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2 22화 (32/53)

22

하림은 카페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다가 열차에 탈 생각이었으나 동규가 만에 하나 열차를 놓칠 걸 걱정해 출발 시간을 무려 20분이나 남기고 열차로 돌아왔다.

“사람들 왜 안 오지?”

“축제 재밌어서 그런가 봐. 거의 다들 출발 시간 맞춰서 들어올걸.”

“아…….”

“박물관에서 시간 너무 많이 보낸 것 같아. 조금만 더 빨리 나왔어도 김동규 썰매 두 번은 더 탔을 텐데.”

“괜찮아. 나도 석탄 박물관 재밌었어. 그리고 진짜 공룡 알 실제로 만져 보는 거 처음이라 신기했고.”

“무서워서 제대로 만지지도 못했잖아.”

“그건 그런데…….”

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쪽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뒤 창문 커튼을 쳤다. 그리고 몸을 슬쩍 숙이고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동규도 몸을 숙여 하림에게 다가갔다.

“왜? 설마…… 공룡 알에 뭐 있어?”

“…….”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근데 그런 주의 사항은 없었는데. 그냥 만져 보.”

심각한 표정으로 공룡 알을 만진 손가락을 바라보는 동규에게 하림이 입을 맞췄다. 쪽 소리가 가볍게 났다.

“바이러스나 세균은 없어도 뽀뽀는 있지.”

새빨개진 동규는 하림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진정이 되어 하림을 힐끔 바라보았다. 동그란 뒤통수와 살짝 보이는 귀도 예쁘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잘 보이지도 않는 광대가 웃느라 씰룩거리는 건 귀엽다. 동규도 용기를 내어 슬쩍 일어났다. 아직도 사람들이 없었다.

“사람들 들어올까 봐 심장 너무 쿵쾅거려.”

동규는 하림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헤집어 하림의 뒤통수를 가볍게 잡았다. 그럼 빨리해야겠다고 하림이 말 하려는 새에 동규가 고개를 살짝 틀어 키스했다. 하림은 곧바로 입을 벌리고 동규의 입술을 빨았다. 뜨거운 하림의 입 속으로 동규가 혀를 넣으려는 찰나,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금세 열차 안이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 찼다.

“아…… 진짜, 심장 지금 바닥까지…….”

“재밌다.”

너무 놀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동규와는 반대로 하림은 킥킥거리며 웃기 바빴다.

두 사람의 좌석은 해당 칸 제일 뒤 오른쪽 자리. 사실 하림은 VIP칸을 통째로 예매하고 싶었지만 동규가 신나서 하림의 표까지 예매한다길래 말았다. 대신 동규가 예매한 자리를 기준으로 앞의 네 자리와 옆의 여섯 자리를 추가로 몰래 결제했다. 키스는 못 하더라도 손은 마음껏 잡고 싶어서.

출발할 때도 그랬지만 주변 좌석이 왜 비어 있는지 모르는 동규는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슴을 부여잡고 심호흡 중이었다. 하림은 동규가 괜찮아질 때까지 가만히 앞만 봤다. 의자 시트의 무늬인 동그라미의 개수를 다 세어 갈 즈음, 동규도 어느 정도 진정된 모양이었다. 하림은 동규의 안전벨트를 채우면서 작게 말했다.

“앞에 사람 없어서 다행이다.”

“응. 걸리는 줄 알았어.”

하림은 동규의 귀밑 턱을 쓰다듬었다. 동규가 눈동자를 굴리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제일 뒤까지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몸의 긴장을 쭉 뺐다. 왼쪽 귀 아래에 느껴지는 하림의 차가운 손이 기분 좋았다.

“김동규.”

“응.”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

“아, 응.”

“진짜. 검사한다.”

“열심히는 아니고 적당히……. 그래도 꾸준히는 하고 있어. 이번에 영어 점수도 많이…… 올랐는데…….”

“맞아. 그랬지.”

하림은 동규의 턱에서 손을 거두고 잠시 동규를 빤히 바라보았다. 동규가 마주한 하림의 시선을 피해 잠시 눈동자를 내렸다가 천천히 올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손.”

여전히 하림은 일렁이는 눈동자로 동규만 바라볼 뿐이다.

“잡고…… 갈까.”

“응.”

동규는 하림의 손을 잡았다. 그걸 보고 곰곰이 생각하던 동규는 다시 손을 펴 깍지로 고쳐 잡았다. 그리고 하림이 해 줄 칭찬을 기다렸다.

“…….”

뭐지. 동규는 당연히 ‘기특하네.’라거나 ‘왜 이렇게 예쁜 짓을 해.’같은 말을 해줄 걸 기대하며 큰 맘 먹고 깍지를 감행한 거였으나 하림은 맞잡은 두 손만 보고 있을 뿐 말이 없었다. 하림의 침묵은 동규로 하여금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동규는 도대체 뭐가 잘못인지 오늘 하루를 되짚어 보고 실수한 건 없나 자신의 행실을 곱씹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늦게 자서 낮잠 자느라 별장 근처 산책을 하지 못한 게 큰 것 같다. 눈 축제가, 눈조각상들이 훌륭하기만 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다 별로라 제 실수를 덮어 주기엔 한없이 모자랐다.

하림이 욕을 한다고 하더라도 백번 사죄할 생각으로 하림과 깍지 낀 손에 힘을 조금 주었다. 긴장을 한 탓에 목도 탔다. 침을 열심히 삼켜 보아도 입이 말랐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동규는 하림의 굳게 닫힌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모두 완성했다. 침묵을 깨고 하림이 꺼낸 말은 동규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김동규.”

“어, 응?”

“오늘 재밌었다. 그치.”

“……진짜?”

“진짜.”

그래도 잘못은 잘못이겠지. 동규가 하림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림이 동규의 턱을 잡고 돌려 저와 눈을 마주치게 하지 않았으면 동규는 손까지 놓았을지도 몰랐다. 동규는 하림의 눈길을 피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또.”

입꼬리가 살짝 아래로 내려간 걸 보니 알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혀 삽질 중인 건 분명했다. 하림은 동규의 이마 위로 가볍게 뽀뽀했다. 그제야 동규는 마음이 놓였다.

“앞으로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 다 가 보자. 아니, 전 세계에서 열리는 축제들 다 가자.”

“오늘 축제는…… 별로였어. 역시 그냥 서울에서 노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재미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뭐 어떠냐. 재미없어도 없는 대로 추억이 되는 거야.”

별로 공감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추억은 대개 좋은 기억들을 가리키는 데다가 안 좋은 기억이 추억이 되려면 미화의 과정을 거쳐야 추억이 되지 않던가. 동규는 어젯밤 늦게 잤던 새벽의 자신을 탓하고 또 탓했다. 눈꽃 축제 처음 얘기 꺼낸 그 날로 돌아가고만 싶다.

“너랑 같이 있으면 나한테는 다 예쁜 추억이니까 얼굴 풀어. 뭐 때문에 속상해하는지 모르겠네.”

“그래도.”

하림은 깍지 낀 손을 들어 동규의 손등에 쪽 소리 나게 뽀뽀를 했다. 동규가 아직도 심란해하는 표정이라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입에다 해 줄까.”

“지금은…… 말고. 사람들 있어서.”

“그래. 그러면 아까 너 썰매 탄 거 찍은 거 볼래? 무거워서 그런가 속도 엄청 빠르던데. 가속도 붙어 가지고.”

“진짜 제일 재밌었어.”

“뭐야. 박물관은.”

“석탄 박물관이 진짜진짜 제일로 재밌었어. 그중에 공룡 알이 특히.”

