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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7화 (322/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 7화>

*   *   *

깃발 쟁탈전은 진유성의 병(丙)조에 불리하게 진행되었다.

병조가 도망 다니면, 양방향으로 펼친 신주청의 갑(甲)조와 상림의 을(乙)조가 포위하는 형국.

숨이 턱 막혀 온다.

이건 단순한 훈련이 아니다.

목숨이 오가는 생존이다.

지옥 같은 훈련을 소화한 훈련생들은 도검이 없어도 손쉽게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있는 인간 병기들이다.

이런 불리함 속에서도 진유성은 조원들을 신출귀몰하게 이끌었고, 직접적인 전투를 꽤 많이 피했다.

하지만 모든 전투를 피할 수는 없는 법.

“쳐라!”

결국 전투가 벌어졌고, 꽤 많은 깃발을 빼앗겼다.

그렇다고 진유성의 조원들도 도망만 다닌 건 아니었다.

진유성은 처음 쟁탈전이 시작될 때부터 조원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지키는 것보다 빼앗는 데 주력하라고.

그렇다면 내가 살 길을 열어 주겠다고.

특히 깃발이 적은 이들의 것을 우선적으로 빼앗으라고 명령했다.

훈련생들은 깃발은 숨길 수 없다.

보급받은 조끼를 입고, 거기에 지니고 있는 깃발을 끼워 놓은 채로 다녀야했다.

즉, 모두가 상대방이 깃발을 몇 개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진유성의 병조는 깃발이 하나뿐인 이들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특히 소규모로 흩어진 정찰병들을 급습해 빼앗는 것에 몰두했다.

‘무슨 생각이지?’

상림과 신주청은 처음에는 진유성의 계략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깃발 수는 조원들 간의 불화를 조장한다.

깃발이 3개인 이들은 몸을 사리고, 깃발이 부족한 이들은 악귀가 된다.

다른 조에게 깃발을 빼앗지 못하면 악귀들의 시선이 동료에게 향한다.

양심의 가책을 덜어 줄 이유도 있다.

깃발이 없는 내가 싸울 때, 깃발이 많은 넌 도망치고 있었으니까.

“그만! 그만!”

조원들 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자, 신주청은 약탈한 깃발을 조장이 모두 보관하고, 후일 분배하는 식으로 불화를 잠재워야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연합을 형성한 신주청과 상림의 조가 깃발을 훨씬 많이 차지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신주청은 방심하지 않았다.

그는 진유성의 지략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어쩌면 진유성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게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얕은 수가 진유성의 전부일 리 없다.

분명 마지막 날, 어떤 승부를 걸어올 것이다.

신주청은 쟁탈전 3일차에 그런 생각을 하며 야영을 준비했다.

불화를 잠재운 덕분에 다시 조원들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급대는 순조롭게 식량을 구해 왔고, 정찰대는 주변의 안전을 확인하고 복귀했다.

이제 불침번을 세우고 잠에 들 시간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

신주청은 깜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갔다.

누군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다.

쾅!

두 사람의 주먹이 정면으로 부딪치며 대포알 터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그와 동시에 상대의 왼손이 스리슬쩍 움직여 신주청의 조끼에 끼워진 깃발을 노렸다.

“어딜!”

보법을 밟으며 금나수를 피해 낸 신주청이 상대의 턱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하지만 상대는 발차기에 대항하는 대신 몸을 최대한 낮추며 지면을 쓸듯이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3개의 깃발을 빼앗겼다.

“……!”

약탈한 깃발을 조끼에 꽂아 넣은 이는 진유성이었다.

‘무공을 숨겼나?’

신주청은 진유성의 움직임에 놀랐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진유성을 상대할 때는 냉정함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냉정함을 유지하는 건 신주청뿐이었다.

“지, 진유성이다!”

“깃발이…….”

갑조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진유성의 조끼에 빽빽하게 꽂힌 깃발들이 보였으니까.

다들 침을 꿀꺽 삼킨 채 번들거리는 눈으로 진유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갖고 싶나?”

그때, 씩 웃은 진유성이 양손으로 조끼에 끼워 놓은 깃발을 빼 들었다.

