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2 20화 (30/53)

20

다른 학생들은 고3이 되기 전 마지막 방학이라고 공부로 하루 24시간을 불태워도 모자라다는 고2 겨울 방학.

하림은 그 귀한 시간을 모조리 동규와 연애하는 데에 쏟아 부었다. 친구들이 만나자는 연락은 다 무시했고 집에 놀러온다는 말은 칼같이 거절했다. 할아버지가 만나자고 해도 공부하느라 바쁘다며 죄다 피했고 하루 종일 동규만 끼고 살았다.

두 사람이 사귄다는 소식은 딱 한 사람, 하늘에게만 전해졌다.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하림이 동규 옆에 누워 하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스피커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규는 부끄러워 한마디도 하질 못했다.

-지금 존나 감동의 눈물 흘리는 중. 하, 내가 진짜 답답이 김동규 멱살 잡고 시발, 내가 진짜 야 김동규 듣고 있지. 내가 얼마나 너한테 열심히 입 털었는지 하나도 빼먹지 말고 빨리 서하림한테 말 좀 해 줘.

“왜 김동규한테 뭐라고 그래.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와, 싸고도는 거 봐라. 미친 새끼, 야 서하림 너도 나한테 눈치란 눈치는 그렇게 줬으면서! 옆구리 그렇게 찔렀으면서!

“도와준다고 했었으니까 도움을 청한 거지.”

-저기요, 제가 전에 그쪽의 상대방은 그냥 답답이가 아니라 어나더 레벨 답답이라고 했던 거 잊으셨어요?

“김동규보고 답답이라고 하지 마.”

-끊어라, 걍. 욕할 의지도 상실함. 야. 그냥 내가 끊는다.

“서하늘 고마…….”

겨우 용기 내어 고맙다는 한마디를 해 보려고 했지만 하늘이 매정하게 끊는 바람에 동규는 집에 돌아가 하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답답하게 해서 미안하고 정말 고맙다는 내용으로. 답장으로 욕이 잔뜩 날아올 줄 알았는데 동규의 메시지를 바로 읽은 하늘이 보내 온 답장은 의외로 진중한 내용의 이야기였다. 하림과 배 속에서부터 친구였다는 말은 농담으로 한 게 아니었는지 하늘은 하림의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동규의 친구로서 느끼는 모든 것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렇게 멋지고 어른스럽고 쿨한 애랑 절교 할 정도로 싸운 애들은 도대체 얼마나 인성이 쓰레기 같은 애들일지 감도 오지 않았다. 동규는 하늘과 싸웠다는 친구들을 떠올렸다. 같은 반이니까 아는 척하면 인사하고 조별 활동으로 그 친구들과 묶이면 적당히 짧게 대답하고 그랬다.

하지만 이제 걔네랑은 종업식 날까지 교실에서 눈도 마주치지 않을 거고 인사도 안 받아 줄 거고 투명 인간 취급할 거다. 하늘이 눈 마주치지 말라고 했을 때만 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싶었지만 지금 같은 마음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 만약에 서하늘이 걔네랑 또 싸우게 되면 뒤에서 응원도 해 줘야지.

동규도 하늘의 긴 이야기에 마찬가지로 답장을 길게 써서 보냈다. 그 메시지 역시 바로 확인한 하늘이 네 마음 잘 알겠다고, 앞으로 둘이 싸웠을 때 자길 괴롭히지만 말아 달라는 말로 늦은 밤의 대화가 끝이 났다.

한편 하림은 한창 과외 중이었다. 하림의 엄마나 이모님보다 더 하림의 성적을 걱정하는 동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업은 듣고 있지만, 마음은 온통 옆방에 가 있어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다른 생각만 하는 하림에게 뭐라고 하려다가도 숙제는 잘 해 오고 딱히 틀리는 문제가 없어 그냥 두었다. 다른 데에 마음이 가 있어도 공부를 소홀히 할 학생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도 했고.

“그래도 오답률 올라가는 거 바로 눈에 보이면 이모님께 얘기할 거야.”

“네.”

이런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에 공부 같은 걸 하는 것보다 김동규랑 끌어안고 쪽쪽거리는 게 훨씬 유익하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알차게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인데.

“마저 풀어 봅시다. 여기서 왜 아까 하림이 네가 헷갈렸냐면.”

아. 지루하다, 지루해. 김동규 보고 싶다. 벽 하나 사이에 두고 볼 수 없는 게 이렇게 슬플 줄이야.

두 시간의 과외 시간이 스무 시간은 되는 것처럼 늘어졌다. 하림은 우주에 나가 있는 것도 아닌데 1초가 너무 길어 답답했다. 문 하나를 두고 방 안과 밖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이놈의 과외 그냥 때려치우고 싶다. 어차피 안 해도 내신은 어련히 잘 나올 텐데. 하지만 그랬다간 김동규가 펄쩍 뛰고도 남겠지.

“그럼 모레 보.”

“네! 감사합니다!”

하림은 쥐고 있던 샤프를 내던지고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동규는 이미 식탁에 앉아 점심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림은 아주머니가 뒤돌아 있는 걸 확인하고 동규에게 입을 맞췄다. 동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깜짝 놀랐지만 하림은 태연하게 맞은편 제 자리에 가 앉았다.

“빨리 먹고 나가자.”

오늘도 하림은 동규와 다닐 곳이 많았다. 겨울이라 죄다 실내로 들어가야 하는 것들이었다. 오늘은 아이스 링크에 가 스케이트를 타고 사격 연습장에 다녀오는 스케줄이다. 스케이트는 이번 달 들어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하림도 아주 어릴 때 해 본 게 다라 처음 하는 거라 해도 무방했다.

