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동규는 하림에게 결과 보고만 들었다. 하림이 율하와 따로 만나 얘기를 하는 동안 동규는 하림의 집에서 하늘에게 메시지를 매우 많이 보냈고 하늘은 동규의 징징거림을 반쯤 무시하며 적당한 반응만 해 줬다. 걔가 알아서 잘 할 텐데 왜 이렇게 징징거리냐고.
그리고 결론적으로도 잘 해결되었다. 율하와는 좋은 선후배로 남기로 했다. 서로 얼굴 보는 게 조금 껄끄러울 뿐이지. 하림이 율하 좋은 애니까 나중에 밥이라도 한 번 사 주라며 동규를 다독였다.
하림은 동규 모르게 규연과도 만났다. 선배와 술을 마시면서 다 털어놓으니 차라리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아리까리하다가 향수가 결정타였다, 난. 내가 냄새에 민감해서 향수 쓰는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잘 기억하거든. 너는 늘 어디서 맡아 보지도 못한 향을 풍기고 다니는데 아무리 봐도 하나만 쓰는 건 아닌 것 같다 이거지. 보통 그런 경우는 자기 취향 따라서 섞는 거잖아. 그런데 네가 새로운 향을 뿌리고 오면 꼭 나중에 동규가 그 향을 흘리고 다니더라고?”
“걔한테 뿌려 줄 땐 저는 안 뿌리거나 다른 거 뿌리고 다녔는데, 아니 그 전에 자주 뿌리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저도 가끔 뿌린 게 단데 그걸 어떻게 기억해요.”
“냄새에 민감하다니까. 개코야, 완전.”
“벌써 두 명에게 들켰는데 다른 사람들도 아는 건 아니겠죠.”
“아직까진 편견이 지켜 주는 것 같긴 하다만 조심하는 게 좋을 듯? 내가 봤을 때 동규 아우디 친구들은 알 것 같아. 여자애들. 그러니까 우리 학교 그만 좀 와. 학교에 친한 친구나 선배 후배 없어?”
“있어요.”
“그럼 걔네랑 같이 놀아. 마르고 닳도록 우리 학교 오질 않나, 동규는 너만 오면 눈에서 하트가 나오질 않나. 둘이 사귄다고 광고하는 꼴이잖아.”
“또 누가 김동규 좋다고 쫓아다니면 어떡해요.”
“쫓아다녀도 금세 지칠걸. 알잖아, 걔 엄청난 눈새에 철통 방어인 거. 누가 학교 방송으로 고백해도 멍 때리면서 듣고 있다가 ‘왜 시끄럽게 저런 짓을 하지, 민폐다.’ 할 놈이야.”
동규를 따라 하는 규연 때문에 하림은 웃음이 빵 터졌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난 하림이 웃음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었다.
“……아닌데.”
“와, 이거 완전 김동규 억양이랑 똑같았다.”
“……아닌데요.”
“대박. 야 진짜 똑같아!”
“포인트는 입술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 혼잣말하듯 투덜대는 거예요. 삐졌지만 아닌 척 하는 표정이랑요.”
규연은 테이블을 두드리며 웃었다. 잠시 두 사람은 누가 누가 더 동규를 잘 따라하나 대결을 하다가 대학원 이야기로 넘어갔다. 하림은 외국으로 갈 생각이고 규연은 아니었지만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힘듦이나 애환은 동일했다.
일찍 돌아오려 했는데 규연과 얘기하 다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 동규보고 전화하겠다고 약속했던 시간보다 훨씬 넘긴 시간이 되었다. 동규는 10시 30분까지 전화 준다던 하림에게서 연락이 없자 오매불망 하림의 전화만 기다리다가 전화 오자마자 쏜살같이 차를 끌고 나갔다.
“많이 마셨어?”
하림은 차에 타려다가 문득 자기가 사 준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말고는 다른 사람 태우지 말라고 2인승으로 정하고 동규의 몸에 맞춰 큰 걸 찾느라 고생은 좀 했지만 새삼스럽게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마셨어.”
차에 올라타자 동규가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하림은 찰칵 소리와 함께 동규를 붙잡고 입을 맞췄다.
“너한테 말은 안 했는데, 사실 오늘 규연 누나 만났어.”
“많이 마셨겠네.”
“누나랑 네 얘기 했어. 누나 우리 사귀는 거 알아.”
“어떻게? 말했어?”
“아니. 알고 있던데. 너한테서 자꾸 나랑 같은 향기 난다고.”
“아…….”
하림이 향수들은 맘껏 써도 된다기에 가끔 동규도 제 몸이나 옷에 한두 번 뿌리곤 했다. 종일 하림의 향수를 킁킁거리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하림과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괜히 뿌리고 다녔네.”
“누나가 티 너무 난대. 그래서 이제 너네 학교 그만 놀러 가려고.”
“그럼 내가 갈래.”
“너도 오지 마. 네가 나만 보면 눈에서 하트가 떨어진대.”
“그럼…… 나 휴학할래.”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몰라. 갑자기 안 놀러 온다니까 충격적이야.”
“같이 사는 건 어때.”
“지금도 거의 같이 사는 거랑 같잖아.”
“거의가 완전히는 아니지.”
“……일단 출발한다.”
집에 와서 하림은 양주를 꺼내 흔들었고 동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림은 규연과 얘기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말했다.
“종강하면 엄마랑도 네 얘길 제대로 하고, 너네 부모님도 만나 보려고.”
“엄마만 만나지 왜 아빠도 만나?”
“할 얘기 있으니까.”
“알았어. 무슨 얘기 했는지만 말해 줘.”
“응. 그래서 부모님들 허락 다 받으면 그때는 같이 살자. 그건 괜찮지?”
“하아…….”
“같이 안 살고 있어도 이미 온 집 안에서 해 대고 있는데 같이 산다고 큰 변화가 있을까?”
“당연히 크지. 가정부 아주머니 집에 들어오지도 못할걸.”
“왜?”
“24시간 일주일 내내 그 짓하고 있어서.”
“오지 마시라 그러자.”
자기에겐 큰 걱정이었던 걸 하림이 너무 산뜻하게 받아들이니까 동규는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 하림이 잔에 담긴 위스키를 들이켰다.
“그럼 됐지?”
“어?”
“같이 못 살 수도 있어. 우리 엄마가 반대하거나 너네 부모님이 반대하면.”
“으응…….”
“내일 집에 가면 엄마한테 말씀드려. 내가 음, 아 먼저 너네 엄마부터 만나 뵙고 아빠는 나중에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아줌마 편하신 시간에 내가 맞춘다고.”
“종강하고 만난다며.”
“생각해 보니까 그 때까지 미룰 게 뭐 있나 싶고 걍 마음먹은 김에 진행하자.”
엄마에게 하림이 만나고 싶어한다는 그 간단한 한마디를 하기 위해 동규는 사족만 30분을 넘게 사용했다. 엄마가 바로 이번 주 주말로 약속을 잡아 버려 동규의 엄마와 하림은 겨우 이틀 뒤에 만나게 되었다.
하림이 동규의 엄마에게 들은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네 엄마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 역시 허락하지 않겠다, 애 아빠는 지금 바쁜 시즌이니 연말쯤 셋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다. 하림은 동규의 엄마와 아들 친구가 아닌 아들의 애인으로서 만나는 거라 굉장히 조심스럽고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이번 만남에서 동규의 엄마가 거듭 강조한 것은 바로 하림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냥 허락할 수도 없는 입장을 하림에게 얘기했고 하림도 충분히 이해한다며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하림은 제 엄마에게는 조금 강경하게 나갔다. 이제 다 컸다고, 내 마음대로 할 거라는 태도로 밀고 나가야 할 것 같아 엄마와 싸울 각오까지 했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의외였다.
