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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비밀번호 뭐였지.”
학생들이 생기부나 성적 확인을 위해 이용하는 사이트를 가입한 건 작년이었다. 학교에서 가입하라고 하니까 하긴 했는데 가입해 놓고 로그인을 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공부에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생기부도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닌 데다가, 2월 마지막 날이면 뜨는 새 학기 반 배정 역시 길어 봤자 3일 뒤에 개학하면 어련히 알게 될 걸 유난 떠는 것 같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너 몇 반이야?〉
[나 6반임〉
고등학교 올라가면 하림과 같은 반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다른 반이 되더라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려고 그랬다. 지금까지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어도 사이는 늘 좋았고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하림에게 메시지가 온 건 한 시간 전이었다. 한 시간은 많은 학생들이 사이트에 로그인을 하고 자기가 무슨 반인지 서로서로 공유를 해서 이미 세문고 1학년 1반부터 13반까지 명단이 작성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몰라]
[뭐야 답장 왜이렇게 늦어〉
〈낮잠]
[야 빨리 너 몇반이야〉
〈몰라]
[왜 몰라?〉
〈안 알아봤어]
[?? 왜?? 빨리 나이스 ㄱㄱ〉
[우리반에 나랑 친한애들 세명이나 같은 반 됐다〉
〈귀찮아]
[야ㅑㅑㅑ 빨리 확인해봐〉
귀찮음과 유난 떠는 것 같은 민망함을 무릅쓰고 나이스에 로그인을 하려고 했지만 동규는 비밀번호가 영 생각이 나지 않았다. 대충 아무거나 생각나는 걸 쳤다. 틀렸고, 비슷한 걸 또 입력하고. 이번에도 틀렸다. 이제 한 번만 더 틀리면 비밀번호 찾기라는 귀찮은 과정을 밟아야 했다. 마지막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동규는 도대체 비밀번호가 뭐였는지 기억을 더듬을 수 있을 만큼 더듬었다.
“더 이상 할 게…….”
이럴 줄 알았으면 저번 기말고사 때 성적이라도 확인해 볼걸. 안 봐도 망한 점수라 성적 확인을 할 필요성을 못 느꼈으나 중학교 생활 유종의 미를 거두는 셈치고 얼마나 못 봤는지를 봤었어야 했다.
동규는 잠시 이마를 톡톡 두드리다 다른 곳에서 쓰는 비밀번호를 쳤다. 비밀번호가 틀렸다며 본인 인증을 받으라는 창으로 연결됐다. 동규는 해탈한 얼굴로 창을 꺼 버렸다. 아 됐어, 안 해.
[같은반 되면 완전 재밌겠다〉
[수업시간에 맨날 너랑 쪽지로 수다떨듯ㅋㅋㅋ〉
비밀번호 까먹어서 찾기 귀찮다고 한창 쓰고 있던 동규보다 하림의 메시지가 한 발 더 빨랐다. 동규는 하림의 메시지를 세 번쯤 더 읽고 다시 인터넷 창을 켰다. 한숨과 함께 비밀번호 찾기를 눌러 본인 인증을 위한 길고 긴 과정을 완수했다.
〈나도 6반이야]
[헐 진짜?〉
[대박〉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웃는 거지.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물어볼 수도 없어 동규는 아무 말도 치지 못하고 하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좋다〉
“…….”
[같은반 돼서〉
[ㅋㅋㅋㅋㅋㅋㅋ〉
하림이 웃을 때면 얼마나 예쁜지를 떠올렸다. 지금도 진짜로 웃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커다란 눈을 반쯤 접고 모양 좋은 입술이 벌어지면서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올 텐데. 동규는 슬며시 미소 짓고 답장했다.
〈나도]
짧은 단어였지만 어쩐지 간지러운 기분이 들어 휴대폰을 잠그고 베개 아래로 숨겼다. 하림은 동규가 보낸 ‘나도’라는 메시지를 바로 읽었다. 동규는 하림이 제 말에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별로 보고 싶지가 않았다. 빨리 개학했으면 좋겠다. 내일 있을 대형 백일장보다 그 다음 날 개학해서 학교 갈 게 더 긴장되고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