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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수석인 하림이 생각하기로 동규는 요란법석을 떤 것치고 시험을 잘 보진 못했다.
중간고사는 그럭저럭 보긴 했다. 그런데 동규가 거기에 탄력 받아 기말고사는 더 잘 보겠다고 신이 난 바람에 친구들과도 약속도 공부 약속만 잡고 하림이 저녁 먹으라고 집으로 초대해도 잠은 꼭 집에 가서 잤다. 아무리 봐도 하림이 보기엔 그 정도까지 해야 할 필요성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더 좋은 남자가 되겠다고 아등바등 노력하는 게 귀여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문제는 기말고사를 크게 잘 보지 않은 데에 있었다. 동규는 이럴 거면 뭐 하러 밤새서 대여섯 번 할 거 간신히 참고 아예 안 하거나 겨우 한두 번만 하고 집에 꼬박꼬박 들어갔는지, 친구들이 공부하던 중에 맛있는 저녁 먹고 오자고 해도 왜 굳이 거절을 했는지 후회가 거하게 들었다. 머리 나쁘다고 자책을 하는 동규의 옆에서 하림은 다음번에 잘 보면 된다고 몇 번이나 말해 주었다.
“서하림 진짜 대단해. 어떻게…… 모든 게 다 A+밖에 없어? 사람 학점이, 4.3이 나올 수가 있는 거냐고…….”
“나야 뭐, 어릴 때부터 하던 거니까.”
“학년 수석까지 했잖아.”
“고학년 되면 학년 수석은 못 할 지도 몰라.”
하림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성적을 떠올리자 속이 쓰렸다. 이 정도 성적 받자고 하림이 대놓고 유혹해도 수도승처럼 넘어간 게 아닌데. 하림은 아직 1학년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동규를 토닥였다.
“너무 속상해. 우리 엄마는 왜 공부 못해도 좋으니 건강만 하라고…….”
하림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있던 동규가 문득 서러워 하림의 허리를 껴안았다.
“튼튼한 게 최고야. 나도 네가 아프지 않고 나랑 같이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그래. 그것도 최고지. 그런데 내가 공부를 잘 했으면 너랑 같은 학교도 다니고 너네 부모님한테도 머리 좋다고 어필을 할 수 있는 건데.”
“다른 거로 전국 1등 했잖아.”
“그것도 다 옛날 일이야…….”
이미 시인으로 등단해 활동 중인 규연에게는 따로 등단 과외를 받고 있는데 그것도 잘 풀리지 않는다는 모양이다. 조금만 건드려도 울 것같이 시무룩해 있으면서도 동규는 하림의 허벅지 안쪽에 손을 넣었다. 하림이 아무런 말을 않자 좀 더 대범하게 아예 중심부를 꾹꾹 눌렀다.
“몸으로 위로를 해 달라?”
“안 돼?”
성기를 자극하는 동규의 손을 치운 하림이 동규를 밀치고 올라탔다. 아직 기운 없는 동규의 얼굴은 뭔가를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속상해하는 것도 같고. 잘 하지도 않았던 공부를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던 이유를 잘 알기 때문에 하림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대답하기 전에 동규에게 입을 맞췄다. 동규가 바로 입을 벌렸지만 하림의 혀는 조금 천천히 움직였다. 동규도 하림의 속도에 맞춰 느리게 입술을 움직이고 침을 삼켰다.
“김동규.”
“응.”
“졸업할 때까지 F만 맞지 말고 그냥 놀면서 학교 다녀.”
“그게 싫다니까.”
“어차피 내년까지는 등록금도 안 내잖아. 남은 2년도 내가 내줄게.”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알아. 내 말은 공부 하지 말고 차라리 열심히 글 써서 등단을 하라고. 토익도 보지 마. 토익 점수보다 네 발 사이즈가 더 커.”
“……몸으로 위로해 주려던 거 아니었어?”
“그건 당연히 해 줄 거고.”
하림은 다시 한 번 동규의 입술 위로 제 입술을 꾹 눌렀다 뗐다.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얘기야. 네가 잘 하는 거. 생각해 봐. 네가 글 쓴다고 나도 갑자기 미술을 하겠다고 하거나 영화를 찍겠다고 하면 잘하겠냐고.”
“넌 그림도 잘 그리잖아. 영화도 제대로 배우면 좋은 감독이 될 수 있을 걸.”
동규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림은 뭐든지 잘 하니까 틀린 말도 아니고. 동규의 말에 하림이 푸스스 웃음을 흘리며 웃었다.
“그래. 그렇긴 한데, 그것보다는 나는 연구하고 공부하고 그걸 더 잘할 수 있어. 맞아, 안 맞아.”
“맞아.”
“괜한 데 힘쓰지 말자. 나도 아줌마처럼 공부 못 해도 좋으니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하루 보내는 김동규가 되었으면, 아 나 지금 되게 노인네 같다. 손주한테 새해 덕담 하는 느낌.”
동규 위로 엎어져 있던 하림이 킥킥거리며 일어났다. 동규의 바지와 속옷을 벗겼다. 동규가 하림이 수월하게 벗길 수 있게 허리를 들어 주었다. 하림은 바지 지퍼를 풀고 제 성기만 꺼냈다. 만지지 않아도 발기해 잔뜩 서 있는 동규의 것을 눈으로 훑으며 서랍으로 손을 뻗었다.
하림은 콘돔을 찢어 제 것에 씌우고 그 위에 젤도 한껏 발랐다.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동규가 항상 해 줬던 것처럼 해 주기 위해 손바닥에도 젤을 가득 짰다. 누워 있던 동규가 상체를 일으켰다.
“여기서 하게?”
“그럼.”
“소파 싫다며.”
“아니?”
“방으로 가자.”
“여기서 한 번 하고.”
“침대가…… 좋은데.”
이 집에서 섹스 안 한 곳이 없는데 갑자기 빼는 동규가 이상했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젤이 느껴졌다. 속옷 벗기자마자 퉁, 하고 튀어나온 동규의 것은 힘줄까지 돋아 있는 상태였고 분명 동규도 참기 힘들 텐데 방을 고집하는 데에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하림은 분명 전에 소파에서 하는 게 싫다는 게 아니라 소파에서 오래하면 허리가 아프다고 했었다. 동규의 말이 무슨 뜻인지 눈치챈 하림은 눈을 흘기며 물었다.
“또 또 네가 하려고 그러지.”
동규는 대답대신 웃으며 하림에게 입을 맞췄다.
“좋아하잖아. 안에 넣어서 찔러 주면.”
하림의 손을 가져온 동규가 제 성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하림의 차가운 손가락과 제 손이 얽혀 단단해진 성기를 훑어 내리니 숨이 뜨거워졌다.
“오늘은 나한테 박혀서 울다가 너무 좋아서 자지러지는 거 보고 싶어.”
오늘뿐만 아니라 항상 네가 넣지 않았냐고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하림은 심장이 너무 뛰어 입술만 깨물었다. 동규가 슬슬 하림의 바지와 속옷을 벗겨도 그냥 두었다.
동규는 늘 하림이 원한다면 언제든 깔려 준다는 태도였고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매번 동규의 아래에 깔려 우는 건 하림이었다. 익숙한 게 무서운 거라고, 동규가 제게 삽입할 때 하림은 쉽게 절정에 달했다. 동규의 것을 안에 품은 채로 동규 목소리 듣다가 사정 않고 오르가즘까지 느낄 정도였으니 동규의 말대로 안에 넣어 찔러 주면 좋아하는 것도 맞고.
“대신 입에다 잔뜩 해. 목젖 다칠 정도로 깊게 쑤셔도 좋아. 응?”
동규가 하림의 성기에 씌워 둔 콘돔을 벗겼다. 하림은 마음을 정하고 일어나 아예 제 바지와 속옷을 다 벗어 버린 뒤 앉아 있는 동규의 위에 올라탔다. 남아 있는 옷을 벗은 동규는 가슴을 부풀려 힘을 줬다. 느닷없이 가슴을 뽐내는 동규의 모습에 하림이 웃음을 터트리자 동규는 두 팔로 가슴을 가렸다.
“좋은데 왜.”
“……몰, 라.”
하림은 웃는 낯으로 동규에게 입을 맞추고 동규의 것을 위아래로 빠르게 치댔다. 동규가 얼굴을 찌푸리며 신음했다.
“방까지 너무 멀어.”
“으, 하림아, 그러면. 아…….”
하림은 동규의 것을 계속 자극하다가 젤을 동규의 손바닥에 짜 뒤로 가져갔다. 동규는 성기를 자극당해 허리를 뒤틀면서도 손가락 하나를 하림의 안에 밀어 넣었다. 하림이 제 위에 앉아 있어 좁은 곳에 손가락이 쑤욱 들어갔다. 하림은 동규의 가슴팍을 더듬던 손을 올려 동규의 어깨를 잡았다.
“하나 더 넣는다.”
하림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검지로 주름을 더듬었다. 손가락 하나도 강하게 조이는 곳이라 힘을 주어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 곧바로 하나를 또 넣었다. 어차피 느리게 해 봤자 하림에게도 힘들 거였다.
지금까지 해 온 섹스로 내린 결론은 그렇다. 아예 풀어 주지 않고 삽입하면 둘 모두에게 버겁지만 애무를 너무 길게 해 줘도 손해였다. 왜냐면 뒤를 빨아 주든 손가락으로 풀어 주든 공을 아무리 들여 봤자 성기보단 작았고 어차피 하림의 좁은 곳은 동규의 것을 몇 시간 내내 쑤셔 줘야 동규의 크기만큼 벌어졌다.
일단 한 번 여기서 하고 침대로 데려가는 게 좋겠다. 가서도 하림이 위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누워 있다가 하림과 몇 번씩 싸고 나면 눕혀 놓고 제대로 시작해야지.