“멈춰라!”

“내가 뭘 할 줄 알고 멈추래?”

그 순간, 진유성이 깃발을 허공에 내던지기 시작했다.

아수라장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깃발을 얻기 위해 같은 조원들끼리 경쟁하는 풍경 속에서 신주청은 입에 맴돌던 질문을 던졌다.

“왜 이런 짓을 하지?”

“왜일 거 같냐?”

“……모르겠군.”

“잠시 뒤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재빨리 몸을 내뺐다.

추격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진유성은 이미 모든 깃발을 내던졌다.

조원들을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한 신주청은 진유성을 쫓지 않았다.

그러나 이윽고 벌어진 상황에 신주청도 냉정함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전부 너희 조원들의 깃발이라고?”

“순찰대가 기습을 당했수다. 돌려줘야겠는데.”

진유성이 신주청의 조에 뿌린 깃발은 상림 조원들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다.

‘단순히 분란을 유도하는 건가? 그렇다기엔 지나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혼란을 선전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은밀히 야기되는 혼란은 불화를 조장하지만, 선전된 혼란은 잠재울 수 있는 법이다.

신주청과 상림은 진유성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했다.

*   *   *

7일의 쟁탈전이 끝이 났다.

마지막 날에 진유성이 승부를 걸어올 것이라는 신주청의 예측은 틀렸다.

7일차는 그야말로 조용히 지나갔으니까.

그렇게 본단으로 복귀한 이들은 조장을 제외한 198명.

단 한 명도 사망하지 않았다.

인원 보고를 받은 총교관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려운 길을 갔군.”

도검을 사용했다면 상당히 많은 숫자의 훈련생들이 사망했을 것이었다.

그 숫자만큼 조장들의 죄책감은 줄어든다.

죽일 사람을 고르는 것보다 훈련 중에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게 훨씬 쉬운 일이니까.

어느새 표정을 지운 총교관이 세 명의 조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조장들은 각 조가 보유한 깃발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나?”

“그렇습니다.”

“갑(甲) 조.”

“조장, 신주청.”

“보고해라.”

갑조가 보유한 깃발 수는 198개.

정확히 인당 3개.

즉, 단 한 명도 죽지 않는다.

분명 뿌듯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주청은 어딘지 모르게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다.

“…….”

총교관의 얼굴에 어린 미심쩍음을 보니 그 찜찜함이 더욱 커져 갔다.

“을(乙) 조.”

“조장, 상림.”

“보고해라.”

머뭇거리던 상림이 보고를 시작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보유한 깃발도 198개였다.

총 198명의 훈련생들에게 각각 2개씩 깃발이 지급되었다.

한데 갑조에 198개가 있고, 을조에 198개가 있다는 건, 벌써 모든 깃발이 등장했음을 의미했다.

그러면 진유성의 병(丙) 조는 단 하나의 깃발도 가지지 못해야 한다.

하지만…….

진유성의 조끼에 꽂혀 있는 저 깃발은 무엇이란 말인가?

진유성뿐만 아니라, 병조 인원 중에서도 깃발을 지닌 이들이 있었다.

물론 그 수가 많아 보이진 않았다.

기껏해야 60개 정도?

하지만 산술적으로 따지면 병조는 단 하나의 깃발도 가지지 못했어야 했다.

“병조 조장, 진유성. 총 198개의 깃발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198개라고? 그 정도 수로는 안 보이는걸?”

“지금 회수하겠습니다.”

진유성이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오더니 바닥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쾅!

흙바닥이 뒤집어졌다.

신주청은 진유성의 권풍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진유성의 무공 수위가 아니었다.

“……!”

“……!”

뒤집어진 흙바닥 아래 보이는, 백 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깃발.

그것이 중요했다.

진유성은 대담하게도 지급받은 132개의 깃발을 교관동 앞마당에 묻어 놓은 것이었다.

훈련생들이 본능적으로 가장 꺼리는 장소.

가장 안전한 장소.

“보급받은 깃발 132개에 약탈한 깃발 66개를 더해 총 198개, 보고합니다.”

