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3 34화 (44/53)

34

다른 건 몰라도 리포트는 1등까진 못해도 상위권 정도는 자신 있었다. 지금까지 글을 써 온 세월이 있는데 그럴듯하게 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첫 시험을 무사히 끝낸 동규의 친구들은 매일 그랬듯 별 새로울 것도 없이 술 약속을 잡았다. 놀라운 건 동규도 그 약속에 함께한다는 거였지만.

“술도 못 먹는 사람이 따라온다니까 감동이야.”

“너네는 좀 지나치게 자주 마셔.”

“우리는 평균이거든.”

“……안주 많이 시켜도 되지.”

친구들이 부어라 마셔라 하며 엄청난 속도로 술을 마시는 동안 동규는 콜라를 홀짝거리며 친구들의 웃긴 얘기에 웃음만 흘려댔다. 한 번씩 동규에게 질문이 돌아가기도 하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동규도 친구들 얘기에 한마디씩 얹다 보니 분위기가 괜찮았다. 친구들이 여기 부침개가 그렇게 맛있다고 찬양 찬양을 했었는데 술집 부침개가 맛있어 봤자지, 했던 동규는 벌써 혼자 부침개를 네 개째 먹는 중이었다.

전에 하림이 동규와 함께 유주, 시은, 주안을 다 같이 만나고 나서 저 친구들이라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같이 술집 가서 놀아도 된다는 허락을 해 줬지만 동규는 지금껏 친구들이 술 마시러 간다고 할 때마다 매번 빠져나왔다. 이유는 하림과 노는 게 더 좋아서.

하지만 이번에 친구들과 종일 붙어 공부를 해 보니까 친구들이 동규에게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혼자만 쏙 빠지는 동규에게 섭섭함을 적잖이 느낀다는 걸 깨닫고 앞으로는 친구들과 가끔 이렇게 놀아 볼 생각이었다.

“보여 줘! 보여 줘!”

술 마시고 목소리가 커진 친구들이 한데 입을 모아 약혼자 사진을 보여 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 소리에 술집 안에 있던 같은 학교 학생들이 동규를 알아보았다. 그들이 동규네 테이블로 하나둘 합석을 시작하더니 어느덧 동규네 테이블 주변이 죄다 D대 선후배뿐이라 있지도 않은 학교행사 뒤풀이하는 꼴이 돼 버렸다. 그 가운데에 정신이 말짱한 건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은 동규뿐이었다.

오늘 괜히 왔다. 앞으로는 학교에서 최소 30분은 떨어진 곳이 아니면 술이고 밥이고 먹지 않겠다고 해야겠다. 화장실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고 싶었으나 술도 안 마신 게 쉬가 어떻게 마렵냐며 선배들이 동규를 보내주지 않았다. 콜라를 많이 마셨다고 몇 번이나 얘길 했지만 이미 취한 그들은 콧방귀만 뀌었다.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선배의 이름을 팔아 봐도 똑같았다.

거기다 친구들은 동규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동규의 친구들은 평소에도 선배들이 괜히 동규에게 시비를 걸거나 술 마시러 오라고 할 때마다 동규를 보호해 주곤 했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술집에 온 동규를 가만 둘 수 없다는 선배들이 작정하고 동규와 친구들을 떨어트려 놓은 거였다. 동규는 옆 테이블에서 자꾸 건배 소리가 나와 혹시라도 제 친구들이 정신을 잃지 않을까 수시로 힐끔거리느라 바빴다.

[규염둥이 뭐해〉

[친구들이랑 재밌나봐 연락도 없고〉

선배들 없이 친구들과 있을 때만 해도 재밌고 좋았다. 선배들은 동규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만지기만 해도 약혼자가 오라고 하냐, 선배들이랑 술 마시는데 어디서 딴청이냐 하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그럼 화장실이라도 보내 달라고 하면 나를 밟고 가는 한이 있어도 안 된다고 하니 동규는 술 취한 사람들을 상대로 말을 하는 걸 아예 포기했다.

특히 남자 선배들은 짜증이 날 정도로 동규를 툭툭 치거나 술을 못 마시는 동규에게 욕을 하거나 스무 살짜리가 뭘 안다고 벌써부터 결혼이냐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듣다 듣다 짜증이 나면 하늘이 얘기했던 대로 말없이 선배를 쳐다보았는데 그러면 선배가 동규의 눈을 피하며 수그러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고 한두 명이어야 할 만하지 많은 인원을 그것도 술에 취한 남자들을 상대로는 한계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림의 메시지를 읽은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동규는 차라리 가만히 입 다물고 있다가 선배들이 인사불성으로 취하면 빠져나갈 생각으로 계속 안주만 주워 먹던 때였다.

“주안이 안녕.”

시끄러운 술집에서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동규는 바로 알아채 벌떡 일어났다. 익숙하고도 지금 이 순간 가장 간절하게 듣고 싶던 목소리였다.

“진짜 올 줄은 몰랐는데! 근처였어?”

“응. 약수에서 저녁 먹었어.”

“아하. 어쩐지.”

주안이 과장된 몸짓으로 김동규 친구라며 하림을 소개시켰다. 옆 테이블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와 동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선배들도 죄다 하림에게 관심이 쏠려 갔다. 하림은 동규에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동규는 네가 왜 여기 있냐고 눈으로 물었다.

“와, 유주랑 시은이도 엄청 마셨네. 둘 다 얼굴 빨개.”

“무슨 일이야?”

“근처에서 저녁 먹고 있는데 최주안이 너네 여기 있다 그래서 집에 가기 전에 잠깐 왔어.”

“앉아앉아앉아앉아!”

동규 친구라면 자기 후배도 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며 선배들이 하림의 자리를 마련했다.

“D대 모임인데 다른 학교 학생인 제가 눈치 없이 끼어든 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누가요? 그렇게 생각한 사람 있어? 있으면 빨리 나가서 뒤져라. 안녕하세요. 전 경영 3학년 성아린이라고 합니다. 잘생긴 얼굴 보니까 술맛이 확 도네요. 잘 오셨습니다. 장학퀴즈랑 골든벨 잘 봤어요. 본방에 재방까지 챙겨 본 팬입니다.”

3학년 선배 하나가 하림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하림은 당황하는 척을 하다가 선배와 손을 맞잡았다.

“저도 팬입니다. 뉴스 봤어요. 수능 만점자로 나온 거요.”

“저는 친구분 과학 채널 영상이요. 실물이 훨! 씬! 낫네!”

아린 말고도 여학생들이 저마다 어떻게 하림을 아는 건지 소개를 하며 죄다 손을 내민 탓에 동규 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학생들이 궁시렁거리며 욕을 하기 바빴다.

“저, 잠시만 저 친구한테 좀 갈게요.”

“시발 그래 잘생긴 새끼들은 가서 예쁨 존나 많이 받으시고 우리는 술이나 먹다 나가서 뒤져야지.”

처음에는 선배들이 하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하림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단 얘기에 흥미를 잃고 동규에게 비싼 반지를 선물한 약혼자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동규가 워낙 약혼자 얘기를 안 하는 탓에 동규와 어릴 때부터 친하다는 하림에게 찔러 본 거였다.

“내가 대신 얘기해도 돼? 한다?”

심각한 얼굴이 아니라 신이 난 얼굴이라 동규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하림이 얘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압박 면접 받듯 반지나 약혼자에 대해 물어본다면 동규는 자기도 모르게 하림의 이름을 술술 말해 버릴지도 모르지만 하림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테니까.

제대로 대답하지 않을 때마다 한 잔씩 마시라며 하림의 앞에는 술잔 여러 개가 모였다.

“1번! 얼마나 예뻐?”

“김동규랑 비주얼로 놓고 봐도 안 꿀릴 정도야?”

“김동규피셜로 천사의 얼굴이라던데.”

“연예인급이래.”

엄청나게 쏟아지는 외모에 관한 질문 사이로 깜찍한 단어가 나와 하림이 동규를 바라보았다.

‘천사?’

하림은 입 모양으로 물어본 거였지만 동규는 제대로 봐 놓고도 모르는 척 다른 곳으로 고개만 돌렸다. 하림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진정시키고 첫 번째 질문이 끝나길 기다렸다.

“제가 눈이 굉장히 높은 편인데요 김동규랑 사진 찍은 거 보면 가끔씩 우와 소리 나올 정도?”

“2번 질문. 재벌 3세 맞지. 엄청 귀한 집 외동딸이라 곱게 자랐다고 그랬어.”

“반지도 그렇고 김동규 옷 사 줬다는 거 보면 어마어마한 금수저 아니면 재벌 3세다.”

“재벌이라고 해야 하나.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 그 분야에서는 제일 큰 곳이니까 단순히 재산 규모만 따지자면……. 근데 재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잘사는 집 애는 맞아요. 음. 다시 생각해 보니까 준재벌은 되는 것 같아요.”

“그다음! 둘이 어디서 만나서 어떻게 사귄 거야? 약혼은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했나?”

“야, 얘도 그런 세세한 건 모르겠지. 미안해, 우리가 너무 나댔지.”

“괜찮아요. 김동규가 말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저도 아는 데까지만 얘기할게요. 둘이 만난 거는요.”

동규는 어딘가로 숨고 싶어 물만 연신 들이켰다. 하림이 자기가 없는 곳에서 저에 대해 어떤 식으로 얘기하는지 궁금한 동시에 하림의 입으로 본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말이 줄줄 나오니 이토록 잘난 하림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고 쑥스러웠다.

또 한편으로는 새삼스럽게 반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림은 자리에 앉았던 순간부터 환영주라고 엄청 마신데다가 분위기를 탄 상태라 자칫하면 한 번쯤은 말실수를 할 법도 한데 어쩜 저렇게 난감한 질문들을 잘 받아넘기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술술 빠져나가는지.

