 손이 조금 풀어져 있었다. 동규는 다시 하림의 위로 엎어져 움직이지 않고 하림의 풀어진 손에 깍지를 꼈다. 두 손이 다 하림과 빈틈없이 맞물리게 되자 뿌듯한 마음이 일렁거렸다.
“키스도 하고 싶어.”
“키스까지 하면 나는 김동규한테 위아래로 온갖 게 다 막히고 잡혀서 불편하겠어.”
“하지만…… 나는 너랑 다…… 연결되고 싶은데.”
“욕심도 많아요.”
“맞아.”
“나도 그래.”
“허리 들어 봐.”
동규가 좀 더 삽입하기 쉽게 허리를 든 하림은 동규가 입을 맞춰 오는 걸 피하지 않았다. 동규도 불편할 하림을 위해 키스가 끝나면 움직일 생각이었다. 입맞춤은 꽤 오래 이어졌다. 그 동안 동규의 것이 하림의 안에서 힘을 받아 커져 갔다.
동규의 것이 빠듯하게 내벽을 넓히는 감각에 하림이 먼저 입술을 뗐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동규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가운 손이 뜨거운 손을 만나 조금씩 조금씩 열이 오르고 있었다. 동규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면서 사정감이 차오를 때마다 참지 않고 하림의 안에 내보냈다. 하림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정말로 앞은 만져 주지 않아도 동규가 뒤를 쑤셔 주는 것만으로도 사정할 수 있었다.
하림의 안에 몇 번째인지 모를 사정을 한 동규가 허리를 뒤로 물리고 하림을 바로 눕혔다. 색색거리며 숨을 고르는 하림에게 입을 맞추고 내려와 하림의 것을 입에 물었다. 하림이 더 나올 것도 없다고 능글맞게 웃었지만 동규는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이유는 없이 하림의 성기를 입안에 담아 빨고 싶으니까. 목젖까지 하림의 것이 들어가 숨이 막히게 해 줬으면 좋겠다. 하림이 아래를 빨리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는 것도 좋고 요도구가 움찔거리는 걸 혀로 느끼는 것까지 다 좋았다.
하림은 동규의 입 안에서 사정했다. 벌써 몇 시간을 이러고 있는 중이라 정액 양은 많지 않았고 조금 묽게 나왔다. 하림의 것을 혀로 굴리는 동안 동규의 것도 다시 발기를 마친 상태였다. 하림의 다리 한쪽을 어깨에 걸친 동규가 하림의 입구를 잡아 벌렸다.
“많이 부은 것 같아. 좀 벌려 봐.”
“아파서 잘 못 하겠어. 뒤로 지금 감각이 없어.”
“미안해…….”
“하지 말란 얘기는 아니니까 넣어도, 읏, 아! 도, 동규야, 흐으…….”
하림이 하지 못한다면 제가 하면 되었다. 동규는 있는 힘껏 하림의 뒤를 벌려 제 것을 넣었다. 아, 언제든 몇 번을 넣든지 간에 매번 이렇게 좋을 건 뭐지. 하나로 연결된 연리지처럼 평생 하림과 이렇게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도 몸을 섞느라 이불은 거의 바닥에 흘러내려 있었다. 하림은 얼마 남지 않은 이불을 끌어왔다. 뭐라도 쥐고 있어야 편했다. 오늘도 아마 다 끝나고 씻으러 갈 때면 안에서부터 줄줄 흐르는 느낌에 소름이 돋을 게 분명했다. 동규랑 하고 나면 잠시 동안은 얼얼한 감각만 남고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건 이제 자주 있는 일이라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쳐도 정액 새는 느낌에는 당최 적응하기 힘들었다. 다 끝나고 씻을 때마다 서로 콘돔 끼고 하자고 약속을 한 게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섹스에서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끝까지 밀고 들어올 때마다 살이 닿아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구멍 주변은 녹은 젤과 동규가 싼 정액으로 엉망이었다. 동규는 하림의 입에 입을 맞췄다가, 예쁜 이마에 뽀뽀를 했다가 여기도 예쁘고 저기도 예쁘다고 중얼거리면서 하림의 얼굴 가득 침을 죄다 묻혀 놨다. 아래는 있는 대로 쑤시면서 얼굴에는 좋다고 침을 묻히고 있는 동규 때문에 하림은 이불만 쥐어뜯을 뿐이었다.
동규가 대신 울어 줘서 그런지, 오늘은 하림이 별로 울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동규랑 할 때면 아파서든 너무 좋아서든 하림이 쏟는 눈물의 양이 꽤 많았었는데 한편으로는 제 눈물을 동규가 다 가져간 것만 같아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아직도 눈가와 코끝이 빨간 동규를 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하림은 동규가 입을 맞춰 올 때마다 피하지 않고 혀를 섞었다. 터무니없는 생각은 사랑스러움과 곧장 연결되어 동규에게 키스를 하지 않고서는 못 견딜 기분을 선사해 주었다.