“잘 모르겠다. 답이 안 나와.”
“그게 뭐야. 확실히 해 줘.”
“엄마는 우리 아들이 하는 모든 일에 반대하고 싶지 않지만 이건…… 찬성하기도 망설여져. 편견 없이 영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도 늙었나 봐. 동규 좋은 애인 건 아는데…… 그냥 엄마는 반반.”
“그래서 같이 살아도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엄마 의견은 ‘모르겠다’라니까.”
엄마가 한숨을 푹 쉬면서도 안아 달라고 두 팔을 벌렸다. 하림은 엄마의 뜻을 알아채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엄마를 품에 안아 볼에 뽀뽀를 했다.
“고마워, 엄마! 사랑해요!”
“모른다니까.”
“알았어 알았어. 엄마 사랑해!”
두 사람이 집을 합치는 날, 워낙 하림의 집에서 자주 자고 가서 그런지 동규가 들고 온 짐은 굉장히 적었다. 대신 엄마가 홀로 지내게 되어 주말엔 동규가 두 사람의 집이 아닌 엄마 집에서 자기로 했다. 그리고 하림도 한두 번씩 주말마다 놀러가 동규네 집에 있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다.
그러다 새해가 되고 개강과 함께 봄이 찾아왔을 땐 하림도 당연하다는 듯 주말마다 동규네 집에서 지냈다. 하림 혼자 살던 집에 동규의 물건들이 하나둘 쌓여 갔듯이, 동규의 집에도 하림의 흔적들이 쌓여 갔다.
분명 물리학과 1학년 후배들에게 술 사 준다고 나온 건데 왜 동기들이 슬슬 한 명씩 끼어 늘어나는 건지, 왜 타과생인 하늘이 자연스럽게 끼어든 건지 알 수가 없다.
하늘 외에도 친구들이 공짜 술 소식 듣고 왔다기에 하림은 친구들을 죄다 뒤쪽 테이블에 몰아넣었다. 막무가내로 앉고 보기에 메뉴판에 있는 거 다 사 줄 테니까 여기서 먹고 마시라고 해 놨다. 그랬더니 처음엔 하림의 말을 잘 듣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점점 취했는지 하림과 후배들 자리로 끼어들었다.
하늘을 제외하고는 다 같은 과 학생들이라 학교생활 팁을 전수해 주겠다느니, 물리학과 도대체 왜 왔냐느니 하는 걸 후배들이 은근히 좋아해 친구들이 슬그머니 앉아도 쫓아내기가 좀 그랬다.
“너 이씨, 서하림 너 혼자 후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선배가 되시겠다 이거냐?”
“너도 그럼 애들 불러서 따로 밥이나 사.”
“내가 인마, 너처럼 돈이 썩어나는 줄 알아? 나도 사조, 하리미 오빠.”
“사 준다니까. 뒤로 가서 먹어.”
“시로시로! 나도 풋풋한 새내기들이랑 놀꾸야.”
성격 좋은 1학년 몇몇이 먼저 나서 괜찮다며 술 취한 선배를 품어 주었다. 하림은 나중에 술 말고 밥이나 먹자고 나머지 1학년들을 달랬다.
한참을 부어라 마셔라 하는 동안 술에 취한 후배들이 나올 때마다 택시 태워 돌려보내고 나니 술 잘 마시는 최정예 멤버들만 남게 되었다. 두 병을 넘게 마셨어도 괜찮다는 1학년 세 명을 제외하고는 늘 하림과 술 마시는 같은 과 친구들이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면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용자였지만 하림과 마실 땐 아니었다. 그래도 그나마 하림이 자주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는 술을 제일 잘 마시는 사람들이었고, 그 말은 하림이 동규를 제외하고 술자리를 가장 많이 가진 친구들이라는 얘기였다. 타 과에도 몇 명이 더 있긴 한데 공짜 술 소식이 타과까진 넘어가진 못했는지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늘 술에 조져지는 건 친구들이었고 술에 취하는 것도 친구들이었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친구들 오기 전에 하림이 이미 후배들이 따라 주는 술을 빠짐없이 마신 탓이었다.
하림은 이미 술 잘 마신다고 전교에 소문이 다 난 상태였다. 덕분에 하림과 술 먹겠다고 온 1학년만 여덟 명이었다. 후배들이 술 따라 준다고 한 바퀴 다 돌고 나면 하림 혼자 한 병을 먹게 되는 거라 이미 하림은 친구들이 끼어들기 전부터 네 병은 먹은 상태였다.
웬만해선 볼 수 없는 하림의 술 취한 모습을 보기 위해 친구들은 눈빛을 교환했다. 무리의 대장은 하늘이었다. 하늘은 오늘따라 마시는 속도가 꽤 빨라 하림의 친구 무리 중 가장 취한 사람이기도 했다.
“써하림, 제대로 좀 앉아. 더워.”
“에어컨 틀어 달라고 해.”
“틀어져 있어. 18도야.”
“추워…….”
하림이 하늘에게 앵기기 시작하면 술에 취했다는 신호다. 경환이 음흉하게 웃으며 1학년들을 불렀다.
“잘 봐라. 너넨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술 취한 서하림을 보게 되는 최초의 1학년이 될 테니까.”
“으, 오글.”
지나가 경환의 입에 단무지를 쑤셔 넣었다. 하림은 경환을 바라보고 웃으며 술 취하려면 멀었다고 허세를 부렸다. 하늘의 어깨에 기대 있던 몸도 바로 세웠다.
“덤벼. 나 아직 두 병은 더 먹을 수 있어.”
“올, 세게 나오는데.”
1학년 후배들에게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광경이었다. 1학년 셋은 물을 홀짝이며 정신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서하림 선배가 술 취한 건 보고 쓰러져야겠다는 각오로.
“어허. 나 빼먹지 마라. 지금 나 기분 존나 좋으니까 내 기분 망치면 다 같이 뒤지는 거야.”
“네, 다음 꽐라 된 약대생. 우리 과 와서 행패 장난 없고요.”
“그렇게 나와 봐라? 내가 기분 좋아서 너네가 궁금해하는 거 말해 주려고 했는데.”
“누님,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웨스트스카이십니다.”
“고럼고럼. 일단 서하림부터 조지자. 내가 뭐만 말하면 입 막을 게 뻔해.”
“무슨 얘길 하려고.”
“글쎄? 네가 좋아하는 팬티 무늬? 아니면 김.”
하림이 하늘의 입을 막았다. 그러면서 젓가락과 숟가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늘이 웃으며 어깨만 씰룩했다.
“야야, 애기들 보는데 너무 폭력적이다.”
“말조심해.”
“넵! 충성!”
하지만 하늘은 이미 술에 취해 입조심을 할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성별과 김동규 이름 세 글자만 뱉지 않음 됐지. 모두의 염원대로 화제는 하림이 말을 아끼는 몇 가지 중 친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이슈인 하림의 애인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하림은 입을 다물고 술만 홀짝였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말을 하면 정색을 하려고 했는데 하늘이 해 주는 말들이 하나같이 동규를 칭찬하는 것뿐이라 하림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조금 얼떨떨하기도 했다. 술에 취해 있다 보니 어느 정도 과장됐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칭찬에 인색한 하늘이 이렇게까지 말해 주는 건 처음이었다. 남들 눈에는 동규가 저렇게 보이는 건가 싶어 하림은 내심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러웠다.
