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 3화>
* * *
심도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ST-1 구단에서 프런트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게임 관련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사이버 대학을 다니기도 했고.
평생 살아 본 적 없었던 성실한 삶이었고, 충실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의 꿈은 프런트 스태프에서 끝나는 게 아닌 구단주 겸 감독.
불가능한 소리도 아니었다.
업계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면 게임사를 차려 준다고 아버지가 약속했으니까.
실력과 경력만 쌓으면 된다.
물론 그러려면 그전에 군대부터 해결해야 했지만…….
그건 좀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야, 진유성. 넌 군대 안 가지?”
“당연하다. 난 이미 게이트 사태로부터 국방을 수호하고 있으니.”
“아, 씨. 부럽다. 나도 어떻게 뺄 방법 없으려나.”
“흠. 진정으로 원하느냐?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어!”
“그렇다면 오른쪽과 왼쪽 중 하나를 골라라.”
“그게 무슨 소리야?”
“군대를 빼 주겠다는 거니 어서 골라라.”
“……왼쪽?”
“이제 위와 아래 중 골라라.”
“위.”
“좋다. 왼쪽 팔을 잘라 주마.”
“…….”
“사지 중 하나가 없다면 군대에 안 가겠지.”
진심인 것 같은 진유성의 말에 후다닥 고개를 저은 게 6개월 전이던가?
사실 심도훈도 아무리 징징거려 봤자 군대에 가야 한다는 운명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전방위로 힘을 쓰면 뺄 수도 있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의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사내새끼는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으니까.
그래서 심도훈은 올 연말에 입대할 예정이었다.
때마침 ST-1 구단의 프런트가 재편되는 시기라서 정붙인 사람들이 많이 나가서, 입대일도 받아 놨다.
한데…….
어느 날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예상 밖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오메가 플러스요?”
롤 2부 리그에 오메가 플러스라는 팀이 있다.
비타민을 제조하는 회사인 <오메가>가 후원하는 구단인데, 선수 전원이 쌩 신인인 신생팀.
그래도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2부 리그에서 4위를 기록해 플레이오프에 참여.
거기서 준우승을 차지해서 최종 성적 2등.
2부 리그의 1, 2등은 1부 리그 승격전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니, 오메가 플러스에게 승격의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승격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단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승격전을 한 달 앞두고, 감독이 갑자기 일본 리그의 러브콜을 받고 사임을 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듣자 하니 모기업에서 임금도 안 주고 있어서 욕하기도 애매하다고 했다.
감독 따라 코치도 나가고, 상황을 본 모기업은 후원을 철회했다.
그에 따라, 팀원들은 현재 숙소도 없어 고시원에 모여 살며 PC방에서 연습 중.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
승격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니까 인수 금액이 0원인 셈이죠. 감코가 나가 버렸으니 체불된 임금도 없고, 선수들이야 연봉 계약이라서 체불된 돈 없고.
“연봉 계약이더라도 한 번에 받진 않잖아요?”
-워낙 푼돈이라서 그냥 계약 시점에 쏴 줬나 봐요. 1,500씩 다섯 명.
“그것밖에 안 받았대요?”
-3부 리그 시절에 계약한 거니까요. 그냥 연습생 계약 같은 느낌으로 계약한 거죠.
심도훈에게 구단 인수 제의가 온 것이었다.
심도훈은 ST-1에 낙하산으로 들어왔고, 다들 그의 집안에 대해 알고 있었다.
본인도 입이 무거운 편이 아니라서 나중에 꼭 구단주 겸 감독이 될 거라는 포부를 밝히고 다녔고.
처음엔 아니꼽게 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금수저답지 않은 성실함에 오히려 지금은 평판이 좋았다.
그래서 오메가 플러스를 딱하게 여기는 관계자 중 한 명이 다리를 놔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올해 군대 가려고 했는데…….”
-거의 공짜 복권이잖아요. 가기 전에 한 번 긁어 볼 만하지 않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한 달 뒤에 1부로 승격한다?
대박이 나는 거다.
모두가 예상하듯 승격에 실패한다?
팀을 해체하면 된다.
들어가는 돈이라고 해 봐야 숙소 겸 연습실의 한 달 임대 비용과 식대 정도.
-게다가 도훈 씨한테는 팀을 지도한 감독으로서의 이력이 생기는 거잖아요. 솔직히 군대 다녀와도 많이 어린데, 경력 있으면 좋죠.
“그건 그렇죠.”