손가락을 조여 대는 내벽의 온도에 동규는 자꾸 밭은 숨을 뱉었다. 하림은 여전히 동규의 성기를 만져 대는 중이라 동규는 참을 수 없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엄지로는 회음부를 꾹꾹 눌렀더니 하림이 작게 욕을 내뱉었다.
소파에 무릎으로 서 있던 하림의 허벅지가 잘게 떨려 왔다. 동규는 손가락을 거의 빼낼 것처럼 끝까지 꺼냈다가 안으로 쑥 밀었다. 세 손가락이 하림의 안으로 전부 들어가 안쪽을 찌를 때마다 하림의 성기가 움찔거렸다. 하림의 치골을 잡은 동규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빨리, 빨리 뒤 풀어주고 넣고 싶어 입술이 말랐다. 소파 위에 굴러다니는 통으로 손을 뻗은 동규는 제 것 위로 젤을 무지막지하게 짰다. 그리고 숨을 고르고 있던 하림의 손을 가져와 문질렀다.
“나보고 해 달라고 하면 해 줄 텐데.”
“같이 좆 잡고 문지르면, 흐으, 뭔가 더 흥분되는 느낌이야, 그냥, 네가 해 줄 때랑은, 좀, 다른…… 하아…….”
자기 성기를 ‘같이’ 만지고 있다는 게 포인트인가. 하림은 새삼스럽게 귀여운 구석이 있다며 작게 속삭이고는 손을 더 빨리 움직였다. 손으로 느껴지는 동규의 체온이 높다.
“아, 흐으…… 앗, 아, 하아…… 으으, 하, 하림아…….”
하림은 동규가 내뱉은 신음이 듣기 좋아 입술을 문 채로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쿠퍼액까지 참고 있던 건지 좁아져 있던 요도에서 쿠퍼액이 작게 튀었다. 동시에 동규는 하림의 뒤를 풀어주고 있던 손을 뺐다. 동규는 숨을 크게 할딱이며 하림의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보이지도 않는 하림의 구멍은 젤 때문에 흠뻑 젖어 있을 거였다. 상상하니 연한 분홍색의 그곳을 빨아 이로 잘근잘근 씹고 싶단 강한 충동에 휩싸였다. 혀로 세세한 주름들을 훑고 혀를 넣어 안에서 꿈틀거리다 강하게 흡입하면 하림이 우는 소리를 냈다.
한두 번 핥아 준 것도 아닌데 뒤로 혀가 닿을 때마다 매번 수치감에 하림이 말을 더듬는 것도 좋았다. 뭐, 어차피 이따 할 거니까 아쉬워도 지금은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아프지 않게 천천히 앉아. 나는, 후으, 가만히 있을게.”
“응. 아, 잠깐만.”
하림이 손을 뒤로해 동규의 것을 잡고 살짝 앉았다. 동규가 엉덩이를 잡고 뒤를 벌려 주었지만 역시 두툼한 귀두가 한 번에 들어오기는 버거웠다. 동규는 손을 놓고 검지 두 개를 넣어 아예 하림의 구멍을 잡아 벌렸다.
몸이 억지로 열린 느낌에 하림이 뒤를 조였다. 사실 이렇게 억지로 벌려도 워낙 좁아 아주 조금 열린 게 고작인 데다가 하림이 무척 싫어하는 방법이었지만 오늘은 몸으로 달래주는 날이라고 하림이 스스로 얘기하지 않았던가.
“빨리 귀두부터 넣어.”
“아, 이거…… 하지 말라고 내가…… 흐윽!”
자꾸 상체가 무너지는 하림이 허리를 뒤틀었다. 기껏 억지로 벌렸는데 하림이 도리질을 치며 뒤를 조여 대 하는 수 없이 손가락을 뺐다.
대신 엉덩이를 잡고 있는 대로 잡아 벌려 힘으로 귀두를 쑤셔 넣었다. 두꺼운 살덩이가 삽입되자 하림이 숨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콜록거렸다. 동규는 귀두에 느껴지는 자극으로 흘러나오는 신음을 삼키고 하림의 허리를 잡아 아래로 눌렀다. 몇 번 만에 깊숙한 곳까지 찔러 하림도 동규도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림이 눈을 깜빡이지도 못하고 몸을 바르르 떨다 사정했다. 동규는 제 턱까지 튄 하림의 정액에 깜짝 놀랐다. 하림도 놀랐는지 아래가 뚫린 채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이거 봐.”
동규는 제 것이 끝까지 삽입되어 볼록 튀어나온 하림의 배를 손가락으로 스윽 훑었다. 하림은 숨을 고르며 동규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이젠 만져 주지 않아도 싸잖아.”
“아니, 이건. 그러니까 이게 지금 뭐냐면, 우리 너, 너무 오랜만에…….”
“뭐긴 뭐야. 뒤로 느껴서 사정한 거지. 박히자마자 싸네. 서하림 이제 큰일 났다.”
“뭐가?”
동규가 하림을 껴안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림이 동규의 목을 끌어안고 끙끙거렸다.
“뭐, 뭔데. 뭐가 큰일인 건데?”
“아, 으, 그만 좀 조여 봐, 윽, 아파.”
방으로 들어와 하림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동규는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고 있는 하림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허리를 천천히 움직였다. 하림이 좋아하는 가슴을 보여 주기 위해 가슴을 쭉 들이미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하림의 상의도 벗겨 던졌다.
원래도 하림은 뒤로도 잘 느끼는 편이었지만 이렇게 넣자마자 사정한 적은 처음이었다. 동규는 머지않아 하림이 박힌 채로 제가 그랬듯 투명한 것을 쌀 거란 예감이 들었다.
“하아, 너 이제.”
“아, 흐으, 앗! 도, 아, 김동규, 읏!”
제 팔을 잡고 흔들리는 하림에게 뭐라고 더 하려다가 하림이 멈출 수 없게 줄줄 나오는 걸 싸느라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동규는 입을 다물었다.
투명한 액체가 줄줄 나올 때면 뇌까지 성기가 된 듯한 느낌이 들고 멈추고 싶어도 몸 어딘가가 고장 난 것처럼 막을 수가 없기 때문에 무서울 정도로 큰 쾌락이 든다는 걸 안다. 저번에 하림의 안에 한가득 싸 놓고 엄청 울지 않았던가.
하림도 만약 저와 똑같은 경험을 한다면 저 금욕적이고 예쁜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 섹스하면서 흥분에 젖어 우는 얼굴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미리 말로 희롱하는 것도 좋겠지만 말도 못 할 정도로 엄청난 쾌감이 두려움과 함께 들어 온몸이 성기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을, 굉장히 이성적인 하림이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받아들일까.
시간은 많았다. 동규는 사정감이 치밀어 오르자 망설이지 않고 하림의 안에 정액을 터트렸다. 성기를 꽉꽉 물고 있는 내벽이 정액으로 젖어 가는 게 느껴졌다. 동규는 머릿속이 점점 흐려졌지만 하림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흐르는 눈물을 핥아 마셨다.
“뭐가…… 큰일이냐고.”
“그게 그렇게 궁금해?”
동규는 집요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제 친구가 생각나 웃었다. 누가 가족 아니랄까 봐.
“왜 웃어.”
“그냥.”
“나한테 큰일이…… 웃겨?”
“아니. 그냥, 서하림 이제 앞에는 안 만져 줘도 뒤로 가는데 이게 큰일이지 뭐야. 내가 계속 뒤로 박아 줘야 된단 얘기잖아. 아, 아파.”
숨을 고르던 하림의 동규의 양 볼을 꼬집었다.
“이게 어디서 너만 하려고 그래.”
“하지만 그런 거치고는 이걸.”
동규는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깊숙한 안쪽을 찔러 오는 동규 때문에 하림이 눈을 꾹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걸, 읏, 그렇게 좋아하던데.”
“아, 그만…… 너무 안에…….”
“그리고 솔직히, 말해 봐.”
“으으, 뭐를.”
“콘돔 끼고 하는 것보다, 이, 런, 생자지가, 하아, 더, 좋지. 으윽, 아…….”
“아, 진짜 단어 선택, 아, 으, 앗! 김동규, 아, 조금 전에 쌌는데 왜 자꾸 거기까지, 으으…….”
“좋아하잖아. 사실 끼나 안 끼나 느낌은 뭐, 얇아서, 음, 사정하고 매번 새로 갈아 끼는, 게, 귀찮아서 그렇지.”
“흐으, 아, 안에, 아, 김동규, 동규야.”
“또 있다. 이렇게 네가 이름 불러 주면 한 방울도 빼지 않고 다, 안에, 정액 싸지르고 싶어. 콘돔 말고. 하아…….”
내내 하림을 안고 허리 짓을 하던 동규가 상체를 일으켜 하림의 아랫배를 꾹 눌렀다.
“근데 나는 너 다음 날 배 아플, 까봐 끼고 하는 게 좋거든.”
“아…… 누, 누르지 말, 아.”
“힘 좀, 풀어 봐, 하아…… 아으, 윽, 너무 조여 하림아…….”
차라리 제 것을 만져 달라며 하림이 동규의 손을 떼 자신의 성기로 가져갔다. 안팎으로 압박하던 것 중 하나가 사라지자 하림은 조금 살 만했다. 숨을 고르는데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잘 울지도 않지만 동규랑 할 때면 아프기도 아픈데 너무 좋다 보니까 수도꼭지 틀어 놓은 것처럼 눈물이 나왔다.
