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2 24화 (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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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호랑이에 대한 동영상을 보다가 문자 알림이 왔다. 삼일절에 참여했던 백일장 수상 문자였다. 동규는 다급하게 동영상을 멈추고 문자를 확인했다.

“…….”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지 하림이 샤프를 책상에 톡톡 두들기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린다. 동규는 하림의 집중을 깨기 싫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도 기쁜 건 기쁜 거라 하림의 베개 위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양옆으로 움직였다. 빨리 학교로 상장이 도착했으면. 당장이라도 하림에게 달려가 문자를 보여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동규도 하림에게 깜짝 놀랄 비밀 하나를 숨겨 놓고 멋지게 알려 줄 생각이었다.

“상장. 대상. 세문고등학교 3학년 김동규. 위 학생은 삼일절을 기념하는…….”

동규의 바람대로 학교에 상장이 빠르게 전달됐다. 입선이나 장려 같은 발로 써도 받는 참가상이 아니라 제대로 된 상. 그것도 아주아주 큰.

“……두서와 같은 성적으로 입상하였기에 이 상장을 수여함. 대한민국 대통령 대독.”

상장을 건네는 교장 선생님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고 동규도 답지 않게 씰룩이는 입을 숨기느라 입술을 깨물었지만 웃는 얼굴을 완전히 숨기진 못했다.

부상인 100만 원은 중앙불교회 회장 스님이 수여했다. 스님이 상금을 준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해 차라리 교장 선생님과 스님의 순서가 바뀌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가 지웠다. 알 게 뭐람. 어찌 됐든 내게 큰 상을 주신 분인데 산속에 칩거하는 스님이면 어떻고 속세에 찌든 땡중이면 어떤가. 교실에서 보고 있을 하림이 얼마나 깜짝 놀랄지만 생각하면 동규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상을 받고 선생님들, 회장 스님과 한 줄로 선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교장 선생님이 학교 대표로 찍으면 될 것 같은데 대통령상이라 그런지 담임 선생님, 학년 부장 선생님까지 모두 동규의 옆에 서 찍었다.

“이야, 우리 동규. 사진도 잘 나왔는데 사진이 잘생긴 실물을 다 못 담네.”

사진을 찍은 교장 선생님이 아침 조례를 하는 동안 동규는 교무실로 자리를 옮겨 중앙불교회와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불교신문에 실리는 거란 말에 동규는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사진이야 어차피 조금 전 찍은 상장을 들고 찍는 단체 사진이 들어갈 거라 해도 인터뷰란 말에 혀가 마비된 느낌이었다.

큰 대회에 대통령상은 이러는구나. 동규는 이 대회에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참여했지만 주로 장원, 차상, 차하만 받아 봐 전 부분 통합으로 주는 대상은 처음이었다. 사실 상을 받을 건 백일장 당일 원고지 제출하면서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대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 더욱이 수상 문자에는 인터뷰에 대한 안내도 없었기 때문에, 동규는 기자가 질문을 마치고 소형 마이크 같은 걸 들이밀 때마다 죽을 맛이었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은 선생님들은 동규의 인터뷰를 보기 위해 하나둘 모였다.

“우리 동규 스타네 스타야.”

“아니에요…….”

“이러다 하림이보다 더 유명해지겠어.”

“아니라니까요…….”

“나중에 유명한 작가 돼서 교과서에 실리면 선생님이 꼭 나중에 후배들에게 얘기해 줄게. 이 작가가 선생님 제자였다고.”

선생님들은 동규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숫기 없어 쭈굴거리는 동규가 귀여워 한마디씩 얹으며 웃기만 했다. 기자와 단둘이 있어도 이랬을 텐데 선생님들이 인터뷰하는 걸 보고 있어 동규는 너무 부끄러웠다.

“뭐…… 물어보셨죠…….”

“꿈이 뭐냐고요.”

“꿈은……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아무튼 즐겁고 행복한 그런……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을 쓰고 싶은데요 그런데 아직 잘은…… 모르겠어요.”

“왜요? 소설가나 시인이 될 생각 없어요?”

“그게 제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등단이라거나 그런 과정을…….”

기자가 점점 고장이 나는 것 같은 동규를 위해 대학 질문을 하기로 했다. 고등학생인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상 많이 받아서 대학도 잘 갈 것 같아요. 어디 생각해 둔 학교 있어요?”

“그, 저는 대학도 아직 별생각이…… 공부도 잘하는 것도 아니라…… 제가 어, 지금 학교는 특기생으로 들어와서 막 공부는 잘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 근데 그, 다른 특기생 친구들은 저랑 다르게 공부도 잘하고 있는데요, 제가 그러니까…… 죄송해요…….”

“기자님, 동규가 우리 학교 꼴등입니다 꼴등.”

“그래요?”

하지만 동규는 대학에 갈 생각이 없는 고등학생이라 이 질문도 동규에겐 너무 어려웠다. 기자는 낯가림에 버벅거리는 어린 학생이 귀여워 껄껄 웃었다.

“우리 대회에 10년 전부터 꾸준히 참여하신 걸로 압니다. 상도 와, 10년 동안 거의 매해 받았던데요.”

“네. 이번에 이렇게 큰, 아니 1등, 아니 대상을 받은 건 처음이에요. 작년에는 아예…… 못 받아서 올해 이렇게 받을 줄은…….”

혀가 꼬이는 건 아닐까. 서하림은 방송에서 아나운서가 질문을 많이 해도 당황하지 않고 척척 잘 대답하고 대통령 앞에서도 떨지도 않고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수상 소감까지 멋지게 하던데 어떻게 그렇게 강심장일 수가 있는 거지. 나는 대통령이 직접 온 것도 아니고 시청각실 구석에 앉아 얘기하는 게 고작인데…….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어요. 특히 아버지가요.”

기자는 동규의 아빠가 누구인지 다 아는 듯한 말투였다. 엄마와 동규는 방송에 나가는 걸 싫어하는 데다 아빠의 고향이자 연고지인 인천이면 몰라도 여기서는 동규의 아빠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건 소수의 사람만 아는 얘기였다. 아무래도 담임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이 말해준 게 분명했다.

“아빠요? 아빠는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엄마가 수상 소식 듣고 좋아했어요. 엄마가 어릴 때부터 백일장 많이 데리고 다녀 주셔서요. 아, 저 기사에 꼭 엄마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써 주실 수 있는지…… 친구도요.”

“친구 누구요?”

“서, 아니 그냥 이름 없이 친구로 써주세요. 친구야 늘 응원해 줘서 고마워, 네가 정말 큰 힘이 돼 이렇게요.”

“친구한테는 사랑해 안 해요?”