일주일은 둘 다 엉덩방아 엄청 찧으며 고생을 했었지만 1월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은 두 사람 다 새하얀 얼음 위를 슝슝 잘만 돌았다. 하림과 동규가 운동신경이 좋은 덕분이었다. 종종 스케이트화 벗겨 주기를 걸고 내기 경주도 했다.

오늘의 우승자는 동규였다. 하림이 동규의 스케이트화를 벗겨 주면서 종아리나 무릎도 매만지는 바람에 동규는 주변의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얼굴이 빨개진 채로 눈동자를 열심히 굴렸다.

사격 연습은 하림이 신나서 동규를 데리고 간 것이었으나 동규가 영 흥미를 느끼질 못했다. 그래서 예상보다 빨리 나와 근처에 괜찮은 전시회를 찾아 티켓을 끊었다. 작은 갤러리에서 열린 신인 작가 셋의 전시회였는데 급하게 들어온 것치곤 다 하림 마음에 드는 작품뿐이었다. 동규도 이런 쪽은 잘 모르지만 하림의 설명을 들으며 작게 감탄을 하면서 하림을 잘 따라다녔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하림은 당직이라는 엄마와 통화를 했다. 회식이라는 아빠와도 통화했다. 그러면서도 손은 동규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놀기 바빴다. 동규는 택시 기사 아저씨가 혹시라도 이상하게 볼까 봐 눈치를 엄청 보고 숨도 조심스럽게 쉬었다.

동규는 밖에서 이렇게 하림이 자길 만지작거리고 안아 달라고 할 때마다 엄청 당황스러웠다. 손잡고 다니자고 하질 않나, 툭하면 뽀뽀하자고 얼굴을 들이대질 않나.

싫은 건 아닌데 밖에서 겁도 없다 싶은 생각. 하림이 그럴 때마다 제 쪽에서 주변을 많이 살피고 사람 지나간다고 말리면 하림도 그만두긴 한다. 하림이 애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라면 제 쪽에서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 될 일이라고 여기기도 했고.

하지만 당황스러움과는 별개로, 동규도 가끔은 밖에서 하림을 밀쳐내지 못할 때가 있었다.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안 그래도 잘생기고 예쁜 자기 애인과 밤길을 같이 걷고 있는데 문득 조명 빛을 받아 더 잘생겨 보인다거나 함박눈을 맞은 애인이 말도 못하게 예뻐 보인다거나.

더불어 하림은 사귄 첫날부터 둘이 한 이불 덮고 같이 자자고 했을 정도로 스킨십에 스스럼이 없는데 비해 동규는 하림과 손끝만 스쳐도 깜짝깜짝 놀랐다. 비단 밖이 아니라 하림의 방에서 손을 잡거나 눈을 마주치거나 껴안거나 입술을 비빌 때도 아직 둘이 사귀고 있다는 사실부터 믿기지가 않을 때가 여러 번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말없이 걷던 하림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아. 내 생일 왜 1월 1일 아니지.”

“응?”

“만 18세부터 면허 딸 수 있단 말이야. 내 생일 1월 1일이면 새해 되자마자 운전면허 학원 등록해서 2주 만에 면허 따고 너랑 같이 편하게 다닐 수 있었는데. 택시는 기사 아저씨 있어서 불편해. 집도 사실 마음에 안 들어. 내 집이 아니잖아. 이모님은 따로 살긴 하는데 우리 집에 너무 자주 오고 아주머니는 아예 우리 집에 살고 있어서 진짜 혹시라도 만에 하나 우리가 뽀뽀하는 거 보기라도 하면?”

“방 잠그고…….”

“그러니까 만에 하나. 아, 걍 따로 나가서 산다고 할까. 차 타고 등교하면 되잖아.”

버스타고 통학하는 동규는 집에서 걸어서 학교까지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하림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다시 묵묵히 걸었다.

동규에게는 그냥 잘 그린 신기한 그림 천지였던 전시회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하림은 점심 먹는 동안 콧노래를 불렀다. 동규도 그런 하림의 콧노래에 맞춰 한 번씩 젓가락으로 밥그릇을 두드렸다.

“3월 되기 전에 많이많이 놀러 다니자. 어디로 놀러 가지.”

대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도 아닌, 3월이면 고3이 되는 이 시점에 놀러 다닐 생각만 하는 하림에게 싫다고는 차마 할 수 없어 동규는 하림이 납득할 만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유를 찾아 대답했다.

“미성년자는 호텔 투숙 안 돼. 펜션이나 게하 같은 모든 숙박업소들 다 마찬가지야.”

“음?”

“응?”

하림은 몸을 돌려 아주머니가 주방에 있는지, 아니라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파악했다. 다행히 눈에는 띄지 않는 걸 보니 1층 다른 곳에 있든가 2층에 있는 것 같다.

“나는 당일치기 여행…… 말 한 건데.”

“아…….”

“……밥이나 먹자.”

또 어색해진 공기에 동규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닌데 결국은 그런 의도가 되어 매우 민망했다. 서하림이 나를 너무 그런 애로 생각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들 존나 하는 사람인 건 맞는데 들키긴 싫다.

“담주에 할아버지보고 서울 근처 별장 열어 달라 그래서 거기서 자고 오자.”

“응?”

“그러니까 아쉬워하지 말고 밥 먹어.”

“아니 나는, 그런…… 그런 거 아니고 우리 이제 고3이니까 공부도 좀 해야 할 것 같고 나도…… 백일장 준비 시작하고 전에 네가 공부 알려 준다고 했으니까 시간 안 뺏는 정도로 그, 내가 풀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는 그런 정도로 나도 공부하려고 했는데.”

이제 그만 좀 놀고 학생의 본분을 다 하자는 말을 빙빙 둘러서 완성했다. 혹시 하림이 화내진 않을까 걱정되어 두 눈 꽉 감고 용기 내어 말 한 건데 하림은 생각보다 산뜻한 대답을 내놓았다.