-아마 협회랑 협상하면 승격전 일정도 좀 더 미룰 수 있을 거예요. 한번 고민해 봐요.
그렇게 심도훈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틀 동안 오메가 플러스 2부 리그 경기를 전부 찾아봤고, 선수들의 솔랭 영상도 모조리 관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결론을 내렸다.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직접 손을 대서 1부 리그로 승격시킬 자신은 없다.
그러니 자신이 아는 최고의 롤 플레이어이자, 전략가이자, 미친놈에게 승격을 청부하기로.
진유성.
아니, Zi존천ㅁr.
* * *
“남은 기간이 얼마나 되느냐?”
“원래는 3주인데, 협회에서 열흘 정도는 더 미뤄 줄 것 같더라고.”
“생각보다 길군.”
“이번에 국제 경기 일정이 바뀌면서 1부 리그가 2부 리그보다 훨씬 늦게 끝났거든. 아직도 플레이오프가 안 끝났어.”
원래대로라면 1부와 2부 리그는 거의 동시에 끝나고, 곧장 승격전이 진행됐어야 했다.
그러니 오메가 플러스에게는 천운이라고 불러도 될 상황이었다.
좀 우습지만, 이게 심도훈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인 부분이기도 했다.
오메가 플러스가 승격하면 드라마보다 더한 서사가 쓰여지는 거다.
그 시작은 심도훈의 돈도, 진유성의 코칭도 아니었다.
그냥 운.
그리고 심도훈은 대부분의 전설들이 운으로 시작되는 거라고 믿었다.
한국 축구에 길이 남을 감독인 거스 히딩크만 하더라도, 선수들과 전임 감독의 불화 때문에 수석 코치에서 갑자기 감독 대행이 되었다.
그것도 시즌 중에 말이었다.
한데, 그는 그 시즌에 리그 우승을 달성해 버렸다.
코칭은 그의 실력이지만, 감독 대행이 된 것은 운이란 말이었다.
오메가 플러스 팀처럼.
심도훈이 이런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고 있는데, 진유성이 말을 막았다.
그리곤 아주 깔끔히 코치직을 수락했다.
진유성은 생각보다 굉장히 흔쾌하게 심도훈의 부탁을 수락했다.
이런저런 감언이설과 이유들을 만들어 온 심도훈이 허탈해할 정도로.
이유를 물어보니 심플했다.
“안 그래도 몇 달 정도 한국에 있어야 했다. 할 게 없었는데 잘됐군.”
“너한테 그게 의미가 있어? 어차피 점심은 파리에서 먹고, 저녁은 집에서 먹는 거 아냐?”
“아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한국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심도훈이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진유성은 한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인과율을 관측할 필요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페이즈 2 게이트가 열렸던 동대문 DDP 인근의 인과율을 관찰해야 하는데, 이때 외부 요인이 개입하면 안 됐다.
그러니 게이트를 이용해 시공간을 건너뛰는 일을 자제할 생각이었다.
상소윤은 파리에서 바쁜 일이 있어서 들어오지 않는다.
즉, 한국에 혼자 남게 된 셈인데 그 시간 동안 심도훈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었다.
“와, 여기서도 또 운이 따르네? 진짜 승격할 것 같은 느낌이 막 드는데?”
“까불지 마라. 누군갈 지도하고 이끄는 자리에 있는 이는 운 따위를 입에 담으며 기뻐해서는 안 된다.”
“엥? 기뻐하는 게 뭐 어때서?”
“작은 일에 기뻐하는 리더는 작은 일에도 쉽게 실망하기 마련이니까.”
“아…….”
심도훈이 새삼스레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진유성이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이고, 어마어마한 일을 겪은 사람이란 걸 알아도 잘 체감이 되지 않았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그릇이 크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까 당장 내일부터? 네가 오케이 했으니까, 바로 선수들이랑 계약서 쓰고 숙소부터 잡을 건데.”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느냐?”
“뭐?”
“연봉 협상.”
“아, 그치. 공짜로 부릴 순 없지. 한 달 치 외주 코칭 비용. 얼마 줄까?”
심도훈도 사회생활을 좀 해서 단어로 장난을 칠 줄 알게 되었다.
감독 대행 비용이라고 하면 왠지 비싸게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망한 팀의 구원자 느낌도 있고.
하지만 ‘한 달 치’, ‘외주’, ‘코칭’이란 단어들을 섞으면 고용된 프리랜서의 느낌이 난다.
“선수들 연봉이 얼마냐?”
“천오백.”
“그만큼만 받겠다.”