“아니 나는 지인짜 궁금한 게, 걔도 그렇게 예쁘다는데 서하림 옆에 둬도 괜찮아? 저 얼굴에 안 꿀릴려면 영화배우를 옆에 붙여야 할 텐데?”
“비주얼적으로 둘 보고 있으면 완벽한 조합이지.”
“와씨, 그러면 와꾸 비주얼 말고 그, 그 전체적인 건 어때. 바디 말이야, 바디.”
몸 이야기에 하늘은 마시던 물을 뿜고 말았다. 하림이 남 보여 주기 싫다고 꽁꽁 숨기고 있는 동규의 몸은 하늘도 고등학생 때 체육복 갈아입는 거 본 게 다였다. 남자 탈의실 있는데도 동규는 귀찮다고 가끔 교실에서 갈아입었고 그건 여학생들의 눈요깃거리였다.
몸이 좋은 몇몇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동규를 따라 한다고 탈의실이 아닌 교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게 유행을 탈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물론, 동규는 동규로부터 시작된 그런 유행이 학교를 돌았다는 것도 몰랐고 체육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는 여학생이 많았다는 것도 몰랐다.
둘이 사귀게 된 뒤로는 동규가 꼭꼭 탈의실 가서 체육복을 갈아입었지만 이미 전교에 김동규 몸 좋다는 소문은 파다하게 퍼진 뒤였다. 사귀기 전엔 교실에서 옷 갈아입는 동규 얘기 들을 때마다 하림이 아닌 척 분노를 많이 삭이곤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하늘은 알 바가 아니었다.
“서하림은 밀가루 인형 같은데 걔는 좀 까매. 건강미 장난 아니야.”
“건강미? 육체미가 있다는 말?”
“어, 맞아. 그게 더 정확하다. 몸이 탄탄해. 탱글탱글.”
1학년 학생들이 꺄아 하고 작게 소리를 질렀다. 하림의 친구들은 말없이 국자로 탕만 뒤적이고 있는 하림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히려 아무 말도 없는 게 멋있다며 난리가 났다.
“그래서 서하림이 걔가 노출하는 걸 엄청 싫어해.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반팔 티, 반바지도 못 입게 할 정도임.”
“어느 정도길래…….”
“걔 왕가슴이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숟가락으로 부지런히 국물을 떠먹던 하림이 사레가 들어 심하게 기침하는 소리가 났다. 친구들은 하림에게 삿대질을 해 가며 그렇게 안 봤는데 밝힌다느니, 너도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느니 하며 요란을 떨어 댔고 1학년들은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며 이 빅 특종을 어서 다른 친구들에게 알리자고 각자의 휴대폰을 들었다.
“서하늘!”
“왜, 거짓말 아니잖아.”
“너 걔 몸 만진 적 있어?”
탱글탱글하단 건 어떻게 아냐는 말은 하늘만 들릴 정도로 작게 물었다. 하늘은 대답 대신 능글맞게 웃었다. 하림은 빨리 말해 보라며 하늘의 옆구리를 찔렀지만 하늘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하늘이 조개처럼 입을 다문 이상 일단 대답 듣긴 글렀다. 하림은 내일 다시 물어보기로 하고 다음으로는 친구들의 거센 질문을 방어했다. 후배들조차 하림에게 박수를 치며 엄지를 들었다.
“나는 걔 몸 때문에 좋아하는 거 아니야.”
“좋아하는 이유 중에는 몸도 있고 가슴도 있는 거겠지.”
“캬, 서하림 진짜 부럽다 부러워.”
“아나, 진짜. 걔는 그거보다 귀엽고 말도 예쁘게 하고 감성도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여려서 보호 본능.”
“그러니까 어쨌든 몸도 장난 없다 이거잖아.”
“와, 진짜 콩깍지가 이렇게 무섭다. 걔가? 보호 본능? 야 걔가 무표정으로 있으면 지나가던 애들이 울어. 무섭게 생긴 아저, 사람 지나간다고.”
“애기들도 걔 좋아해.”
“아 네. 콩깍지 오졌고요.”
“약간 그런 건가?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사귀는 사람 얼굴은 보지 않는다, 뭐 그런 거.”
“얼굴도 서하림한테 안 꿀린다고 한 거 못 들었어? 취했네.”
“안 취했거든.”
졸지에 몸만 밝히는 호색한으로 몰린 하림은 기분이 수직으로 가라앉았다. 아주 불쾌하고 언짢았다. 물론 동규의 탄탄한 구릿빛 몸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동규가 키 작은 배불뚝이었어도 하림은 동규를 작고 동그래 귀엽다고 했을 거였다. 하늘을 붙잡고 흔들면서 너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어떻게 할 거냐고 원망을 해 봐도 하늘은 깔깔거리며 웃기만 하고 동문서답을 했다.
“가슴 크면 낮에도 밤에도 좋겠네요.”
1학년 남학생의 초 치는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당황한 후배가 아니라며 얼버무렸다.
“어…… 너 좀…… 너무 갔다.”
“야, 미쳤어?”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뭐가, 좋겠는데. 말해 봐.”
동규의 성별을 떠나 명백히 선을 넘는 발언에 하림은 후배를 빤히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림도 꽤 많이 마신 상태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래도 하늘을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아 거의 눈을 감고 있는 하늘의 팔을 붙잡았다.
“하늘이 오늘 우리 집에서 잔다 그랬어.”
지나가 괜찮다고 하림에게 어서 가라며 손짓했다. 말실수를 한 1학년 후배도 하림을 따라 일어나 거듭 사과를 했지만 하림이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카드를 꺼내 계산대 앞에 섰다.
“선배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미쳤었나 봐요.”
“그런 것 같더라.”
“저도 이상형이 몸 좋은 여자라 부러운, 아니 그건 둘째고 선배님 애인분께 제가 실례되는 말을 했어요.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보통은 내가 먼저 자리 뜨면 여유롭게 계산하는데 오늘은 너 때문에 여기까지만 계산했다고 경환이나 지나한테 그렇게 얘기해.”
“선배님. 제발 제 말 좀 들어 주세요.”
길을 막는 후배 때문에 하림은 험한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지금 말고 정신 맑을 때 해. 사람 길을 막고 뭐 하는 거야.”
“그럼 내일, 내일 사과드리면 받아 주시는.”
“아니.”
“선배님, 제발요.”
후배는 아예 하림의 팔을 붙잡았지만 가볍게 떼어 내고 술집을 나왔다. 대리 기사 부르기도 귀찮아 그냥 택시를 타려는데 기분이 확 상했다. 후배고 서하늘이고 새삼 생각해 보니 또 화가 치미는 게 아닌가.
하림은 근처에 보이는 아무 편의점이나 들어가 소주를 샀다. 안주는 열심히 뒤져 봐도 먹을 만한 게 없어 동규가 좋아하는 짜 먹는 요거트를 골랐다. 편의점에서 종이컵을 파는 줄 몰라 야외 테이블에서 병째 소주를 들이켜고 짜 먹는 요거트로 입가심을 하고 있으니 동규 생각에 복잡 미묘했다.
“서하늘……. 그래서 탱글탱글 어떻게 아냐고.”
분노로 남은 술을 모두 들이킨 하림은 새로 또 한 병을 사 와 쓰린 속을 술로 달랬다. 그러자 이번에는 갑자기 서러웠다. 사람들에게 내가 김동규 애인이라도 말도 못 하고, 김동규 내 거라고 티를 낼 수 없다는 게 이토록 서러울 수가 없다.