기자는 동규의 얘길 적으며 별 생각 없이 물었지만 동규는 사랑해 세 글자에 얼굴이 터질 수준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요. 써 주세요, 그…… 사랑해도.”

“친구들에게 인기 많은가 봐요.”

“아닌……데요.”

몇 가지 더 질문이 오가고 인터뷰가 끝이 났다. 기사에는 엄청 축약되어 짧게만 들어갈 거란 말에 동규는 안심했다. 제대로 말도 못 했는데 그게 다 실리면 부끄러워서 기사 삭제 요청을 할지도 모른다.

“……가 볼게요.”

교무실 문을 열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림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교실 가면 하림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인터뷰며 사진을 찍느라 벌써 수업이 시작된 게 너무 아쉬웠다. 동규는 빠르게 교실로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어차피 수업 시작한 거, 수업은 듣기 싫지 심장은 떨리니 빙빙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왜 이제 와.”

계단에 붙은 미끄럼 방지 스티커를 밟지 않고 올라가기를 하며 교실이 있는 3층 계단을 몇 개 남겨 두지 않았을 때였다. 머리 위로 하림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하…… 지금 수업 아니야?”

“맞아.”

하림은 계단 벽에 기대서 있었다. 동규와 딱 계단 네 개만큼의 거리였다.

“왜 여기 있어? 수업은?”

“화장실 간다고 나왔어. 상장 줘 봐.”

동규는 금 밟지 않기 놀이 하느라 들고 오면서 두 번이나 떨어트린 상장을 하림에게 건넸다. 하림이 상장을 쭉 읽어 보고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걸 숨겼다 이거지.”

“……나도 깜짝 놀래켜 주려고.”

하림이 계단을 두 개 내려왔다. 동규보다 살짝 높은 높이가 된 하림이 손을 들어 동규의 뺨 한쪽을 가볍게 담았다. 동규는 하림의 차가운 손이 느껴졌다. 익숙한 온도였다.

“깜짝한 짓을 했네. 기특하게.”

그리고 동규의 입술 위로 하림의 말랑한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가볍게 쪽 하는 소리가 났다. 동규는 머리카락이 죄다 서는 기분이었다. 빨갛게 된 얼굴로 누가 보진 않았나 앞뒤 양옆 위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진짜 겁이 없어.”

하림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도 없으니까 했지.”

본다 해도 뭐 어떤가. 담배를 피운 것도 아니고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순식간에 땀이 나는지 동규가 손부채질을 하며 바빴다. 하림은 상장을 닫고 동규에게 부채질을 해 줬다.

“교실, 교실 가자.”

돌아온 교실에서 하림은 바로 수업에 빠져들었지만 동규는 열을 식히느라 상장으로 부채질하기에 바빴다.

서준은 까만색 손목 아대를 한 왼손을 동규 앞에 괜히 올려놨다. 어서 발견하고 물어봐 줬으면 좋겠는데 동규는 책을 읽느라 관심이 없다. 일부러 책상 위에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을 움직여 소리를 내 봤지만 하나마나였다. 동규가 서준이 연주하는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게 다였다. 하림은 다른 반에 놀러가 없었다.

“야, 동구.”

1교시 쉬는 시간에도, 2교시 쉬는 시간에도 못 알아챘던 동규였기에 서준은 참지 못하고 제 입을 열었다.

“응.”

“나 타투했다.”

“타투?”

“실음학원 조교 선배 있는데 그 선배 형이 타투이스트야.”

“학생이 해도 돼?”

“할 수 있으니까 했지. 짜잔.”

마치 팔찌를 한 것처럼 손목을 따라 빙 둘러진 타투는 영어 필기체로 알아보기 쓰여 있어 문장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중간중간 음표도 보였다.

“뭐라고 쓴 거야.”

“Music is my life, Hiphop is my soul.”

“……너 힙합도 해?”

“얼마 안 됐어.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작년 9월쯤? 학원에 힙합하는 형들이랑 친해져서.”

동규는 전혀 모르는 분야라 ‘멋지다’ 하고 한마디만 던지고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멋지지. 하는데 졸라 아팠다. 조만간 피어싱도 할 건데 좀 겁나.”

“난 아픈 거 싫어.”

“넌 진짜 잘못 태어났어. 덩치가 아깝다 덩치가. 아니면 입을 그냥 다물고 있.”

“정서준.”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하림의 목소리에 서준이 의자에서 튀어 오르는 듯했다. 정말, 엄청나게 놀랐다.

“김동규가 뭐라고?”

“그…….”

“응.”

산뜻하게 물어보는 얼굴이지만 서준은 어쩐지 등 뒤로 땀이 흘렀다. 하림은 동규랑 다르게 눈치도 빠르고 사람이 하는 말도 속뜻까지 다 읽어 내는 애였다. 게다가 동규랑 친했고, 동생 챙기듯 싸고도는 것도 있었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김동규는 서하림 딸이고 서하림은 딸 바보라고 부를까. 하필 당사자인 동규에게 앞담화를 하던 걸 딱 걸린 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림에게 그걸 걸려 심장이 벌렁거렸다.

“김동규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정말 모르는 걸 물어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동규는 하림의 질문이 이상한 것도 아닌데 대답을 못하고 쩔쩔매는 서준이 이상했다.

“그래, 나 겁 완전 많아. 쫄보야.”

서준과 하림이 운을 뗀 동규에게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런 시선에 동규는 책으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가 내렸다.

“그냥…… 그렇다고. 사실을 얘기한 거야. 나도 잘…… 안다고.”

수업 종이 울려 복도에 있던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하림은 우선 고개를 끄덕이며 동규의 옆인 제 자리에 앉았다. 서준이 제 자리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래 봤자 하림의 앞자리였지만. 하림은 펜을 돌리다 서준의 뒷모습을 차가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마침 내일은 동규가 백일장 간다고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이었다.

평소랑 똑같은 태도로 동규와 웃으며 저녁을 먹고 헤어졌지만 하림은 서준의 SNS를 둘러보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사람이 바뀌어도 이렇게까지 바뀔 수가 있나. 작년에 가끔씩 놀 때 이상한 걸 크게 느끼진 못했는데.

〈윤죠 지금 자?]

[설마요〉

[나보다는 니가 잘 시간인데 지금〉

[서데렐랔ㅋㅋ〉

〈지호야 나 뭐 물어볼 거 있어]

[넵〉

[뭔대욥ㅇㅅㅇ〉

〈정서준 말인데]

[.............〉

지호가 보내 온 마침표 사이로 많은 말들이 보였다. 하림은 누워서 지호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아예 일어나 침대 헤드를 기대고 앉았다. 새벽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오랜만에 꺼내 쓴 안경에 친구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4월 모의고사가 다음 주라 그런지 죄다 공부하느라 밤새웠냐는 말뿐이었다. 하림은 적당히 웃어넘겼다.