“오, 그러면 한 달만 하니까 12로 나누면…….”
“나누긴 왜 나누느냐?”
“엥?”
“한 달에 천오백이다.”
“……미쳤냐?”
“내, 그 아이들에게 유감은 없으나 진실을 언급하건대, 나의 한 달이 그들의 일 년보다 가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명색이 지도자가 선수보다 돈을 덜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더냐?”
그릇이 작다.
진유성 계산법에 정신이 혼미해진 심도훈이 손을 휘휘 저었다.
“꺼져. 안 해.”
이후, 심도훈은 ‘연봉은 장난이고, 그냥 드라마에서 봤던 연봉 협상을 해 보고 싶었다’는 진유성과 500만 원에 극적인 합의에 성공했다.
사실 진유성도 할 게 없어서 심심했던 점을 심도훈이 파고든 덕분이었다.
“아니, 근데 넌 돈도 많은 놈이 왜 이렇게 돈을 탐내?”
“생각해 봐라. 나는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는 걸 좋아한다.”
“그치. 뭐 사치는 안 하지만 이상한 짓을 많이 하지.”
얼마 전에도 헬륨 가스를 먹고 전음을 쓰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면서 굳이 헬륨 가스를 주문하는 모습을 봤었다.
“근데 나도 그런 행위들이 별 가치 없는 소비라는 걸 알고 있다.”
“근데?”
“그 가치 없는 소비를 내가 열심히 번 돈으로 하면 아깝지 않느냐?”
“……그러니까 남의 돈을 삥 뜯어서 하겠다?”
“삥이라니. 표현이 거북하구나.”
“아니, 근데 엄밀히 따지면 이것도 네가 버는 돈 아니야? 코칭 비용이잖아.”
“아니다. 난 돈 한 푼 못 받는다고 해도 결국 했을 것이다. 심심하기도 하고, 재밌어 보이니까. 그냥 한번 돈 달라고 찔러 본 거다.”
“계약서 내놔!”
“뺏을 수 있으면 뺏어 보아라.”
두 손으로 계약서를 움켜쥔 진유성의 몸 뒤로 그림자가 퍼진다.
이윽고 심도훈의 눈에 3개의 얼굴과 6개의 손을 가진 진유성이 보였다.
“아수라 일무은!”
“…….”
미친놈이다.
미친놈이 틀림없다.
* * *
“이분은 승격전까지 팀의 모든 코칭을 맡게 된 진유성 코치입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짝짝짝!
심도훈의 소개에 선수들이 감동 어린 표정으로 박수를 쏟아냈다.
단 하루 만에 벌어진 일에 오메가 플러스 선수들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고시원과 PC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승격전을 준비 중이었다.
수중에 지닌 돈으로 밥을 먹어야 할지, PC방비를 내고 연습을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한데, 모든 게 바뀌었다.
강남의 널찍한 오피스텔이 숙소가 되었고, 한도가 없는 법인 카드가 쥐어졌다.
먹고 싶은 건 전부 사 먹으라면서.
게다가 그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그 진유성이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한때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존재.
롤 실력도 어마어마하다.
ST-1 2군 선수들을 데리고, 롤드컵을 2회 우승했던 최강의 멤버들을 탈탈 털어 버렸으니까.
그래서 그들의 박수에는 벅찬 감동과 힘찬 희망이 담겨 있었다.
그때 진유성이 거들먹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탑 나와.”
“어, 네!”
“게임 업계 밖에서 온 날 인정하기 힘들겠지.”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인정할 때까지 도전을 받아 주겠다. 컴퓨터 앞에 앉아라.”
“어, 그……. 알겠습니다!”
전혀 그런 마음이 아니었지만, 일단 앉으라니 앉은 오메가 플러스의 탑 라이너는 3판 연속 진유성에게 탈탈 털렸다.
심지어 진유성이 챔피언을 먼저 고른 다음에 탑 라이너에게 선택권을 줬는데도.
‘과연.’
‘개잘한다.’
‘미친 거 아니야? 방금 뭐야?’
모든 선수들이 진심으로 감탄할 때, 진유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글 나와.”
이어서 진유성은 정글, 미드, 원딜, 서폿 선수들을 탈탈 털었다.
“그래. 여전히 인정하기 힘든 얼굴이군.”
전혀 아니었다.
“얼마든지 받아 주지.”
충분하다.
“다시. 탑.”
진유성이 그냥 본인 실력을 자랑하고 싶었다는 걸 선수들이 깨달은 건,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