심지어 하림은 동규의 약혼자에 대한 질문 중 돌려 말한 대답이 학생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면 자진해서 술잔 가득 담긴 소주를 깔끔하게 비웠다. 짓궂은 질문이나 너무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와도 그랬다. 하림에게서 원하는 대답이 나와도 반응은 뜨거웠고 하림이 대답 대신 싱긋 웃으며 술을 마셔도 반응은 뜨거웠다.

사실 하림이 고개만 까딱해도 여학생들은 박수 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동규는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터질 것처럼 빨갛게 된 제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림은 다른 학교 선배들이 채워 주는 술잔을 빼지 않고 전부 마셨다. 마치 이 학교 학생인 양 굴었다. 한 번은 선배가 하림이 애교 있게 군다고 양 볼을 꼬집기도 하고 술 잘 마시는 게 예쁘다고 머리도 쓰다듬었다.

동규는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진땀만 흘렸다. 제 친구들도 하림과 밥만 몇 번 먹었지 술 마시는 건 처음이라고 신난 상태라 이 이상한 술자리가 끝나길 바라는 건 저 혼자뿐인 것 같았다.

어느덧 동규 약혼자에 관련된 질문도 바닥이 났다. 갑자기 누군가가 하림에게 S대 앞 맛집을 추천해 달라고 물어본 뒤로 다시 하림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수능 만점자로 출연했던 뉴스 출연료는 얼마였는지, 그것도 기부했는지, 교육방송 광고는 어떻게 찍게 됐고 친한 연예인은 있는지, 물리학과에선 뭘 배우는지 등등등.

“자리 좀 바꿔 줘.”

“네?”

같은 과 선배의 부탁에 거절도 못 하고 옆자리도 뺏겼다. 동규는 다른 사람이 하림의 얼굴을 만지거나 등을 토닥이거나 하는 걸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좋아하지도 않는 술이 고팠다. 부침개를 신경질적으로 찢어 입 안 가득 쑤셔 넣어도 속이 배배 꼬이기만 하고 풀리질 않았다.

“정말 죄송한데 저 이제 그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벌써?”

“네. 진짜 김동규랑 친구들 얼굴 보고 가려고 한 건데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어요.”

“예쁜 하림이 또 놀러와. 알겠지?”

“네. 그럴게요. 저, 그런데 김동규랑 할 말이 있어서요.”

“어어! 동규야 하림이 요 앞까지 데려다주고 와.”

“네?”

몇 시간을 붙잡고 놔주지 않던 선배들이 어서 가라며 길까지 터 주는 광경에 동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화장실 다녀온다.”

“어? 왜? 가지 마. 여기 화장실 더러워.”

“아까 가 봤는데 나쁘지 않았어.”

언제 화장실까지 둘러보고 온 거지. 거짓말로 하림을 붙잡으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아무리 소꿉친구래도 화장실까지 따라가려고? 야, 그건 오바다.”

“손만 씻고 올게.”

“거봐. 금방 온다잖아.”

하는 수 없이 동규는 자리에 앉았다. 손만 씻고 온다고 했으니 바로 올 거라 믿으며.

“동규, 조금 이따 하림이 오면 지갑은 두고 가.”

“네? 지갑이요?”

“보내 주는 거 아니고 하림이 잘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누나들이랑 계속 마시는 거야.”

“네…….”

동규는 쭈뼛거리며 지갑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민증 사진 봐도 되냐고 묻기에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잠시만요’ 하고 지갑을 빠르게 가져갔다. 안에 하림의 사진들이 있어서였다.

“지갑도 여자친구가 사 준 거야?”

“응. 아니, 네.”

어떻게 하면 사진들을 뺄 수 있지. 학생증으로 잘 가리면서 동시에 꺼내면…….

“예쁘다. 비싼 거 같은데?”

“네…….”

동규는 학생증부터 먼저 재빠르게 빼내고 사진들과 겹쳐 잡아 한 번에 꺼내 남들에게는 학생증을 꺼내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손놀림이 무척 어색했지만 다행히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취한 상태라 그들은 동규가 뭔가를 꺼냈다는 것만 인지할 수 있었다.

“뭐야. 뭘 뺀 건데.”

“그, 그냥 학생증이요.”

주머니에 넣어 뒀던 학생증을 꺼내 보여 줬다. 그리고 지갑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누가 주머니를 뒤져 본다고 하면 어쩌나 싶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얼마 전에 혹시 몰라 지갑에 넣어 뒀던 콘돔은 바로 어제 하림의 차에서 소진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거!”

“네?”

“민증 사진 이거 가져도 돼?”

“제 사진을 왜…….”

“몰라서 물어? 와씨, 야 이거 봐.”

동규가 허락도 하지 않았으나 사진을 돌려 본 선배들이 이긴 사람이 가져가자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무조건 한판승이라며 딱 한 명이 이길 때까지 가위바위보가 진행되었다. 계속 두세 명의 우승자가 나와 가위바위보를 외치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가위바위보! 보! 보! 보! 악!”

“하, 사진 내놔.”

드디어 한 명의 우승자가 나오며 끝이 났다. 우승자를 제외한 선배들에게서 탄식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진 고맙다는 선배의 말에 동규는 그냥 입을 다물고 눈동자만 굴렸다.

“김동규 임자 있는 사람인데 저래도 되냐.”

주안은 동규의 사진을 차지하기 위한 광란의 가위바위보 관전을 끝내고 제 친구들에게 물었다. 유주와 시은은 국물을 떠 마시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잘생긴 배우들은 결혼을 하고 애 아빠가 됐어도 팬 많잖아.”

“아. 단번에 이해함.”

하림은 손 씻으러 가는 대신 D대 학생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을 전부 계산했다. 지금까지 먹고 마신 것 말고도 앞으로도 시킬 걸 생각한 넉넉한 금액이었다.

D대 근처 술집이라 그런지 D대 생들 몰려 있는 곳은 워낙 시끌벅적해, 동규가 지갑에 넣어 다니던 자기 사진을 뺏기는 과정이 계산하는 곳까지 들려왔다. 하림은 동규가 얼마나 진땀을 흘리고 있을지 안 봐도 훤했다.

“근데 이거 금액 너무 많이 한 거 같은데 진짜 괜찮으신지…….”

“네. 괜찮아요.”

“더 시켜 봤자 몇만 원밖에 더 안 나올 텐데요…….”

“그럼 남은 건 팁으로 냈다 치죠 뭐. 이따가 저 사람들 계산할 때 국문과 1학년 김동규가 이미 계산 끝내고 갔다고만 얘기해 주세요.”

대박이라며 영수증 들고 주방으로 사라진 알바생을 뒤로하고 하림이 동규를 데리러 돌아왔다. 하림이 가서 아쉬우니까 동규가 빨리 돌아와야 한다고 선배들이 지갑을 인질 삼아 흔들었다. 하림은 ‘빨리 보낼게요.’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손만 씻는다고 했으면서 왜 늦게 왔어.”

밖에 나오자 좀 살 것 같다.

“갔다가 알바생한테 뭐 물어볼 거 있어서.”

“친구였어?”

“아니. 너 부침개 몇 개 먹었냐고.”

“그렇게 많이는…… 안 먹었어.”

“열 개 넘게 먹었던데.”

“다 내가 먹은 거 아니야.”

“그럼?”

“일곱 개만.”

그중에 뭐가 제일 맛있었냐고 물으며 하림은 택시를 잡았다. 동규는 기운이 빠져 다 맛있었다고 간단히 말한 뒤 하림의 옆에 올라탔다.

“돌아가려고 지갑 놓고 온 거 아니었어?”

“몰라. 이따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지갑 챙겨 달라고 하지 뭐.”

“도망을 가시겠다. 간 큰데. 다 컸어.”

하림이 동규의 옆구리를 찌르며 웃었다. 간이 크든 작든 다시 술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은 동규는 말을 돌렸다. 어차피 휴대폰만 있으면 대중교통 이용하거나 카드 쓰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지 하림이 준 지갑 자체가 소중할 뿐이라, 그런 지갑을 두고 온 게 조금 걸렸다.

“네 차는. 내일 등교 어떻게 하게?”

“하나 더 있잖아.”

“아…….”

“막걸리집 앞에 두고 온 차 차 키 줄 테니까 내일 학교 끝나고 그거 타고 와.”

“나 장롱면허라 서울 도로 달릴 자신이 없어.”

“역주행만 아니면 알아서 사람들이 피해 갈 테니까 걱정 말고.”

동규는 과연 내일 무사히 안전운전을 할 수 있을지 심란해졌다. 급제동 급정거에 선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온갖 벌금에 걸리면 어쩌나 그게 제일 걱정됐다.

학교 앞에서 하림의 집까지는 금방이었다. 동규는 하림을 따라 올라와 거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자고 가도 돼?”

“집에 갈 생각이었어?”

“아니.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려고 그랬어.”

“그런데 왜 물어봐, 귀엽게. 나 좋으라고?”

“그냥.”

하림이 먼저 씻고 온다며 동규에게 키스를 한 뒤 욕실로 사라졌다. 그 짧은 시간에 세 병을 마신 하림은 멀쩡하고 오히려 콜라만 먹은 자신이 술에 취한 것 같았다.

동규는 늘어지는 팔과 다리에 이대로 그냥 잘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림이 소파 앞에 쭈그리고 앉아 동규에게 뽀뽀를 하지만 않았다면 동규는 정말 그대로 잠에 빠졌을 거다.

“아까…….”