“너도 밤을 새서 공부를 하는 구나.”

서준이 하림의 책상 주변에 쭈뼛거리며 나타났다. 하림은 고개만 끄덕였다.

“나도 요즘에 가사 쓰느라 밤 자주 새.”

“너 원래 곡 쓰느라 잘 새잖아.”

“그……렇지. 근데 그거 말고 새로운 장르도 하거든. 너도 내 채널에서 봤겠지만 랩하는 거.”

힙합은 잘 모르는 하림이 듣기에도 서준의 랩 실력은 좋지 않았다. 하림이 서준의 채널에서 주로 봤던 건 기타 연주 동영상이었지 잘 하지도 못하는 랩하는 영상이 아니었다.

“안 봤어.”

“응?”

“안 봤다고.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진 않아서.”

“하하…….”

밤새 나눈 지호와의 대화는 서준이 학원에서 이상한 형들과 어울리며 나쁜 것만 실컷 배웠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작년 여름 방학 학원에서 열린 특강에서 서준은 재수생반 형들과 친해졌는데, 그때부터 허세가 잔뜩 늘고 조금만 자기 기분을 거슬리게 하면 욕부터 뱉어 대 지호가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애꿎은 여자애들을 품평하거나 남자애들 순위를 매겨 대는 통에 지호도 이제는 서준과 거의 말도 안 섞는 수준이라니 말 다했다. 서준이 새로 만들었다는 SNS에 올린 사진들도 온통 가관이었고.

“서준아.”

“응?”

“나도 타투한 거 보여 줘.”

하림은 살갑게 이름을 불러 주며 웃었다. 그러자 말없이 어색해하던 서준이 옷이라도 벗을 기세로 왼손 아대를 빼 주머니에 넣었다.

“오. 음악인의 진정성을 담은 말이네.”

“맞아! 역시 너는 알아보는구나. 기, 못 알아보는 애들도 있는데.”

하림은 일부러 서준이 좋아할 반응을 선보였다. 팔을 잡고 손목을 이리저리 살펴본다거나 아플 텐데 대단하다고 한다거나. 그럴수록 서준의 눈이 번들거렸다.

“자리에 앉아라.”

아침 조례를 하러 온 선생님 때문에 서준이 퍽 아쉬워했다. 하림도 아쉬워하는 척을 했다.

“이따 쉬는 시간에 마저 얘기하자.”

“그래.”

존나 재미없네. 점심시간 전까지는 쉬는 시간마다 서준과 단둘이 얘기할 생각에 피곤해졌다. 하림은 안경을 책상 위에 올리고 눈 주변을 꾹꾹 눌렀다. 김동규 보고 싶다.

‘정서준 걔 이상한 물들어서 하림이 네 얘기할 때 진짜 좀, 절레절레. 원래도 걔는 너 부러워하는 거 있어서 자기가 서하림이면 이랬을 거다, 저랬을 거다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고 우리 학교 여자애들이랑 다 사귈 거다, 어쩐다. 좀 야한 그런 식으로 얘기도 많이 하고. 그리고 동규한테는 열폭인지 뭔지 잘 모르겠는데 나한테 김동규 칭찬을 열심히 하다가도 갑자기 후려치면서 욕을 막 해. 걔 욕을 하다가 네 욕도 하는데 네가 왜 김동규 데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사람 보는 눈 없고 자기가 더 낫다고. 하하, 진짜 허세도 부릴 걸 부려야지.’

선생님의 얘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하림은 지호와 나눴던 메시지들을 다시 한 번 훑었다. 힙찔이 새끼들이 사람 하나 버려 놨다. 갱생의 여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밥 먹고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남 싫은 얘기는 잘 하지도 못하는 지호가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거부터가 답이 없다는 걸 증명해 주는 듯했다.

대체로 동규는 교실 구석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앉아만 있어도 다른 남학생들이 쉽사리 말을 건다거나 장난을 치지 못했다. 잘 웃지도 않고 무표정해 하늘의 말을 따르면 험악한 인상이라 그랬다. 물론 하늘의 말은 과장이 많이 섞여 있으므로 험악한 정도까진 아니지만 서글서글한 인상은 아니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타고난 피지컬 때문에 남학생들 사이에서 동규의 위치가 꽤나 위에 있는 것도 있고. 저번에 했던 김동규 업기 같은 건 떼로 몰려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지 혼자 있었으면 동규에게 업어 봐도 되냐는 말조차 꺼내지도 못할 거였다.

서준이 동규에게 막말을 할 수 있는 건 동규와 친해서다. 친한 만큼 동규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무섭거나 센 성격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 자꾸 동규를 무시하고 후려치는 거다. 하필이면 동규가 눈치도 없어서 서준이 대놓고 자길 무시하는 말도 알아채지 못한다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지난 3월 한 달간은 많이 양보해서 서준이 동규와 많이 친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지만 지호의 얘기까지 들으니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었다.

점심 뭐 나오지. 오늘 점심은 속 버릴 것 같으니 조금만 먹어야겠다.

신경 쓰지 않았을 땐 몰랐지만 한번 신경 쓰기 시작하니까 자꾸 걸리는 게 있다. 하림은 평소랑 똑같은 것 같은데 저 혼자만 이상함을 느끼는 건가 싶은 그런 거.

서준이 쉬는 시간 종이 치기 무섭게 교실을 빠져나가고 급식도 다른 친구랑 먹거나 혼자 먹는다. 동규는 자기가 서준에게 뭔가를 잘못한 게 있는지 되짚어 봤다. 타투한 걸 너무 성의 없이 멋있다고 한마디만 해서 그런가. 아니면 업혔을 때 무서워서 목을 너무 세게 끌어안은 바람에 갑자기 내가 무서워졌다거나.

하지만 인사를 하면 곧잘 해 주고 메시지를 보내도 빨리 답장 오긴 한다. 이상하게 서준이 자길 피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지.

친구 사이에 묘하게 꼬인 실을 모르고 있으면 몰라도 알아챈 이상 모른 척할 순 없었다. 내일부터는 중간고사니까 우선 중간고사 끝나고 서준과 얘기를 해 봐야겠다. 실용 음악 쪽은 잘 모르지만 서준도 슬럼프를 겪고 있는 중이라면 참여하는 백일장마다 상을 받아 오는 자신과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만약 그렇다면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아는 동규였다.

“뭘 그렇게 봐.”

서준이 나간 앞문을 바라보던 동규의 시야에 하림의 손이 팔랑거렸다. 하림은 동규가 서준을 보고 있던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번에 대놓고 서준에게 이상해진 것 같다고 얘기한 뒤로는 서준이 알아서 피해 주고 있는 중이지만, 동규가 뒤늦게 혼자 다니는 서준을 눈치챈 것부터가 별로였다. 평소에는 집에다 두고 오는 눈치를 새삼스럽게 챙길 건 뭔가.