동규는 하림의 안에 사정을 하면서 마찬가지로 사정 중인 하림의 성기를 잡아 아래부터 위로 짜듯이 들어 올렸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동규의 손을 따라 정액이 흘러나왔다. 동규는 하림의 안에서 단번에 빼지 않고 하림에게 입을 맞췄다. 하림은 동규가 키스를 하면서도 서서히 제 것을 빼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동규가 하림의 옆에 누워 계속 입을 맞출 때에 천천히 동규의 위로 타고 올라갔다.
“더 할 수 있지? 술 마셨다고 빼고 그러면 좀 실망이야.”
“아니야……. 괜찮아. 더 해.”
하림은 사정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감하고 예민해진 성기를 동규의 가슴에 올렸다. 성기에 동규의 가슴 근육이 닿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거 좋아.”
“왜?”
“몰라. 너무 선정적이야. 꿈에도…… 많이 나왔어.”
서랍에서 젤을 새로 가져와 동규의 가슴에 흩뿌렸다. 차가운 감각에 동규가 눈을 감았다. 가슴 근육이 꿀렁이면서 동규가 많이 차가워하는 걸 간접적으로 알렸다.
동규의 가슴을 희롱하기 편하도록 하림은 우선 손으로 젤을 펴 발랐다. 아직 하림의 손은 따뜻하진 않았으나 동규의 체온으로 젤이 쉽게 녹을 거였다. 넓고 두툼한 가슴이 젤을 만나 반짝거렸다. 하림은 동규의 가슴을 마사지 하면서 한 번씩 유두를 꼬집기도 했다. 입술이 자꾸 말라 연신 혀로 축였다. 동규는 하림의 허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 손이 바들바들 떨린 채로 어쩔 줄을 몰랐다.
하림이 꼬집기만 하는 게 아니라 손톱을 세워서 젖꼭지를 아프게 해서 더 그랬다. 동규는 하림이 젖꼭지를 아프게 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움직였다. 오른쪽을 건들면 오른쪽 가슴이 움직이고 왼쪽을 건들면 왼쪽 가슴이 움직이는 게 귀여워 하림은 계속 젖꼭지를 아프게 했다.
“아프면서 느끼고 변태네.”
“아, 하지만…… 원래 거기는 성감대고…… 네가, 하림이 손에, 자꾸, 항상 만져서…….”
“아플 정도로 만지는데도 왜 발기했어. 나보고 엉덩이 때리면서 변태라고 할 때는 언제고.”
어느 정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가슴을 괴롭힌 하림이 손에 남아 있는 젤을 제 성기에 묻혔다.
“맞아…… 나 변태야…… 하지, 하지만…… 후으…… 아아, 그, 거기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귀두로 바짝 선 유두를 건드렸다. 전부터 하도 건드리고 빨아 대 커진 동규의 젖꼭지는 색이 짙었고, 젤에 젖어 탐스럽게만 보였다. 색도 그랬다. 정확히 저걸 무슨 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림은 와인이나 말린 장미의 색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섹스를 하고 있지 않아도 저렇게 붉은색의 유두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 동규를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아주 가끔, 아주 훌륭한 화가가 동규의 몸을 캔버스 위에 옮겨 줬으면 하는 생각이 아예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동규의 몸을 타인에게 보여 주기 싫은 소유욕이나 질투가 좀 더 컸다.
“동규야.”
“응, 으응…….”
“몸 관리 열심히 해.”
“알았, 어, 응, 아…….”
한 5년쯤 아니, 10년쯤 뒤에 좀 더 어른이 되어 질투가 조금 사그라지는 그 때 유명한 화가에게 부탁해야지. 조각도 남기고 사진도 남기고. 아예 도자기로 본을 뜨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림이 먼 훗날 동규의 몸을 예술 작품으로 남길 생각을 하는 동안 단단해진 성기에 동규의 유두가 짓눌리며 뭉개졌다. 이제는 완전히 성감대가 되어 버린 유두 때문에 동규가 바르작거리며 얼마 남지 않았던 이불을 모두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동규의 성기가 다시 바짝 선 건 말 할 필요도 없었다. 동규는 하림의 허벅지를 세게 쥐었다. 그랬다가 하림의 성기에 눌리지 않은 왼쪽 유두를 잡아 강하게 꼬집었다. 손톱으로 할퀴기도 했다.
하림은 제 유두를 스스로 애무하는 동규 때문에 침이 팽팽 돌았다. 동규가 잘 하는 음담패설이 하림의 머릿속에도 가득 찼지만 차마 그걸 제정신에 내뱉을 수가 없어 입술만 짓이겼다.
“넌 진짜…… 온몸을 다 꽁꽁 싸매고 다녀. 알겠어?”
“응, 으응, 알았어. 알겠, 흐으. 그럴게, 그럴 거야.”
