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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14화 (329/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 14화>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잠시 사냥을 위해 밖에 나갔던 진유성이 돌아오니, 갑자기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사이로 약관(弱冠 : 20세)을 훌쩍 넘긴 사내가 서 있었다.

눈을 맞고 있던 이헌원은 진유성을 쳐다보다가 물었다.

“늘 5년 주기로 오시는 겁니까?”

“글쎄. 나도 모르겠네. 너 몇 살이냐?”

“스물둘입니다.”

“노안이네. 스물여섯쯤으로 봤는데.”

그 순간, 하늘에서 내리는 눈발 하나하나가 기세를 일으키며 진유성에게 날아들었다.

진유성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분명 거력을 품고 있었던 눈발이었으나, 진유성의 몸에 닿는 순간 사르륵 녹는 평범한 눈이 됐으니까.

“네가 날 이기려면 백 년, 아니 천 년은 이를걸?”

그 순간, 진유성에 몸에 닿았던 물기가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놀라운 수법이었으나…….

“오행(五行)에 완벽한 상성은 없다. 그렇기에 압도적인 힘이란 없지.”

액체가 얼어붙으면 열이 나온다.

진유성은 이헌원의 힘을 역이용해서 공격을 무산시키고, 남는 힘을 강력한 열양장으로 되돌려주었다.

펑!

이헌원의 장법과 진유성의 열양장이 부딪치며 눈발이 폭죽처럼 퍼져 나간다.

진유성의 수법이 얼마나 고절했는지, 이헌원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백의 힘으로 공격했는데, 천의 힘으로 돌아왔다.

타인의 진기를 그대로 되돌리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거늘, 그걸 증폭시키다니?

이는 진유성과 이헌원의 기를 다루는 수준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쫌 늘었네? 제법인데?”

“잘 몰랐습니다. 제가 얼마나 강한지. 하지만 이제 알고 있습니다.”

“아직 멀었다니까?”

“그런 저를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아저씨는 대체 누구십니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교의 사람이 아니라면, 중원인이십니까?”

“출생을 묻는 것이라면 난 고려인이다.”

“고려……?”

“하지만 내가 살아온 곳은 중원이지. 무인으로서는 중원인이 맞다.”

그 뒤, 진유성은 지난번과 똑같이 보름 동안 이헌원의 무공을 봐주었다.

보름이 끝나는 날, 이헌원이 말했다.

“교에 투신하고자 합니다.”

“왜?”

“작금의 일월신교는 사특하진 않으나 지나치게 포악합니다. 제가 교주가 되어서 바꾸고 싶습니다.”

“네 의지냐?”

“제 의지이자 할머님의 유언이었습니다.”

“뭐, 너 하고 싶은대로 하는 거지. 이제는 그럴 힘이 있잖아?”

“오 년 뒤에 제가 이곳으로 오면 또 뵐 수 있습니까?”

“아마도? 오 년 뒤에는 일월신교주가 돼서 여기로 돌아와라.”

진유성이 알기로 이헌원은 스물일곱에 일월신교 역사상 최연소 교주가 된다.

그게 딱 오 년 뒤의 나이다.

제아무리 일월신교가 무력으로 광명과 태평을 쫓는 교단이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교칙이 빡빡하다.

이헌원은 앞으로 오 년 안에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교주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사실이 있는데도, 당사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 무공이 강하다고 오 년 만에 교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누가 그래?”

“상식입니다.”

“내가 상식에 구애받을 사람으로 보이냐?”

이헌원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 술이나 한잔할까? 생각해 보니 같이 술을 마셔 본 적이 없네?”

“하지만 아저씨께서 술을 마시면 대머리 고자가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거짓말이었어.”

진유성은 이번엔 갑작스레 이별하지 않았다.

이헌원과 닷새 정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잘 지내라.”

“아저씨를 좀 더 자주 뵐 수는 없는 것입니까?”

“글쎄.”

둘의 만남과 헤어짐은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진유성이 원해서 두 사람이 오 년마다 만나는 것도 아니고, 진유성이 다른 곳에서 오 년을 보내고 오는 것도 아니다.

이건 정당한 인과율의 시험이다.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네가 나보다 강해지면 가능하겠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정도 희망은 있는 게 낫겠지.