“그냥.”

동규는 곰돌이 젤리 중에서 하림이 좋아하는 맛인 투명색 젤리를 찾아 하림의 손에 올렸다.

“정서준 다른 친구 생겼나봐.”

작게 속삭이는 동규의 말에 하림은 젤리를 입 안에 털어 넣으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 나는 김동규 싫어하는 거 아니고, 걔가 착하고 순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막말이 나간 거 같아.’

‘나도 모르게.’

‘하…… 진짜 왜 그랬지? 내가 생각해도 내가 좆병신이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자 하림의 눈치를 살피며 자기 스스로를 깎아내리던 서준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던 게 생각난다. 하림은 또 속으로 한숨만 쉬었다. 동규가 보는 앞에서 한숨 쉬기 싫지만 같은 반 애라 1년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질리는 기분이었다.

“김동규, 밥 먹는데 정신머리 사납게 뭐 해 지금.”

하늘의 말에 동규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줄만 알았다. 서준이 혼자 밥을 먹고 있을까봐 둘러본 거였는데 정신 사나울 정도였나 보다. 땀이 찔끔 났지만 동규는 아닌 척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냥.”

이 층엔 없는데 그러면 위에 있나. 밥 먹는 얼굴이 자못 심각해 하늘이 눈이 마주친 하림에게 턱짓으로 동규를 가리켰다. 하림은 고개만 살짝 저었다.

하도 서준을 걱정하고 신경 쓰고 살았더니 동규는 꿈에 서준이 나올 지경이었다. 간식 먹고 과외하는 하림을 기다리는 동안 하림의 침대에 누워 잠깐 낮잠에 들었는데 서준이 나왔다. 꿈속의 서준은 다이아몬드로 만든 기타를 들고 콘서트장에서 노래를 불렀고, 신들린 손놀림으로 기타를 연주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줄이 끊어졌다. 그러면서 동규도 꿈에서 깨어났다.

하림은 아직 과외 중인 건지 방에는 동규 혼자였다. 동규는 기타 줄이 끊어지며 나던 소리가 아직도 생생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서준 공부하는 중?]

[ㄴㄴ〉

〈그럼?]

[형드리랑 노는중〉

〈지금...중간고사 안 끝났는데...?]

[몰라시발〉

[니가 내 엄마냐?〉

〈왜 갑자기 욕해]

[니가 짜증나게 하잔아〉

역시 슬럼프인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리가 없다.

〈미안]

[ㅇㅇㅋㅋㅋㅋㅋ〉

[나 바쁨 ㅃ〉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동규는 슬퍼졌다. 슬프다기보다는 약간 억울하고 속상한 게 섞인 느낌이었다. 서하림 보고 싶다. 친구랍시고 지 생각해서 한 말인데.

〈하림아]

〈쉬는 시간 언제야]

[20분 뒤〉

〈뽀뽀하고 싶은데....ㅜㅜ]

1이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아 하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쉬는 시간 아직 아닌데 어떻게 나왔어?”

하림은 동규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화장실 급하다고 나왔어. 무슨 일인데.”

“……무서운 꿈 꿔서.”

침대에 누워 있는 동규의 앞머리를 손으로 슥슥 빗은 하림이 동규의 얼굴 구석구석에 뽀뽀를 했다.

“부족해? 더 해 줘?”

“괜찮아.”

“쉬는 시간까지 기다려.”

“응.”

“무섭다고 울지 말고.”

“……안 울어.”

하림이 바로 달려와 뽀뽀를 해 준 덕에 상처받은 마음이 괜찮아진 듯했으나 서준과의 메시지를 다시 보는 순간 또 울적해졌다.

〈이따 형들이랑 헤어지면 알려줘]

하지만 동규는 하림이 항상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서준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지금은 형들이랑 있어서 바쁘다고 했으니까 자기 전에는 연락 오겠지.

서준에게 메시지가 온 건 동규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집〉

〈생각보다 빨리 헤러졌네]

[ㅇㅇ 먼대〉

〈그냥 별건 아니고]

〈요즘 너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럼 다행이고]

[야〉

[ㄴㅓ 어차피 늣게 잘거지〉

〈응]

[그럼 나 궁금한거 있는대〉

[너 서하림이랑 어떻해 친해졎어?〉

[아니지〉

[내 얘긴 않해?〉

〈응 너 얘기는 딱히..]

[그러면 둘이 놀때 뭐함〉

〈그냥 노는데]

〈지금은 시험기간이라 놀진 못하고]

〈올해 들어서는 바둑해]

[????????〉

〈서하림이 바둑 알려줘서]

[개 그런거 좋아해?〉

〈그런거?]

[운동좋아자나〉

〈응 못하는 거 없어]

〈수영도 잘해]

〈테니스랑 스쿼시도]

〈펜싱이랑 승마도 할 줄 안대]

〈자기꺼 말도 있대 이름 알려주고 싶은데 까먹었어]

〈스케이트도 잘 타고 사격도]

[그러니까 갑자기 바둑이 뭐냐고??〉

〈보드게임]

그 뒤로도 동규는 정작 하고 싶었던 슬럼프 얘기는 꺼내 보지도 못하고 하림의 얘기만 실컷 했다. 서준이 물어보는 게 죄다 하림에 대한 거라 다른 얘기로 넘어갈 틈도 없었고 하림 얘기를 하니까 신이 난 것도 있었다.

며칠 동안 동규가 서준 사이의 대화는 조금 발전해 서준의 힙합 얘기, 형들 얘기가 추가됐다. 학원 형들 얘기나 음악 얘기 신나게 하는 걸 보면 슬럼프는 아닌가 싶어 동규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비록 학교에선 여전히 서준이 쉬는 시간마다 어디로 빠르게 사라지곤 했지만.

[너한테 이걸 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일주일이 넘도록 시간을 쏟은 게 헛되지는 않았는지 서준이 뭔가 동규가 원하던 얘길 하려는 듯이 운을 뗐다. 동규는 하림과 나란히 앉아 있던 소파에서 하나 옆으로 옮겨 누웠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하지만 말해 줬으면 좋겠다. 딱 봐도 창작에 대한 고민 아니면 슬럼프인데 다른 누구보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 줄 수 있으니까.

[아니......... 말하기 실은건 아님〉

[그냥 니가 서하림이랑 재일 친한 친구라 말하기가 좀.........〉

또 하림으로 대화가 돌아와 동규는 김이 샜다. 그렇게 하림과 친해지고 싶으면 1학년 때 같이 지냈던 것처럼 하면 될 텐데. 다른 친구랑 놀지 말고.