우는 것도 체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하림은 안 그래도 진이 다 빠지는 동규와의 섹스에서 울지 않으려고 참은 적이 한 번 있었다. 동규가 네 우는 얼굴이 얼마나 섹시한지 아냐는 둥 네가 우는 거 보려고 섹스하는 거라는 둥 하는 소리를 해댄 탓에 이젠 나오는 대로 흘려보냈다. 그래도 몇 시간쯤 울고 나면 몸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하는 건지 괜찮아졌다. 단지 이렇게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면 눈물 닦는 게 조금 불편했다.
하림은 티슈를 뽑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한 발 빠른 동규가 티슈를 통째로 가져와 하림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동규의 것이 안에서 커져 가는 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커다래서 안을 압박하는 게 엄청난데 동규는 사정을 하고서도 제 것을 빼는 게 아니라 꼭 이렇게 안에 넣어 둔 채로 제 것을 부풀렸다.
“김동규, 이제 눈물 다 흘렸으니까 그만하고 일어나.”
몸을 일으킨 동규는 휴지를 바닥에 던지고 하림의 성기를 잡아 흔들었다. 하림은 제 것을 만져대는 동규의 손을 떨어트렸다.
“여기는.”
“됐어.”
“만져 달라는 거 아니었어?”
“거기는 이따 혀로 만져 주시고.”
“…….”
동규는 하림의 말에 입을 틀어막았다. 빨아 달라는 말보다, 혀로 만져 달라는 표현이 엄청나게 선정적이었다.
“가슴. 이리 와.”
누운 채로 다리는 한껏 벌어졌지, 아래는 젤과 정액으로 엉망인 하림의 꼴을 동규는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숨 쉬느라 크게 오르내리는 하얀 가슴도, 그 하얀 가슴에 꼭 걸맞은 예쁜 모양의 젖꼭지도 모두. 그중에서도 제일 좋은 건 저를 오롯이 바라보고 있는 하림의 얼굴과 눈동자였다.
하림의 아래에 박아 넣은 채 짐승처럼 헉헉대고 있는 지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동규는 목을 간지럽게 만드는 세 글자를 뱉고 싶어 하림을 꼭 껴안았다.
동규의 것은 이제 온전히 발기해 하림의 구멍을 한껏 아프게 하는 상태였다. 내벽이 동규의 것에 눌려 벌어진 건 말 할 것도 없고, 버거운 크기에 하림의 몸이 잔뜩 긴장한 채로 동규의 것을 압박했다.
“사랑해.”
하림은 맞닿은 동규의 심장이 거세게 쿵쿵거리는 게 느껴졌다. 꼭 그만큼 하림의 심장 고동 역시 동규에게 전해질 거였다.
“사랑해, 하림아.”
귓가로 나지막하게 내려앉는 동규의 목소리에 하림은 귀가 녹아 내리는 듯했다. 이렇게나 서로의 몸이 가깝게 밀착되고 깊숙하게 닿은 상태에서, 귓가에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는 건 반칙이다.
하림은 고개를 돌려 동규의 입에 입을 맞춘 뒤 나도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동규는 하림에게 또 말해 달라고 졸랐고, 하림은 동규가 원하는 만큼 계속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줬다. 동규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면서도 하림에게 계속 고백했고 하림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사정할 때까지 달콤한 말들이 오갔다.
사정을 마친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키스를 했다. 삽입한 채 이어지는 키스에 몸은 식지 않고 오히려 주변 공기를 달굴 정도였다. 하림이 한 번씩 뻐근한 허리를 뒤틀며 혀를 뺐다가도 아쉬워 동규에게 매달렸다. 그러면 동규는 하림의 숨을 빼앗고 타액을 모조리 삼키며 하림을 몰아붙였다.
격정적인 입맞춤에 동규의 성기가 사정감으로 단단해지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무리 숨이 차올라도 입술을 맞춘 채로 움직였다. 하림이 많이 힘들어하면 고개를 살짝 떼 입 주변을 쪽쪽거리며 하림이 입과 코로 숨을 마음껏 쉴 수 있게 도왔다. 적당히 숨을 고르고 나면 하림이 동규의 입술을 찾았다.
동규가 사정을 하기 위해 쳐올릴 때마다 하림의 좁은 곳까지 닿을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 여기는 아무리 힘을 주어 치대도 벌어지거나 늘어나질 않는다. 정말 하림의 안에 매일같이 쑤셔 넣고 24시간 내내 귀두로 그 좁은 곳을 강제로 벌려 줘야 좀 나으려나. 신체 내부 구조를 전혀 모르는 동규는 그저 제 좆으로 쑤시기만 하면 다 될 거란 생각만 했다.
“아, 서하, 흐읏, 내 가슴.”
하림이 동규의 가슴을 손바닥 가득 잡았다가 손톱을 세워 유두를 짓눌렀다. 동규는 성감대를 날카롭게 자극하는 하림의 찬 손가락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사정 후 하림을 끌어안고 누워 하림의 목에 쪽쪽거리다가 동규는 아예 하림의 손길을 대놓고 느끼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아직 하림의 안에서 제 것을 꺼내지 않았던 터라 몸을 일으키면서 성기가 반쯤 빠져나왔다. 자세를 바꾸기 위해 동규는 아예 제 성기를 하림의 안에서 뽑았다. 두툼한 귀두가 빠지면서 귀여운 소리가 났다.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아 아직 누워 있는 하림을 불렀다. 언제 뒤로 돌아 누웠는지 하림이 동규를 보고 있었다.
“올라와서 앉아.”
“…….”
“만져, 마음껏.”
가슴 근육을 잔뜩 부풀렸다. 하림이 젤을 뿌려서 만질 수 있도록 서랍에서 새로운 젤도 하나 꺼내왔다.
그런데 바로 올라와 신나게 가슴 만져댈 줄 알았던 하림은 그저 동규의 허벅지에 손을 올려 꾹꾹 누를 뿐이었다. 동규는 언젠가 하림에게 가슴 말고 어디가 또 좋은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하림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허벅지, 등, 엉덩이 순으로 좋다고 대답을 했었다.
“아직…… 손 차갑네. 겨울이라 그런가. 음, 아…… 기분 좋아.”
하림의 손은 어느덧 사타구니로 파고들었다. 조금도 건들지 않은 동규의 것이 힘을 받아 점점 일어서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안에 얼마나 사정을 한 건지 원래도 포악하게 생긴 동규의 것이 정액까지 엉겨 붙어 있어 보고 있기 조금 힘들었다. 하림은 점점 커져 가는 동규의 성기를 일부러 모른 척하며 단단한 허벅지만 주물렀다.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저렇게 커다란 걸 안에 넣으려고 하는 동규도 대단하고 저걸로 아픔이 아니라 오르가즘까지 느끼는 자기 자신도 대단했다. 동규랑 속궁합이 잘 맞아서 다행이지, 아무리 잘 느낀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엄청난 크기에 아픔이 없는 건 아니라 만약 동규랑 잘 맞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어떻게 이러지.”
“아, 하림아. 이제, 이제…… 올라오면…… 제발, 읏, 아…….”
속궁합까지 완벽해. 하림은 동규의 저 흉악한 성기도 사랑스러워 동규의 허벅지에 뽀뽀를 했다. 정액이 묻어 있지 않았다면 동규의 것에 뽀뽀를 해 줬을 텐데 그럴 수 없는 게 아쉬웠다.
동규는 하림이 제 위로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아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허벅지에 말랑한 입술이 입을 맞추고 있는 것도 견디기 힘든데 하림이 정작 터질 것 같은 좆은 만져주지도 않고 그 근처나 허벅지만 만져 대고 있으니 애가 타 욕이 자꾸 나왔다. 동규의 욕지거리를 들은 하림은 쿡쿡 웃으면서도 동규의 것을 만져 주지 않았다.
“아, 제발, 하림아 씹, 아…… 내 거 만져 줘, 응?”
“난 허벅지를 더 만지고.”
“내가 뭐 하면 해줄 건데. 씨발 내가 넣어, 넣는…… 그냥 만지기만 해 주면 안 돼? 뒤에 아픈, 많이 아픈 거 알아. 더 이상 넣지 말라고 하면 안 할게. 그냥 지금은 아, 씨발 진짜 읏, 아…….”
허리를 뒤틀던 동규가 제 허벅지를 더듬던 하림의 손목을 잡고 제 것에 문질렀다. 하림은 동규가 어떻게 하나 보기 위해 손에 힘을 뺐다. 대신, 다른 한 손을 자신의 다리 사이로 가져갔다. 동규는 하림의 손을 동글게 말아 위아래로 힘차게 움직였다. 동규가 거칠게 신음을 뱉으면서 하림의 이름을 자꾸 불렀다. 이쯤 되자 하림도 여유가 슬슬 바닥나기 시작했다.
사정을 하려는지 동규의 허벅지 근육이 섰다. 하림은 내내 힘을 빼고 있던 손에 힘을 주어 동규의 것을 막았다. 사정을 하려던 귀두가 꿀렁거렸다.
“뭐, 뭐야.”
“싸지 말고 진정해.”
“못 해.”
“네 위로 올라갈 건데도?”
“하, 씨발…… 미쳤나.”
실은 하림도 단단하게 발기해 사정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여유로운 모습을 잃고 싶지 않아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어보았다. 동규가 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욕을 내뱉었다. 평소엔 이리 흐르고 저리 흐르는 구름 같은 동규가 저와 섹스를 할 때마다 이성을 잃는 게 하림은 짜릿할 정도로 좋았다.
좀 더, 동규가 안달내고 여유를 잃고 본능에 충실한 모습으로 굴었으면 좋겠다. 하림이 마지막 실낱같은 이성을 유지하는 척을 하면 동규는 더 거칠게 굴었고 끝의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러다보면 하림도 동규처럼 이성을 내던졌고 동규는 그런 하림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저속한 말들을 쏟아냈다. 바로 지금처럼.
