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3 28화 (3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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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있던 일이라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하림은 6월 모의고사에서도 1학기 기말고사에서도 전교 1등을 수성했다. 방학식이 있던 날 하림은 성적 우수상을 받았고 동규는 백일장 장원을 하나 받았다.

강단 위에 선 교장 선생님은 학교를 빛내둔 두 명의 학생들로 인한 기쁨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통합과 융합의 시대에 이성과 예술 두 분야를 어우르는 우수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어 40년에 가까운 교육자 인생에 감사하다는 내용을 길게도 얘기하는 교장 선생님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학생도 없었다.

동규의 기말고사 성적은 중간고사 때 기껏 올려놓은 점수가 다시 되돌아간 수준이었다. 하림을 걱정하느라 공부는 하지도 않았으므로 당연한 결과였다. 불안감을 글로라도 해소하지 않았다면 정말 어딘가로 잠수를 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불안함을 고대로 써서 냈더니 심사위원들이 보기엔 청소년 백일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파격적인 소재로 다가왔는지 글 쓴 당사자조차 예상 못 한 장원을 턱턱 안겨 주었다.

수능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며 다른 학생들이 공부 계획을 짜느라 바쁜 여름 방학이었으나 하림은 출국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국제 청소년 과학 포럼이 열리는 미국 시애틀로의 출국이 방학하고 고작 이틀 뒤인 일요일이었다. 동규는 하림이 짐 싸는 걸 옆에서 열심히 도왔다.

4월에 포럼 참가 대표로 선정된 이후로 몇 번이나 하림이 동규에게 같이 가자고 졸랐지만 동규는 한사코 거절했다. 하림이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동규는 영어도 잘 못하는데 하림이 없는 시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진 않을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고 싶은 걸 참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대신 대학생 되고 놀러 가자는 약속을 했다. 거기다 하림이 이번에는 한 발 물러나는 거니까 동규보고는 여권만 얹으라며 엄포를 놓았다. 여권만 얹는다는 표현은 처음 듣는 말이라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려다 하림이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어 동규는 말없이 고개만 세차게 끄덕였다.

열여섯 시간의 시차로 두 사람은 전화 시간도 정했다. 안 그랬다간 동규가 하림의 편한 시간을 맞춰 전화하느라 생활 패턴이 망가질까봐 하람이 먼저 선수를 친 거였다. 전화하는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오후 1시, 시애틀 시간으로는 오후 9시인 시각. 하림이 일찍 자는 편이기 때문에 두세 시간 정도만 영상 통화하고 메시지는 수시로.

쉬는 날이면 하림과 약속이 없을 때마다 새벽 늦게 잠들어 오후 늦게 일어나던 동규가 12시부터 알람을 맞춰 두고 하림의 전화를 기다렸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서로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고받았으면서도 전화를 시작하면 ‘보고 싶다’부터 시작해서 조금 전에는 뭘 했고 저녁은 뭘 먹었고 꿈은 무슨 네 꿈을 꿨고 하며 두 시간을 금방 보내기 일쑤였다.

열흘간 떨어져 있는 동안 동규가 전화하는 시간만 기다리고 있을까 봐 하림은 동규에게 숙제를 주고 갔다. 바로 자소서 쓰기.

대학 입학처 홈페이지에 올해의 수시 일정이 올라올 즈음, 하림은 문학 특기자 전형이 있는 서울 4년제 대학을 모두 찾아 입시 요강을 분석했다. S대를 비롯해 최상위 대학을 지원하는 하림은 서류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학교장 추천서를 비롯해 성적과 출결이 포함된 학생부, 봉사 활동, 자기 소개서까지 모두 꼼꼼히 준비해야 하지만 동규는 아니었다.

학교마다 다르긴 해도 평균적으로 수상 실적이나 실기 비율은 70%나 됐고 어떤 곳은 1차에서 오로지 수상 실적만으로 3배수를 뽑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뽑힌 3배수의 학생들은 2차에서도 학생부를 보지 않고 면접이나 실기, 수상 실적으로 최종 합격이 결정된다. 학생부 반영 비율이 높아야 30%라는 것도 믿기 힘든데 아예 안 보기도 한다니 하림으로서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어찌됐든 특기자 전형에 자기 소개서를 보는 곳들이 있어 하림은 동규에게 자소서를 써 보라는 커다란 숙제를 내어 주고 비행기를 탔다. 동규는 아직도 대학을 갈지 말지 고민 중이었으나, 하림이 전에 자기가 IMO 대표가 된 뒤 포기를 했던 것처럼 너도 합격 후 가지 않는 것과 아예 준비도 하지 않고 가지 않는 건 천지 차이라는 말에 한번 지원이나 해 보기로 했다.

하림과 공항에서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을 땐 팔자에도 없는 자기 소개서를 쓰게 되어 조금 어색했다. 하림이 담임 선생님, 과외 선생님에게 자기 소개서를 몇 번씩 보여 주고 고쳐 가는 걸 옆에서 보기만 했지 직접 쓰게 될 줄은 몰랐다.

1번부터 막혔다. 3번까지는 공통 질문으로, 고등학교 재학 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을 써야 하는데 동규는 학업에 노력까지 기울여 본 적이 없었다. 하림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던 때, 글이 써지지 않으니 공부라도 해 보자고 교과서 몇 번 읽은 게 다였고 하림이 옆에서 도와주니 수행도 적당히 챙기고 복습만 조금 한 게 다였다. 노력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한 학습 경험이었다.

-자기 소개서 썼어?

“아니. 1번부터 쓸 의욕이 안 들던데.”

-왜, 나랑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도 많이 올랐잖아.

“학습에 기울인 노력과 공부를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을 쓰라는데 나는 그런 게…… 없는데. ‘공부 도와준 친구가 천재라는 걸 매일매일 깨달았습니다’라고 쓸 수는 없고.”