진유성은 씩 웃고는 작별을 고했다.

*   *   *

일월신교주의 자리에 오른 이헌원이 처음으로 떠올린 사람은 진유성이었다.

진유성이란 이름은 불러 본 적이 없고, 줄곧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불렀지만 말이었다.

‘오 년.’

정말 오 년 만에 교주가 되었다.

물론 대운이 따라 주긴 했다.

할머님을 교에서 내쫓았던 예언이 실현되었고, 당시 그 예언을 박해했던 이들은 명분을 잃었다.

그들이 잃은 명분의 크기만큼 얻은 건 이헌원이었다.

고작 열 살의 나이에 목숨을 걸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신녀와 함께했으니까.

그 덕분에 이헌원은 4년 만에 교주에게 도전할 자격을 얻었고, 17대 교주에 등극할 수 있었다.

일월신교의 교주는 신임 교주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 왼팔을 내어주는 전통이 있었다.

이는 교내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뜻했다.

전대 교주가 굳건하면 그를 중심으로 불손한 무리들이 모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헌원은 16대 교주의 팔을 자르지 않았다.

“전대 교주의 강건함은 나를 위협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 교를 위한 무한한 헌신으로 쓰일 뿐이다.”

이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만큼 17대 교주 이헌원은 강했으니까.

일월신교의 역사상 가장 강한 교주로 평가받는 이의 자신감에 교도들은 열광했다.

대관식 다음 날, 전대 교주가 이헌원을 찾아왔다.

“일월신교의 교주님을 뵙습니다.”

“현 교주가 전대 교주를 뵙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그날, 오두막에서 봤던 이는 대체 누구입니까?”

“전대 교주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셨습니까?”

이헌원의 물음에 16대 교주가 회상에 잠기는 침착한 눈으로 대답했다.

“신(神).”

“…….”

“눈으로 보고 있었으나 마음이 닿지 않았고, 손을 뻗을 수 있었으나 두려웠습니다. 그가 강해서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닙니다. 그는 강하다는 표현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떠했습니까?”

“거대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 모두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

“하여 묻습니다. 그는 대체 누굽니까?”

이헌원은 과거를 회상할 뿐 대답하지 못했지만, 전대 교주에게는 대답이 된 듯했다.

“그가 진실로 신인지는 모르겠으나, 교주님에게만큼은 신이었나 봅니다.”

이헌원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다.

온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사내가 자신을 살려 주었고, 무공을 가르쳐 주었고, 길을 알려 주었다.

아저씨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이헌원에게는 결단코 신이었다.

이헌원은 새로운 교주위에 오르며 해야 할 일들을 급히 처리했다.

약속한 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행히 모든 일을 제때 처리한 이헌원은 온힘을 다해서 오두막으로 달려갔다.

늦을까 봐 초조했다.

하지만, 진유성은 없었다.

며칠이고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이 이상 교를 비웠다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장로들의 말에 본단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여 이헌원은 교병들을 파견해 오두막을 일 년 내내 지키게 했고, 오 년마다 직접 찾아가 기다렸지만…….

십년이 지나도 진유성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   *   *

오래된 기억은 변질되기 마련이다.

좋은 일은 실제보다 미화되고, 나쁜 일은 아예 잊어버리거나 악화된다.

하지만 이헌원은 진유성에 대한 기억을 변질시킬 수 없었다.

이는 그의 오성이 뛰어나 엄청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진유성과의 기억이 무(武)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이헌원은 끝을 모르고 강해졌다.

본디 무인들은 벽을 만나고, 그것을 뛰어넘기를 반복하지만 이헌원은 아니었다.

그가 벽을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벽에는 언제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오행(五行)에 완벽한 상성은 없다. 그렇기에 압도적인 힘이란 없지.”

돌이켜 보면, 아저씨는 자신이 만날 벽들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단지 말 몇 마디를 던져 줬다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유성과 나눴던 대화.

진유성이 내려 줬던 가르침.

진유성이 대련 중 보여 줬던 무공.

그 모든 것들이 거대한 벽에 구멍을 숭숭 뚫어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헌원은 그 기억을 변질시킬 수 없었고, 간직했다.

그사이 일월신교는 점차 부강해져만 갔다.