[너만 알고 있어〉

〈어]

[나 서하림이랑 싸움...〉

서준의 메시지에 동규는 반대쪽 팔걸이에 누워 휴대폰 중인 하림을 힐끔 바라보았다.

〈언제?]

[너 백일장 간다고 학교 않온날〉

〈왜?]

[내가 너한테 서하림이랑 싸운거 얘기했닪거 서하림한테 얘기하면〉

[내 손에 뒤진다〉

〈알았어]

갑자기 하림에게 비밀이 생겨 동규는 심란했다. 거기다 서준이 하는 얘기는 더 심각하고 엄청나 동규는 답장 하나 보내지도 못하고 서준이 보내 주는 메시지만 흔들리는 눈동자로 읽었다.

[나는 너가 편하고... 존나친구라 생각해서 그런건대......씨발 mother fuckkkkk〉

[개가 진짜 내 얘기 않했어? ㄹㅇ?〉

〈응..]

[ㅆㅂ〉

[아니 김동규 들어바〉

[개ㅒ가 씨발 뭐라고 그랮냐면〉

[걔 존나 싸가지 업어〉

[나한테 뭐라는 줄 아냐?〉

하림이 욕을 아예 쓰지 않는 건 아니지만 잘 안 쓰는 편이었기 때문에 서준이 하는 말은 믿기가 힘들었다. 하림의 얘기를 들어 봐야 할 테지만 서준의 말은 그다지 신뢰도 가지 않았다. 그나마 몇 개 믿을 만한 걸 골라 보자면 서준이 동규를 친한 친구로 여기기 때문에 편하게 생각한다는 것과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동규에게 장난을 넘는 말들을 했고 하림이 그걸 싫어했다는 것.

[씨발 너 진짜 걔한테 말하면 애미 뒤진다 알겠냐〉

[씨발 좆갓노〉

〈전부터 생각한건데]

〈너는 씨발 안 쓰면 말을 못 해?]

[왜 정색하고 그래;;〉

[월래 래퍼들은 다 욕쓰잔아;;;;〉

〈그건 그런데]

〈지금은 나랑 얘길 하는거지]

〈랩가사 쓰는 게 아닌데]

[;;;〉

[불편했다면 미안; ㅈㅅ;;〉

[요즘 가사도 잘 않써져서;〉

[형들도 나보고 소울이 부족하대;〉

[그리고 맬로디도 좀...;〉

[거기서 거기갓고;〉

[내가 월래 작곡공부 해와서 곡자체는 잘 만들거든;〉

[가사만 좀 딸려서;〉

[화낼 피로까진;〉

[쨋든 미안;;〉

드디어 동규가 듣고 싶던 얘기가 시작됐지만 기분은 찜찜했다. 동규는 한껏 인상을 찌푸린 채 서준이 계속 보내오는 메시지들을 보기만 했다. 뭐라고 한마디 쓰려다가 하림이 허벅지를 두드리며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하는 바람에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순간 간식 먹고 온다고 얘기를 해 줘야 하나 싶었지만 그렇게 중요한 얘기도 아니어서 하림을 뒤따라갔다.

동규는 냉장고에서 초코칩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하림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었다. 아이스크림은 달게 먹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는 동규가 제일 이해할 수 없는 맛 중 하나가 바로 하림이 고른 바닐라였지만 동규는 하림이 한 입 준다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입을 벌렸다.

“또 아 해.”

아기 새처럼 잘 받아 먹는 동규가 예뻐 하림이 계속 자기 것을 퍼다 먹였더니 금세 하림의 아이스크림이 동이 났다. 뒤늦게 빈 통을 발견한 동규가 다급하게 냉장고에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왔다.

“나는 이제 내 거 먹을게.”

초콜릿 아이스크림 한 통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림이 아이스크림 먹으며 자꾸 웃길래 동규는 부끄러워 몸에 열이 올랐다. 그래서 아이스크림도 한 통 뚝딱 먹어 버렸다. 하림의 아이스크림은 반이 조금 덜 되게 남아 있었지만 동규는 냉장고로 도망가 아이스크림을 또 꺼내 왔다.

“나도 한 입 줘.”

“이거 초코인데.”

“응. 알아.”

“바닐라 아니고…….”

“너 먹는 거 보니까 나도 먹고 싶어서.”

“이거 먹으면 바닐라맛 안 날 텐데.”

“괜찮아.”

제 숟가락을 든 동규가 주춤주춤 초코칩 아이스크림을 한 번 크게 떴다가 내려놨다. 하림은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조금만 뜨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뜨고 나니 너무 적게 뜬 것 같아 다시 내려놓고 새로 떴다. 아니 이건 또 너무 많은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줘야 하는 거지…….

새 아이스크림을 죄다 난도질을 해 놓은 동규를 하림이 느긋하게 기다렸다. 만약 이대로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 동규가 녹아 버린 아이스크림을 준대도 기꺼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여기.”

하림이 입을 벌리고 동규의 숟가락으로 다가갔다.

“아, 잠깐만. 네 숟가락으로 다시 줄게.”

“됐어.”

동규의 손을 빠르게 붙잡은 하림이 숟가락을 덥썩 물었다. 아이스크림 한 번 얻어먹기 참 힘드네.

“맛있다. 김동규 마않이 먹어라.”

하림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떴다. 바닐라보다 훨씬 단 초코를 먹어서 그런지 아이스크림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괜히 먹었나.

“우리…… 간접 키스했어.”

숟가락을 문 채로 말하느라 동규의 발음은 줄줄 새 나갔지만 하림은 동규의 말을 듣고 귀가 달아올랐다. 동규는 하림의 입에 들어갔던 숟가락을 제 입에 넣은 시점부터 얼굴이 터질 지경이었다.

“간, 접으로 해야 할 정도로 그, 흠흠. 우리가 그으걸 못 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초코칩 아이스크림 먹길 잘 했다. 이런 거라면 혀가 녹아내릴 정도로 단 걸 먹으래도 백 번이고 먹을 수 있겠다. 하림은 발을 동동 구르다 앞으로 쭉 뻗어 동규의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동규도 발을 슥 뻗어 하림의 발을 톡톡 쳤다. 둘 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크게 재미있지도 그렇게 흥미로울 얘기도 없지만 동규는 자꾸 서준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좋아서라기보다는 동규가 적당히 얘길 마무리 지어도 서준이 계속 계속 메시지를 보내와 조금 난처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를 하자니 서준과 싸우거나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 데다가 학교에서는 하림 때문인지 서준이 저를 보고도 인사도 제대로 못 하는 게 걸렸다. 음악도 잘 안 된다고 하고.

하림과 붙어 있는 시간에는 서준과의 대화창을 아예 들어가지도 않지만 하림과 헤어져 집에 오는 길이나 하림이 과외하는 시간에는 서준에게 시간을 쏟아야 했다.