“잘, 들어가네. 안에 부었는데도 내 거 먹겠다고 빨아 대는 거 봐.”
“아, 흐으…….”
동규가 안에 정액을 그렇게나 사정했음에도, 조금 전까지 몇 시간을 동규의 커다란 것을 물고 있어 벌어진 곳이었음에도 동규의 것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다. 동규의 성기는 사정을 코앞에 두고 참고 있느라 핏줄이 서고 굉장히 단단했다. 하림은 괜히 싸지 말라고 했나 하는 작은 후회가 들었다.
“네 안에 후으, 싸 줬으면 좋겠지. 그래서 싸지 말라고 그랬던 거잖아.”
“아니…… 아, 흐읏, 아!”
“솔직하게 대답해.”
동규의 것을 반쯤 넣고 숨을 고르고 있는데, 엉덩이로 동규의 손바닥이 날아왔다. 따끔거리는 아픔에 하림이 아예 일어나 동규의 것을 꺼냈다. 안을 묵직하게 채우고 있던 게 빠져나가자 뒷구멍이 얼얼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바로 동규의 아랫배 위로 앉았더니.
“안에다 내가 싸주는 거 좋아, 안 좋아.”
또 엉덩이로 동규의 손바닥이 달라붙었다. 세게 때린 건 아니었지만 아픈 건 아픈 거라 하림이 동규의 뒷머리를 잡아 당겼다.
“안 좋아.”
“자꾸 거짓말을 하네.”
세 번째로 엉덩이를 때린 손이 하림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하얗고 여린 피부라 그런지 이 정도로도 붉어지기 시작했다. 하림의 성기는 아픔에도 주눅 들지 않고 여전히 꼿꼿하게 서 있었다. 동규는 턱으로 하림의 것을 가리켰다.
“맞는 게 좋은가? 아, 맞다. 좋아했지. 맞는 거.”
하림은 동규의 뒷머리를 끝까지 잡아당겨 아예 동규의 고개가 젖혀지도록 했다. 저를 올려다보는 동규는 신이 난 얼굴이었다.
“안 좋다고. 거짓말 아니야.”
“거짓말 그거 엄청 나쁜 건데.”
개구쟁이 같은 얼굴에 하림이 입을 맞췄다. 동규가 하림의 입으로 혀를 넣어 감았다. 뒤로 동규의 손가락 두 개가 들어왔다.
“조용히 해. 가슴 만질 거니까.”
“그 전에.”
동규는 하림의 안을 휘젓다가 손가락을 빼버리고는 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좁고 부은 구멍은 이번에도 커다란 귀두를 받아들이기를 버거워했다. 꾸역꾸역 제 것을 밀어 넣은 동규는 작게 숨을 내뱉고 하림의 치골을 잡아 천천히 내렸다.
하림도 다리에서 힘을 빼 무게로 동규의 삽입을 도왔다. 동규의 것이 끝까지 들어와 꽉 찬 느낌에 하림은 숨을 골랐다. 이렇게 남김없이 삽입된 직후는 온몸이 꿰뚫리는 느낌이라 몸이 떨려오고 어딘가 망가질 것 같은 불안함이 동시에 들었다.
하림이 손을 어디 한군데 두지 못하고 있기에 동규가 하림의 손을 잡아 제 가슴으로 가져갔다.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그냥 동규의 것이 삽입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느끼는 하림이 두 눈을 감았다. 긴 속눈썹도 따라 움찔거렸다.
“하아…… 하으, 조, 조금…….”
“응. 기다릴게. 읏, 아, 너무 조여서 나도 좀…… 힘드니까 하림아, 숨 천천히 쉬면서 으윽, 긴장 풀어 봐.”
“으응, 잠깐만, 잠깐, 아…….”
“근데 하림아 미안한데, 나 좀 급해. 빨리 싸고 싶어.”
“기다려, 잠시만.”
잠시라도 참기엔 동규는 많이 급했다.
“그러게 아까 그냥 싸게 두지 그랬어. 움직인다.”
“동규야, 잠시! 아, 잠깐만, 나 안에…… 아, 지, 지금은 안 되는, 으아, 윽!”
하림을 껴안은 동규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하림을 안아 하림을 움직이는 게 맞았다. 하림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동규는 제 가슴을 붙잡은 하림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금세 하림의 안에 사정한 동규가 다시 침대 헤드에 기댔다. 거칠게 숨을 쉬고 사정의 여운을 느끼고 있는데 하림이 동규의 가슴을 만지며 자위를 시작했다.
“지금…… 완전 황홀하다.”
“가슴 만져 줘서?”
“그러면서 네가 자위해서. 아, 하림아. 젖꼭지, 더 세게, 으음, 아…….”
유두를 괴롭힐수록 동규가 몸을 뒤트느라 하림의 안에 있는 동규의 것도 움직였다. 하림은 동규의 가슴을 살짝 때리며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동규는 하림이 제 젖꼭지를 꾹 누르자 하림의 손을 잡아챘다. 이미 허리를 한 번 크게 튕긴 뒤였다.
“미, 미안해.”
“빼고 하는 게 좋겠어.”
하림이 무릎을 세워 일어났다. 사정을 했음에도 무식하게 커다란 동규의 것은 빠져나가는 것도 일이었다. 동규의 성기가 빠져나가자 바로 동규가 안에 사정한 정액들이 떨어졌다. 동규는 제 아랫배로 떨어지는 정액들을 홀린 것처럼 바라보았다.
“……보지 마.”
쑥스러워 동규의 것을 깔고 앉은 하림이 동규의 유두를 꼬집었다. 동규가 혼잣말로 야하다고 중얼거렸지만 못 들은 척했다. 뒤에서 무언가가 줄줄 흐르는 걸 보여 주는 건 한 번이면 충분했다.
동규는 가슴으로 느끼다가 하림의 것을 쥐었다. 기다리고 있던 건지 하림이 잘 했다며 동규에게 뽀뽀를 했다. 바로 사정하게 만들긴 싫어 동규는 손을 느리게 움직였다.
가슴을 더듬는 하림의 손은 아직 차가워 손가락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림은 차가운 제 손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동규는 섹스할 때면 차가운 손가락을 잘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여기에 한창 하다 보면 종종 손가락이 따뜻하게 변하는 게 마치 뜨거운 체온이 하림에게 옮아 간 듯해 묘한 기분이 들어 그것도 좋았다.
하지만 동규는 하림의 손이 저처럼 뜨거웠어도 좋아했을 거라 하림의 손이 차갑든 뜨겁든 무의미했다.
이번 사정은 두 사람 다 느긋하게 이루어졌다. 하림이 동규의 가슴을 적당히 조물딱거려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하림이 힘을 주어 동규의 가슴을 터질 것처럼 만졌거나 유두를 자극했으면 거친 신음 끝에 사정을 했을 테지만.
사정을 마친 동규는 하림을 안은 채로 아예 바로 누웠다. 하림은 동규의 유두를 슬슬 만지다가 입으로 물었다. 바로 조금 전에 사정을 했는데도 하림의 혀에 동규는 또 제 것이 불끈 힘을 받는 것을 느꼈다.
“으음, 아…… 간지러워.”
유두를 물고 빨다가 가슴도 할짝거리며 핥는데 딱 죽을 맛이었다. 동규는 하림의 머리를 헤집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하림의 머리를 떼어냈다.
“빨아 줄게.”
“왜, 나도 빨고 있는데.”
달아오른 두 뺨 때문인지 아니면 단어 선택 때문인지 동규는 하림이 다시 고개를 숙여 제 가슴을 빨아주는 걸 맥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제 혀가, 입술이 움직이고 닿는 곳마다 동규의 가슴이 움찔거리고 근육이 단단해지는 게 귀엽다. 하림은 이럴 때마다 저도 동규의 깊은 곳에 처넣고 싶은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손 하나를 내려 하림은 자신의 성기를 잡았다. 넣어 달라고 아우성치는 성기의 요구가 뇌까지 가 닿았다.
하림은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열심히 빨린 동규의 왼쪽 유두가 도톰해졌다.
“아, 왜…….”
조금만 더 있으면 사정할 수 있었던 동규는 저도 모르게 우는 소리를 냈다. 다급하게 상체를 일으키려는데, 하림이 동규의 입가로 성기를 가져갔다. 정액으로 미끌거리는 귀두가 입술 근처를 서성였다.
“입 벌려.”
“이 자세로는 좀 불편해.”
“끝까지 넣을 거니까 입 벌리라고. 크게. 아, 해.”
“잠깐만.”
동규는 하림의 귀두에 쪽 소리 나게 뽀뽀를 하고 몸을 일으켰다. 하림을 침대 가에 앉혀 두고 저는 바닥으로 내려가 앉았다. 하림이 비위만 좋았으면 서로의 것을 빨아 주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다.
하얀 다리 사이에 앉아 허벅지를 쓸어 보았다. 동규의 손길을 따라 하림의 이불을 끌어모아 쥐었다. 동규는 성기에 힘을 주어 사정을 막는 대신 하림의 것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자극했다. 허벅지가 동규의 손을 따라 움찔거렸다.
“내가 입으로 해 주면 좋아?”
“응.”
“얼마나?”
“……많이.”
하림은 이불을 쥐고 있던 걸 놓고 동규의 머리를 헤집었다. 왜 뜸을 들이고 있는 거야. 애타 죽겠는데. 동규는 인상을 쓰고 있는 하림을 올려다보았다. 작게 벌어진 입에서는 달아오른 한숨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이따금 입술을 깨물었지만 동규의 입을 억지로 벌려 제 것을 박아 넣진 않았다.
“으음…….”