할 수만 있다면 한여름에도 팔다리 다 가릴 수 있도록 긴 옷만 입게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게 새삼 화가 났다. 동규는 11월까지도 반팔을 입고 돌아다닐 정도로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하림이 누구보다 제일 잘 알았다. 차마 동규에게 화를 낼 순 없어 하림은 동규의 유두를 세게 꼬집었다. 동규는 아픈 신음을 터트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정액을 찔끔 싸질렀다. 하림이 가슴을 만져 줬을 때부터 이미 차올랐던 사정감을 애써 참고 있는 중이었다. 이유는 하림의 안에 사정하고 싶어서.
동규의 윗배는 앉아 있는 하림의 뒤에서 동규가 잔뜩 싸 놓은 정액이 줄줄 새 지저분했다. 하림이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와 윗배가 닿아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런 소리에다 하림이 성기로 제 가슴을 비벼 대고 있지, 하림이 웃는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까지 동규는 정말 눈앞이 하얗게 도는 기분이었다.
“아…….”
하림은 동규의 가슴 위에서 사정했다. 동규의 얼굴까지 정액이 튀어 하림은 손등으로 제 정액을 닦아 주었다.
“빨리, 빨리해 서하림…….”
“그렇게 애타게 이름 부르지 않아도, 읏, 아, 다 알아서 해 줄 거니까 조금만, 아으으…….”
잔뜩 부어서 그런지 동규의 것이 하림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자꾸 미끄러졌다. 동규는 속이 타 입술을 깨물었다. 하림이 다시 동규의 성기를 다잡고 입구에 가져갔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실패였다. 누워 있던 동규가 몸을 일으켜 하림의 엉덩이를 잡고 벌렸다. 엉덩이뿐만 아니라 뒷구멍이 죄다 열린 듯한 감각에 하림은 숨도 쉬지 못했다.
“넣어, 빨리. 나 쌀 것 같아.”
“하아…… 알았어.”
귀두 끝만 조금 들어갔을 때 동규는 엉덩이를 벌렸던 손을 놓고 하림의 어깨를 잡아 내리눌렀다. 단숨에 끝까지 꿰뚫고 들어온 커다란 성기에 하림이 컥컥거리며 몸을 떨어 댔다. 아까까지도 분명 동규가 열심히 들락날락거리며 충분히 넓혀 놨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도 배 속이 이상해 하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배를 쓰다듬어 보았다.
이 자세에선 배가 볼록해지곤 했던 게 맞지만 이상한, 아니 그보다는 찌릿한 감각에 눈앞은 별이라도 튀는 듯했다. 머릿속도 하얗게 변해 갔다. 삼키지 못한 침이 혀 아래 잔뜩 고였다.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말고. 아…….”
“응.”
고개를 숙인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하림의 손에 깍지를 낀 동규가 뒤로 누웠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하림의 손이 차갑다. 동규는 괜히 또 눈물이 날 것 같아 손을 풀고 눈을 가렸다. 여기서 울면 하림이 그만하자고 할까 봐.
하림은 무릎에 힘을 주고 조금 일어나 보았다. 그런데 동규의 것이 조금만 빠진 건데도 머리카락이 서는 기분이 들어 다시 주저앉았다. 그러자 깊은 곳까지 동규의 것이 찔러 와 배 속이 욱신욱신했다.
이대로 움직여도 되는 걸까.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럴 건 또 뭐야. 한 번 더 무릎에 힘을 주고 일어나 동규의 것을 반쯤 빼냈으나 안쪽은 동규의 힘줄까지 느껴질 정도로 조여 댔고 부은 내벽이 동규의 성기에 쓸려 아랫배가 경련했다.
“아, 이거…… 이거 잠깐만, 아, 아읏!”
동규의 아랫배 위에 올려 둔 손으로 그의 허벅지를 짚었다. 하림은 빼냈던 반을 넣기 위해 천천히 앉았다. 굉장히 시간을 들여 조심스럽게 내려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극을 잔뜩 받아 신음만 자꾸 터져 나왔다. 성기는 사정이 임박했다며 흔들렸고 요도구는 사정없이 움찔거렸다. 얼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왜? 넣은 것만으로도 이러는 건 조금 이상했다.
“도와줄까?”
“아니, 내가…… 할 거야. 할 수 있어. 흐으…….”
귀두를 막아 억지로 사정을 참아 낸 하림이 몸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하도 쑤셔져 부운 곳을 이런 자세로 깊게 받아들이다 보니 그런 거라며 지나치게 느끼는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다. 손 떼면 바로 동규 얼굴까지 정액이 나갈 것 같아 하림은 필사적으로 제 것을 잡고 허리를 놀렸다.
몇 번 움직이면 이 쾌락에도 적응할 거라 생각해서 떨리는 몸을 모른 체하고 움직인 건데 당최 이건 적응이나 감당을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쾌감이 아니었다. 심지어 동규는 약속을 지킨다고 하림을 도와주지도 않았고 움직이는 건 더더욱 하지 않고 제 가슴을 주무르느라 바빴다.
뒤도 앞도 자극에 녹아 버릴 것 같으니 차라리 사정을 하면 좀 나을까. 하림은 점점 타오르는 머릿속으로도 뭐가 더 나을지를 가늠했다.