그 재밌는 걸 하림은 타지도 못한 게 새삼 또 속상했지만 동규는 저를 달래기 위한 하림의 노력을 알았다. 그래서 누군가 볼지도 모르지만, 찍어 놓은 동영상을 재생한 하림의 어깨에 슬며시 기댔다. 하림은 그런 동규의 머리에 기댔다. 열차가 빠르게 달려 어서 기차역에 도착하길 바라며.

버스에서 내린 하림은 동규와 같이 걸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별장으로 달려갔다. 빨리 별장에 동규와 자기 말고는 아무도 있지 못하도록 관리인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싶어서였다.

“정말 나가도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우리 둘 다 안에서 밥 해먹고 씻고 영화 보든가 보드게임 하고 잘 거예요.”

하림은 겉옷이나 목도리를 벗기도 전에 어른들 앞에 섰다. 동규도 하림의 뒤에 섰다.

“혹시 문제라도 생기면…… 한 명이라도 어른이 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고작 하룻밤 가지고 아무 일도 안 생겨요. 경비 모드로 돌려놓고 가신다면서요. 그렇게 되면 CCTV에 저랑 얘 아닌 사람이 잡히기만 해도 경호원이 출동하는데요.”

“그래도.”

“김동규네 엄마가 일이 있어서 하룻밤 집을 비우게 됐는데 거기 놀러가서 자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하림이 빨리 너도 뭐라도 얘기하라며 동규를 툭툭 찔렀다.

“네. 맞아요. 저 술도 담배도 안 해요.”

뜬금없는 말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동규에게 모였다. 동규는 갑자기 제게로 모인 눈동자에 겁을 먹었지만 큰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퍽 비장하게 말했다.

“서하림도요.”

어른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하림에게로 옮겨 갔다. 하림은 입술만 말아 문 채 동규를 보고 있었다. 빨리 어른들 사라지고 나면 김동규한테 키스하고 싶은데 어른들은 왜 이렇게도 눈치가 없는 걸까.

“진짜예요. 서하림도 진짜 안 하는데…….”

“그래도 아줌마 마음에는 둘만 두고 가기에 너무 걱정이 되는 걸요.”

“저 집 밖에 나가는 시간 길면 시름시름 앓고요, 또 햇빛 알레르기 있어서 밖에 있는 거 싫어하고…… 아, 저 까만 건 탄 게 아니고 아빠한테 물려받은 거예요. 유전……이요.”

집돌이인 건 맞지만 밖에 오래 나가 있다고 아프지도 않고, 햇빛 알레르기는 완전 거짓말인 데다가 만약 그게 진짜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해도 다 져서 하등 도움 되는 말이 아닌데도 하림은 동규가 필사적으로 자길 도와주고 있는 게 귀여워 두 손만 꼭 쥐었다. 가슴이 간지럽고 벌렁거렸다.

“들으셨죠. 저희 이제 너무 배고파서 저녁 먹어야 하거든요. 세 분도 얼른 집에 가서 쉬세요. 네?”

하림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 보이는 어른들의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내쫓았다.

“김동규.”

현관문을 닫자마자 뒤로 돌아선 하림은 신발장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동규를 바라보며 실실 웃었다.

“응.”

“같이 씻자.”

“응. 응?”

“좋다고 했어 너도.”

“아니! 잠깐만.”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온 하림을 동규가 붙잡았지만 하림이 그런 동규의 입술에 뽀뽀를 하느라 동규는 또 얼음이 돼 버렸다. 아주 쉽게 동규의 손에서 벗어난 하림이 목도리와 겉옷을 소파 위에 걸쳤다.

“씻는 거 1층이랑 2층 중에 어디가 좋겠어. 골라 봐. 네가 좋다는 곳에서 같이 씻자.”

“새, 생각을 좀…….”

“생각?”

동규는 제 앞에 선 하림을 피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하림이 그런 동규를 따라 훌쩍 다가왔고 동규의 턱을 잡아 입가를 쪽쪽거렸다.

“생각, 할 시간이 필요해?”

“아, 그, 저, 잠, 아니, 안…….”

오리처럼 입술을 쭉 빼 일부러 입 맞추는 소리를 크게 내는 하림 때문에 동규는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안 된다고?”

“아, 안 되는, 안 돼, 그, 아니, 서, 서하림…… 그, 그만.”

안 된다고 하면 할수록 하림이 뽀뽀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하림이 눈으로 웃으며 어디 버틸 수 있으면 버텨 보라고 동규의 입술 위에 제 입술을 꾸욱 눌렀다.

“다시 말해 봐. 같이 씻어도 돼, 안 돼.”

“돼…….”

“그럼 여기서 다시 만나. 샤워 가운 입고.”

남는 게 방인 곳이라 짐은 각자 방을 정해 넣어 뒀다. 동규가 2층 쓰고 싶다고 해서 개인 방은 2층으로 했고 잠자는 방은 제일 큰 침대가 두 개 있는 1층 큰 방으로 정했고.

동규의 혼을 쏙 빼놓은 하림이 사라지고, 거실에 덩그러니 남은 동규는 입가에 묻은 하림의 침을 멍하게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김동규 빨리 옷 갈아입어!”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동규가 화들짝 놀래며 발걸음을 뗐다.

동규는 자기 방으로 가는 길이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온몸의 관절이 다 굳은 것만 같다. 목도리 하나 풀기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다리 사이가 찌릿했다.

둘만 남는 밤이라고 했을 때 이렇게 될 걸 짐작을 못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고 같이 씻는 건 가능성을 낮게 봤다. 기껏해야 뭐, 저번에 했던 것처럼 욕조에서 둘이 쪽쪽거리고 몸 더듬고 그런 정도. 더 나아가면 하림의 것을 빨게 해 달라고 할 생각이었고.

손에 들린 목도리에 동규는 얼굴을 파묻었다. 얼굴 존나 터질 것 같다.

“아, 존나…… 으! 진짜 좋다…….”

같이 씻을 때 하림이보고 가슴 만져 달라고 해야지. 가슴 만져서 섰다고, 젖꼭지도 만져 달라고 그래야지. 그 차가운 손에 사정하면 서하림 손이 너무 야해 빠져서 줄줄 싸게 된다고 얘기해야지. 귀가 빨갛게 달아오르면 그 귀를 빨면서…… 음란한 손가락으로 내 좆도 만져 달라고 하면…….

무척이나 부끄러운 건 맞지만 동규는 현실성 있는 상상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옷을 찢을 것처럼 벗고 옷장에 있던 샤워 가운을 걸쳤다. 매듭도 어떻게 묶었는지 모르겠다. 빨리 하림과 같이 씻을 생각에 일단 문부터 열고 거실로 나왔다.

“나…….”

하림에게 온갖 음담패설을 하겠다고 패기 좋게 나온 것과 반대로 동규는 샤워 가운만 딸랑 입은 하림을 마주치자마자 터질 것 같은 얼굴을 아래로 푹 숙였다. 고개를 아래로 떨궜더니 보이는 건 발기한 제 것 때문에 붕 뜬 샤워 가운. 샤워 가운이 뭐라고, 그 차림의 하림을 마주한 직후 기립을 한 게 쪽팔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걸 보고 하림도 뒤늦게 얼굴이 달아올라 고개를 돌렸다.

“왜, 왜 이렇게 부끄러워해.”

“몰라.”

“네가 그러니까 나도…… 그렇잖아.”

“미안.”

답답한 가슴에 하림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오늘은 따로 씻자. 그게 좋을 것 같아.”

