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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19화 (334/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 19화>

*   *   *

누군가에게 공손세가가 어떤 곳이냐고 물으면 나올 대답은 간단했다.

한때는 모용세가와 함께 요녕성을 지배하던 양대 가문이었으나, 정마대전 이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곳.

최고수였던 전대 가주가 정마대전에서 허망하게 죽고,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현 가주는 무공에 재능이 없어 무공을 잃어버린 쭉정이 세가.

가주의 아들들이 무공을 되찾으려 절치부심했건만, 전부 주화입마에 걸린 재수가 없는 세가.

아마 이런 말들이 나올 것이었다.

타인에 대해 떠들기는 쉽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였고, 그것은 공손혜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본디 공손혜미는 무공에 뜻이 없었다.

몇 대째 남자만 태어나던 공손가에 70년 만에 태어난 여아(女兒)라서 금이야 옥이야 자랐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그녀의 오라비들은 전부 무공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었고, 아버지는 지병을 달고 산다.

이 가문을 책임질 수 있는 직계혈통이 그녀밖에 없는 것이었다.

공손혜미는 그때부터 무공을 익히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녀에게는 큰 재능이 있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단숨에 공손검법의 형과 식을 깨우쳤으며, 무와 공의 이치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언제나 일천한 내공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는데…….

어느 날,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을 돌려주러 왔다.”

“돌려준다는 것은, 본래 이것이 공손세가의 것이었다는 겁니까?”

“아니. 네 것이었다.”

“저는 이런 귀물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이 팔찌의 이름은 칠성(七星)으로, 네가 북두칠성을 본따서 만들었고, 나에게 선물해 준 것이다.”

“뭔가 착오가 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공손세가의 공손혜미라고 합니다.”

“그래. 공손혜미.”

웬 남자가 나타나 그녀에게 귀물을 건넨 것이었다.

그 남자는 어딘지 슬퍼 보였고, 또한 홀가분해 보였다.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으나, 잊어버리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고수였다.

이윽고 남자는 그녀의 손목에 직접 칠성이라는 귀물을 채워 주었다.

그러자 눈물이 흘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에 잠식당한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던 남자가 말했다.

“내 아주 오랫동안 네 얼굴을 그려 왔으나, 더는 그러지 않을 것 같구나.”

“그동안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느니라.”

한여름 밤의 꿈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결단코 꿈은 아니었다.

그녀의 단전에 3갑자가 넘는 내공이 채워져 있었으니까.

공손혜미는 며칠 동안 그날의 일에 대해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이 가슴이 먹먹할 뿐.

그래서 그녀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부족했던 내공이 채워지자, 공손혜미는 젊은 고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안쓰러움을 담아, 혹은 조롱을 담아 부르던 공손세가라는 이름에 ‘만약’이 붙기 시작했다.

만약, 공손혜미가 요녕성에 이름을 떨치는 고수로 성장할 수 있다면.

만약, 공손혜미가 가주직에 올라 세가의 쇠락을 수습할 수 있다면.

공손세가가 반전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말들은 악재만 가득하고, 희소식이 없던 공손세가에게 희망의 끈과도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희망의 끈은, 또 다른 누군가의 탐욕의 끈과도 맞닿아 있었다.

“어떻게 공손혜미가 갑자기 고수가 된 거지?”

“공손가에 숨겨 놓은 영약이라도 있었나보지, 뭐.”

“얼마 전 공손혜미에게 제압당해 정도맹에 넘겨진 탈명추가 그랬다던데?”

“뭐라고?”

“기연을 얻은 게 확실하다고. 그렇지 않으면 2갑자에 육박하는 자신의 내가기공을 감당했을 리 없다고.”

“탈명추라고 해 봤자, 길림성을 배회하던 범죄자가 아닌가? 2갑자는 무슨…….”

“탈명추가 파면은 당했어도, 길림성을 지배하는 장백파의 장제자였다고.”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진실과 거짓이 교묘히 섞였다.

칠성(七星).

공손혜미가 처음 본 순간부터 그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던 귀물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소문은 진실과 달랐다.

공손혜미가 영물과 신수의 내단으로 만든 팔찌를 얻었고, 그것을 품고 잔다고.

그래서 내공이 급증했다고.

공손세가의 사람들은 저잣거리에서 들려온 소문을 들었을 때, 대수롭지 않아 했다.

“혜미가 정진하니 사람들의 입방아에도 오르는구나.”

“원래 주머니를 찢는 송곳에는 시선이 가기 마련 아닙니까.”

명성과 가세는 비례하는 법이니,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공손혜미의 생각은 달랐다.

본디 소문은 본인에게 가장 늦게 들려오기 마련이고, 이 정도 소문이라면 누군가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공손혜미는 과감하게 선택했다.

“직접 팔려고 하면 큰 화를 부를 것이다. 하나의 성을 살 수 있는 귀물이니.”

“혹여 이것을 돈으로 바꾸고 싶으면 천마신교주에게 찾아가라. 내 미리 말을 해 두마.”

천마신교주에게 이 귀물을 팔기로.

정체도, 이름도 모르는 남자의 말을 믿어도 되냐의 문제는 있었지만, 그녀는 믿기로 했다.

잠깐의 접촉만으로 3갑자의 내공을 전이했다.

전이대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장심, 혹은 맥문에 닿지도 않았다.

게다가 타인이 내공을 전이 중이라는 이질감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는 그 남자가 상상도 못할 고수라는 뜻이었다.

어쩌면 말로만 들었던 천마신교주 신주청이 그 남자일 수도 있었다.

얼굴은 달랐지만, 분장을 했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공손혜미는 그런 생각으로 소문을 듣자마자 움직였고, 그건 주요했다.