“으읏!”
어차피 뒤가 뚫린 채로 쑤셔지면서 느낀 지는 오래다. 그렇다면 차라리 사정감을 털어 버리고 뒤로만 느끼는 게 나았다.
하림이 손을 떼자 묽어진 정액이 동규의 턱과 목으로 튀어 흘렀다. 하림은 하나가 해소되자 상체가 무너지려는 걸 동규의 아랫배를 짚고 겨우 버텼다.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보다 안쪽이, 내벽이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정작 동규는 움직이지도 않는데.
“하아, 하아…… 이상해, 오늘.”
“뭐가.”
“몰라 나도. 그냥, 좀…… 읏, 여기서 더 움직였다가는 큰일 날 것 같은 감이 드는데…….”
“너 그런 거 안 믿잖아.”
“아니, 그러기엔 몸이 이상해. 안쪽이, 좀…….”
“난 가만히 있었어.”
“응, 알아.”
“그럼 앞에 만져 주면 이상한 게 좀 괜찮아질까?”
베개를 모아 상체를 반쯤 세운 동규가 손을 뻗어 하림의 것을 만졌다. 그런데 동규의 손이 닿자마자 하림은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동규도 놀라 손을 뗐다.
“왜, 왜?”
“만지지 마.”
“아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방금 전에 사정해서 그런가 좀, 그, 느낌이…….”
“괜찮아. 원래 그럴 때 만져 주면 더 자지러지잖아. 좋아서 아, 이거 봐. 조이는 거.”
하림은 동규의 손목을 잡고 손을 떼려고 했지만 동규가 손을 빠르게 치대며 번들거리는 귀두를 손바닥에 굴렸다. 어쩔 줄을 몰라 하던 하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걸 본 동규는 허리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읏, 아아…….”
“아, 지금 되게, 좋은데, 으, 후우…… 쑥쑥 들어가. 느껴져?”
“응, 아, 근데 잠시만…… 손, 아, 동규야 손 좀 그만해, 아 제발.”
하림이 원하는 대로 손은 뗐지만 허리는 멈추란 얘기가 없어 동규는 세게 쳐올렸다. 하림이 몸을 발발 떠느라 동규와의 속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엇박으로 움직였다. 동규의 것이 하림이 예상도 못 할 타이밍에 자꾸 안을 들쑤셨다. 동규가 앞을 건드리는 게 아닌데도 사정을 할 것처럼 찌르르 울리는 성기도 이상하고 내벽을 잔뜩 휘젓는 동규의 것은 크기를 줄일 기미가 없었다. 하림은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바로 조금 전에 사정을 했었음에도 다시금 차오른 사정감에 하림은 입술을 깨물고 동규의 아랫배를 눌렀다.
“……멈춰 봐.”
전원이라도 꺼진 것처럼 허리를 들썩이던 동규는 곧장 하림에게서 손을 뗐지만 마찬가지로 동규 역시 사정을 하고 싶었던 터라 다리만 접었다 폈다하며 안달했다.
“왜, 나, 읏, 움직여 줘.”
“잠깐만 지금, 좀…… 아…… 앞이, 이상해. 티슈 좀 줘 봐. 또 쌀 것 같아.”
“알았어.”
“아…….”
동규가 손을 뻗었지만 티슈 케이스까지는 닿지 않았다. 동규는 하림을 안아 아예 일어서기 위해 손을 거두고 하림을 한 팔로 안았다.
그 때였다. 하림이 숨을 먹는 소리를 내면서 부르르 떨더니 사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전처럼 여러 번의 사정으로 묽어진 적은 양의 정액이 아니라 마치 소변이라도 싸는 듯 명백한 액체였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고 당황한 하림이 제 귀두를 틀어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비집어 새어 나올 정도로 뿜어져 나오는 힘도 엄청났다.
동규가 하림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덜덜 떨리는 성기가 동규의 배에도 느껴졌다. 하림은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하다 동규를 끌어안았다. 귓가로 하림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하림은 발가락을 오므리며 허벅지에도 힘을 줘 동규의 허리를 꾹 눌렀다. 동규의 허리로 잘게 떠는 하림의 허벅지가 느껴졌다.
“너 이거…….”
“조용히 해, 흐으, 아…… 으읏, 하으, 씨발, 아…….”
백치가 된 것만 같다. 나오는 말이 조각조각 나 죄다 뭉개졌다. 침도 제대로 삼키지 못해 동규의 어깨로 뚝뚝 떨어졌지만 하림은 그것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눈앞이 깜깜했다. 이 순간만큼은 동규의 것이 뒤를 꽉 채우고 있다는 걸 잊을 수 있었다. 충격적인 감각에 내벽을 조여 댔지만 그건 하림의 의식 밖의 일이었다. 그만큼 강렬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아 내고도 잠시간 멈춰 있던 하림은 차차 정신이 돌아왔다. 제일 먼저 돌아온 감각은 청각이었다. 청각이 트이며 아프다고 끙끙거리는 동규의 소리가 들리자 다른 모든 감각들이 살아났다. 동규도 전에 이런 감각이었던 걸까? 아니 그보다.