“알아.”

“……응?”

“내가 이상한 생각 한 거야. 미안.”

동규는 눈을 굴리며 하림의 말이 뭔지 열심히 되짚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생각하는 그 뜻 말고는 다른 뜻으로 해석이 되지 않는다.

“저, 저기.”

“응.”

“우리 사귄 지 이제 겨우…….”

“28일밖에 안 됐지. 나도 알아. 그래서 열심히 참고 있잖아.”

이 말도 그런 뜻으로만 들리는데. 동규가 열심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들을 지우려고 싸우고 있는 동안 하림은 그런 동규가 편히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방에. 다 먹었어. 밥 말고 이따가 고구마라떼 먹고 싶어서.”

“그럼 나도.”

“됐어. 밥통에 남은 밥 싹 다 비우고 올라와. 알겠지? 나는 먼저 씻고 방에 가 있는다.”

혼자 남겨진 동규는 하림의 말들을 하나하나 뜯어 가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단어로 뜯어 봐도 문장으로 뜯어 봐도 심장이 너무 쿵쿵거려 밥이 들어가지 않았다.

“참는다고…….”

그런 것치고는 너무 열심히 손잡고 다니고 너무 자주 키스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입 맞추는 시간이 길어져 동규의 머릿속에 빨간 사이렌이 울리면 하림을 떼어 놓은 적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거 가지고 아쉬워하는 말을 하거나 타박한 적은 없어 그냥 하림은 그런 쪽으로는 담백하고 단지 스킨십 좋아하고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던 건데. 하림의 입에서 참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동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만 같았다.

그래도 하림이 밥통 비우고 오라고 했으니까 먹긴 먹어야지. 임금님 수라상도 이것보단 맛이 없을 거다.

즐거운 식사를 마친 동규도 1층 욕조에서 씻었다. 샤워를 하면서 하림이 했던 말을 영상으로 재생했고 자위도 했다. 가슴까지 닿을 기세로 불뚝 선 제 것을 모아 잡고 위아래로 열심히 움직였다. 꿈에서 했던 그런 찐득하고 음탕하고 더러운 짓까지는 못 하더라도…… 이렇게, 따뜻한 물을 맞는 걸 같이하는 정도는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얀 하림의 몸이 물에 젖어 촉촉해지고 비누 거품이 묻어 미끌거리고 그 젖은 눈빛과 마주한 채로 입을 맞추다가 몸을 붙이고 거길 비비고…….

“아 진짜 좋네.”

시원하게 싼 정액을 물에 흘려보내며 동규는 실실 웃었다. 그냥 다른 거 없이 서하림 속살만 만질 수 있게 해 줘도 좋겠다. 가슴이나 겨드랑이, 옆구리나 허벅지, 다리 사이 그런 곳. 엉덩이, 허리, 팔뚝 안쪽도.

그러니까, 서하림도 나랑 똑같은 생각이고 똑같이 참고 있단 거지.

늘 자위가 끝나면 허탈함과 공허에 휩싸여 멍 때리기가 일쑤였지만 오늘은 힘만 좀 빠지고 열정이 불타올랐다. 동규는 손을 깨끗이 씻고 바디 워시로 온몸을 꼼꼼히 닦았다. 아주 빠른 속도로. 위에서 하림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올라가자마자 끌어안고 키스해 줘야지. 서하림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신난 발걸음에 실내화를 신고 있음에도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규는 하림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문부터 잠갔다.

“서하…….”

당연히 책상에 앉아 있거나 소파에 앉아있거나 할 줄 알았던 것과 다르게 하림은 침대에 반쯤 누운 채로 잠에 들어있었다.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는 걸 보니 기다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에 든 것 같다.

동규는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조심 걸었다. 안 그래도 좋은 피부가 씻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광으로 반질반질했다. 머리를 말리고 빗지는 않았는지 까만색의 머리카락은 약간 헝클어져 있었고 모양 좋게 다물어진 입술은 고왔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을 동규는 한평생 체감하지 못했으나 하림과 친해지고 나서는 적극 공감하는 바였다.

침대 옆에 쭈그리고 앉아 하림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뿐인데도 즐겁다. 언젠가 하늘이 잘생긴 얼굴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고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다고 했는데, 잘생기고 못생김을 떠나 그냥 하림이라 좋았다. 평생 이렇게 잠자고 있는 하림의 얼굴만 보고 있으라고 해도 그러겠노라며 평생을 바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하림의 앞머리를 만졌다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가, 긴 속눈썹을 손끝으로 간질이고 예쁜 모양의 눈썹도 솜털처럼 아주 살짝 만져 보고, 코 아래로 손을 대 하림의 작고 느린 숨결을 느꼈다. 하림의 체온과 똑같을 온도의 숨은 동규의 손가락에 닿으면 닿을수록 신기한 기분을 들게 했다.

한참 손가락으로 숨결을 느끼다가 손을 떼고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가, 또다시 손가락을 빼꼼 내밀어 숨결을 느끼다 갑자기 화들짝 놀랜 듯이 손을 빼고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가를 반복하기 여러 번이었다. 아, 서하림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도 좋다.

“으…….”

너무 좋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좋아서 어떡하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귀는 안 만져도 뜨거울 것 같고 얼굴도 안 봐도 빨갛게 되었을 거다. 자고 있는 애를 상대로 혼자 두근거려서 난리칠 건 뭐람.

“김동규.”

“…….”

세차게 움직이던 심장이 순간 얼음처럼 굳으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규는 제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아까, 내가 열심히 참고 있다는 말 어디로 들었어.”