막 씻고 나온 하림에게서는 기분 좋은 냄새와 물 냄새가 났다. 동규는 손을 뻗어 샤워 가운 안쪽 하림의 젖꼭지를 더듬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덕분에 굉장히 말랑거렸다.

“네 목소리 들리는데 진짜 환청인 줄 알고…… 엄청 놀랐어.”

“넷만 있었으면 갈 생각 없었는데 최주안이 갑자기 선배들 끼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나 내일부터 아싸로 살 거야.”

“그러기엔 인기가 많은 것 같던데.”

“아니야. 반지 비싼 거 끼고 다녀서 그래. 키 크고.”

“나 없는 곳에서 학교 사람들이랑 술 먹으면 진짜 화낼 거야.”

“응.”

“……간지러워.”

“씻고 와서 그런가 되게…… 부드럽다. 손가락에 잘 감기고.”

“그만 만지고 씻고 와.”

제 가슴을 더듬는 동규의 손을 잡아 뺀 하림이 동규에게 입을 맞추며 어깨를 토닥였다. 입술이 떨어지자 동규는 빨리 씻고 온다며 욕실로 사라졌다.

하림은 동규가 한껏 만져놓고 간 제 왼쪽 유두를 만지작거리며 동규의 손가락을 떠올렸다. 두껍고 단단하고 뜨겁고…….

손과 발이 차가운 저와 달리 동규는 늘 뜨겁다. 동규는 하림의 찬 손이 제 몸을 더듬으면 손가락이 잘 느껴져 좋다고 했지만 하림은 반대로 뜨거운 동규의 손이 좋았다. 동규가 만져 주는 곳은 어디든지 금세 열이 올랐고 뜨거워졌다. 그건 이따금 성적 자극과도 비슷해 동규와 손을 잡기만 해도 볼이 붉어졌다. 손이 차가운 만큼, 동규의 뜨거운 체온에 녹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

점점 단단해지는 성기를 잡아 하림은 느리게 쓰다듬었다. 동규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동규가 유두를 만졌을 때 이미 다리 사이에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겨우 세 병 마셨으니 취한 것도 아니지만, 술 마셨다고 기분도 좋고 참을성은 내려가서 하림은 당장이라도 자위를 하고 싶어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딱 사정하면 해방감이 들어 좋을 텐데. 하림은 엄지로 요도를 막고 신음했다. 동규의 혀가 성기를 감싼 입 안에서 사정하고 싶다. 축축하고 뜨겁고, 말랑함과 날카로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 안에서 성기를 죄다 빨린 상태로 사정을 하면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규는 늘 제 정액을 남김없이 빨아 마셨다. 그래, 그냥 삼키는 게 아니라 빨아서. 사정할 때 성기가 얼마나 예민한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 동규는 사정하는 하림의 것을 혀로 자극하고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빨아 댔다. 그러면 하림은 사정보다 더한 자극에 몸을 덜덜 떨었고 눈앞이 새하얘졌다.

빨리 나온다고 해놓고 왜 아직도야. 동규의 입 안에 하느냐 아니면 그냥 이대로 싸 버리느냐 판단력이 흐려졌다.

“아, 시발 죽겠네.”

하림은 제 것을 쥐고 있던 손을 샤워 가운에 닦고 일어났다. 사정을 억지로 참느라 귀두가 징징 울렸다. 너무 덥다. 두 손으로 주먹을 꾹 쥔 채 하림은 동규가 씻고 있을 욕실로 걸어갔다. 다급한 보폭이 굉장히 컸다.

욕실 문을 쿵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연 하림이 샤워 부스도 활짝 열었다. 동규는 욕조에 물을 받으면서 몸에 묻힌 거품을 막 씻어 내던 중이었다.

“서하림, 나 아직 다 안 씻었는데 갑자기 왜 들.”

샤워기 물을 꺼 버린 하림은 동규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어리둥절한 동규가 하림의 힘에 눌려 무릎을 꿇고 앉기 무섭게 동규의 입으로 하림의 성기가 들어왔다.

“빨리…… 씻고 온다면서.”

하림은 동규의 뒷머리를 잡아 움직였다. 두 번쯤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하림은 동규의 입 안에 참았던 정액을 잔뜩 터트렸다. 이렇게 금방 하림이 사정할 줄 몰랐던 동규는 정액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물러 기침을 했다.

“괜찮아? 미안해, 너무 급했어.”

“괜, 찮아.”

바닥엔 동규가 뱉은 정액이 흩뿌려졌다. 하림이 동규의 등을 두드리며 미안하단 말을 수없이 말했다. 동규는 멈추지 않는 기침 때문에 눈물이 나왔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서하림이 내 입에 싸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른 채로 기다리다가 참지 못하고 왔단 얘기지.

기침이 잦아든 동규가 흐르는 눈물을 닦고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문득 고개를 숙이고 있어 보이는 하림의 발가락이 귀엽다. 얼마나 급했는지 실내화를 벗지도 않았다.

“아, 진짜 미안해. 술 먹어서 그런가 지금 되게 흥분되고 자제가 안 돼. 취한 건 아니고 적당히 마신 정도거든. 근데 아까 네가 괜히 내 가슴 만져서 거기에 자극이 됐나.”

하림은 동규가 바닥만 보고 있는 게 미안해 똑같이 주저앉아 이런저런 핑계를 늘어놓았다.

“서하림, 일어나 봐.”

“응?”

“잠깐만.”

나가자는 건가 싶어 벌떡 일어난 하림은 흐트러진 샤워 가운을 바로 정리하고 걸음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동규가 하림을 잡아 욕조 턱에 앉혔다.

“뭐……하려고.”

“발가락.”

동규는 하림의 오른발을 살짝 들어 실내화를 벗겼다. 하얀 발을 손 위에 올려두고 발가락 사이로 손을 넣었다. 늘 그랬듯, 하림의 발은 차가웠다. 하림은 균형을 잡기 위해 동규의 어깨를 붙잡았다.

“나 술 먹고 기분 좋은 상태라 네가 발바닥만 간지럽혀도 또 사정할 수 있어.”

“할 거면 얼굴에 해 줘.”

“어?”

발가락 하나하나를 누르다가 발가락 사이의 여린 살을 손톱 세워 갉작이다가, 오목한 발바닥을 만지고 예쁘게 봉긋 솟은 발등과 분홍빛으로 물든 복사뼈 그리고 발목까지 동규는 천천히 만지고 주물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못나고 안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는 하림은 발마저 고왔다.

하림이 소파에 엎드리고 누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걸 보고 꼴려 급작스럽게 섹스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학생 때부터 하림의 온몸을 다 핥고 빨았지만 발가락은 동규에게 조금 특별한 느낌을 주곤 했다.

동그란 모양 때문에 그런 건지 아니면 평소엔 양말로 숨겨져 있어 그런 건지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데 아무튼 동규는 하림의 발이 좋았다. 그 예쁜 발을 한껏 희롱하며 만지고 있으니 좋으면서도 동규는 조금 슬퍼졌다.

“서하늘한테 들은 게 있는데.”

“응.”

가슴도 성기도 아닌 고작 발 하나 동규가 만진다고 숨이 가빠 온다. 동규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입이 자꾸 말랐다.

“너 술 취하면…… 다른 사람한테 안긴다면서. 뽀뽀도 하고.”

“내가?”

“아까도. 선배들이 네 얼굴 만지고 손도 만지고 하는데 가만히 있기만 하고…….”

하림의 발목을 만지던 손이 종아리와 허벅지로 올라왔다. 동규는 여전히 하림의 다리만 만지작거릴 뿐 하림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동규의 두 손이 허벅지 안쪽을 자극하며 쓸어내렸다. 하림은 허리를 세워 동규의 머리카락 안으로 손을 넣었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달라붙는 것도 야릇하게만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까…… 너는 술 마실 때마다 자꾸 나보고 여기 만져 달라 저기 만져 달라 그러고…… 서하늘이 나보고 네 술버릇 나쁘다고…… 그랬는데 나는…… 그래도 설마 네가 다른 사람한테 안기고 그럴 거라고 생각도 못 해서 안 믿었는데…….”

하림의 술버릇이 다른 사람에게 치대는 게 맞긴 했다. 취기가 오르면 따뜻한 걸 찾는 편이었고 사람 체온은 가장 쉽게 하림이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무언가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안길 정도로 취한 적은 딱 한 번뿐이었고 그 때 함께 술을 마신 사람은 다름 아닌 하늘이었다.

누나 누나 부르면서 하늘의 볼에 뽀뽀도 하긴 했는데 그건 마찬가지로 취해 있던 하늘이 누나에게 애교 한번 떨어 보라고 장난치기에 받아 준 거였고, 뽀뽀하자마자 둘 다 토하는 시늉을 하며 다신 가족끼리 이런 장난치지 말자고 음성으로 남겨 두기까지 했다.

그 외에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누군가에게 안긴 적은 없고 안아 준 적도 없었다. 그 정도로 취하려면 최소 다섯 병은 넘게 마셔야 하는데 아직까진 하림을 상대로 그만큼을 마셔 주는 사람이 존재하질 않았다.

하지만 아까 선배들이 자길 쪼물딱거린 것도 맞고 손이 따뜻하니까 가만히 있던 것도 맞아서 하림은 어떻게 설명을 해 줘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일단 나가서 얘기할까.”

그 말에 동규는 하림의 것을 더듬던 손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하림의 말 앞에 ‘다른 사람에게 안기는 건 맞지만 해명을 하기 위해서’라는 긴 말이 생략된 느낌이었다.