다른 건 다 참겠는데 학원 형들 얘기 하는 게 제일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서준이 음악 얘기 하고 학교 얘기나 연예인 얘기라도 하면 동규도 재밌고 적당히 호응을 해 줄 수 있겠는데 동규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지루함을 넘어서 괴로웠다.

그래도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이렇게라도 얘길 들어주는 친구라도 있어야 힘든 거 이겨 내지 싶어 동규는 자기가 싫어하는 주제가 나오면 슬그머니 대화 창을 꺼 버렸다. 그러면 몇 시간 뒤에 서준이 알아서 다른 얘기를 혼자 떠들고 있어서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야, 봐 봐.”

내일이면 졸업 사진을 찍는다. 이번 달에 찍는 건 동복과 춘추복을 입은 채로 찍는 거였고 2학기에는 하복을 입고 두 번째 사진을 찍기 때문에 하림은 니트 조끼를 입었다가 그냥 베스트 입었다가 카디건을 입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된 세문교 교복 풀세트는 교복 셔츠 위에 베스트를 입고 그 위에 니트 조끼 혹은 카디건, 그 위에 마지막으로 교복 재킷까지 입는 거지만 대부분 불편하단 이유로 셔츠 위에 니트 조끼나 카디건만 입었다. 아주 오래전에 정해진 교복 가이드에 대해 누군가는 바꿔 달라고 따질 만도 한데 선도부에선 베스트만 입든 니트 조끼만 입든 카디건만 입든 별 상관을 하지 않았다.

동규도 베스트가 불편해 사 놓고도 한 번도 입지 않았고 하림은 기분 따라 번갈아 가면서 입는 편이었다.

“이거랑 이거 중에 뭐 입은 게 더 나아.”

베스트만 입은 모습을 보여 주고 그다음에는 니트 조끼를, 마지막으로는 카디건을 입은 모습을 보여 주며 포즈를 취한 하림은 동규에게 대답을 보챘다. 동규는 뭐 하나 고를 수가 없어 우물쭈물했다.

“셋 다 좋다는 대답 말고.”

“…….”

“아 빨리.”

“못…… 고르겠는데.”

슈트 느낌으로 핏이 사는 베스트냐, 학생다움이 어필되는 니트 조끼냐. 그것도 아니라면 단정한 느낌의 카디건이냐. 하림은 이마를 짚으며 끙 소리를 냈다. 전신 거울 앞에서 몇 분째 서 있는 건지 모르겠다.

“너 이러고 있는 거 보니까 나는 그냥 평소대로 니트 조끼 입을래. 카디건도 귀찮아.”

하림이 가져오래서 지난 밤 옷장을 뒤져 입학 후 한 번도 입지 않은 베스트를 찾아 가져왔지만 동규는 하림이 입은 걸 본 것만으로도 베스트를 백 번은 입어 본 듯했다.

“카디건 입긴 입어? 입는 걸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입어, 가끔. 하복에서 동복으로 바로 넘어가서 그렇지.”

교복을 빠짐없이 제대로 갖춰 입고 다니는 하림과 다르게 동규는 동복 입을 때를 제외하곤 티셔츠 입고 그 위에 셔츠 입는 게 끝이다. 베스트는 불편하고 카디건은 너무 덥다. 조끼형의 니트가 딱이었다.

“그럼 나도.”

“응?”

“나도 김동규랑 똑같이 니트만 입어야지. 김동규 솔로몬.”

하림은 거울에 비치는 동규를 보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러자 동규도 똑같이 입술을 내밀어 주었다. 하림은 저를 따라 입을 내민 동규 때문에 웃음이 났다. 하림의 반응에 부끄러워진 동규가 입술을 바로 하고 눈동자를 아래로 굴렸다.

“아, 왜. 잘했는데.”

“…….”

하림이 몸을 돌려 동규의 앞에 가 섰다. 침대에 앉아 있는 동규의 턱을 살짝 잡아 고개를 올렸지만 여전히 눈동자는 아래를 보고 있어 눈을 마주치진 못했다.

“또 오리 입술 해 봐.”

“오리…… 입술?”

“아까 그거. 우, 하는 거.”

입술이면 그냥 입술이지 오리 입술이라고 귀여운 이름까지 붙여 버린 바람에 동규는 땀이 삐죽삐죽 나는 느낌이었다. 했다가 하림이 계속 놀릴 것 같고 그렇다고 안 하면 뽀뽀를 안 해 줄 것 같고.

입술을 달싹거리다 두 눈을 꼭 감고 소심하게 입술을 조금만 내밀었다. 동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하림이 동규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대고 동규에게 입을 맞췄다. 동규의 양 볼을 잡고 쪽쪽거리느라 힘에 밀린 동규가 엉덩이로 뒷걸음질을 쳐야했다.

“저, 서, 서하…….”

하림이 일부러 뽀뽀 소리를 크게 내는 탓에 입술이 붙었다 떨어질 때마다 촉촉 하는 물기 어린 소리가 났다. 동규가 팔로 상체를 지탱했지만 반쯤 뒤로 눕게 되는 행색이 되었다. 하림의 얼굴은 장난기가 가득했고, 동규는 입 맞추는 소리에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림이 적절하게 동규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은 것도 한몫했다. 더위를 잘 타지 않는 하림과 달리 하복 혼용 기간이 되자마자 티셔츠에 하복을 걸쳐 입고 다니는 동규는, 아침에 교문을 지날 때를 제외하곤 교복 단추를 잠그고 다니는 법이 없어 하림의 손이 동규의 가슴을 더듬기에 아주 최적화된 차림새였다.

하림은 남은 한 손으로 동규의 뒷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동규의 가슴을 세게 쥐었다.

“가, 간지러워.”

여전히 하림은 웃는 얼굴로 동규에게 뽀뽀를 퍼붓는 중이었다. 동규는 다리 사이로 손을 가져가 힘을 받는 성기를 꾹 눌렀다. 교복을 더럽히고 싶진 않았다.

하림이 떡 주무르듯 동규의 가슴을 주무르다 동규의 유두를 살짝 꼬집었다. 그러자 동규가 아, 하고 작게 소리를 내뱉고 뒤로 아예 넘어갔다.

“더워.”

여전히 무릎 하나는 동규의 다리 사이에 넣은 채 하림이 니트 조끼를 벗었다. 그리고 베스트도 단추를 하나하나씩 풀어 나갔다. 동규는 하림과 마주친 눈을 피하지도 못하고 침만 꼴깍꼴깍 삼키는 게 다였다. 교복 바지 앞이 잔뜩 부풀어 오른 건 이제 되돌릴 수도 없었다.