동규는 여전히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대신 내가 입욕제 가져왔거든. 밥 먹고 욕조에 풀어서 발이나 담그자.”

대답 없이 동규는 또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배고프니까 빨리 씻고 와.”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엄청나게 빨랐다. 동규는 위에서 욕실 문을 세게 쾅 닫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1층 욕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약간 시원한 물을 튼 동규는 꼿꼿하게 선 제 성기를 잡았다. 이대로 딸을 칠 것인가 아니면 참을 것인가. 고뇌가 시작됐다. 맘만 같으면 세 번은 쌀 수 있을 것 같은데 배고프니까 빨리 씻자는 하림의 말이 걸렸다. 동규는 아예 찬물이 나오도록 수전을 오른쪽 끝으로 돌렸다. 그리고 속으로 교가를 열심히 불렀다. 구룡산의 정과 한강의 기를 받아 대한의 미래를 밝히기 위해 나아가는 세문인이 되자는 교가를 4절까지 두 번 부르자 다행히 몸에 올랐던 열이 떨어졌다.

욕실 문을 열고 목부터 빼 하림이 1층에 있는지 확인한 동규는 하림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방으로 쏜살같이 달렸다. 하림과 산 커플 잠옷을 꺼내 입자 가슴께가 뻐근했다. 물론, 잠옷이 좀 딱 맞아 그런 것도 있었다.

“너 키 더 컸지. 몸무게도 그렇고.”

“응.”

“잠옷도 맞춤으로 제작해야겠다.”

“밥도 해 놓고 가시고 파채도 그렇고 상추랑 깻잎이랑 야채들도 다 씻어져 있고…….”

“제일 큰 거로 산 건데도 너한테는 좀.”

“그, 고, 고기만 구우면 되겠어.”

“가슴이 커서 좋은 점도 있지만 이런 단점이 있네.”

하림이 동규의 뒤에 딱 붙어 한 팔로는 동규의 허리를 감싸 안고 다른 한 팔로는 동규의 가슴을 주물렀다. 찬물로 식혀 왔어도 하림이 만져 대니 다리 사이로 피가 모여 속이 탔지만, 하림이 가볍게 조물거리기만 할 뿐 잠옷 안으로 손을 넣는다거나 유두를 만지는 건 아니라 참을 만은 했다.

“교복도 매일 풀고 다니는 게 단추 터질까 봐 그러나. 맞아?”

“그건…… 아니야.”

“그럼 단순히 편해서? 하긴. 안에 티셔츠 입으니까.”

“……서하림.”

“응.”

“너…… 이러려고 별장 온 거지.”

동규가 여전히 제 가슴을 주무르는 하림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그러자 하림의 손이 멈췄다. 대신 하림은 동규를 끌어안고 동규의 어깨에 턱을 올렸다.

“이럴 생각 전혀 없었는데 네가 너무 섹시해서 그래. 핫 바디잖아.”

하림의 팔을 풀고 동규는 뒤돌아섰다.

“서하림.”

“응.”

“겁도 없어.”

“뭔들.”

하림은 다시 동규의 품에 파고들어 동규를 끌어안았다. 동규는 한숨만 푹 쉬었다. 얇은 잠옷 너머로 하림의 것이 느껴졌고 하림 역시 그럴 것이다. 동규는 하림의 등을 토닥이다 성기가 움찔거리는 것 같아 하림을 떼어 냈다.

“배, 배고프다며.”

“그건 그래. 벌써 8시 다 되지 않았나. 빨리 고기 구워 먹자. 밥 뜰까?”

미련 없이 주방에서 주걱을 찾는 하림의 뒷모습을 보며 동규는 조금 섭섭했다. 뽀뽀 그렇게 좋아하면서 한 번 해 주고 밥 푸면 어디가 덧나나.

“……너는 너무 밀당을 잘하는 것 같아.”

“아닌데. 너한테는 당기기만 하는데.”

“거짓말.”

“뭐야. 이번엔 갑자기 뭐에서 삐진 거야. 핫 바디라고 그래서? 그게 부끄러워?”

“……그거 말고.”

밥을 푸던 하림이 뭐냐고 물어왔지만 동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얘기하기는 좀 그렇고, 어차피 밥 다 먹고 이따 뽀뽀든 키스든 뭐든 하면 풀릴 걸 알아서 그랬다. 하림도 동규가 대답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아 더 물어보지 않았다.

포장해 온 갈비가 둘이 먹기엔 넉넉하다고 생각했으나 동규는 갈비를 다 먹어 놓고도 뭔가 부족해 냉장고에 있던 반찬들을 모아 비빔밥까지 해 먹었다. 하림은 배를 두들기고 누워 비빔밥까지 야무지게 해치운 동규에게 박수만 보냈다. 어떻게 저렇게 복스럽게 먹을 수가 있지. 동규가 지금 먹는 것보다 세 배는 많이 먹어 살이 왕창 찐다고 해도 마냥 좋을 것 같다.

후식으로는 바닐라아이스크림 큰 통 하나와 아이스홍시를 먹었다. 하림은 배가 불러 얼마 먹지도 못하고 소파에 늘어졌지만 동규는 빨리 설거지를 해야겠다며 일어났다. 하림이 설거지는 내일 관리인들이 알아서 할 거라고 동규를 말렸다. 하지만 동규는 설거지할 게 몇 개 없다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하림은 잠시 골머리를 앓다가 동규 옆에 섰다.

“욕조에 물 받아. 금방 해.”

“나랑 하면 시간이 금방의 반으로 줄겠네. 나도 고무장갑 끼면 돼? 하나 더 어딨지.”

결혼할 때 예비 신랑이 예비 신부보고 ‘결혼하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 줄게’라고 하는 마음이 뭔지 절로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동규는 다시 한 번 하림에게 욕조에 물 받아서 입욕제 풀고 기다리라고 했으나 하림이 가볍게 무시하고 주방 찬장에서 새 고무장갑을 찾아 뜯었다.

“……그럼 내가 세제로 기름기랑 다 닦을 테니까 네가 물로만 씻어 줘. 씻어서 위에 순서대로 세우면 돼.”

“왜 식기 세척기 두고?”

“찝찝해. 개인적인 느낌으로.”

“아하.”

설거지를 시작하려다 동규는 자기가 입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 하림에게 입혀 주었다. 그리고 식기들을 박박 닦아 하림에게 건넸다. 빠르게 접시들을 닦아 제 몫의 설거지를 마친 동규를 하림이 엉덩이로 밀었다. 애도 아니고 흐르는 물에 거품 닦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결국 하림에게 쫓겨난 동규는 거실 소파에 앉아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야 김동규! 이거 원래 이래?”

하림이 동규에게 뛰어와 젖은 곳을 가리켰다. 아랫배 쪽이었다. 하늘색 앞치마에 물이 젖어 파래진 동그라미가 커다랗게 보였다. 설거지 처음 하는 티를 이렇게나 내다니.

“원래 그래.”

다 끝났다며 하림이 앞치마를 소파 위로 벗어 던지고는 욕조로 달려갔다. 뜨거운 물을 먼저 틀어 반의반 정도 찼을 때 찬물도 살짝 틀어 따끈한 온도로 맞췄다.

“김동규. 이제 입욕제 넣을 건데 같이 볼래. 이거 안에 반짝이 별 들어 있대.”

“응.”

커다란 욕조에 반쯤 물이 찼다. 하림이 보라색의 동그란 입욕제를 욕조에 던졌다. 높은 온도에 입욕제가 뒤뚱거리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작게 부글거리며 물속을 돌아다녔다. 그러자 하림의 말대로 입욕제 안에서 반작이는 무언가가 꼬리처럼 주욱 늘어졌다.

