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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18화 (33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 18화>

Chapter 3. 그리고, 그리고.

쇼는 잘 마무리됐고, 상소윤의 커리어에 드디어 첫 줄이 새겨졌다.

하지만 둘은 그보다 중요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으로 향했다.

바로, 결혼 허락이었다.

“엄마한테는 뭐라고 할 거야?”

“잘 설득할 거다.”

“아빠한테는?”

“반대하면 눈에 흙을 뿌릴 거다.”

“저번에도 하려던 거잖아.”

“좀 다르다.”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어디선가 한 줌의 흙을 꺼내들었다.

상소윤은 도라에몽도 아니고 저 흙이 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물어보면 신이 나가지고 설명을 해주는데, 꼭 상소윤이 할 수 있게 만들고야 만다.

“뭐가 다른데?”

“우리가 사는 곳이 어디냐?”

“프랑스?”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보르도잖아.”

“보르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음……. 와인?”

“정답이다.”

유럽인들은 보르도라는 지역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와인을 떠올린다.

보르도는 AOC의 보호를 받는 60여 개의 와인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 중 7천 명 이상이 포도 재배에 종사한다.

즉, 전 세계 고급 와인의 근원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번에 뿌리려던 흙은 평범한 서울의 흙이었다. 어디 지나가다가 공원에서 주웠지.”

“…….”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전 세계 고급 와인을 책임지는 포도의 풍미. 그 풍미를 담은 흙이다. 어쩌면 눈에 들어가도 달콤하지 아니할까?”

“미친놈인가…….”

상소윤은 아빠가 반대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막상 집에 도착하니 상황은 둘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어, 그래.”

유혜연은 상도윤이 낮잠을 잔다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반응했고.

“기다려라.”

상림은 어딘가로 후다닥 들어갔다.

상소윤은 이게 뭔가 싶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서 질문을 던졌다.

“근데 엄마.”

“왜 그러느냐?”

“아, 진유성처럼 대답하지 마.”

“왜?”

“엄마랑 진유성이랑 따로 했던 이야기 있어? 내가 분명 저번에 불만 이야기할 때, 엄마 반응이 좀 이상했단 말이지?”

“아, 그거 말이냐?”

대답은 진유성에게 나왔다.

사건의 전말은 간단했다.

상소윤이 인과율을 건드리고 있긴 하나, 반드시 전부 진유성과 관련될 이유는 없다.

진유성이 지구에 도착하기 전, 17살 이하의 시간대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진유성은 그런 부분을 알지 못했기에, 유혜연에게 뭔가 이상한 점이 생기면 말해 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상소윤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설명했던 것이고.

“아하.”

“근데 너는 네가 만든 디자인이 쇼에 올랐으면서 엄마한테 말도 안 하니?”

“갑자기 결정됐단 말이야. 그리고 내가 말하면 엄마가 도윤이 데리고 와야 하잖아.”

유혜연과 상림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파리에 왔을 것이지만, 상도윤을 데리고 갑작스레 파리로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부러 상소윤은 가족들에게 쇼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앞으로 무수히 오를 거니까.

“근데 너희 쌩쇼한 거 기사 많이 나왔더라.”

상소윤도 보긴 했다.

솔직히 기사들에는 악플도 꽤 많았다.

진유성이 주인공 병에 걸려서 저런 짓을 했다고.

팩트 자체는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진유성 입장에서는 억울할 부분도 있다.

원래 써드쇼 정도면 메이저 후원사에게 시간을 할애해준다.

보통은 그 타임에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선전을 하거나, 탄소 중립이나 그린 이데올로기 같은 신념들을 내세운다.

진유성은 그걸 사적으로 이용했을 뿐이지, 원칙상 잘못된 건 없었다.

CMSG는 후원금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 메이저 중의 메이저 후원사였으니까.

그러니 상소윤 입장에서는 진유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걱정마라. 조만간 악플러들을 혼내 줄 거니까.”

“혼내 준다고?”

“CMSG 법무팀에서 악플러를 고소하고 그중 심각한 놈들의 신원을 특정하고 있다.”

“음, 어, 그게 문제가 아닌데?”

욕을 먹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진유성은 갚아 주면 그만인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2층 어디론가 향했던 상림이 내려왔다.

손에 뭔가를 들고는.