“그러게 왜…….”
이게 뭐든 사정했고 다 쌌고 배출을 했음에도 축 처지지 않는 성기는 무엇이며 배 속을 꽉 채운 자극에 숨이 가빠 오는 건 뭔가.
“아까…… 손 떼라고 할 때 떼지 않았냐고.”
동규는 좋아서 싸 놓고 자길 탓하는 하림에게 서운한 마음이 반, 감격의 마음 반이 섞여 눈물이 핑 돌았다.
“하림이 너.”
“한마디만 더 해 봐.”
“알았어.”
하림을 꼭 껴안은 채로 동규가 몸을 돌려 누웠다. 입꼬리가 주체를 하지 못하고 자꾸 위로만 올라갔다. 동규는 하림을 아래로 눕히고 하림이 제 몸에 싸질러 놓은 걸 확인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하림이 동규의 목을 껴안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보지 마.”
“볼 건데.”
“부끄러워.”
“괜찮아. 잘했어.”
“하, 씨발…….”
“왜 술도 조금밖에 안 마셨는데 자꾸…… 욕을 해. 꼴리게.”
어차피 하림은 동규에게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어 동규가 하림의 품에서 탈출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미룰 수만 있다면 최대한 미루고만 싶다. 동규가 손을 풀어냈을 때 하림은 손을 뻗어 티슈케이스를 가져오려 했다. 하지만 케이스는 손끝에 닿기만 할 뿐이었다. 상체를 좀 더 그쪽으로 움직이려는 찰나 동규가 한 발 빠르게 티슈케이스를 등 뒤로 던졌다. 그뿐만 아니라 동규는 오랜 시간 하림의 안에 박아 두고 있던 제 성기를 빼고 하림의 다리 사이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엎드렸다. 하림은 핏줄이 선 동규의 팔을 잡았다.
“뭐 하려고.”
“글쎄.”
동규가 하림의 이마부터 눈, 코, 입을 따라 입술을 움직였다. 턱선을 따라 혀로 훑고 목으로 내려 쪽쪽거리다가 아예 아래로 몸을 내렸다.
“아, 제발 그건 안 돼. 싫어, 하지 마.”
“뭔 줄 알고 싫대.”
“너 그거 다 핥아 먹, 아, 하지, 마, 김동규!”
하림의 몸에도 뿌려진 액체를 동규가 아래서부터 핥기 시작했다. 아랫배부터 목까지 넓게 퍼져 있어 하림의 몸이 단숨에 붉은색으로 달아올랐다. 하지 말라고 동규를 밀쳐 내도 소용이 없었다.
“미친, 미쳤어…….”
동규가 웃느라 배 쪽에서 콧바람이 느껴졌다. 혀를 넓게 펴 미끄덩거리는 액체를 할짝거리는 감각은 그냥 동규가 평소처럼 핥아 대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지금은 지나치게 수치스러웠다.
아직도 성기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동규와 밤새 섹스를 하고 나면 뒤로 감각이 없어 뒤가 꽉 닫히지 못한 게 느껴지지도 않는 것처럼 혹시라도 앞도 뭔가 망가져 지금도 뭔가 줄줄 새고 있는 건 아닌지 새삼 걱정이 밀려왔다.
어느덧 가슴까지 올라온 동규가 좋다고 하림의 유두와 가슴팍을 핥았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만약 지금쯤 아래에서 계속 뭔가 나오고 있는 중이라면 동규가 제일 먼저 알아채고서 좋다고 빨았을 것 같아 걱정을 날려 버렸다.
동규의 것에 비하면 힘을 잃은 하림의 성기에 동규의 단단한 것이 자꾸 닿았다. 하림은 게걸스럽게 혀를 놀리는 동규를 멈추기 위해 동규의 양쪽 젖꼭지를 세게 꼬집었다.
“아.”
“이제 그만해. 오늘은 여기까지야.”
“……왜? 나 아직 위로가 더 필요한데……. 이거 봐.”
하림의 손을 끌어 제 성기에 가져간 동규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먹거렸다. 하림은 그런 동규를 보고 안심했다. 무슨 말만 하면 눈물을 글썽이는 동규는 아직 술에 취한 상태라는 거였고, 그 말은 내일이면 동규가 오늘 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멈출 필요도 없었다.
“그러네. 미안해. 뭐 해 줄까.”
“내가 이거 다 핥고 나면…… 나도 가슴 빨아줘.”
