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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313화 (31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313화>

* * *

진유성과 상소윤은 시대에 맞는 복식을 갖춰 입고는 저잣거리로 놀러 나갔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 아쉽다는 상소윤의 말 때문이었다.

신나게 저잣거리를 구경하던 상소윤이 뒤늦게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야, 근데 엄마랑 아빠가 걱정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본래의 세계 돌아가면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길어야 십 분 정도.”

“아, 진짜? 두 세계의 시간축이 좀 다른가?”

“그것도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원하기 때문이다.”

진유성은 더는 두 세계의 시간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명나라에서 한 달을 보내도 지구에서는 한 시간 정도만 흐르게 할 수도 있다.

과거로 돌아가거나 시간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지만, 두 세계의 시간의 비율을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아니, 어쩌면 과거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사실 진유성도 새롭게 얻은 능력들에 대해서 아직 적응하는 단계였다.

실험을 해 볼 만한 이런저런 것들이 아주 많다.

게다가 진유성은 언제나 힘의 활용에 있어서는 기대 이상을 해내는 천재였다.

“올. 쩌는데.”

상소윤이 진유성의 옆구리를 푹푹 찌르자, 진유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그 모습을 주변의 명나라 백성들이 쳐다보았다.

사실 그들은 명나라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진유성이 당연히 대명제국의 말을 사용할 줄 알았고, 상소윤은 멀더의 술법을 이용했다.

본래 멀더의 술법은 타인에게 언어를 전수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으나, 진유성과 상소윤은 가능하다.

그들은 아주 복잡하고 깊은 인과율로 얽혀 있기 때문에 ‘불가능’의 제약을 받는 행위가 극히 드물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상소윤도 점점 강해지게 될 것이었다.

진유성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상소윤에게 힘을 다루는 법을 알려줘야 했고.

어찌 됐든 두 사람은 명나라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도 그들의 대화를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못생긴(?) 두 남녀가 남사스럽게 저잣거리에서 손을 꼭 부여잡고 하는 소리가 참으로 허황되었다.

“저저, 벌건 백두대낮에 헛소리하는 거 봐라.”

“꼴값들 하는 거지.”

“짚신도 짝이 있다더니. 어쩜 저리 잘 어울리는 한 쌍인지. 쯧쯧.”

시장 상인들의 조용히 떠들었지만, 진유성의 귀에 안 들렸을 리가 없다.

진유성뿐만 아니라 상소윤의 귀에도 들렸다.

그 소리에 상소윤은 화가 나기 이전에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야.”

“왜 그러느냐?”

“생각해 보니까 중원에서는 막 덩치 크고 우락부락 생긴 게 미남미녀라며? 아빠도 미남이었고.”

“뭐, 그러했다.”

“그럼 너도 박색했네?”

“…….”

“어?”

“그 어떤 사람도 감히 날 평가할 수는 없었다. 이는 대명률의 위에 기록된 천마신교의 교리로써, 무엄하게 천신을 평가하는…….”

“아니, 입에는 안 담았겠지. 근데 박색한 거지?”

“그렇지 않다. 본디 두 세계의 미의 기준이 달라진 것은 전능과 전지 때문이다. 즉, 중원은 무력을 기준으로 미추를 나누었다는 것이고 나는 무력으로는 중원에 적수가 없던 사람이었다.”

진유성이 구구절절 대답을 회피하자, 상소윤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좋아, 그럼 질문을 바꿀게. 만약에 너랑 똑같이 생겼는데 무공이 형편없어. 아니 무공을 몰라. 그러면 걔는 박색해?”

“…….”

“어?”

“그럴 리 없다. 나처럼 생겼으면 중원 최강의 무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아니, 무공을 빼라니까?”

“뺄 수 없다. 그것은 필연이다.”

“아, 더럽게 질척거리네.”

“지, 질척?”

사실 진유성은 명나라의 미추로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스로는 못생긴 얼굴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림은 진유성이 인기가 있는 건 전부 천마신교주라는 직책 때문이라고 말하다가 몇 대 얻어맞았지만, 진유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커다란 웃음이 들려왔다.

대도를 어깨에 둘러멘 8척 장신의 거한이었다.

“크하하하,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웬 미친년놈들이 떠드는 걸 듣는군.”