눈을 반쯤 뜬 하림이 딱딱한 얼굴을 한 채 물었다. 동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잠 깨워서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드, 들었어.”

“속으로 야한 생각 많이 하고 있으면서 왜 하는 짓은 자꾸 귀여운 짓만 해.”

역시 생각하는 거 다 들켰다. 씨발, 이제 사형밖에 안 남았나. 동규는 온몸의 땀구멍이 다 열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내숭 떠는 건 아니고 상상은 그냥 상상이니까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뿐이고 실제로는 하림과 손만 닿아도 좋아 죽겠고 부끄럽고 그랬을 뿐이다.

“손 씻어 주는 것만으로도 야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그……랬나.”

“올라와 봐.”

온몸이 굳어 일어나지도 못하는 동규를 하림이 잡아끌어 침대에 눕혔다.

“문 잠근 거 맞지.”

하림은 동규의 배 위에 올라타 앉으며 물었다. 동규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뭐 하려고.”

“네가 상상하던 거.”

“그, 그게 뭔데.”

“네가 제일 잘 알지.”

하림은 동규의 잠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놀란 동규가 하림의 손을 잡았으나 하림이 가볍게 동규의 손을 쳐냈다. 하나씩 단추를 풀면 풀수록 뒤에 있는 동규의 다리가 난리가 났다는 게 느껴졌다. 하림은 단추를 빠르게 풀어헤치고 동규의 어깨선, 쇄골, 가슴을 천천히 매만졌다.

“아, 자, 잠깐만…….”

“네가 내 얼굴 만졌으니까 나도 좀 만진다.”

“그럼 너도 내 얼, 얼굴 만지면…… 아, 거기는…….”

하림이 동규의 가슴을 아래에서 위로 모아 살짝 잡았다. 양손 가득 동규의 가슴이 꽉 들어찼다. 동규는 팔로 눈을 가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까 한 발 빼고 왔는데도 아래에 힘이 들어가 죽을 것 같다. 잘못 했다간 발기한 게 하림의 엉덩이에 느껴질지도 몰랐다.

“오늘은 만지기만 할게.”

차가운 하림의 손이 서서히 움직이며 동규의 가슴을 주물렀다.

“가, 가슴만?”

“가슴도 그렇고.”

“다른 데도?”

“아마.”

깜짝 놀라 팔을 뗀 동규는 하림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아예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자극에 바짝 선 동규의 유두는 색이 붉어 눈에 계속 거슬렸지만 만졌다간 동규가 울기라도 할 것 같아 하림은 침만 삼키고 다음 기회로 넘겼다. 대신 동규의 가슴을 열심히 주무르고 두툼한 동규의 상체를 구석구석 훑었다.

평소에도 다른 사람보다 뜨거운 체온의 동규가 작정하고 자극받으니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하림의 손이 차가운 탓에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계속 이러다가는 차가운 제 손까지 동규의 체온에 감화되어 뜨겁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교복을 입어도 잘 보이던 건데, 너 진짜 몸 좋다.”

하림은 자꾸만 고이는 침을 삼켰다. 구릿빛 피부에 와인색에 가까운 예쁜 색의 붉은 유두를 달고 있는 게 시각적으로 엄청난 욕망을 자극했다. 꼭 누가 빨아 주기라도 한 것 같아 이상한 기분도 들었다.

“더어, 열심히 할게, 운동…….”

얼굴 가리고서도 할 말은 다 하는 동규 때문에 하림은 웃음이 터졌다. 하림의 웃음소리를 듣고 동규가 살짝 고개를 돌려 눈 한쪽만 보이게 손가락을 뗐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

“그, 아직 좀 우리 너무 빠른 것 같다는 생각이…… 아, 잠, 서하림, 아…….”

동규의 복근을 만지기 위해 하림이 몸을 더 뒤로 뺐다. 문제는 하림이 도착한 곳에 동규의 잔뜩 선 무언가가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동규는 하림의 엉덩이가 그 위에 닿자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우고 하림을 끌어안았다.

“……이제 그만하자.”

성욕을 참느라 가라앉은 목소리는 살짝 끝이 갈라졌다. 그 목소리에 하림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수축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고.

“왜.”

“나 진짜.”

“무서워서?”

“그것도 그거고 아…….”

동규가 하림을 안은 팔에 힘을 더 주었다. 열에 차 꿈틀거리는 성기가 진정되길 바라며 동규는 신음을 겨우 삼켰다.

“……아무튼 이제 그만해. 그만하자.”

“싫은데. 언제까지 초딩처럼 키스만 하고 손만 잡고 있어. 아, 김동규 힘 좀 풀어, 윽!”

아파하는 소리에 동규가 화들짝 놀라 하림을 풀어 주었다. 동규의 품에서 벗어난 하림은 동규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했다.

“뭐가 무서운데.”

“…….”

“말해 줘. 궁금해. 지금은 네 머릿속 안 읽히니까.”

다리 사이가 터질 것 같아 동규는 인상을 팍 쓰면서도 하림의 눈을 피하진 않았다. 언제까지고 기다려 주겠다는 얼굴에 동규는 작게 입을 열었다.

“뭐가 무서운지 몰라서 무서워.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내 예상보다 너무 좋아서…… 너무 좋으면 못 멈추면 어떡할지 싶고.”

“또.”

“내가 막…… 폭주하거나 널 아프게 하거나 나만 좋은, 좋을 짓하면 어떡할지 그것도 걱정되고…….”

이제는 거의 속삭이는 듯이 얘기하는 동규에게 하림은 입을 맞췄다. 동규도 하림의 입술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하림은 입술만 간질이며 입을 맞추다가 살짝 눈을 떴다.

“김동규. 입 벌려 봐.”