목덜미에 묻은 것들은 일부러 간지럽고 부드럽게 혀를 움직여 핥았다. 하림이 간지럼을 타며 내는 웃음소리가 듣기 좋아서였다. 벌써 다 핥고도 남았는데 동규는 다시 가슴팍이나 옆구리를 살살 핥아 가며 하림을 간질였다. 간지러우면서도 야릇한 감각에 하림의 것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또다시 자세가 역전됐다. 하림은 오늘 밤을 기억하질 못할 동규가 더 아쉬워 발을 동동 구르도록 가슴을 애무하기 전에 동규의 목에 쪽쪽거리며 키스 마크를 남겼다. 둘 다 암묵적으로 목에는 남기지 말자는 약속이 있었는데 하림이 깨부순 순간이었다.
이것도 동규가 기억하지 못할 거라며 하림이 신나게 입술을 놀리는 동안 동규는 차츰 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술 취한 동규와 이렇게까지 오래 섹스를 해 본 적이 없어 하림도 동규가 술이 깨고 있다는 걸 몰랐고, 당사자인 동규 역시 지금이 제정신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울긋불긋한 동규의 목을 완성한 하림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동규에게 가볍게 입을 맞췄다.
“보기 좋다.”
“응응.”
“뭐가 좋은 줄은 알아?”
“아니.”
“그럼 왜 응 하고 대답했어.”
“몰라. 네가 좋다고 하면 좋은 거겠지.”
하림이 예쁜 말만 한다고 동규의 입에 또 뽀뽀를 했다. 쪽쪽거리는 소리에 동규는 가슴이고 뭐고 빨리 하림의 안에 처박고 싶어 하림의 엉덩이를 쥐어 잡았다. 퍽 힘 있게 잡았는데 하림이 모른 척하며 동규의 입가를 쪽쪽거리다 목, 어깨, 쇄골 그리고 가슴까지 입술을 내렸다. 이빨로 강하게 깨물기도 해서 이빨 자국이 선연했다.
아직 동규의 가슴에 남아 있는 제가 싸지른 액체를 시트로 빠르게 닦아 낸 하림은 동규의 유두를 물었다. 이를 세워 문 유륜을 쪽쪽 빨아 주면 동규가 나지막한 신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게 있다면 동규가 하림의 한쪽 엉덩이를 때리며 신음을 흘린다는 게 달랐다. 다른 한쪽 엉덩이는 때리지 않고 손으로 열심히 주물렀다. 하림은 동규의 유두를 빨면서도 동규의 다른 쪽 가슴을 모아 잡았다. 말랑한 가슴 근육이 손바닥에 가득 들어차는 느낌은 늘 기분이 좋았다.
유두를 잘근잘근 씹어 대다가 가슴팍에도 키스 마크를 남겼더니 동규가 자꾸 엉덩이를 때려 댔다. 아프진 않았고 적당히 따끔한 정도였다.
“손가락…… 넣어도 돼?”
“살살.”
하나만 넣으라는 얘긴 없었으므로 동규는 두 개를 넣었다. 가슴을 주무르던 손에 힘이 들어가 가슴을 터질 것처럼 잡았다. 하림이 손을 떼자 희미하게 흰 손자국이 났다가 사라졌다.
“아…… 하림, 아. 응?”
손가락에 달라붙는 내벽이 뜨거웠고, 부은 만큼 말캉했다. 어서 빨리 넣고 싶은 마음에 동규는 손가락을 두 개 더 밀어 넣고 안을 휘저었다. 하림이 결국 입술을 떼고 동규의 가슴팍에 이마를 쿵쿵 찧었다.
하림은 입술을 자꾸 물면서도 삽입을 주저했다. 했다가 그걸 또 싸 버릴까 봐 조금 무서웠다. 모든 감각이 차단되고 오로지 성기 하나만 또렷하게 남는 그 기묘한 느낌은 다시 되짚어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지만, 연달아 느끼기엔 너무 버거운 크기의 쾌락이었다.
“힘들……어?”
“아니.”
언제 또 울고 있던 건지 물어보는 목소리엔 울음이 배어 있다. 울면서도 손가락 네 개를 열심히 움직이는 동규 때문에 신음만 새어 나왔다. 잘…… 어떻게 잘 참아 보면 될 것 같다. 싸더라도 들키지만 않으면 될 것 같고.
하림은 동규의 손목을 잡아 빼고 올라오라며 동규를 톡톡 쳤다. 누워 있는 것보다 제가 위에 있는 게 마음껏 움직일 수 있어 좋은 동규가 하림의 허리를 잡고 자세를 바꿨다.
몇 대 맞아 붉어진 엉덩이를 벌려 단번에 삽입했다. 하얀 등이 순간 경직되는 것이 보였다. 중간까지 쭉 밀어 놓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마저 쑤셔 넣었다. 늘릴 대로 늘려 놨다고 생각해도 이렇게 새로 넣을 때마다 빠듯하게 조여 오는 내벽은 매번 처음 같다. 할 때마다 쑤시고 넓히는 맛이 있었다.
허리를 끝까지 쳐올렸다가 좀 더 속도를 올리기 위해 하림의 두 팔을 잡았다. 열이 오른 얼굴을 베개에 숨기지도 못하게 된 하림은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깊은 곳으로 밀어 넣는 만큼 하림의 몸을 동규가 제 쪽으로 당겼다. 그 힘도 대단했다. 발기해 단단해진 하림의 것이 동규의 몸짓에 맞춰 흔들렸다.
