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 13화>
* * *
마교의 본래 이름은 일월신교로, 해와 달을 상징하는 두 신을 모시는 교단이었다.
과격하긴 했으나, 사이하거나 사특하진 않았다.
그랬다면 진유성이 일월신교 잔당들의 교리 해석에 수긍했을 리도 없고, 그들이 광서성 일대에 깊게 뿌리내린 종교였을 리도 없으니까.
그런 일월신교가 중원을 침공한 것은 믿기 힘든 태평성대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17대 교주 이헌원의 치세하에 신교는 모든 일이 완벽하게 풀렸다.
무사들의 무공이 급진했으며, 전설과 같았던 전대 교주의 봉분에서 소실된 무공을 찾았다.
상단은 큰돈을 벌었고, 백 년에 한 번도 보기 힘들다는 영약들이 자꾸 발견되었다.
그래서 일월신교주 이헌원은 교리를 새롭게 해석했다.
본래 태양은 밝음(광명 : 光明)을 뜻하고, 달은 편안함(태평 : 太平)을 뜻한다.
한데, 달이 가득 찼으니 태양의 밝음을 온 세상에 전파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게 일월신교의 성전(聖戰)이었다.
사실 평범한 정도맹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월신교가 갑작스레 침공을 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진 않다.
일월신교는 차곡차곡 중원의 최남단에서 북쪽으로 진격했다.
세력권을 넓히고, 보급로를 정비하고, 현지의 문파들을 흡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중원을 집어삼켰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진유성의 멸마대였고.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이 전쟁의 끝은 굉장히 허무했다.
일월신교주가 갑작스런 주화입마로 사망하며 일월신교가 내분에 휩싸인 것이었다.
물론 한때는 일월신교주의 사망이 거짓이며, 그가 더 큰 뜻을 품고 칩거 중이라는 소문이 돌긴 했었으나.
일월신교의 잔당을 흡수한 진유성은 일월신교주가 정말로 죽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묘하면서도 끈끈한 인연이었다.
진유성은 일월신교주와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다.
하지만 그는 진유성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일월신교가 성전을 일으켰기 때문에 진유성은 멸마대에 팔려 갔다.
거기서 일월신교주를 죽이기 위한 무공을 배웠고, 신주청과 상림을 만났다.
일월신교주가 사망했기 때문에 토사구팽이 진행되고, 생존대가 구성되었다.
생존대가 입멸공이 잠들어있던 해남으로 도망친 것도 일월신교의 영향이 컸다.
그동안 일월신교의 세력권이었던 지역들은 정도맹의 정보 조직들이 완벽히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었으니까.
정도맹의 정보 빈틈으로 도망치던 생존대는 자연스럽게 일월신교의 진격로를 따라서 남하했으며, 강서성을 지나 해남도에 들어갔다.
거기서 입멸공을 얻고, 일월신교의 잔당을 흡수해 천마신교를 건설했다.
이중 단 하나만 어긋났어도 현재의 진유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조차 알지 못했던 일월신교의 17대 교주 이헌원.
진유성이 그의 어린 시절과 조우한 것이었다.
* * *
‘마교주. 아니, 일원신교주가 눈앞에 나타났다.’
진유성은 영리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했다.
만약 자신이 인과율의 시험을 받는 게 맞다면, 답은 간단했다.
원래의 미래가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우선 이헌원에게 접근해 무공을 가르쳐야 한다.
진유성이 무공을 가르쳐 주면 그가 일월신교주가 될 확률이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일월신교는 교리를 어기지 않는 한 가장 강한 이가 교주가 되니까.
그와 동시에 주화입마를 준비해야 한다.
진유성이 가르치는 무공 속에는 주화입마에 걸릴 요소가 있어야 한다.
말은 복잡해 보이지만, 진유성에게는 손쉬운 일이었다.
특정 경지를 넘어서면 주화입마에 걸릴 무공을 만들고, 이헌원의 재능을 파악해서 40년쯤 걸리게 하면 되니까.
생각해 보니, 더 쉬운 방법이 떠오른다.
진원진기를 쓰는 무공을 만들어서 건네주면 된다.