-진짜 배우고 느낀 게 그게 다야?

“아니. 그거랑……. ‘저는 공부머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 공부는 제 적성이 아닌 것 같습니다’ 뭐 이런 거.”

-그럼 1번은 같이 써 줄게. 2, 3, 4번만 써 놔. 독서경시대회 우승하고 신문부에 글 써 준 것도 있잖아. 독후감대회도 은상이고.

“알겠어.”

그래도 2번과 3번은 좀 나았다. 쓰다 보니 알게 된 거지만 동규는 하림과 하늘 덕분에 학교 활동에 꽤나 많이 참여한 상태였다. 그때는 귀찮기도 귀찮고 내키지도 않았던 교내 활동들이었는데 지금 보니 학생부와 자소서를 풍족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이었다. 이런 걸 내가 했었나? 싶은 것들도 더러 있었다.

고등학교 재학 기간 동안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을 세 개만 쓰라는데 동규가 쓰고 싶은 교내 활동만 다섯 개가 넘어가 세 개를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마지막 4번은 동규에게 1번급으로 너무 어려웠다. 해당 학과 지원 동기와 입학 후 진로 계획에 대한 질문이었다. 애초에 지원 동기가 하림이 지원해 보라는 타의였고 입학 후 진로 계획은 생각도 해 보지 않은 거였다. 하루 골머리 앓다 하림에게 얘기했더니 이것도 하림이 한국 오면 도와주기로 했다.

고등학교 생활을 돌아보는 2번과 3번 질문을 작성하며 동규는 재밌었다. 다른 친구들은 자기 소개서 쓰면서 골머리를 앓는다는데 동규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1,500자와 1,000자밖에 쓰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정말 즐거운 학교생활이었다. 하림이 없었다면, 하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신나고 즐겁게 학교를 다니지 못했을 거였다. 학교 가기 싫어 빠진 적도 몇 번 있었지만 그건 아주 작은 일이었을 뿐 전반적으로 좋은 기억만 가득했다. 누군가 다시 시간을 입학식 날로 돌린다고 하더라도 망설임 없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졸업식 도중에 울면 어쩌지, 동규는 그런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며 하림이 내준 숙제를 마쳤다.

-빨리 한국 가고 싶어.

동규의 하루 일과 보고를 열심히 듣고, 마찬가지로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던 하림이 문득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뱉었다. 잘 모르고 어려운 얘기들인데도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추임새를 넣는 동규를 보는데, 동규의 따끈한 체온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거다.

“재밌다며.”

잘 얘기하다 갑자기 나온 하림의 말에 동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림은 손을 올려 동규의 얼굴이 가득한 액정을 매만졌다. 동규의 볼도 코도 입술도 만졌지만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재밌긴 한데 옆에 김동규 없어서 쓸쓸해. 심심해. 재미없어. 따분해.

“…….”

-나 사실 밤마다 울면서 잔다. 너 보고 싶어서. 끝나려면 아직도 3일이나 남았어.

하림이 과장된 몸짓으로 있지도 않은 눈물을 닦는 척을 했다. 동규는 하림과 영상 통화를 끊고 나면 허전한 마음에 정말로 눈물이 고인 적이 있어서 며칠 전에는 아예 책상에 두루마리휴지를 하나 올려놨다. 노트북 뒤쪽에 있어서 하림은 보지 못하는 곳이었다.

“……진짜?”

-진짜. 자려고 누우면 울적해. 김동규 냄새 그립고.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계속 네 생각만 나.

포럼 첫 날 제일 첫 프로그램에선 세계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핀 버튼을 만들고 그걸 교환하는 시간을 짧게 갖는다. 몇 백 명의 학생들이 있다 보니 첫 시간에 모두와 핀 버튼을 교환하기는 힘들고, 열흘간의 포럼이 진행되면서 명함을 교환하듯 핀 버튼을 교환하는 게 국제 청소년 과학 포럼의 오랜 전통이었다.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친구를 많이 사귈수록 핀 버튼 체인지를 많이 하게 되고 그만큼 알록달록 다양한 핀 버튼을 모을 수 있다.

하림은 첫 3일 정도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핀 버튼을 많이 모았고 동규에게 기억에 남는 친구들의 핀 버튼을 보여 주며 이 친구는 어땠는지 저 친구는 어땠는지 열심히 설명하느라 바빴다. 신분증 줄에 달린 핀 버튼들은 온갖 국기 모양이거나 캐릭터 또는 얼굴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4일째에는 하림의 부스로 어떤 교수님이 왔었는데 하림이 원래 좋아하던 과학자였다. 교수의 연구 분야가 하림의 발표 주제와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파란 눈의 교수는 하림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하나같이 날카롭고 어려운 질문들이라 처음엔 하림도 꽤 당황했으나 열심히 대답했다. 초반에는 동양인 학생이 얼마나 아는지 시험을 해 보는 듯이 태클을 거는 수준이었지만 하림이 그의 논문까지 얘기하며 모든 태클을 방어했더니 하림에게 명함을 건네고 메일 주소와 핀 버튼을 받아 갔다.

메일 주소를 적어 줄 때 하림은 그가 혹시라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했다. 전에 하림이 그의 책을 읽고 궁금한 게 생겨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중학생이 이런 질문을 하다니 놀랍다는 답장을 받았고 그 뒤로도 두 번쯤 메일을 주고받았던 터라 잘하면 알아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벌써 몇 년 전 일이기도 하고 직접 만난 것도 아니라 고작 메일 주소만 가지고 하림을 알아보기엔 교수의 나이가 많았다. 하림은 교수와 헤어질 때 전의 그 메일을 얘기하려다가 말았다. 조만간 메일 한 번 준다고 했으니 그 때 얘기하면 더 강한 기억으로 남길 수 있을 거다.

