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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20화 (335/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 20화>

*   *   *

“교주님.”

“야, 근데 주청아.”

“예?”

“네가 지금 천마신교주잖아? 근데 나를 교주라고 부르면 다른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을까?”

“그럼 뭐라고 부릅니까?”

“흠. 애매하군. 나이로 하자니 내가 더 오래 살았으나, 출생연도는 네가 앞서서 혼선이 있고.”

“생존대주는 어떻습니까?”

“생존대에 사망자가 너무 많았어. 이제 와서 슬퍼하긴 너무 먼 일이지만, 아쉬운 일이지.”

“그럼 멸마대주?”

“정도맹주가 만든 직책이잖아. 싫어.”

“그럼 뭐, 지존이라고 불러 드릴까요?”

“으. 리니지냐?”

“……?”

잠시 고민하던 진유성이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내가 그동안 가져 본 직책 중 가장 그립고, 기뻤던 게 있구나.”

“뭡니까?”

“왕자님.”

고려의 왕자였던 시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기분 좋았던 기억들만 있다.

부왕도, 어마마마도, 형님들도 모두 자신에게 잘해 줬었다.

“……완댜님.”

“똑바로 불러라.”

“그냥 한판 뜨시죠. 차마 그렇게는 못 부르겠습니다.”

“어쭈?”

진유성이 기세를 높였지만, 신주청은 상림과 다르다.

상림도 현 중원 기준으로 무림백등 안에 드는 고수지만, 진유성 입장에서는 무림이등부터 무림만등까지 다 비슷하다.

유일하게 다른 게 일등인 신주청이었다.

신주청은 진유성의 업을 일부나마 짊어졌고, 가장 많은 인과율에 개입했기에 진유성과 비례해서 강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비례라고는 해 봐야 만분의 일이나 되겠지만, 그래도 신주청을 혼내 주려면 상당히 귀찮았다.

결국 진유성은 한 번 봐주기로 했다.

“근데 왜 불렀냐?”

“상 소저에게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겁니까?”

“거짓말은 아닌데?”

“그게 진실이었습니까?”

“어느 정도는?”

진유성이 상소윤에게 주혜미, 아니 공손혜미를 만나러 가라고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천계를 봉인해야 한다.

얼마 전에 한 번 청소를 하긴 했지만,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기 위해선 천계와 중원을 연결하는 데 조건을 거는 게 좋다.

물론 조건만 충족하면 개나 소나 천계와 연결될 수 있다는 단점은 있었으나, 그 조건을 아주 어렵게 걸면 된다.

진유성이 생각한 조건이 팔찌 ‘칠성’이었다.

북두칠성을 닮은 일곱 가지 보석.

그걸 다 모으면 천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이렇게 말하니 드래곤볼 같군.’

이게 가능한 건, 칠성에 진유성의 감정과 인과가 꽤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백두산에 있는 호수에 던지면, 아마 그 누구도 천계와 연결되지 못할 거다.”

“천지 말씀이군요.”

“여기서도 명칭이 그거냐?”

“아뇨. 저도 여기서 쓰는 명칭은 모르겠습니다. 백두산도 장백산이라고 부르니까요.”

“아무튼 천계의 봉인은 거짓말이 아니야. 만에 하나쯤은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거니까.”

“그럼 두 번째 이유는요?”

“그건……. 백만에 하나쯤 발생할 수 있는 일?”

“그래도 영 없는 소리는 아니었군요? 생각보다 확률이 높네요.”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느니라.”

두 번째 이유는 상소윤 입장에서 좀 황당했을 수도 있었다.

“공손혜미와 함께 백두산의 천지로 향하며…….”

“향하며?”

“유명해져라.”

유명해지라고 했으니까.

*   *   *

중원 전체를 하나의 소문이 강타했다.

바로, 공손세가의 여식 공손혜미가 장보도(藏宝图 : 보물지도)를 들고 장백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또한 그녀는 이미 장보도를 통해 칠성이란 귀물을 얻었는데, 그 덕에 어린 나이에 3갑자가 넘는 내공을 얻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엔 그저 뜬소문으로 여겼다.