동규가 팔을 뒤로 해 잡아 주긴 했지만 공중에서 흔들리는 듯한 기분에 하림은 아예 상체를 일으켰다. 고개를 돌려 동규에게 입을 맞췄다. 하림의 허리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면서도 동규는 허리를 멈출 줄을 몰랐다. 쑥쑥 밀고 들어오는 성기가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민망한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입 맞추는 소리 역시, 질척거리고 민망했다.
하림의 윗입술을 쪽쪽 빨면서 동규는 제 성기를 빼냈다. 그리고 하림을 돌려 마주 보게 하고 하림을 바로 눕혔다.
다리를 넓게 벌리고 귀두를 구멍에 가져갔다. 두 팔이 다 하림을 껴안고 있어 손의 도움 없이는 작은 구멍에 커다란 귀두가 들어가질 못했다. 손 하나를 급히 내려 구멍을 눌렀다. 덕분에 제대로 다물리지 못하고 살짝 벌어진 구멍에 힘으로 밀고 들어가 귀두를 삽입했다.
다물리기 무섭게 다시 한계까지 벌어지는 감각에 하림이 고개를 돌려 입술을 뗐다. 동규는 하림과 조금도 떨어지기 싫어 하림의 턱을 잡아 저를 보게 만들었다. 입술과 혀도 바로 섞었다.
몸을 있는 대로 벌려 쑤셔 대는 동규는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는지 하림을 껴안고 거칠게 움직였다. 하림의 가슴팍에 제 유두가 쓸릴 때마다 찌릿한 아픔이 들었지만 떨어졌다가는 하림과 키스를 할 수 없어 참았다.
이대로 숨이 넘어가는 건 아닐까 싶을 때 동규가 하림의 안에 사정을 했다. 잠시 뒤 하림도 사정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정없이 오르가즘을 느꼈다. 하림은 아주 적은 양의 사정을 했다고 느꼈지만 착각이었다. 눈을 깜빡이지도 못하고 혀도 굳은 채로 하림은 숨만 쉬었다. 허벅지 안쪽이 움찔거리며 머리부터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여전히 동규는 제 성기를 빼지 않았고 하림과 키스를 끝내지도 않았다. 느리고 진득하게 하림의 치열을 훑고 움직이지 않는 말랑한 혀를 건드리다가 떨어졌다. 비스듬하게 누워 하림의 귓가로 숨을 쏟아 내면서 제 허릴 잔뜩 조이는 하림의 허벅지에 힘이 빠지길 기다렸다. 하림이 동규의 배를 쓰다듬다가 작게 욕을 했다.
“……미친 것…… 같다…….”
“나도.”
분명 사정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뭔가가 울컥 나온 걸 분명히 느꼈는데 왜 동규의 배엔 있어야 할 게 없는지 믿을 수가 없다. 가끔 이렇게 사정없이 오르가즘을 느끼는 게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건 알지만, 하림은 자신이 느낀 감각이 분명히 있는데도 정액이 보이지 않는 현상을 아직도 온전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동규가 이젠 술 조금만 마실 거라며 실없이 웃었지만 하림은 동규가 술 마신 게 천만다행이라고 얼마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직도 엉망진창 된 문장으로 중얼거리는 동규에게 고개 돌린 하림이 입술 위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췄다. 동규의 말이 멈추고 쪽쪽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가끔 둘 다 숨을 고르기 위해 떨어지긴 했어도 눈만 마주치면 다시 입술이 붙고 혀가 섞여 둘 사이의 공기는 계속 후끈했다.
이제 그만 씻자고 일어났을 때도 수시로 걸음을 멈추고 입술을 부딪쳤다. 하림의 방과 가까운 욕실이 유난히 더 멀고 길게 느껴졌다.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샤워 부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서로의 성기를 비벼 댔다.
“언제 씻어. 우리 씻을 수 있는…… 거지?”
“그래도 거의 다 왔어.”
“하림아, 나 아직…… 흥분했는데.”
“나도.”
따뜻한 물을 맞고 싶은 건 사실이라 하림은 겨우 동규에게서 떨어져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물을 틀고 따뜻한 물을 맞고 있는데 동규가 하림의 뒤에 바짝 붙어 서 발기한 제 것을 하림의 엉덩이 사이로 가져갔다.
“좀 씻고. 허리 아파. 따뜻한 물 좀 맞자.”
“하고 씻어도 돼.”
“언제 끝날 줄 알고?”
“빨리 끝내 볼게.”
“그건 싫은데.”
하림의 한쪽 엉덩이를 잡고 벌려 동규는 제 것을 삽입했다. 하림이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 해 하림을 부스 유리벽으로 밀쳤다. 차갑긴 해도 벽을 짚을 수 있어 훨씬 안정적이었다. 동규가 허리를 뒤로 뺐다가 끝까지 올릴 때면 하림의 발가락이 곱아들고 유리벽을 짚은 손가락 끝도 하얗게 변했다. 젖은 살이 유리에 쓸려 나는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하아, 읏, 아…….”