요도구는 움찔거리고 성기가 단단해진 걸 보면 분명 사정감이 가득 찼을 게 분명한데. 동규의 계획은 손으로 한 번 사정시키고 바로 입으로 희롱할 생각이었다. 사정 직후엔 엄청 예민해지니까 그 때 빨아 주면 하림이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고 좋아서 엉엉 울곤 했다. 오늘도 그렇게 해 줄 예정이었고.
손을 점점 빨리 하면 할수록 하림은 몸을 비틀었지만 하림의 고집도 만만치 않아 동규의 손에서 사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하림의 요도를 엄지로 막고 예쁜 모양의 고환을 입에 담았다. 혀를 살살 굴려 간질이니 머리카락 속을 헤집던 하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동규야, 그만 좀 하고…….”
“기다려.”
고환을 침으로 범벅을 해 놓고 조심스레 뱉은 동규는 하림의 성기를 뿌리에서부터 핥기 시작했다. 정액이 묻어 있어 하림이 더럽다고 몸을 뒤로 뺐으나 동규가 허리를 잡고 있어 도망가는 게 불가능했다. 하림이 질색을 하며 차라리 씻고 오겠다고 해도 동규는 제 혀로 닦으면 된다고 중얼거렸다.
“미쳤어 진짜…….”
놀란 탓에 잠시 힘이 빠졌던 성기는 어느새 동규가 모두 핥아 먹어 동규의 타액으로 반질반질했다. 하림은 동규가 드디어 제 성기를 입에 넣어 주는 순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줄 알았다. 작게 소름도 돋았고 온몸에 전기라도 통하는 듯 찌릿찌릿했다. 동규와 섹스하면서 사정을 여러 번 해 뒀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동규가 입에 넣자마자 쌌을 거였다.
동규는 하림의 것을 천천히, 목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도 하림과 시선을 유지했다. 하림은 붉어진 얼굴로 동규와 눈을 마주하다가 그만 눈을 감았다. 긴 속눈썹이 떨리는 것까지 동규는 놓치지 않고 빤히 바라보았다. 얼마나 느끼면 저럴까. 하림의 것을 담고 있는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거의 끝까지 하림의 것을 목구멍에 처박은 동규는 하림의 성기 아래에 눌려 있던 혀를 움직였다. 하림이 나지막한 신음을 거의 동시에 내뱉었다. 굉장히 깊숙한 곳까지 하림의 것을 삼켰기 때문에 기도가 살짝 눌려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동규는 하림의 것을 빼지 않고 줄줄 흐르는 침을 삼키기 바빴다. 그 때마다 하림의 것이 조금씩 안으로 더 밀려 들어와 본능적으로 역한 기운이 동규를 충동질했다.
목젖에서 하림의 귀두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하림이 사정을 한다면 분명 한참 콜록거리며 괴로울 거다. 동규는 이쯤에서 반쯤 빼고 다시 처박을 생각으로 머리를 뒤로 살살 뺐다. 그러나 하림이 동규의 뒷머리를 잡은 상태로 벌떡 일어나 동규의 입 안으로 제 것을 더 깊게 처넣었다.
“뺄, 생각 한 거 아니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턱이 슬슬 아파 왔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어 고였던 눈물이 점점 차올랐다.
동아줄이라도 찾는 듯이 하림의 허벅지를 더듬었다. 하림이 성기를 반쯤 빼고 다시 끝까지 삽입했다. 천천히 움직이던 허리를 빠르게 움직여 동규의 입 안 구석구석을 헤집고 목구멍을 찔러 댔다.
축축하고 뜨거운 입 안은 하림을 충동질했고 성기를 효과적으로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래서 하림은 더 힘을 주어 동규의 입 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혀도, 이빨도 성기에 닿고 긁히는 감각이 생경했다.
동규는 하림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벅찼지만 이렇게 거친 것도 나쁘지 않았다. 슬그머니 하림의 뒤로 손가락을 넣자 하림이 몸을 굳혔다.
“김동규, 어디서 수작질이야. 누가 하래.”
화를 내는 말투였지만 얼굴은 전혀 그런 얼굴이 아니었다. 하림은 활짝 웃으며 동규의 머리를 뒤로 모두 넘겼다. 훤히 드러난 이마가 예쁘다. 하림은 여전히 빼지 않고 움직이는 동규의 손가락을 느끼며 동규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살살해? 많이 아파?”
도리도리.
“우는데.”
아프다고 하면 하림은 바로 제 것을 뺄 생각이었기 때문에 동규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다정하게 물었다. 동규는 혹시라도 하림이 성기를 빼 버릴까 봐 대답 대신 손가락을 빼고 하림의 것을 잡아 쭉쭉 빨아댔다. 하림에게서는 듣기 좋은 신음 소리가 바로 터져 나왔다.
“아, 흐으, 아…… 읏, 하아, 으읏…… 처, 천천히…….”
안 그래도 억지로 참고 있던 사정감이다. 동규가 강한 흡입력으로 빨아 대는 통에 하림은 속절없이 동규의 입 안에 사정을 하고 말았다. 아니, 거의 사정을 당한 수준이었다. 맛도 없는 걸 왜 그렇게 집요하게 빨아 마시는지 당최 이해를 할 수 없지만 하림은 정액이 죄다 빨리는 기묘한 감각에 동규의 머리를 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려왔다.
“동, 규, 읏! 아, 아 잠깐만, 잠, 아…… 잠시, 아, 흐으…….”
그냥 빨아 대도 죽을 것 같은데 동규가 요도에 혀를 세워 후벼 파느라 하림은 눈앞이 까매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단순히 쾌감이 느껴지는 수준이 아니라 강타한다는 정도라 발가락이 전부 오그라들고 아랫배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동규의 입 안이라도 괴롭힐 생각이었지 동규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림은 도저히 신음을 참을 수가 없어 나오는 대로 모조리 내보냈다. 사정을 해서 예민해진 곳을 동규가 계속 혀로 자극하니 다리에 힘도 풀리는 듯했다.
평소에도 동규가 정액을 모조리 빨아 먹긴 했지만 오늘은 그 흡입력이 말도 못 하게 강했다. 이대로 요도구가 너덜너덜해질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하림은 엄청난 자극에 동규의 머리를 허벅지로 눌러 댔다. 이러다간 동규가 소변까지 빨아 먹을 것 같아 덜컥 두려움이 온몸을 강타했다.
“아, 동규야, 제발…… 그만해…… 나오겠, 아…… 진짜 그, 그만…….”
이제 하림은 동규에게 울면서 빌기 시작했다. 동규가 빨아 대면서 강제로 든 배뇨감에 하림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순식간에 시야가 바뀌더니 어느덧 침대 위로 눕게 된 하림의 뒤로 동규가 올라왔다. 하림은 말없이 저를 가둬 두고 빤히 바라보는 동규의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정을 하고 축 처진 제 것과 다르게 동규의 것은 한참 달아올라 동규와 제 배 사이에서 존재를 드러냈다.
동규가 놓아준 성기는 얼얼한 아픔도 아픔이었지만 화장실이 더 급했다. 하림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일어나려 하자 동규가 말없이 비켜 주고 하림을 따라갔다.
“아파.”
“살살 할게.”
“나가 있어.”
하림을 뒤에서 품에 안은 동규는 손을 뻗어 하림의 것을 잡았다. 뭐 하냐는 질문은 동규가 입을 맞추느라 입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당황한 하림이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소변이 몸 밖으로 배출되는 중이었다. 적나라한 소리에 하림은 온몸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차마 제 성기를 잡고 있는 동규의 손을 내칠 수도 없어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엉덩이 사이로 느껴지는 동규의 것이 흥분으로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힘줄이 꿀렁이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쉬 다 쌌다.”
두어 번 하림의 것을 털어 준 동규는 아직도 얼굴을 가린 채인 하림의 눈치를 보다 떨어졌다. 뭘 해야 좋을지 싶은 동규는 샤워 부스에서 샤워기를 꺼내 따뜻한 물을 틀었다. 하림의 다리 사이를 씻겨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샤워 부스를 나왔을 땐 이미 쌀 것도 다 싼 하림의 것이 축 처진 모양새가 아니라 조금 힘을 받고 있었고 하림도 얼굴에서 손을 뗀 상태였다. 동규는 하림의 굳은 얼굴에 놀라 샤워기를 놓치고 말았다.
“미안해.”
“뭐가.”
“화장실 가는 거 까지 따라와서…… 너 오줌 싸는 거 내가 그래서.”
“잘 아네.”
“근데, 왜 너…….”
동규는 하림의 앞으로 걸어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렇게…… 됐어?”
하림의 것을 잡아 귀두를 슬슬 문질렀다. 동규는 말 없는 하림을 올려다보면서 입을 슬쩍 벌렸다.
“…….”
동규의 입을 가린 건 하림이었다. 하림은 동규의 입을 막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동규는 하림의 손을 잡아 입술을 꾹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림과 손을 잡은 채로 샤워 부스를 정리한 동규는 하림을 끌어안았다. 하림이 다리로 허리를 감아 왔다. 다시 침대로 돌아온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들렸다. 동규가 하림의 젖꼭지를 느리게 쓸었고 하림은 동규의 입술로 시선을 옮겼다.
“……너는.”
열심히 빨아서일까, 동규의 입술이 조금 부은 것도 같아 하림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동규의 눈빛을 모른 척했다.
“비위도 좋아.”
“응.”
“…….”
“아까, 빨아 줄 때 좋았지. 너 그런 소리 내는 거 처음 들었어.”
동규는 하림의 다리를 모아 잡고 그 사이로 제 성기를 집어넣었다. 삽입이 된 것도 아닌데 허벅지 안쪽의 여린 살에 동규의 뜨거운 성기가 움직이자 삽입과 비슷하게 부끄럽고 민망했다. 하림은 조금 전 자신이 어떤 소리를 냈는지 더듬었다. 그런데 동규 말대로 좋아서 저도 모르게 냈던 거라 어떻게 소리를 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프기도 했지만 온몸이 저릿해질 정도로 아찔했다.