가슴에 커다란 스크래치를 달고 동규는 일어났다. 샤워 가운 입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욕실을 나가려는 동규를 붙잡아 하림이 샤워 가운을 입혀 주었다. 동규는 이딴 게 다 뭔 소용인가 싶었다. 욕조 물도 끄고 동규의 손을 잡아 거실로 나오는 동안 동규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음.”

소파에 시무룩해 보이는 동규를 앉힌 하림이 동규에게 키스를 하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동규는 삐진 건지 고개를 좌로 돌려 입술도 댓 발 나온 상태였다. 서하늘은 왜 쓸데없이 김동규한테 이상한 소릴 해 가지고.

하늘이 어디까지 어떻게 얘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할 말을 빠르게 정리한 하림이 동규의 손을 가져와 양손 다 깍지를 꼈다. 뜨끈뜨끈한 동규의 손등에 뽀뽀부터 했다.

“나 봐 봐.”

“싫어.”

“나 안 보면 얘기 안 해 줘.”

여전히 고개는 옆으로 돌린 채로 동규가 눈동자만 굴려 하림과 눈을 마주했다.

“나 손이랑 발 차가워서 1년 내내 수족냉증 달고 사는 거 알지.”

“……응.”

“그래서 내가 너랑 손잡는 거 엄청 좋아하는 것도.”

“응.”

“그래서 그런가, 술 먹으면 자꾸 따뜻한 걸 찾아. 집에서 너랑 술 마실 때마다 여기도 만져 줘, 저기도 만져 줘 하는 게 네가 손이 뜨거운 편이니까 여기저기 만져 주면 기분 좋아서 술기운 빌려서 그렇게 얘기하는 거고.”

“하지만.”

“그래도 술 먹고 다른 사람 안아 준 적은 진짜 한 번도 없어. 해 봤자 손 만지는 거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 만져도, 아니다. 그것도 어쨌든 네가 싫어하는 거라면 내가 잘못한 거야. 아까 선배들이 만졌을 때 가만히 있어서 미안해. 앞으로는 누가 나 만지지 못하게 할게. 잘못했어.”

속상했던 부분을 정확히 집어 얘기해 준 덕분에 동규는 가슴에 크게 났던 상처가 깔끔하게 사라졌다. 심지어 하림의 술버릇이 자기 때문에 생긴 거라니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거 찾는다고.”

“응. 김동규처럼 따뜻하고 뜨거운 거.”

동규의 다리 사이에 앉아 있던 하림이 탄탄한 허벅지에 얼굴을 비볐다. 명백하게 성적인 의도가 읽혀 동규의 성기가 힘을 받기 시작했다. 동규의 것이 발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샤워 가운이 벌어졌다. 하림은 동규의 허벅지 안쪽에 입술을 누르며 점점 안쪽으로 다가갔다.

“하, 하지 마.”

“뭐를.”

“더러운데…….”

깍지를 꼈던 손을 빼 동규는 제 것을 가렸다. 손으로는 가려지지 않아 다급하게 샤워 가운으로 덮었다. 바로 앞까지 하림의 얼굴이 다가와 혹시라도 입에 물 게 걱정이었다. 마음 상했을 자길 달래기 위해 하림이 억지로 펠라티오를 하는 거라면 동규는 받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 거 더럽다고 생각했어?”

“아니. 전혀. 깨끗해. 냄새도 좋은 냄새 나.”

“손 치워.”

“하지 마. 억지로 하다가 토라도 하면 어떡해.”

하림은 동규의 손목을 붙잡아 뗐다. 동규가 하림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지만 하림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동규처럼 입에 넣어 빠는 건 할 수 없어도 대신 동규가 얘기했던 꿈 중에 하나는 이뤄 줄 수 있었다.

“입에는 안 넣을 거야.”

“그럼?”

어느덧 완전히 발기한 동규의 것을 두 손을 잡았다. 하림은 입에 고이는 침을 삼키며 동규의 것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얼굴에 해 보고 싶다고 그랬지.”

“뭐……를?”

하림은 차마 성기를 입에 넣지는 못하겠더라도 뽀뽀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더욱이 동규의 것이라면 조금 거부감 드는 신체 부위라고 할지라도 예쁘다고 뽀뽀해 주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하림은 동규의 커다란 귀두에 짧게 입을 맞췄다. 말캉한 입술이 다른 곳도 아니고 귀두에 닿는 감각에 동규는 심장이 바스러져 없어지는 줄 알았다.

“미…… 서, 서하림 지금 미친…… 술 먹고 미친 거 아니지.”

“나 술 조금밖에 안 마셨어. 멀쩡해.”

동규의 귀두에 한 번 더 뽀뽀를 한 하림이 샐쭉 웃으며 동규의 기둥을 따라 입술을 내렸다. 뿌리 끝까지 하림의 입이 도장을 찍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동규는 온몸의 털이 다 서는 것만 같았다.

“비, 흐으, 진짜 비켜. 나 못 참겠어.”

“얼굴에 하라니까.”

“뭐?”

“얼굴에 하고 싶었다면서.”

또 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동규의 단단한 성기에 입 맞추는 소리였다.

가끔 정액이 얼굴로 튄 적은 많았어도 아예 하림의 얼굴에 사정을 한 적은 없었고 꿈속에서나 많이 해 본 거였다. 동규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 가슴이 아파왔다. 하림이 나서서 제 판타지를 이뤄 준다면 참는 게 등신 새끼가 아닐까.

“아. 살살해.”

동규는 하림의 뒷머리를 잡아당겼다. 다리 깊숙이 얼굴을 파묻고 있던 하림이 떨어졌다. 고작 입만 맞췄을 뿐 뭘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살살 하라는 동규의 말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 동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림의 얼굴에 제 것을 비볐다. 하림의 입맞춤에 쿠퍼액이 나왔던 상태라 비릿한 향이 코에 감겼다.

“서하림, 너 진짜, 하아…….”

잔뜩 흥분한 동규를 보고 싶은데, 커다랗고 두꺼운 성기가 눈가를 찔러 대느라 하림은 두 눈을 감았다. 단순히 살덩이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단단해진 상태로 동규가 허리 힘을 줘 움직이는 거라 얼굴 곳곳이 아파 왔다. 참을 만한 아픔이라 하림은 작게 입을 벌려 숨을 쉬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아 씨발, 으…….”

소리만으로도 동규가 얼마나 발정이 났는지 느껴졌다. 숨을 쉬느라 벌리고 있던 하림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동규는 그 웃음이 굉장히 야살스럽게 느껴졌다. 어차피 하림의 집에서 자고 갈 생각이라 시간은 많았다.

이 정도면 적당히 참은 거 같아 동규는 하림의 얼굴에 대고 사정했다. 눈, 코, 입, 볼까지 동규의 정액으로 뒤덮였다.

“…….”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동규는 숨을 고르면서 자기도 모르게 욕을 했다. 상상보다 제 정액을 얼굴에 달고 있는 하림은 훨씬 더 야하고 선정적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하림이 눈을 뜨려다가 정액 때문에 뜨지 못해 긴 속눈썹이 흔들렸다. 그게, 동규는 너무 야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까 술 먹을 때.”

사정을 했음에도 줄지 않는 성기를 하림의 얼굴 위에 문댔다. 정액이 동규의 것을 따라 하림의 얼굴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하림이 눈을 깜빡일 때면 속눈썹이 귀두 끝을 간질였다.

순간 동규는 남아 있는 약간의 정액을 하림의 눈동자에 고스란히 쏟을 뻔했다. 다행히 사정은 눈동자가 아닌 눈썹에서 이루어졌다. 눈썹에 엉겨 붙은 소량의 정액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하림은 겨우 떴던 한쪽 눈을 다시 감을 수밖에 없었다.

“잘못했어, 안 했어.”

“했어.”

“선배들이 얼굴 만지고 머리 쓰다듬는데 가만히 있으면 돼, 안 돼.”

“안 돼. 미안해. 잘못했어.”

시발 모르겠다. 동규는 소파에 앉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하림을 제 허벅지 위에 눕혔다.

“갑자기 뭐야?”

“벌.”

“벌? 잠깐만.”

하림이 눈을 닦기 위해 손을 얼굴로 가져가는 걸 동규가 가로채 하림의 등 뒤로 모아 잡았다. 안 그래도 동규의 허벅지 위에 엎드린 채로 눌려 있느라 불편한 자세였는데 손까지 쓰질 못하니 영 답답했다.

소파에 정액 범벅인 얼굴이 눌린 하림은 버둥거리며 일어나기 위해 애썼다. 동규는 남은 한 손으로 하림의 샤워 가운을 걷어 엉덩이를 살짝 때려 보았다. 그 소리에 하림의 몸짓이 멈췄다.

“야, 설마…….”

“이왕 내 꿈 실현시켜 줄 거면 오늘은 잘못했으니까 하나만 더 해.”

“잠깐만, 잠깐만 동규야. 얼굴이라도 닦고, 아!”

보드라운 엉덩이를 슬슬 만지다 동규는 손을 올려 내리쳤다. 따끔한 아픔에 하림은 눈이 번쩍 뜨였다. 정액이 눈동자로 흘러와 따끔거렸다.

“미안해, 잘못했, 읏!”

“몇 대 맞을래.”

하얀 피부라 겨우 두 대 맞았는데도 금세 손자국이 났다. 강압적인 목소리로 묻긴 했지만 동규는 하림을 많이 아프게 할 생각이 없어서 조금만 더 때리고 그만둘 생각이었다. 하림은 아픈 걸 싫어하니까 많이 불러야 세 대 정도 부를 것 같기도 하고.

이물질이 들어간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났다. 차라리 눈물을 흘리니 정액이 씻겨 나가 좀 나았다. 하림은 숨을 색색 고르며 동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많이 잘못했으니까, 그만큼 많이 맞아야 할 것 같아.”