일주일간 이런저런 일들을 동규에게 얘기하면서 재밌고 좋았지만 일주일이나 동규와 떨어져 있는 게 슬슬 버티기 힘들었다. 왜 온다고 그랬지. 신나서 신청했고 발표 났을 때도 무지 좋았는데 역시 동규를 같이 데리고 왔었어야 했다. 비행기 자리도 호텔 방도 전부 하나씩 더 예매해서 매일 저녁 동규가 좋아할 음식들을 먹으러 다니고 오늘은 내 방에서 내일은 네 방에서 자자며 한 침대에 누워 정신없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그랬어야 했는데.

“그래도 너한테 엄청 좋은 거잖아. 아무나 못 갖는 기회고.”

-그건 그런데 열흘 떨어져 있는 건 너무 길다. 비행기 타는 시간 생각하면 거의 2주잖아. 보고 싶어.

“나도 너무 보고 싶어.”

-김동규랑 뽀뽀하고 싶어.

“나도. 하림아, 나 그냥 너 따라갈 걸 후회 중이야.”

-내가 뭐랬어. 따라오라고 그랬지.

“응…… 근데 영어 못해서…….”

-그러니까 영어 공부 열심히 해. 세계 일주 시켜 줄 건데 영어 할 줄 알면 더 재밌을 거야.

“응. 근데 세계 일주 하려면 영어 말고도 다른 언어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 독일어랑 중국어 말고도 몇 개 더 할 줄 알아.

“역시.”

-근데 사실 걍 영어면 다 돼. UN에서 지정한 세계 공용어가 여섯 개 있는데 영어 말고는 원어민 수준 아니면 그냥 그 나라 애들이 신기해하고 끝이더라고.

“그렇구나.”

-열심히 해. 진짜 세계 여행 해야 돼 우리.

“왜?”

-왜냐니.

침대에 누워 있던 하림이 일어나 앉았다. 그러고는 노트북을 어디다 뒀는지를 살폈다. 저 멀리 테이블 위에 온갖 자료들 사이로 가려진 노트북이 보였다.

“뭐 해.”

-노트북. 아, 너무 멀리 있어. 침대 내려가기 귀찮다.

하림은 다시 누웠다. 큰 화면으로 동규를 보려다가 말았다. 오늘은 포럼 끝나고 나서 외국인 친구들과 놀다 들어와 좀 피곤했다. 저녁 약속 장소였던 터키 레스토랑 옆이 하필이면 길거리 농구를 할 수 있게 골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기껏 먹은 맛있는 저녁이 농구하느라 순식간에 소화됐다. 다들 밤이라도 새울 기세로 뛰어다니는 걸 하림은 동규랑 통화할 시간이라 혼자 빠져나와 호텔로 돌아온 참이었다. 하림이 자신의 sweetheart 때문에 가야 한다는 말에 친구들이 얼마나 야유를 했는지 모른다.

-나중에 독립하면 내 서재에 커다란 세계 지도 사서 붙여놓을 거야. 하얀색으로. 빨리 왜냐고 또 물어봐.

“왜.”

-너랑 같이 간 곳들 하나씩 색칠하게. 죽기 전에 새하얀 세계지도 전부 채우는 게 내 인생 목표 중 하나야.

“…….”

-내 인생 목표 망치고 싶지 않으면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여행도 같이 다녀. 알겠지.

“응.”

-하와이로 스노클링 하러 가고 스위스 가서는 보드 타고 마추픽추 보러 페루도 가고. 다…… 다 같이 가자.

동규는 하림이 한 모든 말들이 먼 미래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대학생이 되면 하림은 지금보다 훨씬 바쁠 거고 하는 것도 더 많을 텐데 전 세계를 다 돌아다니려면 하림의 스케줄에 조금 빠듯한 감도 있었다. 한국에서 가까운 나라들이라면 3박 4일 내지는 4박 5일 정도 되겠지만 그 이상은 바쁜 하림의 시간을 뺏는 것일지도 몰랐다. 대학교 방학은 기니까 그 때 가면 되나. 근데 하림이는 방학에도 이런 거 저런 거 참여하느라 해외 나갈 여유도 없을 것 같은데…….

“피곤해 보여. 잘래?”

-아니. 좀 더 통화해.

“빨리 자야지 한국 돌아오는 시간도 줄어들지.”

-헐. 그러네. 근데 얼굴 더 보고 싶고 목소리도 더 듣고 싶어. 김동규 왜 한국이야. 나 따라오라고 한 달을 꼬셨는데.

“그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진짜…… 내일 아침에 눈 떴을 때 네 침대 안이었으면 좋겠다. 김동규 자고 있는 얼굴 보이고. 미안하단 말 하지 마.

독심술은 거리와는 상관이 없다는 걸 이번에 떨어져 있으면서 깨달았다. 동규는 미안하단 사과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가 꾹 닫았다.

“……자. 내일은 또 아침 일찍부터 모여야 한다며. 불 끄고 눈 감으면 내가 책 읽어 줄게. 목소리라도 들으면서 잘 수 있게. 벌써 12시야.”

-헐, 좋아. 그러면 오늘부터 매일매일 밤마다 책 읽어 줘.

“응.”

-갑자기 행복해졌어. 불 끈다.

“안대 써. 나도 책 가져올게. 아, 너 듣고 싶은 책 있어? 나한테 있는 거로.”

-네가 좋아하는 책. 그거로 듣고 싶어.

좋아하는 책은 많지만 하림에게 읽어 주고 싶은 책은 더 많아서 동규는 도대체 무슨 책을 골라야 하나 고개를 돌려 책장을 훑었다. 책장에 빼곡하게 꽂힌 책들이 전부 동규가 좋아하는 책들이라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고르기 어려워?

“……조금.”

-음, 그러면…… 소설책 말고 수필집으로.