“이게 뭐냐, 진짜.”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근데 김동규는 보고 싶고, 막상 보면 속상할 거 같아 발걸음은 떨어지지도 않고. 하림은 새로 요거트를 잘라 입에 물었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청승맞게 굴다 두 병을 비운 하림은 동규에게 전화가 온 것을 확인하고 정신을 차렸다. 숨 내쉴 때마다 알코올을 뱉는 것 같다. 눈을 감았는데도 어질어질해 까만 시야가 일렁거렸다.
하림이 전화를 받지 못해 화면은 부재중 전화를 알렸다. 일단 택시부터 타야겠다. 하림은 하나 남은 요거트를 주머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동규에게 전화가 왔지만 택시를 타고 받고 싶어 진동을 무시했다.
택시에 올라타 동규에게 전화를 거는데 기분이 존나 구렸다.
-하림아 왜 전화를 안 받았어.
“…….”
-여보세요?
“네, 김동규 여보인데요.”
-그게…… 무슨……. 차는?
“나 택시 탔어.”
-전화하지. 데리러 갔을 텐데.
“몰라. 지금 존나 짜증나.”
-지금 어디쯤이야? 나갈까?
“응. 1층 내려와 있어.”
-지금 나갈게.
전화 끊고 휴대폰을 아무렇게나 던진 뒤 눈을 감았다. 하늘도 짜증 나고 개소리한 후배는 좆같았다.
집 앞에 택시가 도착했는데도 하림은 문을 열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사도 손님의 눈치를 보며 가만히 있었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규는 하림이 안에 있는 것 같은데 왜 나오지 않는 건지 잠시 머뭇거리다 문을 열었다. 그제야 하림은 카드를 건네 계산했다.
“많이 마셨어?”
“응.”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하림 스스로 많이 마셨다고 인정한 적은 없었다. 처음 듣는 대답에 동규는 조용히 손을 뻗어 하림을 택시 밖으로 빼냈다.
“휴대폰 찾아 줘. 던졌는데 아래에 떨어졌을 수도 있어.”
다행히 휴대폰은 아래에 떨어지지 않고 시트 위에 있었다. 하림은 동규에게 기대어 택시가 돌아 나가는 걸 가만히 보고 있다가 몸을 돌려 동규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동규의 잠옷을 잡아 뜯었다. 갑자기 가슴을 훤히 내밀게 된 동규가 다급하게 손으로 가렸다.
“뭐, 무슨, 왜?”
하림은 대답도 없이 성질을 부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동규는 이미 단추가 다 뜯어진 잠옷으로 가슴을 여몄다. 엘리베이터에서도 하림은 얼굴을 찌푸린 채 입술만 짓이겼다. 술 냄새도 엄청 나고 휘청거리는 하림을 잡아주고 싶은 동규였지만 하림이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너무 화난 게 보여 손도 댈 수가 없었다.
“…….”
어서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지문 인식 패드에 손가락을 올려놓기 무섭게 떼느라 자꾸 손가락을 제대로 올려놓으라는 경고음이 나왔다. 하림은 무슨 지문 인식을 1초씩이나 하냐며 욕을 중얼거렸다. 하림 문을 주먹으로 부수기 전에 동규는 하림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고 제 손가락을 올렸다.
“씨이, 내 집인데…… 왜 나는 안 열리고 네가 하니까 열리는데.”
“우리 둘이 같이 사는 집이니까.”
“어어.”
얼빠진 소리를 낸 하림은 동규의 허리를 껴안았다.
“또…… 반했어. 동규야 이거 먹어.”
하림이 주머니에 넣어 온 짜 먹는 요거트를 동규에게 건넸다. 동규는 이게 왜 하림의 주머니에서 나온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고마워, 잘 먹을게.” 하고 신발을 벗었다. 동규는 빠르게 실내화로 갈아 신기까지 했지만 동규를 안은 하림은 아직도 신발을 벗지 못하고 헛발질만 했다. 그러면서 또 씩씩거렸다. 동규가 하림의 팔을 풀고 앉아 하림의 신발을 벗겼다.
“술 취하면 성격이 급.”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하림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빠르게 받아 낸 동규가 하림을 품에 안아 일어났다.
“씻을래? 아니면 씻겨 줄까.”
혼자 하겠다고 해도 씻겨 줄 생각이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간 욕을 먹을 것 같아 예의상 물어봤다. 하림이 작은 목소리로 씻겨 달라는 대답을 하면서 숨을 푹푹 내쉬었다. 술 깨기 위해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었지만 술 냄새가 너무 나 하림의 숨만으로도 동규가 취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욕조에 하림을 눕힌 동규가 하림을 구석구석 씻겨 주는데 하림이 중얼거리다 잠에 들었다. 도대체 왜 다짜고짜 잠옷을 찢어 버린 건지 묻고 싶었는데 내일로 미뤄야 하나 보다.
동규는 물을 틀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거품을 씻겨 주다가 하림의 발가락을 톡톡 건드렸다. 사실 조금 전부터 동규의 것은 힘을 받고 있는 중이어서, 하림을 옆에 두고 동규도 자위하며 한 번 씻을까 하던 차였다. 술에 취해 있으니 하림의 발에 제 것을 비비든 손에다 비비든 하림은 모를 것 같았다. 발가락을 문지르던 손에 힘이 들어가려는데 하림이 물을 참방거리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언제…… 깼어.”
“조금 전에 물, 아…… 서하늘…… 이…… 십, 은…….”
“뭐라고?”
“그으…… 속…… 안 좋아.”
“그래, 얼른 자고 내일 아침에 해장국 끓여 줄게.”
“해장국 끓여 줘. 더워. 덥고…… 어지러워.”
“응. 다 씻었어. 나갈 거야. 일어날 수 있어?”
“일어날 수 있어. 손 잡아 줘.”
동규의 손을 잡고 일어나긴 했는데, 하림은 동규가 따뜻한 물로 씻겨 주는 동안 술기운이 완전히 돌아 제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다시 털썩 주저앉은 하림이 동규의 허리를 껴안았다. 얼굴에 바로 동규의 사타구니가 닿았고, 천 너머로 단단한 동규의 것이 느껴졌다.
“동규야아, 김……동규.”
“으응?”
안 그래도 힘이 들어가고 있던 게 하림의 얼굴이 닿자 바로 한 번에 서는 느낌이다. 하림은 잠옷과 속옷 안에서 움찔거리며 단단해지는 동규의 것에 웃음이 나왔다.
“왜…… 안 벗었어. 벗고 잔다고 그랬잖아.”
“응?”
“덥다며. 그래서 내 손이랑 발 시원해서…… 좋은 건데 만지면 간지러워.”
“그랬어? 그럼 이제 조금만 만질게.”
“왜 조금만 만져. 많이 만져.”
“아, 근데 하림아 나 지금 좀…… 차라리 방에 가자.”
“방에 가는 건…… 어지러워. 나 술 진짜 많이 먹어서 바닥이 막 흔들리고…… 김동규 1.5명 됐어. 근데 그러면…… 샴쌍둥이들은 유전학적으로 한 명인데 민증은 두 개 나온다? 뇌가…… 사람의 본질인 거란 거지. 그럼……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는…… 인간은 사유의 동물이고…… 일란성 쌍둥이랑 비슷한 건데…… 너 그런 사람들 본 적 있어?”
“없는 것 같아.”