“발 씻을까?”

“그래.”

둘 다 샤워 부스로 들어가 발을 또 닦았다. 동규는 젖은 발로 실내화를 다시 신어도 되나 싶었지만 하림이 아무렇지 않게 실내화를 신고 가 버려 따라 신었다.

“색 예쁘네.”

하림이 욕조 턱에 걸터앉아 다리를 꼰 채로 보랏빛의 물을 휘휘 저었다. 동규도 그 옆에 앉아 반투명한 보라색의 물과 그 안에서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작고 반짝이는 별들을 눈으로 좇았다. 하림은 말없이 물이 차기를 기다렸다가 자기가 원하는 만큼 물이 차오르자 물을 잠갔다.

“와…… 진짜 피로가 다 풀린다.”

욕조 안으로 다리를 집어넣자 무릎 아래까지는 들어차는 깊이다. 발로 물을 참방거리던 하림은 노래라도 틀어야겠다며 일어났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자신이 자주 듣는 노래들을 재생시켰다. 우리나라 노래도 있고 팝송도 있고 가사가 없는 음악도 있었다.

널찍한 욕조에 딱 붙어 앉은 동규와 하림은 손을 잡고 서로에게 기댔다. 말없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이따금 서로의 종아리를 물속에서 비비기도 했다가 눈이 마주치면 가만히 입을 맞추고, 아는 노래가 나오면 흥얼거리거나 잡은 손을 풀고 손가락을 만지거나 했다. 하고 싶은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좋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도 과하지 않았다. 따뜻한 물 덕분에 몸에도 열이 올랐지만 아직은, 적당했다.

“너랑 같이…….”

조금 깊었던 키스에 하림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젖은 입술로 숨을 쉬는 하림의 시선은 조금 아래를 향해 있었다. 동규는 다시 촉촉한 하림의 입술을 빨고 싶었으나 하림이 무언가 말을 더 할 것 같아 입술만 달싹이며 참았다.

“살고 싶다. 빨리 커서.”

찬찬히 눈동자를 올린 하림과 눈이 마주친 순간, 동규가 고개를 틀고 달려들었다. 하림이 살짝 몸을 뒤로 물리고 손을 올려 동규의 한쪽 뺨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리고 네 번째 손가락으로 동규의 귀밑 턱을 만졌다.

하림의 손길에 동규는 소름이 돋았다. 하림이 어딜 만져 주더라도 이럴 테지만 유독 하림이 턱을 쓰다듬을 때면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쇄골이나 장골 같은 다른 뼈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별 볼일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턱이 하림은 뭐가 그렇게 좋은 것일까.

“나도. 나도 그래.”

“…….”

“매일매일 놀러가는 것도 좋지만, 아까처럼 같이 식사 준비도 하고 서로 마주 보고 밥을 먹고 정리도 하고. 이렇게 둘이…….”

애타는 마음에 동규가 하림에게 입을 한 번 맞추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마음껏…….”

제 턱 끝을 더듬는 하림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평소처럼 차갑지 않은 손바닥에 볼을 가볍게 비볐다. 보드라움에 눈이 감겼다.

“하림아.”

“응.”

“우리, 언제쯤이면 같이 살 수 있을까?”

동규는 뺨에 있던 하림의 손바닥을 입술로 끌어왔다. 말이 계속 이어졌지만 손바닥에 뭉개져 웅얼거리는 듯이 들렸다. 하림이 다니는 대학교 근처나 직장 근처에다 집을 사는 게 좋을 텐데 그러려면 돈을 많이 모아야겠다는 깜찍한 이야기를 하는 동규 때문에 하림은 웃음이 나왔다. 심장은 벌렁거리며 제 존재감을 자꾸만 드러냈다.

“김동규, 나 봐 봐.”

동규는 고작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느라 바빠 보였다. 눈동자를 굴려 하림과 눈을 마주한 동규의 얼굴은 아주 심각했다.

“부탁 하나만 하고 싶은데.”

“응.”

“지금 이 시간, 순간순간에 집중해 줬으면 좋겠어.”

“아, 미안해.”

하림은 동규의 위에 올라앉았다. 동규의 두 팔이 하림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제 쪽으로 당겼다. 뭔가를 더 얘기하려던 하림도 동규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입을 벌렸다. 바로 동규가 입을 맞추고 하림의 혀를 감아왔다.

미래를 걱정하고 계획하는 건 모두 제 몫이라는, 그 말을 해 주고 싶었던 하림은 아무렴 어떤가 싶어졌다. 지금 머릿속은 터질 것만 같고 속옷 안도 마찬가진데. 단단해진 제 것도 느껴지고 커진 동규의 것도 잘 느껴졌다.

여전히 동규의 키스는 서툴렀고 그저 하림의 입술이나 입 안을 헤집으며 빠는 게 고작이지만 하림을 흥분시키기엔 충분했다. 점점 숨이 차올라 동규에게서 떨어지고 싶어도 동규가 놔주질 않았다. 입술이 좀 떨어지려고 하면 동규가 아예 어깨를 잡아 안아 하림이 몸을 뒤로 빼질 못하게 했다.

삼키지 못한 침 때문에 입 맞추는 소리가 질척거림으로 변해 갈 즈음, 하림이 동규의 뒷머리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숨, 차.”

“나도.”

하림은 입술을 깨물고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손은 동규의 잠옷 단추를 하나씩 풀어 나갔다.

“평생 키스만 할 거 아니면 좀 적당히. 알겠어?”

“응. 알겠어. 근데, 나도 오늘은 네 가슴 만지고 싶어.”

동규의 손은 이미 하림의 잠옷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하림이 도망가지 못하게 한 손은 등을, 한 손은 가슴 한쪽을 가볍게 쥐었다.

“허락도 안 했는데 손이 어딜 들어가.”

“젖꼭지에.”

동규가 하림의 유두를 세게 꼬집었다. 아직 몇 개 풀지 못한 동규의 잠옷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프긴 한데 그렇다고 못 참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다.

“아, 아프…….”

“내 가슴도 만져 줘야지. 빨리.”

“그러면 아프게 하지 말고 손 좀…….”

“아프지만 않으면 돼?”

두툼한 엄지로 동규는 하림의 유두를 사정없이 쓰다듬었다. 보이지 않아도 작은 유두가 손가락에 쓸려 짓이겨지고 있을 게 뻔했다. 하림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도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동규의 손가락은 점점 더 대범해졌고 하림은 남은 단추 두 개는 차마 풀지 못하고 그냥 뜯어 버렸다. 그러자 동규가 상의를 벗어 던졌다.

“아, 지금…….”

동규는 하림의 잠옷에서 손을 빼 발기한 제 성기와 하림의 것을 꺼냈다. 이미 끝까지 발기한 두 개의 성기는 귀두 근처가 말간 액체로 찐득했다.

하림이 동규가 그랬던 것처럼 동규의 양쪽 유두를 엄지로 꾹꾹 눌렀다. 동규는 낮게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흔들었다. 하림의 것과 제 것이 잘 문질러질 수 있도록.

하림은 동규의 도톰한 유두가 근육이 예쁘게 잡힌 가슴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가슴을 모아 잡아 유륜과 유두가 봉긋 튀어나올 수 있도록 잡았다. 가슴 근육은 단단하긴 한데, 힘을 주지 않으면 생각보다 그렇게 딱딱하지 않고 말랑거려 가능한 일이었다.

“아, 자, 잠, 아…….”