“…….”

“이 대답이 아닌가.”

“맞아.”

“혹시 이거 그때 그 선생님 꿈?”

“아니.”

동규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꾹 내리고 하림의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하림이 힘을 주어 엉덩이 근육이 솟았다 사라졌다.

“다른 꿈.”

하림이 이렇게 나온다면 동규도 본격적으로 해 볼 생각이었다. 하림에게 눌려 있는 성기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동규는 하림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손을 올렸다. 찰싹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하림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도 들려왔다.

“손, 손 좀, 아, 동규야, 흐으…….”

등 뒤로 잡고 있던 하림의 손을 풀어 주자 하림이 손등으로 동규의 정액을 닦아 냈다. 이제 온전히 눈을 뜰 수 있었지만 엉덩이에 동규의 손바닥이 닿을 때마다 하림은 두 눈을 꾹 감으며 바르르 떨어 댔다.

그만두라고 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제 성기가 발기해 동규의 허벅지를 찔러 대는 중이었다. 사정을 하지 않고 참으려고 해도 동규가 때릴 때마다 저도 모르게 쌀 것 같아 하림은 입술만 연신 깨물었다.

“서하림 마조였어? 왜 맞으면서 세워.”

“그, 아…….”

“나만 변탠 줄 알았더니 아니라서 다행이야.”

“조용, 히 해.”

“우는 것도 좋아서 우는 거잖아, 지금. 이러다 싸는 거 아니야?”

그런 일만은 막기 위해 하림은 상체를 일으켰다. 한 대만 더 맞아도 정말 동규의 허벅지를 적실지도 몰랐다.

“그, 그만. 아…… 김동규.”

동규는 하림의 구멍 안으로 손가락 하나를 밀어 넣었다. 젤도 없어 굉장히 빡빡했다. 하림의 상체가 다시 무너졌으나 손으로 짚어 소파에 얼굴이 처박히진 않았다.

“아파서 그만하라는 게 아니라 맞으면서 쌀까 봐 그만하라고 하는 것 같은데 맞지.”

하림이 고개를 저었다. 동규는 하림의 발기한 성기 끝을 톡톡 건드리며 웃었다.

“맞는 것 같은데.”

“아니……라고.”

콘돔과 젤을 찾기 위해 하림의 안에서 움직이던 손가락을 뺐다. 그러자 하림이 동규의 몸에서 굴러 내려갔다. 테이블 서랍을 열어 젤을 꺼내고 콘돔을 꺼내면서 동규는 바닥에 앉은 하림을 찬찬히 살폈다. 다리 사이로 보이는 하림의 것은 꼿꼿이 서 있었다.

“올라가서 엎드려.”

“또 엉덩이 맞아?”

동규는 하림의 다리 사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입을 열었다.

“또 때렸다간 쌀 기센데 그거.”

“…….”

서랍에는 물티슈도 있어 동규는 콘돔을 찢다 말고 물티슈를 몇 장 뽑아 하림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하림은 부끄러움에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만 달아올라 있었다.

“맞으면서 사정하는 널 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 그러면 네가 다시는 엉덩이 못 때리게 할 것 같아서. 다음에 또 잘못한 일 있으면 엉덩이 맞자. 지금은 좆으로 혼나게 소파 올라가서 엉덩이 벌려.”

하나는 양보했으니 이 정도면 곱게 말한 거였다. 하림이 충격 받은 얼굴로 대답도 못 하고 있어 동규는 하림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촉 하고 물기 어린 소리가 났다.

“빨리. 싸고 싶잖아. 바로 쌀 수 있도록 한 번에 끝까지 박아 줄게.”

적나라한 단어 사용에 말없이 앉아 있던 하림이 표정을 갈무리하고 동규에게 키스했다. 동규의 혀를 톡톡 건드리면서도 눈을 감지 않고 동규와 눈을 마주쳤다. 동규가 천천히 눈을 감자 하림은 입술을 뗐다. 그리고 동규의 손에 있던 콘돔을 마저 뜯어 제 것에 씌우고 돌아누웠다. 동규의 말대로, 엉덩이를 벌리고.

“소파까지 올라갈 이유가 있나? 일부러 카펫까지 깔아 놨, 윽!”

젤도 콘돔도 없이 동규가 하림의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살이 터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반쯤 들어간 성기를 도로 뺐다. 다행히 하림의 뒤가 찢어진 건 아니었지만 젖지 않은 곳에 마찬가지로 젖지 않은 생좆을 밀어 넣으면 무시무시한 소리가 난다는 교훈을 얻었다. 동규는 젤을 한껏 짜 제 성기에 문질렀다.

“미안해.”

사과를 했을 땐 이미 귀두가 삽입되어 느리게 들어가는 중이었다. 하림은 숨을 삼키며 엉덩이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잔뜩 벌어진 뒤는 더 이상 벌어질 수도 없을 만큼 벌어져 하얀 빛을 띠었다.

하림은 자꾸만 무너지려는 상체를 팔로 지탱했다. 동규의 단단한 성기가 밀려 들어올수록 힘줄이 솟은 기둥에 전립선이 자극됐다. 콘돔을 끼지 않았으면 카펫 위로 정액이 튀었을 거였다. 하림은 삽입만으로도 정액이 찔끔 새어 나와 요도에 힘을 잔뜩 줬다. 사정하면 잠시나마 몸에 힘이 풀리기 때문에 벌써부터 사정하고 싶지 않았다.

“엉덩이 더 들어 봐.”

“허, 허리 아파.”

“조금 있으면 좋아서 허리 아픈 줄도, 모를걸.”

뒤로 빠졌다가 강하게 쳐올렸다. 동규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 크고 단단한 성기로 배 속이 잔뜩 쑤셔지면 지금 허리가 아픈 건 아픈 줄도 모를 거였다. 동규의 크기가 작으면 모르겠는데 안에 들어오기만 해도 구멍은 한계까지 늘어나지, 안은 또 한껏 벌어진 상태로 박아 대지, 그 와중에 동규가 가장 안쪽을 찌를 때면 쾌락까지 동반하니까 그야말로 이성을 상실하고 허리나 배가 아픈 건 느끼지도 못했다.

동규와의 섹스는 늘 그랬다. 처음에 할 땐 분명 좋긴 좋았어도 아픈 게 더 커서 둘 다 힘들었는데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도 눈만 마주치면 몸을 섞어서 그런가 자취를 시작할 즈음에는 아픔은 잠깐이고 버거울 정도의 쾌감뿐이었다.

살이 부딪히느라 질척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하림은 동규가 1월 1일까지 섹스를 미루던 게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새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잠시 뒤 새하얗게 날아가 버렸지만.

“흐으, 아…… 서하림, 윽!”

동규는 제 손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하림의 엉덩이에 다시 손을 올렸다. 세게 때리려던 건 아니고 하얀 엉덩이가 붉은 게 보기 좋아 저도 모르게 살짝 때린 거였다. 그런데 하림이 강하게 안을 조여 와 동규는 하림의 안에 사정을 하고 말았다.

조금 더 쑤셔 대다 사정할 생각이었다. 하림이 엉덩이를 맞으며 구멍을 조여 대고 심지어는 하림도 교성을 지르며 사정을 한 탓에 동규는 조금 놀랐다. 숨을 고르면서 이게 꿈이 아닌지 볼을 꼬집었다.

“진짜……네.”

혼잣말을 중얼거린 동규는 카펫 위로 무너진 하림의 등을 바라보았다. 허리 짓에 가운이 잔뜩 말려 올라가 하림의 하얀 등이 반이나 드러났다. 동규는 아예 하림의 샤워 가운을 벗겨 소파 위로 던졌다. 그리고 하림의 목부터 어깨, 날개뼈를 따라 키스를 했다. 여전히 하림의 안에서는 빼지 않은 채였다.

“아, 간지러워.”

“하림아.”

“응.”

“너…….”

동규는 하림의 등에서 입을 떼고 소파 위에 올려 둔 하림의 가운을 다시 가져왔다. 반을 접어 하림의 다리 사이에 놓고 허리를 뒤로 뺐다. 사정을 한 상태라 조금 작아진 것을 빼는데도 오래 걸려 하림이 낮게 신음을 흘리고는 뒤를 조였다. 성기에 엉겨 붙어 딸려 나온 정액이 가운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동규는 손가락 두 개를 넣었다.

“김동규, 벌써 끝?”

“설마. 오늘 잘 생각 하지 마. 잠들어도 안 봐줘. 엉덩이 때려서 깨울 거니까 각오 단단히 해.”

“와, 무서운데. 이번엔 도대체 어디서 흥분을 하셨을까요.”

본인이 싸지른 정액을 동규가 긁어 뺐다. 성기에 비하면 작은 손가락이라 하림이 허리를 틀면서도 킥킥거리며 웃었다.

“얼굴에 사정해서? 아니면 내가 엉덩이 맞고 느끼는 변태라서?”

“아니.”

“그럼 뭐지. 아, 천천히.”

“겨우 손가락 가지고 왜 엄살이야.”

“너는 손가락도 커서, 으…….”

자극하지 않고 정직하게 안에 있는 걸 빼 주려고 했는데 하림이 느끼기엔 아니었는지 카펫 위로 누워 있던 하림이 상체를 일으키고 동규를 돌아보았다.

“뭐 하려고…… 애태우는 건데.”