눈동자만 굴리고 있는 하림 때문에 살짝 웃음이 난 동규가 하림의 두 다리를 끌어안고 허리를 움직였다. 귀엽다고 말해 주고 싶은데 하림은 귀엽다고 하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동규는 속으로 그 말을 삼켜 냈다. 대신 매끈한 허벅지에 성기를 비비는 속도를 조금씩 올렸다. 탄탄하면서도 보들거리는 피부라 감촉이 좋았다.
“뽀뽀하고 싶다.”
하림이 꺼낸 말은 키스를 조르는 말이었지만 하림도 동규도 지금은 키스를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동규가 하림의 것을 빨아 준 것도 모자라 정액까지 먹은 뒤라 그랬다.
“후우, 기다려.”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고 동규가 허리를 움직였다. 퍽퍽 살이 치대는 소리가 크게 났다. 동규는 하림이 이불을 끌어와 얼굴을 반쯤 가리는 걸 보면서 사정했다. 그러고는 하림을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빨리 씻고, 키스하면서 또 마저 해야지.
동규가 입 안을 깨끗이 하고 나자 하림이 바로 달려들어 입술부터 들이댔다. 동규는 그대로 하림을 품에 안았고, 하림은 동규에게 매달렸다. 쪽쪽거리며 다시 침실로 돌아와서는 입을 맞춘 채로 동규가 삽입을 해 왔다. 안이 온통 부어 동규의 것이 들어오는데 조금 힘들었지만 하림은 동규의 것이 끝까지 다 들어오고 나서 차오르는 충만함에 동규를 좀 더 끌어안았다.
몸으로 위로해 주겠다는 목적에 충실한 섹스는 꼬박 이틀 넘게 이어졌다. 하림은 그동안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했다. 배고프다하면 동규가 음식 차려와 침대로 가져오고, 씻고 싶다 해도 동규가 안아서 데려가 씻겨 주다 둘 다 불이 붙어 섹스하기 바빴다.
처음 둘이 섹스하던 날과 비슷했다. 미루고 미루던 거사를 치른 뒤에 둘 다 눈만 마주쳤다 하면 몸을 섞느라 3일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었다. 하림은 갈아 없어진 듯한 허리를 두드려주는 동규의 손길을 느끼며 그 날의 얘기를 꺼냈다.
“우리, 처음 했을 때 기억 나?”
“나.”
하림이 이틀간 동규의 목구멍을 하도 괴롭힌 탓에 동규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쉰 목소리는 쉰 목소리대로 섹시하다고 하림은 생각했다.
“나 그 때 진짜…… 뒤에 허는 줄 알았잖아. 망가지는 줄.”
“그 때는 좀, 우리 둘 다 처음 해 보고 나서 좋아서 미쳐 가지고.”
“지금 약간 그 때 같아. 앞으로는 몸으로 위로해 준다는 말 조심히 써야겠다.”
“안 해 주려고?”
“아니. 해 줄 건데.”
입 맞춰 달란 의미로 하림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동규는 그 위에 제 입술을 올려 진하게 키스했다.
겨울방학엔 강원도 스키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원래는 크리스마스와 동규 생일, 연초까지 캐나다에 놀러가려다 동규가 보드는커녕 스키도 잘 타지 못한다는 걸 알고 급하게 일정을 바꿨다.
애초에 하림이 캐나다에 가려던 이유가 동규와 스키 리조트에서 놀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가서 타든 여기서 타든 똑같은 것 같았지만 동규가 올해는 배운다는 생각으로 국내에서 놀고 내년에 가자며 하림을 말렸다. 하림에 비해 완전 초보자인 자기 때문에 하림도 제대로 놀지 못할 게 걱정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비행기 취소하지 말걸.”
그러나 두 사람 다 동규가 운동신경이 매우 뛰어나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빠가 세계선수권을 재패한 국가대표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것도, 그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아 온갖 운동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것도. 기껏 급하게 국대 출신의 스키 강사를 초청해 왔더니 하림이 알려 줘도 될 수준이었다.
“……그러게.”
“정말 오늘 처음 배우시는 거 맞아요?”
“네.”
“운동신경을 타고나셨나 봐요. 아버님이 운동선수였다고 해도 동규 씨는 선수도 아닌데.”
스키는 유치원 다닐 때 한 번 타 봤다더니 어제 타 본 것처럼 금방 슝슝 잘 탔고 아예 처음 배운 보드도 30분쯤 엉덩방아 열심히 찧더니 제법 잘 탔다.
“더 알려드릴 것도 없을 것 같아요.”
“아니에요. 선생님이 잘 알려 주셔서…….”
“아닙니다. 훌륭한 학생 덕분이죠.”
과장되게 칭찬하는 강사와 쑥스러워하는 동규를 번갈아 보던 하림이 눈을 반짝거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
두 사람의 시선이 하림에게 모였다.
“진짜 김동규 더 배울 거 없어요?”
“네, 이제 하산해도 될 정도예요.”
“아닌데…….”
“나머지는 제가 알려 줘도 되죠?”
“네. 그런데 강습료를 너무 많이 받아서 이대로 돌아가기가 좀.”
“아니에요. 괜찮아요. 선생님 정도 되시는 분을 급하게 모신 건데요.”
돌아가라는 하림과 너무 이르다는 강사가 잠시 고상한 실랑이를 벌였다. 동규는 하림의 생각도 모르고 강사의 편을 드는 말을 꺼냈다가 하림에게 한 대 맞았다.
결국 하림의 고집을 꺾지 못한 강사가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몰라 두 번쯤 고개를 돌려 하림과 동규를 쳐다보고 눈이 마주치면 손을 흔들었다.
“약간 눈치가 없는 게 김동규 과네.”
“응?”
“아니야. 혼잣말. 근데, 내일이라도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해.”
“어디.”
“당연히! 캐나다 밴프 국립 공원이지.”
“비행기라는 게…… 하루 만에 그렇게 예매할 수 있고 그래?”
“있지. 엄청 쉬워.”
하림이 뭐든 뚝딱 해결해 주는 만능 해결사는 맞지만 이건 자본의 냄새가 진하게 났다.
“……쉽다는 건 머니 파워를 쓴다는 말 같은데.”
“정답입니다. 갈래?”
“아니야. 내년에 가자. 올해는 그냥 여기서.”
“그래. 내년부터 매년 겨울마다 가면 되니까.”
그런 말은 아니었는데. 정정이라도 해 주려던 차에 하림이 먼저 내려가 버렸다. 동규에게 맞춰 준다고 초보자 코스에서 놀고 있던 하림은 평탄한 경사를 빠르게 내려가 동규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번에 넘어지지 않고 잘 내려간다면 중급자 코스로 올라가겠단 생각을 하며 동규도 균형을 잡기 위해 온몸에 힘을 줬다.
스피드를 즐기다 호텔에 도착했을 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팠다. 어딘가 두들겨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안 쓰던 근육들이 온통 소리를 질러 댔다.
“힘들어…….”
하림은 들어오자마자 씻겠다고 욕실로 사라졌지만 동규는 침대 위에 엎어져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자면 안 될 것 같은데 정신이 조금씩 희미해졌다.
그런데 수영은 전신 운동이 아니었던가? 나름 꾸준히 헬스도 다니고 수영은 아기 스포츠단 때부터 해 왔고 심지어는 최근 들어 유도도 하고 있는데 보드 좀 탔다고 몸이 축축 처지는 게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도대체 몸이 왜 아픈 거지. 침대에 누워 한참 고민하던 끝에 동규는 헬스도 수영도 유도도 다 여름 스포츠지만 이건 겨울 스포츠니 쓰는 근육이 당연히 다를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고, 썩 괜찮은 결론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동규야, 일어나.”
“아파…….”
이럴 줄 알았다고 하림이 노천온천이나 가자며 침대 위에 엎어진 동규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온천이라니…… 아, 따뜻한 온천에 들어가면 진짜 몸이 다 풀리고 좋겠다.”
“일어나. 가자. 갔다가 밥 먹고 또 온천 가자.”
“근데…… 그러면 5분, 아니 10분만 누워 있다가.”
“안 돼. 그러면 내일 오는 근육통이 그만큼 늘어난다고.”
“아, 서하림. 나 죽겠어.”
“얼른. 뽀뽀해 줄게.”
“……그렇다면.”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킨 동규가 입술을 쭉 내밀고 기다리던 하림의 위에 제 입술을 꾹 눌렀다. 하림이 푸스스 웃었다. 하림이 아프다고 칭얼대는 동규와 한참이나 쪽쪽거리다 들려오는 진동 소리에 떨어졌다.
“무시해. 일어났으니까 뽀뽀 마저 해 줘.”
처음 한두 번은 하림도 무시할 수 있었지만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 사람인 것 같아 한숨을 쉬며 물러났다. 동규는 팔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하림에게 주머니를 보였다.
“네, 김동규 휴대폰입니다.”
-근데 왜 네가 받아.
“제가 김동규 남자친구라서요.”
액정에 뜬 서하늘이란 이름을 확인했는데도 하림이 사무적인 말투를 이어 갔다.
-으으. 우웩.
“다시 말씀해 드릴까요.”
-아니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김동규의 하나밖에 없는 멋지고 사랑스러운 남.”
-악! 그만해! 아니라고 했잖아! 악! 시발!
다시 침대로 누운 동규에게도 다 들릴 만큼 하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동규는 얼굴을 가린 채 소리를 죽여 웃었다. 혹시라도 하늘에게 웃음소리를 들켰다간 큰일 날 일이다.