손에 힘을 줘 유두와 주변 살을 꼬집듯이 모아 잡으면 동규가 아파하면서도 성기를 꺼떡거렸다. 하림은 손에 힘을 풀었다가 다시 가슴을 모아 잡는 짓을 반복했다. 동규가 욕까지 작게 뱉었다. 안 그래도 붉은 와인색의 유두가 하림의 손짓에 점점 피가 몰려 붉어졌다. 동규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제 것을 힘차게 흔들었다.

“더, 아, 서하림 더, 윽! 하아…….”

하림은 동규가 사정하는 걸 보고 손을 뗐다. 양쪽 유두가 진해진 게 그냥 봐도 얼얼해 보였다. 동규가 고개를 숙여 붉어진 제 유두를 확인하고 하림의 잠옷을 들어 올려 하림의 입에 물렸다.

“너, 진짜, 후우…….”

흥건한 정액이 묻은 손으로 제 것을 다시 잡고 동규는 위아래로 느리게 움직였다. 사정 후 약간 힘을 잃은 제 성기를 기분 좋게 조물락거리며 동규는 하림의 가슴팍에 입술을 붙였다. 하림의 것을 입에 물어 쭉 빨아올리자 하림이 동규의 머리카락을 잡았다가 동규의 잠옷 옷깃을 잡았다.

“야, 자, 거길 왜!”

물고 있던 잠옷을 놓친 하림에게 잠옷을 한 번 더 물리기 위해 동규가 떨어졌다. 잠깐 빨았을 뿐인데도 이를 세워 빨았더니 벌써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

“물고 있어.”

하림은 소리를 참고 싶었지만 이로 잠옷을 물고 있느라 잇새로 자꾸만 새어 나왔다.

“진짜 사기야. 분홍색 젖꼭지는.”

동규가 흡입력 있게 빨아올리는 감각이 너무나도 이상했다. 허리가 뒤틀리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튀었다. 빨아 주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너무 좋아서, 그냥 다시 손으로 만져 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동규의 혀에 녹아내리는 듯했다. 게다가 동규가 다른 한쪽을 손으로 괴롭히기 시작해, 하림은 앞을 만지는 순간 사정을 할 것만 같았다.

“기, 김…….”

“싸도 돼. 빨아 주니까 엄청 좋아하네.”

입술이 눌려 발음이 부정확했지만 동규는 절대로 입술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세워 하림의 유두를 잘근잘근 씹기까지 했다. 하림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다른 한쪽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굴리던 동규의 손을 잡아 제 앞으로 가져갔다. 동규는 당황하지 않고 하림의 것을 쥐었다.

동규의 손이 하림의 것에 닿자마자 하림은 사정했다. 동규는 사정해 잔뜩 예민해진 하림의 귀두를 세게 문지르며 계속 가슴을 빨았다. 하림이 그만하라며 동규를 밀쳤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파, 동규야, 흐으…….”

신음하는 소리가 물기에 젖어 들자 동규는 추접하게 빨고 있던 하림의 유두를 놓아주었다. 작은 젖꼭지 말고도 주변 살까지 죄다 빨아 댔더니 유륜보다 더 큰 범위로 피부가 빨개졌다. 흰 피부라 매우 도드라져 보였다.

“복수야. 나도 지금 양쪽이 다 아파.”

동규는 하림의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해 양손을 들었다가 정액으로 흥건한 걸 보고 수건으로 급히 손을 닦았다.

“미안해 하림아. 많이…… 아팠지.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자.”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며 동규는 안절부절못했다. 이 정도로 아프게 할 생각은 정말 없었는데 네 피부가 너무 좋고 젖꼭지 촉감이 좋아서 자기도 모르게 심취하고 말았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늘어놨다.

하림은 어느 정도 눈물이 잦아들자 동규를 껴안았다. 서로 만지고 빨아 대 퉁퉁 부운 두 사람의 가슴이 맞닿았다. 동규는 하림의 부운 한쪽 유두가 마찬가지로 아픈 제 것을 자극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입술만 깨물었다.

“안 아픈 걸로 더 하고, 그냥 또 씻자. 옷 벗고 욕조 안에 들어가서.”

“서하림 너 미쳤.”

동규에게 입을 맞춘 하림은 웃고 있는 채다. 눈가가 붉은 것만 아니면 조금 전까지 울어 댄 걸 모를 정도였다. 하림이 눈을 감고 본격적으로 혀를 움직였다. 동규는 부드럽게 토닥이던 하림의 허리에서 손을 좀 더 내렸다. 그리고 하림의 잠옷 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하얗고 말랑한 하림의 엉덩이를 가볍게 쥐었다. 동규의 손길에 하림이 살짝 놀란 게 느껴졌다.

서로 좋아서 하는 건데 여기서 그만둘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렇게 좋다고 매달려 오는 하림이 싫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좋다 못해 감사한 지경인데. 끝까지만 하지 않으면, 아픈 것만 아니면…….

동규는 하림의 입술을 살짝 물고 하림을 제 옆에 내렸다. 입술을 떼지 않은 하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지 벗기게 엉덩이 들어 봐.”

입술 끝을 맞단 채로 나직하게 한마디를 속삭인 동규가 다시 입을 깊게 맞췄다. 하림은 동규의 목을 끌어안고 엉덩이를 올렸다. 순식간에 잠옷 바지와 속옷이 벗겨졌다.

동규는 욕조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림의 잠옷 상의 단추도 풀까 싶었지만 마음이 급해 하림의 하얀 다리를 잡아 급히 벌렸다. 바지와 속옷을 벗지 못해 답답한 건 부수적인 문제였다.

“지금부터 네 걸 빨고 싶은데.”

허벅지를 쥐고 있는 동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올려다 본 하림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동규는 욕을 삼키고는 하림의 다리 안쪽 살을 엄지로 꾹 눌렀다. 참았던 숨이 터져 하림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타구니를 자극하는 동규의 손이 뜨겁다.

“해도 돼?”

하림은 하기 싫으면 안 할게, 라고 작게 속삭이는 동규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동규는 입술이 마르는지 연신 혀로 입을 축였다. 고이는 침을 삼키기도 했다. 하림은 당장이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규의 입 안으로 제 것을 처넣고 싶었지만 제 허락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동규의 눈동자가 점점 뜨거운 욕망으로 물들어 가는 게 나쁘지 않았다.

다만 동규와 지금껏 맨살을 맞댄 적은 여러 번이어도 이렇게, 다리를 죄다 벌리고 발기한 성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적은 처음이라 부끄러움을 넘어선 수치심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조금만 기다리면 동규의 입 안에서 얼마나 기분이 좋을지 싶은 기대감으로 수치는 점차 흥분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림은 수치와 흥분이 뒤섞여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동규의 입 안에 제 성기를 넣으면 끔찍할 정도로 황홀하지 않을까.

“……응.”

“안 아프게 할 거고.”

하림의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동규는 허리를 잡아 하림을 제 쪽으로 더 끌었다. 하림은 욕조 턱에 엉덩이 끝만 걸치고 앉게 되었다. 동규는 하림의 허벅지 안쪽을 혀로 쓸다가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하림의 것이 바로 반응하며 움찔거렸다. 하림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동규가 이를 써 아프게 빨아 댄대도 그러라고 할 것 같았다.

“기분 좋으면 내 입에 싸도 돼.”

“어떻게 그래, 으, 아…….”