동규의 닫힌 눈이 천천히 뜨였다. 왜, 하는 눈동자일 줄 알았으나 동규의 눈동자는 한없이 가라앉아 안에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하림은 그 일렁이는 성욕을 발견하자마자 동규의 목을 끌어안고 다시 입을 맞췄다. 동규가 벌려 준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으며.

동규는 하림의 허리를 잡아 제 쪽으로 바짝 당겼다. 그러자 동규의 잘 짜인 배로 하림의 발기한 것이 느껴졌다.

하림은 동규의 혀와 입 안을 느리게 훑어갔다. 동규가 한 번씩 참지 못하겠는지 소리를 냈지만 그럴수록 하림의 몸도 달아올랐다. 이제 제 것도 잔뜩 서 동규에게 잘 느껴질 터였다. 하림은 살짝 허리를 움직여 동규의 배에 제 것이 문질러질 수 있도록 했다.

“흐으…….”

그러자 이제는 제 쪽에서도 신음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동규가 고개를 틀며 강하게 하림의 혀를 빨아올렸다. 침도 꼴깍 삼켰다. 순간 하림의 혀가 강한 자극을 받았다. 하림은 자기도 모르게 동규에게서 떨어졌다.

“……왜?”

동규는 멍한 얼굴로 하림의 입술만 바라본 채 하림을 따라 얼굴을 붙였다. 더, 더 해 줘. 그 말이 입 안에 감돌았지만 동규는 하림의 입술을 바라보며 입맛만 다셨다.

하림은 동규의 질문에 하고 싶은 말은 너무도 많았지만 고르고 골라 제일 건전한 대답을 내놓았다.

“너무 좋아서.”

“나도.”

하얀 얼굴에 열이 올라 뺨이 붉다. 하림은 숨을 고르며 무릎으로 섰다. 그리고 자길 올려다보고 있는 동규와 눈을 마주했다.

“너도 좋은 거면, 더 좋은 거…… 하고 싶은데.”

“해도 돼? 너무 한낮…….”

“밤에만 하란 법은 없지.”

하림은 속옷에 갇혀 있던 제 것을 꺼냈다. 동규가 두 눈을 가리고 부끄러워하며 보지도 못하고 있어 동규의 바지 안으로도 손을 넣었다. 하림이 잘 꺼낼 수 있도록 동규가 허리를 살짝 들어 주었다.

“하고는 싶었나 봐. 나보고 꺼내 달라고 허리 흔드는 거 봐.”

“당연, 아니, 허리는 안 흔들었어.”

하림이 다시 동규의 위로 앉았다. 발기한 두 사람의 것이 맞닿았다. 하림은 엄청난 크기의 동규의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으나 그것보다는 동규가 너무 부끄러워하니까,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 들어와 동규의 목을 끌어안았다.

“헉.”

그런데 동규가 한 손을 뻗어 하림의 것을 잡는 게 아닌가. 수줍어하는 얼굴과 달리 손은 대범하다 이건가. 하림에겐 할렐루야였다.

커다란 손이 하림의 것을 잡아 귀두를 엄지로 찬찬히 쓸었다. 하림이 작게 신음을 터트리며 떨었다. 다리 사이로 힘이 몰렸다.

“……봐도 돼?”

하림은 허락의 뜻으로 동규를 안고 있던 팔을 놓았다. 동규가 다리 한쪽을 세워 하림이 등을 기댈 수 있도록 해 주었지만 하림은 몸만 뗐을 뿐 몸을 바로 하고 동규의 어깨를 잡았다.

“너…… 되게 큰…….”

보지 않고 손으로만 느낀 두께나 길이가 상당하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직접 보니 예쁜 얼굴과는 조금 괴리감이 있는 크기였다. 아니, 당당한 성격이나 키가 큰 걸 생각하면 이 정도 크기가 충분히 납득이 된다고 해야 할지.

“너야말로 김동규 너 완전…….”

서로의 크기에 감탄을 하느라 할 말을 잃어버려 정적이 찾아왔다. 그걸 깨트린 건 하림이었다.

“……더워. 나도 위에 벗는다.”

“아니! 그러지 마.”

이 상황에 하림의 하얀 몸을 봤다가는 끝까지 갈지도 몰랐다. 동규는 잠옷 단추를 풀려는 하림의 손을 잡아 제 것을 쥐여 주었다.

“뭐, 입은 게 김동규 취향이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니 이런 것도 좋긴, 아니 그, 좋은…….”

하림은 동규의 것을 아래에서 위로 쭉 올렸다. 아직 차가운 하림의 손가락에 동규가 앓는 소리를 냈다. 하림은 동규의 반응이 좋아 아예 양손으로 동규의 것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동규는 하림의 것을 잡지도 못하고 끙끙거렸다.

“자, 잠깐만, 나 지금 싸, 쌀 것 같아, 으…….”

“안 돼. 같이해.”

하림은 동규의 것을 잡고 있던 한 손을 떼 동규의 손을 제 성기 위로 올렸다. 동규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림의 손이 느려지자 조금 전보다는 살 것 같았다. 쿠퍼액 때문에 조금 질척거렸고 하림의 손길이 좀 더 야해 빠지게 느껴졌으나 필사적으로 참는다면 참을 수는 있었다. 하림의 말처럼 같이 싸고 싶어서 동규는 주먹을 꾹 쥐었다.

“한 고비…… 넘겼다. 진짜로 쌀 뻔했어.”

길게 한숨을 쉰 동규가 하림의 것을 잡았다. 크기도 크지만 곧게 뻗어 색이 옅은 게 보기 좋았다.

“……너는 여기, 도 예쁘게 생겼다.”

“음, 지금 딱 좋다. 으…… 천천히…….”