베스트도 벗어 바닥에 떨어트린 하림이 교복 셔츠도 벗기 위해 넥타이를 풀려다 손을 멈췄다. 기대에 찬 눈동자를 하고 있던 동규가 머리 위로 물음표 하나를 띄운 게 보였다.

“옷 입고 하는 게 네 취향이라며.”

“내가? 언제?”

“저번에? 아님 말고.”

“마, 맞아…….”

옷을 입고 있는 하림도 벗고 있는 하림도 다 동규의 취향이었지만 그냥 하림의 말이 다 맞았다. 동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하림의 넥타이를 잡아끌어 입을 맞췄다. 강한 힘도 아니었는데 하림이 순순히 끌려와 입을 벌려 주었다.

하림이 위에 있어 동규의 입 안으로 하림의 침이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동규는 하림의 것인지 제 것인지 모를 것들을 모두 삼켜 가며 하림의 혀를 옭아맸다. 하림이 누워 있는 제 머리카락을 헤집는 게 좋았고 하림이 위에 있어 마치 하림의 안에 갇힌 듯한 이 구도도 좋았다. 무엇보다 무릎으로 제 것을 살살 자극하는 하림이 제일 야하고 섹시하고 좋았다.

“교복에 사정하면…… 죄책감 들 것 같아.”

“교복도 그냥 옷 종류 중에 하나야.”

또다시 티셔츠 안으로 하림의 손이 슬금슬금 들어왔다. 동규는 바지 버클을 빠르게 풀었다. 제 가슴을 더듬는 하림의 손 하나를 붙잡고 터질 것처럼 부푼 속옷 위로 하림의 손을 문질렀다.

“빨래는…… 어떡하지.”

“세탁기.”

동규의 속옷 위를 문지르던 하림도 열에 달아오른 얼굴로 교복 버클을 풀고 발기한 성기를 꺼냈다. 아직 속옷 안에 갇혀 있는 동규의 것 위에 하림이 제 성기를 비비자 두 사람 모두에게서 나지막한 신음과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규는 침대 시트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사정을 참아 냈다.

교복도 교복인데 속옷이 제일 문제였다. 교복은 하림의 집안 어른들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정액이 묻어 있더라도 세탁기와 건조대를 돌리면 된다지만, 속옷도 물론 세탁기와 건조기 돌리면 되긴 하는데.

“그, 나, 지, 집에…….”

“동규야.”

속옷 안에 있어도 발기한 탓에 성기의 모양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하림은 동규의 귀두를 엄지로 문질렀다. 그러자 동규가 허리를 틀며 작게 욕을 내뱉었다. 입술도 깨물고 시트를 쥔 주먹은 새하얗게 질려 어떻게든 사정을 참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게 귀여워 하림도 필사적으로 사정을 참으며 두 손으로 동규의 것을 쓸어댔다.

“하아, 흐으…….”

사정하기 싫었던 건지, 속옷 안에 정액을 쏟아내는 동규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하림이 그런 동규의 눈가에 입을 맞추고 동규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왜 울어.”

“…….”

“말해 봐. 왜 우는지 모르겠어서 그래. 지금 김동규 머릿속 엄청 야한 것들밖에 안 보여.”

“속옷 빨래는…… 세탁기 돌리는 거 안 좋대.”

“그게 무슨 소리야.”

“몰라…….”

노팬티로 집에 갈 게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는 거군. 우는 소리 하는 게 귀엽긴 하지만 중요한 말은 아니라 하림은 동규의 티셔츠를 올려 동규의 입에 물렸다. 여전히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동규는 하림이 하란 대로 얌전히 옷을 물었다.

하림은 동규의 가슴팍을 쓸다가 동규의 유두를 입에 물었다. 동규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하림은 다른 한쪽도 움켜잡으며 동규의 양쪽 가슴을 애무했다. 안 그래도 크고 두툼한 가슴이 하림의 자극으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유두도 금세 딱딱해졌다. 보통 때에도 도톰한 동규의 유두는 만지기 좋았는데 흥분해 바짝 서자 빨기 좋았다.

전에 동규가 제 것을 빨아 주던 기억을 상기하며, 하림은 입술과 혀를 움직였다. 이빨을 사용해 깨물까 했지만 그랬다간 흥분하고 세게 깨물 것 같아 그만두었다. 저번에 동규 때문에 며칠을 고생했던 것만 생각하면 당장 이를 세우고 깨물어 버릴까 싶었지만 뭐, 이번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도 있고 그러니까.

동규는 하림의 것이 색이 예쁘다고 틈만 나면 찬양을 해 댔지만 하림은 제 것보다 동규의 색이 훨씬 좋았다. 연하긴 해도 빨거나 만지지도 않았는데 붉은 색을 띠고 있는 것부터가 너무 선정적이었다.

한참 빨던 유두에서 입을 뗐다. 확실히 색이 진해진 유두에 하림은 뿌듯함이 든 동시에 사정감이 차올라 참지 않고 그대로 사정했다. 동규의 바지에 정액이 묻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알 바는 아니었다. 동규가 죄책감에 벌벌 떠는 거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교복이야 더러워지면 빨면 되니까.

침으로 반질반질해진 유두를 하림이 엄지로 한 번 슥 훑었다.

“김동규.”

“으응…….”

“내가 네 속옷 사 놨어.”

“응?”

“네 사이즈 맞춰서 큰 거 사 놨으니까 걱정 말고 그만 울어.”

“진짜?”

하림은 동규의 입에 티셔츠를 다시 물리며 다른 쪽 유두를 입에 물었다.

“검정색으로…… 그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직접 저를 위한 속옷을 골랐다는 하림의 말에 동규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머릿속에서는 폭죽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하림의 혀가 유두를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동규는 뜨거운 하림의 입속에 들어가 있는 제 젖꼭지에게도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촉촉하고, 말랑한 혀를 독차지한 제 신체 일부가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흥분이 엄청나게 올라 하림이 더 강하게 빨아 줬으면 하고 바랐다.

“더…… 조금만 더 세게 빨아줘. 지금 좋아…… 찌릿찌릿해.”

하림이 흡입력을 좀 더 높였다. 동규가 낮은 목소리로 신음을 터트리며 하림의 머리를 헤집었다. 성기가 속옷을 벗어나지 못해 답답했지만 가슴을 빨리는 자극이 너무 커 눈앞이 흐려질 정도였다. 하림이 몸 곳곳을 쓰다듬으면 다 좋지만 유난히 좋은 걸 보니 아무래도 가슴이 제 성감대임이 틀림없었다. 하림은 원래 가슴도 성감대라고 했지만 하림이 가슴으로 느끼는 것보다는 제가 가슴으로 느끼는 게 훨씬 더 커 보였다.

“아, 미안.”