방으로 가는 동안 동규는 알 수 없는 수학 공식의 증명까지 설명하는 하림에게 열심히 대답을 들려줬다. 수포자인 동규가 이해는 못한 듯해도 반응만큼은 확실하게 해 주니 하림은 기분이 굉장히 좋아졌다. 웃음 가스라도 마신 것처럼 웃음이 픽픽 새고, 동규가 위로 올라와 하림의 성기에 제 성기를 비벼 대도 적절한 자극이라 몸이 기분 좋게 떨려 왔다.
“가슴이랑 목 만져 줘.”
“응.”
“귀도…….”
하림의 주문에 동규는 두 손을 펴 가슴을 매만지고 목을 쓰다듬었다. 따뜻해서 좋다는 하림의 말이 야하게 들렸다.
“아까는 왜, 화가 났었어?”
“응. 화났었어.”
몸 구석구석 만져 달라는 하림의 주문을 완수한 동규가 하림의 얼굴을 쪽쪽거리며 옷을 벗었다. 하림은 서서히 발기하는 제 것을 잡고 웃을 뿐이었다.
“서하늘이 뭐라고 했어?”
“아.”
하늘의 이름을 듣고 아까 전 좆같았던 상황이 떠오르자 갑자기 하림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동규의 어깨를 발로 밀었다. 동규는 뒤로 벌렁 누웠고 그 위로 하림이 타고 올라왔다. 누워 있다 갑자기 일어나니 하림은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서, 서하늘이 무슨 짓을 한 건데? 나 걔한테 아무것도 한 거 없어.”
“너.”
“응.”
“너, 김동규 너 말이야.”
“응.”
“나 진짜…… 너 진짜 진짜 좋아해. 사랑해. 너밖에 없어. 너뿐이야. 네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도 있어.”
“나도 그래.”
“그래. 밤하늘의 별? 따 달라고 하면 운석이나 달 암석 사 줄게. 우주여행…… 그것도 보내 줄게.”
“괜찮아.”
동규는 제 어깨를 누르는 하림의 손을 가져와 입을 맞췄다. 그래도 하림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나는 네가 너무 너무 좋은데…… 네가 못생긴 아저씨였어도 좋아했을 거야.”
“……응?”
“너도 내가…… 네 몸 보고 좋아한다고 생각해? 그것만 좋아한다고?”
“무슨 소리야.”
“대답해. 어지러우니까 빨리.”
“아니야. 그렇게 생각 안 해. 누가 그래?”
“그래. 네가 아니라고 그러면, 그럼 됐어. 사랑해.”
하림이 동규를 와락 안더니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들을 말해 준다며 중얼거렸다. 하림의 발기한 것이 배를 간질여 조금 힘들었지만, 하림의 입으로 자기를 왜 좋아하는지 직접적으로 듣고 있으니 동규는 부끄러우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좋은 쪽으로.
동규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하림이 발견하고 좋아해 주고 있었다. 하림은 생각을 골똘히 할 때마다 윗입술을 살짝 무는 버릇이 있는데, 하림은 스스로 그런 버릇이 있는 것도 모르지만 동규는 하림이 그럴 때마다 엄청 좋아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림도 저와 똑같다는 걸 이렇게 확인받으니 무척 신기하기도 했다.
“너도 왜 내가 좋은지 말해 줘.”
“그러려면 밤새야 돼.”
“밤 새. 나도 만오천 배 압축해서 얘기한 거야. 전에…… 내가 너한테 일주일 걸린다고 했었어. 빨리빨리. 말해 줘, 말해 줘.”
동규가 하림을 좋아하는 일곱 번째 이유를 말하길 끝마쳤을 때 하림이 동규의 입을 틀어막고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아,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입을 막힌 동규도 동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니까 김동규가 원하는 소원 하나 들어준다. 음. 뭐…… 해 줄까.”
정작 말을 해야 할 동규는 대답도 못 하게 계속 입을 틀어막은 하림이 지금까지 동규에게 들었던 수많은 꿈들을 엉망진창으로 얘기했다. 진짜로 저 중에 하나를 들어주겠다는 건가. 동규는 흥분으로 심장 박동이 점점 올라갔다.
“정했어.”
동규도 하나를 정했는데 하림의 손으로 입이 막혀 있어 눈만 깜빡였다.
“눈 가리고 생크림 먹을게.”
눈 가리고 한다는 것과 몸에 생크림 뿌려 놓고 핥는다는 게 이상하게 변형됐지만 동규는 뭐든 다 OK였다. 하림이 눈을 가릴 걸 가져오겠다며 동규에게서 손을 뗐다. 하지만 동규는 하림의 손목을 붙잡고 허리를 껴안았다.
“진짜로 뭐든 다 해 주는 거 맞아?”
“맞아. 정했어. 해 줄 거.”
“그건 내가 정한 게 아니잖아.”
“네가 말했던 것 중에 고른 거니까 네가 정한 거지.”
“아니. 난 지금 하고 싶은 거 따로 있어. 그러니까 말해 줘. 진짜로…… 어떤 걸 말해도 해 줄 거냐고.”
“음.”
하림이 고개를 앞뒤로 달랑거리며 자기가 정한 걸 할지 아니면 동규가 얘기할 걸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내일 아침 동규가 해장국 끓여 준다던 말이 떠올랐다.
“예뻐.”
“응?”
“너는 왜 예쁜 짓만 골라해.”
“서하림 질리지 말라고.”
“그럼 나도 김동규 질리지 말라고 노력해야겠다.”
“너는 그런 거…….”
안 해도 된다고 말하려다가 지금이 인생 최대의 찬스라는 걸 동규는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술 먹고 풀어진 하림이 섹스 판타지 들어준다고 대놓고 나서는데 여기서 겸손을 떨었다간 평생 하림의 입에 좆 물려 볼 기회는 없을 것이다.
“해야지.”
“뭐 해 줄까.”
해사하게 웃는 하림에게 동규는 빨리 좆을 물리고 싶어 입술이 말랐다. 흥분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기 위해 하림에게 입을 한 번 맞춘 동규는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고 입을 열었다.
“……침대 아래로 내려가서 무릎 꿇고 앉아.”
“응.”
얌전히 내려가 앉은 하림이 동규를 올려다본다. 동규는 이러다 입에 넣기도 전에 한 번 쌀 것 같아 귀두를 틀어막았다.
“입 벌리고.”
“입…….”
뭔 줄 알고 입을 저렇게 작게 벌려. 눈은 또 왜 감는 건데.
“만약에, 만약에라도 많이 역해서 토할 것 같으면 바로 얘기해. 입…… 더 크게 벌려. 안 들어가.”
요도에 있는 힘껏 힘을 주어 정액이 터져 나오지 않게 하면서, 동규는 하림의 입 안으로 제 것을 넣었다.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림의 이가 닿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지금이라도 다시 욕조로 뛰어 들어가 제 것을 또 박박 닦아 와야 하는 건 아닌지, 하다못해 와인이나 양주를 부어 임시방편으로라도 소독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처음 벌렸을 때보다 입이 한껏 벌어졌다. 하림의 입이 작아 위아래 이빨에 기둥이 죄다 긁혔다. 두툼한 귀두가 하림의 입천장에 닿았을 때, 하림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이상해? 미안해.”
놀란 동규가 허리를 뒤로 뺐다. 그리고 괜히 시켜서 미안하다며 열심히 땅굴을 팠다. 하림은 손가락 두 개를 입에 넣어 조금 전 입에 들어왔던 것의 크기를 가늠했다.
“…….”