남자가 웃음을 터트리자, 시장 상인들이 흠칫 놀랐다.

저 남자가 누구던가.

저자는 호북성을 휘어잡은 정사지간의 문파, 오당파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까드드득.

진유성이 손을 휘두르는 순간, 거한의 대도가 한 줌으로 구겨졌다.

그리고 진유성이 손을 까딱하자. 거한의 몸이 진유성 앞으로 착 날아왔다.

허공섭물을 넘어선, 전설에나 나올 법한 섭인술이었다.

진유성의 능력을 본 거한의 간이 대도처럼 쪼그라들었다.

“야.”

“소, 소인이……!”

“아, 조용하고. 자, 이제부터 잘 대답해야 돼. 내가 어떻게 생겼지?”

“천하제일로 헌앙한 장부이십니다.”

“그럼 얘는?”

진유성이 손이 상소윤에게 향하자 거한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손을 잡고 있는 것이 딱 봐도 연인인 것 같기 때문이었다.

“천하절색의 미녀로서…….”

딱!

진유성의 딱밤을 맞은 거한이 말을 바꾸었다.

“살길 원하나 박색합니다.”

“됐어. 이제 꺼져.”

“넵.”

“양민들 괴롭히면 대도처럼 구겨 버린다.”

“그런 일 없습니다. 오당파가 정사지간이긴 하나 대명률에 따라 운영됩니다.”

“그래? 확실해?”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신주청도 자신처럼 잘하고 있나 보다.

그렇게 이름도 듣지 못한 거한이 사라지자 진유성이 어깨를 쭉 폈다.

“보았느냐?”

“야, 방금 그게 진실된 답변이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니, 그럴 리 없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저 남자가 진실된 말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럼?”

“중원은 힘의 논리에 따른 곳이고, 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난 박색한 적이 없다.”

“…….”

역시 미친놈이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다.

그때 진유성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게다가, 아마 중원의 미의 기준도 좀 바뀔 것이다.”

“엥? 왜?”

“나를 중심으로 개편이 됐기 때문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니겠으나, 점차 중원 차원의 무의식에 진유성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전능의 존재가 자리한 곳에 무력이 중요해졌고, 전지의 존재가 자리한 곳에 지력이 중요해진 것과 같은 이치였다.

“아마 다음에 올 때는 너도 박색하다는 소리를 덜 들을 것이고.”

진유성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상소윤이 물었다.

“그럼 결국 네가 보기엔 내가 예쁘다는 거네?”

그렇지 않다면 중원인들의 무의식이 바뀔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 어?”

“말만 한 계집아이가 방정맞구나.”

“어? 어?”

“조용해라.”

진유성이 앞서 걸어 나가자 상소윤이 진유성을 따라가며 옆구리를 찔러 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시장 상인들은 숨을 죽였다.

대관절 누군지 모르겠는데, 오당파의 일인자를 저토록 간단히 가지고 놀았는지 모르겠으니까.

* * *

그날 밤, 진유성은 상소윤과 함께 천신궁으로 돌아왔다.

지구로 돌아가도 좋았으나, 신주청에게 말을 하고 가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주청의 간곡한 요청 때문에 그들은 천신궁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가실 때 가더라도 술이라도 한잔하고 가라는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던 중, 신주청이 말했다.

“상림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게 가장 아쉽군요.”

“응? 왜 못 봐?”

“낮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상림이 차원의 압력을 이겨 낼 수는 없다고.”

“상림은 그렇지만 넌 아닐걸?”

“예?”

“너는 벽을 넘은 무인인데다가, 내 인과율의 업을 일부 짊어지고 있잖느냐.”

“그럼……?”

“그래. 네가 시간이 괜찮아지면 지구로 건너가 상림과 만나게 해 줄 수 있는 거지.”

“아아.”

신주청이 비로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진유성, 신주청, 상림.

세 사람은 함께 나눈 우정의 역사도 깊지만 개개인으로 나눈 우정의 역사도 깊었다.

“날짜를 딱 정해서 말해줘.”

“그럼 올해의 중양절이 끝나고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네. 맞춰서 한 번 들르마.”

두 사람은 그렇게 밤이 깊도록 술을 마셨다.

* * *

“하아…….”

공손세가의 여식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는다.