이헌원이 40년쯤 무공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진원진기가 닳아서 사망하도록.
고강한 교주가 무공을 사용하던 중 사망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주화입마를 떠올릴 거다.
그래,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진유성은 그를 연민(憐愍)했다.
이헌원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진유성은 모른다.
그의 행적은 알고 있으나, 그의 진심은 모른다.
세간의 말에 의하면 이헌원은 무공에 미쳐 있어 성전에 별 관심이 없었고, 전부 일월신교의 장로들이 벌인 일이라고 했다.
오히려 싸움의 대부분은 정도맹 때문에 자연스레 벌어진 일이라고.
왈패들도 지역권을 놓고 싸우는데, 정도맹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으니까.
또 다른 이들은 이헌원이 잔혹한 야심가라고 했다.
중원 천지에 자신의 적수가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성전을 준비했으며, 중원 일통을 준비했다고.
그 과정에서 얼마의 피가 흘러도 상관하지 않았다고.
둘 다 아닐 수도 있고, 둘 다 맞을 수도 있다.
어쩌면 어떤 순간에는 전자였으며, 어떤 순간에는 후자였을 수도 있다.
인간은 본래 한 가지 문장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존재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진유성은 저잣거리에서 구타를 당하면서도 지켜 낸 잣으로 산속에 기거하는 할머니를 위해 죽을 끓이는 이헌원을 연민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었던 ‘그릇’도 담지 못했던 진유성이란 소우주의 근간이 연민이니까.
위상의 수호자가 판단한 진유성의 가장 소중한 것도 연민이었으니까.
주저하는 법이 없는 진유성이지만, 드물게 주저했다.
난제 앞에 진유성은 선택하지 못했다.
되려, 선택한 것은 이헌원이었다.
“저녁만 보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교에서 오신 분이 맞다면, 부디 할머님이 배불리 드시고 따스히 잠드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둘의 목숨을 취하십시오.”
놀랍게도 이헌원은 진유성의 기척을 읽은 것이었다.
물론 진유성이 적당히 기척을 숨기고 있긴 했다.
하지만 무공도 익히지 않은 이 어린아이가 알아차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헌원의 재능은 신주청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다.
진유성의 존재에 가려서 그렇지 신주청도 고금제일인이라고 불려도 무방한데 말이었다.
‘한데 왜 주화입마로 죽은 거지?’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헌원이 흠칫 놀랐다.
진유성의 복장 어디에도 일월신교의 상징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진유성이 입고 있는 현대의 복식은 이헌원이 보기에 상당히 이상했다.
“교에서 오신 분이 아닙니까?”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용무이십니까?”
“날 부른 건 네가 아니더냐? 네 용무를 말해 봐라.”
“전 고인께 용무가 없습니다.”
“열 살이나 된 것 같은 아이가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데 용무가 없을 리가.”
“…….”
“내가 네 용무를 알려 주랴?”
이헌원의 눈빛이 진유성과 마주했다.
“속에 담은 걸 털어놓는 것이다. 지나가던 고금제일인에게. 혹시 또 아느냐? 그 고금제일인이 널 안쓰럽게 여겨 도와줄지?”
진유성의 말에 이헌원은 웃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본인의 이야기를 천천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헌원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그의 할머님은 일월신교의 신녀였는데, 신교의 지배자들 입장에서 해서는 안 될 예언을 했다.
거기에 밉보여서 신교에서 쫓겨났고, 교에서 분명 암살자를 보낼 것이라는 소문이 마을에 파다했다.
덕분에 아이는 배척받고 있었으며, 마을에서 한 끼 식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친할머니더냐?”
“아닙니다. 전 신녀전 앞에 버려져 있던 고아입니다.”
“뻔하고 진부한 신파로군.”
“…….”
“하지만 그 신파가 내 이야기가 되면 아프지.”
고려의 왕자였던 진유성이 고통에 신음하며 중원에 당도했던 것처럼 말이었다.
그때였다.
휘이이익-
정말로 일월신교의 암살자들이 진유성과 이헌원의 앞에 나타났다.
물론 진유성은 한참 전부터 그들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헌원이 뭐라고 입을 열려는 순간, 진유성이 손을 휘두르자.