“지난 밤, 공손혜미가 공손세가를 벗어났습니다!”

“눈치가 빠르군. 추적한다.”

“공손가는 어쩝니까?”

“섣불리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조용히 감시한다. 그년이 가족들과 접촉하려 할 수도 있으니.”

단 하루만 시간을 지체했어도, 공손세가가 쑥대밭이 됐을 거니까.

“이명 아저씨, 북경에 가 본 적이 있다고 했죠?”

“젊은 시절에 몇 번 상행을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상단이 가지 않는 길, 선비들이 다니지 않는 길, 여인들이 갈 수 없는 길을 알려주세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공손혜미는 어릴 적부터 공손세가의 호위대장이었던 이이명과 함께 북경의 자금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정은 쉽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근방을 뒤덮고 있어서, 두 사람은 정말 조심히 움직였다.

그럼에도 전투를 피할 순 없었지만, 다행히 본대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공손혜미의 저력이 아니었다면, 길을 뚫을 수 없을 것이었다.

“아가씨의 무공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군요.”

“기연이 있었거든요.”

“정말 소문대로 귀물에 내공 증진의 효능이 있는 겁니까?”

“네? 아니에요. 그건 그냥 팔찌에요. 아주 귀한 보석으로 엮은.”

“그렇다면 더 문제 아닙니까? 저놈들은 눈으로 어떤 실체를 확인하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허상을 실체처럼 팔려는 거예요. 천마신교주에게.”

“무림의 지존이 보석에 관심이 있을까요? 그에겐 억만금이 있을 텐데.”

“사 줄 겁니다. 반드시.”

며칠 뒤, 그들은 마침내 요녕성을 벗어나 하북성에 도달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북경이고, 성을 벗어난 이상 정체 모를 추격자들도 기세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하북에는 하북팽가를 비롯한 여러 문파들이 있다.

그들을 추격하는 이들이 누군지 모르겠으나, 넓게 포위망을 구축하면 지역의 터줏대감들과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만났군.”

“……!”

만성을 지나다 매복 중인 추적자들에게 잡혀 버렸다.

개중 유독 옷이 검은 남자가 나섰다.

“잡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군. 못생긴 년이라서 내심 잡고 싶지 않았나?”

흑의인의 말에 추격대 사이에서 왁자지껄 웃음이 터졌다.

저급한 말 속에서 공손혜미는 다른 것을 보았다.

저토록 철저히 훈련된 조직이 목표물을 앞에 두고 저런 말을 지껄일 이유가 없다.

저들은 저급함을 연기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혹시…….

“당신들, 모용세가였군요.”

요녕성을 양분하는, 아니 양분했던 두 가문.

모용세가와 공손세가.

모용세가가 공손가의 재건을 바라지 않는 게 아닐까?

하지만 흑의인은 노련했다.

“그래. 우린 모용세가다. 알면 어쩔 건데?”

단번에 긍정함으로서 오히려 떠본 공손혜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남자가 검을 찔러 왔다.

캉!

검을 쳐낸 공손혜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동안 만나 본 무림인들 중 손꼽히게 강하다. 일대일이라면 자신이 있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하긴 힘들어 보였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느니라. 어차피 네 박색한 얼굴로 보는 마지막 세상일 테니.”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웬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

“아, 왜 막 친근함이 느껴지지.”

“……?”

“그러면 안 되는데 동질감도 들고 그러네.”

“누구냐!”

흑의인의 외침에 희한한 복장을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박색여신이다. 이 자식아.”

상소윤이었다.

*   *   *

바로 어제, 진유성과 상소윤은 천신궁에 도착했다.

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마침 베이징, 아니 북경에 당도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현대인인 상소윤의 입장에서 중원의 객잔은 무슨 군대 체험 같았다.

이름은 분명 침상인데, 그냥 나무 판때기 위에서 자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진유성의 힘을 나눠 받았기에 그 불편함이 육체적 데미지로 쌓이진 않지만, 그래도 편한 게 좋잖아?

그런 의미에서 천신궁은 꽤 편했다.

지구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있던 신주청이 궁내 장인들에게 이런저런 물건을 만들게 시켰으니까.

진유성의 말에 따르면 황실에서 만들어진 물건은 순식간에 전 중원으로 퍼져 나가니, 추후에는 꽤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렇게 천신궁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오전.

진유성, 신주청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

“…….”

분명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왠지 두 사람이 전음을 나누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묘하게 기파의 흐름이 평소와 다르다고 해야 할까?

물론 상소윤은 진유성, 신주청보다 기를 다루는 기술이 떨어져, 두 사람이 작정하고 숨긴다면 간파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고.

하지만 왠지 촉이 왔다.

저 두 사람이 자신이 들으면 안 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밥을 먹다가 슬쩍 떠봤다.

“흐응. 그래? 좋겠네, 진유성?”

“……!”

상소윤은 진유성이 그렇게 놀라는 모습을 처음 봤다.

“어, 어떻게 간파한 거지?”

“들리던데?”

“벌써 네가 노화순청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럴 리 없는데……!”

눈치는 신주청이 더 빨랐다.

“교주님.”

“엉?”

“상 소저는 그냥 떠본 것 같습니다만…….”

“……!”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그러니까, 옛 연인이 사랑의 징표를 들고 여기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거지?”

“그렇게 해석을 하면 안 된다. 그건 잘못된 해석이다.”

“네가 해석해 봐.”

“인연의 끝을 고하기 위해 돌려준 물건이, 혈사를 일으키며 중원을 집어삼키고 있는 거다.”

“그래서 가시겠다?”

잠깐 뭔가를 생각하던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가야겠다, 상소윤.”

“내가?”

“그래.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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