“바꿔 줘.”
“서스카이 씨,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깜찍한 사랑둥이 김동규가 전화를 바꿔 달라고 하네요.”
-시발놈이, 아 진짜 오글거린다고! 아악!
“미안해. 무슨 일인데.”
“미안?”
하림이 누워 있던 동규의 멱살을 잡았다. 화가 난 얼굴이었다.
“그게 왜 미안한 일이야.”
“아 미안. 말실수했어. 미안해.”
-도대체 누구한테 뭘 사과하는 거야.
“처신 똑바로 해라 김동규. 줄 잘 서. 내가 서하늘한테 오글거리는 말 한 게 미안한 일이야?”
“아니, 그게…….”
-뭐야, 갑자기.
“잘 생각해. 내가 서하늘보다 돈도 많고 잘생겼는데 거기다가 귀여운 남자친구도 있어. 근데 네가 사과 할 일이냐고.”
-싸우자는 거? 씨발 기분 존나 더럽네. 돈 많은 게 뭐. 선빵이야?
뭔가 조금 이상했지만 하림도 하늘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왁왁거리다 보니 동규는 하림의 눈치만 살폈다. 여전히 하림은 단단히 화가 난 채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고 하늘도 마찬가지였다. 목소리만 들릴 뿐인데도 호랑이 같이 화난 하늘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나는 당연히 하림이 네 줄을, 아니 줄보다는 더 중요한…….”
-와 김동규, 친구를 인생에서 잘라 버리시겠다? 서하림만 있으면 친구고 가족이고 다 통수 치겠는데? 네가 이런 새낀 줄은 몰랐다. 야. 네가 먼저 손절한 거야. 다신 보지 말자.
“자, 잠깐만 서하늘.”
“서하늘을 왜 찾아. 내가 틀린 말 했어? 너 귀여워 안 귀여워?”
-와 시발 귀 씻어야겠다.
“안.”
“왜 안 귀여워. 귀엽지, 세상에서 제일 귀엽지! 빨리 그렇다고 해. 빨, 리.”
-아아아아아아아 토나온다, 안 들린다, 씨이발.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몰라요, 안 들려요, 안 들립니다. 씨바아아아악!
“하지만…….”
하림은 동규가 쩔쩔매는 걸 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장난이라며 잡았던 멱살을 놓아주었다. 그런데 놀란 동규의 눈이 촉촉해지더니 주르륵 눈물 한 방울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헐 미안해. 많이 놀랐어? 야, 서하늘 이따 다시 전화해.”
-존나 염병도 가지가지다. 지금 김동규 울지.
“알면 전화 끊어.”
-울보 달래고 전화해. 언제 그칠 줄 알고 다시 전화하냐.
“응, 미안미안. 좀 이따 전화할게.”
-나도. 야, 김동규 장난쳐서 미안해. 끊는다.
“……아니야.”
동규가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을 땐 이미 하늘이 전화를 끊은 뒤였다. 하림은 아직도 누워 눈물만 흘리는 동규에게 미안하다 속삭이며 눈물을 닦아 주었다. 동규가 고개를 끄덕여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 진짜 미안해. 앞으로 이런 장난 안 칠게.”
하림이 했던 말들은 진짜로 화를 내는 건지 아니면 장난을 치는 건지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긴가민가했는데 하늘까지 목소리를 깔고 험악하게 말하니 감쪽같이 속아 버렸다. 그런 장난을 친 두 사람에게 화가 나진 않고 섭섭하지도 않았지만 그냥, 놀란 게 제일 컸다.
“으응.”
“잘못했어. 내가 생각이 짧았어. 왜 그랬지…….”
“아니야.”
“그만 울어, 응? 정말 진짜 미안해.”
“……키.”
한 글자만 얘기했어도 동규가 원하는 걸 알아챈 하림이 동규에게 입을 맞췄다. 동규는 눈을 감은 하림을 바라보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 눈물에 정말 약하구나. 앞으로는 좀 참아 봐야지.
“나 원래 잘 안 울어.”
하림이 입술을 떼자마자 동규가 한 말은 놀라웠다.
“뭐라고.”
“진짜야.”
“어…… 그래.”
“진짠데.”
“……하늘이한테 전화나 하자.”
동규가 하늘에게 전화를 걸자 하늘이 다시 한 번 더 동규에게 장난쳐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 울 줄은 몰랐는데 남자애가 그렇게 눈물 많아서 어디에 쓰냐는 말도 들었다. 방금 전 동규가 했던 말 때문에 하림은 동규 몰래 웃었다.
동규가 하늘과 전화하는 동안 하림은 무슨 옷으로 갈아입을지 거울 앞에 서서 고민을 시작했다. 동규가 하림도 통화를 들을 수 있도록 해 준 덕에 하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나 원래…… 잘 안 우는데.”
-뭔 개소리야. 내가 본 것만 해도 한강물 채우는데.
“……왜 전화했어.”
-아 맞다. 너네 지금 강원도에 스키 타러 갔지!
“응.”
-나만 빼놓고? 야 김동규 존나 섭섭하다. 서하림이 그렇게 가르침?
“그게.”
-아무리 둘만 놀러가는 거라고 해도! 셋이 가서 따로 놀면 되잖아!
“하지만.”
-하지만 뭐!
“……아니야.”
-그럼 나 놀러간다.
“어디.”
-강원도 너네 있는 리조트.
“여기?”
-나 보드 존나 잘 타. 스키는 눈감고 뒤로도 탐. 서하림이랑 뭐 하나 걸고 시합하는 거 볼래? 끌리지.
그건 좀 재밌을 것 같다. 동규가 뭐라고 대답하려는데 하림이 동규의 휴대폰을 가져갔다.
“눈치 없이 커플들 사이에 끼겠다는 패기는 뭐야.”
-같이 스키장 가기로 한 친구가 아파서 약속이 깨졌어. 다른 애들도 다 약속 있대. 아우님, 이 심심해 죽으려고 하는 누님을 거두어 주세요. 나도 스키 타고 싶어!
“흐음.”
하림이 입 모양으로만 ‘어떻게 할까. 오라 그래?’라고 물었다. 동규가 싫다고 하는 소릴 들으면 하늘이 김동규가 오지 말라고 그랬냐며 따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동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요.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는 거 아니고 같이 스키장 가서 놀아 주면 되고 밥……은 혼자 먹을게.
‘하림아, 서하늘이랑 밥 같이 먹어도 돼?’
하림은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친구를 위하는 맘 약하고 착한 동규의 말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도 같이 해.”
-헐 진짜?
“근데 지금 완전 성수기라 남는 객실 있나 모르겠다.”
-가격은 상관없어. 내가 서하림보단 자산은 적지만 아예 없진 않아서.
“그러면 여기 말고 좀 떨어진 곳에도 호텔 하나 있거든. 거기는 남는 거 있을 것 같은데 잠깐만.”
호텔 예약 사이트를 확인해 보니 성수기라 다른 객실은 전부 마감이어도 스위트는 몇 개 남아 있었다. 하림이 다시 동규의 휴대폰을 들었다.
“야 서하늘. 여긴 다 마감인데 아까 말한 곳은 스위트 남아 있다. 우리도 거기로 옮길 테니까 거기서 만나. 호텔 주소 보내 줄게.”
-귀찮으니까 걍 바로 체크인하게 네가 내 거까지 예약해 줘. 돈 보내 줌.
“안 보내 줘도 돼.”
-오올, 역시 블랙카드 유저.
“천천히 와. 우리 온천 들렀다가 저녁 먹고 갈 거야.”
-오키. 그럼 이따 밤에 봅시다, 친구들.
노천온천이라 설산을 보면서도 몸은 따뜻했다. 동규는 노곤노곤 풀어져 아예 눈까지 감았다. 자면 안 된다고 하림이 얘기했지만 이대로 자라고 해도 내일아침까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하림에게 기대어 반쯤 잤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건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배가 고파서였고.
동규 배에서 난 소리에 하림이 온천에서 나와 어디로 전화를 하고 다시 들어와 앉았다.
“서하늘 벌써 왔대?”
“아니. 레스토랑 내려가자마자 바로 음식 다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전화했어. 20분 뒤에 내려오래.”
“20분이나? 아 배고파.”
“한숨 더 자. 깨워 줄게.”
“배고파서 잠도 안 와. 밥 먼저 먹고 온천 올걸.”
“그러게.”
“그래도 좋아. 내일 근육통 하나도 없을 것 같아.”
잠이 안 온다고 해 놓고 동규는 꾸벅꾸벅 졸았다. 그 덕에 시간은 쏜살처럼 흘러 레스토랑으로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
동규는 디저트를 뺀 나머지 코스 요리가 전부 한 번에 펼쳐진 테이블에 침이 뚝뚝 흘렀다. 테이블을 빈틈없이 채운 접시들을 빠르게 비워 가는 동규를 하림은 꿀이 떨어지게 바라보며 느긋하게 식사했다.
부른 배를 두드린 동규가 또 온천에 들어가고 싶어 해 옮길 호텔에도 온천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아직 욱신거리는 몸을 두드리며 동규는 하림의 차에 탔다.
하늘은 거의 새벽 1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바로 올 것처럼 말하더니 저녁까지 먹고 놀다가 출발한 거였다. 하지만 하늘이 도착했을 땐 이미 하림과 동규는 격정적으로 몸을 섞는 중이었다. 분명 둘 다 피곤하니까 한 번만 하고 자자고 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늘이 보내 준 도착 인증 샷을 확인한 건 네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이따…… 조식 열리자마자 만나자는데.”
“응.”