하림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동규는 입술을 축이고 손가락을 계속 움직였다. 손가락 마디마디 끈적하게 붙어 오는 내벽에 숨이 뜨거워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넣지 않은 엄지로 회음부를 압박했다. 그러자 하림의 몸이 바르르 떨려왔다. 동규는 손가락을 좀 더 빠르게 넣었다 빼면서 움찔거리는 하림의 뒤를 쑤셔 댔다. 안에 쌌던 걸 빼 주겠다는 본래의 의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안에 싼 것을 다 뺄 때까지 동규가 넣어 줄 것 같지 않아 하림은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안에 있던 정액들이 울컥 나왔다. 동규는 제 정액으로 젖은 손을 바라보다 하림의 가운에 슥슥 닦았다. 그리고 하림을 안아 소파 위에 앉혔다. 그의 다리 사이에 앉아 콘돔을 벗겨 내고 물티슈로 가볍게 닦아 주었다.

“하림아, 너.”

“응.”

“내가…….”

하림과 지금까지도 조금 난잡하게 지냈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허락을 구하려고 하니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분위기 타고 하게 되는 것과 아예 의견을 물어보는 건 조금 다른 문제 같았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혹시…… 오늘처럼…….”

“해 줄 수 있냐고.”

“응.”

“흐음.”

하림은 제 다리 사이에 앉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동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쫄아 있어, 귀엽게.

“지금까지 네가 말해 준 건 아주 약한 거라며.”

“아주 약한 건 아니고 사실 그, 좀 센 것도 얘기 했었어. 하드한 것도 많긴 했는데 그렇다고 아예 못 할 정도는 아닌데…….”

솔직히 동규가 저 귀여운 머릿속에서 얼마나 음란한 판타지를 구현하고 있을지, 또 그걸 얼마나 거부감 없이 받아 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도저히 할 수 없는 건 안 하면 그만이다.

선생님 소리나 형 소리 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눈 가리고 하는 것도 뭐, 동규랑 하는 거라면 즐거울 것 같았다. 반대로 저도 동규에게 선생님 소리를 듣거나 동규 눈을 가려 놓고 해도 되는 거였고 동규만 야한 꿈을 꾸는 게 아니라 하림도 동규를 상대로 별별 꿈을 다 꿔 봤으니 동규가 이렇게 먼저 용기를 내준 게 고마울 정도였다.

“하드한 거라니 좀 거부감이.”

“그렇……겠지.”

하림은 동규가 말해 줬던 꿈들 중에 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들을 나눠 봤다.

거의 다 해 줄 수 있는 거였다. 뭐가 더 숨겨져 있는지는 몰라도 동규가 변태스러운 걸 요구하면 하림 역시 동규에게 비슷한 수준을 얘기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고.

예를 들어 치마를 입어 달라거나 레이스 팬티나 브래지어를 입어 보라고 해도 좋겠고 가슴에 피어싱을…… 이건 한 번 하면 되돌릴 수 없는 거니까 패스.

갈색의 동그란 곰 꼬리를 뒤에 단 채로 자위를 해 보라고 해도 좋겠고 동규를 홀딱 벗겨 앉혀두고 하네스를 꽉 조이게 채운 다음 가슴 마사지를 해 주면서 사정하는 것도 보고 싶고, 발기한 동규의 성기에 빨간 리본을 달아 놓은 것도 보고 싶다. 커다란 게 리본 단 채로 꺼떡거리면 굉장히 귀여울 것 같다.

동규는 가슴이 크니까 바니보이 코스튬을 입혀놔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사정 할 때마다 토끼처럼 입혀 놨더니 조루가 된 거냐고 얘기하면 맘 약하고 여린 동규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저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쁜 버릇 고쳐 준다면서 직접 사정 방지 링을 끼워 줄 수 있을 테니까.

경찰 제복 입게 하고 수갑을 채워도 좋겠지. 양손이 결박된 동규가 제발 풀어 달라고 사정사정하며 비는 건 상상만 해도 흥분됐다.

“입 벌려.”

“응?”

“잘 빨아서 사정까지 하게 하면 김동규 머릿속에 있는 변태적인 것들 이뤄 주고 아니면 말고.”

“…….”

“뭐해. 입 벌리라니까.”

동규는 씨익 웃는 하림을 따라 입꼬리를 올렸다. 허락하는 방법도 딱 서하림다웠다. 동규는 고개를 숙여 하림의 것을 입에 물었다. 귀두부터 슬슬 자극했다. 혀를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입 안에서 비릿한 맛이 감돌았다. 정액을 꿀꺽 삼키며 동규는 고개를 뒤로 물렸다. 어차피 하림이 오래 참지 않고 사정할 거란 걸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할 줄은 몰라 웃음이 나왔다.

“아, 졌다.”

하림의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크게 오르내리는 가슴팍이 선정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김동규 판타지 이뤄 줘야 하네.”

동규는 고개를 더 아래로 숙여 하림의 뒤에 혀를 가져갔다. 아직 많이 붓지 않은 세세한 주름들이 혀에 느껴졌다. 하림은 다리를 들어 동규의 어깨를 밀었다.

“시시한데.”

“…….”

“이게 하드한 거 맞아?”

“너 미쳤지.”

“글쎄.”

“하, 서하림.”

동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림의 다리를 벌렸다. 그리고 곧바로 삽입했다. 젤이 부족하단 느낌이 들어 삽입한 채로 젤을 뿌리고 힘으로 마저 밀어 넣었다. 하림이 얼굴을 찌푸리며 소파를 벅벅 긁었다.

빠듯하게 조여 오는 하림의 안은 도대체 언제쯤 수월하게 저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끝까지 밀어 넣고 동규는 소파에 올라왔다. 하림의 위로 엎어져 입을 맞췄다.

“오늘 안 재울 거야. 내일 오전 수업은 빠져.”

“싫어. 너랑 하다가 밤을 새더라도 학교는, 읏, 아!”

“아…… 그럼, 안경 같이 골라, 줄게.”

빠르게 처올리는 동규의 속도를 하림이 따라가지 못하고 흔들렸다. 눈을 감은 채로 신음을 흘려대는 하림의 얼굴에 동규는 계속 입을 맞췄다. 하림이 한 번씩 손을 뻗어 동규의 가슴을 만졌지만 동규가 강하게 삽입하면 꼼짝없이 팔에 힘이 빠져 만질 수도 없었다.

“이름, 이름 불러 줘.”

“응, 으응, 동규야, 하으, 김동규, 아…… 좋아, 으읏, 아, 흐윽…….”

흘러내리는 눈물을 핥아 마시며 동규는 피치를 올렸다. 하림이 참지 못하고 허리를 뒤틀 때마다 안을 조여 와 동규도 신음이 터져 나왔다. 쫀득하게 달라붙는 내벽을 엉망으로 쑤셔 망가트리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동규는 삽입한 채로 하림을 뒤집었다. 속이 뒤틀리는 느낌에 하림이 숨도 쉬지 못하고 컥컥거렸다.

“진짜, 흐읏, 너무…… 아, 하림아.”

오전 수업도 오후 수업도 하림이 전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 이 집에서 나가지 않고 제 아래에서 좆이나 받아먹었으면 좋겠다. 하림이 하고 싶은 게 많고 그만큼 잘하는 것도 많은 게 이토록 아쉬울 줄이야.

드레스 룸에 있는 모든 옷들을 찢어 버리고 알몸에 제 셔츠 하나 달랑 입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실오라기 하나 입히지 않은 상태로 정조대만 채우고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하고 싶다.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동규는 제 진정한 판타지를 차마 말로 하지 못하고 대신 허리 짓으로 풀어 댔다. 체온에 젤이 녹아 소파 위로 뚝뚝 흘러내렸다. 하림이 사정을 했지만 동규는 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예 하림의 다리 한쪽을 잡아 올려 더 깊이 박아 넣었다. 그리고 하림의 가장 좁은 안쪽 깊은 곳에 정액을 싸질렀다. 사정하면서도 허리 짓은 계속했다.

“그, 그만해…… 왜 이렇게, 급하게, 아…… 흣, 동규야, 흐, 으읏 잠시, 앗…….”

“하아, 으, 아…… 흐으, 하아, 아, 허리, 들어.”

“싸, 쌌는데, 왜 자꾸, 아, 으, 멈춰 봐, 아, 김동규, 으!”

원래 섹스라는 게 하면 할수록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건가. 안에 사정을 하면 할수록, 몸을 섞으면 섞을수록 더 닿고 싶고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시험에 들게 하는 게 섹스인 것 같다.

동규는 하림의 목덜미를 물고 쭉쭉 빨아댔다. 하림이 잠시라도 쉬기 위해 기어가 소파 팔걸이를 잡았다가 동규에게 붙잡혀 끌려왔다. 분명 방금 전에 사정을 했는데 왜 동규가 멈추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목덜미를 괴롭히던 동규가 쪽쪽거리며 올라와 귓가를 핥기 시작했다. 귓구멍까지 동규의 혀가 들어왔다. 끈적한 침이 혀를 따라 묻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 하림은 목을 움츠렸다. 동규가 귓불을 깨물면서 성기를 온전히 뺐다. 하림은 숨을 고르면서도 언제 동규가 또 삽입할지를 가늠했다.

“김동규.”

“응.”

귀를 핥느라 추접한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대답이 작게 들려왔다. 하림은 동규의 머리를 잡아채 귓가에서 동규를 떼어 냈다. 동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상체를 세웠다가 이번에는 동규가 가슴을 물어와 하림은 동규를 밀어내고 앉았다.

깊은 안쪽에 고여 있던 정액이 내벽을 따라 흐르는 감각에 작게 소름이 돋았다. 동규는 하림의 다리를 벌리고 다시 삽입하기 위해 제 것을 잡았다. 하림은 뒤에 힘을 주어 동규의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벌려.”

“다 좋은데.”

“벌리라고.”

“기다려.”