하림의 말을 따라 천천히 하면서도 힘을 강하게 줬다. 동규는 손을 동글게 말아 하림의 것을 위아래로 치댔다. 하림은 동규의 위에 앉아 다른 사람의, 그것도 동규의 손에서 펼쳐지는 쾌락에 빠져 어쩔 줄을 몰랐다. 동규의 손목을 잡았다가, 어깨를 잡았다가, 거의 벗겨진 동규의 잠옷 상의를 잡았다 놓으며 빨리 한 번 사정이라도 했으면 하고 바랐다. 동규의 것은 자극이 없어도 당장 사정할 것처럼 힘줄이 돋아 꺼떡거렸다.

“하아, 흐, 하으, 아, 기, 김동규…….”

“좋아 죽으려고…… 그러네.”

“응, 좋아, 으으, 그러면 이게, 내가 참았, 아…….”

동규는 하림의 요도 구멍을 세게 눌렀다. 벌렁거리는 구멍을 손가락으로 강하게 문지르자 하림이 뒤로 넘어갔다.

“손 놔…….”

“싫은데. 지금 내 손가락 아래에서 너 여기 움찔거리는 거 느껴지는 거…… 되게 꼴린다.”

“아 미친.”

손가락 바로 아래까지 차올라 있는 것만 같은 정액에 하림은 사정을 하고 싶어 몸부림을 쳤다. 동규는 점점 찐득해지는 요도 구멍을 일부러 열어 주지는 않고 계속 압박하며 문질렀다. 이러다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동규는 하림의 요도와 귀두를 괴롭혔다.

사정감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민감해진 귀두를 자극하는 게 얼마나 커다란 자극인지는 동규가 제일 잘 알았다. 하림은 터져 나오는 신음을 숨기기 위해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걸 보고 동규는 제 것을 빠르게 흔들었고, 하림의 것을 터질 것처럼 쥐면서 사정했다.

“헉, 흣, 하아…….”

발갛게 달아오른 하림이 사정을 하지 못해 괴로워하면서도 갑자기 사정한 동규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동규는 제 것을 마저 흔들면서도 눈물로 젖은 하림에게 다가가가 눈가에 입을 맞췄다.

“하, 너 손에…….”

하림은 숨을 꼴깍 삼키고 손을 뗐다. 도대체 어디서 뭐가 꼴린 거지.

“손?”

“내 거 조금 묻어 있었는데, 아, 그걸 입에…….”

말을 하면 할수록 동규가 괴로워했다. 하림은 동규의 어깨를 때리며 동규를 떨어트렸다. 배를 흥건하게 적신 동규의 정액은 양이 엄청났다.

“미쳤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하림은 동규를 뒤로 밀어 침대 헤드에 기대게 했다. 그리고 동규의 목을 잡고 끌어안아 딱 붙었다. 사정을 하고도 여전히 흉흉한 크기의 동규의 것에 하림의 것이 닿았다. 동규의 것은 정액 때문에 미끌미끌했고 하림의 것은 그의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뽀송했다. 거기다 동규가 막아 사정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정하지 못한 정액이 가득 들어차 힘줄이 솟고 단단했다.

“이렇게…….”

하림은 허리를 느리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사정을 막 마쳐 예민해진 동규의 것을 하림의 딱딱한 성기가 적당히 압박하며 움직이자 동규는 손이 덜덜 떨려왔다.

“잠, 자, 이건 이거는 아, 하, 하림아, 나…….”

“나는, 아직, 이야.”

동규는 하림의 것에서 손을 떼고 침대를 굴러다니던 이불만 붙잡았다. 대화 없이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동규는 자꾸만 고이는 침을 삼키는 것도 버거웠다. 하림이 사정을 할 것 같은지 소리를 터트리기도 했지만 입술을 깨물어 가며 꾹 참았다.

그냥 시원하게 사정하면 괴로움에서 탈출할 수 있는 걸 꾸역꾸역 붙잡고 있는 이유는, 지금의 쾌락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정하기 직전 잔뜩 발기한 만큼 이곳저곳 쑤시기 좋았다. 동규의 배, 성기 같은 곳들. 탄탄한 동규의 복근에 성기가 문질러질 땐 하림은 신음을 참지 못하고 쏟아냈다.

동규는 차라리 빨리 하림이 사정하고 떨어졌으면 하고 바랐다. 시간이 길어지자 동규의 것이 다시 힘을 받아 발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또 섰어.”

“그럼 같이, 으, 하아…….”

오래 참은 하림이 말을 잇지 못하고 사정을 터트렸다. 오래 참았다 사정해서인지, 하림의 정액이 동규의 가슴을 넘어 목까지 튀어 버렸다. 동규는 하림의 정액 단 한 방울마저 제 몸 어디로 튀었는지 알 수 있었다. 목 언저리에 뭉텅이로 묻은 정액이 가슴을 따라 흐르기 시작할 때, 하림이 동규를 끌어안았다. 하림이 헐떡이는 숨소리가 동규의 오른쪽 귓가에 잔뜩 흩어졌다. 만족스러운지 동규의 목에 입을 맞추느라 쪽쪽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동규는 하림이 숨을 고를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하림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뭐, 뭐 하게.”

“나도 아직…….”

지쳐 늘어진 하림의 허리를 안은 동규가 힘으로 하림을 움직였다. 딱 제 성기를 하림의 것으로 비빌 수 있을 만큼만 하림을 들었다 내려놓으며 동규는 빠르게 움직였다. 이거는 이거대로 자극이 엄청나 하림도 사정한 제 것이 꾸물거리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아, 미친…….”

동규가 힘으로 하림을 움직이는 것과 더불어, 하림도 허벅지와 허리에 힘을 주었다. 이미 두 사람의 배와 잠옷은 정액으로 엉망진창이었고 동시에 두 사람 몫의 정액으로 미끌거린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좀 전보다 움직이는 게 훨씬 수월해졌고 미끌거리는 성기 두 개가 정액 때문에 미끄러져 사방팔방을 찔러 댔다.