그러지 않고서야, 하림이 가슴을 만져 주는 것만으로도 사정할 수 없을 테니까. 하림이 가슴에서 입을 떼는 순간, 동규가 성기를 꺼내며 사정을 했다. 그러다가 하림의 얼굴로 정액이 튀어 버렸다. 조금이었지만 동규는 너무 놀라서 숨도 고르지 못하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

“휴, 휴지 어딨지.”

베드 테이블에 항상 있던 티슈 케이스가 오늘따라 보이지 않았다. 동규는 고개를 돌리며 휴지를 찾았지만 왜 보이지 않는지 애가 탔다. 하림은 얼굴에 튄 동규의 정액을 손가락으로 살짝 닦아 검지와 엄지를 문질렀다. 얼굴에 정액이 튄 탓에 비릿함이 코를 휘감았지만 몸이 식기는커녕 흥분감이 장난 아니었다.

“누워, 김동규. 허리 들고. 바지 벗기게.”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동규는 하림이 하란 대로 누워서 허리를 들었다. 하림은 동규의 교복바지를 벗기다 못해 등 뒤로 던졌다. 그리고 정액으로 푹 젖은 동규의 속옷도 끌어 내렸다. 돌돌 말린 드로즈가 튼실한 허벅지 때문에 잘 벗겨지지 않았다. 하림은 입술을 깨물고 속옷을 끝까지 벗기는 건 포기했다.

“동규야. 후으…….”

하림은 동규의 허벅지에 제 것을 대고 비볐다. 탄탄한 허벅지 근육에 하림은 당장이라도 쌀 것 같아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세게 물었다.

“뭐 하나만…… 물어볼게.”

동규는 제 허벅지에 성기를 비비는 하림이 꼭 발정이라도 난 것 같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에 별장에서 하림이 다리 벌려 보라고 했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성욕으로 이성을 잃기 직전의 하림은 세상 무엇보다 섹시하고 야했다. 평소 이성적이고 똑 부러지는 모습에, 청초하고 맑은 얼굴에, 교복을 입을 때에도 셔츠 단추를 단 한 개도 풀지 않고 끝까지 잠그는 금욕적인 애라 그 간격이 배로 다가왔다. 그 누구도 하림이 흥분하면 이런 식일 거라고, 감히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어떻게…… 하고 싶어. 나는 네가 하자는 대로 할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뭐를?”

“이 상황에 물어보는 게 누가 넣을 건지 물어보는 거 말고 뭐일 것 같아.”

동규 역시 이성의 끈이 끊어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작게 욕을 읊조리는 하림을 동규가 안아 들어 제 위에 앉혔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응. 지금은…… 어른 되기 전에는 하기 싫다고 했으니까 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하…… 물어보는 거야. 시뮬레이션이라도 돌리게. 씨발, 아…….”

하림이 동규의 손을 붙잡아 제 성기로 가져갔다. 동규는 하림의 것을 위아래로 빠르게 치대며 하림의 사정을 도왔다. 제 것은 따로 만지지 않아도 충분했다. 손바닥에 따끈한 정액이 잔뜩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동규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가락 사이로 정액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이상했다.

“꿈에서, 나랑 어떻게 했어.”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어. 엄청 야한데. 질척질척하고 쓰레기 같은 짓도 많이 했어.”

“……그러니까 누가 어떻게 했냐고.”

“내가.”

사정의 여운을 즐기느라 하림이 숨을 빠르게 할딱거렸다. 동규도 마찬가지였지만 입을 다물지 못하고 숨을 내쉬는 하림에게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박아 넣었어. 네 뒷구멍이 닳을 정도로 빨아 대다가 혀도 넣어서 풀어줬어. 가끔은 풀지도 않고 그냥 둘 다 꼴려서 급한 대로 쑤셔 넣었는데 나는 좆만 꺼내고 너는 엉덩이만 내민 상태였어. 손으로 풀어 주지도 못해서 그냥 넣었더니 뒤가 찢어졌는데 피가 엄청 나더라. 네가 아프다고 울었는데 나는 그게 너무 꼴려서 그냥 계속 짐승처럼 쑤셨어. 꿈이라 그런가, 콘돔을 안 썼더니 안에 사정한 정액이 피랑 섞여서 분홍색이 되더라고.”

“…….”

“며칠씩 침대 위에서 한 적도 있어. 네가 중간중간 기절해도 그냥 기절한 널 데리고 하기도 하고. 네 안이 너무 좁아서 그렇게 해 대도 삽입할 때마다 처음 같더라. 내가 하도 많이 해서 네 뒤가 제대로 닫히지도 못한 적도 있어. 그래서 안에 싼 정액이 줄줄 흐르고 나는 그거 빼 준다고 욕실 따라갔다가 욕실에서도 또 하고. 아, 엉덩이를 때리거나 음. 더 이상은 너무 하드해서 말 못 하겠어. 꿈이니까 가능했지 나는 널 때리고 그러는 거 싫으니까.”

“생각보다 더 변태였어, 김동규.”

“새 발의 피만큼도 얘기 안 한 건데…….”

하림의 얼굴이 수치로 물들어 가는 게 보기 좋아 나불댔던 게 조금 후회됐다. 하림이 질색하고 도망가 버릴까 봐.

“……내가 싫어졌다는 말만 하지 마.”

대답 대신, 하림은 제 정액으로 더럽혀진 동규의 손에 깍지를 꼈다. 동규가 안도의 한숨을 커다랗게 쉬어서 하림은 웃음이 났다. 다만 하림은 동규의 것을 힐끔 보고 조금 무서워졌다.

“1월 1일에 죽는 거 아니겠지.”

“1월 1일?”

“우리 어른 되는 날.”

“아…….”

“네 생일 저녁부터 계속 이렇게…… 이런 거 하고 있다가, 하자.”

“못 멈추면 어쩌지.”

“1월 1일 빨간 날이라 상관없어.”

“콘돔은 몇 개를 사야…….”

엉뚱한 고민을 하는 동규의 위로 엎어진 하림이 동규에게 키스했다. 그러자 누워 있던 동규가 일어나 앉았다. 입 맞추기 편한 자세가 되자 하림이 동규의 목을 끌어안았고 동규는 하림의 속옷 안으로 손을 넣어 하얗고 말랑거리는 엉덩이를 꽉 쥐었다. 그 사이로 손가락을 넣고 싶은 욕심이 치밀었지만 어른 운운했던 게 본인이었으므로, 참았다.

대신 하림의 엉덩이를 터질 것처럼 잡았다. 아프긴 한지 하림이 키스를 하던 도중 몇 번 입술을 떼고 아픈 소리를 냈지만 하림도 동규가 무엇을 참고 있는지 알고 있어 손을 떼란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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