“네가 뒤에 힘 줘 봤자 손가락 넣어서 벌릴 수 있는데 안 하고 있는 거야.”

당장이라도 뚫고 들어올 기세로 동규의 귀두가 하림의 구멍을 꾹 눌렀다. 하림도 지금 잔뜩 흥분한 상태라 동규가 들어와도 상관은 없었지만 장소가 문제였다.

“나, 허리 아픈데 일단 넣어 주고…… 아, 으, 천천히.”

하림의 허락에 두터운 귀두가 밀려 들어왔다. 하림은 뒤에 힘을 뺐지만 부어서 그런지 삽입되는 성기를 자꾸 조이게 됐다. 동규의 것이 다 들어오자 하림은 동규의 목에 팔을 둘렀다.

“방으로 가서 해. 소파는 딱 한 번 하기에 괜찮고 오래 하기엔 좀, 별로라.”

“응.”

동규는 하림의 허리를 끌어안고 일어났다. 깊은 곳까지 삽입되는 성기에 하림이 잘게 떨면서도 동규에게 키스를 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안을 찌르는 각도가 달라져 입술을 떼고 얼굴을 찡그렸지만 입에서는 달콤한 신음이 흘러나와 동규의 목을 타게 했다.

가장 가까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앉았다. 하림이 동규의 얼굴을 잡고 입술을 꾹 눌렀다 뗐다. 그리고 동규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빼 베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제가 직접 고른 거라 예쁘고 좋긴 한데 섹스 도중에 한 번씩 걸리적거릴 때가 있는 게 흠이었다.

“누워 봐.”

하림이 살짝 가슴을 밀었을 뿐이지만 동규는 뭐에 홀린 것처럼 바로 누웠다. 하림은 동규의 아랫배를 짚고 숨을 골랐다.

“이렇게 하면…… 아, 진짜 어떻게…… 좀 이상해지는…… 그런, 으, 하아…….”

“어떻게 이상해지는데.”

동규는 허리를 움직이고 싶었지만 꾹 참고 하림이 느리게 움직이는 걸 감상했다. 손을 뻗어 베개를 가져와 아예 베고 누웠다.

“배가, 아, 음…….”

무릎을 꿇어앉은 자세로 하림이 몸을 들어 올렸다가 앉았다. 몸무게 때문에 동규의 것이 남김없이 삽입되어 말도 못하게 깊은 곳까지 닿았다. 그때마다 하림은 머리가 징징 울렸다. 배가 볼록해지는 건 몇 번을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고 동규의 성기가 다 들어간 상태로 앉아 있다 보면 머리가 새하얗게 비어 오로지 본능만 남은 동물이 된 느낌이었다.

동규도 저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그랬다. 그냥 이렇게, 동규의 것을 끝까지 품은 채로 앉아 있으면 손이 떨려오고 배 속이 어딘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문득문득 들었다. 하지만 두려운 만큼 엄청난 쾌감이 혼재되었고 한편으로는 충만함이 들었다.

“배가 어떤데.”

동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발발 떠는 하림을 보며 침만 자꾸 삼켜댔다. 제 것이 남김없이 들어갔을 때, 얼마나 좁은 곳에 귀두가 들어가는지 동규가 제일 잘 알았다.

확 좁아지는 하림의 제일 안쪽은 어지간한 힘으로는 벌어지지가 않아 거의 동규의 것이 다 들어가지 못했다. 단순히 허리 짓을 하는 힘이 아니라 무언가를 뚫고 들어가야겠다는 힘을 주어야만 뿌리까지 삽입할 수 있다. 하림이 입으로 숨을 삼키면서 제 배를 쓰다듬었다.

“모르겠어. 이러다…… 망가질 것 같은데, 이렇게 계속…… 빼지 않고, 아…….”

하림이 다시 동규의 아랫배를 짚었다. 무너지는 상체를 겨우 지탱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못 움직이겠어?”

하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만 흘렸다. 동규가 일어나 하림을 안아 눕혔다. 그리고 끝까지 삽입된 제 성기를 꺼냈다. 하림이 숨을 크게 들이쉬며 할딱거렸다. 숨 쉬느라 부풀어 오른 가슴을 핥다가 유두를 물었다. 아래가 뚫린 채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런지, 동규가 아프게 깨물어도 하림은 모자랐던 공기를 마시느라 정신이 없었다.

동규는 이를 세워 하림의 유두를 세게 깨물었다. 이대로 아예 젖꼭지를 물어뜯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런 충동은 이번 한 번만 든 게 아니었다. 꽤 자주 올라오는 감정이었다.

제 가슴에서도 뭔가 달큼한 우유 같은 게 나왔으면 좋겠지만 하림의 젖꼭지에서도 뭔가 빨 수 있는 게 줄줄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시도 때도 없이 하림의 젖으로 배를 채울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먹는 양이 많은 대식가니까 하림의 젖으로 배를 채우려면 못해도 한 시간은 하림의 젖꼭지를 빨아야 할 거다. 한 시간을 그렇게 빨고 있으면 하림이의 젖꼭지는 엄청나게 퉁퉁 부어 있겠지. 성인 남자의 흡입력은 강하니까 꽤 얼얼할 테고.

한 시간 정도 내게 젖을 내주고 나면 아픔에 하림이의 눈가가 젖어 있으면 더 좋겠다. 한쪽 젖꼭지는 빨갛게 부어 있지, 얼굴은 눈물로 젖은 그 꼴을 보고 있으면 분명 좆이 안 서고는 못 배길 거다.

그런 하림에게 박으면서 다른 쪽 젖꼭지를 입에 물어 섹스하는 동안에는 거기에서 나오는 젖을 마셔야지. 섹스가 끝나면 양쪽이 다 부어서 쓰라리도록.

하림이 아픔에 동규의 어깨를 때려 대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겼지만 동규는 하림의 젖꼭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제발 그만하고 차라리 넣으라고 하림이 울며 애원했지만 동규는 제 입 안에서 하림의 젖꼭지 살이 터지길 바라며 쭉쭉 빨았다. 그래도 마지막 양심으로 이를 세워 뜯진 않았다.

“동규야, 그만해…… 제발, 아, 김동규, 윽, 아파…….”

하도 빨아 동규도 입 안이 아파 왔다. 이 정도로 세게 빨았는데도 터지지 않는 걸 보니 사람의 피부라는 게 동규의 예상보다 강한 모양이었다. 입술을 떼자 하림의 젖꼭지엔 피가 몰려 검붉은 색이 되었다. 하림이 동규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아프다고 했어, 안 했어.”

“미안.”

“아, 진짜, 존나 아파…….”

정말 아팠는지 발기했던 하림의 것이 힘을 잃고 늘어졌다. 동규는 하림의 눈물을 닦아 주며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속삭였다.

“당분간 가슴 빨면 죽을 줄 알아.”

“응, 알았어. 미안해.”

“건들지도 마.”

“응.”

하림이 제 유두를 살짝 건드렸다가 또 울음을 터트렸다. 꼭 멍든 곳을 누르는 듯한 아픔이었다. 동규는 하림이 씩씩거리며 우는 걸 겨우 달래면서도 울고 있는 하림의 얼굴에 꼴려 굉장히 난감했다. 지금 넣으면 당분간 섹스는 없다고 할 것 같은데.

“저기 하림아…….”

동규는 말랑거리는 하림의 것을 잡아 천천히 흔들었다. 또르르 흐르는 하림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해도 되냐는 눈동자인데.”

“으응…….”

하림은 제 눈물을 닦아 주던 동규의 손을 잡아 손가락을 물었다. 혀로 손가락 끝을 살살 간질였다. 동규가 하림의 혀를 눌렀다가 아차 하며 힘을 뺐다.

“안 재운다며.”

하림은 동규의 손가락을 입 안 깊숙이 밀어 넣었다. 동규의 애원하던 눈빛이 순식간에 불이 붙더니 단단한 성기가 삽입됐다. 하림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동규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동규가 거친 숨을 토해 내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하림도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뒤틀었다. 동규는 하림의 입에 제 손을 물린 채로 곧바로 사정한 뒤에 하림을 꼭 끌어안았다. 진짜, 집 안에 가둬 두고 섹스만 시키고 싶다. 하림을 끌어안은 채로 동규는 숨을 잠시 고르다가 다시 움직였다. 땀에 젖은 두 몸이 서로에게 달라붙어 끈적거렸다.

격한 정사는 아침까지 이어졌다. 새벽에 이제 그만 씻고 자자고 했다가 욕조에서 한바탕 몸을 섞어 버린 바람에 엉망진창이 되고 나서야 침대로 돌아올 수 있었고, 돌아와서도 끌어안고 굿나잇 키스 하다가 불이 붙어 버렸다. 하림은 밝아지는 천장을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동규가 몇 번째인지 알 수 없는 사정을 하고 몇 시간 만에 하림에게서 제 성기를 빼냈을 때였다.

도대체 얼마나 안에 싸 놓은 건지 하림은 숨을 쉴 때마다 뒤에서 정액이 흘러나와 경악을 했다. 뒤가 닫히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림은 손을 뻗어 뒤를 더듬었다. 아픈 게 느껴지긴 하는데 제 몸에 붙어 있는 곳인지 의심스러운 이상한 감각이었다.

동규가 씻겨 준다기에 하림은 몸을 일으켰다. 허리가 주저앉는 것만 같아 입이 절로 벌어졌다. 땅에 발을 딛고 서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동규가 붙잡지 않았다면 욕실로 기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조금도 쉬지도 않고 한 건 첫 섹스 이후로 처음이지 않나…….