마지막까지 이 사실을 몰라 거뭇하게 죽어 가던 병조원들의 얼굴이 피어났다.

이렇게 되면 그들도 전원 생존이다.

교관동을 배경으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것은 총교관이었다.

“누가 가짜 깃발을 만들어도 좋다고 했나?”

“임무의 조건을 능동적으로 수용했습니다. 기습, 하독, 협상, 각자도생. 모든 것이 가능하니 위장과 정보 교란도 가능하리라 판단했습니다.”

그제야 신주청은 진유성의 속셈을 깨달았다.

“붉은색은 눈에 잘 띄어서 전부 진흙으로 염색하고 있다. 우린 싸우지 않고 숨을 거다.”

“왜 알려 주는 거지?”

“불살(不殺)에 동의해 준 대가.”

진유성은 처음부터 거짓 정보를 뿌렸고, 신주청과 상림은 믿었다.

그들은 조원들에게 병조의 깃발 색이 다를 것이라고 사전에 고지를 했고,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본인의 깃발을 진흙에 담가 황토색으로 염색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눈에 잘 띄지 않았으니까.

“갖고 싶나?”

“멈춰!”

“내가 뭘 할 줄 알고 멈추래?”

진유성은 목적은 일관됐다.

깃발을 섞는 것.

진짜와 가짜가 섞였다.

이제는 어떤 게 진짜고, 어떤 게 가짜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왜?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병조 조장, 진유성. 병조의 깃발은 전부 진짜인가?”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갑조와 을조의 깃발에는 가짜가 섞여 있는가?”

“그러합니다.”

“너는 가짜와 진짜를 전부 구분할 수 있나?”

“불가합니다. 처음에는 색이 달랐으나 쟁탈전이 진행되는 중에 6할 이상의 깃발들이 진흙으로 염색이 되었습니다.”

“깃대는?”

“동일한 대나무입니다.”

“기장은.”

“동일한 천입니다. 염색의 과정을 제외하면 완전히 똑같은 재료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교관들에게 난제를 던지는 중이겠군.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알아볼 수 있는지. 그럴 수 없다면…….”

총교관이 눈을 번뜩였다.

“모두를 살려 줄 수 있는지.”

“…….”

그랬다.

애당초 진유성은 자신의 조원들을 살리기 위해 가짜 깃발을 만든 게 아니었다.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신주청과 상림이 눈을 부릅뜨는 순간이었다.

스릉.

총교관이 검을 빼 들었다.

“무림의 모든 난제는 둘 중 하나로 귀결된다.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나, 진유성 조장?”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외면하거나, 부서지거나. 그게 모든 난제의 끝이다.”

“…….”

“검을 들어라.”

진유성이 검을 드는 순간, 빛이 번쩍였다.

장담컨대 신주청은 총교관의 일검을 막지 못했을 것이었다.

간신히 형태만 보이는 검세에 대항해 몸을 움직일 시간을 확보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진유성은 막아 냈다.

카칵!

심지어 막아 내기만 한 게 아니었다.

쉬익!

일검의 힘을 감당하지 못해 뒤로 넘어지는 와중에 발끝으로 총교관의 턱을 노렸다.

신주청은 알지 못했지만, 진유성은 벌써 심동과 무심동을 오가는 공격법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상태.

무심동에서 날아온 그 공격은 총교관을 당황케 하기에 충분했다.

만약 진유성의 내공이 갑자 수준이었다면, 그 공격은 반드시 총교관의 턱을 아작 냈을 것이다.

하지만 속도가 느렸다.

탁.

왼손을 들어 진유성의 발차기를 막아 낸 총교관이 납검(納劍)했다.

그리고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 난제는 외면하도록 하지.”

“……!”

“전원 생존이다.”

세상에 만약은 존재하지 않지만, 신주청은 꽤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깃발 뺏기 훈련이 없었다면.

그날의 전원 생존이 없었다면.

진유성을 대주로 삼은 생존대는 구성되지 않았을 거라고.

진유성을 진심으로 믿고 따를 수 있게 된 첫 순간이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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