이헌원은 할머님의 유언을 좇아, 지나치게 포악한 교의 교리들을 많이 바꾸었다.

덕분에 일월신교의 세는 끝을 모르고 확장되었고, 이제 강서성을 넘어 중원의 남단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새외(塞外 : 중원을 제외한 무림)의 지존이라 불리는 이헌원이 있었고.

*   *   *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일월신교가 북쪽으로 눈을 돌린 것은.

이헌원은 처음에는 그것을 반대했으나, 어느 순간 반대하지 않았다.

“교의 사람이 아니라면, 중원인이십니까?”

“출생을 묻는 것이라면 난 고려인이다.”

“고려……?”

“하지만 내가 살아온 곳은 중원이지. 무인으로서는 중원인이 맞다.”

중원에 일월신교가 뿌리를 내리면 진유성을 만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다만 많은 피가 흐르지 않기를 바랐기에, 홀로 정도맹주를 찾아갔다.

이헌원의 힘을 알아본 정도맹주는 많은 것을 양보했지만, 그와 대화하며 이헌원은 깨달았다.

저자는 이무기가 되고 싶은 천 년 묵은 구렁이라는 걸.

그러면서도 본인을 용이라고 착각하는 위인이다.

정도 무림인들 중, 무공은 손꼽히게 강할지언정 그릇이 크진 않다.

지금은 엎드릴지언정 결국 신교와 정도맹은 충돌한다.

물론 이헌원은 그 모든 것이 정도맹주의 잘못이라고 합리화하는 소인배는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신교가 중원 진출을 선언하면서 발생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때론 자신 때문에 흐를 피가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란 게 있다.

그리고…….

그 흐름에 올라타고 싶은 게 아마 자신의 마음이었을 것이었다.

진유성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네가 나보다 강해지면 가능하겠다.”

자신이 강해졌다는 걸.

*   *   *

아아.

피가 흐른다.

일월신교와 정도맹의 싸움은 더 이상 무림 세력 간의 갈등이 아니게 되었다.

때로 사람의 상상력은 현실의 참혹함에 미치지 못한다.

이헌원이 생각했던 정도맹과의 충돌은 이런 게 아니었다. 확전에 확전을 거듭하며 민초들이 고통 받는다.

거리에는 신음하는 이들이 넘쳐나며, 사람들은 본교를 마교라고 부른다.

이헌원은 고통받았다.

그리고 매 순간이 부끄러웠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합니까?”

“인간을 그리워하면서 살면 된다. 분노보다 기쁨을, 증오보다 애정을, 죽음보다 탄생을 그리워해라.”

자신은 은혜를 갚지 못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던 진유성의 유일한 부탁을 저버렸다.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다.

하지만 이 전쟁은 반드시 누군가의 승리로 끝나야 한다.

이제 와서 종전이나 휴전은 불가능하다.

이헌원은 결심했다.

마지막 ‘벽’을 넘겠다고.

인외의 경지에 올라서 참혹한 전쟁을 끝내야겠다고.

하지만…….

마지막 벽은 과거의 신주청조차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었다.

결코 부끄러움과 참담함의 심정으로 도전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는 벽을 넘지 못했다.

“내가 네 용무를 알려주랴?”

“속에 담은 걸 털어놓는 것이다. 지나가던 고금제일인에게. 혹시 또 아느냐? 그 고금제일인이 널 안쓰럽게 여겨 도와줄지?”

감사함.

“뻔하고 진부한 신파로군.”

“하지만 그 신파가 내 이야기가 되면 아프지.”

나눠 준 공감.

“하고 싶은 일에 피가 흐르면 어찌할 거냐?”

“그래도 해낼 겁니다. 하지만, 최대한 피가 흐르지 않는 쪽으로 강구하겠죠.”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한탄.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합니까?”

“인간을 그리워하면서 살면 된다. 분노보다 기쁨을, 증오보다 애정을, 죽음보다 탄생을 그리워해라.

커다란 부끄러움.

그리고.

“아저씨를 좀 더 자주 뵐 수는 없는 것입니까?”

“글쎄. 네가 나보다 강해지면 가능하겠다.”

닿지 못했다는 아쉬움.

수많은 감정 속에서 일월신교의 17대 교주 이헌원은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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