그리고는 거실 쇼파에 당당하게 앉더니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사위.”

“난 일위다.”

“사위.”

“일위.”

제 217회 사위-일위, 동방-서방 대전이 개최되나 싶어 흥미를 잃었던 상소윤이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교객.”

교객(嬌客).

사위를 친근하게 이르는 말.

보통은 남의 사위를 부를 때 쓰지만, 반쯤 장난스럽게 본인의 사위를 부를 때 쓸 수도 있다.

그랬다.

상림이 준비한 것은 사위라는 뜻을 가진 단어 목록이었다.

“……!”

잠시 당황한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난 협객이었다.”

“그 대답이 나올 줄 알았지. 동상.”

동상(東廂).

동쪽 평상이라는 뜻.

진나라의 극감이 사위를 고르는데, 동쪽 평상 위에서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는 왕희지를 골랐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

“난 형이다.”

“…….”

“나이에서 출생년도는 중요치 않다. 누가 더 오랜 세월을 살아갔느냐를 따지면, 분명 내가 형이다.”

“백년손님!”

“백년 넘게 이 세상의 손님으로 살아왔지.”

“그렇다면……. 반자!”

반자(半子).

아들과 다름없이 여긴다는 뜻.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상소윤은 이번 단어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자?

꽤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진유성의 눈동자가 떨린다.

설마 진유성이 이렇게 굴복하나 싶은 순간……!

풀썩.

상림이 쓰러졌다.

누가 봐도 기절한 모양새로.

“푹자.”

“…….”

상소윤은 이미 31248번쯤 한 생각이지만, 이번에 확신했다.

자신의 남편은 미친놈이다.

“형!”

그때 어린이집이 끝나고 우다다다 들어온 상도윤이 쇼파에 쓰러진 아빠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빠 자?”

진유성이 상도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대답했다.

“푹 자.”

*   *   *

상소윤과 진유성의 결혼식은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그냥 압구정 모처의 웨딩홀을 빌렸고, 청첩장을 보내 손님을 받았다.

기자들이 꽤 많이 왔고, 웨딩홀 전체를 빌렸다는 걸 제외하면 딱히 특별하지 않았다.

손님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정말 친한 사람들만 불렀고, 진유성은 친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정새롬, 심도훈, 고인수, 지종수 정도?

거기에 대정고 담임이었던 연기훈, 중원에서 납치해 온 신주청, 김정철 회장과 아놀드 벡, 팀 우산도의 각성자들 몇몇이 끝이었다.

정치인들이 오고 싶다고 오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며 화환을 보내 왔지만, 전부 돌려보냈고.

참고로…….

“내 휴가를 왜 네 멋대로 쓰냐고…….”

“국방부 장관이 도와줬다. 오늘 유일하게 참석을 허락한 정치인이다.”

“아니, 내가 방법을 물은 게 아니잖아?”

군대에 끌려갔던 심도훈은 (강제)휴가를 나온 상태였다.

그렇게 진행된 결혼식의 주례는 김정철이, 사회는 지종수가 맡았다.

지종수는 이번에 출연한 영화가 성공해서 꽤 이름을 알렸고, 놀랍게도 대정고 패거리 중 진유성을 제외하면 가장 유명 인사였다.

“말세야, 말세.”

“인과율 박살. 확실.”

정새롬과 심도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지종수는 꽤 사회를 잘 봤다.

나름 많이 준비한 듯 적절한 위트와 농담으로 결혼식을 주도했다.

하지만 적절하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다.

“신랑! 신부를 업습니다! 그대로 스쿼트 3개!”

보통 결혼식에서 사회를 보는 친구들이 신랑에게 치는 장난이다.

사람들은 사회자가 무려 ‘진유성’에게 저런 일을 시킬 줄 몰랐기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원래는 여기서 끝냈어야 한다.

지종수가 준비한 것도 딱 여기까지였고, 본래 다음 멘트는 ‘아, 이 결혼식이 아닌가.’였다.

하지만, 지종수는 그 짧은 순간에 엄청난 고양감을 느꼈다.

진유성이…….

내 명령을 듣는다!

지종수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더 나아갔다.

“다시, 한 발 스쿼트 다섯 개!”

거기서 살짝 2절, 3절의 기운이 감돌았지만, 아직 하객들은 웃어 주었다.

그러나…….