그런 게 다 망해 가는 공손세가에서 나올 리가 없었고, 만약 있었다면 두 아들이 강건했을 때 도모할 일이었다.

물론 공손혜미가 최근에 장보도를 입수했을 가능성도 있었으나, 그럴 가능성에 뛰어들 이들은 적었다.

하지만 금방 소문에 기름을 붓는 일들이 벌어졌다.

정체 모를 이들이 공손혜미를 추적하고 있다는 정황이 밝혀졌고, 또다른 세력이 움직였다.

바로, 천마신교의 교병들이었다.

천마신교의 교병들은 교주의 명령이 아니라면 자금성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

그렇다는 건, 저 움직임이 당대의 천마신교주 신주청의 의지라는 것.

이때쯤부터 진지한 움직임을 취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 이들이 더 많은 상황.

그 상황을 뒤집은 것은 공손혜미와 함께하는 여고수의 존재였다.

정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여고수가 천마신교의 교병들이 막고 있는 길을 뚫어 버린 것이었다.

정확한 정황이나, 구체적인 목격담은 없었지만, 이는 천마신교 쪽에서 나온 정확한 정보였다.

천마신교의 교병은 절대 만만한 이들이 아니다.

어지간한 구대문파의 일대제자들과 견주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 단신으로 뚫어 버리는 고수가 함께한다?

이는 장보도가 실존한다는 증거와도 같았다.

전 무림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   *

“엄마아아아!”

그 시각, 전 무림을 꿈틀거리게 만든 상소윤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무서웠다.

진유성에게 무공을 배웠지만, 누군가 자신한테 칼을 휘두르는 상황은 처음이다.

게다가 칼에는 뭔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데, 아무래도…….

사람의 살점인 거 같았다.

“꺄아아아아악!”

퍽!

비명을 지르며 휘두른 손에 검은색 복면을 쓴 이가 나동그라진다.

“……!”

장내가 고요해진다.

아무리 천마신교가 태평성대를 이룩했다지만, 어디에나 악인은 존재하는 법.

특히 지금까지 암약 중인 악인들은 한 번쯤 천마신교의 추적에서 도망친 고수들이다.

그리고 방금 상소윤의 손에 나동그라진 수라마도는 그런 이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였다.

하지만 오히려 당황한 것은 수라마도였다.

정체모를 년에게 일장을 얻어맞는 순간, 죽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어도 암경에 적중당해 사경을 헤매거나.

근데 이건…….

‘그냥 때린 거잖아?’

그냥 손을 휘둘러서 때린 거다.

아주 빠르고 강해서 아프긴 했지만, 견딜 만했다.

“이게 무슨…….”

“일어나지 맛!”

기겁한 상소윤이 일어나려는 수라마도를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다.

퍽퍽!

아무리 내가기공이 실려 있지 않더라도 이 정도 속도와 힘으로 맞으면 몹시 아프다.

그걸 많이 맞으면?

기절한다.

격투기 경기에서 나오는 KO 같은 거다.

수라마도가 그렇게 쓰러지자, 상소윤이 공손혜미와 이이명에게 뛰어왔다.

“우리 도망쳐요!”

공손혜미는 잠시 가치관에 혼란이 왔다.

적의 수장을 신나게 두들겨 팬 다음에 떠나는 건 도망이 아니지 않나?

하지만 어느새 상소윤의 손에 붙잡혀 멀어지고 있으니, 별수 없었다.

*   *   *

장백산으로 향하는 길은 멀었다.

진유성이야 거리의 제약 없이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었지만, 상소윤은 아니었으니까 두 발로 뛰는 수밖에.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점차 추격자들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따돌렸을까요?”

상소윤은 그렇게 말했지만, 공손혜미의 생각에는 아니었다.

추격자들은 추격을 포기한 게 아니라, 목적지로 먼저 향한 거다.

이렇게 각개격파 당하느니 장백산으로 먼저 가 지키는 쪽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전 중원에 장보도가 가리키는 곳이 장백산이라고 소문이 났으니까.

하지만 어찌됐든 한숨 돌릴 수 있었고, 미뤄 놓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럼 저희가 나이가 같군요.”