수필집도 동규가 좋아하는 국내외 작가들 것으로 모아둔 게 서른 권은 넘었다.

-이것도 고르기에 범위가 좀 넓나. 수녀님 거나 스님 거로 골라줘. 차분하게.

“알았어.”

동규는 수녀님의 수필집 한 권을 꺼냈다. 까맣게 변한 노트북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 책을 펼쳤다. 제일 앞 장에는 엄마가 옛날에 수녀님에게 받았다는 사인이 깜찍한 스티커와 함께 동규를 맞아 주었다.

“…….”

집으로 돌아가 자기 직전까지 전화를 한 적이 셀 수도 없이 많은데, 책 읽어 주는 게 뭐라고 이렇게도 떨릴 일인가. 동규는 괜히 목을 한번 가다듬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서하림, 자?”

-아니 아직. 빨리 읽어 줘, 꿀잠 자게. 잠에 들면…… 계속 네가 읽어 주고 있으면 꿈에서 네 목소리 나오겠다.

분명 목을 풀었는데도 다시 목이 꽉 잠기는 느낌이다. 꿈속에 스피커라도 생겨서 낭독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라도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책을 읽어 주는 행위가 아주 대단하게 느껴져 살짝 부담스러웠다. 오늘 밤 하림의 꿈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하림이 야한 꿈을 꾸는데 너무 차분하고 종교적인 내용이 스피커를 타고 가면 꿈속에서 제대로 하지도 못 할 것 같고 그리고 또…….

-상상해 보니까 좋다.

“제1장. 특별함이 가득한 평범함.”

모르겠다. 서하림이 좋다는데.

동규는 느릿느릿 차분하고 작은 목소리로 책을 읽어 나갔다. 몇 번 하림이 뒤척이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지만 그마저도 곧 사라졌다. 느린 속도로 300페이지에 육박하는 이 책을 다 읽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동규는 한 시간쯤 읽고 전화를 끊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듣기 좋은 소리라도 숙면을 취하는 데에는 방해가 될 거였다.

이러고 있으니 마치 태교라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생각도 떠올랐다. 전에 하림의 동생에게도 질투를 했었는데 괜히 떠오른 생각에도 질투가 나 책을 읽는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았다.

“진짜 별별 생각을 다 한.”

저도 모르게 나온 마음의 소리에 동규는 입을 다물었다가 책을 마저 읽었다. 조심해야지. 또 딴 소리 안 하게.

책상에 정자세로 앉아 있던 동규는 몸을 뒤로 빼 의자에 편히 기댔다. 책을 잡고 있는 손바닥이 허전하다. 그래서 소파에 앉아 하림이 제 허벅지에 누워 잠이 들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얇은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하림은 아까부터 책을 읽어 주는 제 목소리를 들으며 달콤한 잠에 빠져 있는 중이고, 동규는 한 손으로는 하림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책을 읽어 주고 있는 거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에 손바닥도 간지럽고 가슴도 간지럽고.

눈동자를 조금만 돌려도 제 허벅지를 베고 누운 하림이 보이고 자느라 굳게 닫힌 눈꺼풀에 긴 속눈썹도 보일 거다. 책을 읽다가 한 번씩 머리를 헤집던 손은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 하림의 매끈한 이마나 높은 콧대를 조심스럽게 만지고 촉촉하고 붉은 입술도 쓰다듬어 볼 거다. 떨리는 손가락은 하림이 깨지 않도록 사뿐히 내려앉을 테고 손바닥엔 열이 오르겠지.

“…….”

동규는 앉았던 자세를 고쳐 잡으며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상상은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졌다. 읽고 있던 문장을 대충 읽어 마무리하고 책을 덮었다. 동규는 전화를 끊지 않고 입술을 혀로 축였다. 동규의 손길에 깨어난 하림이 동규의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넣어 동규의 앞섶을 지분거리고 그러다 결국 잠옷 밖으로 동규의 것을 꺼내 입에 담는 데까지 생각이 흘러가자 동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서하림.”

속옷에 갇혀 있던 발기한 성기를 해방시켜 준 동규는 입 안 가득 고이는 침을 삼키며 아주 조용히 물었다. 어차피 하림이 자고 있을 거지만 그냥 확인차 하는 거였다.

“……자?”

아무리 아래를 깨끗이 씻고 살균 소독까지 한다 하더라도 하림은 제 것을 빨아 주지 못할 걸 안다. 생긴 게 예쁜 것도 아니고 살덩이가 무슨 달콤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심지어 정액은 비리기까지 했다. 사귄 뒤로 얼마나 자주 맨살을 맞대고 서로의 욕망을 드러내기 바빴어도 비위가 약한 하림은 자신의 것도 동규의 것도 만지고 비비는 것을 좋아하지 동규처럼 입에 넣는 시도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자겠지.”

요도에 힘을 줬다. 벌름거리던 구멍이 조여드는 것이 보였다. 동규가 굳이 만지지 않더라도 발기한 성기가 위아래로 흔들리며 위용을 자랑했다. 마치 빨리 잡고 흔들어 달라는 듯 보였다. 동규는 제 몸에 붙어 있지만 다른 생물체처럼 느껴지는 성기를 붙잡았다. 너무 좋아 소름이 작게 돋았다.

“음…….”

동규는 하림의 입에 억지로 제 성기를 물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림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동규가 제 것을 빨고 뒤까지 빨아 대는 것도 이제는 적응이 될 법도 한데 매번 한 번씩 깜짝 놀라는 게 귀여우면서도 성기를 입에 물고 빠는 행위 자체가 하림의 무의식에서는 엄청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무의식의 일이고 하림은 동규가 제 아래를 핥아 대는 걸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 동규가 어딜 빨아 대고 혀를 놀리더라도 동규가 하고 싶은 대로 두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어차피 동규도 하림이 좋아하는 것들만 하고 싶고 해 주고 싶고 그렇다는 얘기다. 단지 상상은 말 그대로 상상이니까 별개의 문제고.