“음, 흐으…… 하아, 으읏…….”
빨리 끝내는 게 싫다는 하림의 말을 착실히 따르기 위해 동규가 최대한 사정을 오래 끌고자 이를 악물었다. 이미 사정을 할 만큼 했다 보니 섹스 초반만큼 유지할 순 없었어도 힘으로 버티면 못 할 것도 없었다. 하림에게서 그만하라는 말이 튀어나올 때까지 참아 볼 생각이었다. 하림도 그런 동규의 생각을 읽은 건지 얼굴을 찌푸리는 한이 있어도 이제 그만하자거나 힘들다는 말을 뱉지 않았다.
먼저 백기를 든 건 동규였다. 이대로 가다간 욕실에서 나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하림의 가장 안쪽, 좁아지는 곳까지 좆을 쑤셔 넣고 파정했다. 그리고 하림을 아예 벽 쪽으로 밀어 가뒀다. 유리벽과 동규의 사이에 낀 하림이 동규의 머리를 붙잡아 입을 맞췄다.
“입술…… 부었다.”
“맞아. 내일 약속 있어?”
“아니. 있어도 빼야 돼. 어디 앉지도 못할걸. 아, 밀지 마.”
둘 다 아쉬워 부은 입술로 계속 입을 맞췄다. 하림은 아예 몸을 돌려 동규를 껴안고 키스했다. 동규도 하림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한참이나 그렇게 키스를 하다가 한 번 더 몸을 섞고 동규의 방으로 들어왔을 때 동규는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하림도 동규의 옆에 누웠다. 그대로 불 끄고 자려다가 뭔가 부족한 것 같아 동규의 팔 하나를 빼 팔베개를 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고 불을 껐다.
다음 날, 늦은 오후까지 죽은 것처럼 잠에 들었던 두 사람은 배가 고파 눈을 떴다. 허리가 아픈 하림이 좀 더 누워 있겠다고 뒹굴거렸고 동규가 시뻘게진 가슴팍을 안고 먼저 욕실로 갔다가 하림이 목에 열심히 남겨 놓은 키스마크를 발견했다. 세수도 하지 않았는데 잠이 다 깨는 기분이었다.
가슴은 또 어떤가. 유두는 물론이고 유륜까지 죄다 빨고 깨물었는지 건들지도 못하겠다. 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고 있자니 동규는 갑자기 온 가슴이 찌르르 아파 왔지만 스치기만 해도 아파 어떻게 만질 수도 없었다. 최소한 오늘내일은 옷도 입지 못 할 테니 꼼짝없이 상의 탈의한 채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할 수준이었다. 방학이라 다행이지 학기 중이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씻고 나와 약부터 찾았다. 자연적으로 나을 수 있게 기다리거나 하림의 침을 바르는 수준으로는 어떻게 감당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으으, 아……. 안 되겠어. 너무 아파, 하림아.”
“좀 참아. 이제 겨우 닿기만 했어.”
“안 할래. 하루만. 아니, 이따 밤에 자기 전에 발라 줘. 너무 아파…….”
“그래.”
“대신…… 그으…… 아니야.”
“왜 말을 하다 말아.”
“아니야. 씻어.”
대신 호 불어 달라는 말을 해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동규는 주방으로 도망갔다. 하림은 대충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감이 오긴 했지만 온몸이 뜨거운 물을 부르짖고 있어 동규의 아픈 유두를 예뻐해 주는 건 잠시 뒤의 일로 미뤘다.
동규는 동규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난밤 하림과 했던 섹스에 대한 기억이 온전하지 않고 드문드문했다. 기억이 끊긴 게 규연과 술을 먹었을 때부터였고 조각처럼 기억이 얼기설기 이어지다 확실해진 건 욕실에서 키스를 할 때부터였다. 그땐 이미 하림과 몸을 하도 섞고 난 뒤였는지 허리가 뻐근했고 좆도 얼얼했다. 유두는 얼마나 괴롭힌 건지 빨갰었고 무척 아팠다. 하림이 입술 부었다며 제 입술을 만져 준 것도 기억나는데 그 이전에 뭘 했는지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아침이라기엔 너무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하림이 말하지 않는 지난밤 섹스에 대해 동규는 열심히 기억을 하고자 애썼다. 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꼭 기억을 해야 한다는 것만 감각이 있어 답답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림에게 물어도 평소랑 같았다고 잡아떼는 걸 보니 분명 뭔가가 있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림은 동규가 발을 동동 굴러도 지난밤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하림 혼자만의 비밀로 평생 간직될 줄 알았던 일은 얼마 뒤에 동규가 술 한입 마시지 않고 제정신일 때 또 일어나고 말았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하림은 그저 도도하게 샐러드만 집어 먹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