“그, 말을 놓을까요?”

“어찌 은인에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어……. 네.”

“하지만 궁금합니다. 어찌하여 저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 저번에 만난 남자 있죠? 내공 준 사람. 내가 그 사람 아내에요.”

“아…….”

공손혜미는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스치듯 만났던 남자를 떠올렸다.

어딘지 가슴에 아련해지지만, 참아 냈다.

눈앞에 있는 여인이 아내라면 상념을 가지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럼 부부가 저희를 도와준다는 이야기인데,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옛날에, 그러니까 그 사람이 생각보다 나이가 많거든요? 옛날에 그쪽 조상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서요.”

“그럼 칠성도…….”

“그쵸. 그때 조상이 준 거죠. 이게 다 조상님 덕분이라니까요?”

공손혜미가 주혜미의 환생이니 완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저는 천마신교주에게 귀물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 돈으로 가문을 세워야 합니다. 한데, 이걸 봉인해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상황이 좀 바뀌어서 그런데, 내가 그 값은 쳐주라고 할게요.”

“예?”

“천마신교주 아저씨랑 좀 친해서 그 정도는 할 수 있거든요? 애초에 봉인도 천마신교주도 동의한 사안이라서.”

공손혜미는 예의상 더 묻진 않았지만, 도무지 눈앞의 여인이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성을 살 수 있는 귀물의 값어치를 천마신교주에게 청구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작금의 지존을 아저씨라고 부르며?

“그럼 돌아갈까요?”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노숙 장소를 벗어난 상태였다.

자리로 돌아가니 이이명이 취침 준비를 해 놓은 상황이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먼저 불침번을 서시죠. 제가 중간 번에 서겠습니다.”

원래 불침번은 초번과 말번이 편하고, 잠이 끊기는 중간번이 제일 힘들다.

이 단순한 상식을 얼마 전에 알게 된 상소윤이 손을 들었다.

“제가 제일 멀쩡하니까 중간번에 설게요.”

그렇게 초번을 공손혜미가 섰지만, 상소윤은 잠이 오지 않았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처음에는 공손혜미가 주혜미의 환생이라는 걸 알고 묘한 질투를 느꼈지만, 이내 그런 감정은 없어졌다.

공손혜미는 전생 따위를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이 절박하고, 현재에 절실했다.

상소윤 입장에서는 본인이 죽을 위험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공손혜미는 아니니까.

그러면서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같은 또래 같지가 않았다.

이럴 때는 좋은 방법이 있다.

“저기요.”

“안 주무십니까? 좀 이따 번을 서야 하는데…….”

“잠도 안 오는데 우리 이야기나 할까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모르십니까?”

“잘 몰라요. 그냥 가서 도와주라는 말만 들었어요.”

공손혜미는 주저했지만, 은인의 부탁이라고 생각했는지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소윤은 공손혜미의 이야기를 들었고…….

“왜, 왜 우십니까?”

“너무 불쌍하잖아요!”

“소리 지르지 마십시오. 밤에는 소리가 멀리 퍼져 나갑니다.”

“진유성 이 나쁜 자식…….”

이런 귀한 물건을 줬으면 관리감독을 해야 할 게 아닌가?

게다가 내공만 주고 땡인가?

무공도 좀 가르쳐 주고, 천마신교에 일자리도 좀 만들어 주고, 그래야지.

물론 관리감독을 하다가 자신에게 들켜서 이 지경이 됐다는 건 까먹고 있는 상소윤이었다.

“두 배로 받아 줄게.”

“두 배요?”

“아니, 그 팔찌로 성을 하나 살 수 있다며. 내가 두 개 살 돈을 얻어 줄게.”

신주청에게 절반, 진유성에게 절반을 청구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리 어렵진 않았다.

공손혜미는 상소윤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가문의 세가 기울고 동정하거나, 멸시하는 이들만 만나왔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다.

물론 공감과 위로를 연기하는 이들은 있었으나, 상소윤이라는 여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은인께서 아까 하셨던 말씀은 유효합니까?”

“응? 무슨 말?”

“말을 놓아도 된다고…….”

“당연하지!”

상소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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