“하지 말까?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넌 비위가 약하니까, 그, 힘들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 넣어 봤던 거로 충분해.”
차라리 좆에다 뽀뽀나 몇 번 해 주고 얼굴에 문지르게 해 달라고 할 걸 그랬다고 동규가 식은땀을 흘리는 와중 하림이 동규의 것을 다시 잡고 귀두에 입을 맞췄다. 천천히 기둥을 타고 뿌리까지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아주 역겹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술에 취해서 그런가 눈에 뵈는 게 없어 까짓 거 한 번 빨아 주는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가끔 이렇게 성기에다 뽀뽀를 해 준 적도 몇 번 있었다.
“약속…… 했잖아.”
“뭐, 뭐를?”
혀를 뺀 하림이 동규의 핏줄을 그림 그리듯 혀를 세워 쭉 따라 올라갔다.
“잠, 하으, 아! 으윽, 아, 이거…… 이거 하리, 서, 그, 그만…….”
하림이 귀두 한쪽을 입에 물고 가볍게 빨아 올렸다. 귀두를 입에 다 넣은 것도 아니고 고작 일부분만 그랬을 뿐인데, 동규는 참지 못하고 사정을 하고 말았다. 하림은 얼굴에 정통으로 동규의 정액을 맞았다. 적지 않은 양에 하림은 깜짝 놀랐다.
“…….”
“아, 어떡해. 미안해. 닦아 줄게.”
“닦아 줘.”
휴지로 하림의 얼굴을 닦아 주던 동규는 휴지 뭉치로 앞이 보이지도 않는 하림이 제 것을 더듬는 걸 느끼고 얼음이 됐다.
“계속해. 하다가 못 할 것 같으면…… 알아서 뺄 테니까. 아 하면 돼?”
하림은 동규의 손과 휴지들을 치워 버리고 입을 벌렸다.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또 동규를 올려다본다. 동규는 머릿속에 파도, 지진, 태풍, 번개 같은 온갖 것들이 내리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림의 뒷머리를 잡았다.
“너무 좋아서 입 안에 쌀지도 몰라.”
“응.”
“그럼 진짜…… 토할 수도 있어.”
“토하면 뱉으면 되지.”
“이게 진짜, 취해서 아무 말이나 막 하네.”
“동규야.”
“하…… 난 몰라. 분명히 말렸어. 몇 번이나. 좋다고, 해 주겠다고 한 건 너야.”
“응. 좋아.”
입 모양으로만 욕을 하고 동규는 입술을 물었다. 입을 얼마나 벌려야 동규의 것이 들어올 수 있는지 이제는 아는 하림이 입을 크게 벌리며 동규의 귀두를 물었다. 동규가 제 것을 닦긴 했어도 사정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요도에서 비릿한 맛이 올라왔다.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지 마, 하림, 하림아, 하아…….”
동규가 어떻게 어딜 혀로 핥아 줬더라. 어떻게 어느 정도로 빨아 줬었지.
머리가 어질어질해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림은 요령 없이 동규의 것을 점점 안으로 꾸역꾸역 넣었다. 동규의 입 안에 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으니 동규도 그럴 것이다. 입 안에서 움찔거리는 게 혀로 느껴져 기분이 이상했다.
하림이 동규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동규는 괴로운 듯 얼굴이 구겨져 있었다. 뒷머리를 쓰다듬는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깊어질수록 터져 나오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말해 주고 싶은데, 입이 틀어 막혀 말할 수가 없는 게 아쉬웠다.
동규의 성기를 잡고 있던 두 손 중에 하나를 떼어 허벅지에 올렸다. 탄탄한 근육이 바짝 서 팽팽했다.
“아, 흐으, 하아, 깊, 너무 깊게는, 흐윽, 하아, 아…… 다, 다치니까, 하진…… 읏! 다쳐, 하림아…….”
하림은 동규의 것을 안으로 더 깊이 넣기 위해 숨을 크게 한 번 쉬었다. 동규의 체향이 진하게 맡아졌고 목구멍이 아픈 것 같아 눈물이 고였다. 동규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림의 목이 완전히 꺾여 동규의 것이 조금 더 밀려 들어갔다. 동규는 신음을 짐승처럼 흘리면서도 손을 뻗어 하림의 목을 더듬고는 허릴 살짝 움직였다. 안으로 성기가 박힐 때마다 목이 불룩해지며 동규의 것이 보이는 듯했다.
“씨발, 미친, 아…….”
하림의 목에서 손을 떼고 머리를 뒤로 넘겨 주었다. 하얗고 동그란 예쁜 이마가 드러났고, 눈물로 젖은 눈과 숨이 달려 붉게 달아오른 볼이 보기 좋았다.
한 번에 목젖이 닿을 정도로 깊숙하게 넣는 건 불가능하겠지. 입을 열면 나오는 게 신음과 욕밖에 없었다. 그래, 꿈에서 백날 서하림 목에 처박고 정액 싸질러 봤자 실제만은 못하다. 버거워하는 게 뻔히 보이지만 허리를 뒤로 무르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하림이 그만하라고 우는 꼴을 볼 때까지 목구멍을 괴롭히는 충동을 참는 것만 해도 동규는 평생에 쓸 인내심을 끌어다 쓴 거였다.
“움직……일 수 있겠어? 더 깊이 안 넣어도 돼. 후으…… 이제 더 들어가지도…… 못해.”
천천히, 하림이 머리를 뒤로 움직였다. 그만큼 빠져나온 성기는 하림의 침이 묻어 반질반질했다. 그게 뭐라고, 동규는 또 쌀 뻔했다. 크기가 크기다 보니 나가는 것도 일이라 하림은 눈을 꾹 감았다.
“나는, 아…… 후으…… 안 움직일게. 네가 움직여.”
귀두만 입에 문 하림이 고개를 흔들었다. 동규는 하림의 아랫입술을 두어 번 쓸어 보았다. 엄지손가락 아래 느껴지는 입술이 뜨거웠다.
“너는 입도 좁아.”
느리게 움직이는 하림의 속도가 너무 감질나 허리를 움직이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참았다. 하림이 이만큼 오래 남의 성기를 물고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라는 건 아는데, 그런데. 하지만 자신이 하림의 것을 추접하게 빨고 목구멍 깊숙이 빨아 목젖까지 쑤셔 넣는 것처럼 하림의 깊은 곳까지 제 것을 처넣고 싶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의 좆으로 목구멍이 다쳐 며칠 동안 침만 삼켜도 숨만 쉬어도 목 안이 따끔거리고, 기침이라도 할라 치면 목구멍을 가득 넓히던 성기의 감촉과 살 냄새가 떠올라 몸이 달아오르도록 그렇게 하림의 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었다.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하림은 지금 어떤 생각인지 알 수 없지만, 동규는 그랬다. 만약 하림처럼 술을 마셨더라면 정말로 그렇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입 안이 가득 차 혀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요령 없는 하림이 귀엽다. 서하림이 못 하는 것도 있다. 많이 물어보면 커다란 좆을 삼키고도 목구멍과 혀를 잘 쓸 수 있을 텐데.
이제는 동규가 하림에게 펠라티오를 할 때마다 꼭 하는 게 있는데, 바로 귀두만 입에 물고 요도를 쪽 빠는 것이다. 강제로 안에 있는 무언가를 뽑아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고 싶어 일부러 반드시 하는 거였다.