반쯤 선 하림의 것을 입에 물었다. 혀가 찌릿하고 온몸의 털이 가득 서는 기분이 든다. 동규는 귀두만 혀로 살살 핥다가 좀 더 깊숙이 하림의 것을 머금었다. 색도 예쁘고 크기도 큰 하림의 것이 입 안에서 점점 팽창하는 느낌이 황홀했다. 동규는 목 안쪽이 상하지는 않을 만큼, 하지만 넣을 수 있는 대로 최대한 깊이 하림의 것을 쑤셔 넣었다. 다 들어가지 못한 하림의 것을 가볍게 빨아 보았다. 파르르 떠는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동규는 고개를 뒤로 물러 하림의 것을 빼냈다. 하림의 귀두와 동규의 입이 침으로 연결되었다가 끊어졌다.

“……별로지? 그러면 하지 마.”

“아니. 까먹은 게 있어서.”

동규는 하림의 성기 뿌리에 코를 박았다. 향긋하고 상쾌함까지 드는 하림의 속살 냄새에 후각이 기뻐 날뛰었다. 폐포 하나하나까지 하림의 살 내음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동규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하림은 그런 동규를 보며 얼굴이 터지는 줄 알았다.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 한 건 바로 본인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동규가 다리 사이의 냄새를 맡을 거라곤 예상도 못 했던 거라 너무 부끄러웠다. 차라리 그냥 다시 마저 하라고 작게 얘기하긴 했는데 동규가 마치 강아지처럼 코를 구석구석 옮겨 가며 계속 냄새를 맡았다.

“김, 그, 이제 그만하고…….”

“다시 빨아 달라고?”

얼굴을 가린 채로 하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빨아 달라는 말이 너무 적나라해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너는 정액도 맛있어.”

“거짓말하지 말고. 비리기만 한 거 다 알아.”

“진짠데.”

“정낭액이랑 전립선액이 어떻게 맛있어.”

“……이과 망했으면.”

“문과는 사실 왜곡이 심해.”

“감성적인 거지.”

아직 미약하게나마 성기에 묻어 있는 하림의 정액을 동규가 혀로 핥아 먹었다. 터질 것같이 발기한 성기를 간지럽게 핥아대는데 하림은 죽을 맛이었다. 손으로 만져도 좋은 걸 입으로 빨아 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을 했을 뿐이라 충동적으로 허락을 했던 거지만 예상보다 엄청난 자극이었다.

축축하고 간지럽고 말랑거리는 입과 혀는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는 감각이 아니었다. 동규가 얼마나 좋을지 몰라서 무섭다고 한 게 슬슬 체감이 됐다. 그러나 멈추고 싶지 않았다. 좋아서 무서운 거라면 어디까지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무서움인지 알고 싶었다.

동규는 하림의 것을 빠르게 삼켰다. 아까 천천히 넣으며 괜찮았던 지점까지 한 번에 들어갔다. 하림은 연신 입술을 깨물면서 몸을 잘게 떨었다. 키스를 할 때보다 더, 동규의 입 속이 잘 느껴지는 듯했다.

이렇게나 뜨거웠던가, 이 정도까지 흥분이 됐던가.

혀로 동규를 느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림은 신음을 조금도 숨기지 못하고 죄다 쏟아냈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상체가 자꾸만 무너졌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도 너무 떨려 얼굴을 제대로 가리지 못했다. 결국 손 하나를 떼 동규를 붙잡아 겨우 지탱하는 게 고작이었다.

펠라는 처음이었지만 혀나 입 안을 써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동규는 고개를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며 혀를 부단히 놀렸다. 하림의 맑은 색 성기에 힘줄이 솟았다. 아무래도 내 입에 싸기 싫어서 참아 보려는 모양인데,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귀두 아래 파인 곳을 이빨로 살짝 물었다. 하림이 숨을 들이켜며 겨우 얼굴을 가리고 있던 나머지 손을 뗐다.

“미친, 아…… 지, 지금…….”

턱에 아주 조금 힘을 더 주어 깨무는 힘을 더했다. 하림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숨만 토해냈다. 동규는 가만히 놔뒀던 혀로 매끈한 귀두를 쓸었다. 그러자 하림이 허리를 뒤틀며 앓는 소리를 냈다. 깨물고 있는 힘은 빼지 않고 혀로는 귀두와 요도구를 자극했더니 하림이 참지 못하고 동규의 입안에 정액을 터트렸다.

하림이 크게 신음을 내뱉었다. 동규는 하림의 것을 문 채로 정액을 꿀꺽꿀꺽 삼켰다. 한 방울도 놓치고 싶지 않아 아예 귀두를 쭉쭉 빨았다. 안 그래도 잔뜩 예민해진 요도에 남은 정액이 빨대처럼 빨리는 느낌이 더해져 하림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려 댔다. 온몸이 떨려 왔다.

동규가 하림의 것을 놓아주자마자 하림은 몸을 뒤로 젖히고는 숨을 할딱거렸다. 욕조에 들어가 앉아 있는 동규는 물을 휘휘 저으며 하림이 숨을 고를 때까지 기다렸다. 조금 전 올려다본 하림의 얼굴을 다시금 떠올리면서.

원래 펠라가 이렇게도 엄청난 행위였던가. 물론 구강성교라고 불리는 거라지만 이건, 쾌감이 무서울 정도였다. 제 손이나 동규의 손으로 자위를 하던 거나 동규의 것과 비비며 사정하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제 괜찮아? 아직 안 끝났어. 앉아 봐.”

“또, 또 한다고? 나도 욕조 들어갈래.”

“아니. 기다려 봐. 음, 좆은 안 빨고.”

하림은 떨리는 손으로 몸을 일으켜 다시 앉았다. 동규는 하림의 발목을 잡고 위로 올렸다. 그러자 하림의 몸이 자연스럽게 뒤로 넘어가며 회음부와 엉덩이 사이가 나타났다.

“야, 안 돼. 진짜 안 돼.”

“아픈 거 아니야.”

하림이 다시 다리를 욕조로 내리며 일어났지만 동규가 아예 허벅지를 잡고 들어 올려 하림은 반쯤 눕게 됐다. 잠시 일어나겠다고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하림과 하림을 눕히려는 동규의 힘 싸움이 이어졌다.

“하지 말라고!”

하림은 위쪽에 앉아 있고 동규는 욕조에 들어와 있어 힘 싸움에는 아래에 있는 동규가 훨씬 불리했으나, 동규가 한 손을 뻗어 회음부를 꾹 누르자 하림의 몸짓이 뚝 멈췄다. 동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하림을 뒤로 눕혔다. 저 위에서 쉬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얌전해진 다리 하나를 위로 올려 접으며 회음부에 입술을 눌렀다. 입술 위로 움찔거리는 살이 느껴졌다.

“저번에, 네가 내 가슴에 좆 비빈 거…… 꿈에 나왔었다며.”

“김동, 규 차라리 다른, 다른 거 해.”

“못 했다간 꿈에…… 나올 것 같다고. 나도 그래. 나도 하고 싶어. 꿈에서 했던 거.”

“아니, 이거는, 읏, 너는 진짜 비위도, 흐앗, 아…….”

뒤쪽에 동규의 혀가 닿자 하림은 탄식을 흘리며 힘을 줬다. 그 탓에 혀로 뒤를 눌렀더니 세세한 주름이 느껴질 정도였다.

열어 줄 생각이 없어 보여 혀를 길게 빼 하림의 뒤를 크게 한 번 쓸었다. 하림이 위로 몸을 뺐지만 동규는 하림의 허벅지를 잡아 제 쪽으로 당겼다. 끝을 뾰족하게 세워 분홍색의 구멍 주위를 동그랗게 쓸었더니 하림이 포기를 하고 다리에 힘을 뺐다. 그 반응에 동규는 웃음이 나왔다. 바로 웃지 말라는 타박이 날아왔다. 그럴 정신이 있단 거지.