씻고 나와 동규가 차려 준 아침을 먹는 동안 하림은 허리와 뒤가 너무 아파 자꾸 반찬을 제대로 집지 못했다.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하기도 했고.

“밥 먹여 줄까. 미안해.”

“아니.”

꾸역꾸역 자기가 하겠다는 하림의 고집은 꺾지 못한다는 걸 알아서 동규는 안절부절못하고 엉덩이만 들썩거렸다.

동규도 허리가 뻐근했지만 하림은 저보다 몇 배는 더 아프고 고통스러울 거였다. 동규는 미안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자기가 그렇게 크게 잘못한 것 같지는 않고 그저 힘 좋고 정력 넘치는 탓이라 다음부터는 이렇게 오래하지 말아야지, 하는 반성만 크게 했다.

밥을 먹고 옷까지 갈아입은 동규는 드레스 룸 거울 앞에 앉아 하림과 안경을 골랐다. 하림은 동규보고 골라 달라고 하나하나 모두 써 봤는데 동규가 다 예쁘고 잘 어울린다고 한 덕에 웃고 말았다. 동규가 빈말로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정말 진심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결국 하림이 마음에 드는 안경으로 고르고 난 뒤엔 한참을 쪽쪽거렸다.

“밴드 붙여 줘. 이대로 옷 입으면 최소 사망이야.”

1교시인 동규만 옷을 입은 상태였다. 하림은 1교시가 없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동규가 무식하게 빨아 놓은 유두 때문에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동규는 구급상자를 가져와 하림의 퉁퉁 부은 젖꼭지에 밴드를 붙여 주었다.

“그래도 아파.”

“미안해. 앞으로는 이렇게까지는 안 되게 할게. 나도 아까는 좀, 미쳤었나 봐.”

“그래 보였어.”

“학교는 갈 수 있겠어? 걷는 거 불편해 보여.”

“넘어졌다고…… 거짓말해야지 뭐.”

“조금이라도 자.”

“지금 자면 못 일어나.”

아침 수업을 듣기 위해 동규는 나가 봐야 했지만 도저히 하림을 두고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헤어지는 키스를 한참이나 하고 나서도 동규가 안고 놔주질 않았다. 하림이 동규의 손을 잡아 풀었지만 동규는 현관문을 나가지 않고 또 하림을 껴안으며 입술을 들이밀었다.

“아, 간지러워. 침 묻히지 마.”

“하지만…… 너랑 더 있고 싶은데. 어차피 시험도 끝났고 오늘 하루 정도는 자체 휴강해도 괜찮아. 옆에서 네 수발이나 들고 싶어.”

“내가 싫어. 나는 이따가 수업 들으러 갈 거야.”

“너무해…….”

“가. 자꾸 이러면 마음 약해진단 말이야.”

하림은 동규의 얼굴을 피해 넓은 어깨로 도망쳤다. 3초만 더 동규와 얼굴 마주하고 있었다간 학교고 뭐고 동규를 다시 안으로 끌어들여 아침부터 또 몸을 섞는 미친 짓을 할 뻔했다.

“이따, 다 끝나고 와서 내 가슴이나 풀어 줘.”

“풀어?”

“피멍 들었으니까 빨리 나으려면 멍울을 만져서…… 풀어 줘야 돼.”

“진짜?”

“진짜.”

“난 진짜 몰랐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빤 거야.”

“알아. 원래는 내가 할 생각이었는데 학교 잘 다녀오면 상으로 네가 하게 해 줄게.”

하림은 동규의 어깨에 기대 있다가 동규에게 뽀뽀를 했다. 분명 얼굴이 빨갛게 됐을 게 분명했지만 동규를 달래 학교로 보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눈 감았다 뜨면 5시면 좋겠다.”

“나도.”

부끄러움에 눈동자를 아래로 굴리던 하림이 이제 진짜 가라며 동규에게 짧게 입을 맞췄지만 동규가 하림의 얼굴을 잡고 혀를 빨아 올렸다. 하는 수 없이 하림이 동규의 목을 안아 고개를 살짝 틀었다. 숨이 차오를 때 동규가 먼저 입술을 뗐지만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이따 보자.”

“나 몰래 젖꼭지 만지지 마. 내 거야. 내가 풀어 줄 거야.”

“알았어.”

“몸조심하고. 아프면 전화해. 네 차 끌고 갈 테니까.”

“응.”

동규는 미안하다는 말을 열 번쯤 더 하고 문을 열었다.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도 하고 어서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가볍기도 하고 그랬다.

학교에서는 종일 하림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딴 세상 사람처럼 굴었다. 친구들과 선배들이 계산 다 하고 갈 거면 말을 하지 그랬냐며 동규에게 한마디씩 말을 걸었지만 동규는 대충 하하 웃으며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하림과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아침에 끼고 온 반지가 문득 눈에 걸리면 너무 좋아 발을 동동 굴렀다.

마지막 수업은 차마 끝까지 듣지 못하고 쉬는 시간에 몸이 아프다고 빠졌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교수님에게 거짓말이 들킬까 봐 눈도 마주치지 못한 상태로 아픈 척을 하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하림에게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날아가고 싶었다.

동규는 막걸리집 앞에 세워 둔 하림의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종일 아파 힘들었다는 하림이 아니었다면 억 소리 나는 차를 운전하겠다는 용기가 들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하림이 아프다니, 만약 이 차가 세상에 단 한 대만 있어 부르는 게 값인 차라고 하더라도 동규는 시동을 걸 자신이 있었다.

빨리 하림을 만나고 싶은 건 맞지만 동규는 S대로 가는 동안 신호들을 칼같이 지켰다. 주차는 조금 실수했다. 하림이 기다리고 있을 건물을 보자 마음이 급했다. 연락을 받고 나온 하림은 옆자리에 타고서 동규를 흘겼다.

“너 수업 째고 왔지.”

“반만.”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어 동규는 핸들을 잡은 손에서 땀이 났다. 이런 날은 꼭 신호에 매번 걸려 사람 속을 돌게 만들었다. 동규는 빨간불에 걸릴 때마다 하림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하림은 앞으로 미안하단 말 한 번만 더 하면 차에서 내리겠다고 했다. 동규는 아예 입을 꾹 닫고 묵묵히 운전했다. 많이 피곤한지 하림이 하품하는 소리가 자꾸 들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하림은 상의를 벗어 던졌다. 동규는 주방으로 달려가 하림이 마실 물을 따라 가져오던 때였다.

“아, 김동규!”

큰 소리에 동규가 깜짝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 하림이 불을 뿜으며 다가왔다.

“……왜?”

하림은 동규의 멱살을 잡아 제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하림의 유륜에 피가 맺혀 있는 게 보였다.

“이거 왜 이래? 왜 피 나?”

“밴드 접착 부분에 닿은 살 표피가 벗겨져서, 아씨, 따끔거려. 어떡할 거야.”

“미안해. 진짜 미안해.”

“그러니까 내가 그만하라고 했을 때 그만하지 왜 계속 빨아 대.”

“미안해. 미안해, 하림아…….”

뭐라고 더 동규에게 화를 내려던 하림은 동규의 닭똥 같은 눈물에 화를 삼켰다. 후드득 떨어지는 동규의 눈물을 닦아 주며 울지 말라고 해도 동규가 잘못했다며 서럽게 울었다. 제 가슴팍도 아닌데 이렇게 가슴 미어지게 울 건 뭐람.

하림은 동규를 껴안아 토닥였다. 동규의 옷에 눌려 유두가 아파 왔지만 입술을 꾹 깨물고 동규를 달래는 게 우선이었다. 하림의 품에 안겨 울던 동규는 갑자기 하림을 떨어트려 놓더니 방금 눌려서 아픈 거 아니냐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약부터 발라 줘. 그만 울고.”

“하지만…….”

“남은 한쪽도 밴드 떼야 돼. 네가 천천히 살살 떼 줘.”

“응. 피 안 나게 조심할게.”

“진짜, 엉망진창이야.”

“미안해…….”

“미안한 일 아니야. 그만 울어.”

“그래도…….”

“내가 진짜 너한테는 화도 못 내겠다.”

“화…… 내도 돼.”

뭘 하면 동규가 눈물을 그칠 수 있을지 하림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뭐 하나가 생각이 나긴 했는데 과학자의 양심에 찔려 차마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어떡해, 안 그래도 피멍 들었는데 피까지…….”

“김동규.”

“으응.”

“상처에…….”

하림은 깊은 한숨을 푹 쉬고 나머지 말을 이었다.

“사람 침이 약간의 효과가 있어.”

동규가 놀라 눈물을 그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로 진짜냐고 되물었다.

만약 과학의 신이 있다면 그에게 천벌을 받는대도 일말의 변명도 할 수 없겠지. 그래도 뭐 어떤가. 이번만 동규를 달래기 위해 거짓말하고 다음에 언젠가 나나 김동규에게 상처가 났을 때 정정해 주면 되겠지. 언제나 새로운 진실이 규명되어 온 학문이 과학이다. 과학의 신도 이 정도는 귀엽게 용서해 주지 않을까.

“진짜로.”

아직 울먹이는 동규가 머뭇거리며 하림의 가슴에 다가갔다. 하림은 동규의 손을 잡고 주방으로 걸어가 동규를 식탁 의자에 앉혔다. 이 정도 높이가 동규가 제 가슴팍을 빨기에 딱 적당했다.

이를 세우지 않은 동규가 훌쩍거리며 하림의 가슴을 혀로 쓸어 올렸다. 상처로 닿는 혀의 감촉은 무척 쓰라리고 아팠고 상처에 동규의 침이 효과가 없다는 것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하림은 동규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가슴팍을 간질이는 그의 머리만 부드럽게 쓰다듬을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