하림이 깨어 있어서 좁은 입 안에 제 것을 천천히 무는 것도 좋겠고 아니면 자고 있는 하림의 턱을 잡고 억지로 벌려 넣는 것도 좋겠다. 뭐든 하림의 입 속으로 좆을 처넣는 게 중요하므로 뭐가 됐든 상관없다.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성기를 밀어 넣어도 동규의 것은 한참이나 남아 하림이 힘겨워했다. 하림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고 동규를 올려다보았다.

“후으…… 아, 흐음.”

더 깊숙이 넣어도 괜찮을까. 지금도 이렇게 버거워하는데. 기도가 눌리게 되면 하림이가 내 것을 문 채로 질식사를 할지도 모르겠다. 코끝이 빨개져 울고 있는 하림이에게서 내 것을 뺐다. 그러자 하림이 얕은 기침을 하며 침을 뚝뚝 흘려댔다. 하림이의 침이 허벅지에 떨어져 주르륵 흘러내렸다. 허벅지를 따라 길게 흐르는 침이 간지러웠다.

“아, 씨발…… 읏!”

자고 있는 하림의 옆에 서서 제 것을 잡고 자위를 하는 상상으로 빠르게 바꾸고, 한 손으로는 계속 성기를 잡고 위아래로 치대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하림의 입에 손을 넣어 입을 벌렸다. 사정감이 치밀어 올랐지만 좀 더 하림의 얼굴을 보면서 자위를 하고 싶어 동규는 성기에 힘을 주었다. 짐승처럼 헉헉거리고 있어도 하림은 숲속에 잠든 왕자님이라도 된 것처럼 감긴 눈을 뜰 줄 몰랐다.

하림의 입에 넣어 둔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가락을 따라 맥없이 말랑한 혀가 흔들렸다. 동규는 끝에 끝까지 다가온 사정 직전에 하림의 벌어진 입술 앞으로 성기를 가져가 정액을 남김없이 분출했다.

“허억, 흐으, 아, 후우…… 하…….”

잠든 하림의 입 안에 동규의 정액이 가득 고였다. 사출되는 힘이 너무 강해 하림의 얼굴 구석구석으로 튀기도 했다. 동규는 하림의 안으로 아예 성기를 들이 밀고 온 입 안에 정액을 묻힐 생각으로 허리를 움직였다. 동규의 성기가 입안을 흉포하게 헤집자 삼켜지지 못한 정액이 하림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동규는 허리를 뒤로 빼 이번에는 하림의 얼굴에 제 성기를 문질렀다. 얼굴에도 튄 양이 상당해 좆을 비비면 비밀수록 정액이 얼굴에 펴 발라지면서 하림의 얼굴이 반질반질해졌다.

“하…… 으…… 흐읏!”

-김동규. 뭐 하냐, 지금.

“…….”

상상이 깨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동규는 너무 놀라 잘 참고 있던 사정을 하고 말았다. 손도 몸도 굳었고 심장이 몸 밖으로 튕겨 나간 듯했다.

-뭐 하냐고.

침도 못 삼키겠다. 눈도 깜빡이지 못하겠고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온몸이 식으며 방금 막 정액을 토해 낸 성기도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식어 갔다.

-다 듣고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대답해.

“…….”

-김동규.

잠에서 깬 건지 목소리가 잠겨 있다. 동규는 책상에 올려 둔 휴지로 손을 뻗어 손부터 닦았다. 하림과 전화 통화한 뒤 눈물을 닦을 용도로 올려둔 휴지가 정액을 닦는 용도로 변질 될 줄은 몰랐다.

“그…….”

-응.

“나, 나는 그냥. 그, 게…… 그러니까 너 재우, 자면 전화 끊으려고 했는데 책이, 책 읽다 보니까…….”

-목소리 갈라져서 욕 하는 거 섹시하던데.

“…….”

-나도 섰어.

동규는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뺐다가 다시 꽂았다. 하림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걱정으로 얼룩진 한숨이 아니라, 어딘가 야릇한 숨이었다.

-이러려고…… 혼자 쓰겠다고 한 건 아니지만.

“…….”

-아닌가.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씻을 때마다 네 몸이랑…… 목소리 생각하면서 자위하니까. 으음.

까만 화면에 불이 들어오더니 하림의 얼굴이 나타났다. 눈은 반쯤 감겨 있어 졸려 보였지만 입은 웃고 있어 전체적으로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었다.

“자, 자야 하는 거 아니야? 미, 아니 내가 깨운 건 아닌가…….”

-그런 것치고는 신음 소리가 너무 격렬하던데.

“그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자는 사람을 깨워서…… 음, 이렇게 되게 만들어.

침대 헤드에 기대앉은 하림이 눈을 감았다. 곧이어 하림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나른한 신음을 내뱉었다. 입술을 물었다 놓으며 열에 들뜬 숨을 뱉는 것도 보였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

-응.

“네가 내 거 빨아 주는 상상했어.”

-와, 진짜 상상이라 가능한 거.

“그러니까.”

잠시 화면이 크게 흔들리더니 화면이 고정됐다.

“뭐 했어?”

-베드 테이블에 휴대폰 올려놨어. 나도 네 얼굴 잘 보려고. 손도 자유롭고 좋다. 그래서.

“응?”

-내가 네 거 잘 해 줬는지 궁금해.

“아, 잘 빨았냐고.”

-……그.

대답을 하면서도 하림이 눈을 피했다. 동규는 계속 말해도 되나 잠시 하림을 살펴보았다. 괜히 앞머리를 정리하거나 불편한 곳에 앉아 있는 것처럼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헛기침도 한다.