그렇게 빨다 보면 정액이든 소변이든 뭐든 하림의 의지로 싸는 게 아니라 동규의 흡입으로 배출하는 거라 하림이 당황해하는 모습도 신선하고 몸 안쪽 깊숙한 기관부터 억지로 딸려 오는 감각에 몸을 떠는 걸 보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그걸 하림이 기억하고 그대로 따라 했다. 동규는 생각도 못하고 당한 공격에 그만 하림의 입 안에 사정을 하고 말았다. 정액이 터져 나오는 순간, 동규는 하림의 입에서 제 것을 빼냈다. 하림도 비릿한 맛에 동규의 정액을 모두 뱉어 버리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동규가 휴지를 빠르게 뽑아 대충 바닥에 던져 놓고 하림을 뒤따라갔다.
변기를 붙잡고 구역질을 하는 하림의 등을 두드리며 동규가 몇 번을 미안하다고 한지 모른다. 하림이 괜찮다고 손을 들어 의사를 표시했지만 동규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저녁 내내 먹은 것들을 토해 냈다. 마신 게 술밖에 없어 나오는 것도 투명한 물뿐이었다.
“아, 죽겠다…….”
“그러니까 내가 그랬잖아. 입에 쌀 수도 있다고. 나 존나 조루 새끼라 이럴 줄 알았어.”
“아니 왜 네가 우는 건데.”
“몰라…….”
울지 말라고 동규에게 손을 뻗었다가 하림은 다시 변기를 붙잡았다. 더 이상 토해 낼 게 없을 정도로 하림은 잔뜩 쏟아 내고 입 안을 헹궜다. 그래도 아직 비릿하고 끈적거리는 게 남아 있는 것 같아 의자를 끌어와 앉고 동규의 발을 톡톡 건드렸다.
“양치.”
“알았어. 해 줄게. 기다려.”
“아직도 속 울렁거려.”
“미안해…….”
“괜찮아. 양치하면 좋아질 거야.”
“아직도 어질어질해?”
“으응. 김동규 1.2개로 보여.”
“어떡해…….”
칫솔모가 감당할 수 있는 면적보다 넘치게 치약을 짠 동규가 하림의 턱을 잡고 양치를 시작했다. 그런데 칫솔질을 하면 할수록, 거품이 나면 날수록 동규는 다리를 배배 꼬며 뜨거운 숨만 뱉었다. 발을 까딱거리던 하림이 동규와 눈을 마주친 채 손을 뻗어 동규의 허벅지를 피아노 치듯 하다가 종국엔 성기를 붙잡은 탓이었다. 동규에게서 커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 마. 양치하잖아.”
고개를 까딱한 하림은 동규의 것을 잡고 위아래로 움직였다. 꼼짝없이 하림의 손으로 자위를 하게 된 동규가 입술을 깨물고 어쩔 줄을 몰라 하자 하림은 웃음이 나왔다. 많이도 짠 치약 때문에 한가득 생긴 거품이 침과 함께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빠이해.”
“진짜…… 너 이제 술 조금만 마셔.”
“엉.”
“혼나, 많이 마시면.”
하림이 웃으며 양치를 해 주던 동규의 손을 잡아 뺐다. 바닥에 거품을 뱉어 버리고, 동규의 것을 세게 잡았다.
“많이 마셔야지. 혼내 줘.”
“너 진짜!”
“저번에, 이거로 혼내 줬잖아. 좋았는데.”
“서하림!”
“왜 소리를 질러.”
동규가 목소리 크게 내는 걸 듣는 게 1년에 다섯 번은 될까. 동규의 반응에 하림은 손을 움직이는 속도를 더 높였다. 그놈의 왕가슴이 힘을 받아 부풀어 올랐다. 하림은 동규의 성기에서 손을 떼고 동규의 양쪽 가슴을 잡았다. 언제 만져도 말랑하고 묵직한 가슴 근육이 손바닥을 가득 채웠다.
“……또 쌀 뻔했다. 아직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양치 마저 해 줘.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말끝을 따라 하고 있는 것 같다. 술버릇인가. 하림이 이렇게까지 취한 건 처음 보기 때문에 확신할 순 없어도 제 말끝을 자꾸 따라하는 하림이 너무 귀여웠다.
“아 해.”
“아.”
사정을 하지 않은 성기는 여전히 꺼떡거리고 있었지만 동규는 하림의 입 안을 빠르게 칫솔질하기만 했다. 하림은 계속 웃으면서 거품을 질질 흘려 댔다.
하림은 동규의 가슴을 주무르던 손을 떼고 제 것을 잡았다. 동규는 최대한 하림이 자위하는 걸 모르는 척하며 하림의 입 속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졸린 건지 몸을 바로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양치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양치 컵에 물을 가득 담아 오로록까지 시켰을 때 동규의 배와 가슴엔 하림의 정액이 튀어 있었다. 그대로 동규가 하림의 다리 한쪽을 들어 올렸다.
“뭐가 그렇게 급해. 나 아직 양치 안 끝났어.”
“다 끝났어. 물 뱉었으면 다 했지.”
“물 남았어.”
“물 남은 거 버려.”
부족한 건 알지만 손가락 두 개에 침을 묻혀 밀어 넣었다. 하림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여전히 얼굴은 웃는 낯이었다.
동규는 작게 욕을 내뱉고 젤을 꺼내 왔다. 통을 터트릴 기세로 힘을 주어 짰다. 힘에 밀린 내용물들이 죄다 빠져나와 힘줄이 솟은 성기 위로 쏟아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것들도 꽤 되었다. 동규는 성기 구석구석 모든 곳에 젤을 바르고 하림에게 붙었다. 하림의 손에는 양치 컵이 달랑거리고 있었다. 흔들릴 때마다 물이 떨어졌다.
“바로 넣을 거야.”
“바로 넣으면 아픈데.”
“너 아픈 거 좋아하잖아.”
“좋아하나. 글쎄. 그런가?”
“나도 술 먹으면, 나 술 먹고 섹스할 때도 이래?”
“너?”
“나는 술 많이 마시면 기억 하나도 안 나서.”
하림이 벽에 등을 편하게 기댔다. 동규가 삽입하기 편한 자세였다.
“너는…… 술 마시면 귀엽지. 앗, 천천히 해.”
“싫어.”
“아까 한 번 쌌잖아. 그런데도 급한, 아, 읏!”
“후으, 찢어지진…… 않을 거야. 아마도.”
힘으로 귀두를 밀어 넣자 하림이 세게 조여 왔다. 더 깊게 넣고 싶어도 하림이 동규를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하림이 들고 있던 컵을 놓쳐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동규는 아예 하림을 안아서 들어 올렸다. 몸무게 때문에 동규의 것이 반이 넘게 쑥 들어와 하림이 고개를 뒤로 꺾고 온몸을 떨어 댔다. 동규도 안이 너무 좁고 강하게 조여 와 다 들어가지 못한 성기가 아파 왔다. 얼른 쑤셔 대서 넓히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찢어지면, 아…… 침으로 치료해 줄게.”
하림의 어깨와 허리를 잡아 꾸역꾸역 안으로 다 밀어 넣고 동규는 숨을 골랐다. 하림에게선 숨을 제대로 쉬질 못해 컥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규 역시 아직은 아파 인상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뗐다. 걸음걸음마다 두 사람의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파…… 아파, 동규야.”
“하림아, 아, 힘 좀…… 나도 아파. 하으, 우, 움직이지도 못하겠어.”
“으응, 그럼 잠, 하아, 잠시만…….”
“움직, 여서, 하다 보면, 흐으, 아, 숨 천천히 쉬고, 하아…….”