차라리 하림의 잠옷을 벗길 걸 그랬나. 한쪽은 동규의 맨살에 닿았으나 다른 쪽은 하림의 잠옷에 닿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부드러운 천이 정액에 젖어 축축해지면서 조금 까끌까끌해진 게 컸다. 지금 두 사람에게는 얇은 잠옷의 촉감까지 전부 선정적이고 자극이었다.

동규는 하림의 잠옷 위를 안고 있던 팔을 잠옷 안으로 넣어 하림의 맨살을 안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하림의 살은 땀 때문인지 조금 미끌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찰싹 달라붙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동규는 하림의 속살을 만진 것에 더 흥분해 하림을 더 끌어안고 사정했다. 두 번째 사정인데도 양이 상당했다. 하림도 동규의 움직임이 멎은 동시에 사정했다. 하림은 동규를 안고 있는 손을 풀지 않고 좀 더 힘 있게 동규를 끌어안았다.

“읏, 서하림…….”

사정 직후라 예민해진 성기 두 개가 서로의 배에 눌리며 마저 남은 정액을 꿀렁 토해 냈다.

“무섭다는, 새끼가 아주.”

하림은 동규의 귀에 입술을 바짝 붙여 낮게 속삭였다. 동규는 오른쪽 어깨를 움찔거리며 너무 좋아 소름이 돋은 목을 뺐다.

“할 건 다 해.”

“아, 아직 무서운 건 시작도…….”

“누워 봐.”

속삭이는 목소리에 동규는 몸을 아래로 쭉 내려 누웠다. 하림은 여전히 동규의 아랫배 위였다.

“음.”

하림은 연속으로 두 번이나 사정해 몸이 흐물거렸지만 지금이 아니면 못 할 것 같은 생각에 용기를 냈다. 우선 손가락 하나를 들어 정액으로 엉망진창이 된 동규의 배를 쓸었다. 손가락이 닿자마자 긴장했는지, 근육이 또렷하게 갈라지며 보기 좋게 섰다.

“일단 좀 닦을까.”

하림이 침대에서 내려와 침대 옆 서랍에서 물티슈를 꺼내 왔다.

“아까운데 안 닦으면…….”

“더 좋은 거 해 줄게.”

하림이 동규의 아랫배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더 좋은 거면…… 또 나한테 싸 줄 거야?”

“아, 김동규 말 좀 제발 예쁘게 하면 안 될까.”

“예……쁘게?”

“너무 좀 그, 너무 야한 그런, 그러지는 말고.”

“그럼…… 나한테 또 사정해 줄 거야?”

그거나 이거나 하림에겐 비슷했지만 눈을 반짝이는 동규에게 싫다고 했다간 다른 단어가 튀어나올 것 같아 그냥 물티슈만 열심히 뽑았다. 그리고 거칠게 동규의 배를 닦았다.

“응? 사정해 줄 거냐고. 또 정액을 내 몸에다.”

“김동규.”

“응.”

“갑자기 이상해졌어.”

동규는 빨개진 하림의 귀를 발견했다. 서로의 고추 내놓고 볼 건 다 본 사이에 잘만 들이대더니 이런 곳에서 부끄러워하는 하림이 신기하고 귀여웠다.

“……갑자기가 아닌데.”

하림이 동규의 배를 닦은 물티슈를 바닥에 던졌다. 동규는 몸을 살짝 세워 새로 물티슈 하나를 뽑아 하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하림의 손을 꼼꼼하게 닦기 시작했다.

“나 원래 이런 애야.”

물티슈가 하림의 손가락 사이를 훑고 손바닥도, 손끝도 훑으며 정액을 훔쳐 갔다. 하림은 무뚝뚝하게 제 손을 닦아 주는 동규를 보며 목이 말랐다. 전에 김동규 손 씻어 줄 때 김동규도 이런 기분이었나. 온몸이 배배 꼬일 것 같고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손가락이 성감대인가 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들고.

“내가 널 보면서 무슨 생각 하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너는 몰라. 내 머릿속은 온통 모자이크 밭에 삐 소리밖에 없다고. 예쁜 말은 평소에 많이 해 줄게. 이런 짓 할 때는 그냥 솔직하게 느끼는 대로 말하고 싶어.”

“……부끄러워.”

“그렇긴 해. 혹시 싫어? 좀 대놓고 그런 단어 쓰고 하는 거?”

동규는 하림의 손에 깍지를 꼈다. 아, 손잡기 전에 내 손도 닦았어야 했는데 깜빡했다. 하림의 손이 다시 더러워졌다.

“네가 하는 건 괜찮아. 괜찮긴 한데…….”

“그럼 정 듣기 그럴 때 알려 줘. 입 다물게.”

“…….”

“그럼 나 다시 누울까? 누워?”

하림은 윗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꼿꼿이 선 하림의 것을 못 본 척하고 동규는 누웠다. 근육으로 훌륭하게 짜인 몸이 시야에 담기자 혀 아래에 고인 침을 한 번 크게 삼키고, 하림은 동규의 가슴 아래로 바짝 올라왔다. 동규는 양손을 머리 뒤에 넣고 고개를 조금 들어 올렸다.

“고백할 거 있어.”

“뭔데.”

“내 꿈에…… 너 많이 나왔었는데.”

“나는 네가 매일매일 나왔어. 엄청 야했는데.”

“나도. 근데, 꿈에서 했던 것 중에 이거 너무 하고 싶었거든. 지금 못 했다간 오늘 밤 꿈에 또 나올 것 같아. 사실…… 꿈에선 여러 번 했어.”