“이대로 잤다간 우리 둘 다 내일 기어 다니겠다. 씻고…… 온천 갔다가 자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씻고 자자고 욕실에 들어가서 또 섹스했다. 키스만 할 생각이었는데 너무 불이 붙고 말았다. 이번엔 정말로 딱 한 번만 하자고 새끼손가락까지 건 덕분인지 둘 다 한 번씩 사정하고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온천에 몸을 담그고 나서 두 사람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오늘은 밤을 새야 한다는 것을.
어차피 잠시 뒤 6시부터 조식 시간이었다. 하림이 하늘에게 온천에 있을 테니 일어나면 데리러 오라고 메시지를 남겨 두었다.
하늘이 두 사람을 데리러 온 시간은 7시 10분이었다. 밤을 샌 거냐는 하늘의 질문에 동규는 귀만 빨개져서 대답을 하지 못했고 하림만 능청스럽게 하품하며 샌 거 맞으니 아침 먹고 한숨 자고 오겠다고 당당하게 나갔다. 부끄러워 눈만 빼고 물속으로 숨은 동규는 하늘이 엄청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말없이 넘어가서 놀랐다.
“아, 피곤하다 피곤해. 간만에 밤늦게 오래 운전하니까 나도 피곤해 죽겠네. 피곤하다 피곤해. 두 눈이 감겨 온다. 아아 정말 피곤하다.”
“그럼 아침 먹고 우리 다 쉰 다음에 점심 때 만나는 거 어때?”
하림의 뒤를 졸졸 따라가던 동규가 용기 내어 물었지만 하늘은 한쪽 귀를 파며 심드렁하게 “그래, 그게 좋겠다.” 하고 대답했다.
“운전 오래하면 힘들지. 나도 알아. 여기까지 내가 운전했어. 물론 중간에 힘들다고 하림이가 바꿔 주기도 했는데 내가 운전을 좀 더 잘 해서.”
“알았어, 알았어. 나머지는 밥 먹으면서 들어줄게. 아침 먹게 둘 다 일어나서 옷 갈아입어.”
“서하늘 사랑해.”
“그래.”
난데없는 하림의 고백에 동규가 하림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림은 동규의 손을 내려놓고 엉덩이를 토닥였다.
“그런 게 있어.”
“나는?”
“당연히 서하늘보다 김동규 더더더더더 많이많이 사랑해.”
“나도 사랑해.”
하늘은 분명 두 사람의 말을 들었지만 조용히 넘어갔다. 대신 레스토랑 내려와 수프에 빵에 시리얼에 온갖 조식을 잔뜩 가져온 두 사람은 뭘 먹기도 전에 하늘에게 욕부터 한바가지 먹었다.
염장 지르지 마라, 섭섭하다, 꼴값 떨 거면 따로 먹자는 하늘의 말에 동규만 식은땀을 흘리며 개미만 한 목소리로 미안하다 사과하고 하림은 천연덕스럽게 모닝 빵을 스프에 적셔 동규에게 먹였다. 동규는 불을 뿜는 하늘을 앞에 두고 목구멍에 넘어가는 게 빵인지 돌인지 싶었지만 배는 고프고 하림이 먹여 주는 거라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하늘이 짜증을 부리며 스키 내기 이야기로 넘어가자 하림이 샐쭉 웃으며 동규에게서 손을 거뒀다. 그제야 세 친구의 제대로 된 아침 식사가 시작됐다.
아침 식사를 마친 하림과 동규는 스위트룸으로 돌아가 바로 곯아떨어졌고 하늘은 가볍게 몸을 풀기 위해 스키를 타고 왔다.
혼자서도 잘 놀던 하늘은 친구들과 약속했던 시간이 되자 친구들의 객실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있는 안쪽 방까진 소리가 닿지 못해 하늘은 아픈 손을 거두고 전화를 걸었다. 하림이 죽은 것처럼 잠에 든 채라 동규가 대신 비척비척 일어나 하림의 휴대폰을 확인했다가 하늘의 이름을 보고 잠이 싹 달아났다.
“뭐야, 서하림.”
“응?”
방문을 열고 들어온 하늘은 자신의 스위트 객실보다 배는 큰 하림의 스위트 객실을 쭉 스캔하고 입술을 삐죽였다.
“나는 그냥 스위트 던져 주고 지는 이런 데서 잤다 이거지.”
동규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하늘이 동규를 따라 안쪽 방으로 들어왔다.
“잠깐만. 깨울게.”
“야! 서하림! 일어나! 우리 호텔 걸고 시합하기로 했잖아!”
안 그래도 잠이 많은 하림이 지난밤 자지도 못해서 힘들 텐데 하늘이 하림의 귀에 대고 쩌렁쩌렁 얘길 하는 탓에 동규는 하늘을 말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동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하늘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하림의 귀를 막아 주는 것뿐이었다.
“빨리 깨워. 나 놀러 온다는 거 뻔히 알면서 컨디션 조절 안 하고 뭐 했냐? 그러면 오라고 하질 말든가.”
“미안해. 어, 30분만 기다려 주면 내가 하림이 깨워서 1층 내려갈게.”
“뭐 하러 1층까지 내려가. 여기서 기다릴게.”
“여기?”
“밖에 있을 테니까 1분이라도 늦으면 바로 쳐들어온다.”
“알았어.”
하늘이 방을 빠져나가자 하림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하늘 시끄러워.”
“문부터 잠글까?”
“동규야, 물.”
눈을 뜨지 않은 채로 하품하는 하림에게 동규가 물을 따라 가져왔다. 물을 한 컵 다 비웠지만 하림은 잠이 영 깨질 않아 서 있던 동규를 끌어안았다.
“……서하늘 괜히 오라고 그랬어.”
“그러게.”
하림은 동규의 배에 얼굴을 비볐다가 가만히 끌어안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물 더 마실래?”
“아니.”
“안아줄까? 화장실 데려다줄게.”
“음…….”
동규를 안고 있던 팔을 푼 하림은 침대에 누워 동규의 자리를 만들었다. 동규가 어리둥절한 채로 서있자 침대를 두드렸다.
“10분만 더 자자. 이리 와. 빨리 나 안아줘.”
“진짜 10분 있다 일어나야 돼. 서하늘이 쳐들어올지도 몰라.”
“응. 그럼 15분.”
휴대폰 알람을 맞춰 두고 동규는 침대에 누웠다. 피곤하긴 해도 잠이 다 깨서 그런지 동규는 딱히 눈을 감지 않고 하림만 품에 안았다. 하림은 금세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동규는 하림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매만지면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먹고 열린 서하늘배 스키 경기는 2인 호텔권과 고급 와인 세트를 상품으로 걸고 진행됐다. 진 사람은 이긴 사람에게 첫 번째로 호텔에서 판매하고 있는 와인 중 하나를 선물해야 하고 두 번째로는 이긴 사람이 원하는 때에 맞춰 2인 호텔권을 예약해야 하는 룰이었다.
“너 혼자 제일 좋은 스위트를 질렀다 이거지.”
“난 둘이잖아. 너도 친구랑 왔으면 내가 똑같은 거로 예약했지.”
“시발 말은 잘해.”
“미리 고맙다. 김동규랑 여행 잘 다녀올게.”
“나야말로 미리 감사. 아까 스위스 1박에 천만 원 하는 곳 골라놓음.”
“싼 데 골랐네.”
“뭐라고? 야, 돈도 많은 놈이 이거 이겨서 뭐 하려고?”
하늘과 하림이 최상급자 코스에서 투닥이는 동안 동규는 언제 내려오나 두 사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두 사람이 있는 출발 지점은 동규가 있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동규는 그저 둘이 내려오고 있나 보다, 하고 있었다.
동규에게도 이번 내기는 굉장히 기대 되는 게임이었다. 아무래도 하림이 키가 더 크니까 이기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하림은 스키보다는 보드 타는 걸 더 좋아한다고 했고, 하늘은 어릴 적에 스키 신동이라고 불렸다 하니 꽤 박빙의 승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림이 지면 지는 대로 신기하고 놀랄 일이고 이긴다면 다른 사람도 아닌 하늘이 예약해 준 호텔에서 지내는 기분도 신기할 것 같다. 언제 도착하는 거지. 동규는 추운 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두 사람의 털끝 하나 보이지 않아 걱정이 들기 시작하고, 올라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즈음 하늘과 하림의 모습이 보였다. 동규는 내지도 못할 속도였고 두 사람은 거의 비슷하게 엎치락뒤치락하며 내려왔다.
자그마한 두 사람의 인영이 커져 갈수록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앞서기 시작한 건 파란색의 하늘이었다. 동규는 급하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얼마 남지 않은 두 사람의 승부를 촬영했다. 하늘이 저를 반기는 동규를 발견하고 고글을 벗어 던져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과, 잠시 뒤 도착해 숨을 고르는 하림의 모습까지 모두 찍은 동규는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어 놓고 승리자인 하늘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진짜 멋있었어. 완전 빛의 속도였어!”
“동영상 찍은 거 보내 줘. 올려야지. 서하림 이겼다고 자랑해야 돼.”
“잠깐만.”
동규는 미리 챙겨 놓은 생수병을 하늘에게 건네고, 제 팔에 붙어 흐느적거리는 하림을 안아 물을 먹였다. 하늘이 1박에 천만 원은 너무 싸다고 했던 말을 후회하게 해 주겠다며 악당처럼 웃는 동안 동규는 하림에게 너무 멋있었고 반했고 최고였다는 말들을 속삭여 주었다.
이 정도 내기는 져도 상관은 없지만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조금 울적했던 하림이지만, 동규가 달콤한 말들을 속삭여 주자 아무렴 어떤가 싶어졌다. 하늘은 하늘대로 하림에게 호텔을 얻어낼 생각에 신이 났고 하림은 하림대로 동규가 어화둥둥 달래 주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