하림의 귀를 살짝 물고 혀를 움직였다. 예쁜 모양의 귀를 따라 질척이는 소리를 냈더니 한 번 하림이 뒤를 바짝 조였다가 힘을 빼는 게 느껴졌다.
이제야 겨우 움직일 만해졌지만 늘 첫 삽입은 버거워 동규는 허리에 힘을 주었다. 열심히 쑤시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트인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 때부터는 하림도 동규도 눈앞에서 폭죽이 터지며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됐다. 오로지 서로만 존재하는 시간처럼, 게걸스럽게 탐해 갈 수 있다.
동규의 것으로 내벽이 넓혀지는 감각은 아무리 동규와 몸을 많이 섞었어도 적응하긴 힘들었다. 하림은 허리를 뒤틀며 그 감각을 오롯이 느꼈다. 적응은 적응이고 기분 좋은 건 좋은 거였다.
동규와의 섹스는 하면 할수록 끝을 몰랐다. 제일 처음 동규가 들어온 직후가 힘들지 그 이후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픔보다 쾌락이 더 커져 갔다. 아직은, 아픔이 조금 더 큰 시간이라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잠시 뒤 찾아올 쾌락을 잘 알고 있어 혀 아래로 침이 고였다.
하림의 안으로 깊게 삽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세를 두고 동규가 제일 좋아하는 체위는 바로 정상위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림을 볼 수 있으니까. 우는 것도, 좋다고 하는 것도 볼 수 있었으니까.
시각적으로 오는 오르가즘에 하림의 얼굴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분홍색의 젖꼭지도, 그 젖꼭지가 물고 빨려 색이 진해지는 거나 동규가 키스 마크를 남겨 흰 피부가 울긋불긋해지는 것 역시 동규를 즐겁게 하는 요소였다.
반대로 하림은 뒤로 하는 것을 좋아했다. 뒤로 하다 동규가 제 위로 엎어진 채 허리를 움직이며 귓가로 신음을 쏟아내면 그게 그렇게 섹시할 수가 없었다. 동규에게 뒤가 뚫린 채로 동규가 귀에다 신음을 때려 박으면 하림은 앞을 만지지 않아도 사정을 하거나 사정없이 오르가즘에 도달하곤 했다.
엎드리고 있으면 동규에게 뒤로 간 것을 들키지도 않아 동규의 목소리 때문에 사정감이 차오르면 참지 않고 정액을 모두 내보냈다. 물론 그 순간에만 들키지 않는 거지 자세를 바꿀 때 동규가 젖은 배를 발견하고 하림을 희롱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쾅쾅 동규가 쳐올릴 때마다 하림은 들끓는 쾌락에 몸을 뒤틀었다. 아직도 술이 깨지 않아 시야가 흐렸다. 뒤가 찢어질 것처럼 벌어진 아픔과 동규가 사정 봐주지 않고 찔러 대느라 배 안쪽에 느껴지는 아픔이 아니라면 꿈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머릿속이 몽롱했다. 잠도 쏟아졌다. 이 정도로 강한 자극과 감각이 아니라면 벌써 곯아떨어지고도 남았을 텐데 동규와의 섹스로 몰려오는 수마를 억지로 밀어내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먼저 몇 번 사정을 했다고, 동규가 강하게 압박하는 하림의 내벽을 꽤 오래 버텼다. 한 번도 사정을 하지 않았다면 벌써 하림의 안에 사정한 채 느리게 움직이거나 하림의 위로 엎어져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다시 크기를 부풀리고 있어야 할 시간에도 하림이 좋아할 곳들을 집요하게 찔러 대며 시트를 적셨다.
“으읏, 하아…… 너, 너무 빨라…….”
“나, 흣, 조금만 더…….”
사정감 바로 앞까지 당도한 동규는 속도를 더 빠르게 올렸다. 찔걱이는 소리가 빨라질수록 추접한 소리로 변해 갔다. 참았던 정액을 하림의 깊은 곳에 쏟아부으며 동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림이 키스를 하라며 보채는 탓에 동규는 하얗게 새어 버린 정신을 가다듬지도 못하고 하림의 입술만 좇았다. 빼지 않고 누워 하림과 키스를 했다. 하림은 동규와 키스를 하던 중에 사정했다.
동규의 입천장을 간질이던 하림의 혀가 갑자기 느려지더니 하림이 눈을 감았다. 이제 겨우 한 번 사정했는데 하림이 잠에 들어 동규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몸을 일으키고 아직 하림의 안에 있던 제 것을 꺼내 하림의 옆에 누웠다.
“서하림, 안 돼. 일어나.”
“피곤해. 졸려워.”
“나 아직 조금밖에 못 했어.”
“……응.”
“그리고 나 술 먹고 울면서 어떻게 하는지도 알려 줘야지.”
“아…… 맞아. 너 진짜…… 귀여워. 울면서…… 사랑한다구.”
“앞으로 술 많이 먹지 마 진짜로.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놓고 잘 수가 있어.”
“미안해.”
닫혀 있던 하림의 눈이 스르르 떠졌다. 몽롱한 눈은 반밖에 떠지지 못했지만 하림이 동규의 입술 위로 제 입술을 꾹 눌렀다.
“하다가 만약에 내가 진짜 잠들면…… 계속해.”
“저번에 해 봤는데 재미없어.”
“음…… 근데 너 나 자고 있을 때 내 거 잘 빨고 그러잖아.”
“그건 그렇지만 이건 같이하는 거잖아.”
피곤하긴 해도 하림도 여전히 달아올라 있는 건 사실이라 이대로 자기는 아쉬웠다. 내일 오전에 수업이 있던가. 그것보다는 토라진 동규가 귀엽다.
“너 술 취했을 때…… 진짜 내 말 고분고분 잘 듣는다?”
“응.”
하림이 동규의 가슴을 주물렀다. 이대로 자면 어쩌나 동규는 하림의 손길을 마음껏 즐기지도 못하고 침만 삼켰다. 통통한 유두도 만지작거리며 하림이 말을 이었다.
“우는데 할 말은 또 다 해요.”
“뭐라고.”
“손가락 빨아도 돼, 발가락 빨아도 돼, 엉덩이 깨물어도 돼 등등.”
“술은 좀 깬 것 같아?”
“아닌 것 같아. 지금 약간…… 고차원적인 생각은 못 해.”
“앞으로 취할 정도로 마시지 마.”
“음…… 저번에, 아 진짜 귀여웠는데 너는 왜 그걸 기억을 못 해, 바보야.”
반쯤 감겨있던 눈을 번쩍 뜨더니 하림이 동규의 위로 올라왔다. 손이 닿자 바로 단단해지는 것에다 젤을 듬뿍 바르고는 제 뒤에 가져갔다.
“괜찮겠어? 졸리다며.”
“졸린데 이렇게 하면…… 기억날지도 몰라.”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거야?”
“몰라, 시발. 나 지금 그런 생각 못 한다고 했잖아.”
“난 좋아.”
“흐으…….”
“아, 끝까지 넣어, 하림아, 아…… 좋아.”
하림은 배 속 깊숙한 곳까지 동규의 성기를 넣고 한동안 끙끙거렸다. 벌어진 내벽이 동규의 것을 가만히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에 술 취한 동규랑 이 자세로 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다가 동규가 허리를 움직였고 하림도 동규의 아랫배를 짚고 무릎에 힘을 줬다.
그 뒤로도 동규의 것을 빼지 않은 채로 한참을 있었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던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술에 취해 필름이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던 하림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섹스가 끝날 무렵 동규의 성기를 자의로 입에 물었다는 충격에서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