-음, 내가, 그, 응, 그래.

“하림아 나 봐 봐.”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하림의 눈동자가 주춤거리다 한곳에 고정됐다.

-응.

“얼굴 빨개졌어.”

-알아.

하림은 달아오른 볼에 양손을 대었다. 따끈한 게 보지 않아도 얼마나 불타고 있을지 훤했다. 고작 빨았냐는 단어 하나에 이렇게 되다니 부끄럽다. 동규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서 더.

-뭐, 왜. 하던 말 계속해.

여전히 얼굴은 빨간 채였지만 하림은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무슨 말이라도 들어줄 준비가 되었다는 나름의 뜻이었다.

“꿈속의 너는…… 못하던데. 하림이 너는 뭐든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생자지 입에 무는 건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혀도 쓸 줄 모르고 그냥 목구멍에 박아 넣으려고만 하고 그랬어. 목구멍도 좁으면서 꾸역꾸역…….”

동규도 의자에 편히 기댔다. 일부러 하림이 부끄러워하도록 필터 없이 말을 쏟아냈다. 어디까지 반응 없이 있을 수 있나 궁금하기도 했다. 점차 그림 같던 하림의 눈썹이 들썩이고 앙 다물렸던 입술이 씰룩이더니 윗입술을 깨물었고, 눈동자는 동규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동규는 하림의 작은 반응들을 놓치지 않고 다시 힘을 받는 제 것을 천천히 쓸어 올렸다.

친절하게 알려 줘도 서툴기만 했다는 말을 마쳤을 때 동규는 쐐기를 박을 한마디가 떠올랐다.

“뭐든지 잘 하지는 못하나 봐.”

-미쳤네.

역시. 동규는 슬쩍 흘러나온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네 취향으로 구현해 놓고 뭘 잘한다 못한다야.

“맞아. 그저 내…… 상상 속의 네가 빨아 준 거야. 서툴고 어색하고…… 아, 내가 하림아. 자고 있는 너한테 내 거 물려 놓기도 했는데.”

-응. 아, 목소리 좋다.

화면에 다 보이진 않지만 하림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은 보였다. 하림이 자꾸 입술을 깨물고 인상을 찌푸렸다.

“네 입 안에 싸 버렸어. 읏, 아…….”

-가슴, 가슴 만져. 빨리.

동규는 아예 입고 있던 잠옷 상의를 벗어 던졌다. 하림이 잘 볼 수 있도록 상체를 노트북 앞으로 가까이 들이밀어 하림이 하던 것처럼 가슴 근육을 모아 잡았다.

“이렇게?”

-응, 으응 아, 흐음, 아, 김동규 흐으.

“네 거 보여 줘.”

-내 거…… 어떤 거.

“일단, 아래. 아래부터. 자위하는 거 보여 줘. 싸는 거까지.”

-하, 진짜.

동규는 뜨거운 숨을 뱉으며 제 유두를 꼬집었다.

“싫으면…… 말고. 보여 주는 거 좀 그러면 하지 마.”

하림이 손을 뻗어 화면이 움직였다. 동규는 가슴을 조몰락거리며 전에 가슴을 열심히 주무르던 하림의 손길을 떠올렸다.

-누가 싫대. 이러면 네 가슴을 못 보잖아. 너 먼저, 너 좋은 거 보고 나면 나도, 네 가슴 보면서 할 거니까…… 흐읏, 아…… 잘 봐. 후우……. 아, 김동규.

“아, 나는 네가 내 이름 부르는 것만 들어도…… 쌀 것 같아.”

-나도, 읏, 아…….

커다란 성기를 쥐고 위아래로 손을 움직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쿠퍼액으로 하림의 것이 젖어 가 보기만 해도 치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림이 이어폰을 끼고 있어 신음만 들리니 망정이지,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충분히 그 소리까지 모두 들렸을 것이다. 동규도 노트북 가득 찬 하림의 것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하림이 흥분하면 흥분할수록 화면이 흔들렸다.

하림의 다리가 어쩔 줄 모르고 움직이는 것도 보였다. 다리를 세웠다 뻗었다 하며 하림이 사정을 오래 끌어갔다. 동규도 하림과 같이 사정하고 싶어 허벅지와 성기에 힘을 줬다. 더운 숨에 자꾸만 마르는 입술을 수시로 축였다.

단단하게 솟은 성기는 정액을 토해 내지 못해 힘줄이 터질 것처럼 돋아 있었다. 빨리 사정하라고 보채는 성기를 외면하며 동규는 제 귀두를 자극했다. 손바닥 아래로 정액이 찔끔 새어 나왔다. 소변을 필사적으로 참는 초등학생이 된 느낌이었다.

-으, 잠깐만, 하으…… 휴, 휴지, 아, 김, 김동규, 흐아, 아, 읏, 하아…….

화면이 정신없이 흔들리다 천장만 보여 주었다. 하림은 휴지를 잔뜩 뽑아 제 성기에 가져갔다. 정액들이 한가득 쏟아져 하림은 새된 신음을 터트렸다. 이어폰 한쪽이 빠져 있었으나 다른 쪽 이어폰이 아슬아슬하게 하림이 귀에 꽂혀 있어 거친 숨소리가 동규에게 전해지기엔 충분했다. 하림은 다시 침대 헤드에 기대어 입으로 숨을 쉬었다. 동규는 귓가를 채우는 하림의 숨소리를 들으며 사정했다. 하림 역시, 동규의 헐떡임을 들으며 혀 아래로 고이는 침을 삼켜 댔다.

-이…… 이건, 이렇, 게 하는 건 좀, 아쉽다.

“이렇게?”

-김동규가 만져 주는, 게 제일…… 좋은데.

“아…… 나도. 하아.”

-이게 뭐야. 휴대폰 화면도 너무 작고…… 만질 수도 없고. 키스하고 싶어.