하림이 제 성기를 잡고 입술을 물었다. 동규도 괜히 긴장되어 혀로 입술을 한 번 축였다. 하림은 제 성기를 잡고 살짝 일어났다. 그리고, 동규의 가슴에 제 것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하림이 미간을 찌푸리며 작게 욕을 뱉었다. 동규는 하림의 꿈도 만만찮았다는 걸 깨닫고 웃음이 삐져나왔다.

“하림아, 왜 이렇게 소심하게 움직여.”

“그냥 여기…… 닿은 것만 해도 좋아서.”

“가슴에?”

“으응.”

“여기도 건드려 주면 안 돼?”

동규는 손가락으로 제 유두를 가리켰다. 하림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지만 아닌 척 숨겼다. 김동규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으면 아까 그냥 처음에 가슴 만질 때 그냥 만져 줄걸. 순진한 얼굴을 하고서 안 된다고 그렇게 내빼더니 이러는 법이 어디 있나.

“돼.”

하림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그리고 귀두로 동규의 오른쪽 유두를 문질렀다. 흥분했는지 도톰한 유두가 딱딱하게 서 귀두에 선연하게 느껴졌다. 딱딱해진 작은 살덩이에 귀두를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하림은 성기 끝이 가려웠다.

그래서 유두 주변의 유륜까지 넓게 훑으며 움직였다. 동규는 하림이 제 위에서 흥분해 어쩔 줄 모르는 것을 천천히 감상했다. 손 뻗어서 자위하면 딱일 것 같은데 하림이 앉아 있어 그건 불가능했다. 성기로 피가 쏠리는 느낌이 엄청났지만 급하진 않았다. 하림이 제 가슴에 신나게 장난질 치며 사정한 뒤에 해도 괜찮았다.

“꿈에서 나랑…… 또 뭐 했어.”

“음, 하으…… 아, 으…….”

“서하림, 말해 봐. 나는 너무 쓰레기 같, 아서 말 못, 해.”

가슴에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발발 떨며 이렇게 느끼는 하림인데, 똑같이 하림의 유두를 괴롭히거나 아래를 빨아 주거나 또는 끝까지 해 버려서 박아 넣으면 하림이 얼마나 느낄까. 이미 꿈속에서 닳고 닳을 정도로 하림과 섹스를 해 본 동규였지만 꿈에서 한 백 번의 섹스보다 하림과 이렇게 진짜로 맨살이 닿는 게 더 끝내주게 좋았다. 끝까지 하지도 않았고 그저 서로 성기를 비비며 가슴을 내놓은 게 고작이더라도, 꿈에서 끝까지 간 섹스보다 훨씬 흥분됐다.

이미 사정감이 가득 차 하림의 것에서는 정액이 조금씩 울컥거리며 나왔지만 하림이 있는 힘껏 참느라 사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규는 하림이 괴로워하는 게 보기 싫어 하림의 것을 잡아 귀두를 세게 자극했다.

“아, 잠깐만, 손 놔.”

“하림아. 그냥 가슴에 싸고 계속 비벼 줘. 어차피 싸고 나서 가슴에 문질러도 기분 좋을 걸. 원래 싸고 나면 존나 예민해지잖아. 일단 사정하고 정액을 내 가슴에 다 펴 바른다는 느낌으로 여운을 즐기면 될 것 같은데.”

“아, 이름, 이름 왜 이럴 때, 흐으…….”

거칠게 숨을 내쉬며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는 하림이 빠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동규는 하림의 구멍을 막고 있던 손을 놓았다. 바로 정액이 튀어나와 가슴에 뿌려지고 동규의 얼굴까지 튀었다.

“와, 엄청 참았나 봐. 처음 싸는 것도 아닌데.”

“하아…… 그, 싼다는 말 좀.”

“응.”

동규의 말을 따라 하림은 숨을 고르며 천천히 성기를 움직였다. 정액을 가슴에 펴 바른다는 느낌으로. 그런데 지치는 것도 지치는 건데 영 답답해 하림은 그냥 다리에 힘을 풀고 동규의 위에 털썩 앉았다. 손을 뻗어 동규의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손바닥에 묻어나는 정액을 동규의 유두에 묻혀 꾹꾹 눌렀다가, 살짝 꼬집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동규가 인상을 찡그리며 작게 소리를 냈다.

“바디 오일 사자.”

“읏, 왜…….”

“그냥.”

“아, 서하림, 잠깐, 손 좀 천천히…….”

정액으로 반들거리는 가슴은 굉장히 선정적이어서, 하림은 꼭 바디 오일을 사서 이런 짓 할 때마다 동규 몸에 잔뜩 뿌려 놓고 이곳저곳 만지겠노라 다짐했다. 정액도 좋은데 냄새도 별로고 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컷 동규의 가슴을 만지던 하림은 동규가 다급하게 비켜 달라고 부탁해 동규에게서 내려왔다. 그리고 옆에서 동규가 자기 것을 잡고 자위하는 것을 지켜봤다. 동규는 보지 말라고 하면서도 터질 것 같은 제 것을 위아래로 흔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거친 숨소리에 민망해진 하림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물티슈로 제 손을 닦고 성기도 닦았다. 등 뒤로 들려오는 동규의 소리에 하림은 또 다리 사이로 힘이 들어가 바지를 정리하고 씻고 온다며 방을 빠져나왔다.

욕실에 도착한 하림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러면서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자꾸만 솟는 광대를 연신 눌렀다. 지금까지 동규가 그렇게 밀어냈던 게 자기랑 뭔가를 더 하는 게 싫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 제일 좋았다.

하림은 표정을 갈무리하고 벌떡 일어났다. 빨리 씻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 동규에게 뽀뽀해 달라고 해야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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