동규는 혀에 힘을 주고 닫혀 있는 곳을 꾹꾹 눌렀다. 뚫고 들어올 기세에 하림이 몸을 바르작거리며 위쪽으로 도망가려 했다. 동규는 하림의 골반을 꽉 잡아 하림의 몸이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게 만들었다.

코에 닿는 통통한 회음부에서는 좋은 냄새도 나, 동규는 뒤를 빨다가도 혀를 올려 회음부에 침을 묻혔다. 하림은 제대로 만져 본 적도 없는 위치를 희롱하는 동규 때문에 귀를 틀어막았다. 그냥 혀만 갖다 대도 놀랄 일인데,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난잡하고 추접스러운 소리가 났다.

분명 이상하고 제정신엔 못 할 짓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림은 제 앞이 힘을 받아 가는 게 느껴졌다. 이래서야 더럽다고 다음에는 하지 말라고 할 명분이 없었다. 동규의 혀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림은 엉덩이 사이에 힘을 줬다. 혀가 들어온대도 이상할 게 없을 힘이었다. 두툼한 혀를 막기 위해 뒤쪽에 힘을 준 채로 있다가도, 한 번씩 동규가 회음부를 간질이고 귀두 뿌리를 자극할 때면 하림은 뒤가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동규가 귀신같이 알고 뒤를 또 핥아 댔다.

“그, 그만해…….”

동규가 뭘 하더라도 다 받아 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싫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버거웠다. 제대로 하기 전에도 몇 번을 사정하는지를 모르겠는데 동규랑 정말 끝까지 가게 된다면 복상사가 남 일은 아니게 되지 않을까. 끝을 세워 뒤를 찔러대는 동규의 혀를 느끼다 하림은 사정을 하고 말았다. 가슴으로 막 사정된 정액들이 느껴졌다. 하림이 사정한 것을 확인한 동규가 뒤에서 고개를 뗐다.

“하아…… 너 진짜…….”

앞뒤로 찌릿한 기분이 아직도 들러붙어 있다. 특히 동규가 뒤를 핥아 대던 건 다시 생각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설 것 같다. 천천히 사정의 여운을 즐기던 하림은 뒤늦게 몸을 일으켜 동규가 뭘 하고 있는지를 발견했다. 동규는 뜨거운 물을 틀어 살짝 식은 욕조를 다시 데우더니 세수를 하고 하림이 만져 줬던 제 가슴을 눌렀다가 찌르르한 아픔에 몸을 움츠렸다.

“아픈데, 가슴 만지니까 또 설 것 같아. 서하림이 열심히 만져 줘서 그런가.”

만족할 만큼 뜨거워졌는지 동규가 물을 끄고 하림의 다리 사이에 앉았다. 하림의 허벅지에 머리를 올려둔 동규가 속옷에서 꺼낸 자신의 성기를 잡아 천천히 흔들었다. 욕조의 물이 동규의 손짓에 점점 거칠어졌다. 하림은 멍하니 앉아 동규가 자위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허벅지로 동규의 숨이 흩어져 간지러웠다. 지치지도 않는 게 대단했다. 타고난 게 있다 이건가.

“……입욕제 좋다. 미끄러워서.”

“…….”

“물, 더럽혀도 괜찮지.”

하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리 한쪽을 들어 동규의 가슴에 발을 올렸다. 발가락이 붓이라도 된 것처럼, 동규의 가슴을 느리게 훑어나갔다. 아직 민감한 유두를 엄지발가락으로 툭툭 쳤다. 동규의 가슴 근육이 꿀렁거리는 게 보였다. 동규의 말대로 입욕제를 쓰니 미끄러워 좋았다. 이러니까 꼭 보디 오일 바른 것만 같다. 발가락을 조금만 움직여도 미끌미끌하니 동규의 가슴팍을 헤집기도 쉬웠다.

“젖꼭지 아파.”

“살살…… 할게. 그러면 안 아파.”

아프지 않게 한다면서 아프다는 유두를 꾹꾹 눌러대고 제 가슴팍을 희롱하는 하림의 발을 잡아챈 동규가 하림의 얄밉고도 자극적인 엄지발가락을 입에 물었다. 하림이 질겁하며 빼라고 소리쳤지만 동규는 일부러 아프게 하림의 발가락을 깨물었다. 그리고 입에서 하림의 발가락을 빼 요리조리 확인했다.

“이빨 자국 났어.”

“너, 뒤로 좀 가.”

“뒤?”

동규의 입 안으로 발가락이 들어간 순간, 하림은 제 안에 있던 무언가가 뚝 끊긴 듯한 기분을 느꼈다. 엉덩이 걸음으로 뒤로 빠진 동규 덕에 생긴 공간에 하림이 들어와 앉았다. 그리고 동규의 잠옷 하의나 속옷을 아예 다 벗겨 던졌다. 물에 젖어 잘 벗겨지지 않아 짜증났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 갑자기 왜 그래.”

하림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옷을 벗기는 것 때문에 동규는 살짝 겁을 먹었다. 갑자기 뭐지. 뒷구멍에 발가락에 깔끔 떠는 서하림에게는 좀 너무 그랬나.

“물속에서 하는 건 사실 비위생적이라 생각하는데, 그래도 나는 좋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뭐……를?”

“다리 벌려 봐. 우리 그냥 오늘 끝까지 해 버리자.”

하림의 말에 동규가 깜짝 몸을 일으켰다가 뒤로 넘어졌다. 그 위로 하림이 올라탔다.

“못 참겠어.”

물 안에 잠긴 동규의 가슴을 더듬으며 하림이 욕을 작게 뱉었다. 동규는 머릿속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속까지 울렁거렸다. 지금까지 꿨던 하림과의 꿈들도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아까부터 하림과 물고 빨던 모든 행위들이 뒤엉켰다.

“아, 안 돼.”

“돼. 안 될 게 뭐가 있어. 지금 너도 존나 흥분했잖아. 나도 그래.”

하림이 입술을 짓이기며 동규의 손을 제 성기 위에 올렸다. 동규는 하림의 것에서 빠르게 손을 뗐다.

“뭐가 문제야. 안 되는 이유가 뭔데.”

엄마와의 약속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깰 게 분명해 동규는 고개만 흔들었다.

“동규야, 읏, 왜, 왜 안 되는데. 말해 줘, 동규야.”

하림이 동규의 허벅지에 제 성기를 비볐다. 탄탄하고 미끌거리는 허벅지에 하림의 것이 단단해졌다. 하림이 거세게 허리 짓을 하느라 욕조의 물이 넘칠 것처럼 흔들렸다.

하림이 제 이름을 부르며 세 번만 더 물어보면 동규도 거절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이대로 끝까지 못할 것도 없고 하면 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무서워.”

극도로 좋은 건 좋아서 무서울 거였다. 동규는 많은 뒷말을 삼키며 겨우 대답했다.

“무서워, 하림아.”

“무서우면, 네가 넣고 싶은 거면, 오늘은 그렇게 해. 아, 흐으…….”

이대로 갔다간 정말 큰 일이 날 게 확실했다. 아직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하림과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동규는 열에 차 이제는 자신의 성기와 동규의 것을 비비는 하림을 초인적인 힘으로 밀어냈다. 입 안 가득 고인 침을 삼키고, 하림을 껴안았다. 맞닿은 가슴이 입욕제 때문에 정신없이 미끌거렸다. 서로의 쿵쿵거리는 심장이 느껴졌다.