“나도. 지금 딱…… 네 뒤나 엉덩이 핥아 댈 타이밍인데.”

-그러게. 야, 빨리 가슴이나 보여 줘. 나도 감상 좀 하자.

“응.”

살짝 왼쪽에 있던 의자를 다시 노트북 한가운데로 움직인 동규가 노트북 가까이에 가슴을 붙였다.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만졌다가 정액이 묻어 있어 손을 뗐다.

-아 왜. 닦지 마.

“닦지 말라고?”

-원래……대로라면 내가 네 가슴에…… 하잖아.

“아.”

가슴에 사정하는 거 좋아한다는 얘기를 빙빙 돌려 말하는 하림의 뜻을 단박에 알아챈 동규가 양손으로 가슴을 붙잡아 가슴에 정액을 묻혔다. 그리고 가슴을 모아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하림은 뭔가를 말하고 싶은지 입술을 달싹거리면서도 침만 삼킬 뿐 조용했다.

“정액 때문에 좀 미끌거려.”

-응.

“젖꼭지 만질까.”

-……응.

느리게 나온 대답에 동규가 살짝 웃었다. 왜 웃냐고 타박이 날아올 법도 한데, 아무 말이 없는 거 보니 하림이 하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동규는 손 하나를 내려 제 것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두를 세게 꼬집었다.

-아…….

아픈 건 동규인데 하림에게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하림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두 손을 아래로 내렸다.

“어떻게 해 줄까. 나 뭐 하면 돼?”

하림이 눈동자를 내리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림에게서 어떤 대답이 나오든 동규는 뭐든 다 해 줄 생각이었다. 한정된 상황에 뭘 얼마나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동규는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걸고 잡아당겼다. 아픔과 함께 찌릿함이 느껴졌다.

“아으.”

-네 손을 내 손이라고…… 생각하고…… 거기 괴롭……혀서 빨갛게…….

단어 하나하나를 더듬는 하림은 동규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하림은 손등을 달아오른 제 볼에 가져갔다. 차라리 한 공간에 있는 거면 어떻게 해 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제가 직접 하면 될 텐데 그럴 수가 없어 말로 전부 얘기해야 하는 게 힘겨웠다.

“서하림 너, 내 가슴 괴롭히고 있다는 거 스스로도 알고 있네.”

-괴롭……까지는 아니고. 그냥 좀…… 만지는…… 거지, 과하게.

“알았어. 내일 옷도 제대로 못 입을 정도로 젖꼭지 붓게 괴, 롭, 히, 라 이거지.”

-아니. 강조하지 마. 괴롭히는 거 아니고 예뻐하는 거거든.

“나도 네 젖꼭지 예뻐해서 그렇게 빨아 대는 거야. 아, 하림아 너도 가슴 만져.”

하림은 손 하나를 거둬 휴지로 손을 닦고 잠옷 상의 안으로 손을 넣었다. 동규가 제 가슴을 괴롭히며 아파하는 소리를 흘려 대는 것과 반대로, 하림은 검지로 제 유두를 가볍게 문질렀다. 동규가 아프지 않게 빨아 주던 걸 떠올리기도 했다. 딱 자극되는 정도로 흡입하면 유두에서 뭐라도 나올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 적도 있었다. 동규는 언젠가 제 가슴에서 단 우유가 나온다면 그걸로 하림을 꼬여 내 종일 하림에게 제 가슴만 빨게 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꺼낸 적도 있었다.

손톱을 세운 동규가 제 유두를 괴롭히면서도 열에 들떠 들썩이는 게 보였다. 휴대폰 화면이 TV만큼 크지 않은 게 분했다. 역시 동규를 데리고 왔었어야 했다며 하림은 작게 욕을 뱉었다. 그 소리에 동규는 하림이 얼마나 흥분했는지 훅 느껴져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아, 진짜 얼얼해. 젖꼭지 떨어지겠어.”

-아무리 그래도 자기 걸 그렇게 아프게 할 줄이야.

“나도 몰랐는데, 나 약간 변탠가.”

-몰랐다고?

“그, 아니 아픈 거로 느끼는…… 그런 거. 나 지금 조금만 더 건들면…… 쌀 수 있을 것 같아.”

유두 주변의 유륜까지 손톱으로 할퀴어 댔다. 지금은 아프지만 하림이 올 때까지도 손톱자국으로 엉망일 듯해 동규는 더 열심히 자신의 성감대를 유린했다.

하림이 입국하자마자 가슴 들이밀며 호 해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아프니까 빨리 나을 수 있게 침으로, 혀로 부드럽게 핥아 달라고. 아픔과 쾌락의 사이를 적당히 유지하며 동규는 후일을 기약했다. 상처 위로 하림의 혀가 닿는 걸 상상만 해도 좋아서 머리카락이 설 것 같았다.

가슴을 괴롭히던 손을 떼고 휴지를 뽑았다. 동규는 한껏 치솟은 제 성기를 폭신한 휴지에 감싸 이번에는 참지 않고 진득하게 정액을 싸질렀다. 벌써 세 번째 사정인데도 양이 적지 않았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천천히 사정한 동규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멍한 상태로 붉어진 가슴을 보고 있자니 내일 옷 입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듯했다.

사정으로 힘을 잃은 성기를 적당히 쓰다듬으며 동규는 제 가슴을 콕콕 찔렀다. 유두에서 꽤 먼 위치를 눌러도 같은 피부여서 그런가, 유두 근처가 자극되어 아팠다.

하림은 그런 동규를 보며 사정했다. 작정하고 괴롭히는 것보다 동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제 가슴을 눌러 대는 게 더 선정적이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손톱으로 제 가슴을 괴롭히고 할퀴던 동규도 야해 빠졌지만 탐구라도 하듯 이곳저곳 눌러보는 동규는 다른 의미로 야해 보였다.