세 명의 암살자들이 기절해 쓰러졌다.
“……!”
놀란 이헌원을 보며 진유성이 말했다.
“말했지 않느냐? 고금제일인이라고.”
진유성은 결정했다.
* * *
진유성은 이헌원과 신녀가 사는 오두막에 머물며 사냥하는 법과 요리하는 법을 알려 줬고, 계절마다 산에서 먹을 것을 구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기습하는 암살자들을 물리쳐 주었다.
죽이진 않고, 쫓아내는 정도로만.
피 냄새를 풀풀 풍겼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저들은 전문적인 암살자들이 아니다.
그저 일월신교를 호위하는 교위병들이었다.
그러다 너무 귀찮아져서 암살자들을 통해 당대 일월신교주에게 자신 있으면 한판 뜨자는 서신을 보냈다.
놀랍게도 서신을 받은 일월신교주는 정말로 홀로 오두막을 찾아왔다.
역시 화끈한 교단이었다.
하지만 그는 먼발치에서 진유성을 보고는 돌아가 버렸다.
“눈치는 있군.”
그 모든 일들을 지켜본 이헌원은 진유성이 고금제일인이라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무공을 가르쳐 주십시오.”
“왜? 배워서 뭐 하려고?”
“아저씨처럼 되고 싶습니다.”
“내가 어떤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지 않습니까?”
사실 진유성은 이헌원에게 사냥하는 법과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 줬지만, 사냥을 하진 않았다.
그냥 마을에 내려가서 물물교환을 했다.
산에서 잡은 늑대 가죽 같은 것들을 음식을 바꾸는.
물론 진유성이 이헌원과 함께 지내는 것을 안 마을에서 교환을 거부했지만, 물리물리교환으로 물물교환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에 피가 흐르면 어찌할 거냐?”
“그래도 해낼 겁니다. 하지만, 최대한 피가 흐르지 않는 쪽을 강구하겠죠.”
진유성은 무슨 생각인지, 이헌원에게 무공을 전수해 줬다.
함정은 없었다.
정직한 전수였다.
“이건 교의 무공이 아닙니까?”
“저번에 암살자들이 쓰는 걸 슬쩍 보고 만들었지. 어차피 무공은 형과 식을 벗기면 다 거기서 거기거든.”
이헌원은 진짜 천재였다.
그간 진유성은 무공의 재능을 따지자면 자신의 아래에 신주청이 있고, 나머지는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그와 신주청 아래부터는 얼마나 더 노력하고, 얼마나 더 절박하느냐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헌원은 신주청과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는 재능의 소유자였다.
심지어 몇몇 부분에서는 신주청보다 뛰어나기도 했고.
덕분에 불과 6개월 만에 대부분의 무공을 전수할 수 있었다.
물론 이제 기틀을 닦았을 뿐이고, 앞으로 무던히 정진해야 고수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합니까?”
“인간을 그리워하면서 살면 된다. 분노보다 기쁨을, 증오보다 애정을, 죽음보다 탄생을 그리워해라.”
진유성은 본능적으로 떠날 때가 됐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그는 가을 낙엽이 지는 십만대산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내 오두막으로 되돌아갔다.
불과 몇 초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오두막에는 못 보던 것이 생겨 있었다.
신녀의 무덤으로 보이는 작은 봉분.
그 앞에 서 있는 열여덟은 되어 보이는 청년.
“……아저씨?”
“몇 년이 지났느냐?”
“오 년이 지났습니다.”
“신녀는 죽었고?”
“예. 아저씨는 하나도 늙지 않으셨군요. 왠지 그럴 것 같았지만.”
“한판 뜰까?”
이헌원과 진유성은 신명 나게 싸웠다.
신적인 힘을 쓰지 않았지만, ‘싸움’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얼마나 머무십니까?”
비무가 끝나고 이헌원이 헐떡이며 물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진유성은 보름 동안 이헌원의 무공 수련을 도와주고, 밀린 이야기를 들었다.
이헌원은 마을에 복수하지 않았다.
그를 괴롭힌 이들을 용서하진 않았으나,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리워하려 노력했습니다.”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