“신랑 내공 쓰지 않습니다! 다시!”

뇌절을 해 버렸다.

“이번에는……!”

그대로 지종수는 기절했다.

참고로 이번에 손을 쓴 것은 진유성이 아니라 상소윤이었다.

이런 일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하객석에서 일어난 정새롬이 사회자석에 올랐다.

그리곤 지종수가 미리 써 놓은 사회자 대본을 보고 읽었다.

꽃은 상도윤이 뿌렸고, 축가는 상소윤의 중학교 시절 친구가 불렀다.

진유성은 처음 보는 이였지만, 무슨 뮤지컬 배우라고 했다.

“걸그룹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이 달콤함은 대체……!”

심도훈이 중얼거리는 걸 보아하니, 축가자한테 반한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결혼식의 말미에 상림과 유혜연은 눈물을 글썽였지만, 딱히 서운하거나 슬퍼서는 아니었다.

어차피 진유성은 이미 그들의 가족이었고,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결혼식은 마무리되었다.

*   *   *

상소윤은 정말로 신혼여행 장소를 중원으로 결정지었다.

진유성은 정말 중원으로 결정할지 몰라 의아했으나, 들어 보니 아주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자연이 살아 있잖아?”

“그렇긴 하지.”

“그리고 아무도 못 가는 곳이잖아?”

“그것도 맞다.”

“게다가 우릴 아무도 못 알아보잖아?”

“그러하지.”

“마지막으로, 몇 시간 안 흐르잖아?”

“그게 무슨 말이냐? 시간?”

“아니, 저번에 중원에 다녀왔을 때 거기선 며칠을 머물었는데 한국에서는 두 시간? 세 시간밖에 안 지났었잖아.”

“내가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디자이너 상소윤의 포트폴리오가 촤르륵 쌓이려는 이때,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우면 안 된단 말이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지난번의 쇼 이후 상소윤에게 제법 일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즉, 상소윤은 신혼여행을 편하고 오래 보내면서도 커리어를 놓지 않는 방법으로 중원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 이유였다면 나에게 하루의 시간을 줘라.”

“왜?”

“지난번에 말했던 것 기억하느냐? 악플러들을 응징하겠다는 것.”

“아, 기억나. 아니 근데 그걸 지금 하고 가게? 다녀와서 해도 되잖아? 어차피 한국에선 하루도 안 지났을 텐데.”

“마음이 다르다, 마음이. 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가고 싶은 마음이 크구나.”

“그래, 뭐. 맘대로 해라.”

“도윤이랑 놀이공원에라도 다녀오거라. 오랜만에 보는 건데.”

“그럴까?”

상소윤의 허락을 받은 진유성은 CMSG의 법무팀이 전해 준 악질 악플러 신상 중 하나를 골라 이동했다.

거기에는…….

“간도 크구나, 고인수.”

고인수가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고인수는 진유성의 등장을 겁내지 않았다.

인수분해 사건으로 사랑을 잃어버린(지극히 본인 기준) 뒤, 겁대가리를 상실했으니까.

“그래! 간 크다!”

“좋다. 고인수. 소개팅을 주선해 주겠다.”

“……엉?”

“지난번에 축가를 부르던 상소윤의 친구를 기억하느냐?”

“어, 어…….”

“상소윤에게 부탁해서 소개팅을 주선해 주겠노라.”

“진짜?”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어……. 왜? 왜 갑자기 잘해 주는 건데?”

“그때는 미안했다.”

“……!”

“내일, 우리의 예식장 앞에 있던 호텔 라운지로 나와라.”

진유성은 그렇게 사과하고, 고인수를 위로해 주고 돌아섰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진유성이 고인수 다음으로 향한 곳은…….

“사위 등장.”

“……!”

“감히 악플을 달아?”

상림이었다.

“바, 방금 사위라고 하셨잖습니까? 이게 중원의 정서에도 손윗사람한테 막 그러면…….”

“사위(死謂 : 죽음에 이르다)다!”

“도, 도윤아!”

진유성은 상도윤이 있을 때는 상림의 털끝 하나 건들지 않는다.

혹시라도 아이의 가치관에 혼란을 줄까 봐 싶어서였다.

그러니 상도윤은 상림의 마지막 구명줄이었지만…….

“도윤이는 상소윤과 놀이공원에 갔다.”

진유성은 여기까지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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