하림은 사정 직후라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돌려 가며 어째서 그게 사정을 참을 수도 없을 정도로 자극이 됐던 건지에 대한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피부가 다 연결되어 있어서 여길 눌러도 젖꼭지가 아파.”

동규가 잠시 고개를 들어 하림에게 설명을 하곤 다시 고개를 숙여 이번에는 가슴 아래 배 쪽을 눌렀다. 복근을 누르면서 ‘이 정도는 괜찮나.’ 하는 동규에게서 하림은 금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순진해 보여서. 자는 사람 귀에 대고 자위를 해 댔어도, 제 유두를 스스로 꼬집으면서 사정을 했으면서도 어린애처럼 구는 모습의 괴리감이 엄청났던 거다. 동규가 상상 속에서 왜 자길 펠라도 하나 잘 하지 못하는 숙맥으로 구현해 놓은 건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지금 약간…… 큰일 난 것 같은데.

“뭐가? 아, 나 괜찮아. 계속 집에만 있을 거라서 웃통 까고 다녀도 돼. 아니다. 그게 더 문제다. 엄마가 젖꼭지 왜 그렇게 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네.”

-아, 망했어.

“뭐가?”

-몰라도 돼.

몽정을 할 때면 동규가 울기도 참 많이 울었고 우는 동규를 데리고 이런 짓 저런 짓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우는 동규에서 끝이 아니라 백치미 가득한 동규가 나올 게 분명했다. 하림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동규를 안 지는 10년이고 사귄 지는 이제 겨우 8개월이 됐는데 어째 동규랑 사귀고 난 뒤로 매일매일 저도 몰랐던 성적 취향을 알아 가는 느낌이다. 변태는 동규가 아니라 저일지도 몰랐다.

-씻기 귀찮다.

“그냥 대충 하고 아침에 씻어. 어차피 아침에 씻을 거잖아.”

-찝찝해.

“그럼 씻고 와.”

-싫어.

“그래.”

-한 번만 더 하고.

“어?”

-지금 자 봤자 어차피 얼마 자지도 못해. 꿈 이야기 해 줘. 김동규 꿈 얘기.

“어떤…….”

-알면서 왜 모르는 척해.

“그게, 너 그래도 재워야 할 것 같아서.”

-한 번만 더 하면 바로 잠에 곯아떨어질걸. 이따 일어나서 씻을래. 빨리.

“하지만…….”

-상상 잘 되게 소리만 들어야지. 너도 내 소리만 들어.

화면이 까매졌다. 하림이 휴대폰을 엎어 놓은 것 같았다.

“……내가 선생님이고 너는 학생인 꿈이 있는데.”

-대박. 바로 나오는 것 봐.

하림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동규는 그 소리에 입을 닫았다. 하림이 꿈에 나와서 팬티가 젖은 날이면 잊지 않기 위해 휴대폰에 따로 적어 두는 게 맞긴 하지만 갑자기 부끄러웠다. 자칫 하림이 저를 매일 그런 야한 꿈만 되새김질한다고 오해를 할 수도 있는 일이고.

-선생님.

“…….”

-제가 그래서 뭐를 잘못했을까요.

동규는 하림의 입에서 나온 선생님 소리에 입을 틀어막았다. 다리 사이로 피가 몰리는 건 당연했다.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많이…… 혼났나요? 전 제가 선생님 말을 잘 듣는 착한 학생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림의 말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동규는 입을 가렸던 손을 내리고 기억을 더듬었다. 빨리, 하림이 말을 잃고 부끄러움에 숨소리만 뱉었으면 좋겠다.

“말을 너무…….”

-…….

“너무 잘 들어서 문제였지. 학교 끝나고 남으라고 하면 네, 하고 교실에 홀로 앉아 나를 기다리고 아무도 없는 음악실로 오라고 해도 네, 하고 찾아오고. 바지 벗어 보라고 해도 속옷까지 다 벗으라고 해도 떨리는 손으로 벗었어. 눈동자는 두려움에 물들어 있었지만 선생님이 하라고 하니까 싫다는 소리도 못 하고 벗던데. 처음에는 그냥 만지기만 했는데, 네가 싫다는 말을 안 하니까 나중엔 선생님 좆 빨아 보라고 해도…… 그 말에도 네가 너무 예쁘게 ‘네’ 하고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않는데…….”

-…….

“내 거 잡은 다음에 입에 넣기 무서운지 나를 올려다보는 거야.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줬어. 하림아, 입부터 벌려 봐. 크게 벌려야 할 거야…… 하니까 네가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단 말이야. 그런데 네 입술에 귀두 닿는 순간 사정해서 얼굴에 다 싸 버렸어. 보기 좋던데. 그러다가…… 처음 섹스한 날에…… 아, 네가 내 아래서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우는데 진짜 퓨즈가 나가더라. 잘못했어요, 아파요 하는 소리가…… 너무 꼴려서 그래서…… 안에 몇 번을 쌌는지도 모르겠고…… 몇 시간 내내 박아 대다가 빼니깐 네 뒤에 잔뜩 벌어져서 제대로 닫히지도 못 하고…… 네가 울음소리 참으면서 할딱거리는데 뒤에서는 내 거가 줄줄 흐르니까 거기에 또 꼴려서 박아 넣고…….”

하림이 터져 나오는 신음을 내리눌렀다. 하림의 소리를 듣기 위해 동규가 말을 끝마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계속……해. 아, 진짜 미치겠다…….

동규는 노트북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정말 하림을 재워야 할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을 따먹으면서 얼마나 네 안이 좁았고 뜨거웠고, 첫 섹스를 그렇게 억지로 당했으면서도 다음 날 선생님이 음악실로 오란다고 또 왔던 꿈속의 하림을 동규는 쉬지 않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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