“……어른 되면 하자. 진짜로…… 진짜로 큰 일 날 것 같아서 그래. 학교에서도 하자고 할까 봐.”

동규의 품 안에서 꾸물거리던 하림의 움직임이 멎었다. 동규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났다.

“싫은 건 아니라는 거네.”

“안 싫어. 좋아, 나도.”

“알았어. 1년, 뭐. 넣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니까.”

하림은 동규에게서 벗어나 다시 동규의 가슴을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발기한 성기 때문에 뜨거운 숨이 나왔지만 동규의 가슴에 보랏빛 물을 끼얹기도 하고 부풀어 오른 유두를 누르거나 가볍게 뭉개기도 했다. 유두를 자극하지 않아도, 그냥 말랑한 가슴을 조물거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한 번씩 동규가 가슴에 힘을 줘 근육을 세울 때면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가 가슴골을 간질였다.

“나 이러다 가슴 성감대 될 것 같아.”

“원래 가슴은 성감대 중 하나야.”

“일상생활 불가능하게 되면 어쩌지.”

“김동규 변태 되는 거지.”

산뜻한 대답에 동규도 하림도 작게 웃음이 터졌다. 동규는 “맞아.” 하고 빠르게 인정을 한 뒤에 미소를 머금은 하림에게 입을 맞췄다.

“아래 또 빨아 줄까. 뒤에 말고 앞에. 그냥 입 안에 넣고만 있어도 기분 좋을걸.”

“……조금 이따가.”

적나라한 단어 사용에 하림이 눈동자를 아래로 내렸다. 동규는 몸을 조금 숙여 하림의 귓가에 속삭였다.

“왜. 지금 해 줄게. 아까 기분 좋았잖아. 빨리면서 울던데. 그거 좋아서 운 거지.”

동규의 가슴을 쥔 손길이 느려진다. 하림은 뒤늦게 “응” 하고 대답했다.

“이번엔 뒤는 안 해. 예쁜 서하림 좆만.”

“아, 진짜.”

“맞잖아. 색도 예쁘고.”

“너 그렇게 거기, 펠라 좋아해?”

“음…….”

비위도 약한 게 성기를 빨아 주겠다는 건가 지금. 하림이 빨아 준다면 목구멍 안쪽까지 깊게 박아 넣어서 숨도 못 쉬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거북하고 괴로운 표정으로 빨아 댈 게 분명했다.

“펠라가 좋다기보다는 내가 너 해 주는 게 좋은 것 같아. 나는 네가 내 가슴에 좆 비비면서 사정하는 게 더 좋은데. 네 정액으로 가슴 젖는 거 기분 진짜 좋아.”

동규는 제 가슴에서 손을 뗀 하림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두 개의 발기한 성기가 눌리고 비벼졌다. 서로에게 안긴 채 허리를 들썩이며 마지막 사정을 한 두 사람은 물이 식을 때까지, 서로의 열이 식고 더운 숨이 진정될 때까지 끌어안고만 있었다.

하림이 이만 씻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체인 동규와는 달리 하림은 잠옷 상의를 그대로 입은 채였다. 동규도 하림을 따라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할 거 다 해 놓고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와 동규와 하림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각자 다른 욕실에서 따로 씻었다.

1층 욕조까지 정리하고 나자 하림과 동규는 꽤 피곤했다. 간식 까먹으며 영화를 보려던 계획을 접고 침대에 누웠다. 두 사람은 서로의 침대 사이에 있는 무드등을 가장 어둡게 켜 놓고 서로 마주보았다. 침대가 하나로 큰 거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졸린데, 자기 싫다.”

“나도.”

“김동규 너도?”

“응.”

“잠드는 거 아까워.”

“나도.”

“아까…… 좋았어.”

“나도.”

“이리 와.”

하림의 말에 누워 있던 동규가 벌떡 일어났다. 하림은 이불을 거두고 동규가 누울 수 있도록 옆으로 물러났다. 동규는 침대에 누우면서 하림에게 키스했다. 입술이 느리게 움직이며 뜨거워졌다. 침대에 눕기 전 시간을 확인했을 때가 12시가 조금 못 되었던 시간이었으니 하림이 잠들 시간이었다. 동규는 얽혀 있던 혀를 풀고 입술을 뗐다. 그러자 하림이 다시 입술을 붙여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자자. 피곤해 보여.”

“이대로 자면 너무 아까울 것 같아. 빨리 뽀뽀해. 얼른.”

패기 좋게 말한 것 치고 하림의 눈은 반이 감겨 있었다. 동규는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고 하림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뽀뽀는 아니었지만 서로의 입술 끝이 닿아 있어 동규가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마다 말랑한 입술 때문에 간지러웠다.

“뭐 하냐 지금.”

“……뽀뽀.”

“이게?”

“피곤하면 그냥 아무 말 하지 마. 나 혼자 계속 얘기 할 테니까. 듣다가 졸리면 자고. 입술은…… 닿았으니까.”

새벽에 일어난 것만 아니면 어떻게 좀 더 버텨 보겠는데 습관이라는 게 무서웠다. 하림은 손을 올려 동규의 귀 아래턱을 쓰다듬었다. 아기 새처럼 움직이던 동규의 입술이 잠시 멈췄다. 동규도 졸려 보인다. 하림은 계속 동규를 보기 위해 무거운 눈꺼풀을 열심히 들어 올렸다.

“……우리 엄마 떡보라 요즘 퓨전으로 나오는 떡들 잘 먹길래 콩가루 티라미수 해 줬는데 그것도 잘 먹어.”

닫혀 있는 하림의 입술과 달리 조잘거리며 벙긋벙긋 벌어지는 동규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니 정말 가볍게 버드 키스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림은 각진 턱을 따라 손가락을 찬찬히 움직이면서도 동규가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졸려서 사실 집중도 잘 되지 않고 그냥 동규의 목소리만 듣는 거였다.

하림은 고개를 돌려 입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눈을 크게 떠 동규를 바라보았다.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던 하림이 갑자기 또렷하게 눈을 뜨자 동규는 잠시 당황에 빠졌다.

“귀여워. 하는 짓.”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엄마가 좋아하는 떡 종류를 얘기해 주고 있었다.

“백……설기가…….”

뜬금없는 말에 당황한 동규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질 못했다. 하림은 동규에게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췄다.

“굿나잇 키스. 한 10분만 네 목소리 듣고 있으면 잘 것 같은데, 나 자면 너도 자. 피곤해 보여. 낮잠 잤어도 조금밖에 못 잤잖아.”

“응.”

“미리…… 잘 자라고.”

말을 마친 하림의 입술이 닫히질 못한 채 ‘고’의 모양으로 살짝 벌어졌다. 하림의 숨소리가 점점 느려졌고 턱을 매만지던 손길이나 눈을 깜빡이는 속도도 현저히 떨어졌다. 동규도 슬슬 잠을 참기가 힘들었다. 귀여운 짓 한다는 하림의 말 때문에 다른 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 엄마가 좋아하는 떡의 종류를 늘어놓던 동규도 하림과 거의 동시에 눈을 감았다.

잠에 드는 순간까지 동규를 보기 위해 하림이 안대를 쓰지 않았고 무드등도 끄지 않았다는 걸 두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늘 완벽하게 빛을 차단하고 자던 하림조차 뭐가 어색한지 몰랐다.

늦은 아침, 하림이 먼저 눈을 뜨고 나서도 동규가 일어날 때까지 말없이 동규를 보고만 있으면서도 그랬다. 모자람 하나 없이 그저 완벽한 밤과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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