침상 위를 이리 돌아다니고, 저리 돌아다녔건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허리춤에 협봉검을 찬 공손세가의 여식이 장원으로 나왔다.

세가의 하인들도, 무인들도, 그의 오라버니들도 모두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공손 세가의 여식은 그렇게 달 밝은 날 산책을 나가기 위해서 장원의 담을 넘었다.

문을 열고 나가면 필시 깨어나서 뭔가를 챙겨 주려는 식솔들이 있을 것이니까.

‘너무 쉽네.’

예전 같으면 교대로 장원을 지키고 있는 무사들에게 월담을 제지당했을 것이나, 이제 그런 무사들은 없다.

공손세가의 가세가 기울어 무인대를 유지할 돈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담을 넘는 순간, 공손세가의 여식은 발을 삐끗했다.

마음이 무거우면 몸도 무겁다는 사부님의 말처럼, 몸이 무거웠나 보다.

일장도 되지 않는 담을 넘으며 실수를 한 것을 보니.

그녀가 힘없이 담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그녀가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는 손이 느껴졌다.

분명 호의를 가진 손길이었다.

하지만 최근 힘든 시간을 보낸 공손세가의 여식은 화들짝 놀라며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검을 빼들었다.

“어느 곳에서 오신 고인이십니까.”

여식이 물었다.

‘기척을 전혀 못 느꼈다.’

그녀를 붙들어주는 순간에도 아무런 기척을 읽을 수 없다는 건, 눈앞의 남자가 상상할 수 없는 고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그녀가 검을 뽑든 말든 아무런 관심 없이 천천히 걸어왔다.

너무나 무방비한 모습에 당황하는 찰나.

남자가 뭔가를 내밀었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값어치를 지닌 장신구였다.

“이것을 돌려주러 왔다.”

“돌려준다는 것은, 본래 이것이 공손세가의 것이었다는 겁니까?”

“아니. 네 것이었다.”

“저는 이런 귀물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이 팔찌의 이름은 칠성(七星)으로, 네가 북두칠성을 본따서 만들었고, 나에게 선물해 준 것이다.”

“뭔가 착오가 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공손세가의 차녀인 공손혜미라고 합니다.”

“그래. 공손혜미.”

진유성이 빙긋 웃었다.

“하늘의 유성은 세상을 잠깐 스쳐 지나가건만 당신은 영원한 삶을 사는군요.”

“내 삶도 영원하진 않을 거요. 조금 길 뿐.”

“나의 죽음 이후에 긴 시간을 살아갈 당신이지만, 이걸 볼 때면 내 생각을 해 줄 수 있나요?”

“노력해 보겠소.”

“절대 바뀌지 않는 하늘의 보석으로 이름을 만들어 봤어요. 마음에 드세요?”

진유성은 혼란스러워하는 공손혜미에게 다가가 직접 팔찌를 채워 주었다.

공손혜미는 분명 남자의 행동에 반발하려 했으나, 이상하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주르륵.

그 대신 눈물이 흘러나왔다.

“내, 내가 왜…….”

세가의 가세가 기울고 당차게 살아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울어 본 적이 없는 공손혜미였다.

그러나 자꾸 눈물이 나온다.

공손혜미의 손목에 칠성을 채워 준 진유성이 뒤로 물러났다.

“직접 팔려고 하면 큰 화를 부를 것이다. 하나의 성을 살 수 있는 귀물이니.”

“……!”

“혹여 이것을 돈으로 바꾸고 싶으면 천마신교주에게 찾아가라. 내 미리 말을 해 두마.”

공손혜미는 알 수 없는 울음이 가득차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공손혜미를 쳐다보던 진유성이 미소와 함께 말했다.

“내 아주 오랫동안 네 얼굴을 그려 왔으나, 더는 그러지 않을 것 같구나.”

“저는, 저는……!”

“그동안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느니라.”

공손혜미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자리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다.

울고 또 울 때쯤, 병을 앓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가 파리한 인상으로 뛰쳐나왔다.

“혜미야, 무슨 일인 게냐?”

공손혜미는 대답하지 못했다.

남자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꼭 한여름 밤의 꿈을 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목에는 칠성이 채워져 있었으며…….

그녀의 단전에는 3갑자가 넘는 내공이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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